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양세영
1961년에 태어나 서울대학교를 졸업한후 뉴욕주립대학교에서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서울대 경영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마쳤다. 기업윤리에 대해 남다른 소신을 가진 그는 전경련에서기업윤리센터 부소장, 기업구조조정센터 부소장 등을 역임하며 투명한 기업문화 정착에 앞장서 왔다. 이 외에도 담배인삼공사, 우리은행, 신세계,삼성화재, 대한항공 등 굴지의 대기업에서 임직원을 대상으로 윤리경영에 대해 활발한 사회강연활동을 펼쳐왔다. 현재 전경련 기획조정실장으로재직중이다. 저서로 『기업지배구조 개선과제』『미국기업윤리경영 시사점』『유한킴벌리 윤리경영 사례』등이 있다.
■ 차례
프롤로그 : 절벽에 선 박과장
1부 반갑지 않은 변화
8개월 전
지긋지긋한윤리타령
우리 사이에 무슨 윤리에요
뜻밖의 손님
새로운 지사장님은 바른생활 공자님
변화가 얼마나 갈까
누가누구를 가르쳐
2부 악마의 유혹에 넘어간 박과장
잘못된 만남
양심과 욕심 사이에서 흔들리다
힘이 필요해
본사행 티켓을 예약하다
양심의 눈이 깜빡깜빡
박과장님! 큰일났어요
아주 특별한 사과 한상자
징계라구요? 억울합니다
누가 박과장을 신고했나
3부 역전의 기회를 잡아라
밝혀진 진실
익숙한것과의 이별
끝은 또 다른 시작
또다시 찾아온 악마의 속삭임
우리 아빠 착한 아빠
에필로그 : 1년 후
박과장의 사과 한 상자
1부 반갑지 않은 변화
우리 사이에 무슨 윤리에요
“설렁탕이나 한 그릇 하자니까 꽃등심은 너무 과한 거 아닙니까?”
“이 오필수를 뭘로 보고 그러십니까? 하늘같은 한길기업 분들을 만나는데 설렁탕이 말이 됩니까? 적어도 꽃등심 정도는 되야죠.”
“제발 그런 소리 마십시오. 그러니까 다들 우리 회사가 부패했느니 한쪽 팔에 완장을 찼느니 그런 소리를 해대는 거 아닙니까?”
“그만큼 한길기업이 끗발 있다는 얘기죠.”
오늘 예고된 점심 메뉴는 설렁탕이었다. 하지만 막상 와보니 고기상이 차려져 있었다. 물론 오사장의 점심 초대를 받을 때부터 짐작한 일이긴 했지만 말이다. 박과장은 갑자기 몇 장 몇 조인지 정확히 기억하지는 못했으나 ‘직원은 직무 관련자로부터 향응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회사 윤리강령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아, 이게 교육의 효과인가? 꽃등심은 향응에 해당되는 걸까?’
만약 이 자리에 강직한 대리가 있었다면, 그는 윤리경영을 운운하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을 것이다. 그 장면을 상상하니 웃음이 나왔다.
“그나저나, 우리 부장님의 대장 상태가 안 좋으셔서 어쩝니까. 제가 한약이라도 한 첩 지어서 가야겠는데요.”
“아이고, 제발 그러지 마십시오. 우리 강대리님이 알면 큰일납니다. 뇌물 쓴다고 계약해지 될지도 모릅니다.”
다 익지도 않은 꽃등심을 연신 입에 집어넣으며 장새진이 말했다.
“아, 맞다. 강대리님이 있었죠. 제가 한길기업에서 제일 무서워하는 분이 강대리님이 아닙니까? 몇 달 전인가 강대리님 아버님 칠순이셨던 거 아시죠?”
“그랬어요? 전 몰랐는데. 야, 신입 넌 알았냐?”
“몰랐죠. 강대리님이 그런 거 말씀하실 분인가요 뭐.”
