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코리아 2025

   
김난도 외
ǻ
미래의창
   
20000
2024�� 10��



 

■ 책 소개

경계가 사라지는 시대, 변화를 읽는 키워드들

2024년 여름, 대한민국은 역대급 무더위와 함께 기후 변화의 현실을 마주했다.

이런 현상은 단순한 기상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변화의 신호로 해석된다. 이제 ‘역대급’이라는 표현은 일상이 되었으며, 대한민국은 그 어느 때보다도 역동적이고 다양성을 표출하는 나라로 변모하고 있다.

이 책은 대한민국의 다양한 소비 열풍과 사회적 변화를 분석하며, 그 속에 담긴 욕망과 결핍을 심도 있게 탐구한다.

푸바오, 마라탕, AI, 레트로 열풍 등 다양한 현상들이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퍼지고, 그 배경에 무엇이 숨겨져 있는지 살펴본다.

소비와 문화, 사회 변화를 통해 한국이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제공하며, 기존의 전제들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시점에 서 있음을 경고한다.

■ 저자 전미영, 김난도 외
전미영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이다. 서울대 소비자학 학사·석사·박사. 다수의 기업과 트렌드 기반 신제품개발 및 미래전략 기획 업무를 수행하며, 서울대에서 소비자조사방법과 신상품개발론 과목을 강의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리서치애널리스트와 서울대 소비자학과 연구교수를 역임했으며, 한국소비자학회 최우수논문상을 수상했다. 

2009년부터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 공저자로 참여하고 있으며, 『트렌드 차이나』, 〈대한민국 외식업 트렌드〉 시리즈, 『나를 돌파하는 힘』 등을 공저했다.

롯데쇼핑 ESG위원회 위원장, 하나은행 경영자문위원, 교보문고 북멘토, 서울시·통계청·프로축구연맹 자문위원을 맡고 있으며, 《동아일보》에 ‘트렌드 NOW’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 차례
서문
2025년 10대 소비트렌드 키워드

1 2024 대한민국
초효율주의
불황기 생존 전략
지리한 정체의 시간을 보내는 방법
시그니처의 힘
요즘가족

〈트렌드 코리아〉 선정 2024년 대한민국 10대 트렌드 상품

2 2025 트렌드
옴니보어 Savoring a Bit of Everything: Omnivores
#아보하 Nothing Out of the Ordinary: Very Ordinary Day
토핑경제 All About the Toppings
페이스테크 Keeping It Human: Face Tech
무해력 Embracing Harmlessness
그라데이션K Shifting Gradation of Korean Culture
물성매력 Experiencing the Physical: the Appeal of Materiality
기후감수성 Need for Climate Sensitivity
공진화 전략 Strategy of Coevolution
원포인트업 Everyone Has Their Own Strengths: One-Point-Up

부록



트렌드코리아 2025



2024 대한민국

초효율주의

경기가 좋지 않은 시기의 소비자들은 자신의 자원을 되도록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싶어 한다. 2024년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시간·돈·정보·노력 등 주어진 자원을 생활·업무·쇼핑에서 더욱 생산적으로 사용하려는 노력이 다양하게 관찰됐다. 그중에서도 시간 자원의 효율적 활용이 가장 두드러져, 시간의 가성비, 즉 ‘시성비’를 추구하는 ‘분초사회’ 트렌드가 전반적으로 확산됐다.


돈만큼이나 시간이 소중해진 한 해였다. 방대한 내용을 빠르게 보고 싶은 니즈는 AI를 만나 요약 서비스 시장을 더욱 성장시켰다. 2023년 12월 카카오톡은 ‘AI 기능 이용하기’라는 옵션을 선보였다. 다양한 기능 중 돋보이는 것은 대화 요약이다. ‘릴리스 AI’도 화제였다. 릴리스 AI는 유튜브 영상을 요약하는 것은 물론이고, 웹사이트나 PDF 파일 등도 요약이 가능하다.


요약을 넘어 콘텐츠 빨리 감기 소비도 증가했다. 틱톡·숏츠·릴스 등 SNS의 패러다임이 숏폼으로 옮겨가면서 음악도 전개가 빨라졌다. 특히 Z세대 중심으로 원곡을 1.5배속, 2배속 등 빠른 속도로 감상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떠오르며 ‘스페드 업’ 버전이 인기를 끌었다. 스페드 업은 특정 노래의 속도를 원곡에 비해 120~150%가량 빨리 돌려 듣는 2차 창작물을 말한다. 아이돌 시장에서 이전에 발매한 곡을 스페드 업 버전으로 재해석하는 것은 필수로 자리 잡았다.


