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권명중
한국외국어대학교를 졸업하고 영국옥스퍼드 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영국 워락대학교 연구교수를 거쳐 현재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 창업보육센터 소장, 영국 워릭대학교 경영대학원 및 옥스퍼드대학교 세인트크로스 칼리지 교환교수를 지냈다. 영국 외무성 국비장학생으로 선정된 바 있고, 산업자원부 및 외교통상부 정책자문위원과 경실련 정책위원으로활동했다.
■ 차례
제1장 巨商 임상옥에게 배우는 사업윤리
1.임상옥의 생애와 사업
2. 임상옥의 사업철학과 사업윤리
제2장 기업경영에도 상도가 있다
1. 윤리란 "가치있는 삶"에 대한 물음
2. 올바르고 가치 있는 경제 행위란 무엇인가
3. 기업활동에도 윤리가 있다
제3장 윤리경영이 장기적 생존을 좌우한다
1.기업활동의 유일한 목적은 이익이어야 한다
2. 기업의 목적은 사회적 책임이어야 한다
3. 기업의 목적은 장기적 생존이어야한다
제4장 발상과 패러다임을 전환하라
1. 장기적 관점에서인생과 사업을 계획하라
2. 단기적 관점으로 행동하는 이유
3. 희망은 있는가?
마치는 이야기
巨商 임상옥의 상도 경영
임상옥에게 배우는 사업윤리
‘재상평여수’의 경제원리
임상옥이 만상이라는 큰 상권을 30년 동안 유지하면서 사업의 생존원리도 터득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것은 평생의 철학 “재상평여수(財上平如水) 인중직사형(人中直似衡)” 이란 문장으로 집약할 수 있다. 이 문장은 문일평의 『호암전집(湖巖全集)』에 기록되어 있는 그의 만시(晩時) 중에 나오는 문장이다. 이 문장은 그가 59세에 사업을 정리한 이후 시와 술로 인생을 유유자적하는 가운데 30년 동안의 사업을 반추하면서 사업의 본질과 자신의 사업철학을 표현한 것으로 유추된다. 이 문장ㅇㄹ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재물은 평등하기가 물과 같고, 사람은 바르기가 저울과 같다’는 뜻이다. 이 문구를 화두로 소설 ‘상도’를 쓴 작가 최인호는 소설에서 이를 다음과 같이 풀이한다.
"평등하여 물과 같은 재물을 독점하려는 어리석은 재산가는 반드시 그 재물에 의해서 비극을 맞을 것이며, 저울과 같이 바르고 정직하지 못한 재산가는 언젠가는 그 재물에 의해서 파멸을 맞을 것이다."
‘재상평여수(財上平如水)’에서 ‘물과 같다(如水)’는 것은 기업을 운영하는 이치가 물처럼 끊임없이 흐르는 동적인 것임을 뜻한다. 재물이 물과 같이 흐르면 시장이 균형을 이루게 되는데 임상옥은 그것을 ‘상평(上平)’으로 나타내고 있다. 즉 재물이 물 흐르듯이 유통되고 경제가 균형을 이루면 경제에 참여한 사람 모두가 만족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 번 더 논리적인 확장을 하자면 사업을 통해 돈을 버는 원리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동적인 것에 있으며, 동적이라는 것은 시간의 관점에서 보면 장기적인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사업원리는 물과 같은 것이다.’를 풀어서 설명하면, 사업을 한다는 것은 하루 이틀 사이에 ‘한탕’으로 끝내 버릴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긴 시간에 걸쳐 쉼 없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 움직임의 특성은 균형잡히고 절제된 형태로 진행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인중직사형’에서 ‘직(直)’은 정직을 나타낸다. 어떤 사람이 정직하다는 것은 상태를 나타내는 정지된 개념이다. 그런데 ‘정직’이 시간의 흐름과 함께 움직이게 되면, 즉 동적인 개념이 되면 ‘신용’이 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과 거래를 하는데 우연히 그 사람이 정직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해보자. 그런데 거래를 1년, 2년 계속하면서 그 사람이 정직하다는 것을 몇 번 더 경험했다고 하자. 이런 경험이 더해 갈수록 그 사람에 대한 믿음이 쌓이게 된다. 곧 신용이다. 정직은 단순한 윤리이지만 신용은 가치다. 즉, 쓸모가 있다는 말이다. 쓸모가 있기 때문에 신용은 사업과 경제에 엄청난 역할을 한다.
올바르고 가치 있는 경제 행위란 무엇인가
경제학에 윤리는 없다?
