책은 제14대 FRB 의장으로 취임한 벤 샬롬 버냉키가 세계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을 분석했다.금융시장의 현장에서 국내외 중앙은행의 동향을 분석·예측하고 있는 이코노미스트와 워싱턴 현지에서 오랫동안 FRB를 취재해 온 통신사 기자의"FRB 연구" 결정판으로 최신 정보는 물론, 언론에는 알려지지 않은 무대 뒤의 분위기와 현지조사 등을 바탕으로 한 금융시장의 실태 등을담았다.
1장에서는 버냉키 의장이 지향하는 향후의 금융정책을 점쳐보고, 2장에서는 자산버블과 싸우고 있는FRB를 해설했다. 3장에서는 FRB 조직구성과 역사를 서술하고, 4장에서는 FRB가 정책유도 대상으로 삼고 있는 페더럴 펀드 시장의 현장을묘사했다. 5장에서는 그린스펀 의장의 족적을 더듬어보고, 6장에서는 FRB와 정치의 관계를 검증했다. 7장에서는 버냉키 체제의 출범과 앞으로의시나리오를 정리해 보았다.
■ 저자
가토 이즈루 - ㈜토단(東短) 리서치 대표이사수석이코노미스트. 1965년생. 88년 ㈜도쿄단자 입사. 거대 자금이 거래되는 단기 금융시장의 일선에서 브로커로 활동했으며, 98년부터이코노미스트 겸임. 2002년부터 토단 리서치 수석이코노미스트와 뉴욕 다이와 종합연구소, 아메리카 라이트슨 ICAP에서 객원연구원으로 활동하며시장의 관점에서 금융정책을 예측하고 있다. 「가토 이즈루 위클리 리포트」는 블룸버그, 닛케이 QUICK에 의해 글로벌하게 전해지고 있으며 각국의중앙은행, 국제기관, 헤지 펀드 등에도 팬들이 많다.
야마히로 츠네오 - 블룸버그 뉴스 워싱턴 지국원. 1950년생. 73년지지통신 입사. 지지통신 런던 특파원, 교도통신 런던, 워싱턴 특파원을 거쳐 2000년부터 블룸버그 뉴스 워싱턴 지국근무. 에디터로서 FRB 등미국경제 동향에 관한 기사 편집에 종사함. 특히, 루빈 재무장관이 취임한 95년에는 일본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미재무성 기자실에 상주하며 미재무부과 FRB를 가까이서 취재해 왔다. 현재 블룸버그 TV ‘워싱턴 리포트’에서 미국 경제·금융정책에 대해 해설하고 있다.
■ 역자 우성주
동서대학교 일어일문학과를 졸업하고,서울외대통번역대학원 한일국제회의통역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SBS 번역대상 최종심사기관으로 위촉된 (주)엔터스코리아에서 전속 번역가로 활동중이며, 역서로는 『비제조업에서도 활용할 수 있는 도요타식 실천코스 제2권, 제3권』『도요타식 시각화 독본』『도요타식 일하는 힘이 몸에 배는책』『왜 도요타는 인재육성을 잘 하는가』『철학의 세계 명저 100선』『비즈니스 베이직 스킬 프로그램』등이 있다.
■ 차례
서문
제1장 버냉키의 금융정책 - 인플레이션 타깃팅의 향방을읽는다
1. 버냉키의 정책을 읽는 일곱 가지 관점
2. FRB의장 취임까지의 궤적
칼럼1 : 버냉키는 레드삭스의열성 팬
칼럼2 : FRB 이사의 개인금융자산
3. 인플레이션 타깃팅에 대한 반대가 잇따른 상원 공청회
칼럼3 :인플레이션타깃팅 채택국가의 실제
4. 버냉키의 인플레이션 타깃팅
5. FOMC의 투명성 향상에 주력하는 버냉키
6. 강연록에서읽을 수 있는 포스트 그린스펀 정책
칼럼4 : FOMC VS 일본은행 금융정책결정회의
제2장 자산 버블에 시달리는 FRB - 자산가격과 금융정책의관계
1. 자산가격의 변동이 초래하는 불안정성
2. 그린스펀 의장과 자산 버블
3. 버냉키 의장과 자산버블
제3장 FRB의 무대 뒤 - 조직의 성립과 FOMC
1. 분산화된중앙은행 시스템
2. 금융정책의 최고의사결정기관
3. 현재의 FRB 이사회 멤버들
4. 전미에 둘러쳐진 지역 연방준비은행의네트워크
5. 현재의 지역연방은행 총재들
6. FOMC의 무대 뒤
칼럼5 : FOMC 의사요지 속독술
제4장 페더럴 펀드 시장의 진실 - 그 구조와 공개시장조작의수법
1. 페더럴 펀드 시장이란?
