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의 맛

   
자취남(정성권)
ǻ
21세기북스
   
16000
2022�� 06��



■ 책 소개


나이도, 직업도, 사는 곳도, 사는 방식도 다양한
가지각색 사람들의 집에서 찾은 이야깃거리

집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사람이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공간인 만큼 가장 자연스러운 그 사람의 흔적이 묻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혼자 사는 사람의 집은 온전히 그 사람을 나타낸다. 오롯이 자신의 취향과 가치관을 반영했기에 인테리어뿐만 아니라 소품 하나하나에서도 그 사람의 기호가 담겨 있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 남의 자취방을 제일 많이 방문해본 유튜버 ‘자취남’이 300곳이 넘는 자취집을 찾아가 방 안 구석구석을 들여다보며 엿본 자취생들의 삶을 이야기한다.

■ 저자 자취남(정성권)
구독자 30만 명을 보유한 유튜브 ‘자취남’ 운영자. 우리나라에서 남의 자취집을 제일 많이 방문한 사람 중 하나다. 3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의 자취집을 찾아가 방 안 구석구석을 들여다보며 각자의 사는 이야기를 듣고 자취 꿀템을 소개한다. 혼자 사는 사람의 ‘리얼’한 모습을 볼 수 있어 자취를 시작하려는 사람이 봐야 할 필수 콘텐츠라는 평을 듣고 있다.

그가 방문하는 집은 모두 평범한 친구나 이웃들이 사는 평범한 집이다. 하지만 그 안에서 각자 다른 삶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발견하면서, 서로 다른 사람이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기 때문에 모든 집이 특별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후 수많은 자취인들과 각자 사는 모습을 나누고, 서로 이야기하며 그들의 특별한 세계를 전하고 있다.

또한 구독자들의 참여로 집들이 콘텐츠가 이루어지는 만큼, 받은 관심과 사랑을 구독자들에게 다시 돌려주고 함께 성장하는 방법을 고민 중이다.

유튜브 채널 youtube.com/자취남

■ 차례
프롤로그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다른 사람들의 집은 어떤 모습일까?

Part 1. 단 한 사람만을 위한 공간
온전한 1인분의 삶
30대가 되면 독립 DNA가 발현된다
나만의 집을 만나다
라이프스타일에 정답은 없다
내 집도 아닌데 인테리어를 하는 이유
[VOTE] 집에서 슬리퍼 vs 맨발

Part 2. 집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미니멀리스트의 집을 가보다
맥시멀리스트는 어떻게 소비할까
집에 왜 이런 물건이 있죠
일잘러의 프로페셔널한 집
유튜버의 치밀한 브랜딩이 담긴 사무집
[VOTE] 빨래할 때 한꺼번에 vs 나눠서

Part 3. 각자가 사는 모습은 다르다
계단 있는 2층집, 복층 오피스텔의 함정
레벨업한 자취인들의 선택, 빌라와 다가구
아파트를 고집하는 이유
월세가 좋을까 전세가 좋을까
서울과 수도권, 지방은 다를까
[VOTE] 집 고를 때 건축 연수 vs 평수

Part 4. 취향의 발견
반려동물과 살고 있습니다
혼자 살면 대부분 집에 술이 있다
요리? 조리? 배달? 자취인이 먹고 사는 법
나는 집안일에 소질이 있나
1인 가구를 위한 서비스
[VOTE] 집 근처에 하나만 있다면 다이소 vs 시장

Part 5.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공간
로망에는 대가가 따른다
House와 Home의 차이
300곳이 넘는 자취방을 돌아다니며 느낀 것
돌이킬 수 없는 독립의 맛
나를 돌보고 키우는 일
[VOTE] 샤워하고 옷 입고 나오기 vs 벗고 나오기

 




자취의 맛


단 한 사람만을 위한 공간

라이프스타일에 정답은 없다

나만의 규칙이 생기는 곳

예전부터 참 궁금했던 게 있다. 왜 부모님은 꼭 주말 아침에 청소기를 돌리는 걸까. 지금 생각해보면 그나마 쉬는 날 집안을 챙기고 돌보려다 보니 주말이 대청소의 날이 되었다는 것을 유추하는 게 어렵지 않지만, 어릴 때는 청소기 소리에 잠을 깨는 게 그렇게 싫었다. 환기하려고 창문을 활짝 열어두면 이불을 둘둘 감고 버틸 수 있을 때까지 게으름을 피웠다.


