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트가 피곤해 결혼했더니

   
김수정
ǻ
마인드빌딩
   
15000
2021�� 06��



■ 책 소개


‘우리’가 그냥 ‘우리’라서 좋은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이해

 

어디 가서 말 못 할, 미세하고도 모호한 기혼자의 상처들이 이 책에는 고스란히 담겨 있다. 결혼의 달콤함도, 힘든 이야기도 쉽사리 털어놓지 못하는 이들의 마음을 온전히 품어줄 수 있는 책이다.

저자는 이 책을 쓰고 난 후, 가슴 속 그늘이 사라졌으며 더없이 안온해졌음을 고백한다. 마찬가지로 결혼이라는 단어 아래, 어찌할 바 모른 채 외로워하고 있는 이들은 이 책을 펼쳐보길 바란다. 한 자 한 자 눌러 담긴 그만의 결혼 이야기, 혹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부터 각자에게 꼭 필요한 위안을 얻으리라 믿는다.


■ 저자 김수정
10년 가까이 영화 담당 기자로 글을 쓰다가 지금은 프리랜서 예능 홍보인, 칼럼니스트로 고군분투 중이다. 유희열과 공유를 좋아하는 만큼 남편의 얇은 입매와 통통한 팔뚝을 사랑한다. 결혼을 통해 마음의 키가 1mm 정도 컸다고 자기최면을 걸며 오늘도 예측 불가 신혼생활을 즐기고 있다.

인스타그램 @tellmeboulit

■ 차례
프롤로그 - 신혼, 심장 초음파를 찍은 이유

1부 30대, 맛집 탐방이 피곤한 나이
- 연예인 많이 봐요?
- 오빠랑 얘기하는 게 제일 재밌어
- 백수 남자친구가 체력 고갈에 끼치는 영향
- 대체 사이드 메뉴는 왜 시키는 건데
- 마곡역 일용직 노동자
- 손 마사지 무형문화재
- 프러포즈까지 쫓아온 징크스
- 자격지심 첫 경험

2부 드레스만 잘 고르면 되는 거 아니었나요
- 5분 만에 결혼 날짜 정하는 법
- 사주 맹신론자
- 을의 청첩장
- 남편 검증
- 혼수 잔혹사
- 위기 탈출 위경련 (부제: 결혼식 당일 절대 해선 안 되는 두 가지)
- 신혼여행이면 다 좋을 줄 알았지
- 왜 이 남자다 싶었더라

3부 나도 내 신혼이 이럴 줄은 몰랐어
- 신혼집 변기가 막혔다
- 택배 박스와 가출의 밤
- +20kg, 갈 곳 잃은 미니스커트
- 바비브라운이여 안녕
- 여전히 아름다운지
- 두 이불 덮는 사이
- 가끔은 남편이 야근했으면 좋겠어
- 검은깨 트라우마
- 동거를 했더라면
- 눕기만 하면 떠올라, 과거 자판기
- 기분 포물선

4부 먹고사니즘의 문제
- 8학군 유학파 남편이 봉준호를 만났을 때
- 충치 치료
- 교집합=인류
- 밥이 뭐길래
- 가임기 유부녀의 이직이란
- 청약 낙제생
- 남편이 삼고비를 넘길 때
- 우리도 사랑일까

5부 친정집 냄새가 그리워
- 낙엽빛 요크셔
- 코디 아줌마한테 잘 보이고 싶어
- 수상한 장모의 비밀
- 쥐똥 굴러다니는 단칸방, 그리고 고등어자반
- 구글에 감사드립니다
- 웨딩드레스와 중환자실
- 저도 귀한 손님이고 싶거든요?
- 200611044
- 엄마의 소개팅
- 아킬레스건

에필로그
- 나를 감당하는 일
- 첫 책, 마지막 페이지를 쓰며


‘우리’가 그냥 ‘우리’라서 좋은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이해A

 

 




