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세계가 비관주의라는 ‘괴물’과 싸우고 있으며 이러한 비관주의가 세계 전체를 마비시켜참된 변화를 막고 있다고 판단한다. 그는 그러한 비관주의에 종지부를 찍고 의연함과 신념에 근거한 ‘낙관주의’를 주창해야 한다고말한다.
우리가 물려받은 유산 속에, 태곳적 정신 속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두려움의 원인’ 그리고그 ‘두려움의 극복’, 비관주의로 점철된 ‘세상에 대한 자세와 인식’ 그리고 그 ‘세상에 대한 우리의 책임’에 관해 다루는 이 책은 ‘사람들이왜 미래를 두려워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 후 미래에 대한 두려움, 비관주의가 잘못됐음을 다양한 이유로 증명한다.
■ 저자 마티아스 호르크스(Matthias Horx)
1955년 독일에서 태어나 사회학을 전공했다. 독일어권 유럽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미래•트렌드 전문가이며, ‘디차이트’, ‘차이트 마가진’, ‘템포’, ‘메리안’ 등의 잡지 편집장을 지낸 저널리스트이기도 하다. 1992년 함부르크 트렌드 연구소를,1996년 미래 연구소를 설립했다. 현재 장기적인 안목에서 바라본 경제, 사회, 과학기술, 시장의 메가트렌드를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지은책으로 『스마트 자본주의』『트렌드 북』『미래의 8가지 영역』『브랜드 컬트』 등이 있다.
■ 역자 송휘재
건국대 독문학과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 베를린 자유 대학에서 독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독일 바이로이트 대학어학센터 한국어 강사를 지냈으며, 현재 건국대 유럽어문학부 독일어문학전공 강의교수로 있다. 지은 책으로 『독일을 움직인 48인』(공저) 등이있으며, 옮긴 책으로 『욕망에 관한 짧은 동화』가 있다.
■ 차례
PROLOGUE _ 미래에 대한 내기
PARTⅠ_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어디서오는가
1. 알라미즘의 공간
알라미즘 현상 / 미디어라는 기계 / 화면이 가진 이슈의 힘 / 포퓰리즘화된 학문 /지식인들의 이면 / 알라미즘적 스승 / 정정의 불가능성 / 다윈의 악몽
2. 알라미즘의 심리학
전형을 찾는 뇌 / 구분의 전문가들 / 관련짓기의 대가 /음모를 향한 동경 / 회고의 오류 / 엘리베이터 효과 / 남은 해악의 명제 / 희생숭배와 자아중심적인 반항심리 / 단어의 뇌 / 숫자의 마술 /낭만적 가설 / 패닉상태의 뇌 / 정치적 알라미즘, 배양시설로서의 정치
3. 알라미즘의 영향
비관주의의 짧은 찬가 / 무감각 효과 / 자기만족식 예언 /정보의 희생자들 / 트라우마의 코드화 / 감옥을 장식하다 / 발전의 상실 / 비관주의적 스크립트
PART Ⅱ_ 미래에 대한 두려움의스크립트
4. ‘사악한 세계화’에 관한 동화
제3세계의 성장 / 양극화된 세계 / 양극화의 예외들 / 쇠락해가는국가들과 숨겨진 승리자들 / 세계화의 뿌리 / 경제적 풍요로움의 방법 / 아프리카의 밤 / 제3세계의 복수 / 세계화의진실
5. ‘빈곤과 부유’에 관한 동화
스위스의 빈곤 / 빈곤의 패러독스 / 미래의 복지모델 / 빈곤으로부터의 탈출 / 생명력 넘치는 차이에 대한 송가 / 빈곤과 복지발전에 관한 진실
