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지만 타인입니다

   
원정미
ǻ
서사원
   
16000
2022�� 11��



■ 책 소개


가족이지만 ‘타인’이고
가장 가까운 사이라도 ‘거리’가 필요하다

어렸을 적 나와 만나고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해서 상처를 준 가족과 금방 화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먼저 화해의 손길을 내민다 한들, 상대가 외면한다면 화해는 불가능하다. 이때 필요한 것이 ‘적당한 거리’다. 적절한 물리적, 정서적 거리를 둔 상태에서 서로의 때가 맞기를, 상대가 나의 마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저자는 누군가를 용서하고 화해하기 위해 너무 애쓰지 말라고 말한다. 마음이 준비되지 않았거나 서로의 생각이 영영 평행선을 달린다면 화해는 불가능하다. 다만, 나를 위한 용서는 가능하다. 용서는 더 이상 상대로 인해 흔들리지 않고 상처나 미움을 대갚음하지 않겠다는 다짐이며, 화해는 다시 원래의 관계로 돌아가는 것이다. 억지로 화해하고 화목하게 지내기 위해 노력하는 대신, 상대를 용서하고 서로에게 상처 주지 않는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오히려 현명한 길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가족이라도 타인처럼 생각해야 하고 서로 적절한 거리가 필요하다.

■ 저자 원정미
자고로 여자의 덕목은 남편 집안의 대를 이어주고 남편을 섬기는 것이라 믿었던, 지독히 구시대적이고 가부장적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들이 아니라서, 재능이 없어서 철저히 외면당했던 소심한 어린아이는 상처받은 줄도 모르고 성인이 되었다. 나이만 먹으면 자연스럽게 엄마 노릇, 아내 노릇을 할 줄 알았건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러다 미국에서 미술치료와 상담심리를 공부하고 겁도 없이 애 셋을 낳고 기르며 상처받은 내면아이를 마주하게 되었고, 인간 내면을 탐구하며 나 자신도 몰랐던 내 모습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서른이 넘어서야 진정한 자아를 발견해 과거를 치유하고 회복하고 있다.

지금은 상처 입은 어린아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건강한 가정을 세우는 일을 하며 큰 기쁨과 소명을 느낀다. 현재 캘리포니아에 있는 ‘Child & Family Counseling Group’에서 심리치료사로서 어린이와 부모를 상담 및 교육하고 있으며 한국 이민자를 대상으로 상담교육, 부모교육, 마음 수업을 꾸준히 하고 있다.

■ 차례
프롤로그 꿈에 더 가까이

1막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

사실 나는 죽고 싶었어
내 마음 돌아보기: 모르고 지나친 어린 시절 정서적 부재 체크리스트

왜 그랬던 거야?
내 마음 돌아보기: 우리 가족에게 대물림되고 있는 문제는 무엇일까?

차라리 맞는게 나아
내 마음 돌아보기: 정서적 학대의 유형

차라리 삐뚤어질 걸
내 마음 돌아보기: 착한 아이 증후군 체크리스트

나도 더 이상은 못 참아
내 마음 돌아보기: 나의 사춘기에게

2막 미국에서의 새로운 시작

한 사람의 법칙: 온전히 내 편인 사람 하나면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
내 마음 돌아보기: 나만의 안전 지대를 찾자

사랑도 받아본 사람이 주는 것이다
내 마음 돌아보기: 내 마음에서는 어떤 목소리가 들리나요?

나만의 아메리칸드림
내 마음 돌아보기: 나는 얼마나 독립적인 사람일까?

스스로 완성해가는 자존감
내 마음 돌아보기: 건강한 자존감을 키우는 여섯 가지 방법

나만의 ‘한 사람’을 만나다
내 마음 돌아보기: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위해 결혼 전 반드시 생각해볼 것

3막 육아, 몰랐던 나의 내면아이를 만나다

때론 엄마인 게 싫었어
내 마음 돌아보기: 나와 내 아이의 기질 이해하기

내 안의 내면아이를 만나다
내 마음 돌아보기: 내 안의 상처받은 내면아이는 어떤 모습인가요? 145

엉뚱한 곳에 화풀이하다
내 마음 돌아보기: 화난 감정 안에 숨은 진짜 감정 찾아내기

마음의 상처 대신 정서적 충만함을 물려주자
내 마음 돌아보기: 자기 주도적인 삶을 만드는 작은 방법들

내게 상처를 준 부모와 화해할 수 있을까?
내 마음 돌아보기: 부모와의 심리적 거리 두기

4막 나답게 살기로 하다

세상에 나쁜 감정은 없어
내 마음 돌아보기: 감정 조절을 위한 여섯 가지 노하우

나는 나를 사랑하기로 했다
내 마음 돌아보기: 나는 어떤 사람일까요?

