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웨이스트 살림법

   
살림스케치(김향숙)
ǻ
21세기북스
   
17000
2022�� 05��



■ 책 소개


버리지 않고도 가볍게 사는 친환경 미니멀 라이프

이 책에서는 버릴 것이라 생각했던 물건들의 다른 쓰임을 찾아 새롭게 쓰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알려준다. 저자는 제로웨이스트 살림법 덕분에 살림이 더 재밌고 새로워졌다고 말한다. 버리지 않고, 사지 않고, 새롭게 쓰는 살림을 통해 사소한 것에 의미를 부여하게 되고 진정한 삶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이 과정에서 스스로가 기특해지는 감정을 느끼는 것은 또 하나의 덤이다.

■ 저자 살림스케치(김향숙)
구독자 17만 명을 보유한 유튜브 ‘살림스케치’ 운영자. 평소 살림을 영상과 사진으로 기록하며 실생활에서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준다.

소박하고 심플한 집 꾸미기에 흥미가 가던 찰나, 우연히 집 안에 쌓여 있는 수많은 물건을 몽땅 버리는 영상을 보게 됐다. 쓰레기 대란으로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는데 살림을 하며 버림이 우선이 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멀쩡한 물건을 버리는 게 아닌, 있는 물건의 활용으로 쓰레기와 소비를 줄이는 살림을 실천하게 되었다.

이 과정을 유튜브를 통해 공유하기 시작했고, ‘빨개진 컵라면 용기 손 안 대고 지우는 방법’ 영상이 큰 주목을 받으며 대표적인 제로웨이스트 크리에이터로 자리매김했다. 그 후 계속해서 자신의 제로웨이스트 살림법을 공유하고 구독자들의 노하우를 얻기도 하며 서로 긍정적인 영향력을 주고받고 있다.

유튜브 채널 ‘살림스케치’

■ 차례
프롤로그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의 살림

Inside 모두의 지구를 살리는 작은 습관
[Check List] 나의 제로웨이스트 지수
[Infographic] 지금 우리 살림은…
[Savvy] 제로웨이스트 기초 상식
[Campaign] 탄소 발자국 줄이기

How To 일상에서 시작하는 제로웨이스트 실천법
Part 1. 살림 이야기 : 환경을 생각하니 살림이 재밌어졌다
[제로웨이스트 살림법]
비닐장갑이 내 손보다 위생적일까?
더 편리한 대체품을 찾아라
미세플라스틱 걱정 없는 친환경 수세미
[Plus Tip] 미세플라스틱을 줄이는 현명한 세탁 방법 7가지

[경계를 허무는 식재료 보관법]
냉장고 채소 보관, 1년의 기록
재료가 쉽게 상하지 않는 친환경 보관함
버리는 물건에 주목하라

[분리배출, 이보다 더 쉬울 순 없다]
엄마, 힘들게 씻지 말고 햇볕에 툭 던져 놔
기름 범벅 배달 용기, 손쉬운 세척법
경험이 알려 준 스티커 제거 방법
[Plus Tip] PVC 랩, 잘 버려야 하는 이유

Part 2. 우아한 궁상 : 세상에 버릴 게 하나 없더라
[버리면 쓰레기, 활용하면 보물]
요즘 과자 봉지 참 잘 만드네
명예로운 쓰레기가 된다는 것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Plus Tip] 마스크, 그냥 버리기 아까워서

[소비를 줄이는 살림법]
계속 먹을 수 있는 마법의 요거트
먹고, 심고, 수납하고
장바구니 속 물건 분해하기

[화초는 죽어서 화분을 남긴다]
엄마의 정원으로 건강을 엿보다
살림에 보탬이 되는 식물
과일 씨앗 버리지 마세요

Part 3. 친환경 미니멀 라이프 : 나만의 살림 자아 만들기
[물건을 버리는 건 깃든 추억과 이별하는 것]
쓸모를 다한 물건의 재탄생
내 손에 딱 맞는 맞춤 도구
흩어진 추억을 하나로 모으면

[경계 없는 물건 활용은 쓰레기를 줄인다]
유행 지난 물건들이 만났을 때
경험이 부족하면 쓰레기가 생긴다
버리지 않고 응용하기
[Plus Tip] 병뚜껑을 활용한 비누 받침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는 맛있는 살림]
이런 것도 먹어? 별걸 다 먹네!
유통기한 말고 소비기한
말려라, 볶아라, 우려라

