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

   
이어령
ǻ
성안당
   
14000
2022�� 08��



■ 책 소개


이야기 화수분 故이어령의 따뜻한 작별,
그가 남긴 마지막 화두를 기록한 이야기

“이별이 끝이 아니고 잘 있어, 잘 가, 라는 말이 마지막 인사말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생명도 그것을 이길 수 있는 영원한 시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마음속으로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작별 』 이 시대의 대표 지성 故이어령 선생이 삶엔 작별을 했지만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 생명을 위해 남긴 마지막 이야기를 기록한 책이다.  

■ 저자 이어령
1933년 11월 13일(음력, 호적 1934년 1월 15일) 충남 아산에 서 태어났으며, 호는 능소(凌宵)다. 문학평론가이며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이화여대 교수, 신문사 논설위원, 88올림픽 개폐회식 기획위원, 초대 문화부 장관, 새천년준비위원장, 한중일 비교문화연구소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대표 저서로 논문·평론에《저항의 문학》,《공간의 기호학》,《한국인 이야기》, 에세이《흙 속에 저 바람 속에》,《지성에서 영성으로》,《디지로그》,《축소지향의 일본인》,《생명이 자본 이다》,《젊음의 탄생》등이 있고, 소설《장군의 수염》,《환각의 다리》와 시집《어느 무신론자의 기도》,《날게 하소서》를 펴냈다. 희곡과 시나리오 〈기적을 파는 백화점〉, 〈세 번은 짧게 세 번은 길게〉, 〈사자와의 경주〉 등을 집필했다.

2021년 한국문학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문화예술 발전 유공자로 선정되어 금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2022년 2월 26일 별세했다.

제자(題字)_김병종(화가, 가천대 석좌교수)

■ 차례
마지막 인사말
첫 번째 키워드 원숭이
두 번째 키워드 사과
세 번째 키워드 바나나
네 번째 키워드 기차
다섯 번째 키워드 비행기
새로운 키워드 반도 삼천리
새로운 키워드 삼 삼 삼
새로운 키워드 5G, 누룽지·묵은지·우거지·콩비지·짠지
5G에서 뻗어 나간 가지 호미, 심마니, 해녀 그리고 바나나 우유
기차에서 뻗어 나간 가지 깃털 묻은 달걀
비행기에서 뻗어 나간 가지 드론과 생명자본
나의 헤어질 때 인사말, 잘 가 잘 있어
내가 없는 세상의 새로운 이야기
잘 있으세요, 여러분 잘 있어요

 




작별


마지막 인사말

오늘 나는 여러분과 함께 한 세상을 살아왔고 한 시대를 지내온 사람으로서 마지막, 여러분과 헤어지는 인사말을 하려고 합니다. 누구나 다 떠나죠. 그러나 한 사람 한 사람의 기억 속에서 우리는 남이 아닙니다. 내가 모르는 사람들, 그분들이 나를 모른다 할지라도 우리는 같은 공기를 마시고 같은 땅에서 한 시대를 살아왔어요. 개인의 경험을 넘어서서 함께 나누어 생각나는 집합 기억이라는 것이 있고, 그리고 그 시대를 살아온, 같이 마음을 나누었던 것들이 있습니다.


그 이야기들이 여러분과 헤어지는 인사말이 되고, 내가 없는 이 땅에 태어날 미래의 생명들에게 전하는 그런 말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를테면 미래를 향한 작은, 나의 유언과도 같은 것이죠.


내가 없는 세상에도 역시 이렇게 저녁에 별이 뜨고 아침에 해가 뜨고 늘 보는 뉴스가 전해지겠지만, 그것은 어제의 그것과는 아주 다를 거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지나가던 길목에서 보던 놀이터에도 여전히 그네를 타고 아이들이 웃음 짓는 소리가 들릴 겁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제의 웃음소리가 아닙니다.


