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꿈꾸게 만드는 경영자

Four Seasons

   
이사도어 샤프(역자: 양승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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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노마드
   
15000
2011�� 06��



■ 책 소개
자본력과 전문성도 부족한후발주자로서 호텔 업계에 뛰어들었지만 25년이 채 안 되는 시간에 세계 최고의 호텔체인으로 성장한 이사도어 샤프가 이끄는 포시즌스 호텔.2006년 자갓서베이(미국에서 발간되는 세계적인 레스토랑 가이드로 호텔·항공사·리조트·스파 등의 평가도 이루어진다) 호텔 부문에서 세계 최고의호텔로 선정되었고, 「포춘」지 ‘가장 일하고 싶은 100대 기업’에 1998년 이래로 오늘날까지 빠짐없이 선정되고 있기도 하다.

처음 호텔을 지은 1961년 당시만 해도 최고급 호텔체인조차도 욕실 용품과 목욕가운을 고객에게 ‘판매’했지만, 포시즌스 호텔은 호텔업계 최초로 욕실 용품과 목욕가운을 무료로 제공했다. 그리고 업계최초로 24시간 세탁 서비스를 도입하고, 호텔 내 피트니스센터를 설치한 일은 물론 ‘고객기록 시스템’을 만들어 한 번 호텔에 묵었던 손님에 대한모든 정보를 기록해 고객 맞춤 서비스를 시작한 곳도 포시즌스였다. 

이러한 서비스를 제공하며, 최고의 호텔 그룹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고객의 눈으로 호텔을 생각하고 경영했기때문이다. 고객의 눈으로 호텔을 만들고, 창조적인 서비스를 일구어낸 이사도어 샤프의 "사람 중심의 경영"을 다양한 사례와 에피소드를 통해들려준다.

■ 저자 이사도어샤프
포시즌스 호텔 그룹의 창립자이자 CEO. 1961년 최초의 포시즌스 호텔을 토론토에 설립한 이래 현재 전 세계36개국에 96개의 호텔과 리조트를 운영하고 있으며, 앞으로 40개 이상의 호텔을 새로 더 지을 예정이다. 
이사도어 샤프는 오늘날 호텔 업계에서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서비스의 기준을 확립했다.그는 호텔업계 최초로 피트니스센터를 개장했고, 북미 최초로 컨시어지 서비스를 도입했다. 또한 욕실용품, 드라이클리닝과 다림질 서비스를 무료로도입했고, 24시간 룸서비스를 호텔업계 최초로 도입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가 후발 주자로써 짧은 시간에 세계 최고의 호텔 그룹을 세울 수 있었던 이유는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의 철학에서비롯됐다. 회사의 간부들이 일선 직원을 고객처럼 대할 때 직원들도 진심에서 우러나는 최고의 고객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황금률’을 포시즌스제일의 경영 원칙으로 삼았다. 그 결과 「포춘」 지의 ‘가장 일하고 싶은 100대 기업’에 1998년 이래로 오늘날까지 빠짐없이 선정되고 있다.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절대 포기를 모르고,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직원들 간에 진실로 존중하는 마음을 회사의 가치로 삼은 기업 문화가 어떻게 전세계적인 브랜드로 발전했는지를 따라가 보자. 그의 불굴의 기업가 정신은 많은 비즈니스맨들에게 현재의 난관을 극복할 수 있는 돌파구 역할을 할것이다. 

■ 역자양승연
94년 캐나다 유학 후 빅토리아, 토론토, 뉴욕 등지에 거주하며 정치학, 동아시아학, 인테리어 디자인 등을공부했다. 토론토에서 1년간 한인신문 기자로 일하며 다양한 사람과 폭넓은 문화를 경험했다. 한국의 인재들이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을 만드는데 일조하겠다는 신념으로 회사를 설립,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 중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행운을 가져다주는 만남과 인연이 존재한다는‘세렌디피티’를 인생의 키워드로 삼고 살고 있다.