“제가 우연히 강대리 아버님 칠순 잔치가 있다는 걸 알고 화환과 봉투 하나 보냈다가 아주 개망신 당했다는 거 아닙니까. 잔치 다음날 저희 회사로 직접 와서는 직원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봉투랑 화환값까지 계산해서 돌려주는데, 어찌나 얼굴이 화끈거리던지 창피해 죽는 줄 알았습니다. 제가 무슨 대가를 바라고 한 것도 아니고 진짜 서운하데요.”
“강대리 성격 모르셨어요? 원래도 빡빡한 사람이었는데, 요즘 부쩍 심해졌어요. 입만 열었다 하면 윤리경영 얘기라니까요.”
“윤리경영이 대세긴 대센가 보네요. 요새 저도 윤리경영 때문에 피곤해 죽겠습니다.”
“오사장님 회사도 윤리경영하세요?”
“저희같이 작은 회사에서 무슨 윤리경영을요. 근데 젊은 직원들이 어디서 듣고 왔는지 우리 회사도 투명경영을 해야 한다느니, 갑과 을의 관계가 개선돼야 한다느니, 노동법이 어떻다느니 하는 바람에 피곤해 죽겠습니다. 아니 언제부터 우리나라가 그딴 거 따지고 살았습니까? 윤리니 도덕이니 따지기 전에 일단 먹고 살아야 할 거 아닙니까?”
작은 가게로 시작해서 자수성가한 오사장에게 윤리경영은 배부른 소리로 들릴 뿐이었다.
“윤리경영이 조금 귀찮긴 해도 꼭 필요하긴 하죠. 눈에 바로 보이는 이득은 없어도 장기적으로는 기업 이익에 도움이 되는 건 분명합니다.”
그동안의 교육이 헛되지는 않았나보다. 매번 교육받으러 갈 때마다 박과장만큼이나 귀찮아하던 장새진이 윤리경영의 필요성에 대해 인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뭐 저처럼 무식한 사람이 뭘 알겠습니까? 하긴 윤리경영을 도입하면 직원들이 사장 몰래 딴 짓은 안하겠네요. 회사 공금으로 무슨 짓들을 하는 건지 회사 카드값 메우기도 벅차다니까요. 윤리경영하면 그런 쓸데없는 비용이 안 들어가니까 수익이 늘긴 하겠군요”
무슨 일이든 보는 사람 관점에 따라 달라질 때가 많다. 윤리경영도 그렇다. 회사의 오너인 오사장은 직원들이 회사 공금을 아껴서 사용하는 것을 윤리경영의 기본으로 보는 반면, 직원들은 투명한 경영, 직원들을 위한 경영을 윤리경영이라고 생각하니 말이다.
2부 악마의 유혹에 넘어간 박과장
양심과 욕심 사이에서 흔들리다
? 나의 부당한 이익을 위해 공정한 직무수행을 도외시하고 있지는 않은가?
? 내 업무를 기준과 절차에 맞게 공정히 처리하고 있는가?
박과장은 이 두 항목에서 멈칫했다. 회사에서 틈만 나면 실시하는(박과장 생각에는 너무 자주 하는 거 같다) 설문조사 내용 중 일부다. 박과장은 ‘부당한 이익’, 즉 서울 발령을 위해 ‘기준과 절차에 맞도록 공정하게 처리’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사장의 N사가 협력업체로 하자가 없다고 스스로 합리화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만약 황사장이 김전무의 친구가 아니라면 어땠을까?’라는 의문이 생기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아, 이게 바로 세뇌교육의 효과구나.’
‘난 서울 발령을 원한다. 하지만 김전무는 물론이고 어느 누구에게도 인사 청탁을 하지는 않았다. 윤리지수 100.’
‘황사장이 사주는 밥과 술을 한두 번, 아니 서너 번쯤 얻어먹었다. 하지만 그 정도는 먹을 수 있지 않을까? 다음엔 내가 사면 되지 뭐. 그래도 조금 찜찜하니 윤리지수 80.’
‘황사장의 N사를 수의계약 대상 업체로 선정하려 한다. N사는 우리 회사의 협력업체로 선정돼도 하자가 없을 만큼 탄탄한 기업이다. 하지만 솔직히 김전무에게 잘 보이려는 나의 욕심이 들어가 있다. 조금 많이 찜찜하니까 윤리지수 60, 아니 50인가?’