더 중요하고 소중한 것부터
내 마음 돌아보기: 나의 우선순위는 무엇일까?

치유의 시작
내 마음 돌아보기: 건강하게 나를 돌보는 시간

회복은 여전히 진행 중
내 마음 돌아보기: 나의 감정의 방아쇠는 무엇일까?

진짜 어른으로 산다는 것
내 마음 돌아보기: 어른의 대화법

에필로그 이젠 상처도 아픔도 모두 나의 인생

 


 

 




가족이지만 타인입니다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

차라리 맞는게 나아

마음에 드는 멍, 정서적 학대

온 국민에게 충격을 주었던 ‘정인이 사건’으로 인해 아동학대에 대한 경각심이 매우 높아졌다. 느슨했던 아동학대법이 더 강화됐고 시민들의 인식도 달라졌다. 학대는 신체적 학대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아이가 가정에서 어떤 식으로든 불안과 공포를 느낀다면 그것 또한 학대다. 정인이에겐 의붓언니가 있었다. 의붓언니는 어머니에게 직접적인 신체 학대를 당하진 않았지만 분명 정인이만큼 무섭고 두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 말을 듣지 않으면 본인도 폭력을 당할 수 있음을 직감했을 것이다. 이런 상황 또한 학대다.


비교와 차별

할머니의 잔소리는 매일 나에게만 쏟아졌다. 세 아들 중 둘째인 아버지를 유독 사랑했던 친할머니는 둘째 아들의 손자도 끔찍이 사랑했다. 할머니에게는 오빠 말고도 다른 손자 손녀가 많았다. 하지만 그중에 최고는 단연 오빠였고 덕분에 나는 당연한 듯 차별받았다. 그 냉혹한 비난과 차별의 원인을 뜯어 보면 내 잘못은 하나도 없다. 여자로 태어난 것도, 아버지를 닮은 것도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다. 할머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을 닮은 것도 싫어했다. 가장 속상했던 것은 할머니의 차별과 냉대를 누구 하나 말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비교와 차별은 당하는 모든 이이게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비교당하는 사람은 열등감을 느끼고 편애를 받는 사람은 교만해지다 곧 불안을 느낀다. 남보다 우월하다는 느낌이 지속되면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다른 특별한 존재같이 느껴진다. 그래서 쉽게 교만해져 사람들을 깔보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나보다 잘난 사람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금방 불안해진다. 그래서 비교가 익숙한 사람들은 자신보다 약한 사람에겐 강하고 자신보다 강한 사람에겐 한없이 비굴한 모습을 보인다.


마음공부를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나와 타인을 비교하는 것을 멈추는 것이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비교를 한다. 말 못하는 어린아이도 빵을 잘라주면 조금이라도 큰 것을 잡고 장난감도 더 화려하고 큰 것을 고른다. 그러나 사람은 더 좋은 것, 더 큰 것을 가진다고 행복해지지 않는다. 내가 진짜 필요로 하는 것, 원하는 것을 가져야 행복하다. 그래서 나는 나를 향한 비교도, 타인을 향한 비교도 모두 멈추기로 했다.



미국에서의 새로운 시작

한 사람의 법칙: 온전히 내 편인 사람 하나면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

함께 살얼음판을 걸으며 불행을 잘게 나누다

책상 위로 오빠가 카세트테이프 하나를 건넸다.


“공부할 때 들어. 라디오 듣다가 네가 좋아하는 노래가 나와서 녹음했어.”


카세트테이프 뒤에는 오빠가 손수 쓴 노래 제목들이 깨알같이 적혀 있었다. 다 내가 좋아하는 가요와 영화음악들이었다.