6. ‘인류를 우매하게 만드는 것들’에 관한 동화
부패한 미디어 / 부차적 지식들/ 속인의 기적 / 모니터 속의 세계 / 게이머 문화 / 미디어와 지능에 관한 진실
7. ‘인구통계적 재앙’에 관한 동화
작은 젖니들 / 멸종에 대한 두려움 / 우리는공포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 우리는 왜 알지 못하는가 / 인구통계적 비약 / 인생의 투자로써의 아이들 / 멸종이 어려운 이유 / 노령화의기이한 그림들 / 인구통계적 발전에 대한 진리
8. ‘노동의 불안정화’에 관한 동화
아버지의 이야기 / 엘리트 의식과의 고별 /케이크 생각 / 프리카리아트에 대한 두려움 / 새로운 기업가정신 / 긍정적 프리카리아트 / 계급투쟁의 종말 / 역사적인 새로운 거래 / 일과실업에 관한 진실
9. ‘폭력의 증가와 문화 전쟁’에 관한 동화
살인문제 / 범죄의 요소 / 관용제로 / 폭력, 인류학적으로 항상 있어온 것 / 전쟁의 위기 / 분자 테러리즘 / 테러의 수학 / 테러와 인구 / 문화 전쟁 / 폭력, 전쟁,평화에 관한 진실
10. ‘최후의 전염병’에 관한 동화
안드로메다 신드롬 / 미생물 제국 / 새로운문명병들 / 질병의 얼굴들 / 부두교 의술 / 병으로 인한 사회적 변화 / 활력소로서의 병 / 마지막 전염병에 대한 진실
11. ‘가치와 도덕의 와해’에 관한 동화
도덕적 공황 / 시민적 가치관 /영장류로서의 인간 / 비도덕적 시스템 / 3가지 비도덕적인 이야기 / 생산력과 이기주의 / 사회적 소외에 대한 소문 / 구속력 있는 가치관은‘좋은’ 것인가 / 소프트 개인주의적 가치체계 / 가치관과 도덕의 몰락에 관한 진실
12. ‘기후 재앙’에 관한 동화
천국의 인간 / 불안정한 지구 / 인간, 날씨를만드는 존재 / 테라포밍, 한 행성이 변화하다 / 인간, 날씨를 느끼는 존재 / 문명의 홍수 / 기후 변화에 관한 진실
13. ‘치명적 자연과 지속성 공식’에 관한 동화
발전에 대한 공포 / 멸종에 대한소문 / 복합적 생태학 / 생태학적 균형의 신화 / 바다의 성스러운 동물들 / 성장의 한계 / 발자국 모델 / 지속성 공식 / 자연과 인간에관한 진실
14. ‘퓨처 마인드’, 낙관주의를 위한 변론
행복의 문법 / 축복을 받아들이다 /세상에 대한 신뢰 / 미래의 적응력 / 용기의 위력 / 세계가 기능을 하는 이유 / 비(非)제로섬 게임 / 진화적 낙관주의의 신화 / 정신적힘으로서의 낙관주의 / 미심쩍은 스승들과의 작별
EPILOGUE _ 회의적 낙관주의를 위한지침
미래에 관한 마지막 충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어디서 오는가
음모를 향한 동경
2003년 7월에 행해진 설문조사에서 독일인들에게 21세기의 대표적 사건인 9?11 테러의 경과와 배경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70퍼센트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30세 이하의 31퍼센트는 동시에 다음과 같은 질문에도 ‘그렇다’고 대답했다.
“당신은 미국 정부가 9?11 테러를 자신들이 지시했을 수도 있다고 믿습니까?”
음모론은 악의 없이 사직되지만 진짜 괴물로 자라날 수 있다. ‘CIA-부시’ 음모론은 그 사이에 미국 내에서조차 파다하게 퍼졌고, 끊임없이 새롭게 청소년적인 팝 히스테리(Pop Hysterie, 청소년들이 대중 음악 가수를 좋아해 열광하며 고함을 지르는 현상-옮긴이)를 만들어내고 있다.