부모님과 함께 살 때는 부모님이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차곡차곡 쌓아온 가정 내 크고 작은 규칙들을 군말 없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 말은 곧 무엇인가. 독립하면 그때부터는 내 마음대로라는 뜻이다. 혼자 살면 망나니처럼 지내도 뭐라 할 사람이 없지만 사실 내 공간을 막상 가꾸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부모님이 대신해준 만큼의 노동력을 내가 직접 써야만 한다. 그래도 최소한 청소기는 내가 원하는 시간에 돌릴 수 있다. 그렇게 나도 나만의 작은 규칙들을 새롭게 만들어가는 것이다.


어디 무인도에 떨궈놔도 바닷물로 세수하고 나뭇가지 텐트에서 잠자며 대충 살 것 같겠지만, 그래도 삶의 질을 위해서 내가 굳이 고수하는 아이템이 하나 있다면 바로 바디워시다. 아주 최근까지도 본가에서는 바디워시 대신 비누를 썼다. 아마 어릴 때 다들 집에서 한 번쯤 본 기억이 있을 법한, H사에서 나오는 자주색 비누다. 물론 몸을 닦는다는 기능적인 면에서 큰 차이는 없겠지만 내심 이왕이면 우아하게(?) 바디워시를 눌러 짜서 씻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이 있었다. 그렇다고 내 돈으로 사다놓기는 아까운 품목이라 주는 대로 비누를 쓰면서 지내기는 했다. 그런데 독립한 이후 그런 생활용품을 내 마음대로 선택하게 되면서 욕실에는 당연히 바디워시를 비치해두게 되었다. 보기만 해도 왠지 뿌듯해지는, 나의 독립을 상징하는 아이템인 셈이랄까.


샤워 용품으로 바디워시를 고르는 사소한 부분 외에도 독립한 내 집에서는 나만의 규칙들이 자연스럽게 하나씩 생기게 된다. 뭐 설거지를 내일로 미룬다든가, 수건은 개지 않고 건조기에서 그냥 꺼내 쓴다든가, 딱히 규칙이 없는 것도 규칙이라고 우겨볼 수 있겠다.


재미있는 게, 내가 방문했던 어떤 집은 베란다 문을 열면 저 끝에 건조기가 있었는데 내가 보기엔 그게 너무 멀리 있는 것 같았다. 베란다 문을 열고 건조기까지 왔다 갔다 하는 게 너무 불편하지 않을까? 그런데 알고 보니 그 바로 옆에 베란다와 연결된 안방 창문을 열어서 건조기에서 꺼낸 옷을 쏙 집어넣으면 되는 동선이었다. 다 나름대로 나만의 동선과 규칙에 맞춰서 가구 배치를 해놓고, 나만 아는 규칙으로 효율적인 집안일을 하는 것이다.


TV 프로그램 <알쓸신잡>에도 나왔던 건축가 유현준 교수님의 유튜브에서 본 내용인데, 우리가 공간에 애정을 갖게 되는 순간은 스스로 가꾸고 규칙을 부여했을 때라고 한다. 미국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갖는 럭셔리한 취미 중 하나가 가드닝이다. 그게 행복한 이유는 그 땅에 자신이 선택한 꽃이나 나무들을 배치해 나만의 세상을 구축하고 규칙을 부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내가 모든 규칙을 만들고 창조하는 공간에는 당연히 애착이 생길 수밖에 없다. 비록 가든은 없지만 내 자취집만큼은 누가 뭐라든 내가 좋을 대로 구축하고 가꾸는 나만의 세계다.



