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 즈음 이완의 시간

   
이유진
ǻ
도마뱀출판사
   
15000
2022�� 06��



 

■ 책 소개

늦되고 서툴러도 괜찮아,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길의 끝과 시작
이완의 시간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전하는 치유의 기록

『오십 즈음 이완의 시간』은 저자가 회사 안식월을 계기로, 해방과 이완의 시간을 찾아 떠난 이야기이다. 저자는 크로아티아, 오스트리아, 체코, 독일, 폴란드 일대를 혼자 여행하며 길 위의 풍경을 세세하게 담아내고, 길 위에서 경험한 사람과 풍경이 지난한 삶을 어떻게 위로하고 다독이는지 잘 보여 준다. 

■ 저자 이유진
경남 진해에서 태어났다. 고려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다. 졸업 후 작가들의 생각을 집으로 짓는 편집자로 사반세기를 지냈다. 그리고 이제, 제 집을 짓는 작가로 변신 중이다. 저서로 『흥청망청 살아도 우린 행복할 거야』(공저)가 있다.

■ 차례
머리말

위험한 행로
-출발 전 × 서울
하얀 돌을 찾아서
-출발 × 인천공항
늦되어도 언제나 길을 가고 있다
-크로아티아 × 두브로브니크 1일
실패를 떠나보내며
-크로아티아 × 두브로브니크 2일
신이 우리를 돕는다
-크로아티아 × 두브로브니크 3일
제대로 살길 여태 미루었다
-크로아티아 × 스플리트
청춘이 저문 뒤에 깊어지는 시간
-크로아티아 × 자다르
삶이란 나를 키우는 숲
-크로아티아 × 플리트비체
가족과의 밥상이 그리운 저녁
-크로아티아 × 자그레브
당신의 꿈에 주문을 걸어
-오스트리아 × 잘츠부르크 1일
여름 한정판 인생을 살듯
-오스트리아 × 잘츠부르크 2일
고치고 여미며 살아가는
-오스트리아 × 할슈타트
어린 날의 영웅에게 길을 묻다
-체코 × 체스키 크룸로프
통속적인 아줌마로 살아가도
-체코 × 프라하 1일
이후의 삶이 궁금해졌다
-체코 × 프라하 2~3일
기차가 사라진 밤
-독일 × 드레스덴
난쟁이 도시에서 가스등을 켜는 거인
-폴란드 × 브로츠와프
사과와 용서를 배웁니다
-폴란드 × 크라쿠프
내 반쪽은 안녕하신지 안부를 묻습니다
-폴란드 × 자코파네
인생은 리얼리티와 판타지 그 어디쯤
-폴란드 × 다시, 크라쿠프
모험이 끝나면 닿을 그곳
-폴란드 × 그단스크 1일
벌써 갱년기라니 거짓말이면 좋겠어
-폴란드 × 그단스크 2일
이완의 시간
-폴란드 × ‘바르샤바’에서의 사흘

 




오십 즈음 이완의 시간


위험한 행로 - 출발 전, 서울

불행은 때를 가리지 않는다

몸에 이상이 생겼다.


남편의 사업이 기울고 어렵게 장만한 아파트를 급히 되팔던 그해, 어지럼증이 발병했다. 직장 생활을 다시 시작한 지 반년이 지난 어느 아침에 생긴 어지럼증으로, 오른쪽 왼쪽 갈지자를 그어대며 집 근처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평형추 역할을 하는 귀의 돌이 빠졌다 했다.


이석증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찾아온, 초대하지 않은 손님이었다. 불쑥불쑥 찾아드는 이석증은 질주하던 삶의 맥을 끊기 일쑤였고, 그때마다 손가락으로 나이를 셈해 보았다. 갱년기가 코앞이었다.


