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당신은 트럼프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온갖 기행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진짜 트럼프’를 말한다
《트럼프의 진실》은 철저한 조사 그리고 독점 인터뷰를 통해 기업인으로서의 삶부터 파란만장했던 대선 과정에 이르기까지 트럼프에 관한 모든 것을 이야기한다. 트럼프의 인생 항로에서 맞부딪힌 성공과 실패, 전략과 비리 그리고 오늘의 ‘트럼프 대통령’을 있게 한 원동력에 대해 상세히 서술한다. 또 트럼프가 언론의 힘을 이용해 어떻게 인지도를 높였는지, 그렇게 얻은 대중성을 막강한 힘으로 변화시킨 방법은 무엇인지 분석하고 있다.
■ 저자 마이클 단토니오
저자 마이클 단토니오(MICHAEL D’ANTONIO)는 〈뉴스데이〉 기자로 근무하며 퓰리처상을 수상했으며, 다양한 분야에서 12권 이상의 책을 집필하였다. 특히 〈비즈니스위크〉 ‘올해의 책’에 선정된 바 있는 초콜릿 황제 밀튼 허시의 전기 《Hershey》와, 세계적인 차 회사 립톤 설립자 토머스 립턴의 평전 《A Full Cup》 등을 펴내 작가로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뉴욕타임즈, 에스콰이어 등의 잡지에도 글을 기고했다. KBS에서 트럼프 관련 인터뷰도 진행한 바 있다.
■ 차례
우리는 트럼프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트럼프를 빚어낸 사람들
너는 왕이야, 알겠니?
후계자 수업을 받다
맨해튼 정복, 그 첫 삽을 뜨다
가치를 알아보는 눈, 가치를 만들어내는 손
트럼프 타워, 왕국의 시작
슈퍼스타 트럼프
너무나 잘 속는 사람들의 나라
운이 다하다
구경거리 트럼프
트럼프, 부활의 서막
정치에 뛰어드는 ‘척’하다
트럼프는 TV 쇼를 어떻게 이용했나
‘뻔뻔함’이라는 전략
그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방법
마무리하며 | 도널드 트럼프 이해하기
트럼프의 진실
너는 왕이야, 알겠니?
1954년 여름에 프레드는 6세부터 17세까지의 다섯 자녀(아들 셋, 딸 둘)를 두고 있었고 아내인 메리 앤 매클라우드 트럼프(Mary Anne MacLeod Trump)가 이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다. 도널드 트럼프의 모친인 메리 앤은 키가 크고 날씬하며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미인이었으며 말할 때는 스코틀랜드 사투리가 조금 섞여 나왔다.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그런 것 같지 않았어도 사실 알고 보면 그녀의 남편만큼이나 거칠고 고집도 세며 야심도 큰 여자였다. 메리 앤은 또 영국 왕실로 대표되는 상류층의 호화로움도 매우 좋아했다. 도널드 트럼프는 모친이 1953년에 있었던 엘리자베스 2세의 대관식을 넋을 놓고 지켜보던 모습이 생각난다고 말했다. 어린 트럼프의 눈에는 대관식 장면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할 정도로 열중했던 모친의 그 모습이 꽤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프레드는 열심히 노력하는 것으로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메우려 했다. 단 하루라도 일을 하지 않은 날이 없었고 집에서도 거의 매일 밤 전화기를 붙들고 있었다. 아이들도 아버지와 놀고 싶으면 주말에 아버지를 따라 사무실이나 공사 현장을 쫓아다니는 것이 고작이었다. 프레드는 아이들이 인생에서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고 또 꼭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이들도 그렇게 생각하기를 바랐다. 가정교육도 엄격했다. 상스러운 말은 쓰지 못하게 했고 간식도 못 먹게 했으며 순종과 충성을 강조했다. 프레드가 퇴근해서 돌아오면 이렇게 정해놓은 규칙을 누가 얼마나 어겼는지 말하게 한 다음에 그에 상응하는 벌을 내렸다.
