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는 한때 스승이었던 일본을 반도체·디스플레이·디지털 가전 부분에서 압도하고 있다.이 책은 삼성의 성공을 가능케 한 글로벌 인재 유치와 그들의 활약, 신명을 다 바쳐 뛰게 하는 인센티브 제도 등 "글로벌 톱10" 기업삼성전자의 성공의 비결을 밝히고 있다.
첫 파트 "한국식 글로벌 경영"에서는 삼성전자 그 자체의 분야별 경영비결이 분석되어 있다.둘째 파트인 "2010년 인텔 추월한다"에서는 반도체 최강기업 인텔과의 경쟁력을 비교한다. 마지막 파트 "삼성전자를 이끄는 사람들"에서는삼성전자를 이끌고 있는 핵심 13인방에 대한 해부가 담겨 있다.
■ 저자 조현재·전호림·임상균
조현재는매일경제 정치부, 산업부에서 현장기자 생활을 했으며, 일본 구마모토학원대학 연구소에서 객원연구원으로 활동했다. 일본특파원, 청와대 출입기자를거쳤고, 김대중-김정일 평양정상회담을 동행취재했다. 이어 국제부장, 정치부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산업부장을 맡고 있다. 2005년 8월 세계최고의 기업인재사관학교로 불리는 GE의 크로톤빌연수원에 연수를 다녀왔다. 저서로는『DJ시대 파워엘리트』 『차이나쇼크』 『노무현 시대 파워엘리트』『IMF 한국을 이긴다』 등이 있다.
전호림은 매일경제에 입사해 국제부, 산업부,사회부를 거쳐 도쿄특파원을 역임했다. 이후 기획실을 거쳐 현재 산업부에 소속돼 있다. 산업부에서는 주로 자동차, 정유, 화학, 중공업, 전자,반도체, 무역 분야를 취재했다. 번역서로『주주대표소송』 등이 있다.
임상균은 매일경제에 입사해증권부를 거쳐 산업부에서 반도체, 전자, 자동차, 철강, 조선, IT 등 한국경제 중추 산업의 현장을 취재했다. 현재는 경제부에 소속되어 있으며재정경제부, 산업자원부, 통상교섭본부 등을 담당하고 있다. 저서로는『선진증시 이래서 강하다』 『증권투자 알고 합시다』 『코스닥 투자 알고합시다』 『반도체이야기』등이 있다.
■ 차례
PART 1.한국식 글로벌 경영
재계 4위 그룹 "삼성전자"/경쟁력의 원천은 내부경쟁/월드베스트는 R&D부터/황금의 삼각편대의사결정 구조/마케팅 핵심은 先見-先手-先制-先占/"집중포화식" 투자로 경쟁사 제압/“삼성의 혼을 담아라”/계열사도 안 봐주는 클린구매/2%부족한 생활가전사업/16명의 올라운드 플레이어들/전용기로 모시는 S급 인재/소니와의 글로벌 강자연합/쌓아둔 돈 7조 원 "삼성은행?"/적대적M&A 가능할까
PART 2. 2010년 인텔 추월한다
반도체 세계 1위를 향한 진군/플랫폼 vs 솔루션 전략/글로벌 분산 vs 클러스터 생산/경쟁형 R&D vs 네트워크R&D/이코노미 타는 회장 vs 전용기 타는 임원
PART 3. 삼성전자를 이끄는 사람들
위기경영 전도사_윤종용 부회장/살아있는 반도체 신화_이윤우 부회장/실세 살림꾼_최도석 경영지원총괄 사장/반도체유목민_황창규 반도체총괄 사장/애니콜 신화_이기태 정보통신총괄 사장/디스플레이의 거인_이상완 LCD총괄 사장/디지털 르네상스_최지성디지털미디어총괄 사장/마이다스의 손_이현봉 생활가전총괄 사장/직접 기른 핵심인재_임형규 삼성종합기술원 원장/한국 반도체의 미래_권오현시스템LSI 사장/반도체 생산 달인_김재욱 반도체생산 담당 사장/전자수출 역군_오동진 북미총괄 사장/걸어다니는 유럽_양해경 구주전략본부사장
디지털 정복자 삼성전자
PART1. 한국식 글로벌 경영
재계 4위 그룹 ‘삼성전자’
‘국내기업 사상 첫 100억 달러 클럽 가입.’ 2005년 초 삼성전자가 얻은 2004년 경영성적표다. 삼성전자는 국내기업으로는 사상 처음으로 순이익 ‘100억 달러 클럽’에 가입한 회사다. 국내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봐도 2003년에 순이익 100억 달러 이상을 올린 기업은 MCI, 엑손모빌, 시티그룹 등 9개 사에 불과했다. 이익 규모로 따져 삼성전자는 명실상부한 ‘글로벌 톱 10’ 기업이 된 것이다. 삼성전자의 2004년 매출액 57조 6,324억 원은 재계 4위인 SK 56조 1,370억 원을 추월한 규모다. 삼성전자를 하나의 그룹으로 본다면 국내 서열 4위에 해당하는 셈이다.
