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발톱을 세워라
프롤로그
호랑이는 사냥을 할 때가 아니면 발톱을 세우지 않는다고 한다. 그것은 결정적인 순간이 아니면 자신의 무기를 상대방에게 드러내지 않는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호랑이는 때를 기다리고 그 사이 자신의 무기를 단련한다.
소니도 혼다자동차도 출발은 벤처기업이었다. 혼다 창업주 혼다 소이치로가 시작한 기업은 오토바이 수리점 수준이었다. 두 창업자 모두 불가능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생전에도 그랬지만 그들은 세상을 떠난 뒤에 더욱더 일본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도요타는 비록 소니, 혼다보다는 부유한 환경이었지만 시작이 영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세 회사 중 벤처 정신을 잃지 않은 곳은 혼다뿐이다. 소니도 도요타도 덩치가 커지면서 공룡병을 앓고 있다.
성공하는 기업에는 벤처 정신이 있다. 삼성전자나 LG전자도 덩치는 크지만 체질은 벤처기업이다. 창조적인 아이디어와 참신한 디자인이 제품을 늘 업그레이드시키고 새로운 마케팅 기법이 경쟁 상대를 긴장시킨다.
경영 현장은 늘 혁신을 화두로 삼아 새로운 먹이를 찾아 나선다. 벤처기업이 무서운 것은 바로 이 같은 유목민적 체질과 포기할 줄 모르는 열정 때문이다. 하지만 덩치 작은 기업이 늘 경영 판단이 민첩하고 벤처 정신이 충만한 것은 아니다. 작은 기업 중에서도 관료주의 벽에 갇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기업, 제로 성장의 늪에 빠져 있는 기업은 부지기수다.
우리는 덩치가 작으면서도 동물적 감각으로 미래 사업의 씨앗을 찾아내고, 틈새 시장을 발굴하는 후각과 본능을 지닌 기업들을 찾아 나섰다. 우리는 이렇게 취재한 기업을 3개 영역으로 나눴다. 마케팅, 인재 투자, 경영 혁신이 그것이다. 그렇지만 어느 기업도 하나의 카테고리에만 가둬둘 수 없다.
잘 나가는 기업은 경영의 전 부분이 유기적으로 돌아가면서 동시에 각 부문이 최고의 경쟁력을 갖는다. 여기 등장하는 기업들은 작지만 강력한 조직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많은 기업들이다. 앞으로 기업을 일으키려는 분은 물론이고, 현재 기업을 경영하고 있는 분들도 충분히 벤치마킹할 가치가 있는 기업들이다. 현재 기업을 경영하고 있는 분들이나 미래에 창업을 계획하고 있는 독자라면 이 기업들의 노하우를 벤치마킹할 부분들이 많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1부 마케팅 : 호랑이는 썩은 고기를 먹지 않는다
제이에스티나 스타 마케팅 - 김희선에서 김연아까지, 그녀들의 스토리
- 김연아 귀고리를 아세요?
로만손은 정확히 2008년 10월, 주얼리 브랜드 제이에스티나 모델로 김연아를 섭외하는 데 성공했다. 그해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시니어 피겨스케이팅 그랑프리 1차 대회에서 김연아 선수는 제이에스티나의 티아라 귀고리를 착용했다. 제이에스티나의 고정적 팬을 넘어 브랜드를 잘 모르던 일반인까지 ‘김연아 귀고리’를 알게 된 결정적 계기였다. 짧지만 강력한 임팩트를 던지며 판매량은 급속도로 늘었다. 백화점에 입점한 제이에스티나 매장뿐 아니라 온라인 쇼핑몰에서도 ‘김연아 귀고리’를 찾는 여성들로 북새통을 이뤘고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너나 할 것 없이 제이에스티나 특별전이 열렸다.
제이에스티나는 어떻게 특급 스타인 김연아를 모델로 섭외해, 스타마케팅을 펼칠 수 있었을까?
제이에스티나 기획팀은 그해 초 김연아 선수 측에 특별한 제안을 하기로 결심하고 스케이트 모양 목걸이를 특수 제작해 의사를 타진했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경기할 때 사용할 액세서리가 고민이었던 김연아 선수측도 자신만을 위한 제품을 만들어준다는 제안에 쉽게 허락했다.