내과와 한의원을 번갈아 찾았다. 한결같이 번아웃을 진단하며 잘 먹고 잘 자면 낫는다고 했다. 하지만 어지럼증과 함께 생긴 불면증으로 밤조차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눈을 감으면 밤마다 집어등이 켜지듯 머릿속이 환해지고, 빛으로 달려드는 물고기처럼 천둥벌거숭이 같은 아이들 걱정에 소소한 집안 사정까지 몰려왔다.


나의 생활은 간신히 이 칸을 집어넣으면 다른 칸이 튀어나오는, 뒤죽박죽 이가 잘 맞지 않는 서랍장 같았다. 대출 이자 납기는 도마뱀 꼬리 자르기 식으로 달마다 성급하게 돌아왔다. 컴퓨터에 처박힌 이력서를 복구하고 간신히 취업하고 보니,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쌍둥이를 저녁 늦게까지 돌봐줄 데가 마땅치 않았다.


천운으로(!) 학교 앞 지역아동센터에 결원이 생겨 아이들을 맡겼더니, 기다렸다는 듯 회사일이 쏟아졌다. 1년 내내 넘쳐나는 일감에 책상은 늘 북새통이었고, 마감에 쫓겨 하루하루를 지내다 보면 어느새 계절이 바뀌어 있었다. 자정 무렵 사무실을 나서는 일도 다반사여서, 밤의 사막 한가운데에서 발목을 휘감는 모래를 빠져나가려 안간힘을 쓰듯 아득하고 무거운 날이 이어졌다.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다.’


온힘을 다해 달렸건만 결국 비루한 삶이라니, 제정신일 리 없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걸까. 이석증은 제 몸을 아끼라는 신의 메시지였다. 신이 주신 몸을 함부로 대하지 말고 완급을 조절하며 살라는 신의 계시 말이다. 나를 위한 시간이 절실했다.


반전의 나날

“한 달이나 여행을 떠난다고요? 애들은 어쩌려고요?”

“가족들이 괜찮다 하세요?”


안식 휴가를 염두에 두고 수개월 전 회사 일을 조율할 때, 동료들은 하나같이 걱정을 앞세웠다. 나로선 완전한 휴식을 결심한 후여서 모든 게 일사천리였지만 말이다. 옴팡지게 휴가를 그러모아 약 한 달간 혼자 떠나는 여행을 계획했고, 이를 선포하듯 말했다. 가족들은 나의 위태한 호흡을 알고 있었다는 듯 다가올 이별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틈을 갖기로 마음먹은 것만으로도 삶의 결이 달라졌다. 짬짬이 여행 일정을 짜고 비행기 티켓을 끊은 후 호텔을 예약했으며 현지 교통편과 지역 정보까지 두루 알아봤다. 코르셋처럼 꽉 조였던 일상의 후크 하나를 풀었을 뿐인데, 콩나물시루 같던 출근길조차 여유롭게 여겨졌다.



하얀 돌을 찾아서 -

출발, 인천공항

한 달간 이별

차가운 저녁이 얼굴을 쓰다듬을 새도 없이 남편의 차는 공항 버스를 앞질렀다. 여러 할 말을 참고 캐리어를 리무진 짐칸으로 옮기느라 숨도 참던 남편은 쌩하니 동쪽으로 떠났다. 이번만큼은 꿈꾸던 시공간으로 연착률 없이 떠나길 바라던 나도 서쪽행 리무진에 올랐다. 부부는 각자 삶이 무사하길 바라며 한 달간 이별했다.


하얀 돌을 찾아서

출국 수속을 마치고 까만 밤을 달릴 비행기에 오르다, 닫히면 그만인 문인 줄 알고 내달렸던 하루를 돌아봤다. 삶이란 이쪽으로나 저쪽으로나 열려 있는 것을, 이 길이 아니다 싶으면 돌아서면 될 것을, 내가 바라보는 그쪽이 출구인 것을…. 바깥 소란에 한눈파느라 내 안의 나침판에는 까막눈이었다.