데이트가 피곤해 결혼했더니


30대, 맛집 탐방이 피곤한 나이

오빠랑 얘기하는 게 제일 재밌어

사랑에 있어 대화는 얼마큼 중요한 걸까. 우리는 대화를 통해 사랑하고 대화를 통해 화해한다. 살면서 수도 없이 내뱉은 “대화가 안 통해”라는 문장은 종종 관계의 단절로 이어지기도 하고, 마음에 차가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렇기에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을 이상형으로 꼽는 이들이 많은 거겠지. 외향이나 취미 모든 면에서 내 스타일이 아닌 사람과 대화 쿵짝이 맞을 때, 나도 모르게 이성적 호감을 느꼈거나 이참에 어디 한번 호감을 느껴볼까 마음먹었던 경험, 다들 한 번쯤은 있을 거로 생각한다.


몇 해 전 가수 이효리가 방송에서 남편 이상순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오빠랑 이야기하는 게 제일 재밌어. 오빠랑 이야기하려고 결혼했는데?” 이 말에 짐짓 심란해졌다. 이효리의 말에 ‘나도, 나도’ 할 수 없어 쓸쓸했다. ‘잘 통하는 대화’에 그 누구보다 굵게 밑줄을 긋는 나지만, 이 남자와 이야기하려고 결혼하지는 않았거든. 사실 난 남편과의 대화가 재밌어진 지 얼마 안 됐다. 아직도 남편과의 대화에서 재미를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 중이다. 아마 남편도 그러하겠지만.


남편과 나는 대화의 주파수가 안 맞아도 너무 안 맞는다. 나의 개그가 어떤 포인트에서 웃어야 하는 건지 남편에게 설명하는 일이 잦다. 남편 역시 이 유튜브 영상이 얼마나 배꼽 잡게 웃긴 건지 내게 브리핑해주는 것이 일상이다. 뭐, 비단 유머뿐만이 아니더라도 대체로 안 맞고 전반적으로 엇박자다.


남편을 만나기 전, 다 필요 없으니 착한 사람과 결혼하라고 거의 주문을 외우듯 신신당부하던 선배가 있었다. 한 모임에서 친해진 선배였는데, 우리가 이렇게 깔깔거리며 잘 지내는 것은 기껏해야 한 달에 몇 시간 보는 게 다라서 그런 것이라 했다. 이 모인에서 위트 있고 잘 통하는 사람도 한 이불 덮고 자는 사이가 되면 다 똑같아진다고. 자기 남편이 그러했다고. 원래 대화는 남편이 아닌 친구들이랑 할 때 더 재밌는 법이라고. 그러니 부디 다정하고 착한 사람을 만나라고. 그게 최고라고 말이다.


선배의 조언은 실로 유익했다. 지금의 남편을 만났으니 말이다. 대화는 애매하게 안 통하지만 다정하고 착한 사람. 남편을 동호회 같은 곳에서 만나 한 달에 고작 한두 번 만나는 사이였으면 대화가 잘 통한다고 착각했으려나. 온 신경을 서로의 대화에 집중했던 첫 만남을 떠올려보면 아예 가능성 없는 일도 아닌 듯하다.


신기한 건 결혼하고 우리만의 대화 카테고리가 신설되었다는 점이다. 친구, 가족,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오직 둘만의 세상. 이 카테고리 안에서 우리 둘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대화 메이트다. 둘만 아는 농담에 온 집안이 떠나가라 꺅꺅 웃고, 남들이 봤을 땐 영 시답잖은 일에 세상 진지하게 머리를 맞댄다. 둘만의 세상은 매일 조금씩 영역을 넓혀가는데, 나는 이게 곧 우리 부부의 역사라고 생각한다. 내가 남편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고, 남편 역시 내 언어를 이해하지 못한 수많은 날이 모 여 이 세상을 일궜다.