■ 차례
추천사
서문

1장 이사도어 샤프, 나의 이야기 
건축가의 꿈을 키우다 | 백스 샤프 앤선, 최초의 회사 이야기 | 나의 사랑, 로잘리 

2장 아주 사소한 동기가 거인을 만들다
 
초보 건축가, 호텔 비즈니스에 뛰어들다 |삼총사 제대로 한 방 날리다 | 애송이, 런던에 도전장을 내밀다 | 쉐라톤 호텔을 포기한 이유 

3장 ‘포시즌스’라는 문화를 만들다 
기업의사회적 공헌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 |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의 전환점을 찾다 | 호텔이 아니라, 문화다 | 기업문화 조성을 위해 팔을걷어 부치다 | 황금률의 법칙 | 남들과 다르다는 것이 가장 큰 경쟁력 

4장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일에 도전하는 즐거움 
평생을 함께 할 인재-워싱턴 포시즌스이야기 | 꿈의 호텔, 포시즌스가 품다-뉴욕 피에르 호텔 | 바닥을 치고 올라온 힘 | 비즈니스 파트너들이 평생의 친구가 되다 | 진정한 승부는디테일에서 난다 

5장 세계 최고의 품격
포시즌스 하와이 이야기 | 최고의 도시에만 짓는다-포시즌스 도쿄, 친잔소 | 결국 ‘사람’이 답이다-포시즌스 네비스 |쉽게 허락되지 않던 유럽 진출-포시즌스 프라하 | 전에 없던 최악의 시련 | 리젠트 호텔, 포시즌스 옷을 입다 | 알왈리드 왕자와 포시즌스 |불발로 끝나버린 안타까운 협상 

6장우리만의 리그 
직원들이 사랑한 회사 | 고객만족이란 무엇인가? | 최강의 정예 부대 | 포시즌스라는 브랜드 만들기 |성장의 속도에 몸을 맡기다 

7장 나는매일 비상을 꿈꾼다 
위기도 요리하기 나름이다 | 우리의 진짜 경쟁력 | 내가 아닌 우리를 위한일




사람을 꿈꾸게 만드는 경영자


서문

사람들은 내게 포시즌스 호텔을 시작할 때 지닌 최초의 비전이 무엇이었는가를 자주 묻곤 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 이 사업을 시작했을 때 내게는 어떠한 원대한 계획도, 비전도 없었다. 처음으로 호텔을 지은 1961년도에 나는 호텔 비즈니스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당시 내가 가진 유일한 전문지식은 아파트나 집을 짓는 일에 관한 것 정도였다. 나는 일개 건설업자였고, 내게 있어 호텔 비즈니스는 또 다른 형태의 부동산 거래일 뿐이었다.


나는 다만 호텔 사업을 고객들의 관점에서 바라보려 했다. 나는 늘 고객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고객이 진정 가치 있다고 느끼는 것은 무엇인가를 자문하며 어떤 식으로 호텔을 짓고 운영해 나갈 것인가를 결정했다. 우리가 고객들에게 진정 가치 있는 것을 제공한다면, 고객들은 그들이 생각하기에 타당하다고 생각되는 비용을 아낌없이 지불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바로 내가 지닌 최초의 전략이었으며, 지금 이 순간까지도 그 전략은 변함없이 실행되고 있다.


지난 40년의 세월을 돌아보며 나는 우리 사업 모델을 지지해 주는 네 기둥이라고도 불리우며, 바위처럼 단단하게 포시즌스 그룹의 토대가 된 네 가지 핵심 경영 원칙을 발견해냈다. 그것은 품질, 서비스, 문화 그리고 브랜드이다.


