삑사리까지도 인생이니까

   
장해주
ǻ
북라이프
   
13800
2022�� 07��



■ 책 소개


인생 삑사리에 주저앉아 울고 있는 당신을 향한
장해주의 다정하고 따뜻한 포옹

실패 없는 삶은 없다. 누구라도 희로애락을 빠짐없이 다 겪고 가야 하는 게 우리네 인생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길도 다정과 사랑을 잃지 않으며 갈 수 있다. 《삑사리까지도 인생이니까》가 바로 그 다정을 전달할 것이다. 한없이 무너져 내리는 삶의 폭풍 한가운데에 있지만,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를 찾는 독자라면 이 책에서 ‘지금의 나’도 괜찮다는 용기와 응원을 얻을 수 있다. 저자는 말한다. “바람이 분다. 매일 나에게는 더 좋은 게 오고 있다.”고.

■ 저자 장해주
‘다림질하지 않는 인생’이 더 빛난다고 믿는 방송작가.
애써 다림질하지 않아도 그냥 꾸깃꾸깃한 채로 살아도 괜찮다.
소중한 것들은 어쩌면 다 찌질함 속에 있고,
조금 어긋나더라도 궤도를 벗어난 것까지가 전부 인생이니까.
뜻대로 되지 않아도 그냥 나로 살아가기로 한 당신의 삶을 뜨겁게 응원한다.
저서로 《엄마도 엄마를 사랑했으면 좋겠어》, 《오늘도 엄마에게 화를 내고 말았다》가 있다.

■ 차례
프롤로그_볼품없는 나 데리고 살기

PART 1. 흔들리며 살지만, 다행이다
오늘의 내가 그때의 나에게
밥 좀 망해도 지구는 말짱하다
울어본 적이 없어서
상처가 꽃이 되는 시간
마음을 잘, 버리는 일
나는 너를, 있는 그대로의 너를 사랑한다
내가 그리워한 것은

PART 2. 괜찮아, 사랑이 아니었을지라도
연애를 모르는 여자
세련된 연애는 오후 3시에 결정된다
썸에도 애도기간은 필요하다
어른의 연애
줬다 뺏는 거, 준 걸 돌려받는 거, 너무 찌질하잖아?
자상한 남자는 안 그래
외로울 수는 있지만 아무렇게 사는 건 아니야
그 시절, 15번 버스의 그녀는
괜찮아, 그냥 사랑일 뿐이야

PART 3. 조금 느리지만 더 깊어지는 시간
나라는 꽃을 피워보기로 했다
내일쯤 미워할까 해
내 나이가 어때서?
애매해서 다행이고, 이상해서 산뜻하고, 그래서 좋다
환승하는 중입니다
번아웃과 동거하기
쏟은 건 어쩌면 마음
상처에서 자유로워 질 것

PART 4. 그래도 여전히 사랑을 믿는 이들에게
따뜻하게, 부드럽게, 토닥토닥
친구, 해줄까요?
쉽게 행복해지는 사람
헤픈 칭찬이 어때서?
한 사람, 온 우주를 만나고 대면하는 일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눈빛이 따뜻한 사람
나를 있는 힘껏 끌어안기

에필로그_삐딱해도 직진!

 




삑사리까지도 인생이니까


흔들리며 살지만, 다행이다

상처가 꽃이 되는 시간

세상을 살다 보면 필연적으로 만나게 되는 이런 사람과 그런 사이가 있다.


여느 사람은 모르는, 찰나의 순간에 스치듯 흐르는 나의 울적한 얼굴을 봐 두었다가 무심한 듯 초콜릿을 건네는 사람. 전적으로 내 편이 돼 주고, 무엇이 잘됐든 잘 안됐든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끝까지 내 곁에 머무를 것 같은 사람. 꺼릴 게 없고 그냥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는 사이.


