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교양

부자(父子) 관계이자 서울대 경영학과 30년 선후배이기도 한 저자들은 오랜 자료 수집 및정리 작업 끝에 삼성과 LG가 반세기에 걸쳐 펼쳐 온 경쟁 과정을 각 부문별로 상세히 담아냈다. 그 과정에서 "삼성이 없었다면 지금의 LG가있었을까? 반대로 LG가 없었다면 지금의 삼성이 가능했을까?" 라는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다. 두 그룹은 1등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그리고서로에게 뒤지지 않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경주해 왔으며, 그것이 바로 그들이 지금과 같은 눈부신 발전을 이룩하는 데 있어 하나의 동기 요소로작용하였다.

전체 규모나 실적이 아니라 전자를 비롯한 통신, 화학 등 삼성과 LG가 동시에 뛰어들고있는 주요 사업 부문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분석하면서 "나쁜 경쟁자"가 아닌 "좋은 경쟁자"로서의 모습을 부각시켰다. 아울러 언론, 경제연구기관,의류, 시스템통합 서비스 등의 분야에서도 삼성과 LG가 각각 어떤 활동을 벌이고 있는지를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이를 통해 대한민국 대표 기업에서이제는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의 전환 기로에 서 있는 두 그룹의 경쟁은 어떻게 변화되어야 하는가를 고민해본다. 

■ 저자 
박승엽 - 경복고, 서울대 경영학과를졸업하고 현재 서울대학교 경영대학원 석사 과정에 있다. 세부 전공은 조직이론이며, 기업 역사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기업사 분야를 개척한경영학자 알프레드 챈들러의 책에 감화를 받아 국내 기업 역사를 담은 글을 쓰고자 마음먹게 되었다. 향후에는 국내 기업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걸친 해외 기업들의 경쟁 스토리에 대해서도 다루어보고자 한다. 

박원규 - 경기고,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Cornell 대학에서 MBA 및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경희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며, 전공은 산업조직 및기업재무이다. 학생들이 재무관리에 조금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핵심 재무관리』를 집필하였으며, 『전략경제학』 『미시경제학』 『로스의재무관리』 등 각종 전공 서적을 번역한 바 있다.

■ 차례
들어가는 글 

1. 브랜드 
세계 기업을 향한 큰 발걸음, 브랜드를개편하라! 
삼성, 브랜드 경쟁에서 먼저 웃다 
링 밖에서 붙다 - 브랜드 장외 대결 

2. 전자 
LG전자와 삼성전자의 탄생 
냉장고,세탁기, 에어컨 - 생활가전 
브라운관에서 PDP까지 -디스플레이 
애니콜 vs 싸이언 - 휴대폰 
VCR 및 광디스크 시장

