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북디자인

   
김경민
ǻ
싱긋
   
11500
2022�� 07��



책 소개


날마다 책을 읽는 당신에게
오늘도 책을 만드는 디자이너가

『날마다, 북디자인』은 출판계 종사자들에게는 서로를 이해하는 창구가 될 것이고, 예비·신입 북디자이너에게는 친절한 업무 가이드가 될 것이며, 독자에게는 지금 읽고 있는 책에 숨겨진 북디자이너의 노고를 일깨우는 책이 될 것이다. 

이 책은 책 만드는 모든 이들에게 바치는 연서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리고 독자도 당당하게 수신인에 자리잡는다. 책을 사랑하여 오늘도 책을 집어들 이들에게 저자는 마음을 담아 이 책을 건넨다. “여러분이 나의 새로운 동료”라고 외치며.

■ 저자 김경민
인생의 절반을 뚝 떼어 생각해보니 그 절반의 대부분을 북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살거나 북디자이너로 살았다. 스타 디자이너가 될 줄 알았는데 10년째 한 회사, 한자리에서 일하고 있다. 자리만 차지하는 게 아니라 한 사람의 역할을 하며 살아가는 삶에 자부심을 가지고 어떻게 하면 오래 일할 수 있을지 고민중이다.

브런치 @book-end-and
인스타그램 @book.end.and

■ 차례
프롤로그: 북디자이너라고요? 그럼 드럼을 만드시나요?

1장_출판사 취업 뽀개기부터 고인물이 되기까지
라떼는 쿽이라는 프로그램을 썼는데
디자인은 ‘애플’로 배웠어요
면접으로 그 회사를 알 수 있다. 다는 아니어도 조금은
신입에게 잘하는 분야를 묻는다면?
도대체 어디까지 실수할 거야!!
네 번의 퇴사와 이직
디자인은 ‘영화’로 배웠어요
나의 구원자, 악덕 사장님들
겨우 들어간 대형 출판사에서 3개월 만에 나온 이유

2장_사수 없이도 책 만들기에 통달하는 법
출근해서 가장 먼저 하는 일
원고에서 본문 조판까지
본문 완성은 혼자 할 수 없다
본문 디자인은 가상선의 세계
수정! 수정!! 수정!!!
하늘 아래 똑같은 종이도 똑같은 미색도 없다
기획서 작성 방향에 따라 『제목 결정기』와 『표지 연대기』를 막을 수도 있다
표지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시간은?
띠지 소설은 안 돼요!
라이트박스 밑에 교정지 끼우고 검판 보던 시절도 있었다
아무리 편리해도 사람 손은 꼭 필요하다
당신이 말하는 연한 노란색은 형광등 밑에선 파란색으로 보일 수도 있다
가제본의 세계에서 오타 한 개는 그냥 넘어가?
후가공이라는 세계
마감은 표지 jpg를 넘긴 순간이다

3장_출판사에서는 신간만 만드는 게 아니다
끝없는 중쇄의 늪
파일이 없는데요
나만의 파일 정리법
광고는 내일까지-수많은 매뉴얼로 둘러싸인 광고의 세계
굿즈의 세계가 열렸다
책 판매, 어디까지 해봤니?
알고 싶다, 전자책의 세계
전자책 구매목록이 업데이트되었습니다
‘리사이징’이라는 티 안 나게 많은 일
출판사 밖에서도 동료애는 움튼다

에필로그: 디자이너에게 하는 당부-‘최종’이라는 말을 함부로 쓰지 말자

부록
1. 디자인에 도움이 되는 책
2. 마감 전 체크리스트

 




