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빈 바우어, 맥킨지의 모든 것

   
엘리자베스 하스 에더샤임(역자: 안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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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비즈니스
   
20000
2006�� 09��



■ 책 소개
망해가고 있던 회계 및 엔지니어링 회사 맥킨지를 고위경영자들과 정부 기관을 위한 뛰어난 조언자로 변모시킨 마빈 바우어. 그는 89세의 놀라운 나이로 공식적으로 퇴임하기까지 59년 동안 맥킨지의컨설턴트에게 항상 고객의 이익을 먼저 생각해야 하고, 윤리적으로 행동해야 하며, 고객에게 진실을 말해줘야 한다는 경영철학을 심어 주었다.무엇보다 "경영 컨설팅"이라는 직종을 창조하였으며, 맥킨지가 「포춘」 선정 500대 기업의 대부분을 고객으로 만들도록 이끌었다.

 


이 책은 오늘날의 맥킨지가 있기까지 비전과 리더십 그리고 창의력의 근간이 된 마빈 바우어의 모든 것을담았다. 한 명의 리더가 가진 열정과 그가 추구한 경영철학이 어떻게 해서 거대한 조직 전체에 녹아들어 세계 최고의 전문가 집단을 형성시킬 수있었는지 생생히 소개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개인적인 믿음과 직업적 경험, 에너지와 가차 없는 결단력, 이타적인 헌신 등 마빈 바우어의 훌륭한업적이 탄생되기까지의 일들을 마빈 본인의 도움과 그의 친구, 동료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흥미진진하게 풀어놓는다. 


■ 저자 엘리자베스 하스 에더샤임
마빈 바우어와 함께 1년 남짓한시간 동안 이 책을 공동 작업해 마빈의 작고 직전에 원고를 완성했다. MIT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1979년부터 1988년까지 맥킨지에서일했다. 그녀는 클리블랜드 사무소의 첫 번째 여성 파트너였고, 회사의 운영 및 제조 업무를 담당한 글로벌 리더였다. 또한 그녀는 맥킨지에서 나온뒤 뉴욕컨설팅파트너스를 설립했고, 회사가 매각될 때까지 13년 동안 상무이사를 역임했다. 현재 수많은 회사들을 위해 전략 고문으로 일하고있으며, 이 가운데 3개 기업이 「포춘」의 500대 기업에 속한다. 「뉴욕타임즈」「하버드비즈니스 리뷰」「월스트리트저널」 등에 기고한 칼럼만도수십 편에 이른다. 
 
■ 역자 안진환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를졸업했다. 번역전문회사 인트랜스의 대표이다. 옮긴 책으로는 『빌 게이츠@생각의 속도』『실리콘밸리 스토리』『애덤 스미스 구하기』『판도라의시계』『포지셔닝』『협상의 법칙』『기업혁신의 법칙』『변호사처럼 설득하라』『미운오리새끼의 출근』『괴짜경제학』『체스터필드, 최고의 인생』『행복』등이있다.


■ 차례
추천의 글 1 ― 마빈이 남긴 위대한 유산 
추천의글 2 ― 맥킨지의 비전, 리더십, 창의력, 경영 컨설팅을 완성하다 
머리말 ― 마빈을 직접 만날 수 없는 "내일의 비즈니스 리더들"에게


제1부 맥킨지의 비전을 현실로 
1장 맥킨지의 경영철학을 만든 마빈 바우어 
2장 맥킨지의비전을 제시하다 
3장 회사의 이익보다 고객의 이익을 따지는 경영 컨설팅 
4장 리더십과 그 영향력의 결정적 순간들
 
제2부 리더의 리더, 경영 컨설팅의 아버지 
5장 마빈 바우어의 파워와 영향력 
6장 조직에 용기를 불어넣다
7장 리더를 육성하고 권한 부여를 가르치다 
 