앙증맞은 스케이트에 리본 모양으로 여성스럽게 장식한 스케이트 끈. 스케이트 아래쪽에는 제이에스티나의 심벌인 티아라를 매달아 김연아와 제이에스티나라는 두 브랜드를 절묘하게 믹스한 제품이 나왔고 전 세계가 주목하는 가운데 김연아 선수는 이 제품을 착용했다.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김연아 선수가 빙상 위에서 홀린 듯 연기할 때마다, 귀 끝에서 반짝이는 제이에스티나 귀고리가 TV 속 경기를 지켜보는 여성들의 마음을 홀렸다. 제이에스티나 신드롬이 만들어지는 순간이었다.
- 이탈리아 공주 브랜드로 거듭나다
2001년 11월 김기문 대표는 이탈리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김 대표의 꿈은 제대로 된 이탈리아풍 주얼리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었다. 고가 예물인 파인 주얼리와 주철을 소재로 한 액세서리 중간에 위치한 브리지 주얼리(Bridge jewelry)가 공략 대상이었다. 대신 브리지 주얼리는 금, 은, 담수 진주 등 가격대가 낮은 보석을 쓰지만 감각적인 디자인으로 승부할 수 있는 시장이었고 원가 부담이 비교적 적으면서 디자인으로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카테고리였다. 타깃은 공주가 되고 싶은 꿈을 아직도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는 20~30대 여성이었다.
‘어떤 공주가 적합할까?’ 역사 서적을 뒤진 끝에 실존했던 이탈리아 공주이자 불가리아 왕비였던 조반나 공주에서 모티브를 빌리기로 결정했다. 조반나 엘리사베타 안토니아 로마나 마리아가 본명인 조반나 공주는 1907년생으로 이탈리아 왕인 아버지와 몬테네그로 공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공주의 대명사다.
김 대표는 공주의 삶에 맞는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해 이탈리아 현지 디자인?제조를 원칙으로 삼았다. 그리고 브랜드 심벌인 티아라를 제품 디자인에 적용했다. 만약 브랜드 심벌만 알릴 수 있다면 신생 브랜드인 제이에스티나를 더 빨리 알릴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이듬해 티아라 귀고리를 착용한 탤런트 김희선이 드라마에 출연하여 초대형 돌풍을 일으켰다. 이때 경험한 스타 마케팅 경험이 ‘김연아 마케팅’에 접목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됐다.
- 로만손 성공 키워드 : 스토리가 있는 스타 마케팅, 소비자를 변심케 하라
성공하려면 변심(變心)을 꿈꿔라. 소비자는 언제나 간사하다. 어떤 제품이 좋은지 평가하지만 정작 스스로는 어떤 제품이 필요한지 모른다. 공주가 되고 싶은 20~30대. 로만손은 과감히 소비자의 동심을 파고 들어갔다.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 소비자를 그들만의 색깔로 입혔다. 스타 마케팅이 성공했던 것도, 김연아 선수를 선택했던 것도 다 이런 전략의 일환인 셈이다.
쿠쿠홈시스 넛지 마케팅 - 고객 자신도 모르던 니즈를 건드려라
- 작은 거인, 코끼리 밥솥을 부수다
쿠쿠홈시스는 밥솥 OEM을 시작한 지 20년이 되던 1998년 4월, 쿠쿠라는 자체 브랜드로 밥솥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다들 쿠쿠의 참패를 예견했지만 오늘날 대한민국 밥솥 시장의 70%는 쿠쿠가 장악하고 있다. 위세를 떨치던 일본 조지루시사의 코끼리 밥솥의 국내시장 점유율은 이제 단 2%에 지나지 않는다. 대한민국 중소기업 쿠쿠홈시스의 한판승이다. 밥을 못 지어도 밥맛이 좋아지는 밥솥, 여기에 내 집 부엌에 들여놓고 싶은 감각적인 디자인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쿠쿠는 명품 밥솥 브랜드로 평가받고 있다.
작은 거인 쿠쿠홈시스는 어떻게 이런 성공을 일궜을까?
