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땅끝에 가고 싶다

   
임철우 외
ǻ
일상이상
   
16000
2022�� 07��



■ 책 소개


삶에 쉼표와 물음표, 느낌표가 필요할 때

해남 땅끝이 우리를 기다린다!

우리나라 문화예술인들은 성찰과 사색을 모색하기 위해 해남 땅끝을 찾는다. 땅끝은 얼핏 ‘세상의 끝’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기 쉽다. 그래서 절망적인 상황에 빠진 사람들을 강렬하게 유인하는 힘이 있다. 하지만 김남주, 고정희, 김지하 등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해남에서 절망이 아닌 새로운 희망을 얻었다.


이 책을 통해 해남의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문화유산 그리고 해남 사람들의 정신문화를 가까이 만날 수 있고, 따뜻한 위안과 평안한 안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저자 임철우
198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당선했다. 이상문학상, 대산문학상 등을 수상했고, 소설집 『아버지의 땅』, 『그리운 남쪽』, 『달빛 밟기』, 장편소설 『그 섬에 가고 싶다』, 『등대』, 『봄날』, 『백년여관』, 『이별하는 골짜기』 등이 있다.

■ 차례
머리말 박병두ㆍ땅끝에서 부는 바람
권두시 황지우ㆍ솔섬

제1부 해남 땅끝에 가고 싶다
곽재용ㆍ해남형님
김경윤ㆍ비자나무 숲에 푸른 비가 내리는 녹우당과 고산문학축전
김대원ㆍ해남 인문학의 중추 ‘인송문학촌 토문재’
김병익ㆍ땅끝, 그 땅 마지막의 환한 열림
박명성ㆍ해남촌놈
박해현ㆍ해남과 애린
손택수ㆍ해남(海南)이라는 시
송기원ㆍ나의 마지막 버킷 리스트, 백련재
신경숙ㆍ그녀에게 가장 알맞았던 장소, 해남
신달자ㆍ명품인생으로 산다는 것은
어수웅ㆍ그해 여름, 해남 일기
오세영ㆍ동백꽃 그늘 아래서
유성호ㆍ땅끝에서 피워 올린 한(恨)과 멋의 미학
유자효ㆍ땅끝에서
이재무ㆍ그리운 해남 산정, 어란포구
임철우ㆍ스무 살, 내가 사랑했던 두륜산
조용호ㆍ해남이라는 ‘정토(淨土)’에서 보낸 날들
최동호ㆍ해남의 윤선도와 보길도의 추억

제2부 해남 명소에 가고 싶다
김선태ㆍ한반도의 끝이자 시작, ‘땅끝’
김윤배ㆍ가보고 싶은 해남 미황사
나기철ㆍ해남에는 땅끝순례문학관이 있다
문태준ㆍ다선일미(茶禪一味)와 초의선사
문효치ㆍ일지암의 봄
송소영ㆍ땅끝, 황토나라테마촌
이건청ㆍ해남 보길도 「어부사시사」
이경철ㆍ백련재, 전통과 자연이 어우러져 올곧은 서정을 일구는 창작의 현장
이지엽ㆍ비자림이 시를 쓰는 곳, 은적사
장석주ㆍ해남, 대흥사, 그리운 나라
정끝별ㆍ김남주 생가와 고정희 생가를 잇는 벼들의 초록바다
정일근ㆍ해남에는 ‘4est 수목원’이 있다
조동범ㆍ해창주조장, 백 년의 세월을 견딘 삶과 역사
조용연ㆍ오기택의 고향 유정, 해남 오소재
조희문ㆍ해남의 명소 ‘해남공룡박물관’
최수철ㆍ미륵, 명상 그리고 해남에 대하여
허형만ㆍ문내면 우수영 법정 스님 마을 도서관
홍신선ㆍ노포의 아우라와 옛시조의 한 거봉


 

 




해남 땅끝에 가고 싶다


땅 끝, 그 땅 마지막의 환한 열림 _ 김병익

고향은 경상도고 자라기는 대전이어서 출신 친구를 처음 만난 것은 서울로 진학하고 나서였다. 그런데 신문사 기자가 되어 문학을 담당하면서 사귀게 된 많은 친구들이 전라도 출신의 또래 문인들이었다. 그들은 가까운 지인 정도가 아니라 나보다 후생이면서 문학의 선배가 되는 남도의 목포 출신 김현과 북도의 고창 출신 김치수 그리고 그의 뒷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힘겨운 일을 해야 했던 장흥의 이청준이었다.