날마다, 북디자인


출판사 취업 뽀개기부터 고인물이 되기까지

라떼는 이라는 프로그램을 썼는데

책을 만들 때 어떤 과정을 거치게 될까. 편집 과정은 차치하고서라도 그 물성을 만드는 과정은 대개 이렇다. 무언가(내용)를 책의 형태로 정리(편집)하여 복사(인쇄)하고 꿰맨다. 그 과정에 필사가 있었고 목판인쇄를 거쳐 지금의 오프셋인쇄까지 왔다. 그런데 그 오프셋인쇄로 가기 위해서는 편집 프로그램을 거쳐야 하는데 현재는 ‘인디자인’이라는 어도비의 편집 프로그램을 가장 많이 쓴다. 포토샵과 형제 같은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그런데 인디자인이 등장한 때는 약 2000년경이다. 2000년이라고 해도 주류 프로그램은 아니었고 당시 이미 매킨토시에서는 익스프레스 3.3(이하 3.3)을, IBM에서는 페이지메이커(추후 인디자인 2.0부터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편입된다)라는 프로그램을 쓰고 있었다. 그러나 페이지메이커보다는 3.3이 이 세계의 제왕이었다.


내가 졸업한 출판디자인학과에서도 3.3을 썼다. 3.3은 전설의 프로그램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정품 프로그램을 써야 한다는 인식이 콘텐츠를 다루는 출판계에서도 아직 정착되지 않았었다. 출판사, 인쇄소, 거래처 모두가 불법으로 다운로드받아 썼고, 그래서 당연히 업데이트도 되지 않았다. 이 전설의 프로그램은 오랜 시간 제왕의 자리를 지키다 2010년을 전후로 인디자인에 제왕의 자리를 넘겨주게 된다.


그래서 2000년대 전후에 출간된 책은 3.3으로 만든 파일이 많다. 지금은 을 잘 쓰지 않으니 컴퓨터와 함께 폐기된 경우가 많은데다, 중쇄를 자주 찍지 않는 책이라면 인디자인 파일로 변환되지 않은 채 보관돼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은 구형 맥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고, 이미 IBM용 인디자인으로 전환된 시장 상황에서 기존의 파일들을 가지고 중쇄를 찍는 등의 추가 작업을 하기에는 다룰 수 있는 사람도 기계도 많이 사라진 상태다. 불과 이것이 10년, 20년 만에 일어난 변화이지만 그렇다.


이 프로그램의 특징은 굉장히 섬세한 한편, 그래서 매우 귀찮다는 것이다. 섬세함 덕분에 책으로 완성했을 때 특유의 아름다움이 있다. 개인적인 판단이지만 장점은 사실상 이것 한 가지라고 해도 무방하다. 이를 알아보는 이도 많지 않다. 인디자인처럼 자동으로 처리해주는 기능이 많지 않고, 있다 하더라도 검색이 자유롭지 않다. 아름답지만 폐쇄적이고 오류도 많아 자주 꺼진다. 그래서일까. 21세기에 들어서는 정품을 써야 함에도 인디자인이 주요 편집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도 써보고 인디자인도 써본 나로서는 을 써본 경험이 인디자인을 사용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인디자인의 많은 기능이 에서 발전돼온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귀찮았으나 아름다웠고 오류도 많았지만 그만큼 실수를 해볼 수 있었던 경험이 있었기에 지금은 비로소 편하게 일할 수 있다.


“라떼는 익스프레스 3.3이라는 프로그램을 썼는데, 폰트박스라는 게 있어서 컴퓨터 파일을 열 때마다 다르게 보인데다가 무려 검판용 PDF를 받을 수도 없어서 직접 출력실에 가서 검판을 봤는데도 인쇄판이 다르게 나왔는데 말이야…….”




사수 없이도 책 만들기에 통달하는 법

출근해서 가장 먼저 하는 일

매일 오전 6시 반, 알람이 안 울려도 눈이 떠진다. 한 시간 정도 준비하고 출근하면 8시 반쯤 회사에 도착한다.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어제 퇴근하기 전에 정리하고 갔던 체크리스트를 다시 한 번 확인하며 오늘 할일들을 새롭게 적는다.