- 고객은 시어머니, 끝없는 잔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쿠쿠가 OEM으로 납품하던 시절, 발주 업체는 곧 시어머니였다. 이후에는 일본의 마쓰시타 등 기술 제휴 업체들이 시어머니 역할을 했다. 구본학 사장이 취임하면서부터 고객의 소리가 곧 시어머니였다. 고객이 홈페이지에 올린 불만이나 요구 사항이 사내 전산망을 통해 해당 팀에 실시간으로 전달되도록 했고 24시간 이내에 처리 상황이나 개선 방안을 보고하도록 지시했다. 실제로 고객이 올린 글은 신제품 개발 아이디어의 원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내솥을 분리해 흰 쌀밥과 잡곡밥을 동시에 지을 수 있는 밥솥, 돌솥밥 맛을 낼 수 있는 돌내솥 밥솥 등 쿠쿠홈시스가 올해 선보인 신제품들은 모두 고객의 소리를 반영해 탄생했다. 쿠쿠는 좋은 제품은 소비자가 먼저 알아본다는 가장 기본적이면서 변하지 않는 진리에 입각해 고객을 만족시키는 품질 경영을 최우선 경영 과제로 삼고 있다.
- 진정한 고수는 소비자가 모르는 불만도 듣는다
쿠쿠홈시스는 2008년 창사 30주년을 기념해 그간의 디자인 노하우를 모두 쏟아 부어 신제품 ‘분리형 커버 IH 압력밥솥’을 내놨다. 이 제품은 뚜껑 안쪽의 커버를 본체에서 떼어내 흐르는 물에 씻을 수 있도록 한 아이디어 상품이다.
구 대표는 기술연구소 직원들을 불러 모아 ‘뚜껑을 분리해 물로 씻을 수 있는 밥솥을 만들어보자’라고 제안했다. 하지만 기술진은 손사래를 쳤다. 압력밥솥 내부는 고온?고압 유지가 생명이고 본체와 뚜껑 간 밀착이 밥맛을 좌우하는 열쇠인데, 이 뚜껑을 움직이면 압력을 유지하는 데 문제가 발생한다고 했다. 난관은 그뿐이 아니었다. 압력밥솥은 뚜껑과 몸체에 총 열일곱 가지 안전 장치가 들어가는데, 뚜껑을 분리하려면 이들 장치 구성부터 위치까지 모두 바꿔야 했다. 밥솥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는 ‘대수술’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쿠쿠는 결국 2년에 걸친 시행착오 끝에 2008년 세계 최초로 밥솥 뚜껑 안쪽의 탑 커버를 분리해 세척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냈다. 커버 분리형 디자인의 결과는 ‘대박’이었다. 주부들은 이제 밥솥을 선택할 때 가장 먼저 밥솥 뚜껑이 분리되는지를 살필 정도로, 밥솥 디자인의 필수 요건으로 자리 잡았다. 또 색상도 파격적으로 바꾸고 있다. 그동안 전기밥솥에 쓰이지 않았던 블랙 컬러를 과감하게 도입해, 특히 혼수가전 시장에서 젊은 예비주부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다. ‘골드미스’ 같은 독신 가구를 겨냥한 앙증맞은 디자인의 미니 밥솥도 올해의 히트 디자인이다.
- 쿠쿠홈시스 성공키워드 : 고객을 자신을 알아주는 기업을 인정한다
국내 기업 중 가장 예민한 기업을 꼽으라면 필자는 주저 없이 쿠쿠홈시스를 선택할 것이다. 소비자는 자신이 존재를 알아주는 기업을 선택하기 때문에 기업은 예민하고 민감해야 한다. 쿠쿠홈시스의 A/S만 봐도 이를 알 수 있다. 쿠쿠홈시스의 소비자들이 대부분 주부라는 점을 감안해 중소기업으로는 드물게 100% 찾아가는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 고객과의 접점 확대,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쿠쿠홈시스의 굳은 의지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서비스 정신은 외국에서도 다를 바 없다. 26개국에 밥솥과 가습기, 전기 그릴 등을 수출하고 있는 쿠쿠홈시스는 각 나라별 서비스 센터를 가동시키고 있다.
“지금까지 쿠쿠홈시스는 기술력과 밥맛으로 고객에게 인정받아왔습니다. 쿠쿠 제품을 사용하는 고객들이 제품에 대한 자부심을 갖도록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 저희 쿠쿠가 가장 관심을 기울이는 부분입니다. 이를 위해 디자인과 사용자 편의의 기능 개선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일 계획입니다. 최고의 기술력을 뒷받침으로 혁신된 디자인의 제품을 출시하고, 여기에 사용자들이 조금이라도 더 편리한 기능을 탑재하는 것. 그래서 고객들이 꼭 갖고 싶은 ‘선망의 가전제품’을 만들고자 합니다.” 구본학 대표의 포부다. 쿠쿠홈시스가 이런 원칙을 벗어나지 않는 한 성장은 계속될 것이다.
