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같이 뛰어내려 줄게

   
씨씨코
ǻ
다산북스
   
16000
2022�� 03��



■ 책 소개


130만 구독자, 콘텐츠 누적 조회 5억 뷰!
작가 씨씨코의 힐링 에세이

『내가 같이 뛰어내려 줄게』는 삶에서 마주하는 갖가지 슬픔과 꿈을 향한 노력, 그리고 관계에서 겪는 희로애락을 씨씨코의 위트 있는 문장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그 문장을 찬찬히 따라가다 보면 한 가지 깨달음에 도달한다. 바로 ‘행복한 순간은 아직 안 왔다’라는 것. 세상은 딱딱한 룰을 강요하지만, 말랑말랑하게 사는 것 또한 삶의 원동력이 된다는 것.

■ 저자 씨씨코(Cece Ko)
130만 구독자와 콘텐츠 누적 조회 5억 뷰를 달성한 씨씨코는 ‘너의 웃음을 위해 날 바친다’라는 철학으로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콘텐츠를 다수 만들었다. 크리에이터로 활동한 지 1년도 되지 않아 국내 틱톡커 랭킹 상위 1%가 되었으며,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에서도 진심을 담은 공감과 위로를 전하며 독자(주걱 동지)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작가의 인스타그램에서는 손수 그린 그림과 함께 통통 튀는 일상 일기를 연재한다. 지금도 수많은 독자들이 같이 읽고 웃기도 울기도 하면서 한 발자국을 내딛고 있다. 진실한 마음을 담으면 전해진다고 믿으며 독자의 옆에서 친구가 되어주는 작가가 되기 위해 오늘도 한 글자씩 꼭꼭 적어 내려가고 있다.

ㆍYouTube Cece Ko 씨씨코
ㆍInstagram(글) @hey_ceceko
ㆍInstagram @_ceceko
ㆍTikTok @_ceceko

■ 차례
1장 바들바들 덜덜덜 떨린다
장롱 괴물아 돌아와 줘
나한테 안 물어봤잖아
나이만 채우면 어른이지
책임지는 거 대신해 주세요
꿈만 꾸던 시절
아이스크림 때문에 울었다
내가 정말 사랑할 수 있을까
미래가 오는 게 두렵다
인생 기회비용 계산하기
웃기기만 한 내 일기장

2장 뭐야 인생 생각보다 기네
원래 울퉁불퉁한 거 몰랐어?
길어서 다행이야
희망을 보기로 했다
아보카도 씨 키우기
입 안에 구멍이 뻐엉
내 영혼의 나이는
매일같이 전화해 준 친구
앞니 하나 빼꼼 나오기까지
모범생이 학교를 빠지는 날
갑자기 부자가 된 것 같다
내 인생 첫 중고거래
싫은데 좋은 거

3장 두 발 딱 붙이고 검을 뽑아보자
아보카도에 싹이 났다
눈이 작은 게 어때서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적
공허한 마음 같이 채우자
난 나한테 위로받았다
감독님이 말해준 비법
레스토랑에서 번쩍 일어난 친구
심장에 힘을 콱 준다
꽃은 꺾여도 사랑은 남아서
울지 말라고 하지 마
세상에 슬픔이 사라진다면
트리플 A 사이즈 브라
공평하지 않은 세상

4장 푸하하가 모여서 행복이 되는구나
아보카도 싹이 사라졌다
거의 금요일의 의미
한겨울에 하는 봄 생일 파티
슬리퍼의 뒤는 어디게?
나 핑크 싫어한다니까
아래쪽에 달아달라고 했잖아
극한 직업 내 동생
절대음감이 재능이 아닌 세상
쪼꼬릿은 가끔 자주 먹고 싶다
먹을수록 몸에 좋은 과자
된장국을 보고 운 건 내가 아니었다

5장 가장 행복한 순간은 아직 안 왔다
버티고 또 버텨야 하는 이유
할머니가 꿈인데요
특이한 게 아니야 특별한 거지
홀로 끌고 가던 캐리어
단것만 먹으니 질린다
이제는 발걸음을 크게
기억할 만한 인생이었다
치실 끝까지 내려가 봤어?
언니 오빠 호칭 사라져라
보름달 아래 있는 나는 작지만 컸다
이 터널을 걷다 보면
가장 소중한 건 사랑이었다
내가 같이 뛰어내려 줄게

 




내가 같이 뛰어내려 줄게


바들바들 덜덜덜 떨린다

나이만 채우면 어른이지

“네가 애야?”라는 소리를 들었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나는 애였다.