실제 삼성그룹에서 차지하는 삼성전자 비중은 절대적이다. 총 63개 계열사가 있지만 삼성그룹의 세계적인 위상과 힘은 삼성전자 혼자 만드는 것과 다름없다. 2004년 그룹 매출액이 139조 원이었는데 삼성전자 혼자 차지한 규모가 57조 6,324억 원이었다. 순이익은 그룹 전체규모 13조 2,740억 원 중 삼성전자가 10조 7,870억 원으로 81%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 ‘대표그룹’ 삼성전자 위상은 한국 경제의 각종 지표에 착시현상을 유발할 정도다. 2004년 전체 삼성전자의 수출규모는 47조 6,000억 원으로 우리나라 총 수출액의 16.3%를 혼자 담당했다. 시가총액 또한 삼성전자가 77조 8,000억 원으로 전체 392조 9,000억 원의 19.8%다. 한국의 미래를 결정하는 R&D의 절반 가까이는 삼성전자의 힘으로 이뤄질 정도다. 2003년 삼성전자는 총 3조 5,294억 원을 R&D에 투입했는데 전체 상장사 R&D 투자규모인 8조 7,995억 원의 40%를 점했다. 이는 삼성전자의 호황과 불황에 따라 한국 경제가 왔다갔다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들이다.
경쟁력의 원천은 내부경쟁
삼성전자를 먹여살리는 5개 사업총괄 사장들은 비록 사업품목은 다르지만 서로 경쟁하고 협력하면서 전체적으로 경영의 플러스 요인을 창출해 나간다. 반도체총괄(황창규 사장), 정보통신총괄(이기태 사장), LCD총괄(이상완 사장), 디지털미디어총괄(최지성 사장), 생활가전총괄(이해봉 사장), 계열사 사장인 이들 총괄사장은 휘하의 부장(部將)격인 GBM(글로벌 비즈니스 매니지먼트, 주로 부사장급)과 함께 사업의 모든 것을 책임진다. 물품 구매에서 생산ㆍ판매ㆍ유통ㆍ마케팅은 물론 사람을 뽑고 해외에 지사를 설치하는 것까지 전과정이 총괄과 GBM의 조화에 의해 이뤄진다.
또한 같은 회사 안에 있고 제품도 다르지만 서로 경쟁한다. LCD 담당 이상완 사장이 세계에서 가장 큰 57인치 LCD TV를 개발했다고 2004년 초에 발표하자 곧이어 정보통신총괄 이기태 사장이 300만 화소 디카폰을 만들었다고 공개했다. 이에 뒤질세라 반도체총괄 황창규 사장은 세계 최대 용량의 8기가비트 플래시메모리를 세계 최초로 내놨다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경쟁하는 품목은 없지만 더 좋은 화질, 더 나은 품질, 더 빠른 기능을 두고 다투는 것이다.
매달 매분기 전개되는 이런 경쟁은 연말에 가서 ‘성적표’를 받음으로써 일단락된다. 누가 얼마의 영업이익을 내고 전체에 대한 순익 기여도는 얼마인가가 드러나는 것이다. 이 성적표는 연말 성과급으로 이어진다. 성과급은 A, B, C 세 등급에 의해 결정된다. A가 최고라면 C는 한 푼도 없다. PI(생산성 장려금)는 ‘A가 3개인 ’트리플 A를 받으면 본봉의 150%를 준다. 1월과 7월 두 번이니까 연 300%다. 적자를 내더라도 당초 제시한 경영목표만 달성하면 받는다. PS는 연봉의 50%가 상한선인데 순익을 내야만 받는다. 연봉 6,000만 원 받는 부장이 PI 300%에다 연말에 PS 50%까지 받으면 총 9,600만 원을 수령한다. 전혀 없는 쪽과는 3,600만 원 차이가 난다.