각자가 사는 모습은 다르다

레벨업한 자취인들의 선택, 빌라와 다가구

내가 원하는 조건 찾기

낙성대에서 자취를 하고 있는 한 초등학교 선생님의 집에는 그분의 자취 역사와 취향이 듬뿍 배어 있다. 20년 된 빌라라고 하는데, 감성 카페 느낌으로 인테리어를 해서 언뜻 봤을 때 오래되거나 낡았다는 인상은 전혀 받을 수 없었다. 방에는 해가 잘 들어오는 커다란 창 옆에 낮은 침대와 폭신한 암체어를 뒀고, 주방 겸 서실에는 통원목으로 된 6인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특히 나뭇가지에서 자연스럽게 늘어뜨린 듯한 디자인의 멋스러운 전등이 이 공간의 편안한 분위기와 잘 어울렸는데, 전구와 소켓, 전선 등을 일일이 따로 사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스펙만 봤을 때는 꽤 낡은 집일 것 같은데, 이런 집을 선택한 분들은 집을 꾸미는 데에 내공이 들어가 있다. 오래된 집은 아무래도 관심을 가지고 관리해줘야 집 컨디션이 좋아지기 때문에 비교적 자취 레벨이 높은 분들이 사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래서인지 보통 빌라나 다가구에 사는 분들은 첫 자취일 확률이 좀 낮다.


첫 자취를 할 때는 일반적으로 보안에 대한 불안감 때문인지 오피스텔을 선호하는 분들이 많다. 그런데 살다 보면 오피스텔이 공간 넓이에 비해 비싸고, 또 막상 보안이 뛰어나게 좋은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조금 오래된 건물로 가더라도, 혹은 역에서 조금 멀어지더라도 두세 배 넓은 집을 쓰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보통 빌라는 완전히 역세권이 아닌 곳이 많아 불편한 점이 있을 수 있지만, 같은 금액의 역세권 오피스텔에 비해서 집 평수가 확실히 넓어진다. 특히나 10평을 넘어가면 10평이나 13평이나 비슷한 느낌이지만 10평까지는 1평 차이 하나하나가 정말 소중하지 않은가. 빌라나 다가구는 최소 평수가 보통 9평에서 10평 정도는 된다. 그렇게 넓은 집을 더 선호하는 분들은 차츰 빌라나 다가구를 찾아 옮겨오기 시작하는 것 같다. 내가 살고 싶은 집을 좀 더 구체적으로 그려보고, 내 취향을 반영할 수 있는 공간을 찾게 되는 단계라는 느낌이다.


20년 된 예쁜 빌라에서 살고 있는 이 선생님도 역시나, 이번 집이 세 번째 집이라고 한다.


“집을 구할 때 딱 정해놓은 게 있어요. 타협할 만한 집이더라도, 내가 정한 조건에 안 맞으면 계약하지 말자는 거. 일단 반려동물 가능, 그리고 역에서 거리가 5분 이내여야 한다는 게 저의 필수 조건이었어요. 대신 추워도 되고, 낡아도 된다. 포기할 건 포기한 거죠.”


“역에서 5분이기만 하면 그 어떤 험난한 지형도 상관없어요……?”


“크흠…… 네.”


역에서 5분이긴 한데 거의 스키장 최상 난이도 버전이라는 함정이 있긴 했다. 아무튼 집을 구할 때 막연하게 ‘음, 괜찮네?’ 정도의 느낌에 의지하기보다는 이렇듯 명확한 체크 리스트를 가지고 있으면 도움이 된다. 포기할 수 있는 것과 포기할 수 없는 것을 정확히 정해두는 것이다. 무조건 햇빛이 잘 들어야 한다든가, 역세권이 아니더라도 적어도 몇 평 이상은 되어야 한다든가, 자신의 우선순위를 정해두면 조금 더 만족스러운 집을 고를 수 있을 것이다.



취향의 발견

요리? 조리? 배달? 자취인이 먹고 사는 법

자취가 무엇인가. 국어사전을 보면 ‘손수 밥을 지어먹으면서 생활함’이라고 나와 있다. 즉 부모님의 돌봄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밥을 해먹는 것이 자취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정의에 따르자면 많은 자취인들이 정체성이 흐려질 것이 분명하다. 손가락으로 배달앱 한 번만 터치하면 손수 지은 밥을 현관문 앞까지 배달해주는 감사한 맛집들이 널려 있는데,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이 손수 밥을 지어 먹을 여유는 많지 않다. 아니, 솔직히 가성비가 떨어져도 한참 떨어진다.