그러나 이렇게 엄격하게만 한 것은 아니었고, 여느 부자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프레드 자신이 열심히 일해서 축적한 부를 아이들이 마음껏 누릴 수 있게 해줬다. 아이들은 평소에 신문 배달로 용돈을 벌었는데 혹시 눈이 오거나 비가 오는 날이면 기사가 딸린 리무진을 타고 신문을 돌리게 해줬다. 프레드는 아들 트럼프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는 왕이야, 알겠니?"
트럼프는 어릴 때부터 부친의 유전자를 몽땅 받은 듯 서로 닮은 점이 꽤 많아 보였다. 큐포리스트 사립 초등학교에 다녔던 트럼프는 선생님에게 지우개를 던지거나 생일 파티 때 케이크를 던지는 행동을 하는 등 문제아 기질이 다분했다. 큐포리스트는 퀸스 지역의 부유층 자제들이 선호하는 학교였다. 결혼식장에서 신랑이나 신부를 소개할 때 이 학교 출신이었다는 점을 자랑삼아 드러낼 정도로 유명했다.
그런데 트럼프는 이 학교에서 골칫덩이이자 공포의 대상이었다. "음악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다"며 선생님을 때린 적도 있었다. 트럼프는 내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사람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모습이나 지금의 내 모습이 별반 다르지 않다. 성격이란 것은 그렇게 쉽게 변하는 것이 아니다."
프레드는 아들 트럼프가 부동산 개발이나 건축업에 관심이 있는 것을 보고 매우 흡족해했다. 그래서 공사 진척 상황 점검차 건축 현장을 돌아보려 할 때는 되도록 트럼프를 데리고 가려고 했다. 두 사람은 타고난 근면성이야말로 성공의 핵심 열쇠라고 했다. 성공할 사람은 애초에 그러한 기질을 타고나는 법이라고 봤다. 트럼프한테서 이러한 기질을 발견한 프레드는 아들이 자신은 장차 크게 성공할 운명을 타고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를 바랐고. 그래서 그러한 사실을 자꾸 주입시키려고 했다. 그런데 프레드는 학교 선생님들이 트럼프의 불량스러운 행동을 지적할 때마다 골치가 아팠다. 아들의 행동을 제어할 수 없겠다고 판단한 프레드는 결국 이 학교에 7학년까지만 다니게 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트럼프는 1959년 가을에 뉴욕군사학교로 옮겼다. 사립 기숙학교로 운영되는 이 학교는 오래전부터 미국을 이끌어갈 엘리트를 배출하는 인재의 산실 역할을 해왔다. 미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의 부유층이나 권력층 자제들이 주로 입학했다. 군사학교는 대체로 보수적 성향이 강하므로 다른 일반 기숙학교보다 외부 세계와의 격리 수준이 한층 높은 편이다 그래서 운영하는 사람들이나 교사 혹은 교관의 의식도 상당히 보수적이다. 따라서 이들은 훈육을 위해서는 체벌도 필요하고 개성을 중시하는 개인주의보다는 단체주의를 중시해야 한다는 믿음이 강하다.
이 학교 출신은 다른 학교 학생보다 뛰어나다는 일종의 우월의식을 심어 사회에 나가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키워주려 했다. 트럼프는 이러한 학교의 방침을 기가 막히게 잘 따라서 무리를 이끄는 우두머리가 됐고 야구 경기도 아주 잘해냈다. 트럼프는 3학년 때 지역 신문 1면에 실린 적이 있었다. "트럼프 덕분에 뉴욕군사학교 야구 승리!"라는 제목이 떡 하니 박힌 기사를 보고 트럼프는 매우 흥분했고, 이 경험은 이후 트럼프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트럼프 타워, 왕국의 시작
도널드 트럼프에 따르면, 어떤 도시건 건물을 짓는 데 최적의 장소는 티파니 로케이션(Tiffany Location)이었다. "어디 가든 가장 좋은 구획은 티파니 로케이션이라 불린다. 그것은 부동산 계통에서 일반적으로 쓰이는 관용어이다." 도널드 트럼프 이전에 실제로 보석업체의 이름을 딴 티파니 로케이션이라는 말을 쓴 사람이 있는지는 증명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용어는 설득력이 있어 보였다. 트럼프가 그 말을 사용하기 시작할 때 눈독을 들이고 있던 것은 티파니 매장 바로 옆의 건물이었다. 당시 그곳에는 본위트 텔러(Bonwit Teller) 백화점이 있었다.