이런 인센티브는 총괄사장 이하 예하부대를 실적에 몰두하게 하고 더 나은 목표를 향해 치닫게 한다. 총괄사장들은 PIㆍPS를 못받는 게 아까운 것보다 그런 상황에 처한 ‘패장의 굴욕’을 더 못견뎌한다. 따라서 연말에 총괄별 경영목표가 정해지면 이를 악문 레이스가 펼쳐진다. 그렇지만 총괄사장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경쟁을 벌이면서도 서로 협력하고 지원한다. 품귀 때는 아무래도 외부 업체보다 팔이 안으로 굽고, 신제품 개발 때는 설계단계부터 핵심부품 공동개발을 위해 머리를 맞댄다.
황금의 삼각편대 의사결정 구조
한국에서는 물론 전세계를 통틀어 삼성전자만큼 잘 나가는 회사는 많지 않다. 전자뿐만 아니다. ‘삼성’이라는 이름을 단 모든 계열사가 실적이 좋고 성장률이 높다. 그 많은 계열사를 어떻게 모두 ‘사자 새끼’로 키워냈을까. 거기에는 동일한 잣대로 ‘우량기업’을 찍어내는 빵틀 같은 툴(Tool)이 있다. 삼성 스스로 ‘황금편대’라고 부르는 트라이앵글 의사결정구조다. 이건희 그룹 회장과 그룹 구조조정본부 그리고 계열사가 의사결정의 3각 축을 이루고 회사의 사활이 걸린 중요 사안에 대해 균형과 견제로 운영한다.
1998년이 저물어갈 무렵, 삼성전자 반도체 총괄 황창규 사장은 매주 월요일마다 삼성본관에서 열리는 경영위원회에서 몇 주째 “낸드플래시 투자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었다. 당시 세계 플래시메모리 시장은 인텔의 ‘노어’가 주도하고 있었고 오늘날 삼성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만든 ‘낸드’는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다. 따라서 전자 수뇌부는 선뜻 허가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구조본도 시장방향을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이 문제는 결국 구조본에서도 결론을 내지 못하고 이건희 회장 앞으로 끌려나왔다. 그러던 차에 일본 도시바가 삼성에 플래시메모리 합작사업안을 제시했다. 마음 속으로 독자개발 방안을 찾던 이건희 회장은 황사장을 불렀고 그에게서 “독자 사업이 가능하다”는 말을 들었다. 이후 도시바의 제안은 당연히 거절됐다. 이렇게 해서 황금방석을 예약한 삼성의 낸드플래시는 아슬아슬하게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삼성이 자동차 사업을 접을 때도 이 룰이 적용됐다. 이학수 구조본 부회장은 당시 ‘자동차 사업 정리방안’을 들고 이회장을 찾았다. 사재 2조여 원을 내놓고 사업은 접는다는 것이 골자였다. 이것저것 물어본 이회장은 “그렇게 하시오”로 결재했다. 이 ‘사건’은 구조본이 ‘하늘 같은’ 이회장을 견제한 사례다. 이회장은 자동차사업에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건 것으로 세상에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회장도 신이 아닌 이상 실수를 할 수 있고, 실수에 대해 이회장 스스로 잘못된 결정을 수정한 것이다.
삼성이 이런 의사결정 구조를 가지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흥청망청하던 1995년 ‘졸부’시대와 1997년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혹독한 시행착오를 겪은 다음의 일이었다. 삼성전자는 지난 1995년 2조 5,000억 원의 순익을 낸 적이 있다. 한꺼번에 주체하지 못할 정도의 돈이 들어오자 비용지출이 무절제해졌다. 급기야 외환위기를 맞았고 1997년 순익은 급전직하해 1,200억 원에 그쳤다. 1997년 총괄대표 사장으로 부임한 윤종용 부회장은 전체 인력의 28%인 2만 23,000명을 잘랐다. 동시에 연 1조5,000억 원씩 몇 년 동안 비용을 삭감해 나갔다. 120여 개에 달하는 사업을 청수하고 분사 등을 통해 한계사력과 비주력사업을 정리했다.