부록 1 ― 연표 
부록 2 ― 마빈 바우어 약력 
부록3 ― 1964년 맥킨지&컴퍼니 "파트너 회의" 연설문





마빈 바우어, 맥킨지의 모든 것


제1부 맥킨지의 비전을 현실로
맥킨지의 경영철학을 만든 마빈 바우어

1903년에 태어난 마빈 바우어는 전깃불이 들어오는 집에 살았다. 이는 미국에서도 극소수였다. 거의 100년이 지나 마빈 바우어가 플로리다에서 타계했을 때 그는 경제계와 경영계, 기술계에서 에디슨과 같은 존재가 되어 있었다. 그의 직업은 사실상 스스로 발명해낸 직업이었다. 최고경영층컨설팅이라는 게 그의 직업이었다. 거의 망해가던 회계 및 엔지니어링 기업 맥킨지&컴퍼니를 재계 및 정계의 고위 경영인들을 위한 위대한 조언자로 탈바꿈시킨 그의 임기는 1933년부터 89세의 나이로 공식적으로 퇴임했던 1992년까지, 자그마치 59년이라는 놀라운 숫자였다.


마빈은 브라운대학교에서 학업을 마친 뒤 아버지의 충고에 따라 하버드대학교 법학대학원에 진학했다. 마빈은 대학원 학자금을 스스로 조달할 수 있었다. 여름 방학 동안 일한 수많은 직장에서 돈을 모아두었고, 1925년경 주식투자에 성공해 학비를 충당할 수 있었다. 1920년대에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주식시장에서 돈을 벌었지만, 22세의 청년이 그토록 신중한 투자가가 되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었다.


마빈이 법학대학원을 마쳤을 때 그는 자신이 자랑스러워할 수 있을 회사로 들어갈 결심을 했다. 그는 매우 존경받는 클리블랜드의 법률회사 존스데이리비스&포크를 목표로 삼았다. 그러나 그 회사가 자신에게 일자리를 제의할 만큼 법학대학원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기 때문에, 일단 성적을 높이기 위해 당시 막 싹을 틔우고 있던 하버드 경영대학원에 진학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1930년 경영대학원을 졸업하고 존스데이리비스&포크의 기업 법률 업무 부서에 입사했다. 3년 뒤 회사를 떠나 과감히 경제계로 뛰어들었다. 마빈은 당시 제임스 O. 맥킨지의 회계 및 엔지니어링 기업에 합류했다. 6년 후 그는 이 회사를 사들였고 그것이 경영 컨설팅이라는 새로운 직종에서 최고의 기업으로 변모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마빈 바우어의 재계 진출은 전 세계 경영계에 크나큰 파급 효과를 가져왔다. 그는 성공적으로 뛰어난 조직을 만들었고, 이를 통해 하나의 직종을 창출해냈으며, 동시에 수천 명의 리더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마빈의 직업적인 생애는 사람들에 대한 헌신과 고객회사들의 성공에 대한 심려, 중대한 아이디어의 보급, 그리고 완벽한 청렴성으로 점철되었다. 거의 100년에 이르는 그의 일생 동안 경영은 2류 직업에서 ― 이를 그나마 직업으로 여겨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말이다 ― 전 세계 경제를 이끄는 엔진으로 변모했다.


1950년대 마빈은 컨설팅 분야의 금과옥조를 대표하는 전문가로서 그의 지위를 확고하게 확립했다. 맥킨지 고객들의 전적인 신뢰와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사람이 된 것이다. 마빈은 돈을 위해 돈을 버는 일은 절대로 인정하지 않았다. 고객과 파트너, 그리고 자신의 가치관을 향한 그의 헌신은 보기 드문 것이었다. 그는 위대한 서비스 기업은 뛰어난 능력과 경험을 바탕으로만 세워지는 것이 아니며,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품행과 행동양식을 토대로 세워진다고 믿었다. 그는 경제계와 세계 전반의 복지를 향상하고자 하는 한결같은 헌신으로 재계 및 지역사회의 다양한 공공사업에도 참여했다.