Outside 평범하고 특별한 살림의 기록
[Hashtag] ‘살림스케치’를 말하다
[salimsketch in Number] 숫자로 보는 살림스케치의 역사
[Essay] 내 살림을 유튜브에 올린 이유
[Recommendation] 추천 사이트 & 공간

 




제로웨이스트 살림법


제로웨이스트 기초 상식

제로웨이스트란 폐기물이 전혀 발생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쓰레기 발생을 최소화할 수는 있어도 완전히 ‘제로’로 만들기는 어렵습니다. 극한의 제로웨이스트 고수도 쓰레기를 조금은 남기니까요.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발생한 쓰레기를 잘 버리고 올바르게 배출해서 자원으로 만들 수 있게 돕는다면 이 또한 제로웨이스트 실천에 도움이 됩니다. 자원 순환으로 폐기물 발생을 줄일 수 있으니까요.


일상에서 제로웨이스트 실천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평소 생활에서 약간만 더 관심을 기울이면 되지요. 하지만 어떤 게 환경을 위한 행동인지 몰라서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습니다. 쓰레기만 잘 버려도, 재활용 분리배출만 올바르게 해도 당신은 이미 제로웨이스트 실천가라 할 수 있습니다.


살림 이야기 : 환경을 생각하니 살림이 재밌어졌다

풍족하지 못해 가난한 시대를 사셨던 부모님들은 불편해도 참고, 버티고, 아껴야만 했습니다. 그래야 굶지 않고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자식들에게 늘 말씀하십니다.


“아껴야 잘 산다.”


힘들게 살아오신 부모님의 가르침을 받고 자란 저는 제 딸에게 말합니다.


“아껴야 자연이 잘 산다.”


이제 주체가 내가 아닌 자연으로 바뀌었습니다. 오늘날 풍족한 시대에는 쌓여 가는 쓰레기를 걱정하며 아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연이 파괴되면 모든 것을 잃게 되니까요.


정수기 대신 수돗물을 끓여서 마십니다. 한겨울과는 달리 한여름에는 끓인 물을 냉장고에 빨리 넣지 않으면 쉬이 상합니다. 여러모로 불편합니다. 그래서 딱 여름 한 철만 생수를 사다 먹자고 마트를 찾는 날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여름 내내 생수병에 든 물을 마시고 빈 플라스틱을 배출할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


텃밭 가는 길 공원에 약수터가 있습니다. 어느 날, 빈 텀블러에 그 약수터 물을 받아 냉장고에 넣어놨더니 딸이 그걸 마셨나 봅니다.


“엄마, 이 물 어디 거야? 물비린내 안 나고 맛있다.”


약수터 물이 더 맛있다는 아이의 말에 플라스틱 배출하면서까지 생수를 사 먹을 필요 없겠다 싶었어요. 그 후 생수를 사러 마트에 가지 않았고, 배출하는 페트병이 없어 마음이 편해졌으며, 소비도 줄었습니다.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쓰레기를 최소화하고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는 것을 제로웨이스트라 합니다. 쓰레기 발생이 ‘제로’가 될 수는 없겠지만 노력해서 발생을 최소화할 수는 있습니다. 플라스틱 사용을 없앨 수는 없어 다른 것으로 대체해서 사용하니 배출되는 플라스틱을 줄일 수 있었고, 대체품을 사용함으로써 일회용 비닐의 구매와 사용을 줄일 수 있었습니다.


환경을 위해 조금 불편해도 괜찮은 ‘제로웨이스트 살림법’ ‘경계를 허무는 식재료 보관법’ ‘이보다 더 쉬울 수 없는 분리배출법’을 통해 일상 속에서 쓰레기와 소비가 줄어드는 마법 같은 살림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제로웨이스트 살림법]

미세플라스틱 걱정 없는 친환경 수세미

천연 수세미를 안 써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 써 본 사람은 많지 않을 듯합니다. 그만큼 써 보면 매력이 참 많습니다. 가장 큰 매력은 세제 없이 설거지가 가능하고, 끓는 물에 넣고 삶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기름 범벅 식기류에는 약간의 세제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천연 수세미는 적은 양의 세제로도 풍부한 거품이 나고, 식기류나 팬을 닦을 때도 기름 잔여물이 들러붙지 않아요. 물로 헹구면 바로 수세미가 깨끗해집니다. 무엇보다 천연 수세미는 수명이 다하면 마음 편히 일반 쓰레기로 버리면 됩니다. 자연에서 키운 식물 수세미라 썩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 등 장점이 많습니다.