3. 통신 
통신 전쟁의 서막, 데이콤 인수
PCS 사업권을 잡아라 
수면 위로 다시 떠오른 데이콤 
산 너머 또 산, 하나로통신 

4. 화학 
화학에서 맞붙은 삼성과 LG
‘화학’ 없이는 ‘전자’도 없다 

5. 금융 
LG와 삼성의 금융 잔혹사 
카드전쟁 
삼성카드·LG카드의 엇갈린 운명 

6. 기타 
언론 
경제연구기관 
의류
시스템통합 서비스 

맺는말 
삼성·LG 조직도
참고문헌

삼성 vs LG 그들의 전쟁은 계속된다

브랜드
세계적 브랜드로 거듭 태어난 삼성
치열한 브랜드 경쟁에서 먼저 웃은 쪽은 삼성이었다. 외환위기 이후 효과적인 브랜드 전략을 구사해 온 삼성은 2001년부터 세계 최대 브랜드 컨설팅 업체인 인터브랜드(Interbrand)가 선정하는 세계 브랜드 순위에서 꾸준히 50위 안에 이름을 올렸으며, 2006년에는 브랜드 가치 162억 달러를 기록하며 세계 20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2005년 1월, 영국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지는 “브랜드의 중요성을 엿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예가 한국의 삼성전자”라며 “삼성은 고품질의 평면TV, 디지털카메라, 휴대폰 등을 판매하는, 세계에서 가장 ‘쿨(cool)한 브랜드 중 하나로 변모했다”고 극찬했다. 독일 경제주간지 「비르트샤프츠보케(Wirchaftswoche)」지도 “삼성전자는 값비싼 고급 제품 전략으로 성공을 거뒀고 일관된 마케팅 전략을 통해 브랜드를 알림으로써 신뢰받는 기업으로 거듭났다”고 평가하였다. 1996년까지만 하더라도 이건희 회장에게 무참히 두드려 맞았던 삼성 브랜드가 10년도 지나지 않아 세계적인 브랜드로 거듭 태어난 것이다. 어떻게 삼성은 이렇게 단기간 내에 비약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기업 이미지를 만드는 첫 번째 요소는 실제적인 경영 성과이다. 경영 성과가 뒷받침되어야 훌륭한 기업 이미지를 기대할 수 있다.” 김쌍수 LG 부회장의 발언이다. 쉽게 말해 물건이 잘 팔려야 그에 상응하는 기업 이미지와 브랜드를 구축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역설적이게도 이 발언은 지금의 삼성을 대변해준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삼성이 강력한 브랜드를 구축하게 된 것은 삼성 제품이 잘 팔렸기 때문이다. 1993년 이건희 회장 신경영 선언 이후 꾸준히 추진된 삼성의 ‘월드 베스트’ 전략은 자연스럽게 삼성 브랜드 가치를 제고했다. 현재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삼성 제품은 D램 반도체부터 석유시추선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 모든 제품들이 삼성 브랜드를 널리 홍보한 일등 공신들이다.

특히, 휴대폰의 성공은 삼성전자뿐 아니라 삼성 브랜드 위상 확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동안 삼성전자 제품은 중저가 이미지가 강했으나 삼성이 휴대폰을 내놓은 뒤부터는 사정이 달라졌다. 삼성전자 휴대폰은 1997년부터 본격적으로 해외 시장의 문을 두드리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고, 이는 그룹 이미지 제고로 이어졌다. 삼성전자가 영국의 리서치 인터내셔널(Research International)과 함께 해마다 조사하는 BAS(Brand Attitude Survey) 자료에 따르면, 삼성 휴대폰에 대한 인지도는 2001년 17.9%에서 2004년 48.1%로 급성장했는데, 이는 삼성 브랜드 가치가 성장한 시기와도 맞물린다.

물건만 잘 팔렸다고 브랜드 가치가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삼성은 브랜드 파워를 높이기 위한 다양한 후방 지원을 펼쳤다. 일단 삼성이라는 브랜드가 함부로 사용되지 않도록 철저하게 통제했다. 외환위기 직후 삼성 구조조정본부(現 전략기획실)는 전자 외의 계열사가 해외에서 삼성 브랜드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고, 삼성 브랜드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그룹 ‘브랜드 위원회’의 사전 승인을 받도록 하는 등 브랜드 관리에 철저함을 기했다. 브랜드 홍보에도 아낌없는 투자가 뒤따랐다. 2001년에도 삼성전자는 브랜드 홍보를 비롯한 광고비로만 4억 달러를 지출했다. 반도체 수출 부진으로 불황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전년 대비 25%나 증가한 금액이었다.