나이를 먹으면 주름이 하나둘 늘어가며 자연스럽게 노화가 오는 것처럼 어른이 되는 일도 나이를 먹으면 저절로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나이를 먹었고 마주하는 현실이 달라졌는데도 내 멘탈은 어렸을 적 철부지 그대로였다. 분명 하는 일도, 환경도, 책임의 정도도, 어른이 되면서 다 달라졌는데 왜 나는 변하지 않았을까.


여전히 내 맘대로 하고 싶은 것만 하려 하고, 안되는 것 같으면 생떼를 부리고, 너무 순수한 소망을 간직하면서 버리려고 하지 않는다. 어렸기 때문에 보호받으며 누릴 수 있었던 것들을, 지금 보호막 따위는 없는 나이를 먹고서도 계속 유지하려고 하니 ‘네가 애야?’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 세상 물정 모르는 애가 되었다.


그뿐만 아니다. 지금쯤이면 그래도 전보다 훨씬 마음도 넓어지고 이해심도 깊어져 좀 더 성숙한 사람이 되어 있을 줄 알았다. 적어도 오늘 하루를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올바르고 행복한 인생을 만들 수 있는지 그 지혜를 조금은 터득했을 줄 알았다. 내가 생각한 어른은 그런 거였다.


하지만 시간은 나를 더 성숙한 어른으로 만들어주지 않았다.

마음의 크기도 지혜의 깊이도 교복 입던 시절이랑 똑같다.


내가 무슨 피터팬도 아니고 이래도 되나 싶다. 나이가 채워진다고 어른이 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으니 노력을 해서라도 어른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멘탈을 나이에 맞게 졸업시키고 바꾸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그 마음을 먹자마자 버퍼링에 걸린 것처럼 뇌가 일시정지 되었다.


바뀌어야 하는 건 알겠고 그러고도 싶은데 도대체 뭘 바꿔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조언해 주고 얘기해 주는걸 따르자니 그게 내가 되고 싶은 어른도 아니다. 꽉 막힌 막다른 골목의 벽을 바라보고 서서 어디로 가야 할지 정해야 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에라 모르겠다.

지금은 할 수 있는 게 없는 것 같다.

때가 되면 나도 크겠지.


어른이 되기를 한 번 더 미루기로 했다.



뭐야 인생 생각보다 기네

길어서 다행이야

다들 오래오래 살고 싶다는데

나는 인생이 너무 길어서 싫었다.


아직도 이렇게 어리다니. 100세 시대라니까 앞으로 지금까지 산 것보다 몇 배는 더 살아야 할 텐데. 하루씩 살아서 언제 그걸 다 살지. 벌써부터 아득하기만 하고 버거웠다. ‘빨리감기’라도 할 수 있다면 당장 최대속도로 감아서 하루라도 빨리 뜨뜻한 무덤 속으로 들어가 편히 쉬고 싶었다.


그런데 어차피 빨리감기를 할 슈퍼파워 같은 건 나한테 없다. 그렇다고 계속해서 날마다 이렇게 버거워하며 살자니 사는 게 싫었다. 이렇게 사느니 일단 맘대로라도 살아보자. 하고 싶은 거라도 무작정 해보면서 모험가처럼 살기로 맘먹었다.


그러면 적어도 남은 날들이 부담스러워서 버리진 않겠지. 잘 살아야 한다는 집착도 버리고, 사람들의 기대치에 맞춰야 한다는 의무감도 버려버렸다. 다른 사람들이 살라는 대로 더 이상 안 살기로 했다. 시원하게 전부 버렸다. 그래야 모험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고 나니까,

인생이 길어서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안전한 길이 아닌 모험을 선택하게 되면 분명 더 많은 실패를 겪을 수밖에 없다. 만약 인생이 짧았다면 한 번만 실패해도 이미 인생이 끝나버렸겠지. 하지만 다행히도 인생은 너무 길다. 아주 길다.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실패를 수백 수천 번 해도 아직 시간이 남아 있다. 시간은 내가 아무리 싫다고 해도 여전히 나를 기다리고 있다.


18살에 실패하면 19살이 남아 있다. 20대에 실패하면 30대가 남아 있다. 30대에 실패하면 40대, 50대, 60대, 70대가 줄줄이 지겹도록 남아 있다. 아무리 실패해도 100살까지 또 도전할 수 있다.