2부 인재 : 호랑이는 새끼를 절벽에서 떨어뜨린다
오로라월드 인재개발관리 - 2,000시간의 교육이 인재를 만든다
대한민국 캐릭터완구 업계에 스파르타 같은 기업이 있다. 오로라월드는 1985년 9월 창업 이후 지금까지 4만 7000여 종에 이르는 방대한 캐릭터를 디자인했다. 세계에서 캐릭터 산업이 가장 발달한 미국뿐 아니라 60개국 이상에 수출되고 있다. 전 세계 3분의 1 이상의 어린이들이 유년기를 오로라월드와 함께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비결은 전체 직원의 40%를 차지하는 디자이너에 있다.
진짜 챔피언은 스스로에게 더 냉혹한 법이다. 오로라월드에서 디자이너가 되려면 2,000시간이 넘는 혹독한 교육을 감당해야 한다. 대대적인 인재 투자와 엄정한 교육이야말로 오로라월드의 진짜 경쟁력이다.
- 세계는 초 단위 경영 시대! 전 세계 직원을 하나로 묶어라
오로라월드 서울 본사 직원 수는 98명. 이 가운데 37명이 디자이너다. 현재 서울 본사에 ‘디자인개발 전문연구소’가 있고, 미국, 영국, 독일, 일본, 홍콩에 ‘디자인&마켓리서치 센터’가 있다. 세계 주요 국가의 트렌드와 라이프스타일 변화를 실시간으로 조사하는 조직 시스템이다. 이것으로도 모자라 중국과 인도네시아에는 ‘디자인개발 센터’를 두고 신소재와 신제품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미국, 영국, 독일, 일본, 홍콩 등에 나가 있는 디자이너가 선진국 시장과 디자인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그들의 라이프스타일 변화를 체크해 서울 본사와 중국, 인도네시아에 있는 디자인개발센터에 알려주니 세계를 초 단위로 묶은 셈이다.
- 혹독한 교육을 통과한 직원이 세계적인 제품을 만든다
오로라월드에 입사한 디자이너들은 대학을 다닐 때보다 더 험난한 교육을 받아야 한다. 모든 디자이너는 입사 후 일정 교육 과정을 거친 후에 비로소 오로라월드의 제품을 디자인할 수 있는 자격을 얻는다. 입사 이후에 더 치열한 경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핵심 디자이너’ 되기는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렵다. 3~4년 동안 오로라월드가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교육 프로그램에 따라 집중 훈련을 받아야 한다. 디자이너들은 공장 현장에서 제품이 생산돼 최종적으로 소비자 손에 들어가기까지 모든 과정을 꼼꼼하게 다 익혀야 한다. “개인 성장이 없으면 회사도 성장하지 않습니다. 직원 하나 하나의 능력이 곧 회사의 능력입니다.”
교육은 철저히 피드백 중심으로 진행되는데, 교육 범위는 가장 기초적인 독서에서 출발해 해외 전시회 참관까지 범위가 넓다. 또 5개국 해외 법인 순환 근무도 한다. 횟수와 기간은 특별히 정해져 있지 않지만 상당수 인력들이 3년에 한 번은 나가게 된다. 이를 통해 선진 디자인기법을 현장에서 바로 흡수한다.
성공한 디자이너는 철저히 계산된 수익을 분배받는다. 언제나 오로라월드 순이익의 10%는 직원들 몫이다. 회사 발전에 기여한 팀?부서나 개인은 봉급에서 최고 500%를 더 받고 그렇지 못한 부서나 개인은 최저 20%만 받는 식이다. 이런 노하우 때문에 오늘날 오로라월드는 브랜드를 여섯 개로 늘리는 데 성공했다. 모두 시장 검증을 통과한 알짜 품목들이다.
교육을 통과한 대표 디자이너들이 담당하다보니 각 브랜드마다 시장과 소비 계층별로 타깃에 맞게 맞는 브랜드로 이뤄졌다. 이를 통해 사각지대 없이 캐릭터 완구 시장 전반을 폭넓게 공략하게 됐다. “1980년대 캐릭터완구 수출시장을 주름잡았던 1,000여 개의 우리나라 완구 업체 가운데 지금까지 살아남은 회사는 불과 열 개 남짓입니다. 이 업체들 중에서도 자체 브랜드로 수출을 하는 곳은 오로라월드밖에 없습니다. 만약 디자인 경쟁력이 받쳐주지 않았다면 저희도 어려웠을 겁니다.”