그런데도 내 마음을 남편에게 다 전하지 못한 날이면 하염없이 헛헛해진다. 우리만의 세상에 편입되지 못한 나만의 세상. 남편에게 공감받고 싶지만 아직은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이는 몇 가지 키워드들. 대화가 길을 잃거나 깊어지지 못할 때면 끝없이 아득해진다. 그럴 땐 이렇게 글을 쓰거나 내 마음은 나만이 100% 이해할 수 있는 것이라고 스스로 위안한다. 그러곤 다시 우리만의 세상에 풍덩 빠져 안락함을 잠시 즐기기로 한다. 남편이 이해 못 할 나만의 세상이 있는 것도 나름 괜찮은 일이라 생각하면서. 맞춰갈 여지를 조금은 남겨두는 일을 낭만이라 여기면서.


백수 남자친구가 체력 고갈에 끼치는 영향

남편과 나는 서른 살에 만났다. 당시 나는 5년 차 기자였고, 남편은 취업준비생이었다. 나는 주6일 근무였고, 남편은 주7일 휴일이었다. 바이오리듬이 맞을 리 만무했다. 그렇게 남편이 취업할 때까지 약 1년을 생체리듬 불협화음 속에서 고군분투했다.


점심 미팅이 끝날 무렵, 잠에서 깬 남편으로부터 메시지가 온다. 슬슬 데이트 약속을 잡아야 한다. 오늘 하루만큼은 쉬고 싶은 마음 반, 남편이 보고 싶은 마음 반이 교차한다. “피곤한데 오늘 쉴까?”라고 하면 남편에게선 보고 싶다고 답이 온다. 그렇지, 맞아, 피곤해도 보고 싶어. 봐야지.


주말에도 쉴 틈이 없다. 주말 당직 끝나고 데이트, 일주일 중 하루 쉬는 날에도 데이트. 발레와 필라테스를 배우러 다니던 평일 저녁엔 남편과 서울 구석구석을 맛집을 돌아다니며 살을 찌우기 바빴다. 온전히 나를 위해 여유롭던 휴일은 그놈의 맛집, 그리고 카페 투어로 채워졌다. 그러고 보면 30대의 데이트란 참 재미없고 빤하다.


내 몸은 점점 망가져 갔다. 함께 있는 게 따뜻했고, 집 앞 헤어짐이 애달팠지만 피곤한 건 피곤한 거였다. 카페와 맛집의 뫼비우스 띠를 1년간 무한 반복하다 보니 한계가 오기 시작했다. 싸우는 날이 늘었다. 홀로 고요하게 머물 수 없는 주말이 서러웠다. 함께 있어도 혼자 있고 싶은 날이 많아졌다. 입병이 날 정도로 피곤해도 얼굴을 보고 데이트해야 하는 게 연애의 의무이자 증표였나.


남편의 백수 생활이 끝나고도 비슷한 일상의 반복이었다. 평일에 보는 횟수가 조금 줄었다는 정도. 비슷비슷한 데이트의 날들이 쌓였고, 커피 쿠폰이 늘어났고, SNS에 음식 사진과 내 사진이 많아졌고, 뱃살도 두둑해졌다. 통장 잔액만 줄었다.


결혼하고 얼마 후 남편이 고백하기를, 내가 피곤하니까 오늘은 보지 말자고 했던 게 일종의 애정도 테스트인 줄 알았단다. ‘그래! 오늘은 각자 쉬자!’라고 답했다간 큰 화를 면치 못할 것 같았다고.


종종 남편은 곧이들어야 할 말은 곧이듣지 않고, 곧이듣지 말아야 할 말은 곧이듣는다.


남편이 내게 결혼을 결심한 이유를 물으면, 난 거의 자동처럼 “데이트가 피곤해서”라고 답한다. 미안하지만 진심이다. 결혼의 좋은 점이 뭐냐고 물으면 “데이트 안 해도 되는 것”이라고 한다. 이것 역시 순도 100% 진심이다. 퇴근 후 각자의 시간을 꾸릴 수 있는 여유. 함께 생활의 리듬을 맞춰가는 기쁨. 집 앞에서 아쉽게 헤어지지 않아도 되는 행복. 식당이 아닌, 집에서 입맞에 맞는 음식을 해 먹고 오순도순 할 수 있는 충만한 기분.