내가 없는 세상에 전해지는 그 뉴스가 어제의 뉴스가 아니듯, 그 별이 어제의 것이 아니듯, 새로운 세상이 올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참 허망하죠. 여기까지구나, 하는 생각이 들 겁니다. 그러나 절망하기에는 이릅니다.


나는 어렸을 때, 여러분도 마찬가지겠지만, 몽당연필로 처음 글 쓰는 법을 배웠습니다. 세 살 때 배운 우리 한국말로 이 한국 땅에서 우리의 글자를 배우고 그것을 죽는 날까지 써왔습니다. 말과 글에 담긴 나의 생각과 마음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과 함께 생각해온 그 모든 기억이 그 말과 글 속에 담겨 있습니다. 어떤 세월도, 어떤 공간도 우리가 남기는 이 말과 글의 의미를 멸망시킬 수는 없습니다.


훌륭한 사원이라 할지라도 기둥은 무너집니다. 아무리 큰 도시를 만들어도 폼페이처럼 그것은 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사라져도 몇천 년 전의 그 한국말, 몇만 년 전의 우리 한국말, 그리고 세종대왕께서 창제해주신 그 한글로 쓰인 글들은, 결코 이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것이 여러분과 헤어지면서도 나에게는 마지막 일환이 되는, 내 마음 속에 희망이 되는, 내가 없는 세상에도 내가 남길 것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이유입니다.


기차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건 먹거리입니다. 호박, 호두, 호빵. 호자 붙은 거 있죠? 호 자 붙은 건 전부 이란, 이라크 같은 중동 지방에서 실크로드를 타고 왔어요. 소위 반달이라고 하는데, 거기선 농산물이 많이 났지요. 거기서 전부 들어온 거예요. 우리가 먹는 거 전부 외국에서 들어온 거예요.


개화기 때는 이쪽 대륙을 통해서 들어온 게 아니라, 바다를 서쪽으로 한 바퀴 돌아 가지고 미국, 유럽에서 배를 타고 우리에게 왔지요. 저쪽은 낙타, 말 이런 걸 타고 왔다면 이쪽은 배를 타고 온 거지요. 해양 세력이죠. 그래서 양 자가 붙어요. 한국 것에는 한 자가 붙어요. 한옥처럼. 양옥, 양말, 양재기, 전부 서양 거예요. 이런 것들은 바다를 타고, 배를 타고 들어온 거고, 실크로드, 말이나 낙타 이런 것들이 의해서 들어온 것들에는 호 자가 붙었어요. 이같은 문물이, 먹을 것이 들어오고 그다음에 뭐가 들어왔을까요? 인간이 만든 문명이 들어왔어요. 그 상징이 기차입니다.


기차라고 하면 기차를 타보기도 전에, 기차가 뭔지도 모를 때부터 부르던 노래가 있어요. 기차는 떠나간다 보슬비를 헤치고 정든 땅 뒤에 뒤고 떠나는 임이여. 뜻도 잘 모르고 어렸을 때 이 노래를 불렀어요. 그냥 사랑방에 손님들이 오면, 재미로 누구 오라고 그래라, 어린애가 귀여우니까 너 노래 좀 불러라, 그러면 그 어른들 앞에 가서 이 보슬비 기차는 떠나간다를 불렀어요.


이게 개화기 때 부르던, 아주 오래된 노래입니다, 이게. 내가 어렸을 때 부르던 노래예요.


그런 다음에 모든 기차가 어떻게 돼요? 기차 노래는 전부 슬픈 눈물이에요. <비 내리는 호남선>, <남행열차>, <이별의 부산 정거장>, <청춘 12열차>. 막차 아니면 완행열차. 막차, 밤에 가는 막차, 12열차, 그게 밤차죠? 그리고 <대전발 0시 50분>, 그것도 밤이에요. 비가 내리지 않으면, 밤이 아니면, 완행열차. 전부 이별을 상징해요. 비가 와요. 비가 내리지 않으면, 밤이 아니면, 완행열차. 전부 이별을 상징해요. 비가 와요. 도대체 기차 하면 꼭 비가 내리는 이유는 뭘까요. 내가 어렸을 때 부른 기차도 보슬비를 헤치고……. 왜 꼭 기차가 가면 비가 내릴까요?


