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방의 경제학

   
칼 라우스티아라 외(역자: 이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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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비즈
   
18000
2013�� 04��



KT경제연구소 추천 CEO가 휴가 때 읽을책


■ 책 소개
특허법과 지적재산권법이 혁신을 후퇴시키고 있다! 

백화점에서 골목식당까지, 오늘날 우리는 어딜 가나 모조품과 마주한다. 베끼기가 성행하면 창작 의지가 꺾이고, 혁신은 사라지며, 결국 경제는 후퇴한다는 것이지금까지의 전통적인 입장이다. 과연 베끼기는 항상 나쁜 것일까? 

요리, 심지어 금융까지 베끼기가 대부분 합법적으로 허용되는 창의적인 산업들을 탐구하여 베끼기가 만연해도 창작활동이 시들지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활발해질 수 있다는 도발적인 주장을 펼치는 책. 특허법과 지적재산권법의 보호를 받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계속 혁신적으로발전하는 산업을 통해 모방과 혁신 간의 흥미로운 시사점을 제공한다. 중국의 불법복제 시장에서 세계 최대의 토렌트 사이트에 이르기까지 모조품이급속하게 늘어나는 글로벌 경제의 미래를 여전히 낙관적으로 전망할 수 있는 이유도 제시한다. 특허법과 지적재산권법이 없어도 혁신은 가능할 뿐만아니라 경우에 따라 이들 법이 없는 편이 혁신에 더 유익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 저자 
칼 라우스티아라
 - 미국 UCLA대학 법대 교수인 칼 라우스티아라는지적재산권 분야의 세계적인 전문가이다. 2012년 8월 애플과 삼성전자 간 특허소송 1심 평결이 나오자 「포브스」 등 전 세계 주요 언론들은라우스티아라 교수를 잇달아 인터뷰하고, 그의 의견을 소개하기도 했다. 미국 하버드 법대에서 법학 박사를, UC샌디에이고대학에서 정치학 박사를받았다.

크리스토퍼스프리그맨
 - 버지니아대학 로스쿨 연구교수인 크리스토퍼 스프리그맨은 지적재산권법, 반독점법, 경쟁 정책을 비교연구하고있다.

■ 역자이주만
서강대학교 대학원 영어영문과를 졸업했다. 현재 번역가들의 모임인 바른번역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E·R: Evolution & Revolution』『인게이지』『케인스를 위한 변명』『화폐의 심리학』『오! 레이브』『돈에 관한 모든것』『그라운드스웰』『마이 스타트업 라이프』 등이 있다.

■ 차례
서론 - 베끼기는 혁신의 독인가? 
황금기를 누리고 있는 요식업계
법에 의존하지 않는 코미디계 
경쟁팀의 전략을 베끼며 성장하는 미식축구 

01. 짝퉁이 패션산업에 미치는 영향 
간단히 살펴보는 패션계의 역사
어째서 디자인 베끼기는 위법이 아닌가? 
베끼기 규제하기 : 1930년대 패션창작자 협동조합 
현대의 베끼기 논쟁
모조품 시장 
베끼기의 역설 
업계 규범과 시장선점 효과 
결론 : 그렇다면 디자이너는 자신의 디자인을 베껴야 할까?

02. 우리가 다양한 요리를 먹을 수있는 이유 
간단히 살펴보는 요식업계의 역사 
요식업계의 베끼기 관행 
베끼기에 대한 제약 
요리 베끼기논쟁 
요리사들은 왜 창의적인가? 
결론 : 창의적인 칵테일을 통해 살펴보는 요식업계 
03. 서로를 감시하는 코미디언들 
간단히살펴보는 스탠드업 코미디의 역사 
저작권법이 적용되지 않는 스탠드업 코미디 
현대 스탠드업 코미디언들과 업계 규범 
코미디계의업계 규범과 혁신 
결론 : 업계 규범의 마법 

