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하려면 남들과 달라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발상의 전환과 그 방법에있어서 이들은 남달랐다고 할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세일즈 세계 안에서 주저하고, 막연한 두려움과 정상에 오르기 위한 끝없는싸움에 지쳐있다. 하지만 경기가 어려운 지금이 영업에서 두각을 드러내기에 최적의 타이밍이란 것을 이들 12명 모두 공통적으로주장한다.
■ 저자 김진형 외
김진형은 1974년 광주에서 태어나성균관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2000년 ‘머니투데이’에 입사했다. 국제부를 거쳐 현재는 금융부에서 은행권을 담당하고 있다.
이승호는 1972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산업대학교 환경공학과를 졸업했다. 2000년‘머니투데이’에 입사, 증권부를 거쳐 현재는 산업부에서 전기전자 및 반도체 업종을 담당하고 있다.
최명용은 1975년 춘천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와 동대학원 정치학과를 졸업했다.2000년 ‘세종증권’을 거쳐 2001년 8월부터 ‘머니투데이’에 합류, 지금까지 금융부 기자로 활동하며 보험업을 담당하고 있다.
■ 차례
1. 최단기간에 TOT를 달성한 세계 신기록보유자 : 푸르덴셜생명 권효곤
2. 영업할 관상이 아닌 세일즈 여왕 : LG전자 김정애
3. 43세의 신참 아줌마, 2년 만에판매왕이 되다 : KFG 김희성
4. 한국에서 트럭을 제일 잘 파는 아줌마 : 대우자동차판매 박은화
5. 2시간에 100억원어치를 팔아 치우다 : LG홈쇼핑 이건종
6. 10억대 연봉을 받는 1급 장애인 : AIG생명 이대균
7. 엄마들이 해볼 만한부업을 최고의 전문직으로 : 대교 눈높이 임난주
8. 3년 만에 BMW 100대를 판 슈퍼우먼 : 저먼모터스 장주희
9. 우유배달아줌마가 화장품으로 부천을 주름잡다 : 백옥생 전수빈
10. ‘보험여왕’이 판치는 곳에서 ‘보험왕’이 되다 : 교보생명 조용신
11. 시골 공무원에서 한국 최고의 네트워크 마케터로 : 하이리빙 조정문
12. 자동차 파는 최진실, 영업대통령이 되다 :현대자동차 최진성
한국의 세일즈 명인
영업할 관상이 아닌 세일즈 여왕 - LG전자 김정애
올해로 세일즈 경력 12년째인 김정애 씨(48세)는 올해를 빼고 11년 동안 판매왕을 10번이나 차지했다. 8년간 근무한 동양매직에서 첫 해를 빼고 7년 연속, 그리고 LG전자로 옮긴 후 3년 동안 한 번도 판매왕을 놓친 적이 없다. 그러나 그려는 화려한 경력에 비해 말솜씨가 서툴다. 한국의 내로라하는 세일즈맨 명단에 이름이 빠지지 않지만, 그녀는 쑥스러움이 많은 평범한 아줌마다. 10번의 판매왕을 언론이 그냥 놔둘 리 없다. 신문사, 방송사 등의 인터뷰 요청이 잇따랐고 대학이나 다른 회사에서도 강연을 해달라는 청탁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한사코 거절했다. 인터뷰나 강연을 고사하는 이유는 “특별히 영업의 비결이라고 할 게 없다”였다. 그러나 사실은 말솜씨가 없어서 남들 앞에서 이야기를 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고백한다. 사실 그녀는 말을 청산유수처럼 잘하지는 못하지만, 짤막짤막한 이야기 속에는 진실이 있다. 그녀가 들려주는 성공의 비밀은 소위 ‘말발’이 아니라 ‘진실’이다.
초인종도 못 누르던 초보 시절
영업사원의 길로 들어서서 가장 힘든 시기가 초창기라고 한다. 특히 낯가림이 심한 사람들은 더욱 그렇다. 영업이란 결국 고객을 만나 상품을 설명하고 구매하도록 설득하는 일인데, 사람 만나기를 꺼려해서야 일이 성사될 리가 없다. 그녀도 처음 영업을 시작할 때 보통의 초보들이 겪는 힘겨움과 맞닥뜨려야 했다. “낯가림이 굉장히 심했어요. 사실 지금도 낯을 가려요. 처음에 회사에서 배운 영업 방식은 한 집 한 집 일일이 방문하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저는 초인종도 누르지 못할 정도였지요.”
