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키 이야기

   
트레이시 카바쇼(역자: 서종기)
ǻ
라이온북스
   
13000
2011�� 09��






&>■ 책 소개
나이키의 연매출 전망치는 현재200억 달러, 아마도 2015년쯤이면 이 괴물 같은 기업은 300억 달러 이상의 연매출을 올리며 ‘업계 1위’의 위엄을 세계에 다시 한 번드러낼 것이다. 해마다 수많은 신제품을 쏟아내며 트렌드의 중심에 서 있는 나이키는 오늘도 전 세계 수많은 이들을 매장으로 불러들인다. 남녀노소를불문하고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나이키를 신고, 입고, 즐긴다. 과시적 소비 욕구를 채워주기도 하고 때론 운동선수처럼 민첩하고 건강한 기분을선사하기도 한다. 나이키는 과연 어떻게 이처럼 자유롭고, 긍정적이며 건강한 캐치프레이즈를 갖게되었을까?

&>두 육상인의 열망이 시작된 그 지점에서 시작한 『나이키 이야기』는 독특한 마케팅전략, 제품의 기술력과 다양한 캠페인, 사회 자선활동, 친환경적 생산방식 등 나이키의 역사를 종합적으로 다루며 나이키 스타일의 경영방식을보여준다.

&>■ 저자 트레이시 카바쇼(TracyCarbasho)
독창적인 탐사보도 능력을 인정받은 미국의 유명 저널리스트. 13년간 웨스트버지니아 주에서 한 일간 신문의기자이자 편집자 겸 칼럼니스트로 활동한 그녀는 2000년부터 전업 프리랜서의 삶을 시작해 미국 도처에서 발행되는 경영 관련 간행물과 법률 잡지에글을 썼다.

style=BACKGROUND-COLOR: #ffffff>순도 100퍼센트의 나이키 이야기에 대한 열망 하나로나이키가 시작된 그 지점으로 돌아간 그녀는 방대한 자료를 수집했다. 일류 스포츠 선수들, 마케팅 전문가, 나이키 경영진들의 인터뷰를 통해나이키라는 기업의 ‘역사’를 담는 일은 유독 어려움이 많았다. 이 엄청난 작업의 결과물을 세상에 내놓은 그녀는 지금 또 다른 꿈을 향해 뛰고있다. 

&>■ 역자 서종기
농구, 나이키, 록음악, 기타,만화를 좋아하는 90년대 청소년이었던 그는 마이클 조던과 농구 대잔치, 마지막 승부, 그리고 슬램덩크의 열풍이 몰아치던 그 시절에 농구와농구화에 빠져들었고, 에어 조던 11탄을 시작으로 나이키 운동화와 인연을 맺었다. 

style=BACKGROUND-COLOR: #ffffff>어릴때부터 갖고 싶었던 운동화를 걱정 없이 살 수 있어서 어른이 된 것이 좋다고 이야기하는 그는 고려대학교 졸업 후 현재 번역에이전시엔터스코리아에서 전문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역사를 바꾼 50가지 식물』『나를 움직이는 것은 마음에서 나온다』『썩은 사과골라내기』(이상, 출간 예정) 등이 있다. 

&&>style=BACKGROUND-COLOR: #ffffff>■차례
추천사
이야기를 시작하며 

&&>style=BACKGROUND-COLOR: #ffffff>STORY1. 탁월한 영감을불어넣다 
STORY2. 승리의 여신이 이끈 미래
STORY3. Just Do It!
STORY4. 전설이 되어라
STORY5. 대학 스포츠에 전례를 남기다 
STORY6. 나이키의 선수들이 흔들리는 순간 
STORY7. 첨단기술은 위험을수반 한다
STORY8. 업계의 모범이 되다 
STORY9.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되고 
STORY10. 부를 공유하다
STORY11. 결승선은 없다

&&>style=BACKGROUND-COLOR: #ffffff>옮긴이후기




나이키 이야기


승리의 여신이 이끈 미래

우리는 위대한 결과가 훌륭한 토대에서만 나온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나이키는 어떤 꿈이 결단력, 끈기, 창의력, 풍부한 지략, 수많은 땀방울과 함께 실제로 달성된다는 사실을 증명한 멋진 표본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꿈을 현실로 이루고자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재능을 쏟아부은 두 사나이가 있다. 바로 오리건 대학교 육상부의 감독으로 명성을 떨친 빌 바워만과 같은 대학교에서 빼어난 실력을 자랑하던 육상선수 필 나이트였다.