2. 준비예금 최종일의 클라이맥스
칼럼6 : 12개 지역연방준비은행 의 총자산비교
3. 페더럴 펀드 금리의 변동 패턴
4. 뉴욕 연방준비은행이 담당하는 금융조절의 기능
칼럼7 : 비전통적 오퍼레이션으로달려온 FOMC
제5장 신전의 문을 열다 -시장과의 대화를 어떻게 할것인가?
1. FOMC 성명 10년의 궤적
2. FOMC 성명은 양날의 칼
칼럼8 : "바이어스"에서 "리스크밸런스 평가"로 이행
칼럼9 : 그린스펀 전 의장과 금융담당기자들과의 관계
제6장 FRB는 어떻게 독립성을 얻었는가? - 백악관, 의회와의관계
1. 중앙은행의 독립성이란?
2. 맥케브에서 볼커까지의 FPB와 정부의 대립
3. 그린스펀 의장, 노회한정치와의 교제법
칼럼10 : A, B, C로 나누어진 워싱턴의 파티
칼럼11 : FOMC 성명에 게재된 "지정학적리스크"
제7장 버냉키 체제
1. 실무중시 인사의 포진
2. 주택버블총결산
후기
세계의 경제 대통령 버냉키 파워
제1장 버냉키의 금융정책 ― 인플레이션 타깃팅의 향방
버냉키의 정책을 읽는 일곱 가지 관점
제14대 FRB 의장에 오른 벤 버냉키는 향후 어떤 자세로 금융정책을 추진해나갈 것인가.
*실리적으로 변모 : 강연, 논문, 의회증언 등으로 추측해볼 때, 그는 과거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는 완고한 옹고집형은 아닌 듯하다. 버냉키는 한때 디플레이션에 직면한 중앙은행은 헬리콥터로 지폐를 뿌리거나 공개시장 조작으로 온갖 자산을 구입해 국민들의 디플레이션 기대감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일본은행에 케첩 구매를 권유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그러나 그 후 그는 FRB의 실무에 정통한 스태프들의 부정적인 견해 등을 참고하면서 미묘하게 톤을 바꾸어나갔다. FRB 의장에게는 항상 정치적인 균형감각이 필요한 것이다.
*그린스펀의 계승자 : 의회증언 등에서도 강조하고 있듯이, 당장은 기본적으로 그린스펀 시절의 금융정책을 계승할 것이다.
*인플레이션 타깃팅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나서 : 의회나 FRB에 반대론이 뿌리 깊어, 인플레이션 타깃팅(중앙은행이 적정 인플레이션 범위를 설정하고 이를 유지하는 방법) 채택은 서두르지 않을 것이다. 또 실제로 채택되더라고 구속력이 약한 라이트버전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인플레이션율 달성 기간을 명시하지 않고, 고용 등 다른 경제지표에도 배려하는 자세를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투명성 향상을 위한 정보공개 : 금융정책을 더욱 투명하게 운영하고자 매진할 것이다. 다만 그것이 시장과의 대화에서 일시적으로 마찰을 불러올 우려도 있다.
*그린스펀과 다른 시장 철학 : 그린스펀은 자유시장주의자이지만 월 가에도 오랫동안 관여해온 만큼, 시장은 때때로 불가사의한 가격이 형성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지적해왔다. 반면, 버냉키 의장은 금융시장은 막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있어, 경제를 배우려는 중앙은행에 풍부한 정보를 제공해준다, (유가급등에 관해) 투기를 한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좋은 것이다. 이 같은 투기가 증가함으로써 사회 전체의 후생이 증가할 것이다라며 시장의 가격형성에 최대한 경의를 표하고 있다.