함께 산 지 2년이 다 되어가도 여전히 벅차게 좋은 게 ‘데이트 프리’다. 혼자 책 읽고 싶은 순간엔 방에 들어와 조용히 이어폰을 귀에 꽂는다. ‘말 걸지 마’라는 나만의 신호다. 그 사이 남편은 게임이나 넷플릭스로 자유 시간을 만끽한다. 가끔 남이 해준 밥이 먹고 싶거나 예쁘게 꾸미고 싶은 날에야 데이트에 나선다. 그러곤 각자의 집이 아닌 우리 집으로 함께 손잡고 돌아온다. 매일 겪어도 매일 새롭게 행복한 결혼의 단맛이다.



드레스만 잘 고르면 되는 거 아니었나요

왜 이 남자다 싶었더라

결혼은 타이밍이라고들 한다. 나 역시 결혼은 확실히, 무조건, 분명히, 무슨 일이 있어도 타이밍이라 생각한다. 남편과 내가 결혼 적령기에 만났기 때문에 결혼에 골인할 수 있었던 것. 인정하기 싫지만 받아들여야 할 사실이다. ‘우리는 타이밍 때문이 아니라 언제 만났어도 결혼할 운명이었어’라는 생각은 뭐,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크게 공감하지 않는다. 성인이 된 이후 결혼이라는 제도를 인생에 받아들이기까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 경우엔 10년이 걸렸다. 말하자면 서른이 되어서야 ‘결혼? 해도 괜찮겠네’수준의 마음에 도달했다는 거다.


뭣 모르던 20대 초반에는 20대 중반에 결혼해 30대 초반 학부모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20대 중반이 되고 나니 결혼하자는 사람도 없을뿐더러 결혼하고 싶은 사람도 없었다. 도무지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20대 중반이 되면 당연히(무슨 수로?) 결혼하게 될 줄 알았는데. 나는 당황했다. 20대 후반에는 지금 결정이 평생을 좌우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뭐가 되었든 간에 빨리 결론짓고 다음 챕터로 넘어가고 싶은 조바심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해야 할 게 많았고, 할 수 있는 게 많았다. 이제 뭘 좀 알 것 같은데 결혼이라니? 이제 뭘 좀 알 것 같으니까 합시다, 결혼! 사이에서 하루에도 수십 번씩 생각이 바뀌었다.


서른의 여름이었다. 그즈음 나는 ‘이제는 결혼해도 괜찮겠네’ 단계였다. 모험보다 정착 쪽으로 무게 중심이 기울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내 기대보다 많지 않다고도 생각했다. 이제 다음 장으로 넘어가도 괜찮을 것 같았다. 결혼 가능 단계로 접어드니 사람을 보는 필터링은 더 촘촘해졌다. 한마디로 까다로워졌다. 괜찮다 싶으면 뭔가 꼭 한 가지씩 마음에 걸렸다.


그런데, 남편을 만나며 느꼈다. ‘어라, 왠지 얘랑 결혼할 것 같은데?’ 신기하게도 진짜 그런 마음이었다. 성격, 좋아하는 음식, 취향, 말하는 방식, 살아온 환경, 뭐 하나 맞아떨어지는 게 없는데도 말이다. 남편은 촘촘했던 내 필터링에 툭, 하고 걸려 퍽! 하고 필터링 자체를 박살 내버렸달까. 만날수록 안 맞는 점이 늘었는데도 만날수록 결혼할 거란 확신이 짙어졌다. 대체 왜 이 남자다 싶었을까.


남편 앞에서라면 있는 그대로의 나를 기꺼이 보여줄 수 있었다. 누군가를 세밀한 기준으로 판단하고 재고 따지는 나와 달리 남편은 그런 필터링 따위는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늘 내가 나라서 좋다고 말해줬다. 그렇게 말해주는 남편이 오랜 벗처럼 편안했다.