하루 일과에 대한 계획이 대략 잡히면 필통을 꺼내 오늘 내 손에 잡히는 펜을 고른다. 그날 하루를 좌우할 만큼 펜 고르기는 성스럽고 중요한 루틴이다. 하루를 시작하는 커피만큼이나 이 작업은 중요하다. 그날의 기분에 따라 손에 유달리 착 달라붙는 펜이 있기 때문이다. 펜의 두께는 다양하지만 나는 보통 0.7mm~1mm 정도의 펜이나 샤프를 쓴다. 글을 많이 쓰고 고치는 편집자는 얇은 펜을 선호하던데, 전체적인 구도 수정이 많은 디자이너에겐 멀리서도 잘 보이는 굵은 펜이 유용하게 쓰인다.


그렇게 ‘오늘의 펜’까지 고르고 나면, 업무용 메일을 통해 들어온 일이 있는지 살펴본다. 주로 광고 의뢰 건이나 데이터 요청이 많고 이것들을 기존 체크리스트에 추가한다. 그러고 나서 본 업무에 들어가기 전에 꼭 하는 것이 서점 투어다. 진짜 서점을 돌아다니는 것은 아니고 주요 온라인 서점 3사 정도만 들어가서 시장 조사를 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3사는 교보문고, 알라딘, 예스24이고 알려져 있듯이 이 3사의 고객 특성은 매우 다르다. 그러므로 베스트셀러의 양상도 조금씩 다르기에 다른 건 몰라도 3사의 베스트셀러는 꼭 돌아본다. 그뒤에 둘러보는 곳은 신간 코너. 매일 서점 신간 코너에 업로드되는 페이지는 많으면 약 두 페이지 정도(약 2~30권)이다. 매일매일 체크한다면 하루에 두 페이지 정도지만, 이것이 일주일간 모이면 열네 페이지, 한 달간 모이면 예순 페이지가 된다. 하루이틀은 소홀히 하고 넘어간다 해도 매번 들어가서 보는 습관이 없다면 나중에 시장의 흐름을 따라가기 어렵다. 그러므로 적은 양이라도 매일매일, 일하기 전에 시동을 걸듯 이 작업을 먼저 한다.


보통 신간이 한 권 올라오면 표지와 약 30페이지의 본문을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각 책들의 개성과 특성, 스타일 등을 엿볼 수 있다. 유달리 좋은 디자인이나 제목, 편집 등이 보이면 나의 작업에도 언제든 적용할 수 있도록 적어둔다. 서지 정보 등으로 완벽하진 않아도 책의 물성을 어느 정도 추측해볼 수 있고 좋은 작업물은 나중에 오프라인 서점에서 확인한다. 요즘은 신간에도 광고성 카드뉴스나 상세 페이지 이미지가 같이 업로드되는 경우가 많아 책을 선택할 때 많은 도움을 준다. 그런 것 중에서도 배울 것이 있다면 또 체크해놓는다.


마지막으로 보는 것은 자사의 신간들이다. SCM을 통해 들어갈 수도 있지만 그렇게까진 하지 않고 신간에서 구간 순서로 둘러보는데, 만약 신간의 세일즈포인트가 기존과 다르게 빠르게 올라가고 있다면 미리 중쇄 작업을 준비해놓는다. 그러면 며칠 내에 중쇄요청서가 온다. 신기한 일이다.


이렇게 하루를 준비하고 시작하는 루틴을 거치면, 낭비하고 헤매는 시간을 최대한 줄일 수 있다. 그래서 좋은 점은 무엇보다도 정해진 시간에 퇴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밤낮으로 일만 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나는 정확한 시간에 일하고 정해진 시간에 일을 끊는 것을 하루의 목표로 잡는다. 이런 목표를 잡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매일 데이터를 쌓아가다보면 가랑비에 옷 젖듯 서서히 시장 상황이 내 안에 녹아들고 나의 업무 방향도 잡힌다.