소니와의 글로벌 강자연합
불과 10년 전만 해도 삼성전자는 소니의 하청업체였다. 삼성전자 임원이 일본 본사를 찾아가도 소니의 실무 과장이나 대리를 만나기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소니는 삼성전자로부터 LCD패널을 공급받기 위해 돈을 직접 대면서 합작투자를 하게 됐다. 2004년 6월 충남 아산에 있는 삼성전자 LCD 7세대 공장, 소니와 삼성전자가 합작으로 세운 LCD생산업체인 ‘S-LCD 출범식이 열렸다. LCD합작으로 삼성전자와 소니의 ‘강자연합’은 사업제휴의 선을 넘어 지분을 공유하는 ‘혈맹’으로 발전했다. LCD 합작사 출범은 ‘세계 디지털TV 시장의 주도권 확보’와 ‘삼성-소니 간 전방위 협력’이라는 2가지 의미를 갖는다. 삼성은 LCD 최대 생산기업이며 소니는 디지털TV 최대 판매업체다. 양사는 이번 결합으로 발전 가능성이 무한한 디지털TV 시장의 표준과 시장 주도권을 확보하게 됐다.
2005년 초 삼성전자와 소니는 또 한번 세계가 깜짝 놀랄만한 뉴스를 만들어냈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특허를 상대방에게 공개해 공동으로 사용한다는 계약을 맺은 것이다. 공유 대상 특허는 소니 1만3,000여 개, 삼성전자 1만1,000여 개 등 총 2만 4,000여 개에 달한다. 계약기간은 2008년까지이지만 특허의 잔존기간이 남아 있는 한 갱신을 통해 포괄적 크로스 라이선스 관계가 유지될 예정이다. 이처럼 양사가 특허공유 계약을 맺게된 것은 세계 전자산업의 디지털 컨버전스화와 네트워크화가 가속되고 있는 추세에 대응해 디지털 기술을 공유함으로써 불필요한 소모를 최소화하고 세계시장의 표준을 주도하자는 의지로 볼 수 있다.
1990년대 중반만 도 소니의 하청업체였던 삼성전자. 하지만 불과 10년도 안돼 삼성전자는 경영실적이나 브랜드가치 등에서 소니를 추월했다. 소니의 추락에 대한 배경은 여러 갈래로 분석되고 있다. 가전 전문회사에서 영화, 음악 등 소프트웨어로 힘을 분산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핵심사업인 가전을 등한시한 결과는 혹독했다. 무엇보다 세계가전시장이 디지털 가전으로 급격히 전환되는 새로운 트렌드를 따라잡지 못한 것이 소니로서는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이다. 아무리 좋은 제품을 만들어봐야 핵심재료를 활용해 가격을 선도하지 못하면 시장을 장악하기 어려운 곳이 디지털 가전시장이다. 소니가 부랴부랴 삼성을 찾아와 손을 내밀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PART 2. 2010년 인텔 추월한다
반도체 세계 1위를 향한 진군
“2010년에는 세계 정상에 오르겠다.” 2005년 9월 29일, 삼성전자가 세계최대 규모의 반도체단지인 화성 2단지의 첫 삽을 뜬 기공식이 경기도 화성 현장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서 황창규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사장은 오랫동안 마음 속 깊은 곳에 담아두었던 야망을 대외적으로 천명했다. 사실 그동안 삼성전자는 ‘반도체 세계 1위’라는 목표를 공개적으로 언급하길 꺼려왔다. 인텔은 삼성전자의 큰 고객이자 굳건한 제휴관계에 있는 기업이다. 동업자를 경쟁자로 바꿔놓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세계 반도체시장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비메모리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인텔을 넘보는 것 자체도 무리였다. 인텔은 1992년부터 2004년까지 13년 연속 세계 1위를 고수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2002년 이후 2위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2004년 매출액은 163억 달러로 인텔(307억 달러)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2배나 매출이 많은 인텔을 앞으로 5년 안에 추월하겠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기흥과 화성을 연결하는 ‘한국판 실리콘 밸리’의 밑그림을 그리면서 인텔 추월의 자신감을 가진 것으로 볼 수 있다. 화성 2단지가 건설되면 삼성전자는 기흥과 화성을 잇는 세계최대의 반도체 클러스터를 확보하게 된다. 생산량에서도 세계 최대 규모다.
