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사회 코드

   
졸랑타 바크(역자: 김모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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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플BIZ
   
16500
2008�� 08��



■ 책 소개
"가족, 노동, 마법, 몸, 사치, 의례,윤리가치, 여성, 남성, 사랑 혹은 만남" 등 10개 키워드 아래 트렌드의 메커니즘을 정리하였다. 우리가 살아가고 소비하는 라이프스타일 전면에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사회의 역동적인 변화를 꿰뚫어 볼 수 있게 해준다.

 


미래사회의 코드는, 가족(다양한 연합 모임 혹은 자가 관리의 형태를 띠게 될 가정),노동(스몰 비즈니스 혹은 ‘프티 블로’의 부상), 마법(영웅이 사라진 시대, 마법과 픽션을 숭배하는 신인류), 몸(몸에 대한 불멸을 꿈꾸는현대판 파우스트들), 사치(‘셀프메이드 사치’라는 새로운 로고스의 탄생), 의례(빠르게 사라져가는 집단적 의례들, 떠오르는 사소하고 개인적인의례들), 윤리 가치(관계의 중시, ‘대화체 상표’를 찾기 시작하는 소비자), 여성(제3의 여성, 여성은 남성의 희망이다!), 남성(여성 혁명의그늘에서, 수컷들의 자화상 그리고 새로운 롤모델), 사랑(‘러브 앤 더 시티’, 가장 큰 사치는 바로 사랑!)이다.


■ 저자 졸랑타 바크(Jolanta Bak) 
폴란드태생으로 미국(라이스대학교와 하버드대학교)에서 문학을 연구했다. 1982년 이후 프랑스에서 살고 있는 저자는 광고업체의 전략 기획가로 오랫동안활동했다. 2000년에 혁신 컨설팅 회사인 직관연구소를 설립해, 새로운 개념의 창출과 브랜드 경영, 사회 경향의 분석에 주력하고 있다.


■ 역자 김모세 
한국외국어대 불어과를 졸업하고, 같은대학에서 프랑수아 모리악 연구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외대 불어과에 출강 중이며, 프랑스 인문학 연구모임 시지프 연구원으로 활동중이다. 저서로는 『프랑수아 모리악의 작품에 나타난 타자의 문제』가 있으며, 역서로는 『레비나스 평전』『인간의 대지』등이 있다.


■ 차례
한국 독자들에게
서문


Keyword 1 가족 
아이, 유토피아를 구현하는영웅 | 마케팅 분야에 ‘아이 왕’의 출현 | 아버지들의 위기, 새로운 모계제로의 변화 | ‘아빠-엄마’에서 ‘공동 아빠’, ‘공동 엄마’등으로 | 현실과 전통이 동거하는 이상적인 가정 | 미래의 주거양식은 ‘따로 또 같이’ | 자가 관리의 특성을 띨 미래의 가정
*트렌드&마케팅: 가정의 다양화에 따른 마케팅 전략의 세분화! 


Keyword 2 노동
노동 의미의 종말 | 기업,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 평균수명은 늘어만 가고, 퇴직은 빨라만 가고 | 주 35시간 노동제, 더 적은 시간 안에 같은 양의 혹은 더 많은 일을| 간부, 귀족층에서 새로운 프롤레타리아로 | 회사정책 결정에서 소외되는 간부들 | 할 일은 많아져만 가고, 전망은 불투명해져만 가고 |삼팔선, 사오정 혹은 오륙도 | 유리천장, 기업 내 남녀간 승진 및 소득 격차 | 고령의 경영진과 젊은 직원, 기업 내 세대 간 불화 |“기업은 적이다” | 직장에서 버려지는 사람들, 의미를 잃어가는 직장들 | 노동에 대한 꿈과 동기부여 | 노동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 |바람직한 노동사회를 만들기 위한 제안 
* 트렌드&마케팅: 반성과 개방성, 노동시장에 마케팅 기법을! 


Keyword 3 마법 
더 이상 신을 찾지 않는사람들 | 과학과 종교의 자리에 신비한 마법이 | 세상 구석구석에 온통 마법이! | 영웅이 사라진 시대, 마법과 픽션을 숭배하는 신인류 | 마술같은 벼락 성공을 꿈꾸는 젊은 초상들 | 기업에도 ‘직관’이라는 마법이 | ‘겸손한 결정’의 마법 
* 트렌드&마케팅: 마법의 세계속 불확실성에 대처하기 


