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 되더라 남에게 건넸던 말을 나에게 건네면

   
김완석
ǻ
라곰
   
15800
2022�� 08��



■ 책 소개


타인에게는 관대하지만, 나에게는 엄격했던 이들을 위한 위로의 에세이

30만 글스타그램이 추천하고 매 글마다 수십 개의 공감 댓글이 달리는 작가, 원인 모를 통증이 갑자기 찾아오는 희귀성 난치병을 앓고 있으면서도 건강한 사람조차 힘들다는 경비원으로 일하며 따뜻함을 잃지 않는 작가, 김완석 작가가 지난 몇 년간 써온 글들을 다듬어 《위로가 되더라 남에게 건넸던 말을 나에게 건네면》을 펴냈다.

김완석 작가는 모두가 기피하는 일을 하고 있지만 자신의 일을 부끄럽게 여기진 않는다. 모욕적인 말을 듣는 것이 일상이고 가끔은 폭행을 당하기도 하지만, 어린 학생의 손편지에 감동하고 남몰래 요구르트를 챙겨주는 할머니에게 감사함을 느낀다. 다양한 색깔의 사람들을 만나며 더 단단해지고, 수많은 감정들을 마주하며 더 깊어졌다.

이 책은 내가 아닌 타인의 기분에 맞춰 살아야 했던 지난날들을 돌아보면서 남에게는 관대했지만 정작 자신에게는 엄격했던 이들에게 공감과 위로의 메시지를 전한다. 울면서 출근해야 했고, 부당해도 삼켜야 했으며, 허겁지겁 달리다 수차례 넘어졌어도 괜찮은 척해야 했던 이들에게, 남이 아닌 나에게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준다.

■ 저자 김완석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일반인들에겐 생소한 희귀성 난치병도 앓고 있다.
인스타 @kimwanseok33
카카오스토리 wanseok33

■ 차례
1. 위로가 필요한 날
무례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요
이만하길 정말 다행이다
만만한 사람
소중한 시간의 의미
산타 할머니
쓰레기는 어디에 버리면 되나요?
쓸모없는 경비원 주제에
근무환경을 소개해드릴게요
별것 아닌 것들
우리 집이 어디였더라?
약자에게 약한 어른
일 년에 일곱 명이 해고되는 곳

2. 말은 자기소개서와 같다
언어에는 향기가 있다
그냥, 이해가 돼
주임님의 고귀한 언어
여행이 주는 선물
좋은 사람보다 더 만나기 힘든 사람
언어가 쓸모없어질 때
그래, 아빠도 보고 싶구나
너무 힘들면 억지로 힘내지 말아요
해고 대상자
괜찮은 게 아니라 괜찮은 척했던 거였다
하늘이 검은색이면 좋겠어

3. 사소한 태도에서 마음이 보인다
왜 실패하셨어요?
마음을 대신해서 주는 선물
걱정이 많으면 겁이 많아진다
배움에는 나이가 없다
당당해지는 연습을 해요
호의를 베풀면 한 사람의 인격이 보인다
기분 조절 장애가 있습니다
참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멀어져 간 것들은 대개 그랬다
솔직함과 무례함의 차이
바뀌는 게 당연하다고 했다

4. 서툰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
버려진 것들이 남긴 의미
제발, 도와주세요
정답이 없는 인간관계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된다
오해가 가리키는 방향은 날카롭다
아버지의 직업이 창피했어요
새벽 3시, 택배를 찾으러 오는 그녀
담배 냄새는 어디서 시작된 걸까?
미드나잇 인 파리
병원으로 소풍을 떠나요
감정의 변수

 




위로가 되더라 남에게 건넸던 말을 나에게 건네면


위로가 필요한 날

이만하길 정말 다행이다

새벽 1시, 경비실 주변이 조용해졌다. 아파트 거실 불들도 대부분 꺼져 어둠이 내려앉았다. 모두가 집으로 돌아가 잠드는 시간이지만, 경비원으로 일하면서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다. 조용해서가 아니라 소소하게나마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글을 끄적이는 수준이지만, 사실 경비원으로 일하기 전부터 글에 관심이 많았다. 한 사람의 표정을 보면 그 사람의 심정이 보이듯, 한 사람의 글을 보면 그 사람의 인생이 보이기 때문이다. 한 권의 책을 통해 누군가의 삶을 들여다볼 때마다 느낀다. 인간에게 주어진 최고의 행운은 독서가 아닐까 싶다.