브랜드에 관한 한, LG는 아직 삼성에 미치지 못한다. 2005년 7월, 미국의 「컨슈머 리포트(Consumer Reports)」지가 에어컨 소비자 만족도 조사 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었다. 당시 LG전자는 7위를 차지했었는데, 소비자 만족도 순위에 LG전자 이외에 또 다른 국내 브랜드가 올라가 있었다. 바로 LG전자의 옛 이름인 ‘골드스타(Goldstar)가 11위라는 걸출한 성적으로 순위권에 진입한 것이다. 한국에서는 이미 10여 년 전에 사라니 ’골드스타‘가 아직도 미국 소비자들 머리에 각인되어 있으니, LG는 ’골드스타‘의 선전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LG 브랜드는 아직 삼성에 미치지 못한다. KOTRA가 발간한 ‘2005 국가이미지 현황 및 시사점’에 따르면, 외국인들은 ‘가장 먼저 연상되는 우리나라 기업’으로 삼성을 가장 많이 꼽았는데, 삼성은 34.4%의 인지도를 얻어 15.6%의 인지도를 얻은 LG를 두 배 이상 여유 있게 따돌렸다. 특히, LG는 북미 지역(삼성 35.1%, LG 6.2%), 일본(삼성 51.2%, LG 4.1%), 중국(삼성 61.3%, LG 14.4%) 등에서 삼성에게 크게 밀렸다. 반면, LG가 브랜드 홍보에 공을 들인 중남미, 아프리카, 러시아에서는 상당히 높은 인지도를 얻었다. 그러나 어느 지역에서도 LG가 삼성을 이긴 곳은 없었다.(물론 KOTRA의 조사가 절대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 LG전자에 따르면 갤럽사가 2003년 브랜드 이미지를 조사한 결과, LG전자는 인도, 독립국가연합, 중동 및 아프리카 지역에서 최고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 30%에 육박하는 브랜드 인지도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자
PDP 시장 출현
삼성과 LG는 1995년부터 PDP(Plasma Display Panel)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는데, 당시 일본에서는 이미 PDP TV 시제품이 만들어질 무렵이다. 이미 LCD 패널 시장을 삼성과 LG에게 빼앗겨 크게 자존심 상한 바 있는 일본 전자업체들은 PDP 패널 시장만큼은 한국에게 내줄 수 없다며 처음부터 PDP 패널 사업에 많은 투자를 했다. 2001년, 2002년만 하더라도 일본 업체 PDP 패널 시장점유율은 각각 94%, 85%에 이르렀다. 하지만 PDP라는 분야가 등장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PDP는 LCD에 비해 일본과 기술 격차가 거의 나지 않았던지라, 삼성과 LG가 일본을 따라잡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LG전자는 1997년 40인치 PDP 개발을 시작으로 1998년 세계 최초로 60인치 PDP 개발에 성공하였고, 2000년에는 삼성SDI가 세계 최초로 63인치 PDP 개발에 성공하는 등 두 회사는 빠른 속도로 일본 업체 기술 수준을 따라잡았다.

양산 체제에서는 더욱 빠른 움직임을 보였다. 일본은 한국보다 1년 앞선 2000년부터 PDP 패널 양산을 시작했다. 하지만 일본 업체들은 지나치게 다양한 PDP 라인을 만드는 바람에, 전용 라인을 만든 삼성, LG보다 생산 라인의 효율성 면에서는 못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리하여 2004년 하반기부터 한국은 PDP 패널 출하량에서 PDP 종주국인 일본을 따돌리기 시작했다.

삼성과 LG는 LCD에 먼저 투자를 한 상태였지만, PDP에서도 꾸준히 관심을 두고 있었다. 여타 일본 업체들과 달리 삼성과 LG는 차세대 디스플레이 산업인 LCD와 PDP에 동시에 투자했다. 차세대 디스플레이라는 점에서 시장 영역이 겹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PDP에 대한 수요가 꾸준히 상승하고 있었고, LCD와 PDP 둘 중 어느 것이 차세대 디스플레이 표준으로 결정될지도 불투명했기 때문에 두 그룹은 PDP에도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반면, 일본 업체들은 디스플레이 사업을 특화하여 진행했는데, 예를 들어 샤프와 소니는 LCD를, 마쓰시타는 PDP에 역량을 집중하는 식이었다.

그런데 두 기업 모두 LCD와 PDP 사업을 동시에 진행하다 보니 회사 내부에서 분열이 일어나는 문제가 발생하였다. 즉, 같은 회사 내에 있는 부서들끼리 서로 상대방 시장을 빼앗기 위해 싸우는 우스운 상황이 생길 뻔한 것이다. 그래서 두 그룹은 일단 LCD 사업과 PDP 사업을 각각 다른 회사에 맡겼다. 삼성은 LCD 패널 사업은 삼성전자(S-LCD포함)에게, PDP 패널 사업은 삼성SDI에게 할당했고, LG는 LCD 패널 사업은 LG필립스 LCD에게, PDP 패널 사업은 LG전자에게 일임했다.