스크린에서도 숏폼 영화가 주목을 받았다. 2024년 7월 개봉한 영화 밤낚시는 전기차를 몰고 다니는 정체불명의 남자가 충전소에서 겪는 기이한 사건을 그린 미스터리 스릴러물로, 13분 안팎의 짧은 러닝타임이 화제를 모았다. 약 한 달 동안 상영된 밤낚시의 관객은 모두 4만 6,000여 명으로, 업계에서는 흥행에 성공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밤낚시를 관람한 관객이 다른 영화도 함께 보는 파급효과다. CGV 자체 분석결과에 따르면 ‘밤낚시’의 관객 5명 중 1명은 다른 영화도 관람한 것으로 나타났다. 극장가에서는 앞으로도 숏폼 콘텐츠가 소비자를 극장으로 불러모으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다.


대기시간을 줄여주는 예약 및 웨이팅 앱은 생활 속 깊숙이 들어왔다. 맛집에서 줄서는 시간을 아껴주는 원격 웨이팅 앱 ‘캐치테이블’이나 ‘테이블링’ 등은 이제 현대인의 필수 앱으로 자리 잡았다. 광역버스 좌석 예약 앱도 등장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수도권 거주자의 평균 출퇴근 시간은 83분이라고 한다. 이처럼 출퇴근 시간이 오래 걸리거나 장거리 등교를 하는 사람들이 버스 대기시간과 이동시간을 예측할 수 있게 돕는 서비스다.


업무의 효율화

시간의 효율을 극대화하려는 움직임은 일터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2024년은 AI의 등장으로 업무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에 대한 논의가 한층 활발했다. 일하는 방식은 빠르게 변화했고 사람들은 이에 적응하기 위해 바빴다.


대표적으로 신한카드는 2018년부터 AI 기반의 ‘로봇 프로세스 자동화RPA’를 도입했다. 초기에는 대단위 업무 프로세스에만 적용했으나 직원들이 개별 업무에 직접 활용할 수 있도록 범위를 확장해왔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2023년 한 해에만 연간 76억 원의 비용과 14만 시간을 절약했다고 한다. 동원그룹은 2024년 3월 오픈 AI의 거대언어모델LLM ‘GPT-4’에 그룹 내부 문서를 연동한 ‘동원GPT’를 도입했다. 일반 챗GPT와 다르게 사내망에서만 작동하고 입력한 정보가 외부 AI 훈련에 쓰이지 않도록 제한한 것이 특징이다. 외국인 선원을 위한 언어별 안전 교육 자료 제작, 회의록 분석 등에 활용하고 있다.


업무 효율을 위해 생성형 AI를 자체 개발한 경우도 있다. 삼성전자는 ‘삼성 개발자 콘퍼런스 코리아 2023’에서 생성형 AI 모델 ‘가우스’를 소개하면서 사내 시스템에 접목해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용도를 확장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가우스는 삼성전자 내부 업무 지원을 위해 머신러닝 기술을 기반으로 개발된 생성형 AI로, 텍스트를 생성하는 언어 모델, 코드를 생성하는 코드 모델, 이미지를 생성하는 이미지 모델 등 3가지로 구성돼있다.


SK텔레콤은 AI 직원 ‘나법카’를 도입했다. SK 자금팀에는 법인카드 사용이나 한도에 관한 단순 질문이 하루에 20~30건씩 들어왔는데, 사내 직원들이 부서 메신저에 나법카 사원을 검색해 문의하면 자동으로 답변해준다. SK텔레콤에서는 ‘나법카’ 외에도, 보도자료 초안을 만들어주는 ‘나피알PR’ 사원, 여론조사 가상번호 업무를 맡는 ‘송사업’ 사원까지 20여 명의 AI 직원이 일하고 있다. 이러한 사례들은 AI를 직접 실무에 투입한 사례로, 향후 AI가 수행하는 업무의 범위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향후 전망

현대인의 삶의 속도는 점차 빨라지고 있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고 싶어 하는 분초사회 트렌드가 확산될수록 이러한 라이프스타일은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향후 초효율시대의 모습은 어떻게 전개될까?