먼저 담배를 태우러 나온 입주민이 없나 눈치를 살폈다. 그러고 나서 노트북을 몰래 꺼내다가 그만 바닥에 떨어뜨렸다. 손이 미끄러워서도, 노트북이 미끄러워서도 아니었다. 예고 없이 들이닥친 끔찍한 통증 때문이었다.


10년 넘게 희귀성 난치병인 섬유근육통을 앓고 있다. 돌발통이 오면 출산과 똑같은 강도의 통증을 느끼게 된다. 발목에서 시작된 통증은 무릎과 허리를 타고 올라와 어깨까지 휘감았다. 불에 타는 고통이 이런 느낌일까? 역겨운 통증 때문에 오늘도 땀으로 흠뻑 젖었다. 하늘색 근무복과 양말, 속옷까지도 축축하다.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이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는 정확하게 모르겠다. 한 시간여 정도 지났을까? 통증이 점점 가라앉으면서 제정신으로 서서히 돌아왔다. 땀범벅으로 엉망진창이 된 얼굴은 내게 꽤나 익숙한 장면이다. 손바닥으로 땀을 쓸어내리며 옷이라도 말릴 겸 바람이라도 쐬고 싶었다.


가죽 장갑과 패딩 장갑을 두 겹 끼고 경비실 밖을 나왔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마치 봄바람처럼 시원하게 느껴졌다. 고개를 치켜들어 밝은 가로등을 올려다보았다. 가로등 위에 더 밝게 떠오른 달빛이 예뻐서 그만 혼잣말을 했다. “이만하길 정말 다행이다.”


소중한 시간의 의미

두 달에 한 번 등기를 찾으러 오시는 입주민이 있었다. 나이는 육십 대 초반으로 보였다. 대학교 교수였던 그가 인상 깊게 기억되는 건 배려심 있는 태도 때문이었다. 남자는 늘 경비실 문을 열면서 같은 인사를 건넸다. 아들뻘밖에 되지 않는 나에게 항상 허리를 90도로 굽혀 인사를 하셨다. 말씀은 늘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았다. “소중한 시감을 빼앗아서 죄송합니다. 등기 하나 찾을 수 있을까요?”


그 말을 네 번째쯤 듣던 날, 난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저, 실례가 안된다면 하나만 여쭤봐도 될까요?” “네, 물어보세요.” “항상 소중한 시간을 빼앗아서 죄송하다고 말씀하시잖아요. 저희를 배려해서 하시는 인사 말씀인가요?


당황스러울 수도 있는 내 질문에 교수님은 진지한 자세로 답해줬다.


“그러면 한 번 시간을 되감기 해보시겠어요? 지나간 시간들을 말이죠. 알고 보면 소중했던 시간들은 모두 찰나였죠. 아주 짧은 시간에 일어난 일들이 대부분이었어요. 제가 말을 거는 짧은 순간에도 당신의 소중한 시간을 빼앗을 수도 있어요. 단지, 그것뿐입니다.” 그 말을 끝으로 교수님은 90도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떠나셨다.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소중했던 시간들이 모두 짧았던 게 아니라, 소중했던 시간들이 유독 짧게 느껴졌던 것이 아닐까. 달콤했던 시간들은 입안의 솜사탕처럼 녹아내린다. 반면 원치 않는 시간은 1분 1초가 길게 느껴진다. 근무시간이나 어색한 사람과의 만남은 시간이 느린 재생으로 흘러가곤 했다.