결국 그녀의 첫 번째 고객으로 ‘찍힌’ 사람은 시동생이었다. 다음 날 시동생 집으로 물건을 배달했지만 동서에게서 전화가 왔다. 동서는 자기가 원하던 물건이 아니라며 반품을 요구했다. 1주일을 꼬박 이 집 저 집 돌아다녀서 결국 동서가 반품한 그 제품을 다시 팔았다. 그렇게 첫 번째 계약이 파기된 이후 그녀는 다시는 연고판매를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다. 자신은 분명 고객을 위해 좋은 상품을 권유하는 것인데, 연고판매는 마치 고객이 나를 위해 물건을 구입하는 것 같아서였다.
새로 입주하는 아파트를 공략하다
김 씨는 그 후 한 지역을 정해 놓고 집중적으로 방문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선택한 영업 방식은 ‘새로 입주하는 아파트 집중 공략하기’였다. 초인종도 누르지 못하던 그녀가 날마다 아파트 1층부터 맨 꼭대기 층까지 오르락내리락 했다. 그러나 그렇게 발품을 팔았건만 물건을 찾는 사람이 없었다. 결국 그녀는 ‘이 일이 내 일이 아닌가 보다’ 하고 아파트 방문을 중단했다. 그렇게 얼마가 지나자 예상치 않은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방문을 끊고 나니까 고객들로부터 ‘항상 오던 사람이 왜 이제는 안 오느냐’는 전화가 오기 시작한 거예요. 그때 ‘아, 이렇게 하는 거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아파트 가정방문을 재개했다. 그렇게 방문을 계속하고 고객과의 관계가 쌓이자 매출이 생기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하루에 20건씩 계약이 성사되기도 했다.
대량판매를 위한 아이디어
아파트를 집중 공략하면서 그녀는 영업사원이 된 이듬해부터 동양매직 주부사원 판매왕에 올랐다. 관리하는 고객의 수가 어느 정도 되자 매출도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녀는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다. “고객을 일대일로 상대하다 보니까 일은 열심히 하는데 매출이 크게 늘어나지 않았어요. 매출을 비약적으로 늘릴 수 있는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는 생각의 들었죠. 그래서 어디로 가면 한꺼번에 여러 대를 팔 수 있을까 하고 고민했습니다.” 그녀의 결론은 빌라와 오피스텔이었다. 식기세척기, 가스오븐레인지, 김치냉장고 등 기본적인 가전제품을 설치해서 분양하는 이른바 ‘빌트인’ 빌라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 결과였다. 오피스텔도 마찬가지였다.
그때부터 그녀는 신축 중인 빌라와 오피스텔을 집중 공략하기 시작했다. 건설 현장을 찾아가 사장을 직접 만났다. 그리고 분양할 때 김치냉장고나 드럼세탁기를 포함해서 분양하는 것이 어떠냐고 설득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계약이 성사된 빌라가 분양되고, 분양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그 한 건의 계약은 그녀에게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빌라 분양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한 곳에서 분양이 끝나면 또 다른 곳에 가서 같이 분양사업을 계속하기 때문에 꾸준하게 매출을 일으킬 수 있었다. 빌트인 방식으로 분양에 성공한 빌라는 그녀가 다른 사장을 만나 설득하는 데 좋은 사례가 되었다.
이 같은 대량매출 영업 방식은 매출액에서 엄청난 차이를 가져왔다. 실제로 그녀가 LG전자로 옮기기 전 해에 LG전자 판매왕의 1년 매출액은 8억 원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LG전자로 옮겨 처음으로 물건을 판 2001년에만 31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판매왕의 매출 규모를 4배 가까이 끌어올린 것이다.
김정애 씨만의 노하우
1. 고객을 이기려고 하지 마라
당연한 원칙이지만, 고객과 대화하면서 고객의 기분을 건드려서는 안 된다. 고객이 판매사원과 이야기를 하다가 기분이 상해버린다면 그 결과는 보나마나다. 자신의 기분을 상하게 한 판매사원의 물건을 살 리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회사 제품 전체에 대해 나쁜 이미지를 심어 줄 수도 있다.