Keyword 4 몸
몸의 신화 또는 몸의 획일화 |몸, 조립식 기계가 되다 | 너무나, 너무나 비대해진 ‘몸뚱이 시장’! | 몸을 둘러싼 야누스적 상황 | 모 아니면 도, 몸의 양극화! |비만, 포스트모던 사회의 재앙 | 몸의 관리가 곧 삶의 관리 | 몸, 성공의 훌륭한 도구 | 가벼움이 새로운 노마디즘의 중심 | &불멸의 몸을 꿈꾸는 현대판 파우스트들 | 다모클레스의 검으로서 몸 | 쾌락과 압력의 대상으로서 몸 | 위반을 위한 장소로서 몸 | 천사 같은몸에 대한 열망 
* 트렌드&마케팅: 개인적이고 자연적인 몸을 향한 마케팅 


Keyword 5 사치
나만의 사치품…, “난소중하니까” | 셀프메이드 사치의 등장 | 서비스 혹은 대접, 진정한 의미의 사치 | 바로 지금 여기에서 소비되는 사치 | 사치, 소속감을드러내주는 토템 | 초부자들, 사치품 산업의 블루 오션 | 사치, 현재의 유행과 미래의 영원을 동시에 | 다양한 얼굴의 사치품 시장 
*트렌드&마케팅: 미래의 사치품 브랜드 마케팅 


Keyword 6 의례 
의례는 본질상 집단적이다 |의례의 시간 경험하기 | 빠르게 사라져가는 집단적 의례들 | 축제로 변화 중인 의례 | 스포츠, 집단적 의례의 마지막 보루 | 각자의 의례를만들어내는 사람들 | 사소하고 개인적인 의례의 부각 | 자신과 몸에 집중된 새로운 의례들 | 개인적 의례를 만들어내는 동기들 
*트렌드&마케팅: 의례와 마케팅 


Keyword 7 윤리 가치
기업, 종교, 학교,가족…, 위기에 빠진 전통적 가치 | 가치의 위기, ‘나 자신으로 존재하는 것의 피곤함’ | 하루하루 새로운 윤리가 | 신선함을 욕망하다 |물의 이미지 혁명 | 자연과 빛이 연출하는 삶의 공간 | 디자인, 흰색과 투명성을 만나다 | 신선함이 안락함과 유동성을 만들어낸다 | 순수함,문화로 대체된 꿈 | 윤리, 새로운 사회적 압력 | 하이테크 사회, 하이터치 사회 | 젊음과 재생을 향한 갈망 | & ‘대화체 상표’를찾기 시작하는 소비자 | 소수층에서 일어나는 작은 시도들 | 세대별 윤리적 관점 | 상표와 기업, 윤리 안에서 연합하라 | 소비자, 윤리적책임을 공유하라 
* 트렌드&마케팅: 기업, 윤리 마케팅으로 승부하라 


Keyword 8 여성 
‘제3의 여성’을 향한 꿈 |여성의 힘으로 평화가! | 직업생활과 사생활, 정체성과 창조성 일치시키기 | 엄마 되기, 완전하고 행복한 모성 | 내 안에 있는 공주님 다시발견하기 | 여성의 좀 더 사실적인 이미지 | 세대별 다양함 | 여성의 꿈과 현실의 큰 격차 | 아름다워지는 일, 쾌락을 위한 것만은아닌 & | 요술쟁이는 피곤하다 | “우리에게는 모델이 없다” 
* 트렌드&마케팅: 여성은 남성의 희망이다!


Keyword 9 남성 
여성 혁명의 그늘에서 |위기의 시대, 남성 그리고 아버지의 자화상 | 여성, 파트너 혹은 위협자 | 남성을 자살에 이르게 하는 것들 | 사회문제로 떠오른 남성 성기능장애 | 수컷들의 몸, 판매의 대상 혹은 수단이 되다 & | 무엇이 남성을 조종하는가? | 남성성의 회복? | 필사적으로 새로운 롤모델을찾아라! | 좀 더 균형 잡힌 삶을 향한 꿈
* 트렌드&마케팅: 다음을 향한 남성의 지표들


Keyword 10 사랑 혹은 만남 
나 그리고 나…,나 그리고 나…, 나 그리고 나 | 어려워지는 남녀의 만남 | 새로운 만남의 방식들 & | 그는 가서 그녀를 본다. 그녀는 그를 본다.그리고… | 여성들은 남성들을 찾고, 남성들은 또 다른 여성들을 찾고 | 새로운 사랑의 질서 | 만남 없는 출산이 늘고 있다
*트렌드&마케팅: 사랑의 관계를 다시 만들어내기 


Keyword PLUS 문화적 다양성
함께 살기,타자와의 어려운 통합 | 이민=부 | 어떻게 타자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할 것인가? | 문화 다양성과 마케팅 
* 트렌드&마케팅:문화 다양성의 중요성


결론: 미래사회와 친근 마케팅 
이럭저럭, 개인들은자신의 자리를 만들어내려 한다 | 부족 집단, 미래사회의 ‘견고한 중심’ | 변덕쟁이, 거짓말쟁이 소비자와 마케팅 | 모래시계 계층과 마케팅 |친근 마케팅을 향하여 | 혁신하라, 과감하게!