왜? 우리가 그렇게 떠났죠. 개화기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시대가 바뀔 때마다 기차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태우고 떠났습니다.


우리 누이들이 정신대로 떠날 때, 우리 형이 징용 갈 때, 먹을 게 없어서 북간도로 날품팔이 갈 때 어디서 떠났어요? 맨드라미가 피는 시골역에서 떠났습니다. 손을 흔들고 가요. 보슬비 안 내리겠어요? 해가 쨍쨍 내리쬐도 우리 형님, 우리 누님, 우리 아버지, 정든 땅 뒤에 두고 떠나는 임들은 다 시골의 작은 간이역, 맨드라미 피고 급행열차는 서지도 않는 그런 역에서 떠났습니다. 그게 우리 기차의 역사입니다.


기차 얘기를 하면 한국에선 참 슬픈 이야기들이 나와요. 트로트 가사들만 봐도 전부 비 내리고 완행열차예요. 그런데 슬프기만 하냐. 아니죠. 완행열차에다 야간열차에다 비 내리는 가장 열악한 기차 속에는 한국인의 정이 잔뜩 담겨 있어요. 그게 뭘까요. 삶은 계란 혼자 안 먹어요. 할머니랑 누구랑 다 나눠 먹습니다. 오징어, 나눠 먹습니다. 완행열차의 인심, 정. 그렇게 친구가 되죠. 침략자와 어려운 환경에서 우리가 버텨온 것은 한국인의 정신 덕분이었습니다.


못 보던 사람, 완행열차라는 낯선 환경, 그 끼는 데서, 조이는 데서, 서로 자기가 가져온, 잘살지도 못 하는 처지에 가져온 삶은 계란에서 오가는 정. 아주 유명하지요. 완행열차하고 삶은 계란. 요즘에는 전혀 모르지만요. 그게 모든 침략자로부터, 고난으로부터 한국인으로서 버텨온 우리의 기차 이야기입니다.


깃털 묻은 달걀

우리나라 기차를 이야기할 때 삶은 계란, 이거 모르면 한국인이 아니에요. 먹을 것도 없는 각박한 시대, 삼등 완행열차 안에서, 서로 싸우는 그 속에서 놀라운 파티가 벌어집니다. 낯선 사람들, 처음 본 사람들이 꾸역꾸역 먹을 걸 내놓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삶은 달걀이에요. 기차, 완행열차의 맛은 바로 삶은 달걀의 맛이에요.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달걀이지요. 완행열차, 비 오는 날 후덥지근하고 사람 많은 그 열차 안에서 할머니들이, 옆에 앉았던 사람들이 “학생, 이거 먹어봐” 하고 삶은 달걀을 까서 줄 때의 그 맛.


달걀 하면 떠오르는 기억은 또 있습니다. 외할머니 댁에 가면, 왜 외할머니 댁은 꼭 시골에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시골 외할머니 댁에 가면 빨간 감나무, 그리고 닭 몇 마리가 꼭 있어요. 외할머니 댁에 가면 또 때를 맞춰서 암탉이 알을 낳아요. 꼭게 끄끄 하고 자랑스럽게 소리를 지르면 그때 맨발로 달려가 깃털 묻은, 따끈따끈한 깃털 묻은 달걀을 가지고 와요. 외할머니는 바늘로 달걀 껍데기를 톡톡 찔러서 외손자한테 먹여줘요. 생으로 그걸 먹습니다. 미지근한 생명의 맛이 배어 있어요. 바로 기차에서 낯선 할머니가 “학생 여기 와서 이거 같이 먹어” 하고 내줬던 삶은 계란의 맛이에요.