전국적으로 이름을 날린 바워만 감독은 오리건 대학 선수들이 더 나은 기록을 내도록 끝없이 노력했다. www.nikebiz.com에 소개된 나이키의 역사에 의하면, 바워만은 "육상 경주로의 표면과 수분 재흡수용 음료를 두고 각종 실험을 했으며 무어보다도 육상화를 개선하는 데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1950년대의 신발 회사들은 바워만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때부터 그는 직접 신발을 개조해 그것을 육상선수들에게 제공했다. 그는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강하게 믿었으며 기존 신발 회사가 새로운 발상을 거부할 때도 단념하지 않았다. 몇 년 후에 그 회사들이 장대한 역사에 편입할 멋진 기회를 날려버렸음을 깨닫고 얼마나 낙담했을지 한 번 생각해보라.


빌 바워만이 육상선수들을 위해 더 좋은 신발을 만들려고 고심하던 사이, 필 나이트는 그 나름대로 양질의 육상화를 제조하겠다는 생각에 전념하던 중이었다. 중거리 육상선수였던 그는 더욱 발전된 운동화를 만드는 데 실질적인 시각을 부여할 수 있었다. 나이트는 오리건 대학을 졸업하고 경영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자 스탠퍼드 대학으로 진학했다. 1962년에 그는 값이 싸면서도 성능이 뛰어난 일본제 육상화가 미국 시장을 점령한 독일 회사들을 쓰러뜨릴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했다. 당시 신발 제조사에 의견을 제시한 필 나이트가 바워만과 같은 식으로 거절당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일본과 아시아 지역의 신발 회사들은 거절은커녕 서신에 답변도 하지 않고 그를 완전히 무시했기 때문이다.


바다 건너편의 신발 회사로부터 아무 답변도 받지 못한 나이트에게는 또 다른 모험을 향해 나아갈 기회가 있었지만, 그는 그 지점에서 더욱 어려운 선택을 했다. 결국 그가 고른 길은 육상부에서 자신을 가르친 감독님과 다시 힘을 합치는 것이었고, 그렇게 전설적인 만남이 시작되며 그들의 꿈은 마침내 날갯짓을 시작했다.


당시에 나이트는 이판사판이라는 생각으로 고품질 운동화를 생산하던 일본 고베 시의 오니츠카 타이거(Onitshka Tiger Co.)를 방문했다. 그는 타이거 운동화의 미국 내 판매를 맡겨달라며 일본인들을 설득했다. 이후 견본품이 실린 첫 번째 화물을 받은 나이트는 판매개시를 위해 그 중 몇 켤레를 바워만에게 보냈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엄청난 결과였다.


1948년부터 대학 육상부 감독 자리를 맡은 바워만은 필 나이트가 보낸 견본품을 보고 기뻐하며 제자에게 감히 거절하지 못할 제안을 한 가지 했다. 그는 나이트와 동업을 하며 자신이 직접 고안한 신발 디자인을 오니츠카 타이거에 제공하면 어떻겠냐고 제의했다. 그리고 나머지 이야기는 지금 우리가 아는 바 그대로 역사가 되었다. 힘을 합치기로 결심한 두 사람은 창업 자본으로 각자 500달러를 투자하여 1964년에 나이키의 전신인 블루 리본 스포츠(Blue Ribbon Sports)를 설립했다.


나이키의 역사에 관한 글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빌 바워만과 필 나이트가 이 회사의 설립자라고 답할 것이다. 실제로도 그렇다. 나이키의 시작에 박차를 가한 두뇌이자 힘은 바로 이 두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나이키가 탄생하는 데는 제프 존슨이라는 인물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다.


당시 두 설립자는 신생 회사를 발전시키는 데 필요한 업무를 모두 처리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바워만은 대학교의 육상부 감독 일을 하던 중이었고, 나이트는 회계 업무를 담당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1965년에 스탠퍼드 대학의 육상선수 출신인 제프 존슨이 블루 리본 스포츠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블루 리본 스포츠에서 급료를 받는 첫 번째 직원으로서 일을 시작한 존슨은 멀티태스킹이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훨씬 전인 그 시절에 여러 업무를 한꺼번에 능숙하게 처리했다. 하지만 제프 존슨이 이룩한 가장 큰 성과는 1971년에 그가 꾼 꿈에서 비롯되었으며, 이는 이 회사가 이후 10년간 많은 수익을 올리는 계기가 된다.