어린 시절 내 마음은 언제 깨질지 모르는 차가운 살얼음판 같았다. 이 얼음판이 깨질까 봐 두렵기도 했지만, 차라리 산산조각 나 물속으로 가라앉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렇게 그 불안과 공포가 차라리 끝났으면 했다. 그러나 그때 나를 붙잡아준 사람들이 있었다. 나의 오빠와 사촌 동생들이었다.


나보다 두 살 위인 오빠는 참 밉고도 고마운 존재다. 살면서 오빠로부터 복잡 미묘한 감정을 정말 많이 느꼈다. 한 많은 할머니와 불행한 어머니의 유일한 기쁨이었던, 밑 빠진 독 같은 아버지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던 오빠는 집안의 자랑이었지만 가족 불화의 중심에 있기도 했다. 그 당시엔 온 식구가 오빠에게만 관심과 사랑을 보여서 오빠를 미워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사랑은 오빠를 분명 숨 막히게 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래도 오빠 덕분에 집에서 숨을 쉴 수 있었다. 똑똑하고 글쓰기에도 소질이 있었던 오빠는 내게 언니 같은 존재였다. 죽일 듯이 서로 싸우기도 했지만, 여자 마음을 잘 아는 오빠와 대화도 잘 통했고 사이좋게 놀 땐 그 누구보다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어머니만큼이나 불행한 결혼 생활을 했던 이모와 그녀의 딸들도 나만큼 힘들 시절을 보냈다. 그 시절 갈 곳 없던 이모는 사촌 동생들을 데리고 우리 집에 자주 왔었고 우리는 하루가 멀다 하고 만났다. 함께 목욕탕도 가고 숙제도 하며 그 주에 나온 신작 비디오를 틀어 놓고 키득거렸다. 그렇게 자주 만나면 싸울 만도 하건만 우리 넷은 그런 적이 없다.


누군가 부모 사이가 나쁘면 형제지간이 돈독해진다고 했던가. 딱 그 모양새였다. 어떤 날은 이모가 울면서 하소연을 하고 또 다른 날은 어머니가 드러누워도 함께했던 그 시간만큼은 불안하지 않았다. 현실을 잊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자 숨을 쉴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내가 무너지지 않도록 잡아준 존재들 덕분에 그 시절을 버티었다.


스스로 완성해가는 자존감

자존감 성장의 시작은 주도적인 선택과 책임

어렸을 때의 나는 자존감이 바닥이었다. 그러나 심한 사춘기를 겪으며 착한 딸의 삶 대신 ‘나를 위한’ 선택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부모님의 뜻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는 것을 시작으로 미국 유학, 결혼, 영어 공부, 미술 공부, 상담학 공부까지 모든 것이 오로지 나의 선택이었고 의지였다.


내 나름의 선택을 할 때마다 나를 지지하거나 격려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제 와서 갑자기 웬 미국?”, “왜 하필 그 사람과 결혼을 해?”, “지금 순수미술 해봐야 직장도 못 구해”, “그 나이에 공부를 한다고?” 말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나는 내 생각과 판단을 믿었고 그것을 책임지며 살았다. 물론 그 과정에서 힘든 적도 많았고 포기하고 싶었던 적도 있었지만, 그냥 끝까지 가겠다는 마음으로 버텼다. 목표했던 것을 하나씩 이룰 때마다 이 선택을 하길 잘했다며 나 자신에게 만족했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며 내 선택에 대한 확신과 나에 대한 믿음이 강해졌고 나에게 열심히 훈계하던 사람들도 사라졌다. 내 자존감은 그렇게 성장했다.


자존감 성장의 시작점은 분명 가정이다. 자존감은 ‘자신이 스스로 생각하고 바라보는 자신’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아라는 개념을 태어나자마자 바로 인식하지 못한다. 때문에 유아기에는 자신과 엄마는 하나라고 믿는다. 그래서 아이가 어릴 땐 부모가 바라보는 대로 자신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그것이 곧 아이의 자존감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아무리 객관적으로 예쁜 외모를 가지고 있어도 집에서 못생겼다는 소리를 듣는 아이는 스스로 못생겼다고 생각한다.