사실 이제는 이런 루틴을 지키지 않아도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나의 루틴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매일매일 하는 이 별것 아닌 것들이 오늘의 나를 만들고 내일의 나를 만든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루이틀 멈출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아예 그만둔다면 순식간에 와르르 무너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꾸준하고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쌓아가는 것, 그것이 디자이너로 살아가기로 한 내가 스스로에게 매일 주는 미션이다. 오늘도 그 미션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열심히 클릭하고 있다.


원고에서 본문 조판까지

조판: 원고에 따라서 골라 뽑은 활자를 원고의 지시대로 순서, 행수, 자간, 행간, 위치 따위를 맞추어 짬. 또는 그런 일


국어사전에서는 조판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맞추어 짬”이라는 단어에서 연식이 느껴진다. 이런 연관 단어도 있다. 책상 위에서 책을 만들어 내보내는 것, 이른바 DTP(Desktop Publishing)가 현재 책을 만드는 시스템이다. 앞서 말한 쿽, 인디자인, 포토샵 또는 한글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책이라는 형태의 물건을 만들기 위한 첫걸음이 떼어진다.


그러려면 일단 원고가 들어와야 한다. 편집자의 손을 거친 1차 원고가 들어오면 디자이너는 원고의 내용과 세부 스타일 등을 검토한 후 담당 편집자와 방향을 논의한다. 이미 회사 안에 세부적인 매뉴얼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이 과정은 굉장히 중요하다. 내가 원고를 검토하면서 받은 인상을 편집자에게 말해주면 편집자는 이런 방향이라고 수정·보완해준다. 원고를 받은 편집자가 첫번째 독자라면 나는 그 편집자가 가공한 원고의 첫번째 독자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의견 교환과 조율의 과정을 잘 거치면 표지 작업을 할 때 수월하기도 하므로 이 과정은 꼭 거친다.


조율 과정을 거친 뒤에 본문 판형 및 시안을 제안한다. 보통 많게는 서너 가지, 적어도 두 가지 이상은 준비한다. 이 과정에서 편집자는 반드시 들어갔으면 하는 것 등을 피드백하고 나는 최대한 반영한다. 최소 두세 번의 수정을 거쳐 본문 시안이 확정된다. 이 안에는 본문 판형과 폰트, 폰트 크기, 행간, 자간, 영문 폰트, 한자 폰트, 괄호 스타일, 병기 표시, 인용, 각주, 미주 등을 모두 포함한다. 그리고 실물 사이즈로 잘라 약 30페이지 정도를 스테이플러로 제본한 후 판면 정보를 따로 적어서 보여준다. 팔랑팔랑 몇 장만 보여줄 수도 있고 테이프로 붙여서 줄 수도 있지만, 제본했을 때의 모양을 최대한 비슷하게 구현하고 싶고, 서체처럼 책을 구성할 때 중요한 정보와 구조가 되는 것을 두루뭉술한 표현으로 소통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


한 페이지 안에서도 여러 스타일이 섞여 있으므로 최대한 이 스타일들이 부딪히지 않고 조화롭게, 하나의 덩어리로 보이도록 하는 게 디자이너의 일이다. 어떤 이는 본문 조판을 하는 게 뭐가 그리 어렵냐고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난 이렇게 생각한다. 결국 책의 핵심은 내용이고, 책 디자인의 정수는 본문이라고. 본문 디자인에 따라 내용을 얼마나 흡수하며 읽을 수 있는지 정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으스스한 호러소설에 귀여운 본문 디자인이 들어간다면 집중해서 읽을 수 있겠는가. 각주가 여러 개 달린 역사책에서 각주가 본문보다 도드라진다면 그 책에 집중할 수 있겠는가. 독자가 긴 시간 동안 자연스럽게 책을 읽으며 저자의 의도를 해치지 않으면서 잘 따라가게 하는 것, 그것은 사실 본문 디자인에 달려 있다.


나는 조판을 하다보면 묘하게 마음이 진정된다. 이것저것 할일도 많고 조용한 듯하지만 은근히 시끌벅적한 출판사생활에서 조판할 때만큼은 조용히 작업 그 자체에 집중한다. HWP 파일 속 몇 만 자의 글자가 인디자인이라는 프로그램을 거쳐 내가 설정해놓은 설정값에 맞춰 일렬종대로 형태를 만들어가는 모습을 보면 한편으론 짜릿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 이 맛에 조판하지!’