마빈의 긴 인생을 뒤돌아보면 토머스 E. 에디슨의 인용구가 떠오른다. "나에게 아이디어는 넘쳐나지만 시간은 부족하다. 100년 정도만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회사의 이익보다 고객의 이익을 따지는 경영 컨설팅
― 전문가들이 모인 경영 컨설팅 기관, 맥킨지&컴퍼니
마빈은 전문직 경력 초창기에 수많은 위대한 기관이 실패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또한 대공황의 절망스러운 기간 동안 직원들을 존중하고 성장과 최고의 성과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직원들에게 부여하는, 존스데이라는 높은 역량의 전문기업이 가진 파워를 목격했다. 마빈은 맥킨지&컴퍼니가 이와 비슷하게 직원들에게 권한을 부여하려면 서열적인 구조를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이는 공황기 동안 많은 기업의 실패 원인이자 CEO에게 전달되는 모든 중대한 정보 흐름의 장벽이었다. 그러나 1939년에는 사실상 거의 모든 조직이 명령과 통제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는 다음의 요소들을 지닌 조직을 향한 비전을 품었다.


*다수의 사무소를 둔 전국적인 조직
*공통의 가치관(여기에는 이의를 제기할 권리와 의무가 포함된다), 공통의 문제 해결 및 행동 지향 철학을 강력한 기업 특징으로 삼는 연합 소유권 조직
*기업에 입사해 기업의 성격 표현에서 적극적인 참여자가 될 것이며, 지속가능한 경제성으로 지원받을 높은 역량과 재능을 가진 헌신적인 인재
*외부요인에 대한 민감성/자기만족에 대한 혐오
*기관의 생존력이 한 세대의 리더들에게만 의지하지 않도록 리더십을 혁신하는 것


전문가적 가치관은 개인적인 가치관이 아니다. 이 둘은 본질과 목적을 달리한다. 예를 들어 법률 직종의 9가지 규범 중 5가지는 기밀성, 신뢰를 쌓는 것, 부정행위를 피하는 것, 고객의 이익을 우선하는 것, 그리고 능력에 관한 것이다. 나머지 4가지는 그 직업을 발전시키고 이를 경쟁에서 보호하는 것에 관한 내용이다. 그러나 마빈 바우어는 개인적인 가치와 똑같은 엄격함과 성실함을 가지고 경영 가치관에 따른 삶의 힘을 보여준다. 그는 경영 가치관은 사고방식을 확립하며 의사결정과 실행을 위한 나침반을 정립해준다고 믿었다.


경영 가치관은 기업의 더 나은 장기적인 수익을 보장해주면서 기업의 목표, 경쟁수단과 고객을 대하는 지침을 제공한다. 경영 가치관은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수단의 신중한 선택을 이끌어내며, 이를 추구하는 데 모든 종류의 의사결정을 위한 가이드라인 역할을 한다. 전문가적 가치관은 재정적인 목표와 다르다. 마빈이 종종 언급했듯이 재정적인 문제를 무시할 수 없지만 기업의 목표가 재정에 관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기업은 고객을 만족시키는 데 실패하고 이는 궁극적으로 수익의 하락으로 이어질 것이다. 마빈은 경영 가치관과 가치를 기반으로 한 논리, CEO들과의 업무에 대한 확신, 경영 문제의 분석과 해결, 스스로 거듭나는 기관의 창출 등 이 모든 것을 통합시켰다.


마빈의 성공과 이를 보고 배운 이들의 성공은 다음의 가치 중심 리더십 자질에서 나온 것이다.


① 고객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삼고 공과 사를 구분한다 : 아이젠하워는 1967년에 리더십에 대해 쓴 편지에서 마빈에게 받은 조언을 "내가 깊이 존경하는 인물의 조언"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마빈이 "항상 자기 자신보다 자신의 일을 더 중요하게 여겨라"라고 말했다고 썼다. 이런 발전의 잠재력을 통해 마빈은 자신의 강점뿐 아니라 약점까지 파악할 수 있었고 고객을 위해 최선인 일을 할 수 있었다.