어릴 적에 시골에서 식물 수세미를 키워 즙으로 마시기도 하고 설거지도 했습니다. 그때는 어린 손에 닿으니 까슬까슬해 아팠던 기억이 납니다. 어릴 적 추억을 회상하며 천연 수세미로 설거지를 하는데 안심이 돼 즐겁고, 추억이 떠올라 즐겁습니다.


[경계를 허무는 식재료 보관법]

냉장고 채소 보관, 1년의 기록 _ 포도 봉투의 숨겨진 비밀

식재료를 보관하기 위해 빈 통을 찾으면 늘 부족합니다. 이런 날 시골에서 농작물이라도 올려 보내는 날은 난감합니다. 좁은 집에 많은 통을 소유하는 건 보관상 한계가 있어요. 시골에서 올라온 농작물을 보관하기 위해 일회용품이 총동원됩니다. 채소가 짓무르는 걸 방지하기 위해 키친타월에 채소를 돌돌 말아 일회용 비닐봉지나 지퍼백에 정성껏 넣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보관해도 채소의 특성상 제때 먹지 않으면 상합니다. 정말 허무해요. 열심히 일회용품을 총동원해 잘 보관했는데 그 노력이 쓰레기가 돼 버립니다. 키친타월은 오염 물질이 묻어 재사용할 수 없을 지경이고, 일회용 비닐은 오염물이 흥건해 냄새가 지독합니다. 씻어서 재활용품으로 배출해야 하는데 지저분하단 핑계로 일반 쓰레기통에 버리게 됩니다. 아무런 소득이 없이 쓰레기만 발생시켰습니다. 그 많은 먹거리와 일회용 비닐이 냉장고 속으로 밀물처럼 밀려들어 왔다 썰물처럼 빠져나가 다 함께 쓰레기통에 처박히게 됩니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릴 때 마음이 더 쓰입니다. 특히 시골 부모님께서 땀 흘려 농사지어 보내주신 농작물이 관리 소홀로 인해 상해서 버려야 할 때 늘 송구하고 죄송합니다. 밥을 먹을 때 아이에게는 밥과 반찬을 남기면 복이 달아난다는 둥, 지구 반대편의 굶주리는 아이들을 생각하라는 둥 훈계하면서 정작 살림을 책임지고 있는 저는 더 많은 음식물을 버리고 있었습니다.


살림 초보 시절의 실패의 경험을 통해 많은 걸 깨닫고 뉘우치며, 더 좋은 식재료 보관법을 늘 염두에 두고 생활했습니다. 현명한 살림을 위해 좋은 습관을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깊이 깨달으면서요.


그러던 어느 날 포도 봉투가 눈에 띕니다. 아껴 먹는다고 냉장고 야채칸에 고이 넣어둔 마지막 포도 한 송이를 꺼냈습니다. 포도를 감싼 봉투-앞면은 작은 구멍이 송송 뚫려 있는 비닐이고 뒷면은 한지처럼 생긴 종이-를 보니 좀 전에 넣어둔 포도처럼 뽀송뽀송합니다. 분명 냉장고에 오랫동안 넣어 뒀다 밖으로 꺼내면 온도 차에 의해 습기가 생기는데 그렇지 않았어요. 포도와 봉투에 물방울이 맺혀 있지 않습니다. 그때 포도 봉투를 뚫어지게 관찰했습니다. 비벼 보고 종이 부분을 찢어 보다가 ‘종이는 습기를 흡수하고, 비닐은 수분을 보호하고, 작은 구멍은 공기 길인가?’ 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결론을 내리게 됐습니다.


그런 후 테스트를 해 봅니다. 다용도실에 먹다 남은 마 하나가 있었습니다. 포도 봉투에 넣어 야채칸에 넣어 놨습니다. 마는 냉장고에 들어가면 쉽게 곰팡이가 피는데, 과연 어떻게 될지 궁금한 마음으로 여러 날 지켜봤습니다. 다른 채소를 꺼낼 때마다 포도 봉투에 든 마를 지나가는 눈으로 바라보니 그대로 있었습니다. 너무 신기해서 한 달을 더 지켜봤습니다. 그때도 그대로였어요. 그렇게 두 달을 넘기고 석 달을 넘길 때쯤 포도 봉투의 위력을 실감했습니다. 마를 꺼내어 먹어도 되지만 내년 2월까지 테스트를 해 보고 싶어졌습니다.


