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 평범

   
최현정
ǻ
21세기북스
   
16000
2021�� 11��



 

유일한, 평범
(최현정 지음/21세기북스/2021년 11월/256쪽/16,000원)

■ 책 소개

특별함을 꿈꿔왔지만 늘 평범함에 머물고 마는 우리들의 이야기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 최현정이 자신의 첫 에세이집 『유일한, 평범』을 발간했다. 가장 반짝인다고 생각했던 20-30대 시절을 지나, 생의 2막을 준비하며 느낀 단상을 느리지만, 꾸준히 일기처럼 담았다. 

예기치 못했던 여러 변화 속에서 하루를 조금은 더 잘 완성하고자 애쓴 날들의 기록, 여느 워킹맘처럼 하루하루 고군분투하며 살았던 저자의 일상은 인생의 새로운 장을 맞이하게 될 여자들에게 보내는 작은 응원과도 같다.

■ 저자 최현정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 연세대학교에서 영어영문학 및 국문학을 전공했다. 2005년부터 10년여간 MBC 아나운서로 활동하며 뉴스 및 시사교양, 라디오와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많은 시청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2015년 프리랜서 선언 후 각종 시사회 및 라디오 진행을 맡아왔다. 결혼 이후 오랜 기간 난임으로 고생한 끝에 2017년 쌍둥이를 출산했다. 엄마가 되면서 달라진 일상과 육아의 고충을 유튜브 채널 ‘최현정의 맘맘티비’를 통해 공유하며 구독자들과 소통을 이어나가고 있다. 제2의 커리어로 ‘상담가’수련을 밟고 있는 그는 “더디더라도 삶을 배우는 마음을 잊지 않고 싶다”라는 바람을 전한다.

■ 차례
프롤로그 … 8

Part 1. 세상에 다시 끼어들 수 있을까
삶이 달라졌다 … 15
프리랜서 … 20
1막이 끝나고 난 뒤 … 26
늦게 꽃피는 사람 … 37
제주도 해변에서 … 43
새로운 줄넘기 … 47
그러니까 내 유튜브 … 51
인스타그램 … 58
힘듦 경쟁 … 61

Part 2. 생소해서 두렵지만, 간지럽게 좋았던
계획 … 69
해피엔드 … 86
무조건적 사랑 … 90
억울해 … 95
지나간 뒤 아름답게 채색되는 … 106
사랑한다 말하기 좋은 때 … 111
순간들 … 113
이만큼의 사랑 … 116
일상 … 120
여가를 찾아 … 126
나를 닮은 아이 … 133
자동적 사고 … 140
저녁 약속 … 144
너는 너고 나는 나니까 … 148
엄마를 따라 … 151
이렇게 하면 어때까? … 155
비교 … 157
존재의 힘 … 159

Part 3. 나를 배우며, 사람을 배우며
그래, 다른 거 하자 … 165
확신에 대하여 … 169
엄마, 그리고 나 … 175
감정은 옳다 … 184
갑상선기능저하증 … 193
선한 영향력 … 195
울 권리 … 200
나를 배운다 … 206
과거와 화해하기 … 216
정답은, 그냥 사랑 … 224
나만 안 웃어 … 229
꽃 선물 … 232
남편과 나 … 238
이 남자 … 241
우울의 방 … 243
아빠는 왜 … 245
가족, 그 안의 나 … 246

에필로그 … 253

 




유일한, 평범


세상에 다시 끼어들 수 있을까

늦게 꽃피는 사람

비교는 사람을 피폐하게 만든다. 알고 있다. 바람직한 비교란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비교하는 것이지, 타인과의 비교는 아무 의미도 쓸모도 없음을.


하지만 어쩌랴. 나는 이미 비교의 세상에서 40년 넘게 살았고, ‘잘나가는 그와 나를 굳이 비교하지 말자.’ 의식으로 억제하기 전에 이미 머릿속에서 번쩍, 비교 작업은 끝나 있다. 어찌나 재빠른지 무릎을 치면 철컥 발이 따라 올라오는 자동반사 같다. 순식간에 비교되고, 우열이 가려진다. 나는 언제나 열 쪽이다. 그래서 오늘도 이 우울감을 어쩌지 못하고 앉아 있다.


