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쯤은 나를 위해

   
김동진
ǻ
21세기북스
   
17000
2021�� 07��



 

■ 책 소개

거품을 걷어내고 알맹이만 남겨가는 뺄셈의 기록,
느슨하고 유순하게 살아간다

글과 사진을 배우기 위해 수없이 쓰고, 수없이 찍었다. 무슨 글을 써도 회사 보고서처럼 딱딱한 글이 되어 버려 좌절하기도 했지만, 멈추지 않고 꾸준히 써내려 갔다. 그에게 사진과 글을 가르쳐준 고수들은 하나같이 “힘을 빼라”고 조언했다. 그 말을 마음에 담고 하나하나 걸러내다 보니 본인도 몰랐던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김동진 저자는 이 책이 바로 그 ‘뺄셈의 기록’이라며, 노년의 여생이란 갈 사람은 가고, 거품을 걷어내고, 알맹이만 남는 것이라 말한다. 남겨진 알맹이의 단단한 사랑으로 오늘을 살아가고 이 책을 적어냈다.

■ 저자 김동진
1946년 광주에서 태어나 자랐다. 대학을 졸업한 후 포항제철에 입사, 주로 중화권 해외시장을 개척하며 포스코차이나 사장으로 40년 직장생활을 마쳤다. 회사를 위해, 책임져야 할 가족을 위해, 그야말로 ‘누군가’를 위해 살아왔던 어제를 뒤로하고 조금씩은 나를 위한 오늘을 살아보는 중이다.

■ 차례
프롤로그 작은 뺄셈의 기록

1부 어느 솔찬한 하루
꽃보다 엄마
매화 문답
순천만 칠면초
오매 소나무를 닮았네
어느 솔찬한 아홉 번의 하루
천천히 걷는다
짜보영한, 참 잘했어요
까불며 살자
‘좋아요’ 해주면 더 좋다
머리털이 없으면
니싱푸마?

2부 별 보러 가자
만추여행
잃어버림에 대하여
유럽까지 직업병
할아버지는 포토그래퍼란다
울릉도에 가려거든
별 보러 가자
비로소 겨울과 화해하기
억경과 차경
바람이 없다
굳세어라 친구야

3부 늦게 배운 도둑질
재즈가 왔다
나의 건축 답사기
행복 가득한 집
살아 있는 침묵
산양이 나를 본다
늦게 배운 도둑질
흑백의 무한세계
회색 찬가
다가가는 설렘
비공식 출판기념회

에필로그 한 10년쯤 뒤에

 




한 번쯤은 나를 위해


어느 솔찬한 하루

매화 문답

매화는 벚꽃이랑 같은 봄꽃이지만 느낌이 사뭇 다르다. 벚꽃이 쉽게 바람에 흩날려 좀 가벼운 느낌이라면 매화는 비교적 묵직하달까. 벚꽃처럼 흐드러지지 않고 드문드문 한 것이 오히려 매력이고, 아담한 것이 눈물겹다.


봄의 절정을 뽐내는 벚꽃과 달리 매화는 봄의 시작을 알린다. 꽃에 좋고 싫음이 어디 있겠냐만 굳이 하나를 선택하라면 나는 매화 쪽으로 더 마음이 기운다. 아차, 이런 말을 벚꽃이 들으면 기분이 나쁘겠구나.


남녘 매화가 조용히 한창일 때, 섬진강에 사는 친구에게서 전화가 온다. 한번 다녀가라고. 올겨울 어찌 보냈는지 궁금하고, 일 년 사이 얼마나 늙었는지 궁금하다고. 말은 그렇게 하지만 선암 매화, 화엄 매화, 광양 매화, 차례로 보여주고 싶어 안달인 줄 익히 안다. 벌써 4년째. 가벼운 가방에 소형카메라 하나, 책 한 권만 달랑 챙겨 친구 보러 떠난다. 그 소식 듣고 근처에 사는 친구들이 모두 모인다.