목표를 달성하려면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은 매년 40% 이상 고성장을 해야한다.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의 매출 성장률이 2003년 22%, 2004년에는 54%였으니 그리 무모한 목표도 아니다. 인텔의 매출 성장률은 12~13%대에 그치고 있어 성장속도에서는 삼성전자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현재의 성장속도만 유지돼도 5년 내 두 회사의 매출은 비슷한 수준이 된다. 하지만 과연 삼성전자가 콩알만한 반도체 하나로 세계 반도체시장을 물론 세계 IT 시장까지 주물러온 인텔의 경쟁력까지도 추월할 수 있을까. 삼성전자는 ‘인텔 추월’의 꿈을 키우면서 추월 대상인 인텔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벤치마킹을 병행해왔다. 경영, 생산, R&D, 구매, 인력관리, 기업문화, 마케팅 등 전 분야에서 인텔의 강점과 경쟁력을 샅샅이 파악해 배울 것은 배우고, 극복할 것은 극복하자는 전략이다.
플랫폼 vs 솔루션 전략
인텔은 비메모리반도체인 CPU를 장악하면서 30년 가까이 세계 1등의 자리를 지켜왔다. 삼성전자는 메모리반도체의 D램에서 13년간 아성을 구축하고 있다. 분야가 엄연히 다르지만 세계 1, 2위의 반도체기업 CEO들이 제시한 지향점은 ‘디지털 컨버전스’로 모아진다. 하나의 기기나 서비스에 통신, 방송, 전자 등 모든 정보통신기술이 융합되는 새로운 IT산업의 변화를 맞아 인텔과 삼성전자도 중요한 변혁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인텔은 이를 위해 ‘플랫폼(Platform) 전략을 마련했다. 과거에는 CPU, 칩셋, 플래시메모리 등 단품 위주의 개발-생산-판매가 이루어졌다. 앞으로는 이를 한데 묶어 모든 디지털기기를 움직일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각 제품을 개별적으로 판매하는 것에 비해 부가가치가 높은 것은 물론 PC와 통신, 정보가전 등 모든 디지털 기기에 적용할 수 있다. 플랫폼 전략은 2003년 상반기 모바일 기술을 강화한 노트북 전용 플랫폼인 ‘센트리노’를 출시하면서 처음 시도됐다. 센트리노는 한국시장만 해도 2년 만에 노트북의 80% 이상을 차지하며 대성공을 거두고 있다. 자신감을 얻은 인텔은 2005년 초 센트리노의 후속작인 ‘소노마’를 내놨다.
삼성전자는 디지털 컨버전스라는 변혁에 대응하는 것은 물론 메모리시장의 한계를 극복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D램, 플래시메모리 등의 메모리시장은 전체 반도체시장의 20%에 불과하다. 이 시장을 모두 차지해봐야 세계 반도체 1위 등극을 기대하긴 무리다. 이를 위해 디지털 컨버전스를 대비해 확보한 다양한 제품과 기술을 활용하는 ‘솔루션’ 전략을 마련했다. 삼성전자는 D램, 플래시메모리, 모바일프로세서, DDI(디스플레이어 구동칩), 이미지센서 등 5개 분야에서 수천 종의 반도체를 생산하고 있다. 이를 활용해 어떠한 요구에도 대응할 수 있는 솔루션을 제공하는 종합 반도체회사로 도약한다는 게 중장기 계획이다.
글로벌 분산 vs 클러스터 생산
2005년 2월, 인텔과 삼성전자의 경쟁력을 비교, 취재하기 위해 실리콘밸리를 찾아갔다. 한국의 삼성전자 기흥 사업장을 생각하며 거대한 공장을 찾았지만 아담한 건물들만 띄엄띄엄 눈에 들어왔다. 파란색 바탕에 흰 글씨로 쓰여진 “intel”이란 정문 표지판이 없었더라면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공장은 어디에 있냐”고 묻자 안내를 맞은 아그네스 콴 홍보부장은 “세계 곳곳에(Worldwide)”라고 짧게 대답한다.
샌프란시스코 지역은 20세기 들어 7도 이상의 대지진이 2차례나 빚어질 정도의 지진 지대다. 자그마한 진동에도 불량이 날 수밖에 없는 초미세 가공산업인 반도체에게는 매우 취약한 지역이다. 반도체 산업은 기술과 설비 집약적 산업으로 생산설비, R&D, 마케팅 등이 한 곳에 집중될수록 시너지가 높다. 하워드 하이 전략홍보 이사는 “하지만 글로벌 분산을 통해 세계적으로 흩어져 있는 인재를 확보하고 활용할 수 있는 긍정적 측면도 많다”고 강조했다. 특히 75개에 이르는 R&D 기지가 이 같은 인재확보의 핵심 창구라는 설명이다. 일례로 우리나라 분당에 건설하기로 결정한 인텔 R&D센터는 한국이 세계적으로 앞서가고 있는 무선통신과 디지털홈 분야에 특화돼 있다.