더군다나 요리에 정말 능숙하고 하루 세 끼 잘 챙겨먹는 분들이 아니고서야, 웬만하면 1인 가구에서는 요리를 해 먹는 것보다 사 먹는 게 오히려 싸다. 사실상 직장 다니면서 하루 세 끼 요리를 해 먹는 분들이 얼마나 될까. 괜히 재료를 한가득 샀다가 반쯤은 냉장고에 들어간 채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버리고, 결국 서서히 죽어간 식재료의 잔해를 발견해 기겁했던 경험이 자취인이라면 한 번쯤 있을 것이다. 만약 카레를 하려고 양파, 감자, 당근을 사면 절대 1인분만 만들 수 없다. 최소한 네다섯 끼는 먹을 분량이 나올 테니 부지런히 집밥을 먹어야 하는데, 야근 몇 번만 해도 집에서 저녁 먹을 기회는 사라진다. 제때 소진할 자신이 없으면 상해서 버리느니 차라리 그때그때 사 먹는 게 나을 수도 있는 것이다.


게다가 요리라는 게 단순히 부엌에서 썰고 볶고 끓이는 과정만 있는 것이 아니라, 뭘 먹을지 고민하고 장을 보고 손질하는 시간, 또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설거지하는 과정까지 다 포함된다. 단순 재료비뿐 아니라 그 과정에 드는 시간과 에너지까지 고려하면 ‘손수 밥을 지어먹으면서 생황’하는 게 정말로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배달음식에 의존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지는 것 같다. 배달음식의 종류도 예전처럼 치킨, 피자 정도가 아니라 죽부터 샐러드, 찜, 탕, 볶음, 베트남 쌀국수에 멕시칸 퀘사디아, 심지어 핫도그에 꽈배기까지 그 스펙트럼이 엄청나게 넓어졌다. 그러다 보니 아침, 점심, 저녁 세 끼를 각각 안 겹치는 메뉴로 해결하기에도 충분하다. 배달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렸다가 도착한 걸 받아드는 그 순간부터 한 10분은 정말 쾌락의 절정이다. 엄청나게 행복하다.


다만 문제는, 그렇게 얼마간 살다 보면 언젠가 또 문득 한계가 온다는 것이다. 마라탕 한 그릇을 시켜 먹는다고 해도 최소 주문 금액을 맞추려면 내가 먹을 양보다 항상 조금씩 더 많이 시키게 된다. 배달비까지 최소 1만 8,000원은 나오는데 국물이 또 한가득 남는다. 음식물 쓰레기부터 포장 용기까지 정리해서 버리는 것도 일이다. 배달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하다 보면 어느 순간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면서 ‘어?’ 하고 현타가 오는 때가 온다. 아, 이 돈이면….


나는 사실 웬만하면 집에서 요리를 해 먹는 것을 즐기는 편에 가깝다. 딱히 요리해 먹는 게 더 저렴하다거나, 내가 만든 음식이 맛있다거나, 그런 이유는 아니고 요리하는 게 별로 힘들지 않아서다. 오히려 요리를 하는 데서 보람이나 성취감을 느끼기도 한다. 평소에 유튜브를 하다 보면 어떤 일의 끝이라는 게 정해져 있지 않다. 편집을 한참 해도 이게 완성된 건가, 제대로 한 건가, 섬네일 후보 세 개 중에 이게 제일 나은 게 맞나, 애매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 요리는 레시피를 보고 정해진 루트를 따라가면 어쨌든 완성된 결과물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스트레스가 풀리는 면이 있다. 덕분에 처음 사회생활할 때에도 의외로 힘이 많이 됐던 게 요리였다. 예상해서 하는 만큼의 정확한 결과가 도출되는 일이 있다는 게 나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물론 사람에 따라 오히려 요리가 스트레스인 경우도 많다 보니, 혼자 살 때의 요리란 필수라기보다 취미의 영역에 가까워지는 것 같다. 요리가 즐겁진 않아도 먹긴 먹어야 하니까, 요즘에는 확실히 HMR 제품이나 밀키트를 이용하는 분들도 많다. 따지고 보면 식당에 가서 외식하는 것과 금액적으로 큰 차이는 없지만, 그래도 집에서 해 먹는다는 것만으로도 왠지 좀 건강하게 먹는 것 같은 위안이 되기도 한다.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공간