트럼프는 본위트가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것을 알고 그 부지를 인수하는 일에 착수했다. 동시에 그는 티파니 매장이 가지고 있는 공중권(空中權)을 매수하기 위해 접근하고, 시청의 새로운 정권과 진행시켜야 하는 조치들을 구상했다. 트럼프는 소유주인 에퀴터블생명보험 임원들에게 접근했고 그들은 회사가 트럼프와 합작해서 해당 부지에 새로운 건물을 짓게 한다는 데 동의했다. 1978년 11월 트럼프는 본위트의 모기업 임원들과 회의를 갖고 토지 임대권의 매수 옵션을 2,500만 달러에 사기로 합의했다.
트럼프는 80대의 티파니 회장 월터 호빙(Walter Hoving)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했다. 자만심이 가득한 이 노인이 전통과 세련된 우아함에 집착한다는 점을 이용하기로 한 트럼프는 본위트 부지에 지어질 건물을 흉물스럽게 스케치한 그림을 전달하고 그 땅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디자인에 대해 설명했다.
이런 작전은 이후에도 자주 써먹게 되었다. 위협적이거나 터무니없게 보이는 것을 제시함으로써 실제 목표를 향해 협상을 해나가는 모습이 유연하고 합리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트럼프는 흉측한 빌딩의 비전을 제시한 뒤에 호빙이 티파니의 공중권을 넘긴다면 자신은 그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건물, 주위 환경에 보다 잘 어울리는 건물을 지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호빙은 곧 500만 달러에 트럼프가 원하던 것을 내주었다. 추한 이웃 건물로 인해 자기 매장의 가치가 떨어지지 않게 하겠다는 약속과 함께였다.
5번가 부지에 세울 건물은 모든 호실이 두 방향에서 뉴욕의 경관을 볼 수 있는 지그재그형 설계를 중심으로 매우 기교적으로 디자인되었다. 이런 창의적인 접근법 때문에 이 타워의 건축비는 단순한 상자 모양의 건물보다 더 높았다. 하지만 전망이 좋은 아파트를 더 비싼 가격에 팔 수 있고 이로써 건물을 일종의 랜드마크로 자리매김 시킬 수 있다. 멀리에서 보면 위층은 검은색 유리로 만들어진 톱날처럼 보인다.
그는 타워를 거부들을 끌어들이는 매력적인 장소로 만들고 싶었다. 부자들은 언제나 화려함과 편안함을 추구한다. 하지만 대개 조금씩은 자제를 했다. 고상하게 보이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하지만 1970년대 전후 호황이 끝나고 부자들이 세계의 부에서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몫을 차지하기 시작하면서 그들의 라이프 스타일이나 행동은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대상이 되었다. 트럼프는 영국의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트럼프 타워 아파트의 구매를 고려하고 있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버킹엄 궁이 이 같은 소문에 대해 언급을 피하다 보니 누구도 이 소문을 반박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아파트를 소개하는 광고 책자는 트럼프 타워가 "세계 최고의 사람들"을 위해 지어졌다고 말하면서 독자들에게 "외부 세상과 격리되어 안전한, 황동으로 장식된 마천루에서의 삶을 상상하라"고 부추겼다. 광고 문안은 "모든 아파트가 하늘의 다이아몬드다"라는 말로 마무리되었다. 트럼프에 따르면, 트럼프 타워는 68층이다. 그렇지만 트럼프 타워를 뉴욕에서 가장 추한 10대 건물 중 하나로 꼽은 미국 건축가 협회(American Institute of Architects)는 이 건물이 58층이라고 말한다.