처음에 음모론은 대부분 해명의 필요성, 즉 무엇인가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내적 압력에서 시작된다. “알레르기 증가, 서구화가 원인.” 한 민영 TV방송의 웹사이트에 게재된 제목에서 대표적으로 나타난다. 알레르기는 근질근질하게 우리를 괴롭힌다. 그런데 우리는 그의 증가 원인을 설명할 수 없다. 그러면 우리는 알레르기를 연관관계 속에 놓는다. 위생보건 상태가 실제로 알레르기 발생률과 상관관계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서구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알레르기를 갖고 있다. 전형에 중독되어 있는 우리의 뇌는 다시 안정을 찾는다. 질병이란 것이 ‘어떤 형식으로든’ 문병의 병이라는 것을 우리가 이미 늘 알고 있지 않았던가?
아무 문제가 안 되고, 그것이 바로 우리를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연관성들은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검은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이 범죄의 원인이다.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에, 지구가 우리에게 폭염을 보내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경제를 파괴한다.
똑같은 연관성의 논리다. 그러나 (현재)우리의 맥락 속에서 두 번째 것만은 주장해도 된다. 그것은 정책적 정확성을 원리다. 그러나 이러한 상관성들 각각에 대해서 ‘서구화’라는 주제만큼이나 많은 근거들을 댈 수 있다. 특정 지역에서의 출생률이 학(鶴)의 숫자와 관계가 있다(독일에는 학이 아기를 데리고 온다는 민담이 있다-옮김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경제 위기가 발생했을 때, 실제로 국제적인 많은 은행들이 유대인 소유였다. 또한 흑인들 중에 가난한 사람이 더 많이 있다. 그래서 그것이 자연적으로 범죄율을 높인다. 맞는 말이 아닌가?
이때 필사적으로 전형을 찾는 우리의 뇌는 끊임없이 인과관계를 요구한다.
“저기에서 울부짖고 있는 것이 죄인이라고 나에게 말해라(우리가 그 죄인을 쏘아 죽이면, 모든 게 잘 될 것이다)!”
라스브로더 카일과 스벤 켈러호프는 『소문이 역사를 만든다(Gerchte machen Geschichte)』라는 책에서 ‘소문_유행병’ 과정을 분석했다. 예로, 1차 대전 때의 ‘뤼티히(양민학살의 근거로서 독일군에게 부역했던 자칭 벨기에 게릴라 대원들)의 만행’이나 RAF 테러리스트들이 자식들 모두를 자주 불법적으로 전투에 내모는 ‘격리 및 살인적 고문’을 들 수 있다. 음모론은 바로 정치적으로 연약한 시대에 증오, 살인 및 살해를 하게 하는 재료를 제공한다. 음모론은 이 책의 주제인 알라미즘과는 어쩌면 동일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본질에 있어서는 유사하다.
트라우마의 코드화
미국인들은 욕심 많고 무책임한 환경파괴자들이다. 그리고 당연한 것이지만(감성적이고 순결한 인디언 내지 유럽인들과는 반대로)완전히 천박하고 문화가 없는 사람들이다. 이런 생각은 중부 유럽의 여론 속에 광범위하게 정착되어 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에게서 회자되고 있다. 그 뿌리는 문화적, 신분적 오만함을 가진 오랜 역사 속에서 찾을 수 있다. 나치즘이 그 극단적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런 비판의 내용들이 얼마나 ‘정당한’ 것인지는 제쳐 두자(남을 비방하는 비판은 결코 정당한 것이 못되고 공격적 정신자세의 표현일 뿐이다).
우리는 그 비판의 기능을 살펴보자. 내가 미국을 전쟁만 일삼는 나라로 미워하게 되면, 그 다음에는 무엇을 부정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전쟁을 수행할 수밖에 없는 필연성 같은 것, 그런데 바로 이것이 문제다.
유럽인들은 지난 수십 년 전에 바로 코앞에서 집단학살이 시도되었던 두 번의 전쟁을 체험했다. 특히 유럽인들은 자신들의 역사에서 한 가지 방법밖에 없었던 책임 있는 행동을 했어야 했다. 민족학살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한다. 책임이란 분명하게 “아니요”라고 말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말을 정치적으로 실행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제 2차 대전으로 인한 트라우마는 독일의 여론을 이데올로기적으로 치장한 구조적 평화주의로 코드화시켰다. ‘결코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라는 자명한 평화운동의 공식이 오늘날 독일에서 대부분의 국민들이 함께 부르는 작은 정체성의 찬가가 되었다.