② 일관성을 갖되 개방적인 자세를 취하라 : 마빈은 그의 가치관, 문화, 사명 그리고 타인을 향한 존중에서 한결같았다. 그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자신의 신념이 어떤 것인지, 자신이 성취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③ 사실과 일선의 정보를 문제 해결의 초점으로 삼는다 : 사실을 향한 마빈의 숭배는 가히 전설적이다. 그는 "비즈니스 행동을 위한 환경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외부 요인들을 포함해 항상 본질적인 사실들을 수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④ 문제와 의사결정을 전체적인 맥락에서, 즉시 취해야 할 행동의 관점에서 검토한다 : 마빈은 사실의 중요성을 높이 평가하긴 했지만, 고립된 사실들은 해결책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믿었다. 오히려 사실이 이끄는 곳이 어디인지 볼 수 있는 상상력과 정황을 가지는 것으로 해결책과 길이 마련된다고 생각했다.


⑤ 직원들이 항상 최선을 다하도록 격려하고 이를 촉구한다 : 마빈은 어떻게 해서든 회사와 업무가 각 구성원에게 매우 중요하도록 만들었다. 그것은 직원들 대부분의 생활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것이 되었다. 그 누구보다도 더, 끊임없이, 그리고 셀 수 없이 많은 방법으로 이를 위해 힘써서 그런 환경을 만들어낸 장본인이다. 부담스럽지 않은 조언을 해주기도 하고, 트레이닝 회의를 갖기도 했으며, 직원들과 대화를 하고 메모를 보내기도 했다. 동시에 마빈은 무자비하기도 했다. 예컨대 낭비란 있을 수 없었으며, 컨설턴트들은 점심시간도 전에 함께 일했거나 앞으로 일할 가능성이 있는 고객들과 만나고 계속 연락을 취하기 위해 사용해야 한다고 믿었다.
 
⑥ 구성원 각자가 회사의 가치관을 이해하고 포용하고 이를 행동으로 전환하도록 가치관을 거듭 전달한다 : 마빈은 전달 내용이 진부해지지지 않고 사람들이 듣고서도 이를 무시하는 일이 없도록, 지속적으로 회사의 특성을 형성한 가치가 무엇인지 설파했다.


리더십과 그 영향력의 결정적 순간들
― 하나의 맥킨지라는 정체성으로 세계 진출, 1959년
맥킨지가 국제적인 기업이 되어야 한다고 마빈이 확신하게 된 것은 1953년 포르투갈로 여행을 하고 있을 때였다. 마빈이 여행을 하고 있던 즈음, 미국 회사들이 유럽에 사무소를 설립하거나 유럽 회사들을 인수하는 등 세계적인 확장을 위한 추진력이 형성되고 있었다. 고객들이 미국 바깥의 관심사를 위해 맥킨지의 컨설팅 서비스를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기 시작한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마빈과 길 클리가 세계적 확장을 처음 제안한 뒤 첫 유럽 사무소가 런던에 개설될 때까지 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이것은 아마도 맥킨지의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동안의 논쟁이었을 것이다. 마빈은 참을성이 뛰어나거나 우유부단한 리더가 아니었다. 많은 문제들이 걸려 있었으며 많은 것들이 위험에 처해 있었다.


6년이라는 시간 동안 길 클리는 메모나 제안서, 계획서 등을 통해 지지를 결코 게을리 하지 않았다. 회사가 이런 움직임이 현명한 일인지 논쟁하고, 하나의 맥킨지라는 정체성이 유럽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동안에도 유지될 수 있도록 보장해줄 정책들과 절차들을 시험하는 동안 미국 내 고객들 역시 맥킨지가 서비스의 범위를 유럽까지 확장시켜야 한다는 의견을 계속 지지했다.


국제적으로 확장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에 대한 논쟁은 이점과 손실을 둘러싸고 집중되었다. 이점으로 맥킨지의 기존 고객 기반에서 나오는 해외 서비스의 수요 증가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능력, 통신과 교통의 발전 등이 점점 세계화를 가능케 한다는 시대상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 포함되었다.