1년 뒤 포도 봉투에 든 마를 꺼냈더니 썩지 않았습니다. 대신 쪼글쪼글 말라 있었습니다. 눌러 보니 과육은 남은 듯해 먹어 봤습니다. 아삭아삭 식감은 살아 있지만 수분은 많지 않았으며, 맛의 변질은 없었지만 고소함이 없었어요.


식재료에 습기가 생기게 하지는 않지만 장시간 보관하면 마르는 포도 봉투의 특성상, 겉껍질이 켜켜이 쌓인 양파와 마늘을 보관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포도 봉투에 많은 양을 넣어서 보관할 수는 없습니다. 재질이 약해 잘 찢어지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1인 가구나 자취생 그리고 식재료를 소량으로 구매해 먹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당분간 먹을 만큼의 양은 실온에 놔두고 나중에 먹을 양만 포도 봉투에 보관해도 상해서 버리는 식재료를 줄일 수 있습니다.


[분리배출, 이보다 더 쉬울 순 없다]

엄마, 힘들게 씻지 말고 햇볕에 툭 던져 놔 _ 빨개진 컵라면 용기, 손 안 대고 지우는 방법

빨개진 컵라면 용기 이렇게 씻어 보고, 저렇게 씻어 봐도 지워지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은 적 있지요? 지저분한 용기를 일반 쓰레기로 구겨 버리며 한 번쯤 마음이 불편했던 경험이 있을 겁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래서 집에서 컵라면 먹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주로 봉지 라면을 끓여 먹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주버님 댁에 다녀온 남편이 컵라면을 종류별로 받아 왔습니다. 먹을 사람이 없다며 다 가져가라며 싸 주셨던 거지요. 이날 우리 가족은 1인 1컵라면 파티를 했습니다. 후루룩 맛있게 먹고 여유롭게 식탁 위를 바라보니 붉은 컵라면 용기와 각종 비닐봉지가 남겨져 있었습니다. 일반 쓰레기로 구겨서 버리려니 쓰레기 산이 떠오르고, 깨끗이 씻으려고 하니 수세미가 기름 범벅이 될 것만 같았지요. 그래서 버리지 않고 놔둔 칫솔을 꺼내어 세제만 조금 묻혀 박박 문질렀습니다. 잘 지워지지 않아 분노의 칫솔질을 하며 한숨이 나왔습니다.


“휴우, 잘 안 지워져서 설거지하기 너무 힘든데”라며 칫솔로 박박 문지르면서 투덜거리니 방에 있던 딸이 팁을 툭 던져줍니다.


“엄마, 힘들게 씻지 말고 그냥 햇볕에 놔두면 지워져!”


“응? 설마? 어떻게 그렇게 되냐?” 하고 물었더니 과학적인 원리에 의해 붉은색이 사라진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듣고 햇볕으로 빨개진 컵라면 용기 지우는 방법에 대해 SNS를 뒤졌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반신반의하며 해가 드는 베란다 창가에 툭 던져 놨습니다. 이틀 뒤 청소하다 그 용기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빨개진 컵라면 용기가 하얗게 변해 있었던 겁니다. 믿기지 않아 순간 ‘딸이 나 몰래 씻어서 가져다 놓은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딸한테 물어보니 크게 웃으며 아니라고 하더군요. 혹시 용기에 물을 담으면 다시 붉어지는 것 아닐까? 그래서 용기에 물을 받아서 반나절 기다려 보니 별다른 변화는 없었습니다. 순간 머리에서 종이 울렸습니다. 이걸 왜 이제야 알았을까? 행주에 묻은 붉은 김칫국물도 햇볕에 말려 없애면서 왜 이 생각을 못 했을까? 정말 신기하고 이런 사실을 이제야 안 것에 아쉬움이 컸습니다.