우리의 모임은 늘 시장통 ‘할매집’에서 절정을 이룬다. 남해 바다 봄기운에 혼절해 낚인 생선을 가운데 놓고, 섬진강 바닥에서 건져 올린 재첩, 백운산 기슭에서 캤다는 봄나물이 식탁을 가득 채운다. 막걸리 술잔이 바쁘게 왕래한다. 지난해 선약이 있다고 빠진 친구는 올해도 선약이 있단다. 내년에도 있을 예정이겠지.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은은한 매화 향기 닮은 친구들끼리 모여 앉아 우리만의 하여가(何如歌)를 읊던 중, 갑자기 누군가 ‘선약 있는 친구’ 뒷담화를 불쑥 꺼낸다.


“반짝이고 뺀질거리는 놈 끼면 고고한 매화향 깨진다 아닌가!”


웃음소리가 매화 꽃잎 따라 강물 위를 시원하게 흐른다. 겨울을 막 이겨낸 섬진강 푸른 물이 봄 햇살에 놀아나고, 흰 눈썹처럼 가지에 송알송알 매달린 작은 매화가 모여 눈 덮인 동산을 이룬다. 금천계곡, 어치계곡, 성불계곡, 동곡계곡 품은 백운산은 좋은 풍수의 기운을 선뜻 내주고, 빤질거리지도 바쁜 척하지도 않는, 이름도 얼굴도 다 촌스런 그런 친구들이 한자리에 다정스럽다.


막걸리 한 사발 들어가니 하늘하늘 흔들리는 시선으로 눈앞이 잠깐 어지럽다. 매화나무 줄기 틈새로 쏟아지는 햇살을 만진다. 내년에도 이 친구들을 다시 볼 수 있을까?


매화는 매년 똑같은 꽃을 피워내는 것 같지만 올 때마다 달라 보인다. 내년 봄에 더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고민하는 나무 같다. 아니,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주어진 생명이니 그저 완성한다”는 선암사 매화의 자세가 매년 아름다운 꽃을 만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칭찬해주지 않는다고 삐치지 않고, 무시한다고 화내지 않고, 다른 사람의 무관심에 그냥 살짝 서운해하면서, 남의 눈치 보지 않고, 다른 이의 시선에도 특별히 신경 쓰지 않고, 올해는 더욱 그렇게 살리라.


천천히 걷는다

예로부터 훌륭한 과학자나 철학자, 예술가들은 산책을 하다가 영감을 얻거나 원리를 찾아낸 경우가 많았다고들 한다. 과연 왜 그랬을까? 산책하다 오랜 숙제를 풀고, 또 오랜 숙제를 풀기 위해 산책을 했다는데, 산책이 어떻게 그런 성과를 낳았을까?


산책은 천천히 걷는 일, 발바닥 전체로 땅을 지그시 눌러준다는 기분으로 걷는 것이 산책이다. 그렇게 발바닥이 땅에 완전히 밀착되었을 때, 머릿속에 고집스럽게 뭉쳐있던 고민과 상념, 쓸모없는 정보들이 발바닥을 통해 빠져나가는 것은 아닐까? 그리하여 머리가 텅 비고, 머리를 짓누르고 있던 것들은 싹 빠져나가고, 눈, 코, 입, 가슴, 폐, 피부, 온몸의 기관들이 기를 펴고 살아나면서 외부세계와 교감하기 때문에 산책을 통해 새로운 무엇을 얻는 것 아닐까? 물론 의학적 근거는 전혀 없는, 엉뚱한 해석이다. 믿거나 말거나.


오늘의 산책 코스는 집 근처 양재천. 사람 구경, 강아지 구경, 꽃 구경, 물 위를 한가롭게 헤엄치는 청둥오리와 왜가리 구경...... 구경할 것이 많은데 그중 으뜸은 역시 사람 구경이다. 도심을 산책할 때는 혹여 어디에 부딪힐세라, 횡단보도라도 무심코 지나칠세라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양재천은 다르다. 천천히 느긋하고 차분하게 걸을 수 있고, 그만큼 한적한 마음으로 대상을 볼 수 있다. 걸으면서 여유롭게 사람을 바라볼 수 있는 산책은 그리 흔치 않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런 산책을 할 때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조용히 지켜볼 뿐, 그들에게 절대 상관하지 않는다. ‘옷을 왜 그렇게 입었소? 그렇게 이어폰을 끼고 걷는 일은 위험하다오. 강아지 목욕은 시켜주셨소? 댁에 무슨 일이 있기에 표정이 그리 심각하시오?’ 일체 묻지 않는다. 참견하지 않는다.