2024년 1월 적색 신호의 잔여 시간을 숫자로 표시해주는 ‘적색 신호 잔여 시간 표시 신호등’이 서울 시내에 본격적으로 설치되기 시작했다. 무단횡단 예방과 교통사고 발생 감소 효과가 있어 미국·일본·독일 등 선진국에서도 속속 도입하고 있는데, 보행자 입장에서는 신호등을 기다리면서 느끼는 답답함을 해소할 수 있다.


시간의 효율화는 결국 비용의 최적화로 이어진다는 측면에서 시간 사용에 대한 재정비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미국에서는 드라이브 스루를 이용하는 고객의 대기시간을 단 몇 초라도 줄이려는 경쟁이 치열하다. 컨설팅 업체 인터치 인사이트는 패스트푸드점 평균 식사 비용이 10.35달러임을 감안해, 주문 후 음식이 나오는 시간을 5초씩만 줄여도 매장당 연 8,210달러(약 1,100만 원)를 더 벌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미국의 유명 외식 체인업체인 치폴레·맥도날드·타코벨 등은 모바일 주문을 통해 대기시간을 줄이는 방법을 점차 고도화하는 중이다.


마지막으로 초효율화 시대에 빠르게 도입되는 AI로 인해, 인간의 역할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2023년 9월 매경미디어그룹이 주최하는 제24회 세계지식포럼에서 아닌디아 고즈Anindya Ghose 뉴욕대학교 스턴경영대학원 석좌교수는 AI가 인간에 비해 암묵적 지식이 떨어진다고 평가하며 현재는 인간의 판단 능력이 AI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지적해 주목을 받았다. 암묵적 지식이란 경험과 학습을 통해 쌓인 지혜로, 인간이 가진 복합적인 판단 능력을 말한다. 아닌디아 고즈 교수에 의하면 AI를 활용하되 좋은 판단을 위해서는 인간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인간은 복합적인 인과적 추론의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는 뜻이다.


AI 시대에 대체되지 않을 인간의 능력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는 가운데, 한국은행 고용분석팀에서 내놓은 ‘AI와 노동시장 변화’ 보고서가 화제가 되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일자리의 12%(341만 개)가 AI 기술에 의해 대체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는데, 특히 대표적인 고소득 직종으로 분류되는 의사·회계사·변호사 등이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조사돼 직업에 대한 고정관념을 흔들었다.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철학자인 파스칼 브뤼크네르Pascal Bruckner는 현대경제가 기술의 발달로 효율주의를 달성하고자 했지만 과연 우리가 ‘생산성의 시대’를 살고 있는지 반문한다. 현대인은 모두 바쁘지만 빠르게 반복되는 일상이 곧 ‘잘 살고 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비즈니스 영역에서 시간과 비용의 최적화는 반드시 달성해야 하는 과제지만, 개인적 차원에서는 잠시 멈추고 사색할 수 있는 여유의 시간도 필요하다. 성찰의 순간이 곧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판단력을 확보하는 생산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잘 살기 위한 라이프스타일은 무엇인가? 효율인가 성찰인가? 진지한 고민이 시작됐다



2025 트렌드

옴니보어 Savoring a Bit of Everything: Omnivores

옴니보어omnivore란 사전적으로는 잡식성이라는 의미지만, 파생적으로 “여러 분야에 관심을 갖는다”는 뜻도 함께 가지고 있다. 사회학에서 옴니보어 개념은 특정 문화에 얽매이지 않는 폭넓은 문화 취향을 가진 사람을 의미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옴니보어들은 기존의 인구학적 기준으로 분류된 집단의 특성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개성과 관심에 따라 차별화된 소비 패턴을 보인다. 옴니보어는 유난한 사람들이 아니다. 일상에서 자주 관찰되는 트렌드다.


옴니보어의 세계

알맞은 때가 있다’는 오류: 뒤섞이는 라이프 사이클

라이프 사이클 변화는 직장에서도 체감할 수 있다. 육아휴직 신청 직급이 사원·대리에서 차장·부장까지 확대되었을 뿐만 아니라, 신입사원의 나이도 예측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학업 및 취업 준비 기간이 길어지고 여러 곳에서 경력을 쌓고 입사하는 일명 ‘중고 신입’도 많아지면서 본격적인 경제활동을 시작하는 시점이 30대에 가까워진 것이다.