각각의 경영 원칙은 지난 25년이라는 세월을 통해 꾸준히 발전되어 왔다. 사업을 해오면서 우리는 많은 호텔들이 벤치마킹하기도 하고 이제는 업계의 표준이 된 수많은 아이디어들을 최초로 시도해 왔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업체가 우리를 따라하더라도, 고객들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 한 가지는 결코 따라 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늘 한결같이 제공되는 우리의 특별한 서비스 마인드이다. 이러한 서비스는 오직 튼튼한 기업문화가 존재할 때만 실현 가능하며, 기업의 문화라는 것은 위에서 일방적으로 경영 방침을 지시하듯 명령한다고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기업문화는 반드시 조직 내부로부터 성장해 많은 시간에 걸쳐 회사에 몸 담아온 사람들의 집단적인 실행에 의해 탄생된다. 포시즌스는 이곳에 소속된 사람들이 함께 모여 만든 공동체이다. 그것도 수없이 많은 좋은 사람들이 모여 만든 곳이다.



아주 사소한 동기가 거인을 만들다

초보 건축가, 호텔 비즈니스에 뛰어들다

새로운 사업에 흥미가 생긴 나는 그때까지 주업인 주택과 아파트 건설로 무척 바빴지만, 틈나는 대로 시간을 내어 한 번이라도 우리 회사와 인연을 맺었던 투자자들을 만나 토론토 시내 한복판에 모텔을 짓는 사업에 대한 의견 수렴을 시작했다.


이안 먼로는 영국을 대표하는 호텔 몇 곳과 엘리자베스 여왕도 묵은 적이 있는 케냐의 트리탑스 호텔 총지배인 출신이었지만 자신의 화려한 경력에서 한참 동떨어진 토론토의 미드타운에 위치한 작은 업체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모든 자격을 갖춘 사람이었고, 마침 그도 우리가 필요했다. 역시나 운이 따라준 일이었다.


비록 좁기는 했지만 이안과 나는 자주 그의 사무실에 앉아 대화도 나누고, 적은 비용으로도 모텔을 돋보이게 할 수 있을 아이디어를 교환했다. 따로 광고를 낼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기에 우리는 음식에 신경을 써서 모텔에서 운영하는 레스토랑을 우리의 승부처로 만들기로 했다. 사람들이 음식 때문에 모텔을 찾고, 그것이 입소문이 나서 다른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홍보 방법을 사용해 보자고 한 것이다.


또한 나는 지난 몇 년간 수많은 호텔들을 조사한 끝에 대부분의 호텔들은 손님들이 샤워 후 몸의 물기를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서 적어도 두세 개는 필요할 정도로 얇은 수건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래서 우리 모텔 투숙객들에게는 순면으로 만들어진 커다란 목욕타월과 두툼한 핸드타월을 제공했다. 이런 서비스는 비슷한 급의 호텔 중에서 우리가 거의 최초로 시도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셋이나 되는 누이들과 함께 자란 나는 여자들의 습관도 파악했다. 나는 여성들이 여행할 때 숙박업소에서 제공하는 비누로 머리를 감기 싫어서 따로 작은 샴푸병을 들고 다닌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객실에 샴푸를 서비스로 제공하기로 했다. 업계 최초였다. 오늘날 세계 그 어떤 호텔이나 모텔에 가도 화장실에 샴푸가 없는 것은 이제 상상할 수 없다.


이런 준비 과정을 거친 끝에 드디어 모델이 개장할 시간이 다가왔다. 어떻게 홍보할까 고민 중이던 우리에게 머레이는 "토론토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오페라단을 위한 자선파티를 열자"고 제안했다. 그는 또 다른 기발한 아이디어도 냈다. "뉴욕에 있을 때 환상적인 야외 아트쇼를 참관한 적이 있어. 수천 명의 사람들이 쇼를 보러 왔지. 토론토에도 분명히 괜찮은 예술가들이 있는데 자신의 작품을 전시할 만한 공간이 마땅하지 않잖아? 우리 모텔 주차장의 차들을 모두 치워 버리면 예술가들이 작품을 전시할 만한 공간이 나올 거야." 공짜로 언론 홍보도 하고 지역사회 발전에도 이바지할 수 있는 기막힌 아이디어였다. 우리는 손님들에게 길 건너 자동차 전시장에 딸린 공터에 차를 주차하도록 안내했고, 수백 명의 예술가들은 자신의 작품을 우리 주차장에 전시했다. 토론토 최초로 시도된 이 행사는 그 뒤로도 8년간 우리 모텔의 좋은 홍보수단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이 이벤트는 이제 북미 최대 규모의 야외 아트쇼가 되어 매년 토론토 시청에서 열리고 있으며, 올해(2011년 기준)로 44주년을 맞는다.