어느 강의에서 들은 말이 인상적으로 남아 있다. 우리나라에서 이토록 비교를 많이 하는 이유에 대한 분석이었는데, 설득력이 있었다. 비교란 고만고만한 사람들끼리 한다. 예컨대 내 얼굴을 굳이 전지현, 송혜교와 견주지 않는 것. 어차피 비교가 안 되니까. 비교는 비슷비슷한 조건을 지닌 사람들끼리 하기 마련인데, 한국의 삶이란 너무도 집단적, 획일적이어서 비교할 거리가 넘쳐난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절로 비교가 된다. 같은 나이 친구들끼리, 아이의 같은 반 친구 엄마들끼리, 또 같은 방 아나운서들끼리.


아나운서 시절 나의 위치는 늘 어중간했던 것 같다. 흔히 ‘간판’ 아나운서라 불리는 가장 유명한 몇몇에 들지도 못했지만, 그렇다고 인지도를 쌓을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며, ‘굵직한’ 방송을 맡지 못해 아쉬워하는 쪽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몇 번인가는 검색어에 오르내릴만한 방송을 맡기도 했고, 그걸 기반으로 쭉쭉 위로(?) 올라갈 야심을 불태우기도 했어야 하는 건데, 나에게 그럴 배포는 없었던 것 같다. 그저 더 빛나는 이들을 부러워하고 시샘도 하면서 막연히, 나의 최고의 순간도 언젠가 오겠지, 했다.


회사를 그만두면서 자연스럽게 비교의 세상에서 벗어나는 듯 느꼈지만, 잠깐의 착시였다. 세상은 여전히 비교 더하기 비교로 어지러이 돌아가고 있었다. 슬쩍 들여다본 에스엔에스에는 다른 이의 반짝이는 삶이 찬란하게 전시되고 있고, 나는 그 빛에 눈이 부셔 차라리 눈을 감는다.


객관적으로 나의 위치를 바라보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 노력하고 있다. 현재의 나는 손에 쥔 게 없다. 상담사 자격증을 위한 수련을 하고는 있지만, 이게 3년이 걸릴지 4년, 5년이 걸릴지 앞이 안 보이고, 방송 경력은 안 그래도 희미해져 버렸건만 아이 둘 낳고 정신 차려 보니 공백기 3년이 추가되어, 어디 가서 날 알아보는 이가 있으면 밥이라도 사드리고 싶은 지경이다. 너무 반갑고 고마워서 코끝이 시큰하다. 이따금 자존감이 끝을 모르고 내려가 다시 솟아오를 기미가 없을 땐 의식적으로, 내가 남들과 비교해 우위를 점하는 것들을 적어본다.


남들은 두 번에 걸쳐 배 아파야 하는 출산을 나는 한 번에 해치웠다! 첫째 키우고 돌아서니 둘째가 태어나 모든 일이 도돌이표가 되더라는 육아의 고통에서, 나는 조기 졸업할 것이다.


남들이 승승장구하는 동안, 나는 이토록 쓸쓸한 마음 덕에 타닥타닥 발산할 푸념, 하소연, 넋두리 거리가 무한히 생겼다.(이 모두가 글감이다.)


누구는 유튜브를 운영하며 수익 창출도 한다는데, 나는 여전히 유튜브에 지출 중이다. 자고로 돈은 버는 것보다 쓰는 맛이지! 암!


목록을 호기롭게 적어가다 이 억지스러움에 서글픈 자조의 웃음이 새어 나오고, 이런 깨달음은 나의 자존감을 더 갉아먹는다. 안 되겠다. 전략을 바꾼다.


나는 실은, 고백하자면, 지금 참고 있는 거다, 너무 일찍 피어나지 않기 위해. 왜냐하면 나는 레이트 블루머(late bloomer)니까. ‘대기만성’이라는 말보다 이 표현이 더 맘에 든다. 대기만성이라고 하면, 오래 걸려도 결국 ‘크게’ 이루어야 하니 부담스럽다면 레이트 블루머는 내 속도대로, 남들보다 늦게, 하지만 나의 꽃 크기 안에서 가장 활짝 피면 되는 거니 맘에 든다. 골골하면서도 오래 살 체질이니, 이왕이면 남들보다 조금 늦게 꽃봉오리를 터뜨려, 뒷맛을 오래 남길 것이다.


이렇게 나의 선택인 양 서술하다 보면 기분이 정말 나아진다. 그리고, 그렇게 믿게 된다. ‘어이, 레이트 블루머, 지금 피면 이르다니까!’


새로운 줄넘기

나 없어도 세상은 잘 돌아간다. 아는데도, 문득, 억울할 때가 있다. 인스타그램을 괜히 봤다, 오늘도. 알고 있다. 나 하나쯤 없어도 이 세상엔 아무런 변화가 없을 거라는 사실. 그래도 때로는, 나 없는 세상에 조금은 빈틈이 생기기를, 조금은 허전하기를 바라는 이 마음도, 누군가는 좀 알아주기를 바라는 나.