가정에서 사랑받고 자란 아이와 그렇지 못한 아이의 자존감은 절대로 같을 수 없다. 당연히 존중받고 사랑받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건강한 자존감을 가질 확률이 높다. 어린 시절 주변에서 반영해준 자신의 모습이 내적 이미지를 만들기 때문이다.


가장 이상적인 모습은 어릴 때 부모의 사랑과 존중을 통해 건강한 자아상을 가진 아이가 스스로의 성취와 노력으로 그것을 실현해 가는 것이다. 그러나 자존감은 영원불변한 것이 아니다. 사춘기 이후의 자존감은 부모의 영향에서 벗어나 부단한 노력과 책임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


진짜 자존감의 조건: 자유와 책임

건강한 자존감을 만들기 위해서는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훈련을 해야 한다. 자존감 성장의 핵심은 자기 효능감이다. 이는 내가 선택한 일이나 내게 맡겨진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자기 확신이고 신뢰다. 공부 빼고 모든 것을 다 해주는 육아로는 아이의 자기 효능감을 키워줄 수 없다. 공부 말고는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자기 효능감을 키워주려면 경험으로 쌓은 성취감이 필요하다. 그리고 경험의 시작은 ‘스스로 하는 선택’이다.



나답게 살기로 하다

세상에 나쁜 감정은 없어

우리가 느끼는 감정에 대한 오해

“그런 생각을 하면 못써, 그런 마음은 나쁜 아이나 가지는 거야!”

“뭘 잘했다고 울어. 어디 버릇없이 화를 내!”


나는 이런 말을 참 많이 듣고 자랐다. 아마 요즘도 ‘착하고 예의 바른 아이’로 키우기 위해 아이에게 이런 말을 하는 부모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런 표현은 감정을 부정하는 말이다. 그리고 감정의 부정은 존재적 부정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이런 일로 화를 내는 나는 나쁜 사람이구나, 하며.


사람들이 부정적 감정 표현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감정’과 ‘행동’을 혼동하기 때문이다. 화가 나면 폭력을 행사하거나 너무 슬프면 식음을 전폐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등의 행동들 때문에 우리는 화가 나거나 슬픈 감정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감정과 행동은 전혀 다른 것이다.


감정을 제대로 이해하면 우리는 훨씬 더 평안한 삶을 살 수 있다. 감정은 감정일 뿐이다. 개인이 처한 상황과 조건에 따라 본능적으로 나오는 반응인 것이다. 그래서 시시각각 느끼는 감정엔 옳고 그름이 없다. 다만 우리는 그 감정으로 인해 ‘나쁜 행동’과 ‘옳지 않은 선택’을 하게 된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솔직히 목숨을 줘도 아깝지 않은 자녀도 키우다 보면 미워질 때가 있고 꼴 보기 싫을 때가 있다. 이런 감정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때 아이에게 심한 말을 하거나 체벌을 하는 ‘행동’이 문제다. 그 상황에서 내가 느낀 감정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그 감정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고 나쁜 행동을 선택하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사람이 느끼는 모든 감정은 옳다. 그리고 감정은 영원하지도 않다. 우리의 감정은 늘 이랬다저랬다 한다. 그러니 감정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두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런데 자연스럽게 드는 부정적인 감정을 억압하기 때문에 힘든 것이다. 때론 형제가 미울 수 있고 시기심이 생길 수도 있다. 심지어 부모가 미워지고 가끔 귀찮은 마음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 직장에 가기 싫고 학교가 지겹고 공부가 하기 싫은 그 모든 감정이 다 나쁜 것이 아니다. 사람들 대부분은 그런 마음이 들어도 자신의 자리에서 해야 할 일들을 묵묵히 하면서 살아간다.


그러니 감정을 억누르거나 애써 부정할 필요가 없다. 부정적인 감정을 억압하는 것이 습관이 되면 오히려 좋은 감정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아주 무딘 사람이 된다. 삶의 작고 소소한 희로애락을 놓친다면 삶의 즐거움을 전혀 느끼지 못하게 되고, 이런 증상이 심해지면 우울증으로 발전할 수 있다. 또한 내 감정을 제대로 읽어내고 표현하지 못하면 타인의 감정에도 예민할 수 없다. 즉 공감 능력이 떨어지게 된다.