에디는 머레이가 준비한 이벤트의 후속조치로 당시 토론토 상류층이나 사회지도자층 대부분을 손님으로 두고 있던 크리드 상점의 고객 명단을 빌려와 우리가 후원하는 자선파티와 아트쇼 등에 초청했다. 이 명단 덕분에 우리는 <토론토 텔레그램>의 사회부 기자인 지나 체리를 우리 편으로 삼을 수 있었다. 우리 모텔에서 자선행사가 열린다는 소식이 매체를 통해 퍼지면서 유명인이라면 누구나 우리 자선행사의 오프닝에 참석해 오케스트라, 오페라, 예술가를 후원하고 더불어 우리 모텔도 함께 지지해 주었다. 우리는 1961년에 지대한 매스컴의 관심을 받으며 문을 열었고, 개장 후에도 바로 맞은 편에 위치한 CBC 방송국 본사 덕분에 지속적인 관심을 받았다.



포시즌스라는 문화를 만들다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의 전환점을 찾다

그때까지 나는 부동산 개발을 전문으로 하는 건축업자로, 호텔 사업은 그저 부업 정도로만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토론토에 있는 대규모의 컨벤션 호텔을 운영하면서 느낀 감정과 런던의 최고급 호텔에서 상류층을 상대로 서비스를 제공하며 느낀 편안함의 차이는 내가 진실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었는지를 드디어 깨닫게 해주었다. 그것은 바로 세계 최고급 호텔 그룹을 만드는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가장 열정적으로 하기를 원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머레이와 에디는 세계 최고의 호텔 그룹을 세우겠다는 나의 비전에 강력하게 반대했다. 다양한 계층을 수용하는 일반적인 호텔이 아닌, 특정 상류층만을 타켓으로 하는 호텔을 짓는 것은 매우 위험한 도전이라 여긴 둘은 내가 과대망상에 빠졌다고 생각했다. 우리 회사 간부들도 대부분 머레이와 에디의 말에 동의했다.


하지만 나는 이미 결심을 굳힌 상태였다. "우리는 더 이상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키려는 누구든 오세요 식의 호텔이 되지는 않을 것이네. 우리는 앞으로 오로지 한 분야에 집중할 걸세. 오로지 중간급 규모로 아주 특별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특급 호텔이 될 거야. 전 세계 어느 곳에 있던지 간에 그 지역 최고급 호텔로 인식될 수 있는 그런 호텔말일세."


새로운 결심의 실행 첫 단계로 나는 우리의 새로운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호텔은 그 무엇도 예외 없이 퇴출시켜 버리기로 다짐했다. 나는 더 이상 내가 건설업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이제 뚜렷한 목표가 있는 호텔 사업가였다. 나는 우리가 런던에서 해낸 일을 세계 어디에서도 해낼 수 있다고 믿었다. 바로 세계 최고가 되는 일이었다. 이 강력한 신념에 대한 의지가 과연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스스로에 대한 의심을 꺾었고, 그 누구도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아이디어를 흔들림 없이 강행할 자신감을 불어 넣어 주었다. 그러자 곧바로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도대체 어떻게 가능하게 만들 것인가?


황금률의 법칙

조직의 위에서 아래까지 모두를 관통하는 하나의 목적을 반드시 심어야 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회사를 하나로 모으고, 정확히 구성원들이 어떻게 행동하기를 기대하는가를 명시해 줄 선언문이 필요했다. 직원들이 이런 식의 거래, 결정, 행동이 우리가 지닌 가치관과 일치하는가?를 자문할 때 참고할 수 있을 만큼 명확한 무엇이 필요한 것이었다.