아이들이 세 돌을 맞았다. 3년 동안 세상을 등지고 살았다. 나의 삶을 어떤 식으로든 구분 짓는다면, 이 기간은 ‘육아 편’으로 삼겠다, 다짐했었다. 그 다짐은 나의 의지만큼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지는 못했다. 내 다짐이 나를 갉아먹는 듯 느껴지는 때가 많았다. 그런 결단을 그리 섣불리 내리는 게 아니었어, 내가 얼마나 나밖에 모르는 사람인데! 엄마가 되는 순간 정말, 엄마다움이 장착되는 것인 줄 착각했구나, 싶었다.


나의 결심을 후회하면서도 그 결심에 매여 이도 저도 제대로 살지 못했다.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에는 머릿속에 다른 하고 싶은 일들의 목록이 주르륵 업데이트 되고 있었고, 아이들을 떼어놓고 나와 있을 때에는 아이들이 걱정되어 일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했다. 한심하고도 어리석은 3년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 몰두해야지 하면서도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나는 엉거주춤한 존재였다. 온전한 엄마도 되지 못했고, 사회에 속해 사회 구성원으로 하고 싶었던 일도 원하는 만큼 이루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시간은 어쨌든 가버렸다.


내 속도는 세상의 속도에 비해 너무도 느려져 버렸다. 이제는 다시 세상에 나가보고 싶은데, 도통 방법을 모르겠다. 세상의 줄넘기 속에, 다들 발맞추어 점프를 하고 있는 저 틈으로, 나도 박자를 타고 슬쩍 끼어들어 가고 싶은데, 줄에 걸리지 않고 그 템포에 끼어들 자신이 없다. 다가가야 하는데, 그래야 풀쩍 어느 틈엔가 끼어들 순간을 포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은 하는데 몸은 자꾸만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고 있다.


아무래도 새 줄넘기를 시작해야겠다. 저 무리 속에는 들어갈 재간이 없는 듯하고, 외롭지만 쓸쓸하지만, 새 줄을 장만하고, 나 혼자라도 줄넘기를 해봐야 하는 거다. 그러다 누군가 폴짝하고 내 줄넘기에 들어온다면 반겨줘야지. ‘아이 낳은 경력 단절녀’라는 꼬리표가 무서운, 나와 같은 사람들이 내 줄넘기에 찾아와준다면 좋겠다. 우리끼리, 우리만의 속도로 한번 뛰어보자, 싶다. 줄넘기할 줄은 사실 많을 테니, 남들이 뛰는 저 줄이 아니어도 된다고, 우리끼리 줄넘기하자고, 나도 한번 사람을 모아보고 싶다. 저랑 같이 새 줄넘기하실 분, 손들어주세요!



생소해서 두렵지만, 간지럽게 좋았던

자동적 사고

아이를 바라보다 기분이 좋아져 나도 모르게 웃음 짓는 순간이 있는데, 자주는 아니고 간혹 있는데, 그때를 잘 기억해야 한다. 워낙 찰나로 지나가서 금세 잊히고, 나중에 ‘뭐더라, 뭐더라? 휙 지나간 벅찬 기쁨이 무언가 여하튼 있었는데!’ 하고 막연한 느낌만 남아 안타까움에 이마를 두드리고, 가슴을 쳐봐도 떠올리지 못하는 때가 많으니까.


원래 그런 것인지 모른다. 부정적 감정은 여운이 길어서 잊지 말아야지 다짐할 것도 없이 절로 진한 잔재가 남지만, 좋은 느낌은 휘발성이 강해서 붙잡아두려 해도 금세 사라지는 법인지도. 그래서 다시 떠올리려 해도 잘 안 되니까 이렇게 기록해 두어야 한다. 그중 하나는 이런 때이다. 내가 갖고 싶었으나 끝내 갖지 못한 것을 아이가 갖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는 때.