어떤 것이 좋은 본문 디자인인지에 대해서는 각자 생각이 다르겠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책이라는 매체를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사실 덜어내는 것이라고.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다양한 매체가 쏟아지고 있지만 독서라는 경험의 본질은 그 누구도 바꿀 수 없다. 그렇기에 핵심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도록 본문을 디자인하는 게 중요하다. 변화하는 시대를 읽고 따라가는 것도 좋지만, 매체의 성격을 무시하고 무조건 유행을 따라가기보다는 책이라는 매체가 가지고 있는 장점을 극대화하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내가 전자책을 좋아하는 이유도 역설적이지만 그 이유와 같다. 전자책은 리더기를 이용하면 많은 것이 생략되고 책의 내용만 남기도 한다. 원고와 내가 일대일로 대화하게 되는 것이다. 검정 잉크와 흰 종이 역할을 하는 화면, 그리고 나. 이것은 어떤 다른 매체가 끼어든다고 해도 뛰어넘을 수 없는 경험이다. 그렇기에 가능하다면 책의 본질에 집중하는 디자인, 욕심을 덜어내는 디자인을 해도 좋지 않을까 하는 게 내 생각이다. 책은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그 무엇도 될 수 있다. 책을 통해 공부를 할 수도 있고 모험을 떠날 수도 있다. 가능하면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본문에 집중할 수 있도록 디자인으로 도움을 주면 어떨까. 독자의 독서 동반자나 가이드가 된 것처럼 말이다.


마감은 표지 jpg를 넘긴 순간이다

책 제작의 마감은 인쇄소에 파일을 넘긴 후가 아니다. 책이 입고되고 서점에 등록되는 순간, 그 순간이 최종 마감이다. 그런데 그 마감의 바로 직전에 해야 하는 일이 책 표지 이미지, 출판인들이 흔히 말하는 표지 jpg를 넘기는 일이다. 이 일은 시안이 확정되면 먼저 진행할 수도 있지만 가능하면 서점 등록 하루이틀 전에 하라고 말하고 싶다. 사건은 어디에서나 일어나고 그건 실수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어디서 어떤 변수가 나타날지 모른다. 표지 평면 jpg와 입체 jpg를 만들어놓아도 다시 처음부터 작업하게 될 수도 있다. 오타는 어디서든 나오고 결정적인 오타는 모든 일을 원점으로 만든다. 본문뿐 아니라 표지도 마찬가지다. 고로 미리 만들어봤자 두 번 일하게 되는 일밖에 되지 않는다.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최종 파일을 한 번에 만들고 저장해놓는 게 만드는 나도 편하고 괜히 엄한 파일이 유통되는 것도 막을 수 있다.


인터넷 서점에는 미리보기 서비스가 있어서 책 표지부터 내부 30페이지 정도를 미리 볼 수 있다. 그래서 요즘은 마감하면 책의 표지부터 뒷날개까지 모두 쪼개서 인터넷 서점에 파일로 보내줘야 한다.


한번은 어느 출판사에서 한 셀럽이 책을 출간한 적이 있었다. 저자가 유명했으므로 아마 서점 쪽에서 먼저 표지 jpg 파일을 요구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 파일이 유통된 것을 설명할 수가 없다. 출간 전 미리보기 페이지의 뒤표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내용 입력 예정”


이렇게 표지 파일이 유통되고 며칠이 지나서야 이 책의 미리보기 페이지가 정정됐다. 실제로 책이 이렇게 유통됐다면 대재앙일 테고 서점 미리보기에서만 이렇게 된 것이라면 발견한 몇몇만 아는 재밌는 에피소드가 될 것이다. 하지만 뭐가 됐든 남의 일일 때는 재밌고 나의 일이 되면 웃음기 싹 사라지는 하드코어 스릴러가 되는 아찔한 순간으로 남게 된다. 확인 또 확인. 책을 만드는 이들에게는 숙명과도 같은 일이다.