04. 창작과 표절이 공존하는 산업들 
미식축구 : 경쟁 상황과 혁신 
폰트 :기술 발전과 혁신 
금융산업 : 시장 규모와 혁신 
데이터베이스 : 법적 보호와 혁신 
결론 - 베끼기는 어떻게 혁신을 촉진하는가
혁신과 베끼기에 대한 실전 교훈 
유행과 주기 
업계 규범 
제품 대 퍼포먼스 
개방과 혁신
시장선점 효과 
브랜드와 광고 
비용, 편익, 창의성 
낙관적 편견 
승자독식 시장 
창작 비용
베끼기와 혁신의 역설 

에필로그 -음악산업의 미래 
간단히 살펴보는 음악산업 쇠퇴 과정 
냅스터의 등장 
이길 수 없다면 한패가 되라 
불법음원과의 2차 전쟁 
음악시장의 새로운 강자, 애플 
미래에 대한 전망 
음악은 체험이다 
음악은 소셜 네트워크다
고품질 전략 
모든 길은 콘텐츠로 통한다 
결론





모방의 경제학


베끼기는 혁신의 독인가?

혁신은 우리 경제에서 중요한 요소다. 많은 사람들은 지적재산권의 기치 아래 마련된 불법복제방지법(특히, 저작권과 특허권)이 혁신을 지속적으로 창출하는 여건을 제공한다고 믿는다. 지적재산권의 효능에 대한 이 같은 믿음은 인터넷, 컴퓨터, 심지어는 전구가 등장하기 이전부터 있었다.


물론 시장경제에서는 재화와 서비스의 가격을 낮추고 품질을 높이기 위해서 경쟁을 장려한다. 그리고 경쟁이 있는 곳에는 모조품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베끼기를 규제하는 것은 혁신 창출에 반드시 필요한 조건으로 간주된다.


베끼기로 인해 창작 의지가 꺾일지 모른다는 주장은 직관적으로 호소력이 있다. 다른 사람들이 자유롭게 베끼는 데 누가 창작을 하겠는가? 이 관점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활발한 창작 활동을 유지하려면 당연히 강력한 특허법과 저작권법이 필요하고, 저작권자의 권리를 법으로 더 많이 보호할수록 좋다고 전제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지적재산권을 강화하면 창작자를 더 많이 보호하고, 이는 결과적으로 창작 활동을 더욱 증진시킨다는 것이다.


이 책은 혁신과 베끼기에 대한 기존의 관점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리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측면에서 이 문제를 조명했다. 대부분의 관련 논쟁은 지금까지 음악산업(저작권)이나 제약산업(특허권) 등 복제를 엄격하게 규제하자는 산업을 중심으로 다뤄졌다. 이와 달리 우리 필자들은 저작권법과 특허권법이 적용되지 않거나 혹은 사용되지 않는 패션, 데이터베이스, 코미디 같은 창의적 산업과 예술 분야를 탐구했다. 다시 말해, 베끼기에 대한 규제가 없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탐구한다.


우리가 발견한 사실은 이들 산업은 다른 사람들이 자유롭게 베낄 수 있는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창작 활동이 왕성하게 전개된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우리는 베끼기가 반드시 창작 의욕을 말살하거나 위축시키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일련의 산업을 살펴볼 예정이다. 경우에 따라 오히려 베끼기가 창작 활동을 촉진하기도 하는데, 우리는 이를 베끼기의 역설이라고 부른다.


이 책에서 우리가 주장하는 요지는 간단하다. 무단복제가 심각한 위협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여러 사례를 보면 모조품과 신제품이 공존하는 광경을 자주 목격한다는 것이다. 만약 앞으로 무단복제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면, 물론 지금까지 정황을 보면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농후한데, 우리는 이들 산업을 역할 모델로 삼아 계속해서 혁신을 창조할 수 있는 기회를 확보할 수 있다. 이 같은 가능성은 갈수록 아이디어가 중요해지는 현대 경제를 전망할 때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베끼기는 항상 나쁜 것도 아니고 또 항상 수익성이 좋은 것도 아니다. 베끼기를 규제하는 법제도는 중요하고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 역할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한 의미를 띈다. 베끼기가 만연해도 산업이 쇠퇴하지 않고 오히려 번창하는 산업도 많다. 경우에 따라 베끼기가 산업을 더 부유하고 생산적으로 만들기도 한다. 만약 우리가 이 역설을 풀기 시작하면 혁신의 미래에 대해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짝퉁이 패션산업에 미치는 영향