“공부에도 때가 있다”는 말 또한 설득력을 잃고 있다. 직장을 다니면서 혹은 퇴직 후에 대학원 공부를 이어가는 사람은 물론, 직업을 변경하고자 학부 과정에 새로 등록하는 30대를 만나는 것도 놀랍지 않다. 인구구조 변화에 따라 대학도 변화를 꾀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에는 이미 시니어를 위한 대학 과정이 정착했다. 메이지대학교는 60세 이상의 정년퇴직자가 대학원에 입학할 경우, 영어 등 일부 시험을 면제해주는 ‘시니어 전용 입시’ 제도를 만들기도 했다. 학습의 욕구가 큰 시니어층이 늘어나면서 교육 시스템도 진화한 것이다.


라이프 사이클의 뒤얽힘은 가정 경제를 힘들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과거 노년기는 자녀의 부양을 받는 시기였으나, 이제는 사회적으로 노인이라고 부르는 65세 이상이 되어도 자녀와 본인의 부모를 동시에 부양하는 사람이 급격히 증가했다. 통계청의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함께 살지 않는 자녀에게 ‘정기적으로 현금을 지원하고 있다’고 응답한 65세 이상 노인은 2011년 0.9%에 불과하였으나 2020년 12.5%로 급격히 늘어났다. 또한 2020년 통계청 사회조사에서는 65~69세 응답자 중 60.3%가 부모의 생활비를 부담하고 있다고 답했다.


철 모르는 어른들: 좁아지는 세대 개념

2023년 12월, 어린이를 위한 직업 체험 테마파크로 잘 알려진 ‘키자니아’는 어른들을 위한 직업 체험 행사 ‘키즈아니야’를 마련해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 퇴근 시간을 고려하여 오후 시간대에 400명 한정으로 티켓을 오픈했는데 빠르게 매진된 것은 물론이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놓고 갈 수 있게 오전에도 열어달라”는 학부모의 요청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키자니아 측은 인기에 힘입어 2024년 4월과 6월 키즈아니야 시즌2, 시즌3를 운영했으며 행사에 다녀온 경험자들은 “다음에 또 와서 이번에 미처 하지 못한 체험을 마저 하겠다”는 후기를 남기기도 했다.


흔히들 60~70대는 온라인 게임과 담을 쌓았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또한 달라지고 있다. 일본에서 화제가 된 e스포츠팀 ‘마타기 스나이퍼스(Matagi Snipers)’ 선수들의 평균 연령은 67세다. 이 팀의 정식 가입 조건은 65세 이상이며, 60~64세 선수들은 ‘주니어’로 분류된다. 그런데 이 팀이 유명한 것은 단지 고령이라서가 아니다. 이 팀의 슬로건은 ‘손자에게도 존경받는 존재’로, e스포츠의 핵심 연령대인 1020세대에게도 뒤지지 않는 실력을 자랑한다.


성(性)역은 없다: 경계가 사라지는 젠더

스포츠 관람을 즐기는 사람은 남성이 많을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요즘 야구장을 가본 사람이라면 풍경이 사뭇 달라지고 있음을 느낄 것이다. 한국야구위원회KBO에 따르면 2024년 상반기 프로야구 티켓 구매자 중 54.4%가 여성이었으며, 이는 전년 대비 3.7%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야구뿐만 아니다. 한국프로스포츠협회에서 4대 스포츠(축구·야구·배구·농구)의 팬 성별 비중을 조사한 결과, 여성이 더 많았다.


운동 종목의 경계도 무너지고 있다. 흔히 여성들이 많이 하는 운동으로 생각하는 ‘발레’·‘요가’ 같은 몸매 관리를 위한 운동이나 자전거 타기 같은 유산소 운동 등은 언급량이 줄어든 반면, ‘클라이밍’·‘크로스핏’처럼 남녀 구분 없이 함께하는 운동이나 ‘천국의 계단’·‘인터벌’ 등 고강도 및 근력 증진 운동은 언급량이 증가했다. 근육량을 늘리고자 하는 여성들이 증가하면서 프로틴 관련 식품 소비에도 성별의 차가 줄어들고 있다.