하루 종일 오락가락 헤매던 나는 이번에야말로 경계를 넘어 한참이나 낯설어진 혼자의 시간으로 발을 내딛기로 작정했다. 이 길은 앞으로 나아가는 길이 아닐지도 모른다. 헨젤과 그레텔이 숲 속에 놓아둔 흰 조약돌처럼, 잊고 지냈던 무언가를 그러모아 집으로 돌아가는 길인지도 모르지.


야간 비행에 떠오른 썩 좋은 예감이었다.



늦되어도 언제나 길을 가고 있다 -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1일

익숙한 세계

이른 아침의 두브로브니크 공항 입국장은 막 도착한 터키 항공의 승객이 전부인가 싶을 만큼 한산했다. 개중 동양인, 그것도 한국인은 나뿐인가 싶었다(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에서 휴양지인 두브로브니크로 남하하는 코스가 일반적이라 그렇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게 됐다).


인천 공한 내 은행에선 유로화만 환전할 수 있었기에, 이곳 ATM기를 찾아 당장 쓸 정도의 크로아티아 통화를 구했다. 때마침 시동을 걸던 공항 셔틀버스에 오르자, 시내 구시가지보다 먼 숙소가 있는시외버스터미널까지 동일 요금으로 이동한다 해서 쾌재를 불렀다. 누구에게랄 것 없는 승리감, 허투루 돈을 쓰지 않는 아줌마 습성은 두고 오지 못했다.



실패를 떠나보내며 -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2일

미완이어도 괜찮아

‘어디야? 엄마 있는 곳으로 가고 싶어요.’


시차에 잠잠하던 핸드폰이 새벽을 흔들었다. 저쪽 시간을 계산할 틈도 없이, 작은아이의 한 줄 소망에 수천 마일 떨어져 있던 엄마의 마음이 흔들렸다.


잠이 들었다 다시 깨어난 건 새벽 5시 무렵, 이번에는 숙소의 1층 식료품 가게에서 시비를 걸었다. 깜깜한 방 한가득 부풀어 오르던 수면은 물건을 하역하는 소리와 기운찬 대화에 짓이겨져 만두피처럼 얄팍해졌다. 베개 밑에 고개를 처박고 엎치락, 숨 쉬기 가빠지고 외로 꼰 고개마저 아파서 뒤치락. 홀로 초를 다퉜지만 승산 없는 싸움이었다. 떠오르는 아침 해가 저들의 편이었다.


삶은 가지와 토마토, 입에 맞는 소시지와 치즈를 종류별로 호밀빵에 얹어 이국에서의 둘째 날을 맞았다. 전날 간이 지나친 음식에 식사를 제대로 못해, 몇 접시를 게걸스럽게 해치웠다.


이날 바람은 다소 거칠어, 식당 창밖으로 항구에 매인 요트들이 흘수선 아래를 내보이며 춤을 추었다. 어제 페리는 밤을 타고 떠났고, 그 허전함을 못 견디겠다는 듯 아드리아해가 요염한 은빛 눈썹을 수시로 깜빡였다.


매혹적인 풍경에 어찔했다. 뒤이어 속이 울렁, 넘실대는 아드리아해를 달리는 페리라도 탄 기분이었다. 불청객의 급습이었다! 천천히 방문을 열고 신경안정제 반 알을 깨물었다. 베개를 겹쳐 높이 세운 후 목덜미까지 이불을 덮었다.


땀으로 축축해진 침대를 의식하며 눈을 떴을 땐 해가 높다했고 바람도 유순해져 낯선 커튼을 툭툭 건드릴 뿐이었다. 침대 발치, 마취된 실험실 개구리처럼 쩍 벌어진 캐리어를 보고 나서야 여행지 숙소임을 깨닫고 울렁증이 가셨음을 알았다.


서두르지 말아야지. 반평생 악다구니 쓰며 누구를 이겨먹으려던 건지, 전쟁을 치르듯 내달렸다. 천천히, 한 달의 여행은 미완이어도 된다. 저편에 남은 가족의 삶은 그들에게 맡기고, 눈앞에 놓인 하루하루를 바람 부는 대로 춤추며 랄랄라 보내야지.