“앞으로 전자공개입찰제도가 확대되고 계약 방법이 개선되면서 본사와 하청업체 사이의 투명성이 더욱 확대될 전망입니다. 우리회사 성격상 하청업체가 많을 수밖에 없는데, 부조리가 가장 많이 지적되는 부분도 바로 하청업체와의 관계입니다. 윤리경영이 강화된 이 시점에서 만약 부적절한 관계가 지적되면 끝이라는 거 다들 알고 있죠?”
지사장이 새로 오면서 안주지사는 윤리경영의 수위를 점점 높여가고 있었다. 달라진 회사 분위기 때문인지 윤부장도 부조리의 온상으로 지적되어 오고 있는 협력업체 선정에 긴장하는 눈치였다.
“윤부장, 이왕이면 하청업체 대신 협력업체라는 표현을 씁시다.”
지사장이 웃으며 지적했다.
“죄송합니다. 버릇이 되놔서….”
“우리 회사가 투명경영을 이루려면 혼자의 힘만으로는 절대 안됩니다. 협력업체 역시 투명경영에 동참해야 합니다. 협력업체는 단순히 우리가 시키는 일을 하는 곳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성장해야 할 동반자라는 생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지사장의 말에 박과장이 나섰다.
“하지만 말처럼 쉽게 발주처와 협력업체 관계, 즉 ‘갑을관계’가 변하지는 않을 겁니다. 물론 예전처럼 발주처는 왕이고 하청업체, 아니 협력업체는 신하라는 생각은 사라졌지만, 그래도 솔직히 ‘동등하다’라는 인식까지는 힘들다고 봅니다. 그건 ‘갑’인 저희도 그렇고 ‘을’인 협력업체도 마찬가지입니다. ‘갑’이 ‘을’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게 사실이니까 말이죠.”
“그런 구태의연한 생각 때문에 협력업체와의 관계에서 부조리가 발생하는 겁니다. 특히 계약담당자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닌 것 같은데요. 박과장님은 그런 마음가짐으로 업체를 선정하는 겁니까?”
강직한은 평소와 달리 강한 어조로 말했다.
“강대리! 그 말 무슨 뜻입니까? 내가 협력업체 선정하는 데 부정한 마음이라도 품었다는 겁니까?”
박과장은 발끈해서 말했다.
“박과장님 갑자기 왜 흥분하고 그러세요? 강대리님 말씀은 협력업체 선정에 한 점 의혹 없이 주의하자, 그런 얘기 아닙니까? 그렇죠 강대리님?”
장새진은 썰렁한 회의 분위기를 만회하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박과장의 마음은 쉽게 풀어지지 않았다.
“뭘 알고 하는 소린가? 설마….‘
며칠 뒤였다.
“박과장님이 작성한 협력업체 후보 리스트 중에 N사가 들어 있는데요, N사에 대해선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강직한 대리의 문제 제기로 협력업체 선정회의가 시작됐다. 박과장은 강직한을 가만히 바라봤다.
‘진짜 뭘 알고 하는 소리 아닐까?’
하지만 박과장이 떨 필요는 없었다. 김전무 때문에 N사를 알았다는 것 외에는 윤리경영에 위배되는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이윽고 박과장이 목소리를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우리가 상대하는 협력업체는 대부분 중소기업입니다. 중소기업은 우리 산업의 뿌리고 새로운 성장 동력입니다. 일전에 지사장님이 강조하신 것처럼 협력업체는 우리의 파트너 아닙니까? 작지만 능력있는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일 역시 대기업인 우리 회사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N사는 보고서에 나와 있는 것처럼 전도유망한 중소기업입니다.”
