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를 위한 여섯 가지 은유

   
이어령
ǻ
열림원
   
15000
2022�� 05��



■ 책 소개


어린 나와 어머니,
내 문학의 깊은 우물물이 되었던 그 기억들에 대하여

이어령 선생은 평소 “내 개인의 신변 이야기를 털어놓는 일은 거의 없었”지만, “늘 마음 한구석에는 사적 체험이면서도 보편적인 우주를 담”은 이야기들로 “한 권의 책을 엮었으면 하는 생각”과 ‘어머니의 귤’처럼 일부만 공개되었던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의 “전문을 읽고 싶어 하는 독자들”의 소망을 위해 “여섯 살 때 ‘메멘토 모리’의 배경이 되는 고향 이야기를 담”아 이 책을 내놓게 되었음을 밝힌다.

■ 저자 이어령
1933년 11월 13일(음력, 호적상 1934년 1월 15일) 충남 아산에서 태어났으며, 호는 능소(凌宵)이다.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단국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문학평론가이자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이화여대 교수, 〈서울신문〉 〈한국일보〉 〈중앙일보〉 〈조선일보〉 〈경향신문〉 등 신문사 논설위원, 88올림픽 개폐회식 기획위원, 초대 문화부장관, 새천년준비위원장, 한중일 비교문화연구소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2021년 한국문학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문화예술 발전 유공자로 선정되어 금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대표 저서로 논문 · 평론 『저항의 문학』 『공간의 기호학』 『한국인 이야기』 『생명이 자본이다』 『시 다시 읽기』, 에세이 『디지로그』 『젊음의 탄생』 『지성에서 영성으로』 외 수십 권, 일본어 저서 『축소지향의 일본인』 『하이쿠의 시학』, 소설 『장군의 수염』 『환각의 다리』와 시집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헌팅턴비치에 가면 네가 있을까』 『날게 하소서』를 펴냈으며, 희곡과 시나리오 「기적을 파는 백화점」 「세 번은 짧게 세 번은 길게」 등을 집필했다.

2022년 2월 26일 별세했다.

■ 차례
1 어머니를 위한 여섯 가지 은유
2 이마를 짚는 손
3 겨울에 잃어버린 것들
4 나의 문학적 자서전

 




어머니를 위한 여섯 가지 은유


어머니를 위한 여섯 가지 은유

나의 서재에는 수천수만 권의 책이 꽂혀 있다.

그러나 언제나 나에게 있어 진짜 책은 딱 한 권이다.

이 한 권의 책, 원형의 책, 영원히 다 읽지 못하는 책.

그것이 나의 어머니이다.

그것은 비유로서의 책이 아니다.

실제로 활자가 찍히고 손에 들어 펴볼 수도 있고 읽고 나면 책꽂이에 꽂아둘 수도 있는 그런 책이다.

나는 글자를 알기 전에 먼저 책을 알았다.

어머니는 내가 잠들기 전 늘 머리맡에서 책을 읽고 계셨고 어느 책들은 소리 내어 읽어주시기도 했다.

특히 감기에 걸려 신열이 높아지는 그런 시간에 어머니는 소설책을 읽어주신다.

『암굴왕』,『무쇠탈』,『장발장』, 그리고 이제는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을 나는 아련한 한약 냄새 속에서 들었다. 겨울에는 지붕 위를 지나가는 밤바람 소리를 들으며 여름에는 장맛비 소리를 들으며 나는 어머니의 하얀 손과 하얀 책의 세계를 방문한다.


어머니와 책의 세계는 꼭 의사가 주사를 놓고 버리고 간 상자갑과 같은 것이었다.

주삿바늘은 늘 나를 두렵게 했지만 그 주사약의 앰풀을 담았던 상자 속의 반짝이는 은박지나 흰 종이솜은 늘 포근하고 아름다웠다.

39도의 높은 신열 속으로 용해해 들어가는 신비한 표음문자들을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그리고 상상력의 깊은 동굴 속에서 울려오는 신비한 모음의 울림소리를 듣는다.


조금 자라서 글자를 익히고 스스로 책을 읽게 되고 몽당연필로 무엇인가 글을 쓰기 시작한 뒤에도 나에게는 언제나 어머니의 손에 들려 있던 책 한 권이 있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담긴 근원적인 그 책 한 권이 나를 따라다닌다.

그 환상의 책은 60년 동안에 수천수만의 책이 되었고 그 목소리는 나에게 수십 권의 글을 쓰게 했다.