2. 시대를 흐름을 읽어라
영업은 시대의 흐름을 타야 한다. 유행이 지나 이미 고객들의 관심이 떠나 버린 제품을 들고 다녀서는 팔리기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한참 유행하고 있는 제품만을 가지고서도 성공하기 힘들다. 왜냐하면 모든 영업사원들이 그 제품을 들고 판매에 나서기 때문에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결국 시대를 앞서가는 제품의 선택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카탈로그에 나오는 상품은 너무 많아요. 제가 보기에도 헷갈릴 정도죠. 그래서 카탈로그는 그때그때 히트하는 상품만 따로 정리해서 고객들에게 드리고 있어요.” 김 씨는 LG전자로 옮겨 온 수 2001년에는 가스오븐레인지, 2002년에는 김치냉장고, 2003년에는 드럼세탁기로 승부를 걸었다. 물론 그 제품만을 판매한 게 아니라 한 제품을 주력 상품으로 정해서 팔았다는 의미다.
3. 남들이 하지 않는 방법을 찾아라
흔히 우리나라 기업들의 문제점으로 ‘냄비 근성’을 이야기하곤 한다. 뭐가 잘된다더라 하면 모두 그 사업에 뛰어드는 경향 말이다. 그래서 이쪽으로 몰렸다 또 저쪽으로 몰려가는 ‘남 따라 하기’ 때문에 결국 공멸로 이어지는 경우가 숱하게 많았다. “현재 같은 사무실에 저 같은 주부 판매사원이 200명 정도 있어요. 처음에 여기 들어왔을 때는 제가 하는 방식으로 영업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는데 지금은 모두 똑같은 방법으로 하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서로 힘들어지더군요.” 그래서 그녀는 지금 또 한 번 도약하기 위한 길을 찾는 중이다. 다시 새로운 판로와 영업 방식을 찾아야 할 시기가 된 것이다.
‘보험여왕’이 판치는 곳에서 ‘보험왕’이 되다 - 교보생명 조용신
교보생명 제물포지점 조용신 팀장(44세)은 보험왕을 세 번이나 차지했다. 전통적으로 ‘보험여왕’을 뽑는 자리에 ‘보험왕’이 탄생해 남성 설계사 우위 시대를 개척한 것이다. 그렇다고 조용신 팀장이 대단한 ‘빽’이 있거나 인물이 출중한 사람도 아니다. 대학은 졸업했지만 학력에 대한 자부심도 없고, 말주변이 좋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다. 약간 대머리에 콧대도 낮아 얼굴에 대한 콤플렉스마저 있다. 조 팀장은 남들이 안주할 때 다른 방식으로 영업에 접근한 것이 주요했다고 평가한다. 그는 남들과 다른 길을 걷는 것 하나로 연봉 3억 원을 훌쩍 넘는 고소득 세일즈맨으로 우뚝 섰다.
자동차 세일즈로 시작
인하대 영문학과를 졸업한 교보생명의 조용신 팀장은 1987년에 현대자동차에 영업직으로 입사했다. 풍운의 꿈을 갖고 출근하기 시작했는데, 가만히 보니 선배들의 형태가 말이 아니었다. 세일즈맨이라면 으레 밖으로 돌아다니며 고객들을 찾아야 할 텐데 선배들은 사무실에 내내 붙어 앉아서 전화만 받기 일쑤였다.
그는 아무도 사용하지 않아 먼지가 잔뜩 쌓인 팸플릿을 꺼내 들고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우선 부천공단에 있는 중소기업을 목표로 오늘은 이 지역, 내일은 저 지역 하는 식으로 팸플릿과 명함을 뿌렸다. 그렇게 부천 일대의 공단지역을 돌고 나자 그를 찾는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남들이 사무실을 지킬 때 수요자를 직접 찾아 나선 게 주효했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조용신 팀장은 실적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시련도 찾아왔다. 판매 실적이 올라가는 재미가 쏠쏠했지만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차 한 대를 팔려면 고객을 최소 7~8번은 찾아가야 했다. 견적 내기, 차량 인도, 번호판 달기, 액세서리 달기 등이 모두 일이었다. 또 당시에는 자동차 할부금 수령도 세일즈맨이 직접 했다. 판매대수가 월 20대 정도로 늘어나자 조용신 팀장은 점심 먹을 시간도 없이 돌아다녀야 했다.
분양권 판매로 전직
이렇게 자동차 세일즈에 지쳐 갈 때쯤 그의 영업 능력을 눈여겨보던 고객들이 동업을 제의해 왔다. 이 정도로 성실하고 착실하게 일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일을 맡겨도 되겠다는 신뢰가 쌓인 것이다. 여러 갈래 길 중 그가 선택한 두 번째 세일즈맨의 길은 분양권 영업이었다. 잘 되어가던 찰나 IMF가 닥쳐 순식간에 수중의 돈을 몽땅 날리고 말았다.