산책길에 강아지를 만났다. 동네에서 몇 번인가 마주친 적이 있는 강아지였다. 강아지도 우리가 낯설지 않은지 목줄이 허용하는 한껏 준이 곁까지 와서는 냄새를 맡는 듯 큼큼거리고 지나갔다. 준이 말한다. “멍멍이가 세준이 예쁘다고 뽀뽀하고 가네.” 그 말이 너무나 듣기 좋아서 함박웃음을 짓고야 말았다. 준이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어떤 상황에 직면했을 때 그 상황을 이해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고, 그렇게 인식된 주관적 경험이 객관적 사실에 우선해 삶에 영향을 미친다. 그 개인적 사고 흐름을 심리학 용어로는 ‘자동적 사고’라고 부르는데, 준의 자동적 사고가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센을 빤히 바라보게 될 때가 있다. 가늘고 빨간, 갓 태어난 작은 새처럼 내 눈앞에 놓였던 첫 만남을 떠올리면, 지금의 센이 그때와 같은 존재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때가 있다. 언제 이렇게 뼈가 굵어졌는지, 이 작은 입에 언제 이런 언어가 담기게 되었는지 마냥 신기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노는데 몰두한 센을 굳이 불러서는 “센, 엄마 좀 봐봐!” 하면서 눈맞춤을 하고 싶어진다. 그렇게 눈을 맞추고 나면 이런 말이 절로 흘러나온다. “아휴, 너무 예뻐!”


몇 번이나 그랬을까? 센이 내 눈길을 느낄 때면 놀다 말고 휙 돌아보며 말한다. “나, 너무 예뻐?” 자만도 자아도취도 아닌 진짜 순도 높은 천진함. 엄마가 센을 바라보면 센의 자동적 사고는, ‘내가 예뻐서 보는구나’로 흘러가는 거다. 그게 너무 좋다. 뿌듯하다.


누군가의 시선을 느끼면 나는 움츠러든다. 내 행동이 거슬리나? 내 옷차림이 너무 눈에 띄나? 남들의 관심을, 눈길을 끌어야 하는 직업을 가졌던 게 우스울 만큼 남들의 시선에 대한 자동적 사고가 부정적이었다. 남들의 시선을 갈망하면서도 막상 시선이 몰리면 부담스러워하고 숨고 싶어 하는 양가적 감정.


이런 내게, 나의 자동적 사고를 돌아보게 하는 아이들의 자동적 사고가 부럽고도 사랑스럽다. 자동적 사고라는 게 정말 자동적인 거여서, 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야지, 하는 의식의 개입 전에 이미 생각의 흐름이 끝, 하고 마침표가 찍히게 되는 터라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사람은 다시 태어날 수 없다 했지만, 나의 아이들은 마치 내가 다시 태어난 듯, 예쁘게 수정된 자동적 사고를 지닌 것 같아서 참 좋다. 날 대신해, 이런 멋진 자동적 사고를 지니고 있음에, 가슴이 벅차오른다.


센과 준은 맑은 눈으로 믿고 있다. 이 세상은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자신은 의심할 여지없이 응당 사랑받을 존재라고. 이 근거 없는 자신감은 언젠가 세상에 나아가 깨어지겠지만, 품에 안고 있는 이 시절만이라도 지켜주고 싶다.


존재의 힘

그냥 엄마랑 있으면 좋았다. 엄마가 나랑 놀지 않아도,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만으로 충분했다. 비로소 마음 편히 내 일에 몰두할 수 있었다. 집이란, 엄마가 들어와야 비로소 나에게, ‘집’이었다.


바쁜 엄마는 집에 와서도 나와 시간을 보낼 여유가 없었지만, 늘 엄마의 퇴근을 기다렸다. 엄마가 집에 있으면 안심이 되었다. 따뜻하고 편안했다. 내 하루에 마침표가 찍힐 수 있었다.


내가 누군가에게 있어 그런 의미를 가진다는 것은 가슴 벅찬 일이다. 일을 마치고 아이들에게 달려가며 느끼는 갈급한 초조가 좋다. 띠 띠 띠 띠, 현관문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에, 저 안에서부터 다다다 달려오는 아이들의 발소리가 들린다. 고조되는 흥분. 전속력으로 달려와 신발도 채 벗지 않은 나에게 앞다투어 안겨드는 아이들. 이 순간을 위해 나는 일하러 나간다. 엄마라는 존재의 힘을 만끽하기 위해, 밖으로 나간다.


부재는 존재의 힘을 기르기 위해 존재한다. 부재를 알고 비로소 존재의 감사를 아는 법이니까. 언제까지일지 모르지만, 성대한 환영의 퇴근길을 위해, 앞으로도 열심히 일을 찾아 출근길에 오르고 싶다.