*위기관리 능력은 아직 미지수 : 그린스펀 전 의장과 비교해서 버냉키는 금융계의 인맥이 빈약하다. 월 가의 파수꾼인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가 그것을 보완할 수 있다면 별다른 문제가 없겠지만, 젊은 티모시 가이트너 총재는 윌리엄 맥도너 전 총재와 같은 카리스마가 부족하다.
*일본은행의 금융정책에 관한 언급 : 프린스턴 대학교 교수 시절에 버냉키는 미국 경제계에서 일본은행을 비판하는 데 선봉장이었다. 그러나 FRB 의장이 되면 기본적으로 그런 발언은 자취를 감출 것이다. 중앙은행장이 타국의 금융정책을 공공연히 비판하는 경우는 드물다. 중앙은행끼리의 에티켓인 셈이다.
FRB 의장 취임까지의 궤적
벤자민 S. 버냉키는 1953년 12월 13일, 약사인 아버지 필립과 교사인 어머니 에드너 사이의 장남으로 조지아 주에서 태어났다. 1975년에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하고 1979년 메사추세스 공과대학(MIT)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또 MIT 재학 중 부인인 안나와 결혼했다. 그 후 1979~85년까지 스탠포드 대학교에서 교편을 잡았고, 1985년부터 프린스턴 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로 재직했다. 이때 많은 논문과 텍스트북을 발표해 높은 명성을 얻었다.
2002년 8월, 버냉키는 부시 대통령의 지명을 받아 FRB 이사에 취임했다. 대통령경제자문위원회 의장이었던 하버드 대학교의 글렌 허버드 교수가 강력히 추천한 것이라고 한다. 당시 버냉키는 경제학자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으나, 백악관 관료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인물이었다고 한다. 친한 친구조차 최근까지 버냉키가 공화당 지지자였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버냉키는 정치적 주장이 엷을 뿐 아니라 공화당에서도 민주당에서도 거부감을 갖지 않는 유연한 입장을 취할 수 있을 듯하다.
FRB 이사로 취임한 버냉키는 강연에서 광범위한 경제문제를 경이적인 속도로 잇달아 거론하며 시장에 대량의 정보를 제공했다. 그린스펀 이외의 FRB 이사들 중에서 버냉키의 존재감이 두드러진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2004년경부터 월 가나 언론에서는 차기 의장 후보 중의 한 사람이라는 평판이 서서히 나오기 시작했다. 2005년 봄, 조지 부시 대통령은 버냉키를 대통령경제자문위원회 의장으로 임명했다. 이를 두고 시장에서는 백악관이 그를 차기 FRB 의장으로 취임시키기 위한 준비라고 해석하는 목소리가 지배적이었다. 워싱턴에서의 정치 경험이 적은 버냉키에게 백악관의 역학을 경험하게 하려는 배려라는 것이다.
2005년 10월 24일, 부시 대통령은 버냉키를 2006년 1월 말에 임기가 끝나는 그린스펀 의장의 후임으로 지명했다. 그리고 2006년 1월 31일, 그린스펀 의장이 퇴임하는 날 상원 본회의는 구두 표결로 벤 버냉키의 제14대 FRB 의장 취임을 정식으로 승인했다.
제2장 자산 버블에 시달리는 FRB ― 자산가격과 금융정책의 관계
자산가격의 변동이 초래하는 불안정성
J. K. 갈브레스는 『버블이야기』에서 "금융상의 기억이라는 것은 기껏해야 20년밖에 지속되지 않는다고 가정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버블이나 버블 후의 반동으로 괴로워해도 20년이 지나면 "큰 재난의 기억이 사라지고 지난 번의 광기는 모습을 바꿔 다시 찾아온다"는 것이다. 벤 버냉키는 1999년에 발표한 논문(마크 가틀러와 공저)에서 이렇게 기술했다. 과거 20년간 세계의 주요 중앙은행들은 인플레이션율 제어에 성공해왔다. 인플레이션은 이제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시기상조이지만, 중앙은행이 직면한 다음 싸움은 다른 전선(前線)에 존재한다고 생각된다. 이미 정책결정자들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데 자산가격의 급변동으로 인해 금융의 불안정성이 현저히 높아져 있다.