사람을 바라보는 ‘훈련’을 하는 것으로 이 산책을 훌륭하다. 굳이 상상하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훈련이랄까. 그러다 나 역시 홀로 히죽히죽 웃곤 한다. 그러면 상대방의 표정에는 ‘맛이 간 노인네’라고 측은하게 바라보는 눈빛이 드러난다. 그러든 말든, 그런 표정까지도 재밌다. 더 크게 웃는다.


‘산책로’라는 것이 따로 있겠는가. 천천히 걸을 수 있으면 모든 곳이 다 산책로가 되는 거지. 그래도 가장 마음 편한 산책로를 고르라면 누구든 ‘우리 동네’를 꼽지 않을까. 나 역시 그렇다. 가장 익숙한 길을 걸으면서 특별한 시선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 생각에 집중할 수 있는 산책이 바로 동네 산책이다. 동네 산책은 사색을 위한 산책이기도 하고, 산책을 위한 사색이 되기도 한다.


다리뿐 아니라 생각도 함께 걷는다. 더 이상 걸을 수 없게 될 때까지 걷고, 더 이상 생각할 수 없을 때까지 걸었으면 좋겠다. 



별 보러 가자

비로소 겨울과 화해하기

겨울이 되면 마음이 먼저 움츠러들고 거기에 몸이 따라간다. 봄부터 가을까지 단련한 탄력도 겨울 문을 가볍게 밀고 나가지 못한다. 워낙 추위에 취약하다 보니 겨울에는 사진기도 가방 안에 보관하여 동면(冬眠)에 들어가도록 배려해준다. 내가 이토록 추우니 사진기도 춥지 않을까 싶어서.


며칠 전에는 홍콩에 사는 큰딸네 가족이 한국으로 겨울 여행을 왔다. 용평, 월정사, 상원사를 거쳐 대관령까지 갔다. 따뜻한 나라에 살다 보니 손녀들도 한국의 겨울이 마냥 신기한가 보다.


썰매장에 갔을 때 녀석들의 비명은 하늘을 날았다. 추위를 타지 않는 점에 있어서는 할애비를 닮지 않은 건가 싶지만, 동심은 계절을 가리지 않는다고 말해야 옳을 것 같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국도변에 잠깐 차를 멈추고 간단한 먹거리를 구입했다. 아이들은 카시트에 곤히 잠들어 있고, 그사이 나는 가방 안에 잠들어 있는 사진기를 잠깐 흔들어 깨워 바깥으로 데리고 나갔다. 계곡 물소리를 고요히 멈췄고, 12월의 태양이 쏟아내는 소심한 햇살이 나목 가지 사이로 스몄다. 조용히 한 컷 한 컷 셔터를 눌렀다. 적막, 침묵, 단순, 흑과 백……. 겨울 정취가 맑고 깊다. 이 아늑함까지 사진에 담고 싶다.


이제 몇 번의 겨울을 살게 될지 모르겠지만, 남은 인생이라도 겨울과 다투거나 피하지 말고 화해하는 법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거칠게 다퉜던 사람들도 죽기 전에는 서로 마음을 열어놓고 너그러이 화해한다지 않은가. 살아오며 그동안 싫어했던 것들, 회피했던 것들, 생각만 해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던 것들에 대해 다시 돌아봐야겠다. 화해할 여지는 있는지, 내 옹졸함으로 멀리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겨울에게도 그렇게 손을 내밀어야겠다.