여기에 내가 4.19 제3세대의 문학인으로 앞세운 소설의 김승옥과 끌어안고 싶은 같은 세대의 막내 시인 황지우가 있었다. 그들을 통해 강호무, 박상륭, 최하림, 김형영도 함께 어울리며 1970년대 후반에 이르도록 우리 문단의 주도 세력으로 활동한 문인들이 바로 이 호남 출신들이었다.


내가 처음 들을 때의 그들 말소리가 부드럽게 사근사근 울리는 낮선 억양으로부터 새삼 시골스런 정감으로 따뜻하게 다가올 때, 그들이 내게 안겨준 우정은 이미 내 생애를 휘젓기 시작하고 있었다. 내가 그들과 문학 동인이 되고, 실직하고 나서는 출판사 동업자가 되고 필자와 독자가 되어 문학 동네의 형과 아우가 된 것이다. 그 친구와 후배들이 왕성한 문학 활동을 하고 있을 때, 그리고 김현과 이청준이 때 이른 나이로 이 세상을 먼저 하직하고 나서, 나는 문학비와 문학자리 등 그들의 뒷일들을 이루기 위해 그들 고향을 더 자주 들락거리며 부산을 떨어야 했다.


그 부산함 속에 내가 해남에 간 것은 김현의 목포 문학비를 건립하고서도 얼마 후였다. 이청준의 장흥을 오가며 이 ‘바다남쪽’ 해남이란 아름다운 땅의 이웃임을 알게 되었다. 가난으로 시달리던 이청준이 고향 발길을 끊다시피 하며 귀향을 회피하다가 드디어 고향길 이야기, 시골 어른들 이야기, 그리고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 등 이른바 ‘귀향소설’로 속내를 펴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친구들을 꼬여 장흥으로, 그의 시골집 회진으로 데리고 가 먹이고 재우고 구경시켜 주고 했는데, 그 마실길이 강진이며 해남을 거치게 마련이었다. 이청준은 지나는 길에 보이는 언덕이며 살날맹이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그 능선의 흐름을 짚어 학이 두 날개를 펴고 솟아오르는 형상이라고 그려주기도 하고, 자기 집 앞 넓은 들판이 물막이로 일군 바닷가 땅임을 설명하기도 했다.


내가 바다 남쪽 ‘해남’을 이름이 아니라 형상으로 안 것은 이 즈음이었다. 30년 전이고 그때만 해도 옛 명소를 밝히고 새 구경거리를 만들어 관광 소개를 하기는 고사하고 안내판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수준이어서 명찰도 설명도 없이는 그 값을 제대로 알아보기 힘들었다. 그래도 대흥사의 넓고 단정한 마당과 겉치레 없이 의연한 탑이 참 품위 있게 보였고, 미황사의 탱화는 이청준의 설명으로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지만 절 바닥 밑으로 뚫린 땅길을 지나 마당으로 오르던 독특한 오름길이 재미있었다. 그러고는 마침내 이른 곳이 땅끝마을 전망대였다.


그때는 우리 글쟁이 부부가 열 명 넘게 동행했던 것 같다. 전망대에 올라 먼 남쪽 바다를 바라보았고 그 안의 홀에서 무언가 마시며 지껄지껄했을 것이다. 그런데 웬일인지 이때의 이 전망대 안에서의 일행들을 감싼 홀 분위기는 내게 어두침침하게만 기억된다. 아마 실제로 어두웠을지도 모르고 많은 걸음으로 눈길이 피로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돌이켜보는 내게 확연했던 것은 내가 알고 있는 ‘토말’, 우리의 ‘땅끝’은 적어도 이렇지 않았다. 환하게 열려 있는, 남쪽 바다가 질펀하게 열려 있는 곳이어야 했다. 그 파랗게 환히 열려 있는 곳을 떠올리자 내가 왜 이처럼 어둡게 느껴야 했는지 깨달았다. 나는 우리나라 땅의 끝자리를 아주 밝고 맑게, 크게 열려 있는 모습으로 본 적이 있어 그 기억 속을 헤매고 있음을 깨달았다.