패션에서도 마찬가지다. 몇 년 전부터 ‘젠더플루이드’ 혹은 ‘젠더리스’ 패션이 떠오르면서 남성 연예인이 흔히 여성용이라 생각하는 스커트, 꽃무늬 제품, 클러치 같은 소품을 착용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22년 나이키 코리아가 홍대에 처음 젠더플루이드 매장을 연 것을 시작으로 롯데백화점은 2023년 12월 월드몰과 부산 본점에 성별 구분 없는 통합 패션관을 조성했다.


옴니보어의 등장 배경

‘순차적 인생 모형’의 변화

가장 먼저 우리가 더 오래 살게 됐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오랫동안 인류는 삶을 네 단계로 쪼개어 유년기에는 놀고 배우며 청년이 된 후에는 열심히 일하고 중년에 가족을 부양하고 노년에 은퇴하여 삶을 마감하는 생애 모형을 당연하게 여겨왔다. 하지만 인류가 건강하게 더 오래 살게 되면서 노년기가 비약적으로 길어졌다. 세계보건기구(WHO)의 2019년 발표자료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건강수명, 즉 신체적·정신적으로 문제없이 건강하게 살 것으로 기대되는 나이는 73.1세다. 65세에 ‘은퇴’라는 단어는 어색해진 시대가 온 것이다.


인생 시계가 늦춰진 것에 이어 사회 환경도 달라졌다. 학업·취업·결혼·출산 등의 생애 과업이 개인의 선택이 되면서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수용하려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기술 발전의 영향으로 인생 초기에 배운 것만으로 다양한 변화에 대응하면서 남은 인생을 살아가기 어렵게 됐다. 배움의 시기와 노동의 시기를 구분짓는 것이 아니라, 10대에도 창업을 하고 중년에도 학습을 하는 옴니보어 라이프스타일이 자연스럽게 필요해진 것이다.


조직 내의 세대 간 영향도 단순히 위에서 아래로 흐르지 않는다. 20대 대표와 50대 인턴이 함께 일하며 대표는 아이디어와 기술력을, 인턴은 실무 경험으로 시너지를 내는 스타트업 사례가 종종 눈에 띈다. 또한 대기업에서 공공기관에 이르기까지 역멘토링(혹은 리버스 멘토링)이 활성화되고 있다. 조직 내에서 세대 차이가 중요한 이슈로 부상하자 임원이나 선배 직원이 신입사원을 비롯한 젊은 직원들에게 요즘 문화나 바뀐 조직문화에 대한 의견을 듣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다. 유연한 조직문화를 조성하고 조직 밖에서 일어나는 시장의 변화를 놓치지 않으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2025년에는 대한민국 국민 다섯 명 중 한 명이 65세 이상이 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 초고령사회를 앞두고 대한민국 경제의 생산성 저하, 국민연금을 비롯한 제도적 문제, 세대 간 갈등 등 녹록지 않은 문제가 제기된다. 우리는 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창업가 지나 펠(Gina Pell)은 새로운 시대의 인간상을 ‘퍼레니얼(perennial)’이라고 표현했다. 퍼레니얼은 다년생 식물, 즉 한 번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면 생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절이 바뀌면 다시 싹을 틔우는 식물을 뜻한다. 오늘날의 인류는 다년생 식물처럼 노년과 청년을 구분짓지 않고 끊임없이 일하고 배우며 상호작용하는, 세대에 갇히지 않는 ‘탈세대 인류’라는 의미다.


이제 시장도 조직도 더 이상 전형적이지 않다. 기존의 고정관념을 버리고 상식을 재정립할 때다. 모든 전제를 원점에 두고 다시 생각하라.


#아보하 Nothing Out of the Ordinary: Very Ordinary Day

평범한 ‘보통의 하루’에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소확행’과는 미묘하지만 확연하게 결이 다른 움직임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큰 꿈을 갖고 원대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현재를 희생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삶을 지향해왔다. 성공이 곧 행복이라 믿었다.