우리 회사의 광고 책임자, 더그 홀은 우리의 목표, 신념, 원칙들을 요약해 황금률을 토대로 한 공식 선언문을 만들었다. 다른 사람이 당신을 대하기를 바라는 대로 다른 이에게 행하라.


나는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에 대해 흔들린 적이 없었다. 상사는 명령을 내리기 위해 존재한다고 믿는 지휘관 타입의 간부들은 이제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려는 직원들에게 조언하고, 지지해주는 역할을 배워야 할 것이었다. 또한, 지위에 의존해 권위를 내세운 독재자들은 직원들로부터 인간적인 존중을 받음으로써 권위를 되찾는 법을 알아야 했다. 계산기만 두들기던 사람들도 앞으로는 현상뿐만이 아니라 감정도 고려해야 할 것이었다.


모든 분야에서 우리는 책임을 아래로 위임하기 시작했다. 본사의 책임을 각 호텔 총지배인들로, 총지배인에서 부서장들로, 다시 접객 담당 직원들로 책임을 위임해 나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르바이트 직원에게까지도 고객을 만족시키기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결정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권한을 위임했다.


동시에 나는 전도사가 되어 각 호텔을 방문할 때마다 틈만 나면 서비스라는 복음을 설파했고, 지속적으로 이 내용에 대해 말하고 명확하게 설명해 주었으며, 내용을 점점 발전시켜 나갔다. 내가 할 일은 모든 직원들이 손님을 기쁘게 한다는 단 하나의 목적에 집중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매니저들은 직원을 기쁘게 한다는 결과에 집중하도록 노력했다. 물론 불가피한 실수들이 여전히 발생했지만, 아무도 서로를 탓하거나 비난하지 않았다. 서비스의 품질 향상에 방해가 되는 모든 장애물들을 없애는 데에만 1980년대 초반 몇 년이 걸렸다.


황금률을 따름으로써 생겨난 조직 구성원간의 신뢰는 최선을 다해 지키려 노력한 우리 회사 신념 체계의 중심축이 되었다. 신뢰는 회사와 구성원 사이의 업무 태도를 바꾸어 나갔고, 회사 내부에는 서로간의 신뢰와 그 결과로 인한 행동 규범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계속해서 우리가 회사의 신념을 확립시켜 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본 직원들은 서서히 스스로를 보호하고 자신만을 위하던 이기심을 회사에 대한 염려와 애정으로 바꿔 나갔다.


황금률을 우리의 핵심적인 행동 가이드라인으로 절대 사수한 것은 회사의 미래를 형성하는 데에 있어 가장 중요했던 결정이었다. 우리는 우리만의 문화, 포시즌스 문화를 가지고 있는 강력한 조직으로 서서히 변해갔다.


남들과 다르다는 것이 가장 큰 경쟁력

의사소통은 마땅히 양방향 도로와 같아야 한다. 우리는 총지배인들이 직원을 교육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직원들도 그들을 교육시키도록 했다. 모든 호텔의 각 부서에서 직원들은 그들의 대표를 뽑았고, 관리 감독 관계에 있지 않은 이 직원 대표들은 매달, 분기별로 총지배인들과 만났다. 총지배인들은 직원대표들에게 호텔의 경영실적을 알려 주고, 직원들이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 또는 개선 방향이 있다면 그게 무엇인지를 명확히 이야기해 주었다.


총지배인들은 직원들이 자신에게 이야기한 사항들을 즉시 각 부서 매니저들에게 전달했고, 이들은 직원들이 근무를 시작하기 전에 사전 브리핑을 해줌으로써 직원들이 건의한 사항을 매니저들이 모르고 있다거나, 매니저들이 직원들과의 관계에 소홀하다고 느껴지지 않도록 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자신의 업무와 회사를 위해 추가적인 노력을 하는 직원들을 찾아내어 여러 가지 방법으로 보상해 주었다. 우리는 성취해야 할 목표들에 관련한 실적에 대한 피드백을 확실하게 준다. 점수판에 적힌 수치들은 모두 팀에게 좋은 자극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목표가 달성될 때마다 아낌없이 축하해 주었고, 직원들의 모든 노력을 인정해주었다.