신이 우리를 돕는다 -

크로아티, 두브로브니크 3일

고약한 습관

습관은 고약해서 헛웃음 칠 행동을 아무렇지 않게 부추긴다. 시차에 적응치 못해 뒤척이다 팔을 두르니 납작한 이불, 걸리적거리는 거라곤 구겨지지도 않는 베개뿐이었다. 그 베개를 아래로 끌어 무거운 다리를 올리다 말다 하다가 잠이 달아났다.


호스텔 식당에 들어서니, 익힌 파프리카와 콩 등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조식이 차려져 있었다. 한 접시 수북이 쌓아 창가 자리로 가다가 그만, 화들짝 놀란다. 아침 8시!… 에 헛웃음이 나온다. 깨워야 할 식구도, 한시바삐 움직여야 지각을 면할 회사도 지구 저편 시계에 맞춰 사는데, 벽시계를 볼 때마다 희뜩희뜩 놀랄 건 뭐람.


이날의 첫 일정은 로브리예츠 요새 투어. 이를 위해 카약이 머물던 만을 지나 바리캉이 밀어낸 듯 좁고 경사진 구릉지를 올라야 했다. 이곳 돌계단은 종종 풀숲에 사라졌다 이어졌는데, 돌아보니 아찔한 아래쪽에 노부부 한 쌍이 함께 길을 내고 있었다.


배낭여행자의 습관대로 걷고 또 걸었다. 필레 성문을 지나 구시가지로 들어, 어제의 성벽 투어 출발점을 지나고 사비오르 성당을 지났다.


어쩐지 꼬리표처럼 들러붙는 외로움. 이날은 어디를 가나 가족 단위 여행객이 눈에 띄어 마음이 종종 수런댔다. 점심이 닥치면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이구나 싶고, 저녁을 먹을 때면 함께 찧고 빻을 시간이구나 싶었다. 핸드폰 연결 신호를 수차례 확인하며 깜깜무소식인 핸드폰을 만지작거릴 땐 이만한 짝사랑도 없다 싶어 헤프게 웃고 말았다.


그때 바람에 실려, 이곳 오케스트라가 켜는 주말의 연주가 들렸다. 습관처럼 떠오르는 감정일랑 오선지를 달리는 마법사들에게 맡기기로 하자, 가슴을 들쑤시던 그리움이 3박자의 리듬과 함께 달아났다.



통속적인 아줌마로 살아가도 -

체코, 프라하 1일

다시 여행길

집을 떠난 지 열흘하고도 이틀째, 여행의 중간 기착지인 프라하로 떠나는 날이다. 예전처럼 이번에도 체코 프라하와 헝가리 부다페스트를 두고 꽤나 망설였다. 두 도시는 마치 <고독한 기타맨> 하면 <불청객>, 자우림 하면 크랜베리스, 임화 하면 백석, 홍상수 하면 로게에다 히로카즈, 짜장면 하면 짬뽕 하는 식이었다. 결국 둘 다 보고 싶었단 얘기다.


지극히 사적인 선택지 중 어쨌거나 프라하가 살아남았다. 청년 시절 교사 발령을 앞둔 고향 후배와 한 달간 유럽 배낭여행을 하며 겨우 하루를 머문 프라하였다. 그때 점찍어 둔 마리오네트 인형이 떠올랐다. 남겨진 것은 돌아오게 하는 힘이 있다. 내가 갑절 나이를 먹었듯 그 도시도 두어 번은 바뀌었을 테니, 카를교 근처 이름 모를 마리오네트 가게를 찾을 수 있을지 어떨지 모르지만.