이러다 보니 재미있는 현상이 생겼다. 디스플레이 패널 업체들이 두 가지 전쟁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첫 번째 전쟁은 동종업체와의 경쟁이다. 즉, LCD 패널 생산에 있어서는 삼성전자(S-LCD)와 LG필립스 LCD가, PDP 패널 생산에 있어서는 삼성SDI와 LG전자가 대결을 펼쳤다. 또 다른 전쟁은 같은 그룹 내에 있는 회사들끼리의 경쟁이다. 즉, LCD와 PDP가 차세대 디스플레이 시장을 놓고 경쟁을 하다 보니 같은 그룹 내에서도 LCD사업부서와 PDP사업부서 간에 경쟁이 생긴 것이다. 이에 각 그룹의 LCD/PDP 담당 회사들 즉, 삼성에서는 삼성전자와 삼성SDI가, LG에서는 LG필립스 LCD와 LG전자가 서로를 견제하는 다소 아이러니컬한 상황이 전개되었다.

LCD와 PDP가 차세대 디스플레이 왕좌를 놓고 한창 경쟁을 펼치던 2001년에서 2003년에는 같은 그룹 내에 있는 계열사들끼리 ‘치고받는’ 상황이 심심찮게 벌어졌다. 2001년11월에 삼성전자가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46인치 LCD를 공개하자, 삼성SDI는 두께 46㎜인 초박형 PDP를 발표하면서 맞불을 놓았다. 삼성전자는 “TV는 물론 모니터나 노트북용으로 돌릴 수 있어 LCD가 원가절감에 훨씬 유리하다”고 주장한 반면, 삼성SDI는 “원가절감을 가속할 수 있는 요소가 많은 쪽은 PDP"라며 받아쳤다.

2003년에는 LG가 그랬다. 구본준 당시 LG필립스 LCD 사장이 “LCD TV는 40인치부터 PDP TV와 싸울 것으로 생각되는데, 경쟁하면 LCD TV가 백전백승한다고 본다”며 PDP를 무시하는 듯한 발언을 하자, LG전자는 “40인치급 LCD TV가 1,000만 원(2003년 기준)인데 비해 동급 PDP TV는 400만 원대여서 가격 경쟁력에서 상대가 되지 않는다”며 반격했다. 그러나 구본준 사장은 이에 밀리지 않고 2004년 11월 한 대학 강연에서 ‘LCD와 PDP 중 앞으로 어느 것이 살아남겠느냐‘는 질문에 “LCD가 로마 군단이라면 PDP는 퇴각하는 바바리안(야만인)이다”라고 답해 PDP 사업을 하고 있는 LG전자를 당황스럽게 했다.

LCD와 PDP의 대결에서는 현재 LCD가 유리한 입장에 있다. 2002년에는 LCD가 전체 디스플레이 매출의 46%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2006년에는 75%까지 증가했다. 반면 PDP는 LCD의 빠른 성장에 다소 주춤거리는 추세이다. 2005년까지 40인치대 TV시장의 80%를 차지하고 있던 PDP는 LCD에게 밀리면서 2006년 시장점유율이 56%까지 하락하였다. 2년 정도의 시차를 두고 PDP가 비교 우위에 있던 30인치급 TV 시장, 40인치급 TV 시장이 차례로 LCD에 의해 잠식당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PDP도 LCD 못지 않은 장점이 많기 때문에 둘의 우열을 쉽게 가늠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통신
IMT-2000으로 새로운 전환기를 맞는 통신 사업
PCS 사업권도 따고 데이콤의 주인으로도 등극한 LG는 통신 사업에서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는 데 마침내 성공하는 듯하였다. 그러나 LG 앞에는 통신 회사로 이미 입지를 확고하게 굳힌 KT와 SK텔레콤이 자리 잡고 있었다. SK텔레콤은 이동통신 시장에서 부동의 1위를 유지하고 있었고, KT는 유선통신 시장뿐 아니라 KTF를 통해 이동통신 시장에서도 막강한 파워를 자랑하고 있었다. LG는 데이콤이라는 지원군을 얻긴 했지만 유?무선통신 시장에서 확고한 자리를 잡고 있는 두 통신 공룡을 따라잡기에는 힘이 부쳐 보였다.