빌프레도 파레토가 옮게 지적했듯이 이론들은 가장 잘못된 것일 수도 있지만 매우 유용할 수도 있다. 반미적 평화주의 이론이 그러한 유용성을 제시한다. 이 이론은 크고 어려우며 실제로 고통스러운, 다음과 같은 21세기의 질문에 대해서 우리를 지켜주기 때문이다.
“글로벌세계에서 다른 사람들의 삶을 위해서 어떻게 자신의 책임을 완수할 수 있을까?”
위험 원인과 방지를 연구하는 루츠 니만 교수는 수많은 연구에서 인간들이 위험을 ‘효과적인’ 것으로 여기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예를 들면 방사선 위험이 지나치게 과대평가되는 것이다. 반면에 일상적 2가지 해독인 흡연과 알코올이 가져올 수 있는 폐해들은 소수점 이하의 수로 과소평가되고 있다.
알라미즘은 열차의 차량기지처럼 두려움을 정리 배열하는 기능을 한다. 우리는 직접적인, 실제로 ‘정당한’ 두려움을 멀리 있는, 부풀려진 위험으로 대체했다. 그러고 나면 우리는 벌써 다시 편안함을 느낀다. 미국인과 핵에너지를 인류의 재앙으로 낙인찍는 것이 미래의 에너지문제와 안전문제를 책임 있게 판단하는 것보다 훨씬 더 쉬운 일이다. 보건문제를 다루는 정치인들은 부패한 돼지들로 여기는 것이(다시 한번 말하지만) 담배를 끊고 건강식을 먹으며 충분히 운동을 하는 것보다 훨씬 편안하다!
미래에 관한 두려움의 스크립트
폭력, 전쟁, 평화에 관한 진실
폭력과 전쟁은 인간이 존재하는 한 늘 함께하는 요소들이다. 인간 자체가 ‘악하기’ 때문이 아니다. 복잡한 삶이 공격성을 갖지 않도록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태도에 대한 옵션 중에서 폭력은 언제나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영원한 세계 평화’란 우리에게 끊임없이 늘 예견되었듯이 결코 올 수 없다.
또한 폭력은 수렵 및 채집문화의 유산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수천 년 이상 인간 집단들은 자신들의 씨족, 유전적 코드, 자원들의 이점을 폭력으로 방어하거나 확대시켰다. 이러한 유산과 관련된 원초적인 태도의 전형들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있다. 종족 시대가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다. 좀 더 크고 보편적인 문화권 속에서도 계속 살아있다.
물론 우리는 역사가 진행되는 가운데에서 폭력을 조절하고 저지하는 여러 기술들을 습득했다. 정치적 기술들(외교, 법, 재판권) 및 문화적 기술들(융합, 교환, 용해)이 그에 속한다. 글로벌 시대의 인류가 계속 함께 성장하는 동안 이와 같은 조절 시스템들은 글로벌 차원에서 힘겹게 새로 구성된다. 지금까지 종족적인 무질서가 지배하고 있었던 지역들이 이제는 글로벌 질서체계의 영역으로 들어오고 있다.
그래서 장기적으로 지구의 모든 주민에게 구속력이 있는 세계 재판권, 세계 경찰과 세계 법이 있다. 우리는 오늘날 세계 재판권이 신중하게 행사되는 초기 단계에 살고 있다. 그에 대한 보편적 유효성은 금세기에 관철될 전망이다. 우리는 보스니아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연습 중이고, 루안다와 소말리아에서는(세계 공동체로서)좌절을 맛보았으며, 다르푸르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과정은 ‘글로벌 영향력’을 향해 중단 없이 계속 되는 중이다. 어떤 마비상태나 다툼들이 일어나는 것과는 상관없이.