반대로 손실에는 맥킨지의 미국 내 활동이 수익성이 있으며 회사가 수용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데, 왜 미국 내(예컨대 디트로이트나 애틀랜타 등)에 사무소를 열기 위해 자원을 할당하는 대신 굳이 해외 사무소를 개설하여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는 성공적인 사업에 쓸 수 있는 자원을 소모하느냐는 주장이었다. 더군다나 유럽 회사들은 수임료에 망설이게 될 것이며 가족 경영기업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맥킨지&컴퍼니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최고경영진 접근 방법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마빈과 길이 끈질기게 설득한 결과 파트너들의 지지가 증가했다. 맥킨지가 뉴욕 사무소 출신의 가장 똑똑한 최우수 인재들을 전국적인 사무소 개설을 위해 파견했듯이 가장 강력한 국내 재원의 일부가 유럽으로 건너갔다. 맥킨지의 미국 사무소들에게는 쉬운 희생이 아니었다. 그리고 전국적인 성장에 대한 마빈의 비전과 일관성을 이루며 맥킨지는 단일 정체성, 하나의 맥킨지라는 발상을 유럽에도 적용했다. 다른 무엇보다도 이는 유럽에서 직원들의 보수와 수임료가 미국 사무소와 일치한다는 의미였다. 런던 사무소의 설립은 미국의 경영 전문가들을 이끌고 영국에 진출한 그 자체만으로 놀랄 만한 자기 성취였다. 1966년에 런던 사무소는 뉴욕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사무소가 되었다. 


맥킨지의 세계적 확장은 경이적으로 성공을 거둔 것으로 판명되었지만 이는 맥킨지가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이었다. 모두에게 놀랍게도 기회는 미국 기업들의 해외 사무소에 있었던 게 아니라 오히려 유수의 유럽 기업들에 있었다. 유럽에서 맥킨지&컴퍼니는, 적은 수라고 할 수 없는 미국 기업들의 유럽 사무소들과 함께 일할 것이라는 원래의 생각과는 달리 현지 유럽 기업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마빈은 이를 전략적 기회주의라고 표현했고, 이렇게 시작한 것이 결국 경영 컨설팅의 역사에서 가장 강력한 결과물들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제2부 리더의 리더, 경영 컨설팅의 아버지 
조직에 용기를 불어넣다

― 글로벌 리더의 조직 구조상 전통에 대한 도전 로열더치쉘, 1956년
1956년에 로열더치쉘의 사장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존 라우든은 회사의 기존 조직이 효율성의 종말을 맞게 될 위험에 처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국적이며 복잡한 기업인 로열더치쉘은 중대한 조직상의 문제가 있었다. 1907년에 로열더치석유회사와 쉘운송무역회사 간의 합병으로, 시작된 로열더치쉘은 반세기가 지난 후에도 여전히 원래의 조직적 구조로 운영되고 있었다. 조직은 의사결정을 위해서 중앙집권적 통제에 의지했고 경영에 있어서 획일적인 문화를 강조했다. 이런 구조가 다른 제조회사들보다 먼저 세계로 진출하기 위한 회사의 능력을 발전시켜준 것은 분명하지만 1956년쯤 그런 구조는 경제성을 잃었고 더 중요한 것은 의사결정 속도가 경쟁사들에 비해 느렸다는 것이다.


존 라우든은 로열더치쉘의 복잡하고 전세계적인 운영에 필요한 것들을 중점적으로 다루기 위해서는 조직상 변화가 요구된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런 대규모 글로벌 기업 같은 경우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 그는 로열더치쉘의 일부인 베네수엘라의 CSV(Compania Shell de Venezuela)부터 시작하기를 원했다. 그곳에서 조직상의 재설계를 통해 변화를 위한, 의미 있는 파일럿 테스트를 실시하기로 한 것이다.


베네수엘라에서의 작업은 맥킨지가 미국 외부에서 맡은 첫 번째 중요 연구였다. 마빈은 연구 첫 3주 동안 4명의 어소시에이트들과 긴밀하게 일했다. 계속해서 가설들을 다듬고 팀원들에게 일을 진행하기 위한 최상의 방법에 대해 충고하면서, 낮에는 경영인들과 토론하고 저녁에는 팀과 함께 노트를 비교해보곤 했다.