옮긴이의 말





미래사회 코드


가족
현실과 전통이 동거하는 이상적인 가정

규범적인 가정에서 스스로의 법칙을 만들고 구성원의 개성을 존중하는 가정에 이르기까지……, 혈연관계에서 친구, 동료, 이웃, 공동 세입자에게 그 범위가 확장되는 ‘땅의 관계’에 이르기까지……, 보통 4인으로 이루어지는 핵가족에서 2인, 5인, 8인 등 다양한 삶의 형태를 보여주는 가정에 이르기까지……. 이처럼 가정의 현실이 변화하고 복잡해지며 현실적 어려움의 근원이 될수록, 사람들은 가정에 상상적 가치를 부여하고 가정을 더욱 이상화해 욕망하게 마련이다.


이러한 점에서 과거의 가정이 모델이 되는 경우는 갈수록 드물어지고 있다. 지난날의 가정은 오히려 상상의 세계가 되어버렸으며, 미래의 가정을 만들기 위한 영감의 원천으로 작용하고 있다. 사람들은 전통적 가정에서 각종 기호와 관습을 빌려오며, 에피날(전통 가정의 이미지를 의미)의 이미지를 가꾸어나간다. 나무와 돌은 오늘날 특히 선호되는 재료이며, 골동품 상점 같은 데커레이션이 인기를 끌고 있다. 사진첩에는 가족사진과 함께 벼룩시장에서 산 사진엽서가 뒤섞여 있다. 집의 내부에는 대대로 물려받은 물건과 자기 정체성을 표현하는 물건, 대부분 여행 중에 발견한 물건이 나란히 놓여 있다. 사람들은 할머니의 요리를 좋아하고, 가족 포도주를 마신다. 이렇게 함으로써, 사람들은 현실 속 실제 가정생활과 이상적으로 여겨지는 옛적의 가정에 대한 상상적인 지표를 한데 뒤섞는다.


시골에 있는 집, 휴가를 위한 별장 등은 이러한 가정에 대한 꿈을 구현하는 장소가 되었다. 비록 가족이 아니라 친구들하고만 그곳에 가더라도 말이다. ‘어린아이들의 보채는 소리’를 비롯해 따뜻하고 목가적인 관계를 떠오르게 하는 여러 향수품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으며, 특히 많은 독신자들이 다소 과도한 값을 치르면서도 시골에 집을 마련하려 애쓰는 형편이다. 그들은 이러한 시골집에서 숭고한 가정이라는 세계를 만들어내려 한다. 오늘날에는 더는 존재하지 않는, 더 정확히 말해 이제까지 단 한번도 존재한 적이 없는 이상적 가정에 대한 꿈을 공간 속에서 실현하려는 것이다.


여전히 가정을 사회의 핵심으로 여긴다면, 좀 더 실용적으로 말해 가정을 마케팅의 중추적 기둥으로 여긴다면, 이제 막 ‘탄생 중’인 전에 없던 상황을 앞에 두고 모든 걸 새로 만들어내야 할 것이다. 도시계획과 대중교통과 법률과 학교에 이르기까지, 심지어 바캉스의 형태와 냉동식품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 변화가 필요하다. 다양한 형태를 이루며 변화 중인 가정은 기업에 더욱 많은 숙제를 내주고 있다. 기업은 적절한 상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내고, 수정하며, 새로 만들어내야 할 것이다. 이제부터는 다원적 가정에 대해 생각해야 할 것이다.



노동
주 35시간 노동제, 더 적은 시간 안에 같은 양의 혹은 더 많은 일을

오늘날 경제의 자본화는 기업들로 하여금 단기적 논리 속에서 행동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매년 이윤이 높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샐러리맨들은 자신들의 일을 지속적으로 한다는 게 거의 불가능해졌다. 샐러리맨들은 항상 새로운 목표를 향해 좇아 뛰어다녀야 한다.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말이다. 게다가 노동이 그 강도가 높아지고 집약적이 될수록, 노동자의 실질적 부담 역시 커지고 있다. 주 35시간 노동제의 가장 명백한 결과가 바로 여기에 있다. 노동의 초집중 현상, 오늘날 노동자들은 더 적은 시간 안에 같은 양의 혹은 더 많은 일을 해내야 하는 것이다.