외할머니의 따뜻한 손길, 여전히 미지근한, 생명의 열기가 채 식지도 않은 그 깃털 묻은 달걀의 정. 모든 게 다 식어서 없어지고, 모든 것이 차갑게 냉각돼서 그야말로 엔트로피가 증대돼서 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가 사라지더라도 깃털 묻은 달걀의 정이 남아 있는 한 인간은 살아 있을 거예요. 인간들이 저지른 범죄가 아무리 크더라도 깃털 묻은 달걀의 그 맛을 나누고 지켜왔던 사람들은 결코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 후회스럽지 않을 거예요. 한국인으로 태어난 것이 결코 창피하지 않을 거예요.


코로나가 전 세계에 휩쓴 뒤 서로 병에 안 걸리려고 병 걸린 사람들을 죄인 취급하고 어제까지 친했던 친구가 병에 걸리면 접근 불가능한, 접촉할 수 없는 인간이 되는, 인간을 피해야 하는 최악의 시대가 되었어요. 이 최악의 시대에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무엇이 필요할까요? 코로나 이전부터 지금까지 내가 한 말을 전부 종합해보면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하나되는 디지로그의 세계, 접속과 접촉이 하나되는 디지로그의 세계, 피와 눈물이, 피와 땀이 서로 싸우는 게 아니라 서로 어울리는 눈물 한 방울의 세계가 필요합니다. 그게 바로 깃털, 깃털 묻은 달걀의 눈물 한 방울이죠. 그게 바로 디지로그의 세계예요. 그게 바로 생명자본의 세계입니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느낀 것은 내가 작은 책으로 엮은 디지로그와 생명자본, 내가 없는 세상에서도 디지로그라는 말, 생명자본이란 말이 살아 있다면 여러분이 잘 가라고 손을 들어줬을 때 나는 정말 잘 갈 수 있고, 잘 있어, 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내가 없는 세상에서도 여러분은 행복한 한국인으로서 새로운 인류를 끌고 갈 새로운 키워드를 뒤집어서 반도 삼천리의 그 말로 전 세계의 반도성을 회복시켜서 시파와 랜드파가 충돌하는 수천 년의 역사를 화합하고 융합하고 상생하는 삼항순환의 가위바위보 같은, 돌고 돌아서 지는 사람 없고 이기는 사람 없는, 금 은 동이 아닌 가위바위보의 순환하는 세계를 버려둔 우리의 그 문화 속에서 꽃피우게 되지 않을까. 이것이 여러분과 헤어지면서 내가 평생 걸어온 길과 그리고 앞으로 내가 없는 세상에서도 내가 여러분과 함께 있을 수 있는 한마디 말, 남겨두고자 하는 말입니다. 디지로그, 생명자본, 눈물 한 방울, 이러한 몇 가지 언어들이 여러분의 가슴속에 남아서 울리는 것, 그것이 여러분이 손 흔들어주는, 잘 가라고 하는 마지막 인사말이 될 것이고 잘 있어 하고 말하는 저의 마지막 인사말이 될 것입니다.


잘 있으세요, 여러분 잘 있어요

이번에 그 혹독한 경험을 했던 코로나19 이야기를 해볼까요. 대륙 쪽 중국이 발상지로 아시아에서 세계로 번져갔어요. 그래서 새로운 황화. 일본 사람이든 중국 사람이든 한국 사람이든 덩달아 숨어들 곳이 없는 코로나 시대에 또 한 번 아시아의 황화놈이 등장합니다. 단지 얼굴이 노랗다는 그 애꿎은 이유 하나로 우리는 억울하게도 이 대명천지에 인종적 차별을 받는, 옛날 역사책에서나 보던 그러한 일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기회입니다. 이것이 내 결론입니다. 코로나에 의해서 온 인류가 후진국이든 선진국이든, 백인이든 황인이든 인간이 쌓아올린 근대 말년의 역사, 농경 사회, 산업 사회, 정보 사회, 인간이 쌓아 올린 그 모든 문명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것을 우리는 봤습니다. 작은 바이러스 하나가 신의 경지에 다다랐다는 인간의 문화를 어떻게 처참하게 붕괴시키는지 봤습니다.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코로나 위기를 겪은 사람들은 옛날식으로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을 겁니다. 새 문명, 새로운 가치가 필요합니다. 또한 우리는 생명의 가치가 제일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접속과 접촉이 함께 있어야 된다는 걸 알았습니다.