LG가 꼴찌 탈출을 위한 교두보로 삼은 것은 IMT-2000 사업이었다. IMT-2000이란 ‘International Mobile Telecommunications System 2000의 준말로, 음성 통화 외에 영상 통신과 고속 인터넷을 함께 이용할 수 있는 3세대(3G) 이동통신 서비스를 뜻한다. 기존 이동통신 서비스와는 차원이 다른 서비스 사업인 만큼 각 통신사들은 IMT-2000 사업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었고 이는 LG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규모나 역량 면에서 열세에 있었던 LG가 SK텔레콤이나 KTF 등 쟁쟁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IMT-2000 사업자로 선정될지는 의문이었다.

IMT-2000(3세대 이동통신)은 서비스 방식에 따라 동기식(CDMA 2000)과 비동기식(WCDMA)으로 나뉜다.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가 2세대 이동통신에서 비동기식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3세대 이동통신 기술은 이 중에서도 비동기식을 중심으로 발전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SK텔레콤, KTF, LG텔레콤 등 모든 이동통신 회사들도 당연히 3세대 이동통신 사업에서 비동기식 사업자로 선정되기를 원했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정보통신부가 3세대 이동통신으로 동기식(CDMA 2000)을 선택해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왜 그랬을까? 이유는 다음과 같다. 3세대 이동통신도 결국 그 전 세대인 2세대 이동통신에서 파생된 것이다. 2세대 이동통신에는 동기식인 CDMA와 비동기식인 GSM, 두 가지 방식이 있는데, 이 중에서 미국과 우리나라에서 주로 사용하는 것이 CDMA 방식이고, 나머지 전 세계에서 주로 사용하는 것이 GSM 방식이다. 그간 우리나라는 CDMA 종주국으로서 2세대 이동통신 방식으로 CDMA를 사용해 왔다. 삼성전자나 LG전자 등 휴대폰 제조 업체들도 자연스럽게 GSM보다는 CDMA 중심으로 휴대폰을 만들었고, GSM 휴대폰 개발은 CDMA보다는 상대적으로 소홀히 여겨졌다. 그래서 GSM에서 파생된 3세대 비동기식(WCDMA) 휴대폰보다는 CDMA에서 파생된 3세대 동기식(CDMA 2000) 휴대폰을 개발하는 것이 제조 업체 입장에서는 훨씬 유리했던 것이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휴대폰 제조업체들은 국내 수만 개의 장비 업체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동기식 채택이 불가피하다는 논리를 폈다. 이동통신 업체와 휴대폰 제조 업체의 이해관계가 상충되면서 정보통신부의 IMT-2000 사업자 선정은 미궁속으로 빠져들었다.

2000년 9월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IMT-2000의 기술 표준 방식은 통신 회사 자율에 맡겨졌다. 즉, 이동통신 회사가 모두 비동기식을 주장했기 때문에 IMT-2000 사업은 ‘3 비동기식(WCDMA)으로 가는 게 수순처럼 보였다. 그런데 2000년 9월 이후 갑자기 ’2 동기식, 1 비동기식‘ 설이 떠돌기 시작했다. 통신 회사들은 이를 ’삼성의 힘‘으로 해석했다.