빈약할망정 내가 매일 퍼내 쓸 수 있는 상상력의 우물을 가지고 있다면, 그리고 내가 자음과 모음을 갈라내 그 무게와 빛을 식별할 줄 아는 언어의 저울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어머니 목소리로서의 책에서 비롯된 것이다.

어머니는 내 환상의 도서관이었으며 최초의 시요 드라마였으며 끝나지 않는 길고 긴 이야기책이었다.


바다

나는 열한 살에 어머니를 잃을 때까지 바다를 본 적이 없다. 그 책이나 사진에서 본 바다 말고는 하얀 모래밭, 소금기가 있는 해풍, 해안의 바위와 파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무한히 퍼진 푸른 수평선을 몸으로 체험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분명히 내가 보기 전에 나에게는 하나의 바다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어머니이시다.


한자의 바다 해에는 어머니 모 자가 들어 있다. 그리고 바다를 가리키는 불란서 말의 메르(MER)는 어머니를 뜻하는 메르(MERE)와 똑같다.

그래서 불란서에는 어머니 속에 바다가 있고 중국에는 바닷속에 어머니가 있다는 말이 생겨나기도 했다.

바다는 넓고 깊다.

어머니의 무한한 사랑과 그 은혜는 바다 같다.

그리고 인류의 생명은 바다에서 탄생했다.

바다는 생명의 사원이며 최초의 인류를 잉태한 양수이다. 그러므로 누구에게 있어서나

생명의 발원이 된 모태는 태초의 바다인 셈이다.


그러나 그만한 이유로, 그리고 그러한 관념적인 풀이로 내가 바다를 보기 전에 이미 바다를 보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말하는 어머니와 바다의 그 동질성은 보다 감각적인 것이고 구체적인 것이다.

바다는 늘 나에게 있어 살아 있는 죽음으로 다가온다.

바다는 살아 있는 어떤 것보다 생명력에 가득 차 있다.

어떤 짐승이 저렇게 강렬하게 숨 쉴 수 있고, 소리칠 수 있고 쉴 사이 없이 생동할 수 있겠는가.

어떤 풀 어떤 나무가 저렇게 늘 푸른빛으로 번지고 뻗쳐서 이 지상을 덮을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바다의 생명체는 가상현실일 뿐 실제로 살아 있는 것은 아니다.

바다의 표면은 끝없이 변화하지만 결코 살아 있는 꽃처럼 꺾을 수는 없다. 파도는 말보다 힘차게 뛰지만, 그리고 그 부력으로 우리를 그 잔등이에 태울 수도 있지만 그 푸른 말갈기를 손으로 잡을 수는 없다. 슬프게도 바다에는 육체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원하면서도 공허한 그 바다는 육체가 아니라 영혼이라고 불러야 옳을 것이다. 살아 있는 것 같으면서도 죽어 있는 것, 꽉 차 있으면서 텅 비어 있는 것, 이것이 바다의 역설이다.


돌아가신 어머니, 그러나 늘 내 눈앞에서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시는 어머니, 살아 있는 어떤 사람보다도 가깝게 계신 어머니, 기쁠 때 제일 먼저 달려가 자랑하는 어머니, 슬플 때 고통스러울 때 아직도 응석을 부릴 수 있는 어머니―그러나 언제나 발을 디디고 서 있는 이 딱딱한 흙의 저편에서만 존재하고 있는 어머니―이 ‘현존하는 거대한 부재’ 그 바다가 나에게 있어서의 어머니인 것이다.


나는 오늘도 이 갈증의 바다 앞에 서 있다.



이마를 짚는 손

만약 이 세상에 태어나서 지금껏 한 번도 감기에 걸려본 적이 없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과연 그를 부러워할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는 행복한 사람이 아니라 도리어 가장 불행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단 한 줄의 시를 읽지 않은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나는 그와 악수쯤은 할 것이다. 한 번도 사랑이란 것을 모르고 이 세상을 살아온 사람이라 할지라도 나는 그와 차 한잔쯤은 마실 수 있을 것 같다. 거짓말도 후회도 해본 적이 없다는 사람, 시곗바늘처럼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그런 사람이. 신부 차림의 검은 옷을 입고 내 집 문을 두드린다면 최소한 대문의 그 빗장쯤은 벗겨줄 용의가 있다. 그러나 이 세상에 태어나서 감기 한 번 걸려본 일이 없는 사람과는 악수도 차 한잔도, 그리고 대문의 빗장을 열어주는 일까지도 사절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옹졸한 편견을 비웃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를 하나의 방으로, 감기에 걸려 누워 있는 그 병실의 세계로 안내해주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우리는 거기에서 많은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은폐되어 있던 소리들, 생활의 먼지와 육체의 두꺼운 비계 속에 감춰져 있던 소리들이 마치 의사가 청진기를 대었을 때처럼 우리들의 귓속으로 생생하게 들려올 것이다.