반면 삼성전자 기흥사업장에는 반도체의 생산설비와 연구소, 업무시설들이 모두 모여 있다. 이른바 ‘클러스터’ 전략이다. 관세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미국 텍사스 오스틴 공장, 중국시장 확대를 위한 쑤저우 조립공장 등이 예외일 뿐이다. 황창규 삼성전자 사장은 수시로 생산라인이나 연구소에서 스탠딩 미팅을 갖는다. 굳이 사장실에 앉아 있을 이유가 없다. 국내에 내로라 하는 반도체 전문가들을 소집하는데 10~20분이면 족하다. 이러한 빠른 의사결정은 경쟁력 강화로 이어진다. 제품 개발에서도 삼성전자는 클러스터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메모리와 시스템 LSI 등 서로 다른 분야의 연구원들의 협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최근 2~3년간 급성장한 메모리카드 사업이 대표적이다. 기흥 반도체연구소에서 메모리부문을, 수원 Soc 연구소에서 컨트롤러 부문을 맡아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냈다.
이코노미 타는 회장 vs 전용기 타는 임원
인텔의 CEO들은 검소하며 권위와는 거리가 멀다는 얘기는 이미 알려져 있다. 그로브 회장이 주차공간을 찾기 위해 출근시간에 직접 차를 몰고 몇 십 분씩 주차장을 돈다는 일화는 유명하게 전해온다. 실제 사무공간 마저 일반 직원들과 똑같은 크기와 집기를 사용할 정도로 인텔 고위층의 평등의식은 남달랐다. 인텔의 CEO는 해외출장 때 한 국가에 하루만 머무는 것이 원칙이다. 2004년 배럿 전 CEO는 이를 지키기 위해 하루동안 3개국을 돈 일도 있었다고 한다.
회사에서 제공하는 비행기 티켓은 이코노미 클래스다. 더 높은 등급을 원하면 자기 돈을 내고 업그레이드를 해야 한다. 비서진의 호위를 받으며 출장을 다니는 우리 기업들과도 거리가 멀다. 하워드 하이 전략홍보 이사는 “직원들이 최고이며 그들을 존중한다는 의지는 말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CEO 스스로 실천해야 한다는 게 인텔의 오랜 전통”이라고 소개했다. 그로브 회장은 자신의 저서에서 ‘생존을 위해서’라고 평등주의의 배경을 설명했다. 회사의 미래를 좌우할 수 있는 결정적인 아이디어나 의견은 지위가 높다고 나오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삼성의 반도체는 시작부터 한국 특유의 ‘정신무장’과 ‘도전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선발기업들과 격차를 줄이기 위해 일사불란한 지휘체계와 권위주의, 불도저와 같은 추진력 등이 필요했다. 삼성의 반도체사업을 현재와 같이 만드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황창규 사장이나 진대제 정통부 장관은 미국에서 미래가 보장된 직장에 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안정된 직장과 높은 보수를 포기하고 성공가능성도 희박한 삼성행을 택했다. 그들이 삼성으로 옮겨온 이유는 ‘일본을 이겨보기 위해서’였다. 개인의 부와 명예만을 좇았다면 불가능한 선택이었다.
삼성 관계자는 “CEO가 직접 나서는 수출상담을 2시간 정도 한다면 수십 억 원어치의 반도체를 더 팔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건희 회장은 “쓸데없는 곳에서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고객을 한 명이라도 더 만나라”며 CEO들에게 전용기를 내준다. ‘스피드 경영’이다. 해외의 핵심인재를 영입할 때도 전용기가 뜬다. 이 목적으로 출장을 떠나는 임원은 아예 갈 때부터 전용기로 떠난다. ‘10년 후를 먹여 살릴 인재’를 확보하는 데는 모든 자원을 투입하는 곳이 삼성이다.