결혼을 향한 마음의 문이 열려 있을 때 곁에 있는 사람과 결혼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 문이 열리는 시기가 서로 비슷하면 결혼할 확률도 높을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언젠가’, ‘언제쯤’이라는 불안정한 변인이 관계를 이리저리 비틀 수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저런 상황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좋은 사람을 알아보는 눈은 경험치, 시간과 함께 성장한다. 지나간 좋은 인연들을 떠올리며(혹은 나쁜 관계들을 떠올리며) 후회할(혹은 자책할) 필요가 전혀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그땐 우리 안목이 별로였거든. 별수 있나. 잊어버리자. 받아들일 수밖에.


남편을 20대 때 만났으면 어땠을까. 친구 같은 남편이 아닌, 문자 그대로 친구가 되었을 거다. 20대는 나나 남편이나 결혼해볼 마음부터가 생기지 않았을 시기였고 둘째로, 남편은 몰라도 20대의 난 그야말로 편견 덩어리였을 때니까. 이토록 나와 다른 사람과 평생을 함께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랑 성격이 비슷하거나(예민한), 좋아하는 음악이 비슷하거나(기분파), 입맛이 비슷해야(까다로운) 좋은 남자인 줄 알았다. 20대 때에는 좋은 사람을 알아보는 눈이 지독히도 없었다.


남편을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만났다. 조금만 더 일찍 만났다면 나는 남편을 놓쳤겠지. 알아보지 못했겠지. 내 편견 거름망을 부숴버린 남자는 지금 내 옆에서 열심히 게임하고 있는 저 양반이 처음이다. 아니 그래서, 이 남자랑 언제 결정적으로 결혼해야겠다고 마음먹었냐고요? 책장을 덮어 이 책의 제목을 다시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나도 내 신혼이 이럴 줄은 몰랐어

동거를 했더라면

종종 생각한다. 우리가 결혼이 아닌 동거를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고. 그랬다면 어땠을까. 아내, 남편이라는 무게 없이 산뜻하게 지낼 수 있었을까. 피곤한 데이트는 데이트대로 안 하고, 일상은 일상대로 공유하면서도 부부라는 부담스러운 타이틀이 없으니 더 가뿐한 마음으로 행복했을까. 언제나 생각의 끝엔 ‘결국 헤어졌을 것’으로 마침표를 찍는다. 나는 아마 중도 포기했을 거다. 이토록 다른 남편과 나 사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아니 극복할 시도조차 해보지 않고 백기를 들었을 거다. ‘우린 역시 안 맞는 것 같아.’ 서둘러 짐을 챙겨 떠났을 거다. 나는 아무래도 결혼 체질은 아닌 것 같다며 비혼주의자의 길을 걸었을 것을 확신한다.


결혼생활엔 수습 기간이 없다. 회사와 직원이 서로를 평가하며(물론 대체로 선택의 권한은 회사에 있지만) 이곳이, 이 사람이 나와 맞는지를 확인할 수습 기간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다. 당장 결혼식을 치를 상황이 안 돼 택한 동거가 아닌, 일단 살아보고 결혼하려고 택한 수습 기간 격 선택이라면 나는 반대하고 싶다. 그러곤 묻고 싶다.


‘불지옥을 맛보더라도 현관문을 뛰쳐나가지 않을 자신 있으세요?’


우리는 결혼식 치르기 열 달 전 혼인신고부터 했다. 그렇게 반년 넘게 동거 아닌 동거처럼 지냈다. 가까운 사람들이야 내가 곧 결혼할 것을 알고 있었지만, 대부분은 몰랐다. 그 열 달 동안 지겹도록 싸웠다. 좋았던 시기도 있었지만, 대체로 싸웠던 기억뿐이다. 그때마다 나를 괴롭혔던 것은 ‘아, 혼인신고를 안 했다면’, ‘아, 전세 대출을 안 받았다면’ 하는 이기적인 가정법이었다.