감기에 걸리면, 그리고 방 안에 홀로 누워 있으면 갑작스레 청각이 예민해진다. 거리를 지날 때, 직장에서 때 묻은 서류를 넘기고 있을 때, 많은 사람들과 악수를 하기도 하고 눈을 흘기기도 하고 의미 없는 손짓으로 무엇인가 말을 주고받을 때, 그런 때에는 결코 들을 수 없었던 소리들이 그 방 속으로 스며들어온다.


새들이, 참새들이 나뭇가지 위로 옮겨 다니는 그 부드러운 날갯짓 소리와 비밀처럼 내리고 있는 눈발 소리와 두꺼운 얼음장 밑을 흘러가는 강물 소리 같은 것을 들을 수가 있다. 창문 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그 바람들이 북극의 많은 도시들을, 눈 속에 파묻힌 삭막한 대지들을, 낯선 산 이름과 그 많은 강 이름들을 거쳐온 길고 긴 여로의 이야기를 듣는다.


아니다. 그런 소리들이 아니다. 옛날에 아주 옛날에 잊어버렸던 음성들, 사라져버린 시간과 함께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옛사람들의 여러 가지 소멸한 음성들을 다시 듣는다. 슬픈 음성도, 분노의 음성도, 섭섭하고 부드럽고 안타깝고 야속하고 그렇게 우리들의 생활 속을 흘러갔던 그 음성들이 후회의 한숨처럼 다시 울려온다.


아니다 그러한 소리들도 아니다. 감기 때문에 최초로 체험하였던 그 자유의 목소리를 듣는다. 38도의 하얀 수은주 속에서 우리는 인간의 자유가 얼마나 두렵고 불안한 것인가를, 그러면서도 또 그 얼마나 즐거운 것인가를 배웠다.


출석부의 내 이름에 하나의 사선이 그어질 것이다. 결석한 자리, 나의 의자와 나의 책상은 비어 있을 것이다. 감기는 이등변삼각형보다도 더 엄격한 교실 속의 질서에서, 시간표의 질서에서, 식장에서 입는 그 닳고 닳은 교장 선생님의 검은 모닝코트와 흰 장갑의 그 질서에서 나를 해방시켜준 자유의 목소리였다. 떨리는 부름 소리였다. 범죄자의 소리와도 같고 붉은 혓바닥을 가지고 이브를 꾀어낸 그 뱀의 소리와도 같은 결석의 꿈, 내가 앉아 있지 않은 교실 속의 빈 의자와도 같은 인생의 한 빈터로 감기는 우리의 손목을 끌고 간다.


누구나 어린 시절에 감기에 걸리면 결석을 하고, 그 결석의 체험을 통해서, 질서에서 벗어난 불안스러운 인생의 자유를 처음으로 체험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감기를 통해서 우리는 자유의 목소리와 최초의 인사를 나눈다. 감기의 신열은, 체온기의 숫자는 우리들에게 하나의 생의 흔들림을, 빈 의자의 공허를, 번호가 등록된 출석부의 사선, 고무 같은 것으로는 결코 지울 수 없는 그 사선의 의미를 가르쳐준다. 그러한 흔들림이 있기에 우리는 아직도 공장이나 서류나 통계표나 규격이 똑같은 아이비엠의 카드나 제복이나 절망적일 정도로 정확한 법조목의 문자들로부터 나 자신을 도피시킬 수 있는 생의 부름 소리를, 그 유혹을 들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모든 소리는 하나의 손이 되어 우리의 이마를 짚는다. 이마를 짚는 손, 우리는 그 손을 기억한다. 어렸을 때에도 어른이 된 후에도 모든 감각이 창문을 닫듯 유폐되어 버린 노인이 된 그날에도 우리는 이마를 짚는 손을 잊을 수는 없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감기에 걸려 방 안에 누워 있었던 경험이 있다면 이마를 짚는 그 손, 의미도 이미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어머니의 손일 수도 있고, 연인의 손일 수도 있고, 조그마한 자기 아들의 손일 수도 있다. 나는 나 자신의 신열을 느낄 수가 없다. 가장 분명한 병까지도 자기의 힘만으로는, 그 인식만으로는 잡아낼 수가 없는 것이다. 타인들의 손이 나의 이마를 짚어줄 때, 그 촉감을 통해서만, 선뜻한 타인의 체온을 통해서 자기 자신의 열을 비로소 확인한다. 아, 이마를 짚는 손. 장갑을 벗은 맨손. 그것은 타인의 손이면서도 이미 타인의 것은 아니다.