PART3. 삼성전자를 이끄는 사람들
위기경영 전도사_윤종용 부회장
삼성전자가 지금과 같은 초일류기업으로 성장한 데는 윤부회장의 ‘위기의식’을 중심으로 한 경영철학이 든든한 밑바탕이 된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주변에서는 삼성전자를 두고 반도체, 휴대폰, LCD를 삼각축으로 알찬 사업구조를 구축했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윤부회장은 초일류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고부가 사업을 중심으로 한 미래형 사업포트폴리오 재편이 불가피하다고 지론을 펼친다. 이를 위해 중장기적으로 제품, 기술, 마케팅, 글로벌 운영, 프로세스, 조직 문화 등 6대 분야에 대한 지속적인 혁신을 추진하고 있다.
그는 직원들에게 “초일류 기업 도약을 위해 기존과는 다른 사고방식이 요구되며 무엇보다 초일류 인자의 체질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가 제시하는 초일류 인자란 꿈과 비전, 목표의 공유, 통찰력과 분별력, 위기감,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자세, 스피드와 속도, 신뢰와 믿음 등이다. 이 같은 초일류 인자를 삼성전자의 기업문화는 물론 임직원 개인의 문화로 정착시켜 초일류 기업을 향한 원동력으로 삼자는 것이다.
매일경제신문에 연재한 ‘삼성전자 그룹을 해부한다’ 시리즈를 마치며 삼성전자 본사 집무실에서 윤종용 부회장을 만났다. 외국의 거센 도전과 국내의 만만찮은 정치ㆍ사회적 토양, 게다가 사상 최고 경영성과에 따른 조직 해이와 자만…. 이런 내외부의 적과 싸우는 윤부회장은 경영 전반에 대해 기탄 없이 견해를 밝혔다.
? 반도체ㆍLCD 가격 하락과 같은 세계적 불황 여파를 피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시장에서 누가 더 경쟁우위에 서느냐가 중요하다. 최근의 실적은 경영환경에 영향을 받은 것이지 구조적인 문제는 아니다. 경영은 잘 될 때일수록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 2004년 사상 최대의 이익을 냈지만 위기의식은 과거 어느 때보다 높았다.”
? 삼성전자는 세계적인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거대기업 CEO로서 경영의 주안점을 어디에 두고있나?
“기술이야말로 국가와 기업이 성장하는 데 필요한 원동력이다. 따라서 우수한 사람을 뽑아서 양성하는 것이 경영의 가장 중요한 과제다. 또 한 가지를 든다면 ‘스피드 경영’이다. 경영환경이 워낙 빠르게 변하기 때문이다. 결국 삼성전자 경쟁력을 뒷받침하는 요체는 기술, 사람, 스피드 세 가지다.”
? 지금은 반도체ㆍLCDㆍ휴대폰이 먹여살리고 있지만 차세대 수종사업으로 어떤 사업을 준비하고 있는가?
“지금 하고 있는 사업의 경쟁력을 높여서 미래에 대비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미래에도 기술이 기업을 바꾸고, 산업을 바꿀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미래를 예측하는 것보다 미래를 창조하는 것을 중시하고 그런 능력을 갖추도록 노력할 것이다. 가까운 미래에 디지털 컨버전스 시대가 올 것으로 보고 있다. 상호 네트워크화하고 컨버전스화해 다가오는 유비쿼터스에 대비한다는 것이 우리 자세다.”
반도체 유목민_황창규 반도체총괄 사장
“우리는 유목민(nomad)이다. 잠시도 안주해서는 안 된다. 끊임없이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야 할 수 있다.” 황창규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사장이 직원들한테 수시로 강조하는 경영철학인 반도체 유목민론의 한 대목이다. 2000년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장을 맡은이래 끊임없이 노력해온 새로운 영역 개척은 2004년 이후 커다란 빛을 발하게 됐다. 비록 삼성전자 반도체총괄이 단일 기업은 아니지만 어느 기업 못지 않은 경영실적을 내고 잇다. 황창규 사장이 거둔 이 같은 성과는 단숨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2001년 8월 세계최초로 1기가 낸드플래시를 내놓은 것을 시작으로 2002년 2기가, 2003년 4기가 등으로 매년 집적도를 2배씩 올렸다. 이른바 ‘황의 법칙’으로 불리는 ‘메모리 신성장론’을 그대로 실천에 옮긴 것이다. 2004년 8월에는 세계 최초로 60나노 8기가 낸드플래시 개발에 성공하며 다시 한번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 결과 플래시메모리는 휴대폰, MP3, 디지털카메라, 디지털TV 등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디지털기기의 핵심 기억장치로 자리를 잡았다.