연애할 때 서로 안 맞았던 지점들이 같이 살고 나니 잠들기 직전까지 나를 따라다녔고, 3년 넘게 보이지 않던 서로의 단점들이 하루에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자취생활 경험이 있어 살림 손끝이 야무질 줄 알았던 남편은 알고 보니 허당이었고, 뭐든 딱 떨어져야 직성이 풀리는 내 성격은 남편에게 자주 벅찼을 것이다. 돈을 쓰고 버는 일에서도 서로 자존심 상할 일 없이 손발을 맞추기가 여간 쉽지 않았다. 만약 우리의 동거가 전세 대출이나 혼인신고로 묶인 동거가 아니었다면 우린 헤어졌을 거다. 굳이 이 감정의 불지옥을 겪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결론을 내리지 못한 다툼 앞에 사랑은 하무하게 마모되었을 거다.


내내 생각했다. 대체 동거와 결혼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무사히 결혼식을 치르고 다툼이 잦아들던 어느 날, 문득 섬광처럼! 깨달음이 찾아왔다. 아아. 결혼식이 ‘이 사람이랑 지지고 볶고 싸워도 헤어지지 않고 잘 살아볼게요’ 하고 사람들을 불러모아 돈까지 받아가며 선언하는 일종의 공증쇼라는 것을. 혼인신고는 ‘이 사람이 죽도록 미워져도 기분 탓에 덜컥 이혼하지 않고 일단 한번 살아볼게요’라고 나라님께 약속하는 행위라는 것을. 신혼부부 전세 대출은 ‘이 사람이랑 각방 써도 이자만큼은 늦지 않게 꼬박꼬박 잘 입금하겠습니다’라고 은행님께 맹세하는 일이라는 것을.


동거가 아닌 결혼이어서 우리는 지옥 끝까지 갔다가 무사 귀환할 수 있었다. 일평생 함께 살겠다고 각오한 만큼, 맞춰야 할 부분은 밤을 새워서라도 토론하고, 때로는 치열하게 싸우며 합의를 봤다. 합의점을 찾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우리만의 대안은 마련할 수 있었다. 평생 봐야 할 사람이기에 대충대충은 없었다.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은근슬쩍 넘기는 게으름 없이, 다툼의 정상까지 오른 뒤 손을 맞잡고 뿌듯하게 하산했다.


그 과정에서 서로를 할퀴기도 했고, 무너지듯 외로운 날도 많았다. 하지만 끝까지 노력했던 경험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우리의 다름이 포용 가능한 것인지 아닌지 확인해볼 시도조차 하지 않고, 관계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채 느껴보지도 못하고 서로를 포기했을 것이다.


결혼은 불지옥 앞에서도 뒤돌아서지 않고 기꺼이 함께 뛰어드는 일이다. 소울메이트라는 말은 환상에 불과하다. 무색무취의 진공 상태에 놓인 관계가 아니고서야 애초에 다툼 없이 잘 맞는 부부가 존재하긴 하는 걸까? 제아무리 다툼 없는 부부라 할지라도 응어리진 감정 하나쯤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나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신혼의 고단함 가지고도 이렇게 책 한 권을 쓸 만큼 생판 남이었떤 두 사람이 한집에서 살을 부대끼며 산다는 것은 간단치가 않다는 거다.


SNS에 행복한 글만 올라온다고 속상해 말았으면 한다. 다들 알게 모르게 싸우면서 사니까. 안 싸운다면 언젠가 곪아 터질 것이다. 다만, 곪아 터졌다고 섣불리 포기하진 말자. 곪아 터지고 터져 더 터질 것이 없이 바닥까지 내보인 사이만큼 애틋한 건 없으니까. 수습 기간 없이 바로 정직원부터 시작하는 결혼 생활. 언제 헤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 없는 고용 안정성만큼은 결혼으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장점이다(아이러니하게도 어쩔 땐 단점일 수도 있겠지만). 아직 불지옥의 한 가운데를 건너고 있는 신혼인이라면 조금만 더 버텨보길. 정신 차려보면 신혼 레벨 1 테스트를 무사히 통과하고 식후 커피를 후후 불어 마시며 한숨 돌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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