간단히 살펴보는 패션계의 역사

패션계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혹은 탁월한 패션디자인을 다시 고치고, 재해석하고, 때로는 통째로 베껴 쓰는 일이 많았다. 미국에서는 패션디자인을 베끼는 행위가 한 번도 위법행위로 다뤄진 적이 없으며 뉴욕을 기점으로 패션 강국으로 성장한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요컨대 패션산업에 관계된 미국의 지적재산권법은 일률적이지 않고 분야별로 흩어져 있다. 상표는 매우 귀중한 재산권으로, 많은 의류업체들은 소비자들의 구매욕을 자극하는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특허법이 적용 가능한 부분은 액세서리다. 하지만 액세서리는 매출 규모가 크지만 패션 전체로 보면 일부에 불과하다. 패션디자인과 관련해서는 저작권이 제일 적절한 수단으로 보이는데, 현행 법률 체계에서 저작권법은 직물 디자인과 장식품 같은 몇 가지 예외를 제외하고 의류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그 결과, 현재 패션계에서는 유행을 선도하고 브랜드 가치가 높은 업체들의 디자인을 공공연하게 베끼는 관행이 만연하고 있다.


베끼기의 역설

패션계의 베끼기 현상이 얼마나 놀라운지 제대로 알려면 혁신에 대한 독점 이론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독점 이론에 따르면 베끼기는 창의성을 말살하는 중대한 위협이다. 창작자가 자신의 창작물을 타인이 마음대로 복제하는 것을 안다면 애초에 창작에 투자할 리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법적으로 창작자에게 창작물을 복제할 독점권을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베끼기가 만연한 패션산업계는 어떻게 창의력을 유지하는 것일까?


그 답은 패션의 경제적 특수성과 패션에 대한 전통적 관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사회적) 지위는 패션의 중심 요소다. 패션에서 지위는 고가 상표와 고급 재료로 나타날 수 있고, 유행으로도 나타난다. 특히, 유행에 뒤늦게 따라가지 않고 누구보다 먼저 유행을 선도해가는 것에서 지위가 드러난다. 패션산업은 유행이 주도하는 산업, 그리고 새로운 유행을 만들고 옛 것을 버리는 것으로 지위를 획득하고 유지하려는 사람들이 주도하는 산업이다. 그렇다면 왜 유독 패션계에서는 베끼기가 혁신에 해가 되지 않는지 짐작이 간다.


의도적 진부화

여타의 창의적 산업은 제품의 품질 개선을 통해 새로운 매출을 창출하는데, 패션계에서는 베끼기가 바로 품질 개선과 비슷한 역할을 담당한다. 가령, 휴대전화는 시간이 지나면 더 다양하고 강력한 기능을 선보인다. 그러면 소비자들은 놀라운 기능을 장착한 새 제품을 갖고 싶어 멀쩡한 기존 상품을 폐기한다. 반면에 의복은 개선된 점을 확실하게 나타내기가 쉽지 않다. 의류업체들은 신상 의류의 특징을 광고할 때 품질을 개선시켰다고 말할 수 있는 경우가 별로 없다. 대개의 경우 의류는 품질 개선과 무관하게 변화를 선보이고, 그 변화 때문에 소비자는 매장을 찾는다. 의류산업의 이런 특성을 고려할 때 새 트렌드의 부흥은 휴대전화로 치면 뛰어난 신기능과 마찬가지다. 소비자들은 바뀐 유행 때문에 멀쩡한 기존의 옷을 버리고 신제품을 구매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 과정을 의도적 진부화라 부른다. 디자인 베끼기가 제품의 진부화를 유발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발 빠르게 이뤄지는 베끼기가 패션계에서는 합법적이라는 것이고, 베끼기가 광범위하게 행해지면서 디자인의 진부화 속도도 가속화된다는 것이다. 베끼기가 아니라도 진부화는 진행된다. 하지만 베끼기가 합법적이고 광범위하게 행해지기 때문에 패션 주기가 훨씬 단축된다. 이는 패션상품이 지닌 지위재로의 특성이 베끼기로 인해 훨씬 빠르게 희석되기 때문이다. 이 같은 결과는 의류 산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역설적이지만 베끼기 덕분에 제품 전환이 더욱 빨라지고 매출이 증가하면서 디자이너들은 이득을 본다. 우리는 이 같은 과정을 베끼기의 역설이라고 부른다.