이러한 굳은 신뢰와 존경으로 둘러싸인 환경 속에서 모두의 기대를 충족시킬 정도로 실적이 오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 직원들은 자신의 의견이 조직에서 중요하게 받아들여진다고 느꼈고, 그들이 하고 있는 일이 실제로 회사에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 직원들은 드디어 회사가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 결과적으로는 그들 자신을 성장시키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일에 도전하는 즐거움

비즈니스 파트너들이 평생의 친구가 되다

내가 무모함을 무릅쓰고 우리는 반드시 세계 최고의 호텔 그룹을 만들 것이라며 다니는 곳마다 말하고 다녔지만, 세계 최고의 호텔을 만든다는 것은 비단 서비스 분야에서 최고가 된다는 것뿐만이 아닌, 당시 우리가 미국에 짓고 있던 호텔들을 포함해 고객들에게 제공하는 모든 분야에 있어서도 최고가 되겠다는 무언의 표시였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우리가 원하던 모든 기회가 주어졌다. 우리 호텔의 명성은 순식간에 입소문을 탔고, 많은 호텔 개발업자들이 우리에게 거래를 제안해 왔다.


나의 거의 모든 파트너들은 함께 일하는 업무적인 관계뿐만 아니라 상호간의 이익과 신뢰를 기반으로 형성된 개인적이고 친밀한 관계를 맺었다. 내가 회사의 감정적인 자산이라고도 부르던 이러한 보이지 않는 관계는 사람들이 쉽게 간과하는 성공의 또 다른 중요한 요인이었다.


그 어떤 호텔 그룹도 우리와 파트너들 사이의 계약을 따라 할 수 없었다. 우리의 계약 기간은 보통 30년을 기본 단위로 맺어졌고, 계약이 완료된 시점에서 다시 한 번 같은 내용으로 재계약을 할 수 있는 옵션이 있었다. 즉, 우리와 한 번 계약을 하면 적어도 평균 60년간은 지속될 계약을 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우리는 순수익의 일정 부분을 분배 받았을 뿐만 아니라, 매출에 따른 인센티브까지 받았다. 호텔이 꾸며질 형태와 사용 용도마저 단독으로 결정할 권한이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모든 것을 우리 뜻대로 하겠다는 얘기는 아니었다. 호텔 건축을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늘 소유주들과 충분히 상의를 했고, 그들의 바람과 의도를 주의 깊게 살피면서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우리의 계획에 수용하려고 노력했다.


고객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놓고 많은 고민을 한 우리는 다른 지역이나 나라로 여행갈 형편이 되는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는 중요한 이유는 각 지역과 나라만의 문화적 다양성을 경험해 보고 싶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는 포시즌스가 있는 각기 다른 지역과 나라의 문화적 특성에 맞춰 미술품과 가구 등을 배치하는 방법으로 다른 호텔과의 차별화를 꾀했다.


우리는 계속해서 우리 고객들을 더 생산적이고 편안하게 해줄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았다. 첫 번째, 포시즌스에서 우리는 전화기를 침대 옆에만 두지 않았다. 우리는 화장실에도 두 번째 전화기를 설치했다. 샤워를 하고 있거나 화장실을 사용하고 있을 때도 신속하게 전화를 받고, 혹시 모를 응급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조치였다. 또 다른 혁신은 두 개의 스탠더드형 객실을 하나로 붙여 미니 스위트룸으로 개조한 것이었다. 우리는 최상급 프렌치 도어를 이용해 출장온 간부급 비즈니스맨들이 편안하게 업무를 보고, 휴식을 즐기면서, 소규모의 개별 미팅을 진행할 수 있을 정도로 넉넉한 크기의 거실을 넓은 침실로부터 분리시켰다. 우리가 포시즌스방이라고 이름 붙인 이 미니 스위트룸은 아기자기하고 친밀한 느낌을 주었는데, 풀 스위트룸의 기능을 지녔으면서도 가격 면에서 부담이 훨씬 덜해 고객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우리는 이후에 우리의 모든 호텔에 이 콘셉트를 도입했는데, 경쟁업체들도 얼마 되지 않아 비슷한 유형의 객실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매번 새로운 호텔을 열 때마다 우리는 이 호텔이 그때까지 지은 것들 중 최고로 잘 지은 호텔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가 되면 그제서야 공사를 마무리했다. 장기적인 안목을 지닌 우리의 비즈니스 파트너들은 대부분 우리의 생각을 충분히 이해해 주었고, 다행히 우리의 방식에 동의했다. 그들은 비록 까다롭기는 해도 한 번 포시즌스가 요구하는 사양에 맞게 지어진 호텔이라면, 그들의 손자 세대에 가서도 자랑스러울 만큼 훌륭한 부동산을 소유하게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의 품격