상처에 지독히 매여 살던 때가 있었다. 나만 모자란 것 같고, 잘못 산 것 같아서, 그래서 나만 낙오자가 된 것 같았다.


세상에 내 아픔보다 더한 아픔이 없다는 생각이 들고, 나의 상실을 그 누구도 헤아릴 수 없다는 마음에 더는 이렇게 살지 못할 것만 같아서.


그런 우울감과 지난한 고독 속으로 끊임없이 나를 몰아넣던 때였다.


꼭 그런 날, P를 만났다. 요란하지 않아도 함께 있으면 잔잔한 행복감을 채워 주는 그 사람을. 외로움과 방황 속에 침잠하던 나를 돌아봐 주고 손을 잡아 준 P. 그와의 날들은 상한 나의 지난 시절에 꽃밭이 되었고, 자욱하게 안개로 덮인 내 세계에 무지개를 그릴 수 있게 했다.


서로가 있기에 참 다행이라고, 내가 네 옆에, 네가 내 옆에 있어서 참 좋다고 생각했다. 별거 아닌, 같이 손잡고 있는 것만으로도 웃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


서로에게 큰 기대나 바람으로 상처 주지 않는 우리였기에 좋았다. 그저 네가 너여서 좋고, 내가 나여서 좋은 것처럼, 그런 우리여서 기뻤다.


P와 있으면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게 흐르곤 했다. 서점이 폐점할 때까지 서로 좋아하는 책을 읽던 시간 속에, 단골 분식집에 마주 앉아 밥을 먹던 초침 속에, 햇살 좋은 날 가로수 길을 거닐던 발걸음 속에. 우리는 그렇게 줄곧 함께였다.


그랬던 우리에게 예고도 없이 불쑥 끝이 찾아왔다. 어쩌다 겪는 트러블 때문에 ‘특별한 우리’가 ‘아무것도 아닌 우리’로 전락해 버린 날이. 별것 아닌 사소한 일이 불거져 함께했던 모든 날과 시간이 정말 거짓말처럼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순간이.


정말 별거 아닌 그 어떤 것 때문에 우리 사이가 아무것도 아니게 돼버렸다는 거. 딱 요만큼의 그것 때문에 남보다도 못한 사이가 돼버렸다는 거. ‘상처’라는 못된 글자만 서로에게 심어 주었다는 거. 그렇게 멀어져 버린 우리.


지금은 보지 못하더라도, 소식을 알 길이 없더라도 나는 가끔 P를 생각한다. 그래서 생각이 나면 생각하고, 불쑥불쑥 아무 때고 찾아오는 기억의 조각을 애써 치우거나 지워내려 하지 않고 그저 내버려 둔 채, 그렇게 우리의 시간이 흘러가도록.


그와의 기억들이 흐르며 지난 자리에는 언덕마다 연둣빛, 노란빛, 쪽빛 색들이 채워진다. 그와 겪은 시간들이 내내 아파 신음하던 곳에, 황폐하게 무너져 내린 마음의 성벽에, 처참히 짓밟힌 시간에.


그렇게 조금씩 단단해지고, 상처가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고, ‘그게 그렇더라’ 하면 어느 때엔 감사도 하면서. 겹겹이 채워진 아픔 위에도, 하늘은 언제나 눈부시게 반짝이도록 나를 비추고 있다는 걸 알았기에.


너라는 상처가 내게 가르쳐 준 건 내가 깊어지는 거. 나의 그늘이 누군가의 그늘을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시선을 갖게 한다는 거. 그래서 누군가의 상처를 바라봐 주고 품어 주고….


그렇게 상처도 꽃이 될 수 있다는 거.



괜찮아, 사랑이 아니었을지라도

괜찮아, 그냥 사랑일 뿐이야

지하철 역사 안에 멍하니 앉아 있다 보니 문득 이런 진부한 생각이 떠올랐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됐을까, 나는.’