우리나라 기업 현실의 문제는 우리 기업들을 지배하고 있는 경제사상과 관련이 있다. 현재 우리 기업들을 지배하고 있는 경제사상은 우리의 것이 아니다. 속된 말로 물 건너온 것인데, 경제학사에서 일부분에 불과한 이것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이 사상의 핵심은 한마디로 말하면 ‘효율’이다. 따라서 효율이 기업윤리가 된다. 효율이면 옳은 것이고, 비효율이면 그른 것이다. 효율을 달성하기 위해 경쟁을 하게 되고, 나아가 탐욕을 부추기게 된다. 효율을 추구하기 위해 극단에 서는 것을 정당화하고 강요한다.
그렇다면 소비, 생산, 교환행위의 옳고 그름을 판단해 주는 경제윤리는 있는 것일까? ‘과소비’라는 단어를 살펴보자. 주류경제학에서는 ‘과소비’라는 용어조차 받아들이지 않는다. 주류경제학에서는 인간이란 기본적으로 합리적이기 때문에 소비도 합리적으로 이루어진다고 가정한다. 개인들은 소득이나 개인의 취향 등에 따라 서로 다른 경제 조건이 주어졌을 때, 이런 조건들을 충분히 고려해서 자신의 만족과 행복을 극대화시키는 식으로 소비가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 과도하게 소비하거나 혹은 과소한 소비를 한다면 그 나름대로 그의 개인적 만족을 극대화하기 위한 합리적인 소비이기 때문에 이것을 두고 윤리적으로 옳다 그르다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과소비가 윤리적으로 비난받을 만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상품을 만드는 데 참여한 사람에게 이익이 분배되는 과정에서 경제윤리가 고려되는지 알아보자. 소위 ‘생산’과 ‘분배’에 관한 문제다. 제일 좋은 방법은 이 상품을 만드는 데 참여한 사람들에게 상품을 만드는 데 기여한 만큼 정확하게 나누어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 방법에는 측정상의 문제가 있다. 생산에 참여한 사람이 생산에 얼마만큼 기여했는지를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이 현실적으로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생산에 참여한 사람 모두에게 상품을 팔아서 들어온 돈을 똑같은 크기로 나누어주는 것이다. 적어도 ‘공평하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자신처럼 열심히 일하지 않는데 계속해서 자기와 똑같은 분배를 받는다면 얼마 가지 않아 열심히 일하지 않는 분위기가 팽해질 것이다. 이런 도덕적 해이는 잠재적 생산의 효율성을 떨어뜨려 놓을 것이다. 결국 윤리적인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레온 왈라스(Leon Walras)나 윌리엄 페티(William Petty)와 같은 경제학자들에 의해 시작된 실증경제학은 복잡하게 얽힌 경제 문제에 대한 구체적이고 명확한 해결책을 도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리고 이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인간의 행동과 경제 현실을 매우 단순화시킨다. 인간의 모든 행동은 합리적이고 자기이익을 추구하는 동기에 의해 지배된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실증경제학의 이러한 가정은 복잡한 현실을 단순화시켜 예측 가능한 해결책의 도출을 용이하게 하지만 한편으로는 경제학을 깊이가 없는 학문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를테면 인간 행동이 단순히 자기이익만을 추구하는 동기에 의해 지배되는 동물적 수준이 되기 때문에 ‘이타적 행동’이나 ‘사회적 고려에 의한 행동’ 등은 분석과 고려의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이에 따라 경제학에서 인간 행동에 대한 윤리적인 고려가 발을 붙일 수 있는 여지를 없애 버렸다.
경제학의 뿌리는 윤리학
경제학과 윤리와의 관계를 가장 오래 전에 언급한 학자는 아리스토텔레스이다. 그는 『윤리학』의 첫머리에서 인간에게는 부를 얻고 축적하려는 본성이 있으며 경제학은 이러한 부의 추구를 탐구하는 학문이라고 정의한다. 그러나 부를 추구한다는 것은 인간이 궁극적으로 추구할 정도로 가치 있는 것은 아니므로 돈을 번다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되고 다른 선한 것을 추구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경제학은 윤리나 정치 같은 학문과 연계해서 탐구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제 문제가 윤리 문제와 분리될 수 없는 또 다른 증거는 현대 경제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아담 스미스가 글라스고 대학에서 도덕철학을 가르치던 윤리학 교수였다는 사실이다. 이런 정통 때문에 영국에서 경제학은 윤리학의 분과 학문 가운데 하나로 교육되어 왔다. 영국 경제학의 전통적 계보를 잇고 있는 캠브리지 대학에서는 오늘날까지도 윤리학 졸업시험에 경제학이 포함되어 있다.