교보생명과의 필연
조 팀장은 영종도 신공항 건설 현장에서 토목공사를 하는 친구를 도와주며 재기를 꿈꿨다. 그러던 어느 날 조용신은 우연히 교보생명에서 세일즈맨을 뽑는다는 광고를 보고 덜컥 지원을 했다. “1년짜리 단기 상품도 아니고 자동차보험처럼 의무가입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라 자신이 필요해서 가입하는 보험이니까요. 또 자동차 세일즈만큼 힘들지도 않고요.” 이런 이유로 그는 생명보험시장에 발을 들였다.
교보생명 교육담당자들은 ‘전문직 종사자, 그것도 의사’를 겨냥해 판매활동을 벌이라고 충고했다. 특히 교보생명은 각 의사협회와 제휴를 맺고 있었다. 의사들에게는 보험료를 약간 더 싸게 해 주던가 서비스를 좀 더 제공해 주는 식이다. 보험 교육을 받은 후 조 팀장은 인천영업소에 동료 두 명과 함께 배치되었다. 그러나 전국을 상대로 영업을 하고 싶었던 동료들은 바로 사표를 제출했고, 조 팀장 혼자만 자리를 지키게 되었다.
그는 의사들을 상대로 홍보자료를 만들어 돌아다니는 것으로 영업을 시작했다. 첫째 날엔 1시간, 둘째 날엔 조금 더 돌아다니는 식이었다. 일단 무턱대고 아무 병원이나 들어가서 “원장님이 자료 가지러 오라고 하셨다”며 간호사를 속이고는, 무조건 원장실에 들어가곤 했다. 원장들에게 “의사협회와 협약을 맺은 상품이 있어 자료 보시라고 가져왔다”며 홍보물을 들이밀었다. 조 팀장은 분양권 판매를 하면서 만난 의사들의 덕도 많이 봤다. 과거의 그 인연이 보험영업에도 연결된 것이다. 의사 같은 전문직 종사자를 주 타킷으로 해야 하다는 교육은 거의 모든 세일즈맨들이 받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를 실천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는 개인의 문제였고, 조 팀장은 그것을 실천했기 때문에 빨리 성공의 길로 들어설 수 있었다.
보험도 남과 다른 방식을
조 팀장의 핵심 영업기법은 충실한 홍보자료였다. 그는 자신이 취급하고 있는 상품, 영업하는 방법, 그리고 ‘그 자신’을 알렸다. 또 의사협회가 교보생명을 선택한 이유를 열심히 설명했다. 그는 지금도 자신을 소개하는 팸플릿을 가방 가득히 넣어 가지고 다닌다. 8쪽짜리 팸플릿에는 그의 이력과 회사 소개, 그리고 그를 추천하는 고객들의 글이 빼곡히 적혀 있다. 이 팸플릿은 상품 홍보자료와 함께 고객에게 꼭 내놓는 영업 포인트다. 상품 자료도 충실히 만들어 다닌다. 회사에서 나오는 간단한 팸플릿 외에도 고객들이 궁금해할 만한 내용들을 손수 정리해 상품 설명서를 갖고 다닌다. 이런 노력 덕에 그의 실적은 꾸준히 상승세를 기록했다.
조용신 팀장은 보험영업을 시작한 1998년 한 해 동안 4,000만원의 소득을 올렸고, 1999년 4월부터 2000년 3월까지 수입보험료 4억 원을 올려 연봉 2억 원을 달성했다. 입사 1년 8개월 차의 늦깎이 보험 세일즈맨이 신인왕과 보험왕 타이틀을 한꺼번에 거머쥐는 진기한 기록을 세운 것이다. 이후 그는 2002년과 2003년까지 보험왕에 재등극했고, 지난해에는 약 3억 원의 소득을 올렸다.
노련한 기획자처럼 앞을 내다보라
조 팀장은 이제 판매 전문회사를 만들겠다는 꿈을 꾸고 있다. 그는 앞으로 보험사가 본연의 업무인 상품 개발과 자산 운용에만 집중하고, 판매 채널은 분리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즉 미래의 보험 산업은, 보험사들이 순전히 자산 운용에만 신경 쓰고 나머지는 아웃소싱을 하는 방식으로 발전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향후 판매조직의 분리가 필요해지면 이를 맡아 자신이 해보겠다는 포부를 숨기지 않고 있다.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