돌이킬 수 없는 독립의 맛

나만의 공간, 나만의 동굴

사람에게는 누구나 자신만의 동굴이 필요하다고 한다. 심지어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나 고양이에게도 그들만의 작은 집이 필요하다고 들었다. 어차피 이 집이 다 강아지나 고양이의 것인데 왜 따로 집이 필요한가 했더니, 아무리 그래도 내 몸 하나 쏙 들어갈 만한 안정적인 공간이 없으면 운동장 한가운데에 우뚝 서 있는 것 같은 왠지 모를 불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도 집안에 박스나 텐트 같은 걸 놓고 자기만의 공간을 확보하고 싶어 하는 모양이다. 어떻게 보면 자신만의 공간을 찾아서 독립하는 게 인간의 본능인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내게 방이 생긴 건 내가 스물넷이 되었을 때였다. 혼자 방을 쓰던 형이 결혼해서 집을 나가면서 내가 그 방을 물려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전까지 나는 거실에서 잠을 잤는데, 막상 내 방이 생기고 나서도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아직 형의 물건들도 그대로 많이 남아 있고, 부모님도 자주 들락거리니까 ‘내 방’이라는 느낌이 새삼스럽게 들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니까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 방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내 방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딱히 해본 적이 없었다. 내가 내 공간을 가져본 적이 있다면 해리포터의 계단 밑 벽장이라도 소중한 공간이라고 생각했을 텐데, 어릴 때는 나만의 공간에 대한 로망을 품기보다는 변신 로봇에 더 관심이 많았다.


아무튼 사람이 참 웃긴 게, 가져본 적이 없을 때는 가지고 싶을 줄 모른다. 무슨 연구 결과에 따르면 SNS를 많이 사용할수록 행복도가 낮다는데, 다른 사람들과 비교를 하게 돼서 그렇다고 한다. 나도 몰랐을 때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막상 한 번 독립하고 나니까 내 방, 내 집이 없었던 시절로는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


독립 후 완전히 나만의 공간이 생기고 나니 나무 뒤에 몸을 숨기던 초식동물에서 호랑의 굴의 호랑이가 된 것 같은 묘한 해방감이 밀려들었다. 내가 고른 주방 세제로 설거지를 하고, 샤워 후에 몸도 안 말리고 나오고, 냉장고에 내 맥주를 채워 넣는 그 모든 행위가 여기가 바로 나만의 동굴, 나만의 집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MBTI 검사 결과에서 E 성향을 가진 사람은 외부에서 에너지를 얻고 I 성향을 가진 사람은 혼자 있을 때 내면에서 에너지를 얻는다고 한다. 나는 확실히 E 성향에 가까워서인지 사람들을 만날 때 즐겁고 충전도 된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혼자서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은 필요한 것 같다. 잠깐씩이라도, 사람들과 있을 때 빠르게 스쳐갔던 생각이나 감각을 다시 붙잡고 집중하는 시간을 가져야 내가 나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게 된다. 나만의 공간, 나만의 동굴에서는 혼자 춤추고 노래 불러도 뭐라 할 사람이 없다는 건 덤이다.


* * *


본 도서 정보는 우수 도서 홍보를 위해 저작권자로부터 정식인가를 얻어 도서의 내용 일부를 발췌 요약한 것으로, 저작권법에 의하여 저작권자의 정식인가 없이 무단전재, 무단복제 및 전송을 할 수 없으며, 원본 도서의 모든 출판권과 전송권은 저작권자에게 있음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