연구팀은 베네수엘라를 기준으로 해서 헤이그 및 런던과 통합적으로 상호작용하기 위해 최적의 틀을 개발해내는 동시에 CSV의 내부 구조를 조직화하는 데 초점을 맞춘 보고서를 작성했다. 하나의 운영회사를 만드는 것, 13개의 독립된 사업의 일부를 분명한 권한과 책임이 있는 6개 사업으로 통합하는 것, 그리고 이들이 잘 연계되도록 하기 위해 CSV 경영 팀을 만들어 통계적, 재정적 정보의 흐름(또한 그 결과 커뮤니케이션의 흐름)을 강화하는 것이 우리가 제안한 조직 구조였다. 이런 권고 사항들은 채택되었으며, 베네수엘라에서 매우 효과가 있게 되면서 이 운영회사의 철학은 본사 조직에 대한 연구를 용이하게 해주었다.


마빈이 이 프로젝트를 이끌었고 로열더치쉘 측은 사장 가운데 한 명인 존 버킨을 팀의 연락책으로 임명했다. 그리고 로열더치쉘은 맥킨지와 함께 일하도록 직원 3명을 파견했다. 이 팀원들은 마빈과 직접적으로 함께 일했던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 훗날 고위경영진의 자리까지 올라갔다.


특별 프로젝트인 컨설팅 인게이지먼트에서 결과물로 발생한 것은 로열더치쉘을 위한 매트릭스 조직(경영자들이 지리적 위치에 따른 책임과 기능적인 책임을 둘 다 가지는 조직)이었다. 여러 면에서 큰 성과였다. 우선 그런 조직구조는 유럽에서 최초로 도입되었다. 하지만 이 새로운 조직구성은 지난 150년 남짓 발전해온 문화적 요소들과 갈등을 일으킬 수도 있는 근본적인 변화를 회사에 요구했기 때문에, 이를 실행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빈이 이끈 팀은 존 라우든이 필요로 했던 수단을 제공하고, 제안한 변화의 길을 경영위원회가 잘 받아들이고 강력히 지지하도록 태도를 바꿔놓으면서 흠 잡을 데 없이 업무를 수행했다.


이때 연구팀이 최종적으로 4가지 중요 권고사항이 나왔다. 첫 번째는 CEO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기능적이며 지역적인 책임자들에 관한 것이었다. 로열더치쉘의 기능은 탐사, 생산, 정제, 운송, 마케팅(기본적인 석유 사업 기능들), 재정이다. 지역 책임자는 논리적으로 국가들을 분류하는 데 책임을 맡게 되는 것이다. 이 변화는 통제의 한계를 명확하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세 번째는 재정, 건강, 보안, 환경, 인적 자원, 법률, 공익 사업, 정보, 자원 계획, 연구 등에서 운영 회사들을 지원하고, 조언을 해주며, 그들을 위한 기준을 세우기 위한 서비스 조직을 설립하는 것이었다. 네 번째는 로열더치쉘의 공통적인 문화, 경험의 공유, 공통적인 목표의 촉진을 계속하라는 것이었다. 이런 권고 사항들은 로열더치쉘의 강력한 문화의 이점을 보호하는 동시에 근본적이며 방대한 변화를 의미했다.


마빈 바우어와 맥킨지&컴퍼니가 제안한 매트릭스 조직은 인상적인 오랜 수명을 통해 그 이점을 증명했다. 1983년 컨퍼런스보드 보고서의 글로벌 경쟁력을 위한 조직구성: 매트릭스 설계에서 로열더치쉘의 조직이 성공적인 모델로 꼽혔다.


경영시스템과 강력한 사내 문화의 결합, 각국을 기반으로 한 운영단위들의 지방분권적 연합, 바로 이런 로열더치쉘의 조직 구성방식이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기업 중 하나를 창조해냈다. 게다가 그 구조는 1970년대 중반과 1980년대의 석유 위기 등과 같은 세계의 주요 경제 동란과 몇몇 지역에서의 정치적, 사회적 격변을 견뎌내는 회복력을 보였다. 최근 로열더치쉘의 매트릭스는 범조직적인 정보교환을 용이하게 하고, 특정 몇 개국에 걸쳐 공동출자 및 공통적인 구조를 시행하기 위해 여러 면에서 수정되었다.