존슨은 승리를 이끄는 그리스 여신 니케에 대한 꿈을 꾸었고, 주주들은 거기에 한밤중에 경험하는 몽상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여겼다. 그들은 처음으로 제작한 축구화의 이름으로 더 나이키를 선택했고 이 신발에는 그 유명한 스우시 로고가 불었다. 오늘날 전 세계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나이키의 상표, 즉 스우시 로고는 존슨의 꿈에 등장한 그리스 여신의 날개를 상징한다.


오로지 목표에만 집중하는 사고방식은 필 나이트와 빌 바워만, 그리고 회사에 꾸준히 커다란 수익을 안겨주었다. 이윽고 주요 스포츠 종목에서 활약하는 전 세계의 운동선수들이 나이키의 신발을 신고 경쟁하기 시작했다. 영국의 육상선수 스티브 오벳은 1980년에 개최된 모스크바 올림픽대회에서 스우시가 그려진 신발을 신은 최초의 메달리스트가 되었다.


나이키 신발과 의류를 착용한 스포츠 영웅들만큼이나 빠르게 움직이는 국제 정세 속에서, 나이키 경영진은 미래의 경쟁자들과 상대하기 위해 더욱 박차를 가할 때가 왔음을 직감했다. 그들은 "결승선은 없다(There is no finish line)"라는 초기의 신조를 토대로 삼아 제품을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나이키를 설립한 두 사나이가 치솟는 매출액을 보며 각자의 꿈이 선명하게 현실로 이뤄졌음을 실감하는 사이, 또 다른 두 사나이는 자신들의 회사를 만들기 위해 힘을 합치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이 두 사람, 즉 댄 와이덴과 데이비드 케네디는 훗날 나이키가 역사에 길이 남을 광고를 만드는 데 창조적 불꽃을 제공한다.


1982년에 오리건 주에서 시작된 와이덴과 케네디의 광고대행사는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독립 기업 중 하나로 성장했다. 와이덴 케네디로 불리는 이 업체는 차츰 업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다가, 나이키를 혁신적인 광고 캠페인의 주인공으로 우뚝 서게 한 짧은 세 단어, 바로 Just Do It(일단 해보는 거야)을 내뱉은 후 초일류 고객들을 연이어 맞이하게 되었다. 이들은 코카콜라와 리바이스 같은 회사를 단골 명단에 올리며 2007년에 광고 전문지 「애드위크」가 선정한 올해의 국제 광고대행사로 이름을 남겼다.



전설이 되어라

1984년과 1992년에 미국 농구 국가대표로 올림픽대회 금메달을 획득한 조던은 2009년 9월에 네이스미스 농구 명예의 전당(Naithsmith Memorial Basketball Hall of Fame, 명예의 전당은 사회 각 분야에서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이들을 기리는 기념관을 뜻하며, 농구 명예의 전당 앞에 붙은 네이스미스라는 명칭은 농구의 창시자 제임스 네이스미스 박사의 이름에서 따왔다)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그는 선수 생활을 하며 1988년, 1991년, 1992년, 1996년, 1997년에 NBA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었다.


조던이 부와 명성을 막 손에 넣기 시작할 때 그의 재능을 알아챈 나이키 사람들은 재빠르게 후원 계약을 맺으며 1985년에 첫 번째 에어 조던 농구화를 출시했다. 그 후로는 나이키에서 새로운 에어 조던을 발표하는 일이 일종의 연례행사처럼 자리 잡았다.


나이키 웹사이트에는 에어 조던의 역사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해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한 에어 조던은 높아져만 가는 언론과 신발 산업, 그리고 대중의 기대에 늘 멋지게 부응했다. 에어 조던은 판매와 수요에서 꾸준히 시장을 지배했고, 매년 출시되는 신제품은 디자인, 혁신, 성능 면에서 운동화 산업 전체의 기준을 한 단계 높였다. 이 브랜드의 중심에는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운동선수와 산업기술, 즉 농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인 마이클 조던, 뛰어난 기량과 과감한 혁신, 위대한 업적을 획득하고자 끝없이 노력하던 선수 시절에 그가 늘 신었던 운동화가 함께 존재한다.