금융정책은 자산버블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라는 논의는 미국과 유럽 등에서 특히 2002년경에 활발해졌다. 세기말 경부터 주택가격 급등과 같은 자산버블에 시달리는 중앙은행이 세계적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시카고 연방준비은행과 세계은행은 2002년 4월에 공동으로 자산버블 : 금융정책, 금융감독, 국제정책에 대한 임플리케이션이라는 대규모 심포지엄을 열었다. 또 2003년 8월에는 오스트레일리아 준비은행이 자산가격과 금융정책이라는 국제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국제결제은행(BIS)의 이코노미스트(C. 폴리오 & P. 로)가 2002년 7월에 발표한 논문은 그해 여름에 유럽과 미국의 언론에서 큰 화제가 되었다.
이 논문은 중앙은행이 추구해온 안정적인 저 인플레이션율의 달성 그 자체가 금융의 불균형을 확대해 버블의 온상이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장래 인플레이션율이 안정될 것으로 예상되면 기업과 투자자들로서는 미래의 불확실성이 대폭적으로 낮아진다. 이 때문에 그들의 예상수입은 오름세로 돌아서고 나아가서는 유포리아(근거 없이 병적인 낙관에 빠지는 상태)가 발생하기 쉬워진다고 한다. 버블을 식별하는 것은 곤란하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 폴리오&로의 주장이다. 폴리오&로는 금융정책이 인플레이션율만 목표로 해서는 안 되며 버블 초기에 보이는 신용의 급격한 확장을 억제할 필요가 있다고 제창하고 있다.
이런 당시의 이코노미스트들의 논의를 정리하는 형태로 버냉키도 2002년 10월 15일(당시는 FRB 이사)에 자산가격 버블과 금융정책이라는 강연을 했다. 금융정책에서 자산거품에 대처하는 일에는 현실적으로 많은 문제를 동반한다. 이런 까닭에 그린스펀 전 의장도 발언 뉘앙스가 흔들리기도 하고 고민해가면서 자산시장과 대화를 해온 것이다.
제3장 FRB의 무대 뒤 ― 조직의 성립과 FOMC
전미에 둘러쳐진 지역연방준비은행의 네트워크
연방준비은행과 지역연방준비은행은 같다. 전미 12곳에 있는 지역연방준비은행의 네트워크는 FRB의 하부기관으로, 그 결정에 근거해 전국적인 결제시스템, 화폐 공급, 가입은행의 감독 및 규제, 국고의 재무대리인으로서 역할을 담당한다. 또 국민에 대한 금융교육에도 힘을 쏟고 있다. 지역연방준비은행의 본점 소재지는 다음의 12곳이다.
1-A. 보스턴(메사추세스 주), 2-B. 뉴욕(뉴욕 주), 3-C. 필라델피아(펜실베이니아 주)
4-D. 클리브랜드(오하이오 주), 5-E. 리치몬드(버지니아 주), 6-F. 애틀란타(조지아 주)
7-G. 시카고(일리노이 주), 8-H. 세인트루이스(미주리 주), 9-I. 미니애폴리스(미네소타 주)
10-J. 캔자스시티(미주리 주), 11-K. 달라스(텍사스 주), 12-L. 샌프란시스코(캘리포니아 주)
각 지역연방준비은행은 앞의 숫자가 각각의 지역을 나타내는 번호이다. 또 숫자와 함께 알파벳이 관할 지역을 나타내는 기호가 된다. 달러 지폐에는 이를 발행한 지역연방준비은행을 나타내는 알파벳과 번호가 인쇄되어 있다.
지역연방준비은행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공정금리의 결정이다. 1913년 연방준비법 성립 당시에는 각 지역연방준비은행이 관할지역의 경제금융정세에 따라 제각각 공정금리를 결정하고 이를 워싱턴의 연방준비이사회가 승인하는 형태를 취했다. 지역연방준비은행은 의회로부터 예산을 받지 않고 독립채산제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공정금리에 의한 어음할인이 중요 수입원이었다.
현재의 공정금리는 각각의 지역연방준비은행 이사회가 워싱턴의 FRB에 신청하고, FRB가 FOMC의 페더럴 펀드 금리 결정에 연동시켜 승인하는 형태로 되어 있다. 이 결과 FOMC의 결정 전날까지 신청하지 않은 지역연방준비은행은 적용이 늦어진다.