테러리즘은 금세기에 정치적이고 안보상 기술적인 현실로 남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그의 최종목표인 글로벌 메타문명들의 파괴는 결코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테러리즘은 그의 잔인한 방법으로 말미암아 자유와 문명의 저항력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극단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테러리즘은 인류를 하나로 만들고, 바로 그의 잔인한 영향력으로 말미암아 정치, 경찰, 문화의 세계통합을 촉진시킬 것이다.”
테러리즘은 어쩔 수 없이 세계시민과 세계경찰을 만들어 낼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향후 수십 년 안에 조직되고, 창설되고, 하나의 형태로 갖출 것이다.
일반적으로 폭력이 잠재화되는, 즉 상징적 공간으로 이동하는 메가트렌드가 있다. 스포츠와 같은 의례들이 이에 속하는데, 이때 공격 에너지들이 결부되어 상징적으로 실현될 수 있다. 그렇지만 사이버 공간 안에서 2차적 경험현실을 만드는 것도 이에 속한다. 이런 식으로 육체적 폭력이 서서히 육체적 공간에서 나와 덜 잔인하고 훨씬 더 재미있게 되어가는 곳으로 옮겨간다.
소프트 개인주의적 가치체계
자원이 부족하면 무엇을 금지하는지를 아는 것이 좋다. 참된 선택의 여지가 없다면 제약을 꼼꼼하게 하는 것이 더 낫다. 그렇기 때문에 제약의 가치체계들이 예전에 여유가 없던 사회에는 맞았다. 덕성을 갖추고 신실하면 당신의 배우자와 오래 살 것이다. 관심을 끌 생각을 하지 마라.
우리가 지난 100년 동안 발전시켰던 무한한 글로벌 복지체계 속에서는 이것이 다르다. 이제는 자유의 정도가 풍요로움과 함께 폭발적으로 상승하고, 그에 상응해서 각자를 위한 선택 옵션도 높아지고 있다. 그럼으로써 가치관도 특정 방향으로 어쩔 수 없이 진화한다.
*규범적인 도덕에서 협상의 도덕으로 : 다수가 말하는 것이 더 이상 좋은 것이 아니다. 우리가(각기 협상 파트너로서) 서로의 동의하에 약속하는 것이 좋은 것이다. 이는 사랑, 섹스, 가족에 해당되는 것이지만, 계약, 이웃, 직업, 일에도 해당된다.
*단일적 도덕에서 다층적 도덕으로 : 완전히 다른 문화와 인생관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사는 것은 어렵다. 그렇지만 오늘날 ‘다문화적인 것’을 매장하려는 많은 비난들에 거역하며 우리는 앞으로 더욱 많은 문화적 ‘다양성’을 갖고 살아야만 할 것이다. 이것은 대부분 ‘서로 다른 사람들’이 일치점을 찾을 수 있는 좀 더 보편적인 가치지향을 의미한다.
*구속의 윤리에서 협력적인 변화의 윤리로 : 신의(信義)는 높은 가치다. 그리고 그것은 개인에게도 해당된다(몇 년 전에 보란 듯이 혼자서 결혼한 네덜란드 여대생과 똑같이 할 필요는 없다). 개인문화의 중요한 테크닉은 ‘자아성’을 위한, 신뢰할 만한 자기인식과 힘을 위한 능력에 달려 있다(스텐퍼드대학교의 알버트 밴두라는 이미 1990년대에 ‘자기효능감’ 이론을 전개했다).
우리는 개인적 문화 속에서 우리 자신에 대해 훨씬 더 많이 알고 있어야 한다. 우리의 괴벽, 두려움, 바라는 것, 상처, 타락 등에 대해서, ‘이기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의 사회적 관계들과 공정하게 협상할 수 없으며 또한 사회적 관계들은 형성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미랭는 신의의 의미가 ‘나는 조건 없이 당신 옆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가 아니라 ‘나는 당신의 잠재력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늘 당신을 도와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당신에게 나의 신뢰할 만한 자아를 보여줄 것이다’가 되어야 한다.