각 제품이 그 나름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시작하면서, 결국 나이키의 상징인 스우시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조던이 농구공을 들고 공중으로 뛰어오르는 모습을 그려낸 점프맨(jumpman) 로고가 들어섰다. 이 상표가 붙은 신발은 곧 조던 브랜드의 제품이라는 뜻이다. 에어 조던은 일반적인 나이키 제품보다 찾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 가격도 더 비싼 편이다. 신발 전문가들은 이 운동화의 가격이 10대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여타 공산품, 말하자면 아이팟 같은 제품과 비슷하게 책정되었다고 한다.


에어 조던 2010은 나이키의 특별 기획과 디자인을 관리하는 팅커 햇필드 부사장과 조던 브랜드의 디자인 총괄 책임자인 마크 스미스의 합작품이다. 신발의 명인 두 사람이 창조한 결과는 측면에 투명한 열가소성 투명 우레탄 창을 달아 조던 브랜드 최초로 신발 내부가 보이게 만든 기능성 농구화였다. 햇필드는 경기 중에 자신의 동작을 완벽하게 제어하고 실력을 아주 조금만 드러낸 채 상대방의 다음 행동을 간파하는 조던의 능력에서 영감을 얻어 에어 조던 2010을 제작했다고 한다.


이 농구화에서는 발가락을 감싼 코싸개와 발등을 덮은 갑피가 독립된 층상구조를 보이며, 이런 특징 덕분에 에어 조던 2010은 아무 제한 없이 실제 발의 유연성과 움직임을 재현한다. 이 혁신적인 디자인에는 선수의 민첩성을 향상시킨다는 독특한 발상이 담겨 있다.


에어 조던 2009는 1에서 23으로 이어진 숫자의 흐름에서 탈피한 첫 번째 신발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 최초에 등장한 신발은 에어 조던 1탄으로 불렸고, 그 후로 이 제품의 계보는 에어 조던 2탄에서 2008년에 발표된 에어 조던 23탄까지 이어졌다. 2009년에 출시된 신제품은 새로운 시대의 시작과 함께 에어 조던 1탄에서 23탄으로 이어진 연번의 퇴장을 알리며 마이클 조던이 남긴 유산의 고유성을 보존하는 데 일조했다.


에어 조던 2009의 발표 현장에서 조던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에어 조던이 처음 등장한 순간부터 23년 내내 저희는 가능성의 한계를 넘어선 운동화를 제작하며 우리 자신과 신발 산업계에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이 제품은 저희의 능력을 현실화하고 앞으로 맞이할 새로운 23년을 위해 이 브랜드가 나아갈 길을 설정할 것입니다."


조던은 조던 브랜드의 수석 디자이너 제이슨 메이든과 함께 이 신발의 제작 작업을 진행했다. 미래지향적 디자인이 담긴 에어 조던 2009에는 연결식 추진 기술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적용되었는데, 이는 선수가 신속히 전방으로 달려나가도록 돕는 기능을 한다. 이 신발 제작에 참여한 디자이너들은 이 제품이 처음으로 주름을 넣은 새틴(satin, 두껍고 윤이 나는 견직물)과 구두처럼 광택 나는 가죽을 함께 사용한 에어 조던이라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소재 덕분에 이 신발에서는 더욱더 고급스러운 매력이 풍긴다.


2008년, 조던 브랜드가 더 이상 제품명에 고유의 로마자 연번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결정을 내리기 전인 그 해, 에어 조던 23탄이 무대 위로 그 모습을 화려하게 드러냈다. 이 농구화는 전설적인 농구선수로부터 시작된 브랜드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제작되었다. 조던은 이 제품의 발표회에서 진심을 담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에어 조던 23탄은 제 삶과 모든 경력을 아울러 기념하는 상징으로써 큰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제게 23이라는 숫자는 정말 너무나 중요한 의미를 지닌 것이기에 이 23번째 에어 조던의 발매가 저희 브랜드 역사상 가장 빛나는 순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렇게 긴 세월 동안 에어 조던이라는 이름이 한결 같이 유지된 것이 영광스럽고 또 한 편으로는 황송하기까지 하네요. 저는 이 신발이 출시된다는 데 큰 기쁨을 느끼고, 그로 말미암아 제 꿈이 이뤄졌음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업계의 모범이 되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환경적 지속가능성의 결합

나이키의 지도부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지속가능성 개념을 포괄해야 하며, 그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믿고 있다. 이러한 믿음 하에서 지속가능성은 혁신과 더욱 환경친화적인 제품 생산 면에서 지속적인 향상을 이끌 것이다. 오늘날의 경제상황 및 기업풍토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친환경 사업과 혁신을 촉진하기 위해 나이키는 특별 업무 전담 조직을 만들었다. 그리고 기업 책임 관리부로 불린 이 부서는 더욱 혁신적이고 지속가능한 사업 모델을 추구하고자 구조를 재편성하기로 했다. 지속가능한 사업 및 혁신 전담반으로 변신한 이 신생팀의 목표는 나이키 모든 곳에 지속가능성 개념을 심는 것이다.