산타 할머니

비닐이 바람에 날려 바스락거리는 소리라 들렸다. 역시나 경비실 앞에는 윌 요구르트 여섯 병이 놓여 있다. 이번이 벌써 다섯 번째다. 양손을 입가에 모아 이미 멀리 걸어가신 할머니의 등 뒤로 외쳤다. “할머니, 매번 감사해요! 잘 마실게요.” 고마운 마음에 작은 캔 음료를 건네도 봤지만, 끝끝내 받지 않으셨던 할머니는 같은 말만 반복하셨다. “손자 같아서 그래. 손자 같아서.”


경비원으로 일하면 마음이 긁히는 일들이 자주 일어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산타 할머니 덕분에 마음이 따뜻해지기도 한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위로가 되어준 것들은 거창한 것들이 아니었다. 작은 배려나 사소한 언어에서 시작됐다.


지친 하루 끝에 “고생했어”라는 말 한마디를 들었을 때 마음의 온도가 달라지는 것처럼, 우린 대개 사소한 것들로 위로받는다.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고, 때론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배려도 마찬가지다. 작은 배려가 반복되면 누군가에게 감동이 된다. 그리고 나에게 위로를 건네는 방법도 어렵지 않았다. 그저, 남에게 건넸던 한마디를 나에게 건네면 그것이 위로의 한 문장이 된다. 



말은 자기소개서와 같다

주임님의 고귀한 언어

봄이면 경비실 옆에 있는 목련나무에 꽃이 핀다. 그 작은 나무가 매해 봄마다 하얀색 꽃을 피웠다. 꽃이 필 때마다 입주민들은 사진을 꼭 찍었다. 며칠을 유심히 지켜보던 주임님은 관리사무실로 들어가더니, 갈색 팻말을 들고 나와 가지에 매달았다. 직접 쓴 손 글씨였다. 평소 말을 상냥하게 하시던 주임님의 작품이었다.


백목련 꽃말은 고귀함입니다. 입주민분들은 무엇을 고귀하게 여기며 지내고 계신가요? 당연히 가족이 아닐까 싶네요. 근무하는 경비원들도 누군가의 고귀한 가족이랍니다. 경비원들에게도 고귀한 언어를 사용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말을 아름답게 사용하는 사람은 마음씨까지 아름다워 보입니다.


주임님의 고귀한 언어는 상처를 주지 않는 언어인 것 같았다. 삶에 있어서 꼭 필요한 부분이다. 같은 말이라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상대의 기분이 달라진다. 말 한마디에도 감정의 온도가 변한다.


그러면 상처를 주지 않는 말은 어떤 의미일까. 아마도 상대를 배려하는 언어가 아닐까. 배려가 첨가된 말에는 상처가 없다. 배려가 곁들어진 말에는 다툼이 없다. 돌이켜보면 상처는 배려가 없는 말에서 시작되었다.


너무 힘들면 억지로 힘내지 말아요</P> 새벽 업무 중에 난감한 민원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술에 취한 입주민을 집에 데려다주는 일이다. “선생님, 몇 동 몇 호에 사세요?” “나? 슈퍼맨.” 역시나 의사소통이 어렵다.


정문 초소에 다다르자 영진 형님이 유리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입주민을 본 형님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또 취하셨네.” “이분 아세요?” “그럼, 잘 알지. 나도 세 번이나 모셔다 드렸어.” “바로 다녀올게요.” “중학생 딸이 울면서 문 열어줄 거야. 너무 놀라지는 마.”


‘아빠가 새벽에 술 마시고 들어왔는데 중학생 딸이 운다?’ 초인종을 누르는 순간까지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501호 현관문이 열린 순간 아이는 정말 울고 있었다. 서럽고 가엾게 울었다. 이유는 알지 못했다. 그저 당황스러웠다. 그냥 가볍게 어깨만 토닥여주고, 현관문을 조심히 닫고 나왔다.