가끔씩 책의 입체 이미지보다는 평면 이미지가 더 잘 보이는 건 아닌가 생각하지만 책이라는 제품을 좀더, 그야말로 입체적이고 다양하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입체 이미지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조금이라도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의 반증. 그렇기에 나는 오늘도 책의 평면 이미지와 입체 이미지를 만들며 외친다.


“마감!”



출판사에서는 신간만 만드는 게 아니다

굿즈의 세계가 열렸다

“질소를 샀더니 과자가 왔어요”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이 말은 요즘 이렇게도 쓸 수 있겠다. “굿즈(사은품)를 샀더니 책이 왔어요.”


요즘은 각 서점에서 어떤 굿즈를 내놓는지 비교해주는 서비스도 생겼지만, 굿즈는 사실 ‘도서정가제’라는 나비효과로 탄생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현재 도서정가제는 10% 할인에 5% 내외의 마일리지나 ‘사은품’을 증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 3~400페이지 정도 되는 책의 정가는 13,000~15,000원 내외. 그렇다면 사은품 가격의 범위는 650~750원. 요즘같이 물가가 비싼 시대에 600원을 들고 나가서 무엇을 살 수 있을까. 실제 제작비에만 적용한다고 해도 너무한 가격이다. 왜 3만 원 이상 구입, 세트 구입 등과 같은 조건이 붙는지, 왜 그렇게 사은품에 종이류가 많았는지 이해되기 시작한다.


굿즈는 서점 자체 제작과 출판사 직접 제작 두 경우가 많다. 서점에서 진행할 때는 특정 캐릭터와 라이선스를 체결해 진행하는 방식과 실생활에 필요한 제품(그릇, 컵, 연필, 식사 도구, 가방 등)에 서적명이나 문구 등을 넣는 방식이 많고, 출판사에서 직접 제작할 때는 책의 성격을 잘 표현할 수 있는 굿즈가 많다. 주로 서적의 파생 상품(책갈피, 문구카드, 타로카드, 노트, 에코백, 필기류, 체크리스트, 관련 자료 PDF 파일 등)이 많다.


그동안 진행한 굿즈를 대략 살펴보니, 노트류, 메모지, 문구 세트, 타로카드, 엽서, 체크리스트, 책갈피, 독서대, 마우스패드 등 여러 종류가 있었다. 가끔은 책이 먼저인지 굿즈가 먼저인지 헷갈릴 때도 있었다. 굿즈라는 것이 출판계뿐만 아니라 시대의 한 흐름이기도 하고, 여러 분야에서 마케팅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제는 개인이 직접 굿즈를 만들 수 있는 시대가 됐다(심지어 퀄리티가 실제 상품보다 나은 것도 많다). 단순히 마케팅이니까, 사은품이니까, “알잖아, 단가 600~1,000원의 굿즈!”라고 퀄리티를 무시하며 제작하기엔 세상이 어마무시하게 세련됐다. 굿즈에 공력을 들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렇기 때문에 책을 만들면서도 굿즈 마케팅을 미리 염두에 두고 일정을 짜고, 다소 아쉬운 단가 제한이 있지만 머리를 모아모아 아이디어를 짜내기도 한다. 눈높이 높은 소비자이자 독자가 보기엔 아쉬울 수도 있다. 그러나 제한된 환경에서 독자들의 만족을 최대한 이끌어내기 위해, 책을 받았을 때 기쁨이 두 배가 될 수 있도록 출판인들은 오늘도 머리를 맞대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지금은 비록 아쉽지만 조금씩 나아지는 굿즈, 책의 매력을 최대한 살린 톡톡 튀는 굿즈를 오늘도 준비중이니 기대하시길 바란다.