리더를 육성하고 권한 부여를 가르치다
― 데이비드 오길비
오길비&매더스의 창립자이자 광고계의 전설적인 거물 가운데 한 사람인 데이비드 오길비는 마빈 바우어와 오랜 인연을 맺었다. 그도 마빈처럼 자신의 리더십 역할에 충분한 자격을 갖추게 해준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 데이비드 오길비와 마빈은 산업 혁명에 기여했던 사람들 가운데 마지막까지 살아남았던 사람들이었다. 또한 오늘날의 리더십 문화에도 기여했다.


1950년대 4명의 인물이 독립적으로, 이론과 실용성을 연계시키는 전문 서비스 회사를 세우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마빈 바우어, 오길비&매더스의 데이비드 오길비, 아서앤더슨의 레너드 스페이식, 그리고 골드만삭스의 거스 레비였다. 마빈 바우어와 데이비드 오길비는 특히 가까웠다. 그들은 많은 철학과 기본적인 특징을 공유했고, 그로 인해 이들이 서로 영향을 마치고 도움을 준 방식을 따로 구분하는 것이 어려울 정도다.


무엇보다 그들은 모든 일에서 최고가 되려는 끈질긴 투자라는 공통점을 보였고 오로지 진실만을 바탕으로 삼았다. 데이비드 오길비와 마빈이 각각 강조했듯이 최고를 향한 목표의 핵심은 자신보다 더 나은 인재를 고용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을 회사에 머무르게 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회사는 둘 다 일하기 가장 좋은 회사의 목록에 자주 올랐다. 1965년 오길비&매더스와 맥킨지&컴퍼니의 퇴직 프로그램은 미국에서 가장 후했다. 이는 데이비드와 마빈이 서명한 프로그램이었다.


오길비&매더스의 전 회장인 켄 로먼은 오길비&매더스의 문화를 다음처럼 묘사했다. "오길비의 철학은 4개의 기둥에 의지했다. 연구, 결과, 최고의 창의성, 전문성의 원칙이 그 4개의 기둥이다. 데이비드 오길비는 선례를 연구하여 그 경험을 원칙(광고를 지식의 실체를 가진 직종으로 대우하는 것)으로 성문화(成文化)하는 것이 옳다고 믿었다."


마빈이 그랬듯, 데이비드 역시 고객을 잘 모시는 것이 성공적인 결과로 이어진다고 믿었다. 그는 자서전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값을 매길 수 없이 가장 소중한 우리의 자산은 고객을 향한 존경이다. 고객이 오길비&매더스(또는 맥킨지)를 고용할 때는 그들이 최고의 결과를 원한다는 뜻이다. 우리가 고객에게 그것을 확신시켜주지 못한다면 이는 고객을 속이고 있는 것이다. 그 고객은 다시는 우리에게 일을 의뢰하지 않을 것이다."


데이비드 오길비는 창의성을 중시했다. "흥분과 혁신을 독려해라. 광고에서 성공의 시작은 혁신이며 실패의 시작은 구태의연함이다." "두뇌? 꼭 높은 아이큐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호기심, 상식, 지혜, 상상력, 교양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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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오길비는 오길비&매더스를 이끄는 동안 마빈과 비슷한 방식으로 많은 의사결정들을 내렸다. 예를 들면 해외 사무소를 개설하고, 엄격한 반 연고주의 정책을 수립하고, 리더십 계층을 여성들에게 개방했다. 그는 마빈에 대해 자주 언급했다. "내가 오길비&매더스를 이끈 방식에 있어 마빈 바우어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가진 사람은 없다. 그는 나를 도왔고 내가 확신들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도록 끊임없이 일깨워줬다. 그런 확신들로 조직이 운영될 수 있도록 말이다. 최고의 서비스 기업을 창조하고 최고의 서비스 기업이 되려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보다 더 잘 정의해주는 사람은 없다. 사실 이런 요건은 최고의 기업이 아닌 보통의 기업에도 적용된다."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