아침에 퇴근하면서 영진 형님에게 전해들은 얘기는 뜻밖이었다. “엄마랑 같이 못 사는게 너무 슬프대. 가족은 아빠랑 둘뿐이란다.” “아… 부모님이 이혼해서 울었던 거였어요?” 형님은 다시 고개를 저었다. “아니, 엄마는 한 달 전에 죽었대. 아이에겐 감당하기 힘든 시련이겠지. 아빠는 아내를 잃은 슬픔에 잠겨서 매일 술을 마시는 것 같아.”


이후로도 그 입주민은 두 번 더 만취한 상태로 발견됐다. 집에 가면 아이는 또 울고만 있었다. 왜 우는지는 묻지 않았다. 괜스레 아픈 상처를 들춰내는 것만 같았다. 그냥 숫기 없는 내가 어설픈 위로를 건넸다. “너무 힘들면 억지로 힘내지는 말아요.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예요.” 뻔한 위로의 말이었다.


몇 달이 지나고 그 일도 잊힐 즈음이었다. 중학생 여자애가 경비실로 찾아왔다. 울고만 있던 그 아이였다. 시선은 먼 곳만 응시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쭈뼛쭈뼛거리더니 분홍색 편지 봉투를 손에 쥐여주고 갔다. 봉투 안에는 편지 한 통이 들어 있었다.


경비 아저씨, 저 기억하세요?

기억 못하시면 조금 섭섭할 것 같아요. 새벽 아빠가 술에 취하셔서 집에 몇 번 오셨잖아요.

그때 아저씨가 해준 말이 고마웠어요. 힘들면 억지로 힘내지 말라는 말이요.

정말 억지로 힘내지 않으니까 조금씩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어요.

아저씨 덕분에 힘든 시간 잘 견뎌낸 것 같아요. 그리고 아빠가 매일 술 드셔서 힘들었는데 이제는 입에도 안 대세요. 감사하다는 말, 꼭 전해드리고 싶었어요. 감사해요.


내 삶이 너무 힘들 때면 지나치는 말 한마디에도 큰 위로가 된다. 때론 가벼운 위로의 말이 삶을 지탱해주는 이유가 되어주기도 한다. 위로를 건넬 때는 반드시 힘든 이유를 묻지 않아도 된다. 해결점을 찾아주지 않아도 된다. 그저, 상대의 마음을 읽어주면 그것이 위로의 한 문장으로 완성된다.


간혹 그럴 때가 있다. 꾹 참고 참았던 하소연을 줄줄이 늘어놓자 “너만 그래? 다 힘들지 뭐”라며 무거운 고민을 가볍게 튕겨내는 사람. 사실 고민을 길게 풀어놓을 때면 해결점을 바랐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내 얘기에 공감해주고 “너 참 많이 힘들었겠구나”라는 사소한 말 한마디가 필요했던 것뿐이다.



사소한 태도에서 마음이 보인다

왜 실패하셨어요?

모 출판사에 투고했는데 답장을 받았다. 경비원 주제가 흥미롭다며 한 번 만나보고 싶다고 했다. KTX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는 길이 설레기만 했다. 첫 투고였고, 첫 미팅 자리였기 때문이다.


출판사의 규모는 생각보다 컸다.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갈지 떨렸는데 막상 와보니 편안했다. 미팅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어졌고, 이 출판사라면 책을 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한 직원이 내게 질문을 던지다가 멈칫했다. “스물아홉 살에 왜 실패하셨….”  고의로 뱉은 말은 아니었다. 직원의 당황한 표정이 실수란 걸 대신 말해주고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말실수를 한다. 나 또한 그런 적이 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곰곰이 생각했다. ‘이십 대에 경비원으로 일하면 실패한 삶이라고 보일 수도 있구나. 그럼 나는 정말 실패한 사람일까?’