1935년 은행법 설정 이전, 지역연방준비은행의 독립성이 강했던 시절에는 각 지역연방준비은행의 공정금리 신청에 대해 FRB가 개별적으로 승인하였다. 지역경제의 특수성이 강했기 때문에 당시에는 각 지역연방준비은행이 독자적으로 공정금리를 설정하였다. 현행 제도 아래에서도 늦게 신청한 각 지역연방준비은행의 새로운 시세 적용이 뒤로 미뤄져 며칠 동안 각기 다른 공정금리가 적용되는 것은 지방분권 시대의 흔적이라 할 수 있다.
지역연방준비은행은 가입은행들이 출자하는 주식회사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독자적인 이사회를 갖는다. 이사는 모두 9명으로, 가입은행이 은행업계에서 선출하는 A급 이사가 3명, 비금융계에서 선출하는 B급 이사가 3명, 그리고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C급 이사 3명을 지명한다. 각 지역의 연방준비은행 이사회는 각각의 총재와 부총재를 지명하고 FRB가 이를 승인한다.
12개 지역연방준비은행의 총재는 FOMC의 멤버가 된다. 이 중 투표권을 행사하는 것은 5명으로 한정되어 있다. 공개시장조작을 담당하는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FOMC의 부의장 자리를 맡으며 투표권을 행사한다. 남은 4명의 투표 멤버는 3개 그룹으로 나뉘어, 1년씩 돌아가며 FOMC에서 투표권을 행사한다. 다만 투표권을 갖지 않는 지역연방준비은행 총재도 FOMC의 회의에 참가한다.
제4장 페더럴 펀드 시장의 진실 ― 그 구조와 공개시장조작의 수법
페더럴 펀드 시장이란?
뉴욕 연방준비은행은 연방준비제도의 오퍼레이션(공개시장조작)을 도맡아 실행하고 있다. 대부분의 미국인들(한국인들은 더욱)은 페더럴 펀드의 실태를 잘 모른다. 그러나 금융정책의 기점이 되는 것이 페더럴 펀드 금리이다. 벤 버냉키 FRB 의장은 2005년 3월 30일의 강연에서 페더럴 펀드 금리와 미국경제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해설했다.
*모기지 금리, 회사채 금리, 국채 금리와 같은 장기금리는 경제에 영향을 준다. 그러나 FRB는 거의 혹은 직접적으로 이에 영향을 줄 수 없다.
*그러나 FOMC는 공개시장조작을 통해서 초단기금리(페더럴 펀드금리)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다.
*장기금리는 현재의 단기금리(페더럴 펀드 금리)뿐 아니라 장래의 단기금리 전망에 영향을 받는다. FOMC가 장기금리를 컨트롤 할 수 있는 힘은, 시장의 기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능력에 달려 있다.
*시장의 단기금리 전망에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방법은 토크이다. FRB는 성명문이나 연설, 의회증언 등으로 시장과 국민들에게 경제전망이나 금융정책의 적절한 코스에 대한 정보를 보낸다.
핵심을 말하면, FRB는 페더럴 금리를 일정 수준으로 유도한다. 또 그것이 장래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토크에 의해 시장이 예상하도록 해 국채금리에 영향을 준다. 국채금리는 모기지, 회사채, 은행대출, 소비자대출 등에 영향을 주므로, 나중에는 인플레이션율, 성장률, 실업률 등 실물경제로 효과가 파급되어 간다.
페더럴 펀드 시장이란 한 마디로 자금 도매시장이다(한국의 콜 시장에 해당한다). 도매시장이므로 페더럴 펀드 시장에 참가할 수 있는 것은 금융기관(은행)으로 한정되어 있다. 이 시장은 텔레폰 마켓이며 증권거래소처럼 한 곳에서 거래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초단기자금 대차가 주류이며, 오버나이트 거래(초단기자금. 오늘부터 내일 아침까지의 자금 대차)가 중심이다. 보통은 이 시장의 오버나이트 금리를 페더럴 펀드 금리라고 부른다. 이 시장의 특징을 정리하겠다.