이 전망대에 오기 아마 두어 해 전이었을 것이다. 나는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국제도서전 참관을 핑계로 소련을 구경하고 헝가리와 체코를 잠시 들렀다가 독일을 거쳐 귀국 비행기를 탔다. 창가에 타 하늘을 내다볼 수 있었던 그 대한항공기가 아마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 내륙을 날아 드디어 황해를 건너 한반도로 오르는 참이었다. 하늘은 맑고 바다는 푸르렀으며, 햇빛은 밝고 공기는 투명했다.


문득 바다가 열리고 그걸 건너며 그 푸르름에 젖어 마음을 새로이 다잡고 이제 드디어 우리나라로 와 가는구나 하고 안도감을 품는 참이었다. 문득 육지가 보이며 곁으로 파란 바다의 신선한 색깔들 가운데로 해안선을 그으며, 낮은 언덕이 나타나고 그 언덕 맞춤한 자리에 작고 허연 돌 비석 같은 게 눈에 띄었다. ‘아! 저것, 토말비 아냐?’ 나는 여적 보지도 못했던, 그 뜻밖의 ‘땅끝!’을 보았던 것이다.


기이할 정도로 맑은 날, 그 환한 저편에, 분명 보이지 않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나는 또렷하게, 그렇게 읽었다. ‘토말’, ‘그 땅끝!’ 여기가 한반도 땅의 마지막이구나! 여기 우리 삶의 터전 끝자리구나. 나도 미처 예감하지 못한 감탄들이 잇달아 조용히 솟구쳤다. 저기까지 적어도 5백 길은 더 될 터인데, 어쩜 저리 선명하고 분명할까.


해남은 그렇게 환한 모습으로 내 안에 박혀왔다. 밝고 맑고 가없이 트이고 열려 있는 곳, 그 이름마저 바다의 남쪽……. 이 땅의 끄트머리는 바다로 환히 열려 있고 하늘로 한없이 퍼지고 있고 맑은 대기 속으로 드러나며 따뜻한 햇볕으로 안겨 있고, 푸른 바다와 육지와의 경계로 아름답고 자랑스레 버티고 있구나. 해남은 그렇게 내가 우리나라를 안고 왔고, 그 해남을 따라 한반도 내륙에 올라 김포로 향하는 하늘길도 그렇게 열려 펴 있고 그 아래 땅길도 줄서 있었다.



해남촌놈 _ 박명성

나는 지금도 달을 걸러 한 번씩은 꼭 해남을 찾는다. 나 혼자 재충전하기 위해 훌쩍 떠나올 때도 있지만, 가끔은 다양한 직업을 가진 주변 분들과 동행하기도 한다. 사실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해남을 궁금해 하겠지만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더욱 땅끝 해남여행을 즐기고 사랑한다. 그중 특히 연극계 어르신들을 모시고 올 때가 가장 행복하다.


존경하는 분들을 모시고 내 고향 해남을 둘러보는 여행이라니. 어찌 나에게 특별하지 않을 수 있을까! 사실 2021년 늦가을에도 임권택 감독과 함께 지인 몇 분이 유선관을 찾을 예정이었다. 천년고찰 대흥사 앞에 자리 잡은 백년여관 유선관. 1914년에 12칸짜리 전통 한옥건물에서 첫 영업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으니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의 말대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여관”이라 할 만하다. 그 유선관이 최근 깔끔한 한옥호텔로 거듭났다.


당대의 예술가들을 모시고 유선관에 하루 묵고 난 다음엔 대흥사로 모시고 갔을 것이다. 2018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천년고찰 대흥사는 고려 시대 이전에 지어진 유서 깊은 사찰이다. 서산대사가 ‘삼재가 들어오지 않는 곳, 만세토록 파괴됨이 없는 곳’이라 할 만큼 명당이다. 서산대사의 흔적이 남은 대흥사 곳곳을 훑어보는 일은 기쁨과 환상 그 자체이다. 두륜산이 아늑하게 품고 있는 경내는 평화롭고 아름답다. 초의선사가 조성했다는 아담한 연지를 지나면 전각과 탑들이 어우러져 있다.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들도 가득하다.