3부 역전의 기회를 잡아라
익숙한 것과의 이별
강과장과 장새진을 비롯한 안주지사 동료들의 도움으로 박과장의 징계 처분은 취소되었다. 하지만 과정상의 문제가 제기되면서 서울에서 더 먼 곳으로 발령이 났다. 더군다나 그곳은 회사의 물류창고였다. 직책은 과장을 유지했지만 하는 일은 제품에 쓰일 부품과 재고품을 관리하는 일이었다. 박과장이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 안주지사에 들어서자마자 장새진은 결국 창고지기로 발령난 게 아니냐면서 흥분했다.
“박과장님이 누명쓴 것도 억울한데 좌천까지 당하는 게 말이 됩니까? 사장님 진짜 너무하시네요.”
“장새진씨 흥분하지마. 윤리경영을 위해선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어!. 난 사장님의 강력한 의지천명으로 보이는데.”
강직한이 장새진의 흥분을 가라앉히며 말했다.
“강과장님 승진했다고 너무 사장님 편 드시는 거 아닙니까?”
“그건 강과장 말이 맞네. 윤리경영의 정착을 위해선 강력한 변화가 필요하다는 게 회사 방침일세.”
지사장의 말을 박과장이 받았다.
“제가 물론 잘못하긴 했어도 징계나 좌천이 너무 급진적이어서 조금 당황스럽습니다.”
“일각에선 조직의 저항을 피하려면 장기간에 걸쳐 조금씩 변해야 한다고들 하지. 그러나 잭 웰치가 이끄는 GE는 급진적 변화를 성공적으로 이룬 대표적인 사례네. GE의 한 인사담당자가 어떤 직원 한 명하고 밥을 먹고서는 다른 직원하고 밥을 먹은 것처럼 기록했는데, 그 70달러짜리 식사 때문에 그 인사담당자는 해고당했지. 그렇게 칼 같은 윤리기준 때문에 오늘날 GE가 윤리기업의 대표로 손꼽히는 것 아니겠나?”
“거기에 비하면 전 양반이네요. 좌천에서 끝났으니 말입니다. 사장님에게 고맙다는 인사라도 해야겠는걸요.”
“박과장님 힘내십시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어서 빨리 돌아오셔서 제 안티 세력이 되어주셔야죠. 박과장님이 안 계시면 회의 때 논쟁할 사람도 없고 심심해서 죽을 겁니다.”
강직한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나랑 같이 물류창고로 가실래요?”
“예? 그건 좀….”
당황해하는 강과장을 보며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다음날, 박과장은 지사장과 등산을 가기 위해 ○○산으로 향했다. 지사장은 이미 ○○산 입구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네 5분 지각이야”
“죄송합니다. 늦잠을 자는 바람에…”
“사소한 걸 잘 하는 사람이 큰일도 잘 하는 법일세. 윤리경영의 기본 역시 원칙을 지키는 것 아닌가? 시간을 잘 지키는 것도 그렇고.”
박과장은 얼른 지사장의 말을 잘랐다.
“아, 알겠습니다. 다음부터 시간 잘 지킬 테니까 빨리 올라가기나 하자구요.”
박과장은 지사장의 잔소리가 시작될까봐 먼저 산에 올라가기 시작했다. 지사장도 빙그레 웃으며 박과장을 따라갔다.
그런데 두 시간쯤 흐르자 두 사람의 위치는 역전돼 있었다. 지사장은 저만치 앞서 올라가고 박과장은 기쁜 숨을 몰아쉬며 겨우 지사장을 쫓고 있었다. 박과장은 너무 힘든 나머지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지사장님 그만 올라가죠, 힘들어 죽겠습니다.”
“이 길이 아닌가?”
지사장은 박과장이 묻는 말에는 대답도 안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산을 둘러보았다. 박과장은 순간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지사장님 설마 길을 잃었다. 뭐 이런 얘기는 아니시죠?”
“바로 맞혔네. 아무래도 길을 잃은 것 같은데…”
지사장은 위급한 상황임에도 너무나 태연한 얼굴로 대답했다.
“네?”
박과장은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하지만 안테나가 뜨지 않았다.
“지사장님 큰일났어요. 여기선 핸드폰도 안 터지는 모양인데요.”
“뭘 그렇게 당황하나? 차분히 날 따라오게.”
지사장은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