변하는 것과 지켜야 할 것

젊은 내가 아니듯, 이 도시도 많이 변했다. 더 이상 프라하는 내가 추억했던 곰살맞은 도시가 아니라, 자본의 척후병에 둘러싸인 물색없는 장사꾼 같다. 민주화를 열망했던 프라하 젊은이들을 살피건 객에게 딴청 부리던 ‘존 레논의 벽’도 그렇거니와, 그 앞을 나뒹굴던 찌그러진 맥주 캔과 애송이들이 짓이겨 납작코가 된 담배꽁초도 예전과 한참 다른 프라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때문에 프라하를 프라하답게 만든 역사적 면면들이 더욱 고결하게 느껴졌고, 이 공원의 평화가 소중하게 여겨졌지만 말이다.


나는 어떨까? 예전의 순전한 패기와 열정은 사그라들었지만, 좋았던 자신의 일부를 지키며 나아가고 있을까? 그리하여 괜찮은 사람이 되어가고 더 나은 방향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퀼트 조각보처럼 제각각의 주말을 즐기는 공원. 젊었던 나의 히프 색을 탐하던 프라하 꼬마의 형편이 나아졌을지 어땠을지 궁금해하다, 그 아이나 나나 좀 더 넓어지고 좀 더 깊어진 통속적인 아줌마로 살아가면 다행이겠단 생각이 들었다.



벌써 갱년기라니 거짓말이면 좋겠어 -

폴란드, 그단스크 2일

되고 싶은 무엇

그단스크 중앙역에서 50킬로미터 달려 말보르크역까지, 몇 시 몇 분에 도착하겠단 약속이 새겨 있지 않은 이날 기차표처럼 아무 날 아무 시 돌아가는 티켓이면 좋으련만. 사흘 후면 또 다시 지구 저 너머 삶을 시치미 뚝 떼고 살아가야 한다.


오전 9시 6분, 로컬 열차는 남루했고 어지간히 덜컹거려 마음이 차분해지지 않았다. 게다가 말보르크성으로 체험 학습을 떠난다는 옆자리 학생들의 수다가 대단해 더욱 그랬다.


노면을 달리던 바퀴 소리에 기억을 닫을 때까지 열차 내 학생들의 목소리는 여전했다. 잠들어도 찌든 채인 어른들과 달리 상기되어 있는 그들. 깔깔깔 한 덩어리로 웃는 저 아이들이 세상 나서기 전에 무언가 되고픈 마음이라도 품어야 할 텐데, 남 일이 아니란 듯 다시 초조해졌다.


자신을 지키며 엄마로 살아간다는 것

참 멀리 돌아왔구나.


지금까지 무엇이 되고 싶었는지 오리무중이던 나는 먹고살아야 해서 그리해 놓고 기사단처럼 고상한 뭔가를 추구한다며 헤맨 것만 같다. 이제 돌아가면 되고픈 뭔가를 좇을 게 아니라 되어야 하는 삶에 나를 내어줄 참이다.


그런데 자라는 아이들의 한때를 지키겠다는 확고한 결심과는 달리, 회사 사물함 이름표를 뗄 순간을 떠올리면 썰물에 남은 빈 소라 껍데기처럼 쓸쓸해졌다. 과연 엄마로 살아가며 자신을 지키기란 불가능한 일일까.


툭, 하얀 다리가 끊어졌다. 자칫 한 발 내딛으면 하늘과 한 몸으로 시커먼 괴물이 된 밤의 발트해에 먹이가 될 터였다. ‘대륙의 끝’이란 단어가 갖는 마법에 이끌려 정성을 다하듯 뜸을 들여 다가왔는데, 여기에서라면 사라지는 나를 막아낼 비법을 구할 것만 같았는데, 막상 그 ‘끝’에 닿고 보니 하얀 다리를 삼켰듯 나를 해치울 것만 같아 뒷걸음질했다.


천천히 왔던 길로 돌아섰을 때, 하늘 높이 쌍둥이를 품었던 내 배처럼 둥글게 부푼 보름달이 바라다보였다. 당시의 자긍심이랄까 감사랄까, 형언할 수 없는 마음이 차올랐다. 이후 삶을 견인할 마음일지 어떨지, 두고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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