그러한 가운데 나타난 소확행 트렌드는 행복이란 경쟁에서 이기고 거창한 성취를 이뤄야 가능한 것이 아니라, ‘사실 행복은 삶 속에 숨어있다’는 발상의 전환을 가능하게 했다. 먼저 삶의 질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됐다. 건강관리나 운동 같은 ‘웰빙’소비가 늘어나고 여행과 외식 같은 ‘체험’을 중시하게 됐다. 그동안 지나치게 과시적이고 경쟁적이던 삶의 방식을 어느 정도 진정시키며, 남과의 비교가 아니라 자신만의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게 하는 바람직한 변화를 가져왔으며, 그 순기능은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문제는 ‘소확행’이라는 단어가 언젠가부터 조금씩 변질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소확행이 마케팅 용어로 자리 잡으며 어느새 ‘약간 비싸지만 지불 가능한 가격대의 제품이나 서비스’라는 의미로 상업화됐다. SNS에 몰두하는 일부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소확행이 인스타그램 피드에 올리는 작은 사치, ‘스몰 럭셔리’의 또 다른 표현으로 자리 잡았다.


새벽 5시 한강변을 뛰는 인증샷을 남기고, 해외여행 중 찰나의 순간을 담은 사진에 #소확행만 달면 그만이다. 작은 것에서도 행복을 찾자는 본래의 취지가 “행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남에게 인정받지 않으면 행복이 아니다”는 강박으로 변해갔다. 행복을 과시하는 소셜미디어 광풍에 ‘나도 퇴근 후 홈술 사진쯤은 SNS에 올려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의무감에 시달리게 된 것이다. 이제 나만의 작은 행복조차 남과 비교하고 과시하고 경쟁하는 아이템이 됐다. 한마디로 우리는 행복에 지쳐갔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누가 더 행복한가 하는 경쟁 속에서 행복을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에 피로해진 것이다.


#아보하의 여러 단면들

특별한 순간이 아닌, 평범한 일상

#아보하는 무탈하고 안온한 일상을 일컫는 ‘아주 보통의 하루’의 줄임말이기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일상’이다. 최근 일상이 주목받고 있다. 코난테크놀로지의 소셜 분석 결과에 따르면 ‘무탈·평범·보통’의 온라인 언급량이 최근 2년 동안 완만하게 증가하고 있는데, 특히 이와 함께 언급된 연관어가 인상적이다. ‘가족·부모님·아이·남편’ 등의 가족 구성원, ‘고기·밥’ 같은 평범한 식사, ‘유튜브·넷플릭스’ 같은 일상 활동이 대표 연관어로 등장한다.

콘텐츠 영역에서도 일상이 주목받는다. 2024년 1월에 개설된 유튜브 채널 ‘인생 녹음 중’은 8개월 만에 구독자 수 108만을 돌파했다. 이 채널이 인상적인 이유는 인상적인 내용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주요 콘텐츠는 부부의 대화가 담긴 블랙박스 녹음 파일이다. 특별한 주제도 없다. 부부가 나누는 시시콜콜한 대화, 티키타카하며 주고받는 노래가 대부분이다. 매력적인 배경음악도 없다. 그릇 부딪히는 소리, 과자 먹는 소리 등 주변 소음만 잔뜩 들린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 평범한 부부의 ‘찐일상’에 귀 기울인다. 자극적인 콘텐츠가 넘치는 유튜브에서 이런 평이한 콘텐츠가 인기를 끈다는 사실은, 특별한 순간이 아닌 평범한 일상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남에게 과시하지 않고 나에게 집중

한국 소비문화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쓴다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다소 비싸더라도 이왕이면 브랜드 제품을 구매하려고 하며, 그중에서도 명품을 선호한다. 이렇듯 소확행마저 그 진정한 의미를 잃고 변질됐지만, 남에게 과시하기보다는 자신에게 집중하는 소비를 하며 #아보하를 보내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예를 들어, 비싼 명품 가방 대신 그나마 저렴한 명품 립스틱을 사고 SNS에 올리는 것이 ‘변질된 소확행’이라면, #아보하는 명품 립스틱 대신 고품질의 기능성 치약을 구매하는 것이다. 좋은 치약은 SNS에 올라온 명품 립스틱과는 달리 남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아주 사적인 즐거움이다.