많은 수의 ‘느린’ 노동자들은 전에 없는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 그들의 자연스러운 노동 리듬은 생산성의 요구에 비해 너무 느리기 때문이다. 모든 게 더욱 빨리, 종종 과도하게 빨리 진행되고 있다. 사람들은 시간 부족으로 어떤 일을 잘 해낸다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해졌다는 인상을 받게 되었다. 한 서류를 마무리 짓는 데서 오는 즐거움 혹은 한 분야에서 성공을 거두는 데서 오는 즐거움을 만끽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졌다. 이는 곧 노동자들의 욕구 불만으로 이어지고 있다. 인간은 기계와는 달라서 항상 같은 리듬으로 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새로운 도약을 위해서 때로는 휴식이 필요하다. 또한 어떤 계획을 성취하거나 경쟁에서 승리하는 데 대해 주위 사람들의 축하를 받는 일 또한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일 하나를 끝내자마자 곧바로 다음 일을 시작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어쩌겠는가?



마법
더 이상 신을 찾지 않는 사람들

일신교 전통의 거대 종교들은 이슬람을 제외하고는 실생활에서 급격히 멀어지고 있다. 교회에 출석하는 일이 여전히 필수적인 공동체 활동으로 남아 있는 미국을 제외하면, 규칙적으로 예배에 참석하는 일은 대부분의 나라에서 매우 예외적인 일이 되었다. 프랑스에서는, 50세 이하 중 단 5퍼센트만이 신앙생활을 하는 걸로 알려졌다. 유대인 가운데서도 15퍼센트만이 음식 관련 규칙이나 안식일을 지키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이슬람교도 중 단 5퍼센트만이 회당에 나가는 걸로 조사되었다.


요즈음은 집단적 종교활동보다는 개인적 영성생활이 주를 이룬다. 많은 경우, 개인적 영성생활은 다양한 종교의 영향을 함께 포함한다. 예를 들면 불교의 경전, 가톨릭의 예식, 유대교의 카발라 등이 뒤섞여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연금술사』의 저자인 파울로 코엘료의 말대로 일종의 ‘개인 종교’에까지 이르고 있다. 시인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부터 온갖 종류의 영성과 개인적 발전,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 등을 동원한 상업 저서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영성활동을 다룬 책만도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이처럼 종교적 감정은 여전히 지속되지만, 그건 이전과는 달리 혼합적이고 개인적인 형태에서 그러하다. 종교에 대한 매력보다는 단순히 성스러운 것에 대한 갈증이 더 우선하는 것이다. 불교의 매력도 이러한 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불교는 누구나 접근 가능하고, 개방적이며, 교조적이지 않으면서 더욱 ‘실용적인’ 종교로, 나아가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와 관련한 구체적인 문제들에 더욱 가까이 있는 종교로 여겨진다.


점성술로 주식시장을 점치는 경제 전문가들
오늘날 경제는 갈수록 ‘나비 효과’에 종속되고 있다. 경제 자체가 너무나 복합적이고 세계적인 규모가 된 나머지, 한 지역에서 일어난 작은 변화가 다른 지역에서는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앨런 그린스펀에 따르면 “금융시장을 가득 채우는 비합리성” 때문에 거의 정기적으로 투기 거품이 일어나고 있으며, 이는 곧 외국환시장의 붕괴를 가져올 수 있다. 석유 자본이나 몇몇 기업의 주식 투기는 경제학에 기초한 합리적 사유보다는 인간 기본 감정의 결과물인 것처럼 보인다. 이 분야의 불확실성에 대한 책을 쓰려는 금융 컨설턴트에 따르면, 날이 갈수록 신뢰할 수 있는 예측 자체가 어려워지고 있다. 심지어 거의 두 배의 격차를 보이는 예상 수치를 이야기하는 편이 더 나을 때도 있다.


한편, 크고 작은 기업의 경영자들은 주식시장의 압력으로 인해 갖가지 예측에 의지하곤 한다. 잘 알려져 있듯이, 불확실한 금융시장에서 많은 트레이더들은 미래 주식시장의 경향을 미리 알려고 아예 드러내놓고 점성술에 의지하기도 한다. 프랑스 금융분석가 장 프랑수아 리샤르는 행성 주기가 금융 시장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증명하려 애쓰고 있다. 2005년에 그는 『주식시장: 천체를 통해 예측 가능한 2010년까지의 상황』을 출간했다. 이 책에서 그는 천왕성의 주요 움직임이 월 스트리트나 파리?도쿄의 주식시장에 끼치는 영향을 밝히려 했다. 중국에서는 오래전부터 숫자 8을 중시하는 경향을 사업가들 사이에서 볼 수 있다. 이 숫자는 행복과 행운을 가져다주는 걸로 여겨진다. 애플사가 최초의 맥 인텔을 세상에 공개키로 한 날로 사탄의 의미가 있는 2006년 6월 6일을 선택했던 것도 예외는 아니다.