*준비예금제도와 페더럴 펀드 시장 : 은행들은 지역연방준비은행에 계좌를 갖고 있다. 그들은 이 계좌를 통해 은행간 자금결제를 하고 있다. 또 은행은 예금 양에 따라 일정 비율의 지불준비예금을 보유하도록 법률로 정해져 있다. 그 외에도 은행들은 자금을 FRB 계좌에 준비예금으로 예탁하고 있다. 즉 은행들이 연방준비은행에 맡긴 자금을 서로 융통하는 시장이 페더럴 펀드 시장인 것이다.
*시장 규모 : 공식적인 통계는 아니지만, 브로커를 경유한 최근의 페더럴 펀드 거래(오버나이트 거래)는 전체적으로 하루에 700~850억 달러 정도(약 70조 원)라고 한다. 브로커를 경유하지 않는 은행간 다이렉트 거래도 거의 비슷한 규모로 추측된다.
*브로커(중개업자) : 2006년 2월 현재, 브로커는 ICAP, 튤렛 프레본, 트래디션, 유로 브로커 등 4개사가 있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은 이들 브로커들과의 핫라인을 통해 수시로 시장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이들 4개 회사는 모두 페더럴 펀드 전업 브로커가 아닌, 미국채, 금리 스왑, 모기지, 레포(다시 판다는 조건부 매입), 외국환, 주식 옵션, 전력 도매, CO2 배출권 등 다양한 중개를 업으로 삼는 인터딜러 브로커의 한 부문이다.
*시장 참가자 : 주로 대형은행들이 참가한다. 무담보 자금거래이기 때문에 재무내용에 의한 신용도에 따라 자금조달시의 금리가 달라진다.
*거래 시간대 : 아침 7시부터 시작된다. 오전 중의 거래량 피크는 8시 반~10시 반경. 이후 거래량이 줄기 시작해 2시 경부터 다시금 완만하게 증가한다. 일일 최대의 거래량 피크는 저녁 5시 이후에 찾아온다. 연방준비은행의 은행간 결제시스템인 Fed와이어는 보통 6시 반에 종료되는데, 그와 동시에 페더럴 펀드 거래도 종료된다.
*금리 폭 : 기본적으로 32분의 1%폭(0.03125%)으로 거래가 이루어진다.
제5장 신전의 문을 열다 ― 시장과의 대화를 어떻게 추진하는가?
FOMC 성명은 양날의 검
시장과의 대화를 원활히 하기 위해서 도입된 FOMC 성명은 시장에 대한 영향이 큰 만큼 양날의 검이 될 수도 있다. 특히 경기동향이 급변하고 있을 때 멤버들의 급격한 견해 변화를 성명문에 직접적으로 표현할 경우 시장에 주는 쇼크는 배가 된다.
그린스펀의 오른팔로서 의장을 보좌해온 콘 이사는 중앙은행의 대화, 그것은 왜 중요한가?라는 조사보고서에서 중앙은행은 물가안정과 잠재성장률 부근에서 경제활동의 안정화를 달성했는지 그 결과에 근거해 평가받을 필요가 있다고 했다. 2006년 1월의 실업률은 4.7%로 거의 완전고용상태로 개선되었고, FOMC가 중시하는 개인소비지출의 핵심가격지수는 연간 1.9%로 안정되었다. 법률에 의해 의무화되어 있는 FOMC의 최대고용과 물가안정이라는 정책목표가 달성된 것이다.
인내심 강한 금융정책과 교묘한 시장과의 대화로, 그린스펀 의장은 FOMC의 정책목표를 달성해 18년 남짓의 마지막을 장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인내심 강한 금융완화의 지속으로 인해 부작용도 나타나 있다. 콘 이사는 2005년 6월 15일 뉴욕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금융정책은 경제안정과 물가안정을 목표로 해왔다. 저금리는 한편으로 자산가격 상승과 저축률 저하, 지출증가를 조장했다"라며 금융완화정책의 부작용을 인정했다.
또 "낮은 저축률과 자산가격의 급등, 과잉지출은 거시경제의 불균형을 초래하고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은 미 연방준비제도가 경기 전체의 안정을 확보하기 위해 실시한 정책의 부산물이다"라며 그린스펀 금융정책의 마이너스 측면을 처음으로 언급했다.