젊을 때는 바쁘게 사느라 나 자신을 돌아볼 틈이 없었다. 이제야 인생의 겨울을 맞아 스스로를 조금씩 돌아보는 중이다.


내가 젊은 날을 보낸 중국 베이징은 유난히 겨울이 춥고, 길고, 어둡고, 혹독했다. 베이징의 겨울은 기온이 영하 15도까지 내려가고, 11월 초가 되면 곧장 겨울이 시작된다고 말해야 한다. 그런 겨울이 3월까지 이어진다. 일 년의 절반을 빼곡 겨울로 사는 셈이다. 새외(塞外)에서 부는 북풍은 사납고 날카롭다. 공기는 바싹 마르고 탁하다. 점심식사하고, 차 한 잔 마시고 나면 금세 어둠이 찾아든다. 포근하고 낭만적인 설경은 기대하기 어렵다. 그것이 베이징의 겨울이다.


서울의 겨울은 베이징보다 부드럽다. 겨울과 친해지는 연습을 하기에는 서울이 훨씬 좋다. 올겨울에 내가 할 일들을 쭉 적어보았다. 책 읽기, 음악 감상, 전시회 관람, 영화관 가기, 산사(山寺) 탐방, 성지순례, 봉사활동, 친구들 만나기……. 움츠러들지 않고 이런 계획들을 하나하나 체크하면서 이번 겨울에는 더욱 이 계절에 익숙해져야겠다고 작은 결심을 한다.

겨울을 배우는 이가 선비 아닐까. 이제야 회사의 머슴으로 살았던 시간을 내려놓고 어언 선비 흉내를 내보는 셈이다.



늦게 배운 도둑질

비공식 출판기념회

“누구의 인생이든 겨울은 찾아온다. 그 겨울에 얼어 죽은 사람이 있고, 그 겨울에 스키 타는 사람도 있다.”


미국 작가 토니 로빈스가 한 말이라고 한다.


회사를 퇴임하고 제일 먼저 배운 것이 사진이었다. 어릴 적부터 스스로 의지가 박약하다고 생각해 무슨 일이든 시작할 때마다 ‘나를 재촉해줄 사람’부터 찾았다. 그 분야에 전문적인 식견이 있으면서,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가르쳐주고, 또 곁에서 간섭하며 확인해줄 사람, 말하자면 감독이자 후견인, 선생님 말이다.


사진 공부에도 그런 ‘스승’부터 모셨다. 공짜로 배우는 것은 남의 시간과 노력, 재능을 훔치는 것 같아 적잖은 수업료를 들이며 배웠다.


스승을 모시는 것과 함께 내가 갖고 있는 또 하나 배움의 원칙은 ‘배웠으면 꼬박꼬박 성과를 남겨야 한다’는 것. 그래야 스스로 성취 의욕도 생기고, 계속 도전해나갈 동기부여도 될 것 아닌가. 중간 중간 시험을 보거나, 전시회를 여는 것처럼 말이다.


사진 공부에도 그것을 그대로 옮겼다. 그렇다고 아직 내 주제에 사진 전시회 같은 것을 열 수는 없고, 매년 찍은 사진 가운데 제법 괜찮다고 생각한 것들을 골라 조그만 탁상 다이어리를 만들었다. 수백 부 인쇄해 가까운 사람들에게 나눠줬다. 연말에 달력 찍어 고객들에게 나눠주는 은행이나 협동조합, 혹은 중국 요릿집이 된 느낌이었지만 어쨌든 뿌듯했다.


그렇게 몇 년간 하다 보니 이제 또 성에 안 찼다. ‘더 큰’ 일을 벌여야겠다!


그래서 그동안 찍은 사진을 모아 글이 함께 어울린 작은 책자를 만들기로 했다. 그동안 글 쓰는 길을 안내해준 스승님께는 ‘빨간펜’ 첨삭을 부탁했고, 사진 공부 스승님께는 “바쁘시겠지만 사진 보정과 책 편집을 좀 맡아주십사” 하고 황송한 부탁을 드렸다.