 



몸의 신화 또는 몸의 획일화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존중되었던 몸, 일정한 기능의 도구로 여겨졌던 몸이 이제는 낯선 실체가 되어버렸다. 오늘날 사람들은 앞 다투어 자신의 몸을 거부하고 새롭게 고치려 하고 있다. 우리는 몸을 길들이고 통제할 수 있어야 하고, 또 그렇게 해야만 한다. 아름다운 몸은 자기 통제, 의지, 결심과 동의어로 쓰이며, 개인적 미덕의 결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과거에는 아름다운 영혼을 소유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반면, 오늘날에는 아름다운 몸과 아름다운 영혼이 결합되고, 혼합되어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여러 사회의 다양한 문화적 기반 -도교에서 개신교 문화에 이르기까지- 에도, 몸에 대한 이러한 견해는 매우 일반화해 있고, 현기증이 날 만큼 빠른 속도로 영역을 불려 나가고 있으며, 조금씩 전 세계 여성들(남자들에게서도 점차 나타나고 있다)의 몸을 획일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 여성은 프랑스 여성과 닮아가고 있으며, 다른 나라의 여성은 미국 여성과 닮아가고 있다. 몸이 점차 규격화하기 시작한 이상, 오직 얼굴만이 다양성이나 개별성, 감정, 삶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남게 되었다. 물론 주름살 제거 수술이나 ‘보톡스’ 시술을 받지 않았다는 조건에서. 1990년대에만 해도 개인의 개성이 중요했던 데 반해, 2000년대에는 완벽한 몸의 신화가 줄기차게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다.


몸, 조립식 기계가 되다
완벽한 몸을 갖고자 한다면, 그 몸이 ‘균형을 잃은’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 또한 인정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 완벽한 몸은 궁극적으로 대체 가능한 부분의 조합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인식은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서 두드러진다. 사람들은 이상적이라 여겨지는 몸의 이미지(전체적으로 호리호리하지만 ‘선별적으로 볼륨감 있는 몸’을 유지하는, 특히 가슴과 엉덩이)를 본떠 자기 몸의 일부분을 고쳐 좀 더 완벽한 전체를 만들어낼 자유가 있다. “마치 튜브를 삽입한 듯 돌출되어 보이는 엉덩이와 가슴을 가진 몸”이라고 개인 트레이너 에르베 르위스는 이야기한다. 그는 이러한 몸은 전혀 자연적인 몸이 아니며, 오직 적절한 운동과 단백질 섭취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에 대해 정식의학-분석학자 사뮈엘 르파스티에는 다음처럼 말한다. “여성들은 비현실적인 실루엣을 원하고 있다. 즉 관능적으로 보이면서 식욕부진에 빠진 사람처럼 보이는 몸, 남녀 양성적인 특징이 있지만 엉덩이와 가슴만은 모성적인 몸 말이다.” ‘자연적’인 방식으로는 이러한 환상적인 몸에 결코 이를 수 없다는 데 동의하지 않는 전문가들은 없었다.


이상적인 몸은 결국 인위적인 기술의 산물일 뿐이다. 그리고 여러 오락산업은 광고나 패션 혹은 영화 등을 통해 이상적인 몸에 대한 사람들의 상상력을 발동시킨다. 목적은 분명 ‘포토샵 아이콘’과 같아지는 데 있다. ‘외노비올 아쿠아드레낭’, 즉 1997년에 유행했으며 거의 완벽한 몸의 상징을 보여주었던 광고 속의 아름다운 다리를 만들어내기 위해 서로 잘라서 겹쳐 붙였던 각각의 세 마네킹처럼, ‘본뜨기-접합’의 적절한 분량을 찾아내는 일이 목표가 된 것이다.


기계처럼 취급되는 몸은 수정되고 개조될 수 있으며, 단백질의 도움으로 ‘증폭’될 수 있고, 크림으로 ‘치장’될 수도 있으며, 피어싱이나 문신 등으로 ‘고문당할’ 수도 있다. 나이, 민족적 혈통, 성별에 관계없이 날씬함과 젊음은 어떠한 비용을 치르고라도 반드시 유지해야 할 보편적인 요구사항이 되어버렸다. 이것이야말로 전 세계에 걸쳐 가장 보편적이며, 가장 강력한 경향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와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동일한 경향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몸을 둘러싼 이러한 경향은 수많은 미디어 이미지, 특히 할리우드 영화나 각종 광고를 통해 갈수록 강화되고 있다. 하지만 억압적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몸에 대한 새로운 사회적 규약에 대항하는 사회적, 문화적 움직임은 전혀 없는 게 현실이다.