내 사랑은 이번에도 산산이 흩어져 공중분해 돼버렸다. 많은 것을 함께하자 약속하고 꿈꾸던 시간도, 사랑을 속삭이며 귓가를 간질이던 시간도, 서로가 함께 있던 것만으로도 충만했던 시간도.


바람에 나부껴 사라졌는지, 비가 오던 그날 다 씻겨 갔는지, 펑펑 내리던 그 하얀 눈에 다 녹아 없어졌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언제부터 그 시간이 조금씩 모양을 잃어 가기 시작했는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그도 없고 나도 없어져 버린 시간. 분명 존재했던 사랑이 이제는 형체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내가 그를 만난 적은 있는지, 혹은 그 사람이 나를 만난 적은 있는지조차 헷갈릴 만큼 먼 기억의 일처럼 느껴졌다.


그와의 연애는 짜고 습했다. 달콤해서 입에 넣으면 살살 녹는 초콜릿이나 한여름의 얼음 조각 같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처음과 달리 어느 지점부터 우린 늘 치열했고, 힘들었고, 서로의 마음에 기생해서 그 나약하고 여린 감정들을 좀먹고 있었다. 그리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했다. 내용물은 별거 없는데 포장 상자만 거대한 사이가 돼버렸다. 우린 그렇게 5년을 만났다.


힘들고 외로웠던 어떤 날에는 말하지 않아도 가만히 안아 주었고, 배고프고 심심했던 어떤 날은 도시락을 직접 싸 들고 와서 나를 웃게 했던 사람. 펑펑 울던 어느 날에는 나를 꼭 끌어안고 함께 울어 주었고, 같이 손잡고 길을 거니는 것만으로도 웃을 수 있었던 사람.


외모가 특별히 잘나거나 돈 많은 부자도 아니었지만 우리에게는 그보다 특별한 무언가가 있었다. 아니, 우린 그 어떤 연인보다 특별하다고 믿었다. 그런데 그 특별했던 사랑은 점점 빛을 잃어 갔고 감정은 메마른 풀꽃처럼 시들어 갔다.


바람이 어디서부터 불어오는지 모르는 것처럼, 우리의 관계도 언제부터 어그러지기 시작했는지 모를 일이었다.


마른 풀꽃이 더 바싹 말라 뿌리까지 뽑히기 전에 우리는 관계를 정리하기로 했다. 서로 시간을 갉아먹고 좀먹지 말자고 하던 날, 나는 해묵은 감정을 다 폭발시켜 버렸다. 네가 나쁜 거고, 네가 잘못하는 거라고.


나에게 화가 난 건지, 그에게 화가 난 건지 모를 일이었다. 나는 그저 이 지난한 관계에 무언가 남은 끈끈함이라도 찾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말이 없었고, 마지막 말을 던졌다.


“나 먼저 일어날게. 이제 네가 잘 살았으면 좋겠어.”


사랑이 깨지고 그와 꿈꾸던 미래가 산산조각이 난 그날부터 주변 사람들은 나를 위로했다. 남녀 간에 만나다 헤어질 수도 있다고. 지금 이렇게 끝난 게 백배 천배 잘된 일이라고. 그리고 다음번에는 진짜 좋은 사람을 만날 거라고.


내겐 그저 사랑이었다. 그 사랑이 비록 완성되지 못했을지라도 말이다. 나에게는 사랑이었고, 그뿐이었다. 이걸 두고 이 모든 ‘현실적인 위로’를 논하는 것은 내 사랑이 너무나 가치 없고 슬퍼지는 일이었다.


“괜찮아, 그저 사랑일 뿐이야.”


누군가 이렇게 말하며 잔잔한 위로를 건넸다면, 그때의 나는 조금은 덜 상처받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상처에 대한 마음을 덜어 내는 시간이 가뿐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괜찮다. 그게 설사 아픔의 모든 지난한 여정이었더라도.