나 또한 오랫동안 나를 키워준 부모에게 고맙기도 했지만 참 밉기도 했다. 이런 이중적인 감정에 나 자신이 싫어질 때도 있었다. 나는 효심도 모성애도 없는 나쁜 사람 같았다. 그렇게 감정을 부정하고 억압할수록 부정적 감정을 내 안에서 더 커지기만 했다,


나는 감정을 공부하고 난 뒤부터는 시시각각 느끼는 내 감정을 인정하고 흘려보냈다.


‘그래, 그땐 그랬지. 그럴 수도 있지.’

‘그런 감정을 느끼는 건 자연스러운 거야.’


이렇게 내 감정을 흘려보내자 예전처럼 마음속에 부정적인 감정이 쌓이는 일이 거의 줄었다. 내가 느끼는 모든 감정에는 이유가 있다. 이렇게 무거운 감정들이 마음에 쌓이지 않는 것만으로도 나는 평안해졌다.


불안은 결코 나쁘기만 한 것이 아니다

소심하고 쉽게 불안해하는 성격을 숨기기도 했고 고치려고 노력해보기도 했지만 이제는 안다. 불안은 병이 아니라 인간의 본능이라는 것을. 어쩌면 우리는 ‘불안’이라는 감정 덕분에 안전하고 평화로운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미래에 대한 불안을 줄이려는 노력이 과학과 의학 기술의 발전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불안이라는 감정이 없었다면 아마 생존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불안이 없는 사람이야말로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처럼 자신과 주변인들에게 오히려 더 큰 문제를 안겨주는 경우가 많다.


나는 불안감이 높은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그리고 그 불안이 나를 잠식하지 않도록 내 몸과 마음의 반응에 집중하며 나를 돌보았다. 장이 꼬이는 듯이 아프거나 머리가 아프고 악몽을 꾸는 날이면 긴장하고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나를 쉬게 했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잠을 푹 자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그림을 그리거나 책을 읽는 등 진짜 휴식과 기쁨이 되는 활동을 하면서 나를 돌보았다.


불안이라는 감정이 내 인생에서 온전히 독이 된 것만은 아니다. 남들보다 걱정이 많았던 나는 무엇이든 신중하게 고민하고 선택했다. 그리고 부족함을 보완하기 위해 남들보다 더 많이 연습하고 노력했다. 살면서 충동적인 행동을 하거나 위험한 짓을 한 적이 없고, 덕분에 골치 아픈 사건이나 문제에 연루되거나 크게 다친 적도 없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더 치열하게 노력하면서 관찰 능력과 공감 능력도 높아졌다. 때문에 상대가 누구든 선을 넘거나 예의 없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 이런 태도는 사람들의 신뢰를 쌓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사회성이나 리더십 등 나에게 부족했던 것은 교육으로 배우고 훈련했다.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고 그들 앞에서 내 의견을 표현하는 것은 훈련을 통해서 얼마든지 나아질 수 있는 것들이었다. 학창 시절 한 번도 스스로 손 들고 발표한 적이 없던 나는 이제 수십 명 앞에서 한국어, 영어 상관없이 나의 의견을 말하고 리드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물론 스카이다이빙을 하거나, 산 위의 흔들다리를 건너거나, 배낭 하나만 메고 세계여행을 하거나, 서핑을 배우는 것은 아직 불가능하다. 나는 나의 두 다리가 땅에 든든히 서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대신 나는 책 속에서 새로운 경험과 지혜를 얻는 것, 그림을 그리며 상상력을 펼치는 것, 가까운 사람들과 깊은 교제를 하는 것, 글을 쓰며 사람들을 위로하고 소통하는 것에 기쁨을 느낀다. 모두가 똑같은 일을 좋아하며 살 필요는 없으니까.


이제는 아주 가까운 사람들을 제외하면 내가 불안감이 높은 사람이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렇다고 나의 불안이 다 사라진 것은 절대 아니다. 때때로 이유 없는 불안이 몰아치고 걱정과 의심을 할 때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이 불안을 점점 더 능숙하게 다스리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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