- 오로라월드 성공키워드 : 디자이너를 키워 비즈니스 영역을 확장해라
노희열 회장의 목표는 예나 지금이나 글로벌 넘버원이다. 1990년 인도네시아, 1993년 중국에 대규모 생산 공장을 만들어 원가 경쟁력을 확보했다. 1992년에는 세계 최대 완구 시장인 미국에 판매 법인을 세우고, 독자 브랜드를 시작했다. 1997년에는 세계 2위 완구 시장인 영국에 판매 법인을 설립했고, 이듬해에는 독일에 법인을 만들어 EU시장 공략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러시아, 일본, 대만 등에도 판매 대행 업체를 두어 촘촘한 글로벌 판매망을 조직했다. 오로라월드는 연구 개발(R&D) 센터 아홉 개, 생산법인 세 개, 판매법인 네 개, 상설전시장 열두 개, 디스트리뷰터 열두 개를 통해 시장조사부터 캐릭터 개발?생산?판매까지 수직계열화된 시스템을 구축했다.
하지만 오로라월드의 야심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다음 목표는 콘텐츠 사업이다. 캐릭터완구를 생산해 바이어에게 넘겨주는 단순한 사업 구조에서 한 단계 도약해, 캐릭터를 활용해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여기서 수익을 거둬들이는 ‘종합 콘텐츠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목표다. 오로라월드가 이런 꿈을 꿀 수 있는 힘은 의외로 간단하다. 바로 디자인 파워가 있기 때문이다. 캐릭터에 스토리를 입히면 콘텐츠가 된다. 특히 오로라월드처럼 전 세계적 네트워크를 구축한 기업이라면, 성공적인 캐릭터만으로 대박 상품을 뽑아내는 것은 문제도 아니다. 오로라월드는 디자이너에 대한 투자가 기업을 어떻게 육성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훌륭한 모범 사례다.
3부 경영 : 호랑이는 사냥하는 순간이 아니면 발톱을 감춘다
디자인하우스 CEO 뚝심 경영 - 남을 믿지 말고 나를 믿어라
- 올바른 길이라면 뚝심으로 밀어 붙여라
1994년 월간 「행복이 가득한 집」 통권 제85호가 발행됐다. 김영주 편집장으로부터 『행복이 가득한 집』을 받아든 이영혜 사장은 담담한 표정으로 잡지를 한 장 두 장 넘겨보더니 언짢은 듯 한 마디를 내뱉었다. “광고가 왜 이리 많지? 이렇게 광고가 많으면 누가 이 잡지를 보고 싶겠어?”
뜻밖의 반응에 김영주 편집장과 황정선 광고부장은 어안이 벙벙했다. 광고부장은 이영혜 사장의 말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잡지의 주 수입원인 광고 수입이 많다고 칭찬을 하진 못할망정, 광고가 많다고 언짢아하다니...
생각에 잠겼던 이 사장은 말을 이었다. "다음 달부터 광고비를 페이지 당 400만 원으로 올립시다." 갑작스럽게 잡지 광고비를 230% 상승하라는 말이었다. 광고부장이 깜짝 놀라면서 만류했다. “광고비를 이렇게 갑자기 올리면 광고주 다 잃습니다.” 디자인하우스 임직원들과 주변 사람들 모두 만류했지만 이영혜 사장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독자들은 광고보다 알찬 내용을 보고 싶어 해요. 광고비를 올려서라도 적정한 광고 비중을 맞춰야 합니다.”
매체의 위상을 제고하고, 디자인하우스의 차별화된 콘텐츠를 잘 전달하기 위해서 너무 많은 광고는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했다. 디자인하우스는 저렴한 가격으로 여러 광고를 유치하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채산성을 높였다. 여성 잡지의 특성상 페이지 당 인쇄 가격은 무시하지 못할 수준이기 때문에 페이지 당 광고비를 지나치게 낮출 경우 잡지사는 적자를 기록하게 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영혜 사장에 대해 ‘시대의 흐름을 보는 안목과 디자인 감각을 갖추고 있으면서 자칫 경시하기 쉬운 비용 개념도 철저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장인 정신을 고집하는 편집자가 정작 경영에서는 아마추어리즘을 보여 원가 관리를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이지만 디자인하우스에서는 이런 점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페이지 단가 준수 노력의 결실인지 디자인하우스는 1995년 이후 당기순이익이 적자인 경우는 한 해도 없었다.