그 모든 시간은 어느 순간 별처럼 반짝이고, 달처럼 고요할 것이며, 해처럼 밝게 빛날 것이다. 나의 모든 아픔과 시련의 상처까지도, 그리고 사랑한 그 모든 순간까지도.


괜찮다. 그냥 사랑일 뿐이다. 이 세계에서 지금 사랑을 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이별을 한 사람에게도.


“괜찮아, 그냥 사랑일 뿐이야.”



조금 느리지만 더 깊어지는 시간

내 나이가 어때서?

나이 때문에 결혼을 서두르고 연애 상대를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는 게 맞는 걸까 하고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다. 이런 생각이 누군가에게는 어쩔 수 없는 골드미스의 어떤 합리화 혹은 핑계라고 여겨지기도 하겠지만 사실 크게 신경 쓰지는 않는다. 어차피 각자의 라이프 스타일이 있고 나의 현실을 말해 봐야 이해할 수도 없는 일이니까.


어느 날 SNS에서 배우 이하늬 씨가 이런 말을 한 것을 보았다. 자신은 서른여덟 살인데 아직도 도전할 수 있는 게 너무 좋고 신이 난다고.


가만히 나의 시간을 되돌려 보니 나 역시 도전을 참 많이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에서 무모하다며 전부 뜯어말릴 정도로 말이다.


나는 대학을 두 번이나 갔다. 처음 다니던 학교는 3학년 1학기까지 다니고 그 다음 해 다른 학교로 새로 입학했다. 이때 친구들이 미친 거냐고, 1년만 있으면 졸업인데 왜 고생을 사서 하느냐면서 말렸다. 또 메인 작가 타이틀을 막 달고 날개 돋친 듯 잘나갈 때 과감히 방송 일을 접고 출판 쪽 일에 뛰어들기도 했다.


그러나 여기에서 중요한 건 단 한 번도 그때의 나의 선택을 후회한 적이 없다는 거다. 나이를 생각했다면, 혹은 그때 내가 쌓아 온 커리어를 아까워했다면 오늘의 나는 절대 없었을 거다.


나는 결혼보다, 연애보다, 나의 ‘지금’에 집중하는 이 시간이 더 좋다. 하루하루가 새롭고 오늘 내게 어떤 일이 펼쳐질지 기대된다.


하고 싶은 일 모두를 할 수는 없지만, 만나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거나 한 번쯤 꼭 해보고 싶은 일이 생기면 그쪽을 향해 뛰어들기도 하면서(그러나 순전히 충동적인 감정에 의해 움직이지는 않는다. 충동적 감정은 언제나 해가 된다는 걸 수많은 실수와 끊임없는 넘어짐을 통해 알았으니까).


인생의 무수한 선택과 길 앞에서 나이 때문에 지금의 나를 제약하고 싶은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지금의 나는 하루하루가 더 좋아지는 삶을 살고 있기에. 도전이라는 건 어쩌면 내 인생을 더 윤택하게 하는지도 모른다. 두려움보다 앞선 빛이 언제나 나를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래서 내가 나에게도, 또 나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는 당신에게도 하고 싶은 말.


“내 나이가 어때서?”



그래도 여전히 사랑을 믿는 이들에게

따뜻하게, 부드럽게, 토닥토닥

마음대로 살아지지도, 뜻대로 굴러가지도 않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그 당시 나는 참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하는 일마다 꼬이고 안 풀리기 일쑤였고, 남자 친구와는 하루가 멀다 하고 싸우기 바빴으며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을 당하기도 했다. 서럽고 억울하고 화도 나고 한심하기도 하고…. 내 인생은 참 기가 막히게 막연했다.


무언가 대단히 욕심을 내거나 포부를 품은 인생도 아니었다. 그저 하루하루 좀 평안하게 지나가길 바라는 게 전부인, 어쩌면 그걸 철칙처럼 여겨 온 인생이었다. 그런데 그마저도 허락되지 않다니, 이건 해도 해도 너무했다.