결국 사람이 답이다 - 포시즌스 네비스

일본과 하와이에서 호텔을 짓고 있던 와중에 우리는 또 카리브해에서 그 시대에 가장 중요한 호텔로 기억될 만한 호텔을 하나 개발하고 있었다. 그것이 특히나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된 이유는 네비스(Nevis, 과거 영국령 서인도 제국의 섬)에서의 경험이 우리가 잘 모르는 세계에 진출할 때 어떤 식으로 개발을 해내가야 하는가를 교과서처럼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섭씨 32도를 넘나드는 무더운 어느 날, 활기찬 섬 사람들에 둘러싸인 채 두메즈 건설사와 네비스의 부총독과 함께 이곳에 리조트를 짓기로 계약했다. 네비스는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젊은이들이 할 만한 일이 없었다. 따라서 젊은이들 대부분은 학교를 마치기 직전이나 직후에 곧바로 섬을 떠났다. 섬에는 9천여 명밖에 남지 않았는데, 그 중 3천 명이 일하기에는 너무 나이가 많은 노인들이었고, 나머지 3천 명은 너무 어렸다. 그나마 남은 3천 명 중에서 존은 호텔이 개장하기 전에 대략 500명 정도의 쓸 만한 인력을 추려낼 수 있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은 존이 학교가 끝난 후에 학생들을 직접 가르치기 시작했다. 존은 학생마다 능력을 메모해 가며 회계, 음식 서비스, 골프 시설 유지보수, 기타 다른 기능 등 호텔의 체계와 호텔에 필요한 모든 역할에 대해 각 반의 학생들에게 설명했고 그들이 졸업하자 많게는 20명씩 조를 짜서 캐나다와 미국에 위치한 우리 호텔로 보내 네비스 호텔 개장에 대비해 일을 배우도록 했다.


리조트는 1001년 2월 15일에 개장했으며, 그날이 모든 국제 여행 업계에 큰 타격을 가져온 걸프전이 시작된 주였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성공적인 시작을 알렸다. 여행 전문작가들은 포시즌스의 새로운 리조트가 문을 열었다는 소식에 열광했고, 특히 우리가 제공할 서비스의 내용을 무척이나 반겼다.


포시즌스 네비스가 개장한 지 1년쯤 되었을 때 나는 존 스타우스에게 "이렇게 능력 있는 일꾼들을 배출해 낸 성공 요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당신이 교육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전에 한 번도 호텔에서 일해본 적 없었고, 대다수는 아예 일 자체를 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었잖아요?" 하고 물었다. "제 생각에는 단 두 단어로 회장님의 질문에 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라며 존이 말했다. "인내력과 이해심입니다."


그는 국제적인 호텔의 고품격 서비스가 무엇인지 알기는커녕, 서비스를 한다는 것 자체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그들만을 위한 특별 훈련 프로그램을 만들어 낸 것이었다. 존은 오로지 모든 사람들의 태도를 관찰하며 어떤 사람에게 일을 맡길 것인가를 결정한 다음 인내심 있게 그들에게 우리가 어떻게 그리고 왜 이런 일들을 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완벽하게 숙달될 때까지 직원들이 스스럼없이 질문하고 연습할 수 있도록 조치한 것이었다.