- 신념만 있으면 無도 有가 된다
의류 수출 업체 디자이너로 근무하던 20대 초반의 이영혜는 1977년 월간 「디자인」기자로 입사했다. 디자인의 중요성을 일찍 깨닫게 되었다. “이탈리아제 유명 와이셔츠가 148달러에 팔리는 한편, 한국 와이셔츠가 9달러에 팔리는 것은 디자인 말고는 설명한 길이 없었어요. 그래서 디자인이 한국을 위해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동안 모아 놓은 결혼 자금으로 이영혜가 폐간 위기에 처한 월간 「디자인」을 인수하고 나서 회사가 흑자가 나기 시작한 것은 2002년이었다. 창간한 지 26년 만이었다. 돈을 벌겠다는 생각보다 이 사회에 디자인과 디자이너의 가치를 알려야겠다는 신념에서 시작한 일이었다. 이러한 신념이 독자들에게도 전달이 됐는지, 점차 디자인 전문지로 자리를 잡아 갔다. 1987년 9월 「행복이 가득한 집」을 펴냄으로써 디자인하우스는 사업적 전기를 마련했다. 디자인의 한 분야인 ‘인테리어’라는 개념조차 없던 1986년, 가인 디자인그룹에서 전문가를 대상으로 하는 「인테리어」라는 잡지를 창간했다. “디자인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전문가뿐 아니라 디자인을 소비하는 일반 소비자들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인테리어」가 디자인의 세분화, 전문화 경향과 함께 발전한 특정 분야의 디자인 잡지였다면, 생활 문화지 「행복이 가득한 집」은 인테리어에 중심을 두되 패션 및 여행에 이르는 넓은 의미의 디자인 분야를 다루는 국내 최초의 라이프 스타일 매거진이었다.
1995년에는 취재 중에 알게 된 믿을 수 있는 제품의 생산자와 독자들을 연결하고자 만든 ‘행복이 가득한 쇼핑’을 운영했으며, 2003년부터는 테이블 장식, 골동품 아카데미 등 독자들이 직접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인 ‘행복이 가득한 교실’을 매달 운영했다. 그 결과 일반인들에게는 부자들의 사치 정도로만 여겨졌던 인테리어가 대중화되기 시작했으며 창간 8개월 만에 손익 분기점을 넘어 흑자 궤도에 오르게 됐다.
- 디자인하우스 성공키워드 : 한 우물을 파는 기업이 더 많은 우물을 판다
디자인하우스만큼 한 우물만 파는 기업은 드물 것이다. 하지만 사업을 확장하지 않았던 건 결코 아니다. 자신에게 생소한 분야로 진출하지 않되 잘 아는 사업 영역에서 자연스럽게 소비자의 욕구를 발견하고 충족시키려고 끝없이 노력했다. 웅진씽크빅 잡지 사업부를 인수하는 등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때 인력 충원은 어떻게 이뤄질까? 새 사업부에는 무조건 기존 사업부에 있던 직원들을 배치한다고 한다. 그래서 기존 디자인하우스 신념이 새 사업부에 똑같이 적용되는 효과를 기대한다.
한 우물만 파다보면 새로운 사업 분야가 무궁무진하다는 것이 이영혜 사장의 지론이다. 특히나 요즘처럼 개인의 개성이 중시되는 세상에서는 한 분야를 파고들다 보면 다른 사람들이 열광할 만한 아이템을 개발하게 된다. 누구나 쉽게 따라갈 수 있는 아이템이 아닌 해당 분야에서 오랫동안 준비해온 아이템으로 사업을 시작해야 안정적인 성장이 가능해진다.
이 사장의 경영 혁신은 그리 거창하지 않다. ‘국민들에게 디자인의 중요성을 알리고 디자인 감각을 높여서 풍요롭고 행복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명확한 신념 하에, 불필요한 부분을 줄이는 것이 바로 혁신이라고 생각한다. 분명한 신념을 가지고 잡지의 콘셉트를 설정했으며, 콘셉트에 맞지 않는 광고는 과감하게 거부했다. 하지만 생활 디자인으로 인해 가정이 더 행복해질 것이라는 이 사장의 제안은 독자들의 뜨거운 반응으로 동감을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결국 신념을 지키는 기업이 성공을 거둔다는 것을 입증한 셈이다.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