구경거리 트럼프
트럼프는 트럼프 타워 꼭대기에 있는 집과 팜비치(Palm Beach)의 저택을 포함해 여러 채의 주택을 소유하고 줄곧 호화로운 생활을 만끽했다. 집에서는 도우미들의 시중을 받았다. 밖에서는 경호원들과 함께 움직였다. 지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물질적인 풍요로움이 트럼프가 성공한 인물 혹은 자신이 표현하듯 승자라는 증거라고 결론을 내릴 것이다. 그럼에도 트럼프는 성공한 사람의 트로피는 더욱 반짝이고 인상적이어야만 패배자로 낙인찍히지 않는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알리며 자신의 게임에서 끊임없이 기대치를 높였다.
우선 타임스의 작가를 초대해 올림픽 타워(Olympic Tower)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를 소개했다. 그러고 나서는 유명 TV 프로그램에서 수백만 명이 시청할 수 있도록 사회자를 저택에 초대했다. 전용기로는 여객기를 사용해야 했다. 거대한 요트도 소유했다. 그의 곁을 지키는 여자는 모든 사람이 감탄할 만큼 아름다워야 했다.
최고의 부유층 가운데 자신의 권력과 재산을 과시했던 사람은 트럼프가 유일했다. 이런 식으로 그는 변화의 상징이 되었다. 안정된 가정생활, 튼튼한 집, 그리고 지역 사회에서의 위치를 꼽는 전통적인 아메리칸 드림을 성공의 조건으로 정의했던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던 변화였다. 트럼프가 정의한 근사한 삶은 만화에나 나올법한 환상이었지만 그는 언론의 도움을 받아 이런 환상을 널리 알렸다.
트럼프의 얼굴과 목소리, 독특한 헤어스타일은 미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트럼프의 이미지는 대부분 진실하다고 보기 힘든 일화를 줄기차게 반복함으로써 스스로 만든 것이었다. 이런 이야기에는 꽤나 허점이 있었던 탓에 트럼프는 그를 오만하고 억지스러운 인물로 여기는 사람들의 공격 대상이 되었다. "이미지가 상당히 중요하다"고 공공연히 떠벌렸던 사내에게 동정과 조롱은 분명 여간 고통스럽지 않았을 것이다.
트럼프는 물질주의로 고통스러워하는 모든 사람과 타블로이드 신문의 손쉬운 표적이 되었다. 그런 한편 그의 성공을 평가하려는 사람들을 난감하게 만들었다. 여러 가지 복잡한 그의 사업상 거래는 은밀하게 진행되어 제대로 파악하기가 거의 불가능했다. 트럼프의 사생활은 또 다른 문제였다. 그는 금발 미인, 내연녀라고 하면 딱 떠오르는 이미지에 맞아 떨어지는 나이 어린 여자와 놀아난 유부남이었다. 타블로이드 전면에 실린 내연녀 말라 메이플스의 사진은 도널드 트럼프를 망신시키기에 충분했다.
프러포즈를 받았지만 메이플스가 임신하고 딸 티파니를 낳을 때까지 두 사람은 결혼하지 못했다. 트럼프는 결혼이 그의 사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에 대해 측근들과 의논한 다음에야 비로소 결혼 계획을 진행시켰다. 초대 손님 목록을 작성하고 초대장을 발송했다. 트럼프와 메이플스는 1993년 12월 20일 결혼했다.
트럼프는 TV 쇼를 어떻게 이용했나
마크 버넷(Mark Burnett)은 스웨덴의 유명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미국으로 들여와 서바이버(Survivor)란 이름으로 재탄생시켰고 대성공을 거뒀다. 버넷은 도널드 트럼프를 집무실에서 만나 사업 계획을 세웠다. 트럼프와 마주 앉아 어프렌티스(The Apprentice)라는 제목으로 방송할 프로그램에 대해 설명했다. 트럼프의 다양한 기업체 가운데 한 군데에서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의 지원을 받고, 후보자라고 일컬을 경쟁자를 선발할 예정이었다. 서바이버와 마찬가지로 경쟁자들은 팀으로 나누어져 임무를 배정받는다. 트럼프가 성과를 심시하고 상대적으로 점수가 낮은 참가자들을 해고하는 방식으로 우승자가 탄생한다.