이 문제를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베끼기의 역할을 이해할 수 있다. 첫째, 디자인 베끼기로 인해 저렴한 버전으로 제품생산이 가능해지고, 오리지널 디자인 제품을 구입할 여력이 없었던 소비자들도 해당 디자인의 제품을 구입할 수 있게 된다. 둘째, 베끼기는 디자인의 다양한 변형을 촉진한다.


장기적으로 볼 때 모조품은 전체 패션산업에 해를 미치지 않는다. 오히려 패션산업이 부흥하는 데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모조품이 많이 만들어질수록 패션 주기가 단축되고, 패션 주기가 단축된다는 것은 디자인이 더욱 다양해지고 매출이 더 증가한다는 뜻이다. 디자인 데뷔, 확산, 쇠퇴, 종말. 그리고 다시 이 과정이 반복된다.


결론 : 그렇다면 디자이너는 자신의 디자인을 베껴야 할까?

규모가 방대한 패션산업에는 모조품이 만연하고 게다가 합법적이다. 혁신을 생각할 때, 베끼기가 만연하면 창작 의욕이 꺾이고 이에 따라 시장이 침체된다고 보는 관점이 일반적이다. 그렇다면 패션산업은 진작에 경제적으로 추락했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패션산업은 현재 생존 정도가 아니라 눈부시게 성장하고 있다. 베끼기가 합법적이기 때문에 모조품이 만연하면서 패션 주기가 단축되고, 인기를 끌던 디자인은 빠른 속도로 쓰레기통에 버려지고(아마 나중에 먼지를 털어내 다시 고쳐 쓰겠지만), 패션에 민감한 사람들은 항상 더 새로운 디자인을 찾아 나선다. 베끼기는 현대 패션산업의 주춧돌이라 할 수 있는 유행이 꽃피고 지는 데 기여한다. 그 결과 미국 패션산업은 베끼기가 성행하는 가운데 역동성과 창의성을 유지하면서 번성하고 있다.



창작과 표절이 공존하는 산업들

데이터베이스 : 법적 보호와 혁신

데이터베이스는 필요한 정보를 쉽게 검색할 수 있도록 자료를 체계적으로 조직해 저장해 놓은 집합소다. 데이터베이스와 경제를 연관지어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데이터베이스산업 시장 규모는 깜짝 놀랄 만큼 크다. 게다가 혁신과 관련해 흥미로운 시사점을 제공하는 분야다.


데이터베이스의 콘텐츠는 단순 사실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아 미국에서는 저작권 등록이 되지 않는다. 이에 반해 유럽에서는 단순한 사실로 구성된 데이터베이스도 저작권을 인정한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데이터베이스산업이 미국에서는 성장하는 반면, 유럽에서는 정체되어 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베끼기가 허용되어 있음에도 데이터베이스산업이 죽지 않았다. 오히려 데이터베이스산업이 더욱 활기를 띠는 것처럼 보인다. 그 이유를 살펴보자.


파이스트 출판사 대 루럴 전화서비스 사건의 대법원 판결 이후로 데이터베이스를 합법적으로 베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파이스트는 흔한 전화번호부를 만들었고, 루럴 전화서비스는 자신들의 것을 따라했다고 소송을 걸었다(전화번호부는 종이로 제공하는 데이터베이스다). 대법원은 조리법의 저작권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듯이 단순 사실은 저작권 보호를 받지 못한다고 판결했다.


파이스트 판결은 누구나 전화번호부를 베껴도 좋다는 선례를 남겼다. 하지만 이 판결의 여파는 전화번호부에 국한되지 않았다. 파이스트 판결은 사실 정보로만 구성된 데이터베이스도 저작권 등록이 가능하다는 일련의 판결을 뒤집었다. 과거에 이런 판결이 내려졌던 이유는 사실을 수집해 유용한 데이터베이스를 만드는 작업 자체가 힘들다는 인식이 있었고, 그래서 다른 사람이 쉽게 베끼도록 허용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파이스트 사건에서 대법원은 노력과 자본의 투입을 보호하는 기준에 따라 데이터베이스 저작권을 인정하던 과거와는 다르게 헌법에 따라 상당한 창의성을 보이는 독창적 작품에만 저작권을 인정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전화번호부에 수집된 사실에는 어떤 창의성이나 독창성도 보이지 않는다고 판결한 것이다.