과거 5년간, 주택가격은 대도시권을 중심으로 2배 이상 급등했다. 그린스펀 의장은 이를 프로스라고 부르며 버블과 같은 비참한 결말에는 이르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렇지만 가계는 소득이 저조한 가운데에서도 자산가격 급등을 이용한 차입에 의해 소비를 늘려온 만큼 주택시장의 침체가 경기하락의 요인이 될 수 있다.
소득을 웃도는 지출로 가계채무는 비대화되었고, 이어 경상수지 적자도 사상 최대규모로 부풀어올랐다. 버냉키 신 의장에게 있어서는 그린스펀의 빚을 떠안은 셈이다. 그린스펀은 신전의 문을 열어 금융정책에 새로운 바람을 끌어들인 전설의 의장으로 기억될 것이다. 버냉키로서는 모든 것이 이 빚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
제6장 FRB는 어떻게 독립성을 얻었는가? ― 백악관, 의회와의 관계
그린스펀 의장의 노회한 정치와의 교제법
그린스펀은 20대 후반의 젊은 나이로 컨설팅 회사의 공동사장이 되어 경영자로서의 지도력을 닦았고, 40대 후반부터 50대에 걸쳐서는 포드 정권에서 대통령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으로 있으면서 정계의 교두보도 쌓아두고 있었다. 서로 잘 통하는 사이였던 제임스 베이커 재무장관의 설득으로 레이건 대통령에게 FRB 의장으로 지명되어 1987년 8월에 취임했다.
그린스펀 의장은 정치력은 물론이고 행운도 따랐다. 레이건 정권 하에서는 경기가 아직 확대국면에 있었고, 취임 직후 블랙 먼데이의 주가폭락이라는 시련에 잘 대처함으로써 그 이름을 알리며 순조로운 출발을 보였다.
하지만 1989년 1월의 선대 부시 정권의 탄생 무렵부터 정치와의 마찰이 시작된다. 선대 부시정권의 출범 시점에는 페더럴 펀드 금리의 유도목표가 9%에 이르고 있었다. 그리고 이 금융긴축으로 인해 1990년 7월에는 경기후퇴기에 돌입한다. 이때의 경기후퇴는 저축대부조합에 의한 과잉융자가 주원인인 부동산버블의 파열이 도화선이 되었다. 그린스펀은 느리게 금리인하를 결정했고, 당시 재무장관이었던 니콜라스 브레이디는 이 일에 대해 극도의 초조함을 보였다. 선대 부시 대통령은 1991년의 걸프전에서 승리해 지지율이 급상승해 있었지만, 대통령 선거를 코앞에 둔 1992년에 들어서도 실물경제는 침체된 그대로였다.
분노가 폭발한 재무장관은 FRB 의장과의 정례회동을 취소시켜 버렸다. 워싱턴 정가의 따돌림 같은 제재에도 불구하고 그린스펀 의장은 소폭적인 금리인하만을 계속했다. 선대 부시 대통령은 그린스펀 의장의 재임을 마지막까지 보류하며 그를 대신할 인재를 물색했다. 그러나 적임자가 보이지 않았다. 월 가에서 높은 신임을 얻고 있는 그린스펀 의장을 해임하는 리스크가 크자 결국 그린스펀 의장을 재임명한다. 그러나 이것이 발표된 것은 1991년 7월 10일, 임기가 끝나기 불과 1개월 전이라는 아슬아슬한 타이밍이었다.
아버지의 한을 잊은 듯한 아들 부시의 그린스펀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는, 8년간에 걸친 클린턴 정권 하에서 그의 권위가 높아져 FRB의 독립성을 존중하는 풍조가 강해진 탓이 크다. 이제 FRB의 독립성은 완전히 인정받게 되었다. 이런 일이 가능해진 것은 클린턴 정권의 중진이었던 로버트 E. 루빈이 있었기 때문이다.
루빈의 강력한 지원과 그린스펀 의장의 정치력이 맞물려 재정?금융정책은 매우 원활하게 추진되었고 미국 역사상 가장 긴 경기확대국면이 실현되었다. 이렇게 해서 FRB의 독립성은 흔들림 없는 것으로 성장해간다. 그린스펀 의장이 클린턴 민주당 정권, 아들 부시 공화당 정권 등의 대립 정당 사이에서 원활한 관계를 쌓을 수 있었던 것은 시대의 정권과 협조한다는 FRB의 전통과, 그린스펀 의장의 민주당, 공화당 양당과 거리를 두는 법이 교묘했던 점도 한몫 했다.