‘2 동기식, 1 비동기식’ 소문이 떠돌기 시작하자 이동통신 회사들은 정부의 갑작스러운 방침 변경에 반발하였다. 이에 정보통신부는 다시 업계 자율로 정책을 바꿨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입장을 바꿔 휴대폰 제조 업체의 사정을 고려하여 ‘1 동기식, 2 비동기식’ 안으로 최종 결정했다. 결국 IMT-2000에 출사표를 던진 SK텔레콤, KTF, LG텔레콤 세 이동통신 회사 중 하나는 비동기식(WCDMA) 사업권을 획득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정보통신부의 이 같은 결정의 배경에는 LG의 ‘전향’이 있었다. SK, KT와 함께 무조건 비동기식을 외친 LG가 IMT-2000 사업자 선정 직전, 삼성의 ‘1 동기식, 2 비동기식’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2000년10월, IMT-2000 기술표준협의회가 개최한 공개토론회에서 이정식 당시 LG텔레콤 상무는 “정보통신 분야의 중복, 과잉 투자 방지를 위해 3개 IMT-2000 사업자 모두 비동기식을 선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혀 이동통신 업계에 파문을 일으켰다. 이날 회의에 함께 참석한 남중수 당시 KT 상무와 조민래 당시 SK텔레콤 상무는 이 상무의 발언에 적지 않게 당황한 모습이었다. LG 입장 발표 직후, SK와 KT측에서는 “사업자가 모두 비동기식으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면 LG그룹이 국익을 위해 동기식을 선택하지 그러냐”며 LG의 갑작스러운 변심을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LG가 왜 동기식 채택을 주장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추측이 가능하다. IMT-2000 사업자 선정 당시 국내 이동통신 시장점유율은 SK텔레콤((53%)-KTF(32%)-LG텔레콤(15%) 순이었다. 당시 LG텔레콤 시장점유율은 1위인 SK텔레콤과는 물론, 2위인 KTF와도 2배 이상의 격차가 났다. 그러니 설령 LG가 IMT-2000 비동기식 사업자로 선정된다 하더라도, 나머지 두 회사가 LG와 똑같이 비동기식 사업자로 선정된다면 LG 입장에서는 득 볼 것이 별로 없었던 것이다. LG 입장에서는 SK와 KT, 둘 중 하나가 동기식으로 밀려나고, 자신이 비동기식 사업권을 획득해야 역전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자칫 ‘이동통신 만년 꼴찌’로 남을 가능성이 커진 LG는 IMT-2000 사업자 선정에 베팅을 건 것이다. LG가 갑자기 ‘1 동기식, 2 비동기식’으로 선회한 데는 LG가 정부와 모종의 교감을 나누었기에 가능했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어쨌든 온갖 유언비어 속에 LG는 막판에 타 이동통신 회사와 달리 ‘1 동기식, 2 비동기식’을 주장하며 삼성과 같은 목소리를 냈지만, 정작 자신은 비동기식으로 신청하였다.

2000년 12월 15일, 정보통신부는 IMT-2000 차세대 이동통신 사업자를 발표했다. 결과는 SK와 KT의 승리였다. SK텔레콤과 KTF는 비동기식 사업권을 가져갔고, LG텔레콤은 2위인 KTF에 근소한 차이로 고배를 마셨다.

금융
‘안정’ 삼성카드, ‘확장’ LG카드
LG가 삼성을 추격하기 시작한 것은 1997년 말 IMF 외환위기 직후였다. 앞서 두 회사가 모두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쳤다고 했는데, 조금 더 엄밀히 말하자면 삼성카드는 상황에 따라 공격 경영과 보수 경영을 취사선택한 반면, LG카드는 저돌적인 확장 전략을 지속적으로 추진했다. 1998년 상반기 삼성카드가 부실여신 방지를 위해 회원 30만여 명을 과감하게 퇴출시키고 일반 회원들의 신용한도를 대폭 축소시키는 동안, LG카드는 ‘위기일 때 시장을 선점해야 한다’는 판단 아래, IMF 위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100만여 명의 신규회원을 확보하고 신상품을 잇달아 출시했다. 삼성카드가 ‘트라이어드(TRIAD)라는 회원관리 시스템을 통해 연체율을 업계 최저 수준으로 끌어내릴 때, LG카드는 온라인 금융서비스를 통한 대출 및 현금서비스 확장을 추진하는 등 두 그룹은 대조적인 모습을 자주 보였다. 그 결과 1998년 상반기 삼성카드 총 사용액은 20% 줄어든 반면 LG카드 총 사용액은 20% 이상 증가했고, 1998년 말에는 LG카드 이용실적이 삼성카드를 앞서기 시작했다.

LG의 선전에 자극을 받은 삼성카드는 다시 전열을 가다듬고 반격에 나섰다. LG카드가 빠른 속도로 성장하자, 부실회원을 과감하게 퇴출시켰던 삼성카드는 다시 신규회원을 독려하는 공격 경영을 폈다. 긴축도 좋지만 자칫 LG카드에게 시장을 뺏길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삼성카드는 1999년 ‘회원과 이용실적을 두 배 늘린다’는 ‘더블 점프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여 1999년 6월부터는 다시 LG카드를 따돌렸다. LG카드의 선전에 자극을 받은 삼성카드가 ‘내실’에서 ‘공격’으로 전략을 수정한 것이다.