대흥사를 둘러보고 나온 후엔 천일식당을 들러 맛깔스런 떡갈비 한 상을 대접할 것이다. 한우 암소의 갈빗살만 사용한다는 떡갈비 맛은 일품이다. 100년의 비법이 담긴 간장양념이 육즙과 어우러져 풍부한 맛을 낸다. 한 상째로 들어오는 반찬들 역시 훌륭하다. 가짓수도 많지만 반찬 하나하나에 정성이 가득하다. 이렇게 남도의 맛을 만끽하고 나면 꼭 들르는 곳이 있다.


화산면 해창리 초입에 자리한 해창주조장이다. 이곳에서 빚은 술이 바로 최근 몇 해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유명한 해창막걸리이다. 일반 사람들에겐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이 자신의 SNS에서 ‘인생막걸리’라고 고백하면서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지만, 애주가들에겐 이미 오래전부터 그 가치를 인정받은 곳이다. 해창막걸리는 해풍을 맞으며 자란 유기농 멥쌀과 찹쌀로 오랜 숙성기간을 거쳐 빚어낸다. 자연숙성을 찬찬히 하다 보니 숙성기간이 일반막걸리보다 4배나 길다고 한다. 이렇게 빚은 해창막걸리는 막걸리 본연의 맛이 살아 있어 트림이 나오지 않고 숙취가 없다. 그야말로 막걸리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것이다.


평소에 술을 입에도 대지 않는 손숙, 박정자 선생께서 해창막걸리는 두세 잔씩 단숨에 비울 정도이니 상상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야말로 신이 빚어내린 탁주가 아닌가 싶다. 나 역시 해창주조장에서 마신 막걸리의 첫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모두들 이곳에 오면 대한민국 1등 막걸리 맛에 탄성과 감탄을 쏟아낸다. 여기에 맛을 더하는 것은 역사다. 역사는 깊은 맛을 더한다.


싹싹하고 털털한 주인장의 안내로 100년 정원과 96년이 넘는 적산가옥과 주조장의 해설을 듣노라면 가히 전설적인 막걸리의 탄생을 엿볼 수가 있다. 정원도 참 아름답다. 40여 종의 수목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뿐만 아니라 사계절 꽃도 아름답게 핀다. 이제 목련이 피고 영산홍이 필 때가 되었다. 여름엔 배롱나무꽃이, 가을엔 상사화가 필 것이다. 그러니 주취가 절로 난다.



그해 여름, 해남 일기 _ 어수웅

그래 여름, 아직 젊었던 나는 속세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내가 쓰는 문화면 기사는 내 욕심에 미달했고, 애정운은 수명을 다했으며, 혼자 있고 싶었다. 신문사 문화부 기자의 알량한 인맥에 손을 뻗친 나는 해남 한 큰 절의 말사를 소개받았다. 큰 절이 대흥사였는지 미황사였는지는 묻지 마시라. 단지 작은 절 암자에서 며칠을 보내고 싶었을 따름이다.


암자의 주지 스님은 바쁜 분이었다. 내가 도착한 그날 저녁에도 타지에서 강연이 있다고 했다. 스님은 행자 한 분을 소개시켜주고 총총 떠나갔다. 아직 스님이라 불릴 수 없는, 머리를 깍지 않은 수행자. 둘만 남은 암자는 적막했다. 어스름 저녁, 행자가 다가왔다.


“처사님. 저녁 드십시다.”


당연히 나물과 김치와 밥을 기대했던 밥상에는, 놀랍게도 제육볶음이 놓여 있었다. 놀란 표정을 지은 처사에게, 행자는 말했다.


“젊은 분이, 푸성귀만 먹고 힘을 쓸 수 있겠습니까.”


행자는 냉장고를 열었다. 냉장고 안에는 검정 비닐 봉투가 여럿 있었다. 그중 또 하나를 꺼내 매듭을 풀었다. 삼겹살이었다.


“스님, 절에 어떻게 이런 귀물이…….”

“보살님들이 가끔 가져다주십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젓가락을 잡았을 때 행자는 다시 일어섰다. 냉장고를 왕복하더니, 2리터짜리 페트병 하나를 들고 왔다. 위풍당당, 보해소주였다.