그린스펀 등 역대 의장들이 쌓아온 신인도와 독립성을 계승하여 버냉키는 FRB 의장에 취임했다. 지지율이 침체된 부시 대통령은 FRB의 후광을 빌리고 싶어 2006년 2월 6일 버냉키의 취임선서식에 직접 참석했다. 잠시 버냉키 의장과 부시 대통령의 밀월은 계속될 것으로 생각되지만, 이해 관계가 대립하게 되면 버냉키의 가장 중요한 고비가 될 것이다. 그린스펀 의장에서 인플레이션타깃팅 명시를 지향하는 논리 명쾌한 버냉키 의장으로의 이행은 2014년에 창립 100주년을 맞는 연방준비제도의 역사에 새로운 이야기를 더하게 될 것이다.
제7장 버냉키 체제
실무 중시 인사의 포진
그린스펀 의장이 1월 31일에 개최된 FOMC를 마지막으로 퇴임한 이후, 그 뒤를 따르듯 퍼거슨 부의장이 FRB를 떠났다. 퍼거슨 부의장은 수더분한 성격으로 금융시스템 대책을 비롯해,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FRB 내에서 다양한 위원회의 수장을 맡아왔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의 가이트너 총재는 "퍼거슨 제국에 해가 지는 일은 없다"라고 말했을 정도다. FRB의 수호신 역할을 해온 퍼거슨 부의장의 퇴임과 함께 버냉키 의장에게 암운이 엄습했다. 버냉키 의장은 취임 직전에 자신의 결점은 너무 명쾌하다는 점일지도 모른다고 스스로 진단했다. 그리고 그 예감은 불행히도 적중했다. 버냉키 의장이 새로운 체제의 금융정책을 공표함과 동시에, 원래의 미덕이어야 할 명쾌한 이야기로 인해 금융시장이 혼란에 빠진 것이다.
의회증언이 있은 지 이틀 후인 4월 29일, 백악관 담당기자 연차 만찬회에서 버냉키 의장은 CNBC 방송의 인기 여성 앵커 마리아 바티로모와 만났다. 이때 오프더레코드로 몇 마디 나눈 것이 화근이었다. 바티로모가 이것을 방송에서 공개하면서 시장이 떠들썩해졌다. 버냉키 의장이 시장과의 대화 실패로 추궁받고 있는 가운데 꺼내든 것이 콘 이사의 부의장 승격이다.
콘 이사는 그린스펀 전 의장의 오른팔로 활약했지만, 버냉키 의장이 추진하는 인플레이션 타깃팅에는 반대를 표명해왔다. 버냉키 의장이 콘 이사의 부의장 승격을 대통령에 진언한 것은, 인플레이션 타깃팅보다 FRB의 만물박사로 불리는 콘 이사의 실무능력을 높이 샀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버냉키 의장은 시장과의 대화 실패로 곤경에 처해 있는 데다가, 지역연방준비은행 총재들은 "의장의 발언은 명쾌하지만, 실제로 그 전망이 정확할지 여부는 아직 잘 모른다"라며 측근들도 관망 자세를 보이는 분위기였다.
이런 상황에서, 부의장 지명에 정치적 욕심을 내기 쉬운 부시 대통령에게 FRB 부의장의 인선을 맡긴다면 후일의 걱정이 남게 되므로, 버냉키 의장은 실무를 중시하여 콘 이사의 부의장 승격을 대통령에게 강력히 요청한 것 같다. 부시 대통령도, 금융정책은 유일하게 자랑할 만한 성과를 올리고 있는 부문인데 정실 인사로 오염되는 것을 피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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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냉키 의장은 실력파인 콘 이사를 부의장으로 승격시키고 버냉키, 콘 체제를 구축해 내부 체제의 강화에 임했다. 이와 병행해 시장에 만연되어 있는 버냉키 의장의 온건파적인 이미지를 불식시키기 위해 인플레이션 경계 태세를 여러 차례 언급하면서 FRB를 자신의 방식대로 잘 이끌어가려 노력하고 있다.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