나를 배우며, 사람을 배우며

그래, 다른 거 하자<
/P>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아나운서 말고 다른 일. 아나운서 말고 다른 일. 아나운서의 일이란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드러나는 외모나 이미지로 평가되고, 나이를 먹으면 자연스럽게 탱탱한 젊은이에게 자리를 내주고 물러나는 게 순리로 여겨진다. 특히 여자 아나운서의 실질 수명은 길지 않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 많았기에 막연히 마흔 이후에는 다른 일을 찾는 게 어떨까, 생각은 했었다.


그럼 어떤 일? 방송만큼 짜릿하게 재미있고, 버젓하게 생색도 나고, 사람들의 찬사를 받는 일이 또 있을 수 있나? (나는 이런 것을 추구하지는 않았다고 말하고 싶지만, 자연스럽게 길들여져 있었던 건 부정하지 못하겠다.)


굳이 포장하자면 나는 ‘대중에게 끼치는 선한 영향력’이란 것을 즐겼다. 특히 라디오 방송을 좋아했는데,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자체가 벅찬 기쁨을 주기도 하지만, 실시간으로 나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피드백을 받는 게 진짜 재미있다. 나가 뭐라고, “힘내요.” 한마디에 감동받고, “생일 축하해요.”라는 말을 굳이 내 목소리로 듣겠다고 구구절절 사연도 써주며 애정을 주니 정말 내가 대단한 이라도 된 듯 취하게 된다. 사랑받는 기분이란 아무리 넘쳐도 마다하고 싶지 않은 거니까. 이런 달콤함을 대체할 무엇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을까?


다디달았지만 이젠 내 것이 아님을 직시하고 다른 데로 눈을 돌려야 한다. 내 인생의 ‘영광의 시대’는 막을 내렸고, 이제 새로운 걸 찾아야 한다. 그래도 영 막막하기만 한 건 아니었다. 아직 확신할 수는 없지만, 조금은 결이 비슷한 무언가를 염두에 두고 있기는 했다. 심리 상담.


내가 나의 일을 사랑했던 이유가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어서였다고 한다면 심리 상담은 조금 더 밀착된 형태로 행하는 비슷한 역할일 수 있겠지.


실은 오래전부터 심리 상담을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다. 회사 생활이 생각처럼 풀리지 않아 힘들 때, 마음이 복잡하고 울적할 때면 대중 심리서를 찾아 읽으며 답을 찾으려 애썼는데 그러다 보니 점점 흥미가 자라났다. 휴직을 하고 대학원에 진학해 심리학을 공부해보는 건 어떨까, 상상하며 괜히 캠퍼스를 찾아 기웃거린 날도 있었다. 그러다 얼떨결에 회사를 관두고 나니 이제 남은 선택은 이거구나, 싶어진 것이다.


내가 갈 수 있는 대학원이 있을지 알아보니 상상이 깊어진다. ‘상담사 최현정’이라고 나를 소개할 때 기분은 어떨까? 아, 내 상담소를 차려야지. 이름은 뭐라고 지을까? 열린 마음 상담소, 포근 상담소, 안아드림 상담소. (나중에 알아보니 내가 상상한 이름 대부분은 이미 있었지만.) 그래, 진짜 자신 있는 사람은 그냥 이름으로 말하지. 내 상담소는 ‘최현정 상담소’ 하자!


일을 벌이려면 일단, 김칫국부터 마시는 게 옳다. 상상만으로 심장이 뛰었고, 나는 이게 확신의 신호라고 느꼈다. 나의 두 번째 커리어는 상담사다!


대학원을 갔고, 공부를 즐겁게 했으며, 우수논문상도 받아봤다. 거기까지는 딱 좋았는데, 그러고 난 뒤가 진짜 힘들다는 걸 느끼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자격증까지의 길이 이토록 지난할 수 있다는 것을 역시 난 계산하지 못했다. 한국상담심리학회 1급 상담심리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는 400회가 넘는 상담과 50회의 슈퍼비전, 60시간의 집단 상담 등 무수한 수련을 3년 넘게 쌓아야 한다.


나의 상담 수련은 달팽이 걸음이다. 달팽이는 그래도 전진만 하던데, 나는 앞으로 나아가는 듯하다가도 아주 오래 정체하다, 또 어느 때인가는 뒤로도 미끄러졌다 하며, 그저 버티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다. 그러다 힘이 빠질 때면 가만히 입속으로 중얼거려본다. “안녕하세요. 상담심리사 최현정입니다.”라고. 없는 시간을 쪼개어 수련을 어떻게든 마치고, 시험을 통과해 자격증을 따고 나면, 힘들었던 만큼이나 나 자신이 자랑스러울 거야, 하고 나에게 이야기해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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