사실 트럼프는 TV 프로그램에 출연할 만큼 시간이 충분한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러자 버넷은 트럼프 타워에서 촬영할 수 있다고 제안하면서 한 회당 서너 시간을 넘기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마음을 놓은 트럼프는 수익의 절반을 받는 조건으로 버넷과 손을 잡는 데 동의했다. NBC 경영진은 재빨리 어프렌티스를 사들였다.
2004년 1월 방송될 예정으로 16명의 경쟁자를 선발하는 프로그램에 21만 5,000명 넘은 사람들이 지원했다. 버넷은 트럼프 타워에서 비어 있는 한 층을 넘겨받아 세트를 만들었다. 겉보기에는 기업 중역실이었지만 무대 조명을 비추는 한편 투웨이 미러(앞에서 보면 거울이지만 뒤에서는 투명한 유리. 역주) 뒤편으로 TV 카메라를 설치했다. 트럼프가 앉을 의자는 높은 곳에 설치해 주변 사람들을 그야말로 내려다 볼 수 있었다. 같은 층에다 출연자들을 위한 숙소도 지었다.
최종회 시청자가 2,700만 명이 넘었던 어프렌티스는 도널드 트럼프에게 가치를 환산할 수 없을 만큼 지극히 소중한 대중의 관심을 선사했다. 프로그램에서 보인 그의 행동이 마치 메이저리그 경기라도 되는 듯 매주 보도하는 언론 기사가 트럼프에게 득이 됐다. 트럼프는 향수, 남성 정장, 비자카드 등 수많은 소비제품에 자기 이름을 넣고 활자 매체와 방송을 이용했다.
도널드가 가짜 중역실에서 사람들을 해고할 때 재계 언론은 그의 진짜 카지노가 직면한 문제들을 경고했으며 회계 감사관들은 트럼프의 회사를 지탱할 수 있는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었다. 2004년 3월 언스트앤영(Ernst & Young)의 감사원들은 트럼프 호텔과 카지노 리조트가 계속 기업(계속적으로 존재한다는 가정 아래에서 사업을 영위하는 기업. 역주)으로 남을 수 없을지 모른다고 선언했다. 부채가 18억 달러에 이르는 이 회사의 주가는 폭락했다. 트럼프의 회사는 창립 이후 8년 동안 매년 투자자들의 돈을 잃었다.
어프렌티스 마지막 방송이 끝나고 몇 달이 지나 트럼프 회사가 파산했을 때 주가는 주당 30센트에 불과했다. 블룸버그뉴스(Bloomberg News) 소속인 금융 전문 작가 데이비드 폴리(David Pauly)의 평가는 신랄했다. "트럼프가 경영에 대해 가르칠 수 있는 것은 상환능력보다 더 많은 채권을 판매하라. 경쟁자가 당신의 밥그릇을 빼앗아가도 내버려둬라. 최고 경영자로 풍족하게 생활하라, 그리고 파산하라 정도다."
주주들이 이미 회생 불능인 상태에서 채권 보유자들은 파산 합의서에 따라 5억 4,400만 달러의 부채를 탕감해야 했고 트럼프는 본인의 소유권 지분을 47%에서 30%로 낮추는 데 동의했다. 하지만 계속 회사 대표직에 남아 200만 달러의 연봉을 받을 수 있었다. 어프렌티스의 첫 번째 초과 이익 분배금이 1,000만 달러라는 본인의 주장을 감안하면 그의 삶의 방식은 전혀 바뀌지 않을 것이며, 패배를 인정할 이유가 없었다.