행자는 자신의 인생을 주섬주섬 털어놨다. 내가 처음부터 중이 되려 했던 건 아니라는 둥, 부모님 속을 많이 썩혀드렸다는 둥, 우리 주지 스님은 좋으신 분인데 내가 너무 미달한다는 둥…… 한 토막 한 토막을 털어놓을 때마다 페트병도 조금씩 비어갔다. 내 고민을 털어놔도 모자란 시간이었는데, 이상하게도 듣는 동안 치유받는 느낌이었다.


3박 4일 동안의 암자 생활이 지금도 생각난다. 매일 아침이면 산 정상에 뛰어올랐고, 밤에는 가져갔던 책을 읽었다. 낮에는 아직 머리를 깎지 않은 젊은 행자와 해남 읍내에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나갔다. 사람과 자연과 문학에게서 힘을 얻던, 해남의 여름이었다.


그 암자에서 밤을 함께 보낸 책이 있다. 도정일 산문집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이다. 기억에 남는 구절이 있다.


“고추를 팔면 팔수록 손해를 보면서도 많이 팔았다고 즐거워하는 고추장수 이야기, 아내가 낳은 아이들 중에 진짜 자기 아이는 몇인가 같은 문제에는 도무지 신경 쓰지 않는 동네 바보, 하느님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어째 꼭 하나여야 하느냐고 우기다가 목이 달아나는 얼간이, 6시가 지나면 왜 반드시 7시가 와야 하느냐는 문제로 깊은 고민에 빠지는 푼수, 이런 바보들의 이야기로 한때 풍요로웠던 것이 문학의 세계다. 그 바보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이러다가 주지 스님이 영원히 머리를 깎아주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우려는 행자에게 전하지 않았다. 해남의 고추장수와 서울내기 동네바보 이야기로 해남에서 보낸 밤은 즐거웠다.


서울의 얼간이가 물었다.


“입에 사탕 세 개가 들어 있다. 두 개를 더 넣으면 몇 개요?”


해남의 푼수가 대답했다.


“한 입 가득이요.”


다섯 개가 아니라 한 입 가득이라고 답하는 세상에 문학이 있고 사람이 있다. 문학이 실용적이지 않아 읽지 않는다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세상. 그러면서도 한편에서는 자신의 영혼이 오염되어 가고 있음을 두려워하는 세상. 그해 여름 해남의 기록을 여기 몇 줄로 남긴다.



가보고 싶은 해남 미황사 _ 김윤배

해남은 가보고 싶은 땅이다. 특히 미황사는 언젠가 꼭 찾아가리라 생각하는 절이다. 미황사 부도전에 새겨진 문양을 보고 싶다. 미황사라는 절 이름은 설화에서 유래한다고 들었다. 아름다울 미(美) 자는 소의 울음소리가 아름답다는 것을 뜻하고, 누를 황(黃) 자는 금인(金人)의 색을 뜻한다고 알려져 있다. 


미황사는 20년 전만 해도 황폐한 절터였다. 동백나무와 잡목이 무성한 곳에 대웅보전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러나 미황사는 정유재란으로 불타기 전에는 열두 암자를 거느린 큰 절이었다. 도반들은 숲속으로 난 길을 걸어 암자에서 암자로 다니며 수행을 했을 것이다.


미황사에 가면 도솔암을 보아야 할 것이다. 미황사에서 도솔암 가는 길이 여간 운치 있는 길이 아닌 것이다. 도솔암 가는 길은 가파른 길이다. 원래 달마산의 기개가 명산에 못지않은 것을 알 수 있다. 바위 봉우리들이 날카로워서 더욱 그렇게 보일 것이다.


암자는 대개 가파른 곳에 짓는다. 오르내리는 길이 수행일 것이다. 도솔암은 더 심해 높은 벼랑 틈에다 지었다. 높이 솟아오른 바위틈에 지었으니 위태로워 보이는 암자는 마치 하늘 끝에 붙어 있는 다락방 같은 느낌을 줄 것이다. 해남의 바다와 섬들이 옹기종이 보일 것이다. 땅끝이 보일 것이고 진도와 완도가 보일 것이다. 원래 암자는 호젓해야 수행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수행자들이 즐겨 찾는 암자일 것이다. 시간이 되면 해남의 땅끝과 미황사와 부도전을 꼭 보러 갈 것이다.


* * *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