타인의 기준에서는 실패한 직업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나의 가치를 스스로 아는 사람이 아니라, 나의 가치를 스스로 깎아내리지 않는 사람이다. 악의 없이 뱉은 말을 감정적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도 있지만, 가끔은 귀를 닫고 흘려보내야 할 때도 있다.


경비원은 계약직에 연봉도 높지 않다. 무시당하는 일도 많고 늘 잠에 쫓긴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배워나가는 것들이 있다. 수면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고, 무례한 사람들을 만나며 나의 태도를 되돌아본다. 그동안 나는 상대에게 어떤 말과 행동을 했는지 생각한다. 나의 언어와 태도가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진 않았는지 반성한다.


성공의 기준은 직업이 아니라, 삶에 대한 만족이 아닐까. 누군가에겐 경비원이 실패한 직업이지만 내겐 만족스러운 직업이다. 왜 이십 대에 경비원이 되었는지 묻는 지인도 많다. 부정적인 시선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안다. 부러워할 직장에 다녀도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지인이 있고, 연봉이 낮아도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진 지인도 있다.


무엇을 이루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자세의 문제다. 그러니 지금도 자신의 길을 꿋꿋이 걷고 있는 이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세상이 정해놓은 기준에서 꽃잎처럼 흔들리되 무너지지만 말아라.


멀어져 간 것들은 대개 그랬다

초등학생 때는 토요일만 기다렸다.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주말엔 아버지와 물고기를 잡으러 떠나서였다. 계곡은 15분 거리에 있어서 놀러 가기도 편했다. 아버지는 나에게 휴일을 반납하고, 주말 내내 함께 시간을 보내주곤 하셨다.


나는 그 시간이 마냥 좋았다. 운이 좋을 땐 송사리만 한 물고기 서너 마리가 그물에 걸렸다. 물고기가 팔딱팔딱 뛰는 모습에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집에 돌아갈 때면, 난 늘 투덜거렸다. 똑같은 아버지의 말씀이 싫어서였다.


아버지는 항상 힘들게 잡은 물고기를 방생해주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꼬박 반나절 동안 잡은 물고기가 너무 아까웠다. 집에 가져가려고 고집을 피우고 떼를 쓰면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욕심을 내면 끝도 없단다. 손에 쥐어봤으면 놓아줄 줄도 알아야 해.”


그때는 무슨 말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지만, 이젠 조금은 알 것 같다. 얻는 법도 알아야 하지만 잃는 법도 알아야 한다는 걸. 내 것일지라도 영원한 것은 없다. 내게서 멀어지는 시기는 어김없이 찾아온다.


잃는다는 것은, 가진 것을 놓아주어야 한다는 것은 고통을 수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멀어져 간 것들은 대개 그랬다. 곁에 머물러 있을 줄만 알았던 것들이 사라질 때 감정은 늘 견디기 버겁다. 내게 소중한 것일수록 오랜 시간 아파한다. 어쩌면 움켜쥐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놓아주어야 하는가인지도 모른다.



서툰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된다

새벽 시간에 섬유근육통이 또 말썽이다. 경비실에 있는 동안 세 번이나 돌발통이 기습했다. 앞선 두 번은 땀범벅이 될 만큼 큰 통증은 아니었다. 하지만 마지막 한 번은 달랐다. 마약성 진통제를 권했던 의사의 말이 다시 떠오를 만큼 심각했다. 전신이 뒤틀리는 느낌도 아니었다. 찢겨진 피부에 소주를 부어버리는 듯한 끔찍한 통증이었다.


뺨으로 흐르는 것이 눈물인지, 땀인지 분간하기 힘들었다. 지금 당장 응급실로 데려가 달라고 도움을 요청해야 할까? 아니면 지금껏 그래왔듯 버티고 또 버티면서, 통증이 점차 가라앉기를 기다려야 할까? 하긴 오랜 기간 반복되었던 일이기도 했다. 그래서 미련하게 또 통증을 참아내기로 했다. 어차피 응급실에 실려가도 다른 방법은 없으니까. 스스로 견뎌내기를 선택한 것이다.