윤리적인 기업이 성공한다
신고전학파가 풀지 못한 대리인의 문제
신고전학파는 기업이론에서 인간행동의 유일한 동기가 자기이익이라고 못 박고 있다. 이 점에서 보면 기업의 목적은 할 수 있는 최대한 이익을 내는 것이다. 기업의 윤리경영도 그들의 최대한의 이득을 얻기 위한 것이라 설명한다. 기업들이 최대한 이익을 내려고 노력한다는 가정 하에 신고전학파의 경제이론이 만들어졌다. 최대한의 이득을 쫓는 기업의 존재를 부정하면 신고전학파의 경제이론 체계가 한꺼번에 와르르 무너지게 된다. 그래서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도 이 문제가 관심과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논쟁의 핵심은 기업이 주식회사의 형태로 운영되면 ‘인간은 자기 이익을 위해서 행동한다’는 사실이 오히려 기업의 ‘이익극대화’를 현실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게 한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주식회사는 주주 모두가 회사 경영에 참여할 수 없으니까 대표들을 뽑아서 그들에게 자신의 의사결정을 위임한다. 이 대표들의 모임이 이사회다. 이사회가 회사운영을 하면 좋은데 대계는 큰 기업을 운영하려면 전문적인 지식과 기업경영의 노하우를 가진 전문인에게 맡긴다. 연봉계약을 맺는 것이다. 이렇게 경영을 맡은 사장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이득을 냈다고 하자. 이익을 이렇게 많이 내도 그것은 사장의 돈이 아니다. 사장은 처음 계약한 대로 연봉만을 받는다. 그 돈은 주인인 주주들에게 돌아갈 돈이다. 그와 반대로 사장이 적당히 일해서 손해가 몇 억 정도 났다고 하자. 그래도 사장은 손해를 보지 않는다. 주주가 손해를 본다. 결국 기업의 이익이나 손해가 사장의 직접적인 이해관계에 영향을 미치진 않는다. 사장의 직접적인 이해관계는 다음의 재계약 여부를 통해 결정된다. 따라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는 사장은 자기 몸까지 상해 가면서 분골쇄신으로 회사를 위해 일할 필요가 없다. 단지 재계약을 할 수 있을 정도로만 일하고, 이익도 적당히만 내면 된다. 이런 문제를 전문용어로 ‘대리인의 문제(agent problem)’라고 한다.
경영인과 직원 사이에서도 대리인의 문제는 일어난다. 회사의 주인인 주주의 대리인으로서 회사를 경영하는 사장이 주인을 위해 열심히 일하지 않는 것처럼, 직원도 자기 자신을 위한 행동이 사장을 위한 것보다 우선한다. ‘인간이 자기이익을 위해서 행동한다.’는 사실이 ‘그들 자신이 속한 조직체가 자기이익을 실현하는 것을 가로막는 윤리문제’를 만들어 낸 것이다.
기업윤리는 기업의 가치를 높인다
실천적인 측면에서 기업경영에 ‘윤리’를 도입함으로써 윤리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 이 틈을 타 기업의 목적이 이익극대화가 아니라 사회적 책임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물론 이 주장에도 문제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기업경영의 사회적 책임이 지닌 가장 큰 문제는 ‘기업이 이익에 상관없이 사회적 책임을 추구한다면 과연 그 기업은 생존할 수 있는가’하는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물론 1년에 수천억 원씩 적자를 내며 사회적 책임을 떠맡은 공기업도 존재한다. 아무리 적자를 내도 망하지 않는다는 것이 기정사실로 인식되면 열심히 일하지 않게 되고 경영이 방만해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균형을 갖춘 윤리적인 기업들이 승승장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기업 내외에서 노동자와 소비자에게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들이 그렇다. 매년 발표되는 윤리적인 기업 순위는 소비자들에게 대단히 신뢰받는 정보다.
기업이 윤리적이어야 이익을 더 올릴 수 있다는 사실은 오늘날 기업과 사회의 구조를 들여다보면 더 분명해진다. 기술 발전으로 말미암아 생산성이 올라가고 그에 따라 실질소득이 꾸준히 오르고 있다. 그 결과 웬만한 봉급쟁이도 주식투자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생각 외로 많은 사람들이 주식시장의 흐름에 민감하다. 그런데 기업윤리가 주식가격에 ‘쓰리 쿠션’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해 보라. 윤리경영 → 이익 증가 → 주식가격 상승. 이렇게 되면 기업의 윤리성에 대해 만인의 만인에 대한 감시가 시작된다. 더군다나 인터넷이라는 기술발전은 감시비용을 현저하게 낮추어 놓았다. 이것이 기업이 윤리를 경영에 도입할 수밖에 없는 ‘선순환적 환경’이다.