황사장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또 다른 신시장을 향한 진군을 시작했다. 비메모리사업이다. 자신의 지론인 유목민 정신을 직접 실천하는 것이다. 메모리에만 안주했다가는 세계 최고의 반도체기업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머지 않아 도태될 수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CIS(CMOS 이미지센서), 옵티컬 플레이어용 SoC, 스마트카드칩, 모바일CPU, DDI(디스플레이구동칩) 등 5개의 핵심 비메모리 제품에서 2007년까지 세계 1위로 오른다는 목표도 세웠다.
? 모바일 컨버전스 시대를 맞아 IT시장의 경쟁판도도 크게 바뀔 가능성이 높은데?
“누가 먼저 소비자에게 어필하는 제품을 내놓을 수 있느냐에 따라 급격하게 판도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결국 누가 차별화된 제품으로 시장을 만들어내느냐가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세계 IT시장의 판도변화는 삼성전자에게 유리하다. 삼성전자는 모바일과 관련한 토털 솔루션을 보유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모바일 혁명과 관련해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역량을 갖췄다.”
? ‘황의 법칙’은 지속될 수 있나?
“메모리 신성장 이론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이제 정보전달의 기본단위가 처음에는 문자에서 화상으로, 이제는 동영상으로 옮겨가고 있다. 이 같은 변화의 중심에 플래시메모리가 있다. 플래시메모리가 시장을 지속적으로 이끌어갈 것이다.”
애니콜 신화_이기태 정보통신총괄 사장
삼성전자가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는 데는 브랜드 경영이 큰 힘이 됐다. 삼성이란 브랜드 가치를 높임으로써 세계적인 명성을 확보한 전략이다. 그 전면에 이기태 정보통신총괄 사장이 서있다. 이사장은 국내 산업에서 브랜드 경영의 새로운 지평을 연 대표적인 창조형 경영자다. 그는 1994년 무선부문 이사를 맞으며 애니콜 신화를 주도하게 된다. 그 해 7월 결정된 ‘애니콜’이란 브랜드는 2003년 30억 달러 가치로 성장했다. 이사장이 애니콜 신화를 이끌어낸 전략은 ‘명품 전략’이다. 휴대폰을 루이뷔통, 페라가모와 같은 반열의 명품으로 대접받겠다는 목표를 세운 것이다. 그는 이를 위해 ‘월드퍼스트, 월드베스트(World First, World Best) 전략을 가동했다. 이처럼 명품을 만들어내는 이사장이 휴대폰 출시여부를 결정하는 비결은 ’손맛‘이라고 한다. 새로운 제품이 만들어지면 이사장은 일단 손위에 놓고 느껴본 뒤 출시를 결정한다. “제품이 어떤 느낌을 주는가가 중요한데 휴대전화를 만지고 쥐어 보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이유에서다.
이처럼 섬세하게 휴대폰을 개발하고 키워가고 잇지만 사실 그의 성격은 투박하고 거침없다. 세계 최고의 휴대폰을 만들기 위해 여념이 없던 1995년 3월, 삼성전자의 품질경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화제의 ‘화형식’이 구미사업장에서 열렸다. 품질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은 이사장이 500억 원어치가 넘는 휴대폰 15만 대를 잿더미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지금의 애니콜 신화는 불량품을 과감히 내던진 이사장의 결단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는 게 내부의 평가다.
? 4세대(4G)시장은 언제 열릴 것으로 보는가?
“국내외에서 표준화작업을 꾸준히 진행중이며 내년에 어느 정도의 윤곽이 제시될 것으로 본다. 서비스는 2012년쯤에 시작될 것으로 예상한다.”
? 1위 업체인 노키아를 언제쯤 극복할 수 있는가?
“중요한 것은 몇 대를 팔았느냐가 아니다. 단기간에 양적인 성장을 추구한다면 세계 시장을 뒤집을 수 있다. 저가공세로 나간다면 단기간에 시장판도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양적인 성장보다는 질적인 측면이 중요하다.”
? 이제 웬만한 기기는 휴대폰으로 컨버전스가 이뤄지고 있다. 디지털컨버전스가 이제 한계에 온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있는데?
“디지털컨버전스는 개인이나 소집단 아이디어에 의해 얼마든지 발전한다. 무궁무진한 기회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속도로 표현한다면 마하의 세계라고 볼 수 있다. 이 같은 미래는 한국으로서는 IT강국의 확실한 면모를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