그러자 이번에는 LG카드가 다시 물량공세를 퍼부어 2000년에는 근소한 차이로 삼성카드를 누르게 된다. 삼성카드는 당해 3천억 원이라는 막대한 순이익을 냈지만 4천억 원에 가까운 순이익을 낸 LG카드보다 ‘못했다’는 이유로 그룹에서 따가운 눈총을 받기도 했다.

2001년은 두 회사의 경쟁이 극에 달한 시기였다. 두 그룹은 상대방의 실적을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금융감독원 상반기 보고조차 고의적으로 지체하기도 했다. 경쟁사보다 낮은 실적을 제출했다간 그룹에서 불호령이 떨어질 게 뻔하기 때문에 서로 상대방이 제출한 보고서를 보려고 혈안이 되었다. 당시 금감원은 두 회사에게 상반기 실적 보고서를 제출하라고 수없이 이야기했지만, 두 회사는 금감원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상대방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2001년 금감원 상반기 보고서에서는 삼성카드의 시장점유율이 LG카드보다 더 높은 것으로 나왔다. 삼성카드는 2000년 LG카드에 내줬던 업계 수위 자리를 되찾았고, LG카드는 카드발급 수, 카드사용실적, 연체율 등 3개 부문 모두 경쟁사인 삼성카드에게 밀린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LG카드는 금감원의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즉각 반박했다. LG카드는 “카드업계 취급액은 통상 현금서비스와 할부, 일시불을 합계한 금액이 기준이었다. 그러나 이번 금감원의 취급액 기준은 여기에 카드론을 포함했다. 카드론을 제외한 취급액과 시장점유율에서는 LG카드가 삼성카드를 앞선다”며 강하게 대응했다. 그리고 LG카드는 보란 듯이 2001년 하반기에도 공격 경영을 강화하여 신용카드 이용실적에서 다시 삼성카드를 제쳤다.

두 회사의 경쟁은 한 치 앞도 가릴 수 없었지만 기본 노선, 즉 LG카드의 ‘확장 경영’과 삼성카드의 ‘확장+내실 경영’ 기조는 경쟁 와중에서도 나름대로 유지되고 있었다. 삼성카드는 1999년 이후 신용카드 이용 실적에서 LG카드에 매년 근소한 차이로 뒤지고 있었던 반면, 연체율에서는 LG카드보다 안정적인 수치를 보였다. 2001년 12월, 이경우 당시 삼성카드 사장도 “삼성카드 연체율이 업계 평균보다 낮지만 리스크 관리를 강화해 연체율을 더 떨어뜨릴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2002년 5월에는 이건희 회장이 과도한 카드 경쟁을 우려하여 “국민 정서에 어긋나 비판받는 계열 금융사는 생존할 수 없을 것”이라며 우회적으로 삼성카드의 ‘절제’를 강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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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카드의 공격 기조는 2002년 상반기 실적 발표 때 다시 한 번 극명하게 드러났다. 2002년 7월, LG카드가 발표한 상반기 실적보고서에 카드사 평가에 있어 가장 기본이 되는 수치인 ‘카드이용액(취급액)’ 정보가 빠져 있었던 것이다. LG카드는 취급액을 발표하지 않은 이유를 “기업의 외형보다는 내실로 평가받고 싶기 때문”이라고 밝혔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명분에 불과했다. LG가 취급액을 밝히지 않은 것은 2001년처럼 삼성카드가 LG카드 실적을 보고난 뒤 카드 이용액을 늘려 다시 1위 자리를 빼앗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LG카드는 언론과 투자자들의 계속된 요청에도 불구하고 금감원 보고 전까지는 ‘어떤 일이 있어도’ 취급액을 공개할 수 없다고 버텼다. 그러나 LG카드는 실적 경쟁보다 더 중요한 회사의 생사에 대해서는 별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