한편, 유럽에서 데이터베이스 저작권 보호를 주장하는 이들은 유럽의 법적 보호 장치가 미흡하다는 점을 지적하며 파이스트 판결 이후 미국의 데이터베이스산업이 무방비 상태에 놓인 것처럼 유럽도 위험에 처했다고 경고했다. 이에 유럽연합은 사실에 기초한 데이터베이스에 대해서도 강력한 보호 조치를 부여했다.


1992년에 통과된 유럽연합 지침은 보호기간을 출시 이후 15년으로 규정했고 상황에 따라서 기간 연장을 허용한다. 하지만 유럽연합 지침은 제작자가 유럽인이거나 유럽의 보호 규정에 견줄 만한 보호 규정을 지닌 국가 출신의 제작자가 생산한 데이터베이스에만 적용된다. 미국인이 생산한 데이터베이스는 보호하지 않는다. 미국에서 데이터베이스 보호를 주장하던 이들은 새로운 유럽 지침의 지원을 받아 유럽의 데이터베이스산업이 곧 미국을 앞지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데이터베이스에 축적된 사실 정보를 누군가 베끼더라도 이를 저지할 법이 전혀 없는 미국의 데이터베이스산업은 계속해서 성장했다. 세계 최대 금융정보 제공업체인 다우존스의 웹사이트를 방문하면 사실 정보에 기초한 데이터베이스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다우존스는 저작권 등록이 되지 않는 사실을 수집하고 정리해 데이터베이스를 제공하는 여러 기업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포춘 500대 기업인 던 앤드 브래드스트리트의 데이터베이스에는 전 세계 1억 5천만 개가 넘는 기업에 대한 자세한 정보가 들어있다. 다우존스와 던 앤드 브래드스트리트 같은 기업들은 이런 정보를 수집하고 정확성과 시의성을 확보하기 위해 수십억 달러를 투자한다. 자신들이 축적하는 데이터베이스 콘텐츠 대부분이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정보임에도 이들 기업은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


미국의 데이터베이스 산업이 거둔 성공은 놀랍다. 더 놀라운 사실은 유럽 회사들이 미국 회사들을 경쟁에서 앞지르지 못했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베끼기로 인해 이 산업이 쇠퇴할 거라고 굳게 믿었던 미국인들에게는 확실히 충격이었을 것이다.


법적 보호 장치가 부재함에도 불구하고 사실에 기초한 데이터베이스의 생산이 미국 내에서 꾸준히 성장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 역시 여러 차원에서 분석할 수 있다.


첫째, 파이스트 판결이 내려진 이후 미국의 모든 데이터베이스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 것은 아니다. 파이스트 판결은 경쟁업체들이 기본 데이터를 마음대로 베낄 수 있을지는 몰라도 데이터베이스를 정리하는 방식이 독창적일 경우 저작권 침해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둘째, 저작권법 외에도 데이터베이스 제작자들이 무단복제를 저지하기 위해 쓸 수 있는 몇몇 수단이 있다. 이 방법은 저작권 보호가 미흡한 다른 산업에서도 사용하는 전략이다.


셋째, 무엇보다도 중요한 원인은 미국에서는 데이터베이스를 자유롭게 베낄 수 있기 때문에 새로운(혹은 더 나은) 데이터베이스를 개발하는 비용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데이터베이스에 대한 광범위한 보호 장치가 없다는 것은 경쟁업체들이 기존 데이터를 새롭고 창의적인 방법으로 재활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즉 다른 사람이 비용을 투자해 수집한 기존 데이터를 활용해 데이터베이스를 만들고 여기에 새로운 기능을 추가해 사용자들에게 더 좋은 해답을 제공할 수 있다.