나이키는 점차 발전하는 사업 모델의 일환으로 지속가능한 디자인과 친환경 공학 및 건축 원칙을 시설 관리, 개보수, 건축 설계에도 적용했다. 일례로 멤피스에 세워진 노스리지 물류 센터에는 국부 냉방 방식과 햇빛을 따라 움직이는 채광창이 설계 요소로 첨가되었다. 또한 많은 소매점에서 이전보다 효율적인 조명과 냉난방 시설을 사용하며 에너지를 절약하고 있다. 그리고 오리건의 나이키 본사는 고효율 에너지 활용 방안을 실천하여 미국 환경보호청으로부터 에너지 스타(Energy Star) 인증을 받았다.


이러한 노력은 바다 건너편의 나이키 유럽 지사까지 이어졌다. 네덜란드에 자리 잡은 나이키의 유럽 본부는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 위해 지열 펌프와 태양광 에너지 수확 기술을 이용하고 있으며, 벨기에의 물류 센터는 건물에 두툼한 단열층을 갖추고 예비냉방 시설을 구축해 건물 내 기온을 원활하게 조절한다. 또한 이 지역에서는 풍력과 같이 재생 가능한 에너지원도 사용된다. 실제로 벨기에 물류 센터는 현지의 풍력 발전기 6대에서 생산된 전기만을 이용하고 있다.


2009년에 나이키의 친환경 활동은 「뉴스위크」 지와 코퍼릿 나이츠(Corporate Knights, Inc.), 이노베스트(Innovest Strategic Value Advisors)의 인정을 받았다. 나이키는 「뉴스위크」가 뽑은 친환경 기업 순위에서 7위를 차지하며 매우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 목록에 포함된 미국의 500대 기업은 시가총액, 수익, 사원 수를 기준으로 선정되었다.


나이키가 전체 순위는 7위를 차지했지만, 친환경 지수에서는 93.28점으로 소비재 산업 분야 1위에 올랐다. 「뉴스위크」는 나이키에 대해 다음과 같은 소견을 남겼다.


나이키는 업계 선두에 서서 제품 생산 공장을 친환경적으로 관리하는 기업이다. 행동강령을 마련해 52개국에 퍼져 있는 650여 외주공장에 성문화한 환경 정책을 보급했다. 이 정책의 실행 방안 중 하나로 유기농으로 재배된 면 소재를 사용하며, 이 기업의 제품 생산 공정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의 양은 소매용 포장에서 나오는 쓰레기 양보다 적다. 2009년에 출시된 한 농구화는 재활용 폴리에스테르와 같은 환경친화적인 소재로 제작했으며, 포장용 신발 상자 또한 100퍼센트 재활용 섬유재로 만들었다.


오늘날 같은 환경 보호주의의 시대에서는 세계의 어떠한 기업도 환경과 관련된 사항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서 어떤 결정을 내리기가 어렵다. 이 사회는 환경을 책임지지 않는 기업을 향해 대대적으로 비난의 화살을 날릴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은 환경을 위해 아무 활동도 하지 않는 회사를 찾기가 어렵다. 하다못해 조명 장치를 전력 효율이 높은 전구로 바꾸기라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미약한 움직임에서 시작해 일류 친환경 기업으로 발전한 나이키 같은 회사는 훨씬 더 찾아보기 어렵다.



결승선은 없다

나이키의 이야기는 앞으로도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이키 사람들은 변함없이 새로운 제품을 출시하고 새로운 광고 캠페인을 펼치면서 후원 계약을 맺은 선수들을 응원하는 동시에, 지역 사회를 위해 뛰고 더욱 새로운 기술에 도전하며 매 순간 만반의 준비를 갖출 테니 말이다. 이렇게 끝없이 이어지는 이들의 활동이 나이키 자체는 물론이고 운동선수, 소비자, 이 기업의 자선 사업으로 도움을 받는 이들에게도 바람직한 일이다.