아프다 오늘따라 미치도록 아프다. 극심한 통증에 시달릴 때면 차라리 팔과 다리를 잘라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이를 악물었다. 몸에 배인 주문을 속으로 외우고 또 외웠다. “지나간다. 지나간다. 이 순간만 지나가면 별거 아니다.” 그나마 내가 행운아인 건 통증이 한 시간 이상 지속되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한 시간만 버티면 된다.


오늘처럼 지옥 같은 통증을 견뎌낼 때면, 이것이 우리의 삶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통증 없는 삶은 없고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지만, 모든 고난은 반드시 지나가기 마련이다. 그리고 세상엔 고통이 많지만, 고통을 이겨내는 사람은 더 많았다.


일곱 빛깔 무지개를 보려면, 예고 없이 들이닥친 소나기도 견뎌낼 줄 알아야 한다. 또 지나고 나서야 할 수 있는 말이겠지만, 막상 흘려보내고 나면 아무것도 아닐 때가 많다. 흘려보낼 때가 힘에 겨워서 그렇지. 그리고 마침내 그 순간이 오긴 한다. 한때는 숨이 멎을 정도로 힘들었던 그때를, 아무렇지 않게 말할 수 있는 한 순간이.



병원으로 소풍을 떠나요

내게 오전 9시는 달콤하다. 꿀맛 같은 퇴근이 기다리고 있어서다. 그런데 오늘 퇴근은 왠지 씁쓸하다. 퇴근 후에 나를 반겨주는 건 포근한 집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겹게 드나든 병원을 가야만 한다. 십 년을 넘기고 나서야 병명을 겨우 찾았고, 의사는 호전을 어려울 거라고 했다. 하지만 치료를 포기하고 싶지는 않아 여러 대학병원을 전전했다.


할 수 있는 치료는 많지 않았다. 마취통증의학과에서 프롤로 주사를 전신에 맞는 것뿐이다. 열여덟 살부터 오랜 기간 맞아왔다. 근본적인 치료는 아니지만, 그래도 잠깐 통증을 가라앉혀준다.


완치할 수 있는 치료법은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 주사와 운동 외엔 딱히 다른 방법이 없다. 그래도 프롤로 주사 덕분에 사회생활을 할 수 있으니, 최악의 상황은 면했다. 이른 나이에 몸이 아픈 덕분일까. 나는 건강의 소중함을 또래 친구들보다 일찍 깨달았다. 그래서 어릴 적부터 건강관리에 신경 쓴다.


술은 회식이 아니면 마시지 않는다. 눈치를 보며 물로 바꿔치기 한다. 운동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시간을 내서라도 헬스장은 꼭 다녀온다. 통증을 달고 살아서 감기나 몸살 같은 건 스쳐 지나가는 바람처럼 느껴진다. 상황을 바꿀 수 없다면 긍정의 힘을 빌리면 된다. 어떤 상황이 와도 내가 생각하기 나름이다. 앞으로도 크고 작은 시련이 우리 삶에 드리울 것이다. 슬픈 일을 슬프게 받아들이면 슬픈 일이 된다. 기쁜 일이 생겨도 슬프게 받아들이면 기쁜 일마저 슬픈 일이 된다.


마음의 평화는 현재 내가 처한 상황이 아니라, 나의 마음가짐에서부터 시작된다. 평생 주사를 맞고 통증에 시달리면 어떤가. 죽을병은 아니니까 오히려 감사할 뿐이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 인생은 통증 없이 성장하는 법이 없다. 지금 힘이 들고 많이 지쳤다는 건 위기가 아니라 성장하고 있다는 뜻이다.


* * *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