사치
나만의 사치품…, “난 소중하니까”

전통적으로 사치는 사회적 특권에 대한 욕망에서 비롯했다. 즉 사치는 중세사회 때 가문의 문장(紋章)과 의미가 같다. 대중으로부터 벗어나 스스로 예외적인 사람이라고 느낄 수 있는 것, 다른 사람들에게 예외적인 사람이라고 인정받는 것……, 이러한 엘리트주의적 동기는 지금도 존속하고 앞으로도 영원할 것이다. 그 자체로 신분 상승의 욕망이나 인간의 허영심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 사치 -문장의 기능은 무엇보다도 사회적 특권을 덜 가진 계층, 혹은 사치품에의 접근 자체가 최근에 들어서야 가능해진 나라에서 더욱 돋보인다. 세계 어디서든 루이비통 핸드백 -진짜건 짝퉁이건- 을 과시하며 자긍심을 느끼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한편, 몇 년 전부터 또 다른 동기가 사치품 소비를 자극하고 있다. 그건 바로 자기 자신의 눈에 특별해 보이려는 욕망으로, 이 역시 사치품 소비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어쩌면 사치품 덕분에 사람들은 자신을 더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는 마치 개인의 가치가 그가 걸친 옷이나 액세서리의 금전적이고 미학적인 가치에 따라 ‘상승’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도 같다. 현재 유행하는 액세서리를 줄줄이 달고 자기들만의 파티에 모인 사치품 애호가들만 보아도 그들이 스스로 아름답고, 선하고, 우월하다고 생각한다는 인상을 쉽게 받을 수 있다. 적어도 자기 자신들이 바라보기에 말이다!


모든 것을 규격화하는 가문의 문장과 같이 코드화되고 고정된 사치에 대한 반작용으로 소비자들은 이제 규정에서 벗어나 있으며 잡다한 사치품, 개성화하고 개인적인 사치품, 자기 이미지와 어울리는 사치품에 눈을 돌리고 있다. 몇몇 사치품 상점은 이처럼 규격에서 벗어난 사치에 대한 욕망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듯 보인다. 일례로 에르메스나 루이비통 같은 유명 패션 브랜드 숍에서는 맞춤복 서비스를 다시 제공하고 있다. 샹젤리제나 세브르 가에 있는 겔랑(Guerlain) 숍에서는 오직 자기 자신만을 위한, 세상에 단 하나뿐인 향수를 제작하는 서비스도 다시 제공되고 있다. 300만 명의 다른 여성과는 다른 향기를 품을 수 있다는 확신이란!


사치품 시장의 대량화가 지속된다면, 어쩌면 사치품은 존재 이유를 상실하게 될지도 모른다. 즉 사회적 특권을 얻을 수 있는 도구, 현대시대의 문장, 자기 특권 부여의 도구, 새로우면서도 매우 강력한 욕망의 상징으로서 사치품의 존재 이유를 말이다.


여성
여성해방 40년 동안에 프랑스에서 여성들은 모두 기본권(투표권, 협의이혼, 부모권 공유, 임신중절수술, 정치적 동등권, 자녀의 성 등)을 획득했다. 하지만 아직 이러한 일들이 이루어지지 않은 수많은 나라가 있다. 몇몇 유럽국가(발칸반도 일부 국가나 몇몇 구소비에트 공화국)에서는 여성의 기본적인 평등권을 위한 투쟁이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프랑스인들은 더는 그러한 요구를 하고 있지는 않지만, 조정과 검토가 필요한 시기에 이르렀다.


피임, 늘어난 교육의 기회, 직업 덕분에 오늘날 여성들의 자립성은 명백해졌다. 25~49세 여성 대다수가 일을 하고 있으며, 그중 75퍼센트는 16세 미만의 아이 둘을 키우고 있다. 오늘날 학교의 모든 학업 단계에서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더 우수한 성적을 올리고 있다. 고등교육을 받는 전체 학생의 56퍼센트가 여성이며, 24~34세 여성 중 23.3퍼센트가 고등교육 학위를 취득했다.


수많은 분야에서 여성들이 탁월한 능력을 보여줌으로써 이루어진 여성의 지위 상승은 남성과 여성 간의 균형과 관련한 문제를 제기한다. 이러한 변화는 대부분 서양 국가들과 관련되어 있다. 독일인, 이탈리아인, 스페인인들은 모성에 대한 새로운 문제 제기와 함께 늦어진 여성해방의 대가를 계속해서 치르고 있다. 사람들은 중국과 동부 유럽의 놀랄 만한 변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곳에서 여성들은 사회의 원동력이다. 미국에서도 여성들의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영향력은 더는 증명할 필요조차 없게 되었다. 비록 그게 감성적 삶의 영역에서 피해를 동반하고 ‘고된’ 페미니즘의 대가로 획득된 것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여성은 형식상의 승리를 넘어 상징적 측면에서도 승리했다. 직감, 실행력, 청취력, 연대성, 친밀성 등 소위 여성적 가치와 자질은 오늘날 사회 전반에 거쳐 높이 평가 받는다. 여성적 가치와 자질은 새로운 힘의 상징으로 간주된다. 이제 사회를 지배하는 건 남성적 요소가 아니다. 남성적 요소는 전통적 가치의 층위뿐 아니라 행동의 층위에서도 문제가 되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남성들은 새로운 여성 중심의 사회 상황에 여전히 적응 못하고 있으며, 전례 없는 정체성의 위기를 겪는 중이다. 양성 간의 이러한 전복은 어디에서 비롯한 것인가? 새로운 경제 혹은 지식의 경제와 관련한 새로운 모델은 ‘여성적’ 능력과 더 잘 어울리는 듯 보인다. 조직망 내에서의 기능, 코칭, 의사소통, 계층의 수평적 접근 등은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더 ‘자연스럽다.’