겨울에 잃어버린 것들

태양의 과실

나의 내면공간을 만들어낸 고향의 원풍경에는 온양 수박이 있다. 칼라하리 사막이 그 원산지인 것처럼, 수박은 뜨거운 모래밭과 태양의 과실이다.


온양은 두말할 것 없이 따뜻한 햇볕이라는 뜻이니 그 과일에게 있어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지명은 없을 것이다. 뿐만이 아니라 수박 역시도 온천과 다름없이 그 단물이나 빨간 불꽃을 내부에 숨기고 있다. 초록의 표면은 늘 사람들을 당황하게 하기도 하고 기대에 가득 찬 꿈을 주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수박은 일종의 일상화된 보석 찾기이다.


나는 습관처럼 지금도 수박을 보면 그 속에 담긴 여름의 추억들을 뻐갠다. 수박 속에는 언제나 내 고향의 여름이 있는 까닭이다. 태양의 흑점처럼 빨간 과육 속에 찍힌 그 씨를 보면 발가벗은 고향의 아이들을 생각한다. 위확장에 걸려 있는 아이들의 배에는 참외씨와 수박씨가 붙어 있다. 그러나 그 가난한 아이들의 내부에는 수박처럼 예측할 수 없는 태양의 뜨거운 빛들이 결정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내 고향 친구들이 모두 그러했다.


온양 수박은 이제 전설이 되어버렸지만, 그 환상의 맛만은 지금도 그 고향 사람들의 어딘가에 숨어 있다.


온천의 도시 쪽과 정반대 방향으로 가면 나의 외갓집이 있는 쇠일이 나타난다. 맹사성이 은거한 곳이기도 한 이 마을로 가려면 성황당을 지나야 한다. 산마을이기 때문에 고개는 줄곧 위로만 올라가야 한다. 그래서 어머니를 따라 외갓집을 갈 때에는 반드시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이라 쓴 장승 앞에 돌 하나를 던지고 지나가야 한다. 어머니는 늘 돌을 던지시고는 무엇인가 잘 들리지 않는 말로 기도를 드리신다.


『흙 속에 저 바람 속에』의 마지막 장면이 바로 이곳을 그린 것이다. 어머니는 내 문학의 근원이었으며 외갓집은 그 문학의 순례지였다. 까치, 까마귀, 참새, 그리고 맨드라미나 촉계화 이런 동식물들은 물론 내가 사는 마을에도 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의 체험은 장승에게 돌 하나 던지고 넘어간 외가 동리에서야 생생하게 맛볼 수 있는 것이다. 감은 어디에나 있다. 하지만 외할머니께서 따주시는 그 감이라야 한다. 그 감 속에는 우리 마을보다 일찍 지는 외갓집 빨간 저녁노을이 들어 있고 꼭 우리가 올 때마다 그 나무에 와서 우는 까치 소리가 들어 있다.


고향과의 이별 방식

외가를 떠날 때면 할머니는 긴 돌담 끝까지 따라 나오신다. 또다시 만나볼 수 없는 사람들처럼 그렇게들 떠난다. 뒤를 돌아다보고 또 뒤를 돌아다보고 먼 데서 손짓을 하신다. 이러한 이별의 방식이야말로 우리들이 떠나온 그 고향의 원풍경인 것이다.


이렇게들 우리는 외할머니와 어머니 곁을 떠나왔고 고향과 이별을 했다. 그러면서 차차 과거형으로 불리우는 나의 고향은 그 깊이를 잃어가고 우물물의 밑바닥 세계는 조금씩 묻혀간다.


고향의 기억을 열어본다는 것은 선 수박만 깨뜨리던 때의 그 실망과 비슷하다. 그 칼을 장정 몇이 들어도 꼼짝하지 않는다는 뱀밭의 신화는 잘 관리된 잔디밭처럼 깎여버리고 온천장에는 옛날과 같은 신혼부부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지축과 가장 가까운 내면의 밑바닥 온천물은 지금도 뜨거운 수증기로 피어오른다. 고향은 이미 내 삶과 문학의 순례지가 아니다. 지금 기억 속 여름날의 수박들은 고향이 아니라 어느 먼 이국의 사막에서 익어가고 있는지 모른다.