『사진이 나를 찍었다』라는 145페이지짜리 책자는 그렇게 나오게 되었다. 물론 정식적인 출판사를 거친 책은 아니다. 오로지 내 돈 들여 내가 만든 책. ‘나만의 성과’를 남겨놓기 위해 만든 책. 5백 부쯤 인쇄해 주위 사람들에게 나눠줬다. 회사에 다닐 적 알던 사람들, 성당 교우들, 스승님과 후배님들, 가족과 친인척, 사진반 친구들…….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대체로 놀라는 기색이었다. “어느 틈에 이런 걸 쓰고 만들었습니까” 하고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책을 이리저리 둘러보기도 하고, “회사 다닐 때 연도 보고서 만들던 버릇을 아직도 못 고쳤고만” 하면서 껄껄껄 웃는 옛 직장 동료도 있었다.


일은 자꾸 커졌다. 이번에는 후배들이 출판기념회를 열어주겠다는 것이다. 정식으로 출판한 것도 아니고, 누구 말대로 ‘연도 보고서 만들 듯’ 나 자신을 고무하고 격려하기 위해 만든 것인데 거창하게 그런 것까지……. 손사래를 쳤다.


그래도 베이징에 오신 김에 겸사겸사 ‘모이는 자리’가 필요하지 않겠냐고 하여, “그럼 식사나 한번 합시다” 하고 허락했다. 그런데 식당 앞에 떡하니 플랜카드까지 걸려있을 줄이야.


‘사진작가 김동진 출판기념회’


그 이름 앞에 붙어있는 ‘사진작가’라는 호칭 좀 떼어달라고 사정해도 이미 늦은 일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나는 그날 ‘작가’가 되었고, 그것도 출판기념회까지 여는 작가가 되었고, 작가로서 ‘독자’들을 만났다. 줄 서 있는 사람들에게 차례대로 사인을 해주는, 텔레비전이나 신문에서나 보던 광경을 연출하게 되었다.


옛 사장과 직원, 사장과 거래처 사장의 관계가 ‘저자와 독자’ 관계로 만나니 좀 어색했다. 어쨌든 그래도 ‘나 여기 이렇게 살아 있소’라고 증명하기 위해 만들었던 책이 나름대로 의미를 발휘하는구나 싶었다.


“누군가는 겨울에 얼어 죽지만, 그 겨울에 누군가는 스키를 탑니다.”


사실 좀 냉정하게 느껴지는, 자기계발서에나 등장할 법한 말이지만, ‘스키를 탄다’는 표현이 썩 나쁘지는 않다. 그 상황을 즐기면서 이겨낸다는 뜻이니까.


“저는 스키를 탈 줄 모르지만 얼어 죽지는 않았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도 겨울이 와도 스키 타고 즐기면서 살려고 일하고 있습니다. 저도 그런 마음으로 여러분과 함께 일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아직도 매일 일하고 있습니다. 일하는 마음으로 공부하고 책 읽고 사진 찍고 글 쓰고 좋은 사람을 만납니다. 일하는 마음으로 매일 기도하고 묵상하고 사색합니다. 다만 과거에는 가족이나 회사를 위해 일한다는 생각이 많았지만 지금은 온전히 나 자신을 위해 일합니다. 그것이 예전과 다른 점입니다.”


50여 명 남짓 참석한 기념회였다. 오래전 예고를 했던 것도 아니고, 아직 현직에 있는 것도 아니고, 현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도 결코 아닌데, 이제는 일개 사진사이자 초보 글쟁이가 된 노인의 ‘비공식’ 출판기념회에 예상치 못한 인원이 모여 깜짝 놀랐다. 가슴으로 뭉클함을 느꼈다. 정말 고마웠다. 세상을 완전히 헛되이 산 것은 아니었구나. 찔끔 눈물이 나기도 했다.


앞으로 더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 공부, 글공부, 사색과 명상, 다이어리 제작, 소책자 제작, 그리고 출판기념회. 앞으로는 ‘판’이 어떻게 더 커질까? 스키 타는 재미가 쏠쏠한 겨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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