내게 남아 있는 재도전의 시간을 계산해 보니 아주 넉넉해서 뭐든 다 해봐도 되겠다는 결론이 났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다 해보면서 살아도 된다. 그러다 망한들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또다시 도전하면 되니까.


거대한 인맥도,

엄청난 재력도 없지만

시간만큼은 있으니까.



두 발 딱 붙이고 검을 뽑아보자

심장에 힘을 콱 준다

흔히들 이렇게 말한다.


“힘든 건 이겨내야 해!”


정말 맞는 말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적용하기 힘든 아주 꿈같은 말이다. 힘들어서 울고 또 울다 ‘왜 살아야 하는 거지’라는 생각까지 드는데 이겨내자는 의지 자체가 존재할 리가.


무기력해질 때면 그저 왜 나에게는 남들처럼 의욕이 없는 걸까 원망했다. 일이 잘 안 풀리면 희망이 없는 현실이라고 화냈다.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울기만 하면서 상황이 좋아지기만을 기다렸다.


그런데 이겨낸다는 게

내가 생각해 왔던 거랑은

아주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다이어트를 할 때

떡볶이가 너무 먹고 싶은

격한 충동을 참았던 것,


졸려 죽겠는데

숙제하느라 미친 듯이 감기는 눈을

안간힘을 다해 뜨려고 했던 것,


잘 안 나오는 똥을 쌀 때면

온 세포를 다 끌어모아 힘줬던 것,


힘든 걸 이겨낸다는 건

이렇게 온 힘을 다해서 하는 것이었다.


마음이 지쳐서 휘청거릴 때는 머리 말고 진짜로 몸에 끙 힘을 준다. 주먹을 꼭 쥐고 힘을 심장까지 꽉 주면 마음이 단단해지는 게 느껴진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이 멀어진다고 하는 이유는 몸과 마음이 연결되어 있으니 그런 게 아닐까. 그래서 몸에 힘을 주면 마음에도 힘이 가는 것 같다.


힘든 걸 이겨낸다는 건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겨내는 방법을 하나씩 알아가고 있는 것 같다.



푸하하가 모여서 행복이 되는구나

슬리퍼의 뒤는 어디게?

작년 여름 내내 신었던 실내화가 있다.

손뜨개로 만들어진 핸드메이드 민트색 삼선 실내화다.


물론 내가 만든 건 아니고 엄마가 사준 거다. 공장에서 깔끔하게 찍어낸 실내화들도 예쁘긴 한데 조금 흐물흐물해도 핸드메이드로 만든 이 실내화가 너무 맘에 들었다. 시원해서 여름에 신기에도 딱 좋았다.


여름 내내 집에서는 이 폭신한 민트 실내화만 신었다. 뜨개실로 만든 거라 옷처럼 세탁기에 넣고 돌릴 수도 있고 아주 좋았다. 일주일에 한 번은 세탁했다. 여러 번 빨아서 그런지 여름이 끝나갈 때쯤 되니까 실내화 모양이 점점 애매해졌다. 하지만 별로 개의치 않고 신었다.


그런데 올해 다시 꺼내서 신으려고 보니 어디가 앞인지 뒤인지 알 수가 없었다. 발이 막혀 있지 않은 삼선 슬리퍼처럼 실내화 바닥 위에 띠가 둘러져 있는 모양이었는데, 그 띠가 한번 빨 때마다 조금씩 움직이더니 결국 정중앙에 정착해 버렸다.


거실 바닥에 실내화를 놓고 엄청 고민했다. 도대체 어느 쪽으로 발을 넣어야 하지. 분명히 한쪽이 뒤축일 텐데 어디가 뒤축이지? 어디가 앞이고 어디가 뒤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일단 무작정 신어보았다. 그러나 제대로 신은 게 맞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때마침 엄마도 거실에 같이 있어서 엄마한테 물어봤다.


“엄마!! 이거 실내화 어디가 뒤 같아?”


엄마가 직접 사다 준 실내화니까 엄마는 명쾌한 해답을 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엄마는 실내화를 쓰윽 대충 훑어보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당연히 너가 편한 곳이 뒤지!”


예상치 못한 엄마의 답에 잠깐 뇌 정지가 왔다.


그러네? 내가 신는 거니까 내가 편한 쪽을 뒤로 쓰면 되지.

왜 나를 실내화한테 맞추려고 했지?