뻔뻔함이라는 전략
슬로베니아 출신의 모델 멜라니아 크나우스(Melania Knauss)가 트럼프의 애인으로 처음 등장한 것은 1998년으로, 트럼프가 두 번째 부인 말라 메이플스(Marla Maples)와 아직 이혼하기 전이었다. 멜라니아가 28세, 트럼프는 52세였다. 멜라니아는 미모에 있어서 트럼프의 전 부인들에 미치지 못했지만 한 가지 중요한 다른 점이 있었다. 그녀는 결혼생활 외의 영역에서 트럼프의 파트너가 되는 것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첫 번째 부인 이바나는 직접 트럼프의 사업 경영에 참여했고, 말라는 트럼프로 하여금 활발한 자선활동을 벌이게 해 이를 자기가 직접 지휘하고 싶어 했다. 멜라니아는 그런 야심이 전혀 없었다.
버락 오바마가 겉보기와 다른 사람이라는 생각의 시초는 멀리 2004년 변호사 앤드루 마틴(Andrew Martin)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2004년 그는 오바마가 기독교인이 아니라 종교를 숨기고 있는 무슬림이라는 성명서를 언론에 제공하기도 했다. 미국인 수천 명의 생명을 앗아간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의 9.11 공격 이후 나온 마틴의 주장은 두려움과 편견을 이용해서 오바마에게 흠집을 내려는 의도로 보였다.
그의 이론은 인터넷에 퍼져서 오바마를 싫어하고 주류 정보원을 믿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 반향을 일으켰다. 인터넷 덕분에 고립된 편집성향의 사람들은 쉽게 모여서 자기들의 믿음을 강화했다. 2008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지명전에서 당시 오바마의 상대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 지지자들은 "버락 오바마의 어머니가 임신 말기에 케냐에서 아랍계 아프리카인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었다. 당시 비행기 여행을 할 수 없어 버락 오바마는 케냐에서 태어났고 이후 어머니가 그를 하와이에 데려가서 출생 등록을 했다"는 내용이 실린 이메일을 돌렸다.
루머는 오바마의 재임기간 내내 지속됐고 폭스뉴스 및 다른 우익 언론을 통해 계속 울려 퍼졌다. 2011년 2월, 여론조사기관인 공공 정책 조사연구소(Public Policy Polling)의 설문조사에 응답한 공화당원 중 51%는 "대통령이 외국 태생이며 따라서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믿는다"고 응답했다. 결국 선거운동 기간 중 하와이 주에서 발행한 출생증명서 사본과 호놀룰루신문에 게재된 동시대의 발표 증거로 공개됐다. 오바마는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자, 최초로 무슬림 아버지를 둔 대통령이었다.
대통령의 긴 서식 출생증명서가 공개된 다음날, 트럼프는 기자들에게 출생증명서 공개가 그동안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했던 것이라며 자기 덕이라고 주장했다. 얼마 안 가 트럼프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대통령의 출생에 대한 음모이론을 지어냈다. "우리가 좀 봐야 할 게 있는데, 그 출생증명서 진짜가 맞나? 거기 뭐라고 쓰여 있는가?" 전형적인 이중 화법으로 "나야 물론 그게 맞기를 바란다"라고 했다.
트럼프는 자기는 그저 해결되지 않은 이슈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뿐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자잘한 의심 살포 전략에 따라 트럼프는 믿을 만한 기록을 무시하고 대통령을 모욕했는데, 이런 행동을 지지하는 사람도 제법 있었다. 그의 발언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일부 유권자들을 흥분시켰다. 사람들은 트럼프의 발언을 "정직하고 용감하다"며 응원했고 그들이 발언 철회를 거부하면 박수갈채를 보냈다.
* * *
본 도서 정보는 우수 도서 홍보를 위해 저작권자로부터 정식인가를 얻어 도서의 내용 일부를 발췌 요약한 것으로, 저작권법에 의하여 저작권자의 정식인가 없이 무단전재, 무단복제 및 전송을 할 수 없으며, 원본 도서의 모든 출판권과 전송권은 저작권자에게 있음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