도서 시장에서는 ‘필사’가 인기다. 좋은 문장을 손으로 옮겨 적으며 그 의미를 느낄 수 있게 하는 책들이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르고 있다. 어휘력을 높여주는 필사책에서부터 자신의 마음을 한줄로 표현하거나 명언을 옮겨 적는 필사책까지 종류도 매우 다양하다. ‘필사’는 과거의 ‘캘리그래피’ 열풍과는 다소 다르다. 캘리그래피는 손글씨를 멋지고 예쁘게 써서 SNS에 올리고 남에게 자랑하려는 의도가 강했다면, 필사는 말 그대로 혼자 방에서 묵묵히 해내는 일이다. 자신에게 집중하며 무탈한 하루를 보내기에 안성맞춤이다.


드라마틱한 변화보다는 잔잔한 유지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한 일본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자주 관찰된다. 『도쿄 리테일 트렌드』의 저자인 애널리스트 정희선은 요즘 일본 20대들이 즐겨 찾는 공간으로 ‘동네 목욕탕 사우나’를 꼽는다. 최근 SNS에서 유행하는 해시태그 중에 ‘#레푸기움(refugium)’이라는 것이 있다. 레푸기움이란 라틴어로 ‘피난처’란 뜻으로, 빙하기 등 여러 생물종이 멸종하는 환경에서 생명체가 위협을 피하여 살아남을 수 있었던 공간을 의미한다. 나만의 피난처를 찾는 트렌드가 확산돼 레푸기움 해시태그가 유행하는 가운데, 멋진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카페나 그럴듯한 노천탕이 있는 유명 온천이 아니라, 어르신들이 방문할 것 같은 동네 목욕탕 사우나를 젊은 사람들이 찾는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전망 및 시사점 _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골디락스’처럼

모든 트렌드가 그렇듯, 그에 맞는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해 예전에 없던 시장을 만들어내는 일은 좋은 성과를 거둘 가능성을 높여준다. 특히 소비자의 일상과 늘 맞닿아 있는 가전제품의 경우에는 작은 기능 하나로 기술과 소비자의 간극을 줄이는 데 #아보하 트렌드를 활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에서 선보인 로봇청소기 ‘비스포크 제트봇 AI’에는 뜻밖의 기능이 있다. 바로 음성으로 사람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기능이다. 청소를 시키면 뜬금없이 “매일같이 청소하시는 모습이 참 깔끔하시네요”와 같이 칭찬을 해주는가 하면, 청소를 마친 후 “오늘은 평소보다 먼지가 많아서 뿌듯하네요”, “청소 후 뿌듯한 마음으로 돌아갑니다”와 같은 자화자찬을 늘어놓기도 한다. 이런 음성 기능은 청소기 본연의 기능과 큰 상관은 없지만, 좀처럼 칭찬받을 일이 없는 현대인의 일상에 작은 즐거움을 선사한다.


중용의 절제를 아는 삶, #아보하

#아보하는 논쟁적 트렌드다. 거창한 성취는 물론이고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하루하루 일상에 최선을 다하고 감사할 수 있게 하는 긍정적인 측면이 존재한다. 하지만 젊은 세대가 열정과 포부를 잃어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함께 불러일으킨다. 현재를 강요하는 트렌드가 사람들의 ‘상승 의욕’을 부정하며, 미래가 아닌 현실에 안주하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현재만을 강요하는 태도로 인해 우리 사회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리는 ‘집단 무기력’에 빠질 우려도 존재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경기가 나쁜 것을 넘어 성장의 속도가 현저하게 느려지고 있고, 그 안에 더 나은 미래는 보이지 않는다. 당연히 원대한 목표를 세우고 그것에 매진하기보다는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 합리적인 귀결이다. 이런 절망감은 특히 젊은 세대에서 강하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시선은 현재의 안온한 삶으로 향하게 된다.


영국의 유명한 전래동화에서 유래한 ‘골디락스’라는 말이 있다.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은, 딱 적당한 상태를 이르는 말이다. 지구가 생명체가 살 수 있는 행성이 된 것은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은 ‘골디락스’ 환경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행복도 그런 것이 아닐까? 너무 불행한 것도, 너무 행복한 것도 바라지 않는, 중용의 절제를 아는 삶의 태도 말이다.


평범한 일상은 가장 특별하고 성공한 사람에게도 기본으로 깔려야 하는 가장 안온한 안전지대다. 하물며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무한질주를 벌이고 있는 필부필부(匹夫匹婦)에게는 더 말할 것도 없다. 특별한 행복이 찾아오지 않았더라도 오늘은, 아주 보통의 오늘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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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