베끼기는 어떻게 혁신을 촉진하는가

기원이야 어찌됐든 사람에게 새로운 것을 창작하고픈 욕구가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직접 창작을 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확실히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고, 가능하다면 그 욕망을 충족시키고자 한다. 이런 욕구는 베끼기로부터 창작물을 보호받을 수 있는지 여부와는 상관이 없다.


미국 법 체계 하에서 창작에 대한 보상이란 주로 해당 창작물에 대해 일정 기간 독점권을 부여하고 타인이 베끼는 것을 규제하는 것이다. 베끼는 사람이 아닌 창작자가 혁신 상품이나 서비스로 발생하는 수익을 누리도록 하려는 것이다. 이런 점이 보장될 때 창작자는 의욕이 고취되어 창작에 열중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는 이런 입장을 혁신의 독점 이론이라고 부른다.


실제로는 어떨까? 우리는 이 책에서 혁신 활동이 활발한 여러 산업을 살펴보았다. 각각 조금씩 이유는 달랐지만 어쨌든 혁신의 독점 이론과는 상반된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패션, 음식, 폰트, 미식축구, 금융산업 등은 모두 베끼기가 자유로운 편이고 법적으로도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유가 무엇이든 이들 산업에서는 신규 상품이나 서비스를 손쉽게 베낄 수 있다. 그렇다면 독점 이론의 관점에서 볼 때 혁신 활동이 시들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정반대로 이들 산업에서는 오히려 창작이 활발하게 이뤄진다.


여기에는 중대한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베끼기와 창작이 공존할 수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베끼기가 좋다고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저작권법과 특허권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아니다. 이들 법규는 경제성장과 문화발전에 있어 중요한 요소다. 다만 베끼기와 창의성의 관계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미묘하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다. 여기서 진짜로 흥미로운 문제는 왜, 어떤 경우에 베끼기가 혁신을 촉진시키는가이다.


이 문제에 대한 답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베끼기를 규제하는 법은 현대 경제와 문화에 활력을 불어넣는 원천, 즉 경쟁을 훼손시키고 얻는 결과이기 때문이다. 혁신에 대한 독점 이론의 기본 논리는 모조품이 오리지널 상품보다 시장경쟁력이 있고, 그렇게 되면 창작 욕구가 파괴된다는 것이다. 혁신도 중요하지만 현대의 경제 시스템은 경쟁에 의존하는 부분도 크다. 경쟁은 가격을 낮추고 품질을 높이는 원동력이다. 또한 경쟁은 혁신을 일으키는 잠재적 촉매로 기능한다. 강력한 경쟁업체와 치열하게 겨루면서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신제품이나 새로운 서비스를 창출해야 한다. 이들은 지적재산권 보호 여부를 따질 겨를이 없다.


베끼기와 경쟁은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고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베끼기를 규제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베끼기 규제 법안은 자유경쟁이 이뤄지는 특정 시장을 도려내는 것과 같다. 즉 베끼기를 활용하는 경쟁 형태는 허용되지 않는다고 선포하는 것이다. 하지만 규제 법안이 베끼기를 통한 모든 경쟁을 금지하는 것은 아니다. 해당 특허나 저작권 기간이 만료된 후에는 베끼기를 허용한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시장을 규제하는 것보다 자유로운 경쟁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부 산업에서는 베끼기를 반기기도 한다.


이해를 돕기 위해 쇠락해가는 산업지구에 시장 가능성을 내다보고 레스토랑을 개점한 카페 주인을 예로 들어볼까 한다. 이 주인이 카페를 크게 성공시키자 다른 사람이 재빨리 근처에 비슷한 카페를 개점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새로운 카페와 상점들이 속속 들어서면서 죽어가던 거리가 사람들로 북적대는 명소로 탈바꿈했다. 두 번째 카페가 비슷한 장소에, 기본 콘셉트까지 비슷하게 첫 번째 카페를 따라했다고 치자. 하지만 우리는 보통 이런 식의 베끼기를 자유시장 경쟁이라고 부른다. 소비자가 두 카페를 서로 다르게 식별할 수 있을 만큼 카페의 상호와 실내장식이 다르다면, 두 번째 카페가 첫 번째 카페를 베낀다 해도 이를 저지할 법적 장치가 존재하지 않는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나쁠 것이 없다. 고객이 많이 찾고 지갑을 열도록 만들기 위해 두 카페가 서로 경쟁하게 되면 소비자는 보다 저렴하고 질 좋은 커피와 크로와상을 제공받을 수 있다.