남성
여성 혁명의 그늘에서

18세기부터 1950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는 두 가지 차원에 집중된 남성의 상징만을 고수해 왔다. 생산적 차원과 재생산적 차원이다. 생산적이라는 개념은 여성보다 우월한 남성의 신체적 힘에 근거한 것으로, 산업사회가 선호했던 노동력을 가능케 했다. 재생산적이라 함은 후손을 통해 나라의 미래를 보증하는 이가 바로 아버지라는 걸 의미한다. 오랫동안 남성은 정치, 경제, 가정이라는 사회의 세 기둥을 지배해 왔다. 1880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프랑스 여성들은 2차교육에 접근할 수 있었고, 1924년이 되어서야 남성과 동등한 교육의 권리를 누릴 수 있었고, 1944년이 되어서야 투표권을 행사하게 되었다.


오늘날, 여러 법률의 시행에도 사회 각 분야의 고위층에서는 여전히 남성의 주도권이 지속되고 있다. 프랑스의 미래를 이끌어 갈 엘리트 계층에서도 여전히 남성이 주를 이룬다. 엔지니어 그랑제콜 학생의 76퍼센트와 국립행정학교 입학생의 72퍼센트가 남성이다. 정치에서 남성의 지배는 압도적이다. 남성은 경제적 권력 또한 여전히 손에 쥐고 있다. 우선, 세계적으로 일하는 남성의 수가 훨씬 많다. 불완전고용 상태에 있는 남성은 여성보다 4배나 적다. 남성은 실직할 위험도 더 작다. 간부직 3명 중 2명이, 사장 10명 중 9명이 남성이라는 사실을 덧붙이자. 그리고 동일한 직위에서 남녀 간 봉급 격차는 사회의 지도급인 경우, 30퍼센트에 이른다.


‘수컷’의 신화와 선한 가장의 신화를 지속시켜 왔던 남성들은 1950년대부터 수십 년 동안, 여성 혁명이 이루어지는 걸 보아왔다. 여성 혁명은 피임약이 허용되던 해인 1967년에 시작되었다. 여성들은 자신의 몸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게 되었으며, 성적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여성 혁명은 2003년 9월까지 이어졌다. 바로 이 해, 매우 배타적이고 상징적이었던 남성우월주의자의 마지막 보루가 땅에 떨어졌다. 아이가 어머니의 성을 따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협의이혼, 낙태를 허가한 베일(Veil) 법안(1975), 균등한 임금에 관한 루디(Roudy) 법안(1983) 등이 실행되었다. 1990년대에는 정치 영역에서의 평등에 대한 법 제정으로 여성적 가치의 승리가 더욱 확실시되었다.


남성들은 자신의 정체성과 사회 속 위치 변화에 대해 고심해 보지도 못한 채 여성 혁명의 변화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지배적이지만 변화의 지체로 혼란에 빠진 남성들은 진정한 위기에 봉착해 있다. 그러나 위기(crisis)의 어원이 되는 그리스어 ‘크리시스(krisis)’가 ‘결정’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즉 ‘위기’가 개인을 한 단계 뛰어넘도록 인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단어는 긍정적 함의를 지닌다. 오늘날 남성이 처해 있는 진정한 위기는 남성의 의미를 완전히 재정의하면서 여성에 맞서 새로운 사회적 위치를 재정립하게 해줄 것이다.


문화적 다양성
프랑스처럼, 국제적인 문화적 기반이 있고 물질적 측면과 생각의 측면에서 유동적인 사회에서는 다른 문화의 흡수와 관련한 문제가 강력한 반향을 일으킬 수 있다. 다양한 문화에의 접근은 여행의 보편화와 대중매체의 개방과 함께 이루어졌을 뿐이다. 이국적 나라들의 발견이 일종의 환상을 일으켰다면, 오늘날 우리는 특히 요리와 장식 같은 가정 영역 내에서 이타성을 ‘소화하고 있다’라고 말할 수 있다. 루이 15계열의 고풍스러운 제품과 외국의 나무, 혹은 아프리카식 직물을 함께 사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송아지 고기 스튜, 향료를 넣은 수프, 당근 수프 등도 프랑스인의 관습 속으로 녹아들었다. ‘월드 푸드(world food)’와 이른바 식민지적 스타일 외에도, 다양한 문화적 영향의 혼합은 실제로 창조성이 두드러지는 표현방식을 만들어 내고 있다. 특히 독창적 창조성을 포기하고 ‘샘플링’과 혼합적 방식을 선호하는 젊은이들에게서는 더욱 그렇다.