나의 문학적 자서전

등불을 끄고 난 다음

나는 잠이 없는 아이였다. 어렸을 때 내가 제일 싫어했던 말은 이빨을 닦으라는 말도 공부하라는 말도 아니었다. 그것은 불 끄고 그만 자라는 어른들의 말이었다. 초저녁에 짖던 개 소리도 들려오지 않으면 숨 막히는 끈끈한 어둠이 방문마다 빗장을 잠근다. 내가 밤마다 의지해왔던 것은 그 어둠을 필사적으로 밀어내고 있는 등불이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남폿불(램프)이었다. 바람도 없는데 남폿불은 언제나 곧 꺼질 듯이 너울거렸고 그럴 때마다 방 안에 숨어 있던 그림자들이 거대한 나비가 되어 천장을 덮었다.


식구들이 하나씩 하나씩 잠들어갈 때마다 나는 마음을 졸였고, 급기야는 나 혼자 남겨두고 마지막에 잠들어버리는 사람이 이제 그만 불 끄고 자라는 말을 하게 되면 나는 무슨 선고를 받는 거였다.


남폿불이 꺼지고 나면 완전히 나 혼자 어둠 속에 남아 석유의 그을음 냄새를 맡는다. 그것은 어둠의 가장 깊은 밑바닥에서 풀려 나오는 냄새이고 외로움에 제대로 다 타지 못하는 냄새이다.


나에게 있어 밤은 늘 불완전연소의 그 검은 그을음이었다. 그것도 그냥 그을음이 아니라 유난히도 질이 나쁜 석유가 내뿜는 그을음이었다.


밤과 타협을 하고 이 새까만 그을음 속에서 코를 고는 사람들이 밉고 섭섭하였다. 나를 꼭 허허벌판에 내던지고 자기네들끼리 집으로 돌아간 것 같은 서운함이었다.


나는 매일 밤 등불을 끄고 그을음을 맡고 자는 사람들을 섭섭해하고 – 이런 일을 하나의 의식처럼 되풀이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무섭고 외로웠던 밤들이 내 문학의 깊은 우물물이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내가 무엇인가를 보고 듣고 냄새 맡을 수 있었던 것은 남폿불을 끄고 난 뒤의 일이었고 “그만 불 끄고 자라!”는 선고 뒤에 오는 정적의 언어들이었다.


일식이 있었던 날 우리들은 해를 보기 위해 깨어진 유리 조각을 주워 와서는 석유 등잔불에 태워 그을음을 묻혔다. 이 깜깜한 그을음만이 해를 볼 수 있게 한다는 거였다. 그을음을 가득 묻힌 유리 조각을 눈에 대고 하늘을 보면 정말 해가 빨간 단추처럼 동그랗게 보였고 그것이 조금씩 좀먹어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나는 오래전부터 밤의 그을음을 통해 그런 체험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태양, 죽어가고 있는 내 태양의 일식을 구경하고 있었다. 밤마다 불을 끄고 난 다음 유리 조각 같은 어둠 너머로 석유 냄새를 맡으면서......


낮에 보이지 않던 것이 밤 속에서는 금단추처럼 보인다. 밤새도록 어디에선가 물이 새어 흐르는 소리를 듣듯이 예민한 날에는 시간이 지나가는 소리조차 들을 수 있었다. 내가 유진 오닐의 희곡을 처음 읽고 감동을 했을 때도 이 불면의 밤에 맡았던 남폿불의 그을음 냄새가 났었다. 그리고 그 아픈 낱말들이 작은 일식처럼 어둠 속에서 앓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나의 문학은 밤이었다. 혼자 깨어 있는 밤이었다. 나의 문학은 남폿불이었고 “어서 불 끄고 자라!”는 말 끝에 묻어오는 그을음 냄새였고 어디에선가 밤새도록 새어 나오는 물소리였다. 배신자들처럼 나보다 먼저 잠드는 식구들에 대한 원망이었지만 더러는 행복한 밤잔치이기도 했다. 나의 문학의 어느 갈피에선가는 도마를 두드리다가 갑자기 웃음소리가 터져 나오는 여인의 목소리가 있다.


지금도 그 밤들이 유리를 깨어 조각을 만든다. 석유 등잔에다 까맣게 그을린 그 유리 조각을 들고 나는 지금도 이따금 그을음 냄새가 나는 빨간 일식을 구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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