*빨개진 컵라면 용기, 손 안 대고 지우는 방법: 컵라면을 맛있게 먹고 나서 국물은 배수구에 버린 후 1차로 물 세척을 합니다. 이물질 제거 후, 고추기름이 묻어 있는 컵라면 용기를 베란다 햇빛 있는 자리에 던져 놓습니다. 종이로 된 용기는 반나절이 지나면 빨간 기름이 일부 지워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스티로폼 용기는 종이 용기보다 시간이 두 배 더 걸립니다. 종이 용기는 하루, 스티로폼 용기는 이틀 정도 걸린다고 생각하면 됩니다(10월 가을 햇빛 기준).



우아한 궁상 : 세상에 버릴 게 하나 없더라

명예로운 쓰레기가 된다는 것 _ 코팅 전단지와 떼어낸 스티커 활

어느 날 친구 집에 갔더니 전단지로 접은 종이 상자를 꺼내 가져가서 사용하라고 합니다. 생선이나 고기를 먹을 때 뼈 담는 접시 대신 종이 상자를 식탁 위에 올려놓고 뼈를 담아서 버리라고요. 코팅된 종이라 튼튼하고 신문지보다 기름이 덜 묻어나서 좋다고 하네요.


집에 가져와서 사용해 보니 뼈를 감싸서 버릴 검정 비닐봉지를 사용하지 않게 돼 좋았습니다. 종량제 봉투에 뼈를 그냥 버리면 냄새와 벌레가 생기고 뼈가 드러나 미관상 보기 싫었는데 여기에 감싸서 버리니 투명한 종량제 봉투 밖으로 뼈를 감출 수 있어 좋았습니다.


그리고 쓸모없는 전단지로 상자를 접어서 사용해 보니 일단 재미있습니다. 생선 먹을 때 식탁 위에 접시 대신 올렸더니 가족들의 반응도 뜨거웠습니다. 귀엽다며 웃기도 하고 신기해합니다. 저는 식탁 위에 올려 두고 사용할 때마다 매우 만족하며 뿌듯해합니다. 이런 발상의 전환이 살림을 참 재미있게 만드는구나! 상자를 펼칠 때마다 친구의 얼굴이 제 마음속에 펼쳐집니다. 고마운 마음과 함께요.


코팅 전단지는 신문 사이에 많이 들어 있습니다. 집마다 현관문에 많이 붙어 있기도 하지요. 길거리에서 홍보물로 나눠 주기도 합니다. 시내에 나가면 바닥에 나뒹구는 전단지를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발에 밟히는 전단지를 보면 종이 상자가 생각납니다. 그래서 홍보물을 받으면 거리에 버리지 않고 가방에 넣어 왔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지금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코로나 19 이후 코팅된 전단지도 자취를 감춰 버렸습니다. 외출 후에 집으로 돌아오면 번호키를 누르기 전 현관문에 부착된 전단지부터 떼어 내는 게 일이었는데요. 요즘은 문 앞에서 펄럭이는 전단지가 자취를 감추어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화초는 죽어서 화분을 남긴다]

엄마의 정원으로 건강을 엿보다 _ 보고, 먹고, 즐기는 식물 활용법

엄마의 정원을 보면 엄마의 건강이 보입니다. 5월 어버이날, 시골 오일장에서 구경하기 힘든 희귀하고 예쁜 화초를 종류별로 샀습니다. 혼자 있는 적적한 시간에 화초를 돌보며 작은 즐거움을 느끼셨으면 했어요. 그런데 “만사가 귀찮다. 다음에는 사 오지 마라!” 하십니다. 그냥 하는 말이겠거니 생각했습니다.