내가 편한 곳으로 신었을 때 앞쪽이 앞이 되고 뒤쪽이 뒤가 되는 거지. 내 발을 위한 실내화인데 실내화한테 내 발을 맞추려 했다는 이 어이없는 상황을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니.


당장 고민을 멈추고 실내화를 두 방향으로 전부 신어보았다. 솔직히 비슷하긴 했는데 그나마 더 편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쪽을 찾았다.


그래, 앞으로는 여기가 앞이다. 왜냐면 내 발이 여기가 더 좋다고 했으니까. 설령 원래 여기가 앞으로 나온 게 아니라고 하더라도 무조건 여기가 앞이다!


이미 방향이 정해져 있다고 믿었지만 사실 내 맘대로 신을 수 있었던 실내화처럼, 세상을 살아가는 순서와 방법이 이미 정해져 있는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 내 맘대로 내 방식대로 세상에서 살아남고 살아가는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


세상의 기준에 나를 끼워 맞춰 살지 않고

한번 사는 인생, 내 색깔대로

내 방식을 찾아가야겠다고 다짐했다.


남들과 꼭 똑같이 살지 않고,

나는 나대로 살아도 괜찮으니까.



가장 행복한 순간은 아직 안 왔다

단것만 먹으니 질린다

세상에 좋은 것만 존재하면 얼마나 좋을까.

나쁜 사람, 나쁜 일, 나쁜 상황이

존재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드디어 이해한 걸 같다.


아침으로 쿠키를 먹었다. 아주 달고 부드러운 버터 쿠키. 우유랑 같이 먹으니까 입에서 적당히 녹아들어 술술 들어갔다. 역시 과자는 아침에 먹는 게 최고인 것 같다. 눈뜨자마자 당을 충전해서 그런가. 평소보다 에너지도 더 넘치는 기분이었다.


점심으로는 양념이 푹 밴 달달한 갈비를 먹었다. 친구랑 둘이서 한 4인분을 해치우고 근처 카페에서 디저트로 마카롱까지 시켰다. 수다를 떨다 보니 입이 심심해 초콜릿도 한 조각 먹었다. 근데 초콜릿 마지막 조각을 입에 넣을 때쯤 되니 약간 질리는 느낌이 들었다. 단 걸 너무 많이 먹었나 보다.


저녁으로는 크랜베리가 들어간 달콤한 치킨샌드위치와 고구마를 먹었다. 이건 내가 원해서 먹은 게 아니라 단체로 먹는 저녁이라 어쩔 수 없이 그냥 같이 먹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너무 단것만 먹었더니 입 안이 마비된 것 같았다. 달달한 고구마를 한 입 베어 물 때는 도대체 내가 단 것을 먹는 건지 뭘 먹는 건지 입에 감각이 없는 느낌이었다. 혀가 하루 종일 단맛에 절여져서 더 이상 단맛이 무엇인지 느끼지 못했다.


평생 매끼 단것만 먹을 수 있다면 아주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강력하게 외치던 나였는데, 겨우 하루 식단을 단것만 먹었다고 단맛이 뭔지 느낄 수 없게 되었다. 짠맛이 그립고 매운맛이 그리웠다. 만약 그게 안 된다면 비린 맛이나 떫은맛이라도 느끼고 싶었다. 단맛만 빼면 뭐든 오케이였다.


이 세상에 착하고 좋은 것만 있었다면 우리는 과연 좋은 일이 좋은 거라는 걸 인지할 수 있었을까? 단맛에 질려 단맛이 뭔지도 모르고 심지어 물리고 만 것처럼 좋은 일 속에서 감각이 마비되어 좋은 것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면 태어나서 제일 행복했을 때는

마냥 기분 좋고 신나기만 할 때가 아니다.


너무 힘들게 무언가를 얻었을 때,

상처로 마음을 굳게 닫은 사람이 마음을 열기 시작했을 때,

소중한 사람인 힘든 걸 끝끝내 이겨냈을 때,


인생에서 기억에 크게 자리 잡은 감격스러운 행복들은 오로지 좋은 것만 있었던 게 아니라 아픔과 고통도 있었다. 너무 기쁘면 눈물이 나는 이유도 진정한 기쁨에는 웃음과 눈물이 함께 하기 때문이 아닐까.


나쁜 일을 통해서 좋은 일을 누리는 법을 배우고

슬픔을 통해 더 큰 기쁨을 맛보기도 하면서

아픔과 고통도 결국 행복을 향한 길임을 배워가는 것일까.


먹을 건 단짠단짠.

인생도 단짠단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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