네비스에서의 성공은 전 세계 그 어떤 곳에서도 포시즌스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까 염려하던 우리의 우려를 말끔히 해소했다. 우리는 신중하게 각 지역 주민들을 고용해서 그들에게 우리가 지닌 서비스의 기준을 완벽히 터득할 기회를 주고, 그들만의 진실된 방법으로 우리의 서비스를 손님들에게 전달하게 하면 되는 것이었다. 마치 존 스타우스와 그의 팀이 네비스에서 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이제부터 전 세계에서 가장 이국적이면서 개발이 저조한 지역에 호텔을 세우기 위해 우리가 한 일들이 되었다.



우리만의 리그

고객만족이란 무엇인가?

포시즌즈 호텔 앤 리조트들과 다른 호텔, 리조트들 간의 차이점은 네 가지의 중요한 요소들이 만들어낸다. 서비스 품질 문화 브랜드이다. 이 네 가지 본질적인 특성은 매일 오전 회의라는 의식절차로 보여지고, 행동으로 옮겨진다.


우리는 단 한 가지 목적을 가지고 회의에 임한다. 그것은 바로 손님이다. 회의는 호텔에 어떤 손님들이 묵고 있는지에 대한 개요를 말하는 우리 고객관리 매니저로부터 시작한다. 우리의 회사 조직도를 보면 이 고객관리 매니저가 맡은 일은 각 부서장의 역할과도 같다. 호텔의 새로운 손님들, 좀 더 머물게 된 손님들, VIP 손님들 그리고 특별한 관심이 필요한 손님들에 대한 사항에 대해 얘기한다.


고객관리 매니저는 당일 체크인하는 VIP들과 단골 손님들에 대한 개요를 시작으로 회의를 시작한다. 그런 다음 고객관리 매니저들은 각 서비스 본문의 담당 매니저들에게 이렇게 묻는다. "객실은 어떻게 준비시킬 겁니까? 저자극성 베개가 필요한 고객은 어떤 분이지요?" 이렇게 우리는 특별한 주의가 필요한 손님들에 대한 대화로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그 다음으로는 우리가 글리치 리포트라고 이름 붙인 전날의 실수들에 대한 검토를 진행한다. 글리치 리포트는 모든 호텔 부서가 호텔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으며, 그것이 어떤 손님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알려준다.


우리는 한 객실에서 턴다운 서비스(하루에 두 번 하는 객실 청소)를 하지 않은 것과 같은 비교적 간단한 문제에서부터 시작해 회의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책임 부서 매니저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지에 대한 설명을 듣는다. 책임 부서 매니저는 문제의 근본까지 발견해 지적하며, 손님의 시야에서 그 문제가 고쳐지도록 어떠한 조치를 할 것인지를 모두에게 발표한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문제를 올바르게 바로잡는 것은 진심에서 우러나온 사과로부터 시작한다.


우리는 직원들에게 그들이 일을 처리하는 데 필요한 모든 도구들을 제공해 주고, 우리가 그들에게 바라는 기대와 수준이 무엇인지도 말해준다. 만약 우리가 실수를 했다면 우리는 진심으로 미안해하며, 사과하고, 그 실수를 바로잡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이러한 작은 실수에 대한 문제 제기는 우리가 어떻게 서비스를 제공하는지에 있어 핵심적인 사안이다. 그리고 이것은 직원들이 직장에서 느끼는 안정성과 자신감에도 도움이 된다. 만약 그들이 자신의 직장에 편안함과 고용에 대한 안정감 그리고 우리가 그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고 느낀다면 직원들은 우리에게 실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서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글리치 리포트에 대한 사안이 끝나면, 우리는 다음으로 호텔의 전날 영업 실적에 대해 이야기한다.


회의는 최대한 간략하게 한다. 45분을 넘기지 않는다. 오전 회의의 목적은 사람들에게 힘을 불어 넣어주고, 그 전날 각 부분에서 느슨해진 곳의 매듭을 짓고, 하루를 제대로 시작하기 위해 필요한 자세를 갖추기 위해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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