그해 여름휴가 때 내려가 보니 대문 앞의 화단에도 마당 안의 화단에도 잘 크고 있던 화초들이 보이지 않고 빈 화분만 쌓여 있네요.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니 집 안의 공기가 평소와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방 안 창가에 놓여 있는 화초들이 시들어 있었고, 정원이 시든 만큼 엄마의 기력과 원기도 쇠약해진 것을 알아챘습니다. 병원에 모시고 가 정밀 검사를 받아 보니 콩팥에서 염증이 발견됐습니다. 결국 여름 한 달 동안 입원해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엄마의 정원을 보면 엄마의 건강이 보인다는 것을요. 평생을 살뜰히 보살피던 생기 넘치는 작은 정원에 화초 대신 빈 화분이 쌓여 있으면 엄마의 건강을 의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후 2년 동안 힘든 고비를 두 번 넘기면서 많이 밝아지셨고, 이제는 전화 목소리도 쾌활하게 들립니다. 지금은 쌓여 있는 빈 화분에 생명을 하나씩 채우고 계십니다. 그 재미를 느껴 보시라고 레몬 씨앗을 발아시켜 레몬트리를 갖다 드렸어요. 그랬더니 희망을 재촉하시며 “레몬은 언제 열릴꼬? 꽃이 펴야 열매가 열릴 텐데 아직 꽃이 안 피네”라고 하십니다. 아보카도 씨앗을 발아시켜 아보카도 나무도 갖다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똥오줌 못 가리는 강아지를 귀찮아하듯 “하이고, 야는 참 성가시다. 매일 물을 안 주면 잎이 축 처진다”라며 볼멘소리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장미 허브도 풍성하게 꺾꽂이해서 갖다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의아한 목소리로 “저 허브는 향이 저렇게나 좋은데 우째 못 먹노?”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맛있는 허브 식물을 종류별로 갖다 드렸더니 이제 커피 대신 허브차를 즐겨 드십니다. 물에서 향기가 난다며 좋아하세요.


취향이 비슷한 엄마와 딸의 전화 통화 주제는 늘 화초 이야기로 시작해 텃밭 이야기로 끝을 맺습니다.


“엄마, 엄마, 텃밭에 수세미가 30개 넘게 달렸다.”


흥분해서 이야기하면 답합니다.


“하이고, 그렇게나 많이 달렸나? 내년 봄에 심어보게 씨앗 갖고 온나.”


엄마도 목소리를 높여 옛날에 천연 수세미로 설거지한 이야기를 한참을 들려주십니다.


“식물 수세미를 키우기 전에는 볏짚으로 설거지했다. 뻣뻣하게 마른 것을 물에 푹 적셔가 그걸로 일일이 그릇을 닦았다.”


볏짚으로 소도 먹이고 살림도 했다면서 신나게 옛 경험을 들려주십니다. 이렇게 엄마와 딸의 전화 통화는 한 시간을 넘길 때가 많습니다. 예전의 호기심 많고 열정적인 우리 엄마로 돌아온 것 같아 흐뭇하고 기쁩니다.



친환경 미니멀 라이프 : 나만의 살림 자아 만들기

[경계 없는 물건 활용은 쓰레기를 줄인다]

유행 지난 물건들이 만났을 때 _ 청바지 입은 화분

어느 해, 청바지처럼 생긴 화분이 유행한 적 있었습니다. 멀리서 보면 꼭 청바지를 입혀 놓은 듯해 가까이 다가가 보면 도자기로 만든 청바지 모양 화분이었어요. 독특해서 하나 사고 싶었지만, 손으로 빚었는지 만만한 가격이 아니어서 못 샀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가지고 싶었던 청바지 화분에 미련이 남아 유행 지난 청바지를 꺼내어 잘랐습니다. 노란 화분에 청바지를 입혀 보니 맞춤한 듯 딱 맞았습니다. 1990년 중반에 유행했던 물 빠진 청바지였습니다. 추억이 많이 깃든 바지라 버리지 못하고 보관하고 있었어요. 화분에 청바지를 입혀 훅을 걸고 지퍼를 올리니 오래전 한때 갖고 싶었던 청바지 화분처럼 보였습니다. 어찌나 마음에 들던지 사진을 찍어 언니들한테 보냈습니다.


“어, 예쁘네. 요즘도 청바지 모양 화분이 나오나?” 하고 묻습니다. 내 청바지를 잘라서 화분에 입혔다고 하니 판매하는 화분처럼 보인다며 신기해했답니다.


유행 지난 화분에 유행 지난 청바지를 입혀본 후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내 취향이 유행에 따라 움직이면 늘어나는 건 쓰레기와 소비뿐이겠구나!’


물건의 쓰임에 경계를 없애면 쓰레기와 소비가 줄어듦을 느꼈습니다. 아무리 추억이 많은 청바지라도 서랍 속에 오랫동안 넣어 두면 짐이 됩니다. 하지만 화분에 옷을 입혀 놓으니 볼 때마다 즐거웠던 추억이 떠오릅니다. 너무 오래된 청바지라 가슴에 두근거림이 생기지는 않지만, 나도 한때 유행에 발맞추고 살았던 청춘이 있었음을 인지 않고 일상을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런 소소한 재미는 마음이 젊어지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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