에버하르트 라트겝은 2006년 여름 「FAZ」에 다음과 같이 기고했다.
패키지 여행객들이 패키지적인 생각을 갖고 세상을 여행하듯이 인간들은 어리석은 부부에 대한 생각 및 섹스에 대한 생각을 갖고 관계속에 뛰어든다. 그리고는 다른 것에 대해 배우지도 못한 채, 자기 자신을 더 잘 알지도 못한 채 이혼한다.
개인적인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식견을 가지지 못한 채 널리 퍼진 개인주의는 섹스와 사랑 속에 담긴 인생의 행복과 인생의 의미에 대한 착각들과 일치하는 것이다. 인간만큼 다른 인간에게 폐쇄적인 존재는 없다. 소위 인간의 개성만큼 인간에게 낯선 것은 없다.
부부문제 치료사인 다비트 슈나흐르는 그의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성적 열정의 심리학(Die Psychologie sexueller Leidenschaft)』에서 이와 같은 ‘자아성(트렌드 연구에서 말하는 영어 개념 ’selfness를 말한다)‘을 위한 능력은 수년 후에도 부부에게 안정된 사랑의 행복을 가능케 해주는 것임을 입증하고 있다. 성공적인 파트너십의 비밀의 공생의 융합, 즉 낭만적 이상의 치환이 아니다.
그와는 반대로 ‘거리두기 능력’이다. 자기 자신에 충실한 사람, 개인으로서 독자적으로 발전하는 사람만이 파트너와 함께 미래로의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이와 같은 사랑의 역설을 인정할 때야 비로서 사랑은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비(非)제로섬 게임
진화이론과 게임이론을 연계시키는 것이 인생 프로젝트인 로버트 라이트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가능한 게임 종류가 3가지가 있다.
1. 로스-로스(Lose-Lose)게임 : 두 참가자가 모두 지는 것이다. 끝에 가서 누구도 이익을 얻지 못한다. 예를 들면 내전이나 부부싸움. 양자 모두 상처만이 남을 뿐이며 그 일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
2. 윈-로스(Win-Lose) : 두 참가자 중 한 사람이 이기는 것이다. 예를 들면 테니스 게임 또는 맹수가 희생동물을 잡아먹을 때, 심한 경쟁이나 부족함이 특징인 모든 체계에서는 오히려 윈-로스 게임이 지배적이다.
3. 윈-윈(Win-Win) : 한 게임에서 서로의 협동과 협력 작업으로 양쪽 모두 이기는 것이다.
복잡성은 윈(Win)측면이 우세한 게임들이 항구적으로 더 많이 있다는 단순한 사실에서 비롯된다. 다른 말로 하자면 세상은 제로섬(zero sum)게임 그 이상이다.
게다가 이것은 인류의 가장 어두운 시간들에도 해당된다. 예를 들면 제 2차 대전은, 시스템 이론에 의하면 전형적인 로스-로스 게임이다. 하지만 유럽에서는 가장 긴 평화 시대와 엄청난 문명의 발전을 위한 기초가 놓였다. 많은 이혼, 별거, 부부의 위기 시에도 상대편들이 자신들의 감성적 발전에 일정 부분 촉진시키는 값진 소량의 깨달음이 언젠가는 생기게 된다.
미래에 대한 비관주의자는 이 점에 있어서 세상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에게는 우주가 하나의 제로섬 게임이다. 한 사람이 이기면 다른 사람이 분명히 지게 마련이다. 그리고 저울이 우연이나 인간이 잘못으로 아주 조금 잘못된 쪽으로 기운다면 모든 것은 끝장이다. 그러나 어느 것도 끝나는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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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윌슨은 우리의 과학 시대에 필요한 신화로 ‘진화의 영웅서사시’를 제안했다. 그에 따르면 진화는 인류가 수천 년 동안 믿어왔던 옛날 신화와 영웅서사시를 대체시켜줄 수 있는 ‘위대한 이야기’를 제공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한번 처음부터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