노트, PDF, 책갈피, 간단한 체크리스트 정도는 무료로 배포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구매를 통해서 얻을 수 있다. 사소하지만 희귀하고, 모을 정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안 사면 왠지 손해인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한다.


출판사 밖에서도 동료애는 움튼다

‘내적 친밀감’이라는 유행어가 있다. 실제로 앞에서 만나면 안 친하고 서먹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이미 혼자 친한 느낌이라는 뜻이란다. 문장에 따라 반은 농담으로 반은 진담으로 쓰이기도 하는 단어이다.


실제로 출판계는 ‘내적 친밀감’의 바다다. 건너 건너 아는 사람, ~카더라 하는 사람, 소개받은 사람, 지업사, 북스타그램이나 업무용 SNS를 통해 아는 사람 등등 여러 내적 친밀감의 파도를 탈 수 있다. 더군다나 한 곳에서 10년이나 일하다보니 뜻하지 않게 내적 친밀감을 쌓은 관계들이 있는데, 각종 거래처들이 그렇다. 실제로 만난 적은 드물지만 목소리만 들어도 ‘아~ A 인쇄소 기장님, B 인쇄소 출력실의 담당자님, C 제본소의 과장님’ 하게 된다.


몇 년 전, 생각했던 출산 예정일보다 일찍 출산휴가를 가게 되어 거래처에 미리 인사 전화를 돌리게 되었다. 딱히 하지 않아도 될 일이었지만 왠지 그렇게 인사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전화를 끊고 나니, 회사를 영 떠나는 것도 아닌데 묘한 기분이 들었다. ‘모두 잠시지만~ 안녕히 계세요~’ 인사를 하고 출산휴가를 갔다. 4개월의 출산휴가라는 여정에 새롭게 한 발을 뗀 것이다. 그렇게 아이를 낳고 회사에 ‘무사 순산’ 문자를 날린 뒤, 많이들 그러듯 메신저 프로필 사진을 아이로 바꾸고 설렘과 흥분의 한가운데에 있던 중이었다. 그러다 한 통의 메시지를 받았다.


OOO님이 아기 손수건 세트를 선물하셨습니다.


‘???’


거래처 출력실 과장님이셨다. 서로 개인적으로 연락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고, 연락처를 갖고 있었던 것도 아주 급할 때만 절절히 부탁하기 위해서(예를 들면 ‘마감이 늦어져서 한 시간만, 아니 30분만 더 대기해주세요’ 등의 부탁을 하기 위해서)였다.


나: 이거 저한테 보내주신 것 맞나요?


거래처: 네! 아기 키우다보면 수건이 정말 많이 들어요. 아기 크는 거 금방이에요. 지금 눈에 많이 담아두세요. 나중에는 기억이 안 나요.


나: 정말 감사합니다.


마감을 할 때면 ‘30분만 더’ ‘한 페이지만 더’ ‘한 글자만 더’ ‘이번에는 진짜 최종입니다!’와 같은 거짓말 아닌 거짓말을 해야 할 때가 있다. 어떨 때는 너무 송구해서 ‘당장 나오는 수정 페이지만 미리 서버에 올려놓고 한꺼번에 전화해야지’ 하고 전화기를 들려는 순간, 이미 검판에 반영되어 올라오기도 한다. 단 한 번도 만난 적 없지만, 전화를 하면 그 어떤 요청에도 “아~ 예~ 알겠습니다~” 또는 “그 부분은 제가 알아서 수정할게요”라고 말하시는, 그래서 부탁하는 나의 맘도 불편치 않게 해주시는 배려에 늘 감동한다. 그럼 나는 유실된 파일이나 참고할 파일을 올려야 할 때 “아~ 그럴까봐 제가 이 파일도 같이 올렸는데 참고하세요~”와 같이 응수한다.


니맴내맴 다르지 않다. 같은 회사 동료도 아닌데 손발이 척척. 한 회사 안에만 동료애가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회사에서도 우리는 ‘책’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오늘도 내적 친밀감이라는 파도를 타고 있다.


* * *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