젊은이들은 존재하지 않는 걸 창조해내려 하기 보다는, 자기들에게 완전히 열려 있고 또 자신들이 높이 평가하는 인류의 문화적 유산에서 아이디어를 끌어내려 한다. 즉, 그들은 매우 동떨어진 요소를 뒤섞어 새로운 독창성을 만들어낸다. 창조적으로 되는 것은 우선 가능한 한 예기치 못했던 방식으로 기존의 것을 해체시킨 후 다시 짜 맞추는 것이다. 삶의 방식과 여가 면에서 젊은이들은 매우 다양한 스타일과 영향을 조합할 수 있는 능력을 통해 경쟁한다. 이것이 곧 젊은이들의 창조성이다. 여기에 덧붙여서,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활짝 열린 세상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는 새로운 기술에 의해 가능해진 것으로 가깝고 먼 문화권의 모든 콘텐츠에 접근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 예는 온라인 사전들에 이어, 중국 상하이의 한 구역을 마치 자신의 집에서 두 발자국 거리에 있기라도 하듯 볼 수 있게 해주는 글 어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인터넷은 처음에 했던 역할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이제 인터넷은 단지 제한 없는 정보의 수단이 아니다. 인터넷은 불과 얼마 전만 해도 불가능하고 또 생각할 수도 없었던 소통과 새로운 관계의 연결망을 구축한다. 정보 교환, 가상 공동체, 블로그, 온라인게임, 세컨드라이프(전적으로 사용자가 창조하고 참여해 이루어지는 영속적인 온라인 3D 가상세계) 같은 가상의 세계에서부터 시장과의 대화, 조직적이고 자발적인 상업, 동반자와의 만남, 나아가 포르노, 사기, 오용에 이르기까지 인터넷의 영향은 실로 지대하다.


현실의 세계와 매우 유사한 또 하나의 세계가 생겨나고 있다. 하지만 이 세계는 현실의 세계보다 열등하지 않다. 그 세계는 삶의 장소와 고향의 문화를 넘어서 다양한 형태의 새로운 정체성과 시민성, 소속관계를 향해 열려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유일하고 대중적인 존재의 모습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 정체성은 확대되고, 다양성은 전에 볼 수 없이 넓은 영역에서 작용하고 있다. 젊은이들은 어디에서나 ‘인터넷 시민’으로 살아간다. 그들은 다양한 인물의 삶을 체험하고, 익명성 뒤에 몸을 숨기고, 아바타를 만들어내며, 종종 허구적이고 환상적인 자신의 이미지를 투영한다.


혼혈과 융합은 인구통계학적인 동시에 문화적인 측면에서 이루어지는 인종과 민족의 혼합에 의해 구체화하고 있다. 이러한 혼합이 나라의 모습을 바꿔버리고 있는 미국부터 살펴보자. 2060년이 되면 앵글로 아메리칸은 미국 전체 인구의 50퍼센트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2000년에 시행된 인구조사는 출신국을 밝히게 하려고 인종 선택지를 126개 내놓기도 했다. 1980년만 해도 ‘히스패닉’ 항목만 있었을 뿐이다. 우리는 미국의 인종다양화 과정의 놀라운 속도를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2004년에만, 외국인 65만 7,000명이 스페인에 정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5년에는 이주자들이 스페인 인구 중 8.4퍼센트를 차지하게 되었다. 러시아는 이주자로 인해 다민족 국가로 변해 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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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적 혼합이라는 측면에서 중국의 미래에 대한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중국인들은 서구인(혹은 다른 국가의 국민)과 섞일 것인가 아니면 일본처럼 ‘순수한’ 나라로 남을 것인가? 아무도 알 수 없지만 이러한 혼합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면 전세계적 차원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민족적 다양성과 문화 다양성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 문화의 혼합이 끊임없이 놀라운 창조를 만들어내고 발전시키는 반면, 우리는 온갖 종류의 심각한 인종적 긴장 상태를 볼 수 있다. 프랑스의 소요사태, 스페인이나 이탈리아의 불법체류자 문제, 러시아에서 흑인이나 유색인종을 향해 치솟는 인종차별주의 등이 그 예다. 달리 말하자면, 요리가 장식처럼 외국문화의 유혹적인 몇몇 측면을 제 것으로 만드는 게 더 쉽고 ‘안전하게’ 보인다. 자신의 나라에서 나름의 관습과 특이성을 가진 ‘타자’와 함께 사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