나는 코로나가 일어나기 전에 디지로그, 디지털의 접속과 아날로그의 접촉이 서로 어울려서 균형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디지털 세계와 아날로그 세계가 서로 대립하거나 어느 한쪽이 어느 한쪽을 이항대립에서 치는 것이 아니라 어울려서 새롭게 제3의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이 디지로그 문명이라고 말했습니다. 생명의 가치가 제일이 되는 시대, 생명이 자본이 되는 시대, 마음의 밭 속에 있는 생명의 가치가 어떤 물질적 가치보다도 세계의 모든 인간이 공유할 수 있는 하나의 키워드가 되는 세상. 생명. 쉽고 오래전부터 무심코 불러온 말이지만 비로소 생명이 뭔지를 코로나 시대를 겪어오면서 모든 사람이 느꼈습니다.


나의 가장 가까운 친구, 가장 가깝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전화만 거면 오늘 저녁에 가고 싶은 곳에서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을 수 있었던 일상의 사소한 행복들이 이렇게도 그립고 이렇게도 소중한가를 알고, 동시에 디지털이 없었으면 음식 하나도 배달시켜 먹을 수 없는 절해고도에서 살 뻔했다는 접속의 고마움을 동시에 느꼈습니다. 이 디지로그 시대는 그것을 바탕으로 증식하는 세계입니다. 돌덩이처럼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씨앗처럼 끝없이 생식해서 하나의 보리알이 열 개, 스무 개로 늘어나듯, 어떤 엔트로피가 증대해서 앞으로 계속 생식해서 늘어가는 것. 오늘보다는 내일 늘어가는 것. 생식되는, 불어가는 생명체가 증식하는 세계가 바로 생명자본이요, 우리의 밑천이 되는 세계입니다. 이것이 생명자본을 글로 썼고 이야기로 했고, 마지막에는 그러한 마음을 전달하는 눈물 한 방울, 옛날 트로트 한 곡 들으면서 젊은이들이 함께 눈물 흘려주는 눈물 한 방울의 교감입니다.


내가 여러 말을 만들었지만, 내가 만든 말 가운데 뒤의 어린 아이들이 부를만한 중요한 키워드가 될 수 있는 유산을 여러분들에게 남겨놓고 갑니다. 잘 있어라, 하는 ‘잘’은 디지로그의 생명자본, 눈물 한 방울입니다. 이걸 여러분에게 남겨놓고 가기 때문에 여러분이 잘 가, 하고 손 흔들 때 나는 미소를 지으며 잘 있어 틀림없이 너희들은 잘 있을 거야, 잘 있어, 하고 떠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별이 끝이 아니고 잘 있어, 잘 가, 라는 말이 마지막 인사말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확신합니다. 서로 헤어지는 인사말 속에 잘 있어, 잘 가, 라고 서로 웃으면서, 그리고 잘 가기를 원하고 잘 있기를 원하는 서로의 공감 속에서 죽음도 생명도 그것을 이길 수 있는 영원한 시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마음속으로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여러분, 이것이 내가 헤어질 때와, 떠날 때의 인사말입니다. 나만의 인사말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떠날 때는 내가 남겨놓은 말과 똑같은 말을 다음에 올 세대를 위해서 마련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그야말로 헤어지는 인사말을 제대로 해야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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