지금까지 나이키는 선수들의 생각대로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제품을 주로 생산했다. 이렇게 순종적인 개념을 바탕에 깐 디자인은 스포츠 의류 산업에서 새로운 길을 개척하며 통념을 거부하고 논란에 직접 맞서는 이 회사 리더들의 사고방식과 다소 상반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사실은 이들의 경영 철학 역시 소속 선수들을 받들고 지지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그래서일까, 나이키의 각종 제품군은 이러한 경영진의 생각만큼이나 다양하고 화려한 모습을 자랑한다.


제품을 구매하는 소비자와 광고를 보는 시청자는 나이키라는 이름 뒤에 존재하는 이들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을지도 모른다. 또 필 나이트와 빌 바워만이 이 기업에 쏟은 끝없는 헌신과 수년간의 노력을 궁금히 여기지 않거나 혹은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대신 그들은 제품에만 관심을 보일 뿐이다. 하지만 나이키는 그런 모습만으로도 만족을 느낀다. 이 회사의 미래를 그린 두 남자는 그저 사람들이 나이키의 신발, 의류, 각종 장신구와 스포츠 장비를 구입하기만 바랐기 때문이다.


이 기업을 새로운 미래로 이끌 적임자인 마크 파커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나이키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이 회사가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그는 1979년에 나이키 최초의 신발 디자이너 중 하나로 입사에 이 회사와 오랜 세월을 함께 보냈다. 지금까지 그는 임원으로 여러 가지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며 수많은 혁신적 기술과 변화에 추진력을 부여했다. 이렇게 오랫동안 나이키에서 생활한 덕분에 파커는 두 설립자의 훌륭한 업적을 매우 잘 알고 있다. 그는 필 나이트와 빌 바워만의 제휴가 완벽한 만남이었다고 말하면서, 특히 명석하고 고집 센 두 사람의 기질이 회사를 경영하는 데 큰 힘이 되었다고 언급했다.


이 두 남자는 오리건 대학의 헤이워드 경기장에서 처음 만난 그 행운의 날부터 같은 꿈을 꾸기 시작했고, 수많은 이에게 감동을 안겨주며 결국 그 이상을 현실로 이뤘다.


바워만은 1948년에 육상부 감독이 되었고 1972년까지 학생들을 지도했다. 그는 1999년 크리스마스이브에 숨을 거두기 전까지, 수십 년 동안 자신의 꿈이 실현되는 모습을 지켜보며 회사의 성공을 만끽했다. 분명히 그의 꿈은 앞으로도 계속 무성한 열매를 맺을 것이다. 마크 파커는 나이키의 성공을 이끈 힘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나이키가 살아남은 데는 많은 이유가 있습니다. 스포츠를 향한 열정이 바로 중요한 비결이며, 선수들의 요구가 무엇인지 깊이 이해한 것 역시 생존 비결에 속합니다. 행운도 따랐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저 나름대로 세운 지론이 있습니다. 저는 인간의 잠재력에 대한 공통된 신념, 우리 모두가 더욱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 (중략)…… 그리고 오래 전 헤이워드 경기장에서 시작된 만남과 오늘날의 나이키를 잇는 찬란한 빛이 나이키를 설립한 두 분의 마음을 강하게 연결했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전 세계 운동선수들의 얼굴에서 빛나는 광채를 보았고, 선수들은 기술과 각자의 능력을 펼치는 방법 대신, 자신과 팀에 헌신하며 실력 향상을 위해 스스로 고되게 노력하고 나이키의 정신을 따르고자 힘쓰며 자신의 삶을 진솔하게 보여주었습니다.


나이키의 본질을 지킨다는 말에는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는 의미도 담겨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나이키가 업계를 선도하고 이 회사가 가장 잘하는 일, 즉 선수들과 깊이 소통하고 세계 최고의 제품이 되기 위한 영감을 얻을 기회가 더욱 많이 생긴다는 뜻입니다. 나이키는 이 회사를 세운 분들과 앞으로 이곳을 계속 이끌어나갈 이들의 꿈을 투영한 기업이며, 우리는 모두 같은 믿음을 안고 있습니다.


즉, 나이키의 앞날에 결승선은 없습니다.


* * *


본 도서 정보는 우수 도서 홍보를 위해 원저작권자로부터 정식인가를 얻어 도서의 내용 일부를 발췌 요약한 것으로, 저작권법에 의하여 원저작권자의 정식인가 없이 무단전재, 무단복제 및 전송을 할 수 없으며, 원본 도서의 모든 출판권과 전송권은 원저작권자에게 있음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