물론 동일한 구역에서 비슷한 콘셉트로 경쟁을 벌이는 두 카페, 두 편의 영화나 소설, 두 가지 암 치료제가 있다고 할 때 이를 저지할 수단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무단복제와 불공정거래 행위를 규제하는 법이 이미 마련되어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베끼기와 경쟁은 동전의 양면 같아서 베끼기를 규제하는 법규를 제대로 마련하기가 까다롭다는 것이다. 만약 경쟁과 창의성이 베끼기와 공존할 수 있다면 그대로 내버려두는 편이 최선이 아닐까 한다. 이것이 우리가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이다. 우리가 예로 든 여러 창의적 산업을 보면 경쟁과 베끼기와 창의성은 함께 공존하고 있으며, 이들 산업에 관한 한 미국의 지적재산권법은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베끼기는 갈수록 쉬워지고 있으며 오래전부터 많은 이들은 이를 위기로 인식하고 있다. 전(前) 미국영화협회장 잭 발렌티는 비디오카세트 레코더를 강간범에 비유한 적이 있는데 최근에 해적판 영화 복제 기술을 목격한다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비디오카세트 레코더에 대한 발렌티의 판단은 틀렸다. 비디오카세트 레코더를 이용한 무단복제로 인해 영화산업이 죽기는커녕 대여산업이 활성화되어 엄청난 수익을 냈기 때문이다.


우리는 현재의 베끼기 기술로도 이 같은 긍정적인 이익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단복제를 다른 각도에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즉 무조건 제거해야 할 골칫거리로 보지 말고 유해한 만큼 이로움도 주는 복잡한 현상으로 인식해야 한다. 우리가 베끼기를 저지하는 일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훨씬 더 간편해진 복제 기술은 그만큼 심각한 위기로 인식될 것이다. 하지만 혁신 증진에 초점을 맞춘다면(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베끼기가 성행해도 혁신을 증진할 수 있는 방법이 많다는 사실을 금방 알게 된다.


우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과감한 제안을 하고자 한다. 경우에 따라 베끼기를 저지하지 말고 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베끼기는 혁신의 연료로 쓰일 수 있다. 오리지널 상품을 광고하고, 시장 경쟁을 활성화함으로써 더 좋고 가치 있는 상품과 서비스가 생산될 기반을 만든다. 요컨대, 이 책에 사례로 등장한 여러 산업에서 목격했듯이 베끼기가 만연해도 혁신은 지속될 수 있다. 사실 베끼기 덕분에 혁신이 일어난 경우도 적지 않다. 결국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는 낙관적이다. 베끼기가 요즘처럼 쉬운 때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혁신 활동은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고 있으며 산업은 번창하고 있다.


베끼기와 혁신의 역설

이 책에서 우리가 살펴본 많은 산업에서는 베끼기가 성행하고 또 합법적인 환경에서도 창작 활동이 지속적으로 이뤄졌다. 이들 산업은 쇠퇴하지 않고 오히려 번창하고 있다. 무단복제가 혁신 활동을 위축시킨다는 전제 하에 지적재산권법의 역할을 강조하던 전통적 견해를 고려하면 이 같은 현상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패션, 폰트, 금융 등의 산업을 보면서 모조품이 만연함에도 불구하고 신제품 개발이 꾸준히 이뤄지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 이 책에서 맞추고자 하는 큰 퍼즐이었다.


우리가 관찰한 모든 사실은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그것은 직관에 어긋나 보일지 모르지만 베끼기가 만연해도 혁신 활동은 지속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메시지다. 실제로, 모조품 덕분에 신제품 개발이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 베끼기의 긍정적 효과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것이다. 베끼기의 효과가 긍정적으로 나타나지 않는 경우에도 사실 세간에서 인식하는 것처럼 커다란 위협이 되지는 않는다. 모조품 경제는 이미 존재한다. 이제 중요한 것은 혁신 활동에 미치는 모조품의 영향력을 이해하고, 그 힘을 어떻게 활용할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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