그래서 죽고 싶었느냐고 묻는다면 단연코 NO. 오히려 반대였다. 이를 악물고, 이런 삶에 대해 오기를 넘어 독기까지 품어지는 터였다.


‘내가 보란 듯이 잘 살아 준다! 꼭!’


답답한 마음에 무작정 기차를 탔다. 목적지는 내가 서 있는 이곳만 아니면 되었다. 배낭에 간단한 짐을 챙겨 기차역으로 향했다. 뭔가 울적하기도 하고 무기력하기도 하고, 또 조금은 시원한 것 같기도 하고, 이런저런 기분을 느끼며 기차에 올라타 두리번거리며 내 자리를 찾아 앉았다. 그런데 자리에 앉자마자 얕은 한숨이 터졌다.


창가 쪽 자리에 앉고 싶었는데 창가 쪽 자리가 아니었다. 그때만 해도 나는 이런저런 신경 쓸 정신머리가 없었고, 무언가 선택을 하는 게 어려웠다. 자리를 선택하는 것마저 내 선택으로 잘못된 결과가 나올 것 같은 기분에 역사 직원이 주는 대로 표를 받아 든 것이었다. 참담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나의 참담함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차창마다 들어오는 햇살을 막기 위한 커튼이 꼼꼼히도 처져 있었고, 내 옆에 앉은 아주머니도 커튼을 닫아 놓은 상태였다. 자리야 그렇다 치더라도 창밖을 보며 갈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림 같은 풍경을 보며 간다면 기분을 환기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물거품처럼 꺼졌다.


아주머니께 양해를 구해 볼까, 잠깐이라도 이런 생각도 했지만 이내 그만두었다. 방송 생활을 하면서 출연자 섭외를 할 때면 읍소하는 게 내 일이었으니까. 여기서까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허탈하고 공허한 마음에 너털웃음이 절로 새어 나왔다. 햇빛 한 줌도 내 맘대로 보며 갈 수 없는 처지라니. 꼭 내 인생 같았다. 깜깜하기만 해서 어디로 나가야 할지 모르는, 막연하고 침체된 나. 울컥하고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아 나는 이어폰을 꽂은 채 그대로 눈을 감아 버렸다.


이어폰을 타고 흐르는 노래는 내 마음을 더욱 울적하게 만들었다. 계속해서 괜찮다고 자기 최면을 걸며 지금의 상한 기분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그럴수록 내 마음은 더 참담해졌다.


나는 쌀알만큼도 괜찮지가 않았다. 그걸 애써 누르고 달래려니 더 미칠 노릇이었다. ‘이럴 거면 그냥 집에나 있을 걸, 다음 역에서 내려 집으로 갈까?’ 하는 마음이 들면서 엄청난 피로감이 몰려왔다.


그렇게 다음 역이 가까워질 즈음, 누군가 내 어깨를 톡톡 건드렸다. 눈을 떠 보니 옆자리에 앉은 아주머니가 웃으며 무언가를 내미는 것이었다. 박하사탕이었다. 나는 이어폰을 빼고 아주머니와 박하사탕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아주머니는 그런 나를 멋쩍게 쳐다보며 말했다.


“혹시 어디까지 가요? 좀 심심할까 봐. 이거 입에 넣고 살살 녹여 먹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다 와 있더라고.”


아주머니가 준 박하사탕을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받아들었다. 그리고 박하사탕 비닐을 벗겨 입 안에 쏘옥 넣었다. 달콤하고 홧홧하고 시원하고 씁쓸한 맛. 박하사탕을 곱씹다가 나는 그만 ‘풋’ 하고 웃음이 터져 버렸다. 


박하사탕을 찬찬히 녹이다 보니 어느새 참담했던 기분이 조금씩 날아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작은 박하사탕 하나가 나를 위로하는 기분. 그날의 박하사탕은 나를 그렇게 감싸 주었다. 따뜻하게, 부드럽게, 토닥토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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