장기적 관점으로 기업을 경영하라
생존과 윤리경영에 유리한 장기적 관점의 기업운영
임상옥의 기업이론을 신고전학파의 기업이론과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괄호 안은 신고전학파)
첫째, 기업목적 : 장기적인 생존 (이익의 극대화)
둘째. 기업목적의 추진 방법 : 절제와 균형 (극대화)
셋째, 기업윤리 : 신용 (효율)
사업을 장기적 관점으로 고려한다는 것은 이익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사업을 장기적 관점에서 고려할 때 우선순위를 따지자면 생존이 어떤 다른 문제보다도 먼저 고려된다는 뜻이다. 당연히 기업의 최대 과제는 생존이다.
단기적?장기적 관점에서 기업을 운영하는 방법은 서로 다르다. 마라톤과 백 미터 경주를 비교하는 것과 비슷하다. 장기적 관점에서 운영되는 기업은 마라톤선수처럼 전체 거리를 생각하면서 에너지를 절제하고 균형 있게 잘 배분해서 써야 한다. 그렇게 해야 완주할 수 있고 또한 경주에서 이길 수 있다. 게다가 장기적 이익을 내기 위해서는 극대화의 방법으로는 안 된다. 예컨대 눈앞에 큰 이익이 되는 새로운 사업 기회가 있다거나 새로운 기술이나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이익에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은 경우에도, 그리고 기존의 사업파트너와 관계를 끊는 것이 이익에 도움이 되는 경우에도 ‘당장의 이익’의 관점이 아니라 기업의 ‘장기적 이익’이나 ‘장기적 생존’의 관점에서 판단해야 한다.
장기적 생존이 기업의 일차적 목적이 되면 꼭 이익을 내지 않는 활동이나 합리적이지 않은 활동도 기업의 행동반경 안에 포함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기업이 이익을 내기 위한 활동뿐만 아니라 윤리적인 활동도 기업활동에 포함된다. 따라서 기업 현실을 더 잘 설명할 수 있다. 또 장기적 이익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이익과 양립할 수 없는 사회적 책임론의 문제점도 극복할 수 있다.
장기적 관점에서 바라본 경쟁
경쟁이 순기능으로 작용할 때는 산업의 효율을 높인 경우이다. 이 경우 경쟁력이 없는 몇몇 기업은 산업으로부터 퇴출되지만 대부분의 기업들은 사업을 계속한다. 경쟁이 역기능을 하는 경우는 경쟁을 산업에 적용한 결과, 산업에 있는 대부분의 기업이 퇴출해서 산업이 몇몇 기업, 심지어는 단 하나의 기업에 집중되는 경우를 말한다. 이른바 ‘자연독점(natural monopoly)’이다. 연구개발이나 지식을 사용하는 정도가 높은 사업일수록 산업이 자연독점이 되는 경향이 높다.
경쟁이 효율성을 가져다주는 기본 원리는 경쟁이 느슨해지려는 심성에 강압적으로 동기부여를 가하는 것이다. 이런 강압적 동기부여가 자신이 맡은 일을 게을리 하는 것을 막는다면 경쟁이 윤리적인 역할도 하는 것이다. 그런데 강압적 동기부여의 기능이 작용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경쟁을 시켜도 ‘죽는 놈’이 이미 정해진 경우다. 백 명을 백 미터 경주를 시키는데 꼴찌에서 두 번째까지 벌을 준다고 해보자. 그리고 백 명 가운데 2명이 심한 소아마비이고 나머지는 다 성한 사람이라고 해보자. 꼴찌가 정해져 있으면 나머지 98명이 꼴찌를 하지 않기 위해 열심히 뛸 필요도 없고 또 뛰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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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적 관점의 경쟁은 단기적 경쟁에 비해 긴장감이나 압박감이 떨어지기 때문에 덜 절실하고 따라서 상대적 효율은 떨어진다. 하지만 긴장감이나 압박감이 덜하다는 사실은 경쟁으로부터 생기는 불안감이 덜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심리적 안정이나 행복감은 더 증가할 수 있다. 이것은 창의성을 발휘하기에 알맞은 환경이다. 창의성이 중요시되는 지식기반경제에서는 장기적 관점의 경쟁이 상대적으로 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