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로 가난해서

   
윤준가
ǻ
미래의창
   
14000
2021�� 06��



■ 책 소개


세상에 존재하는 수없이 다양한 형태와 강도의 가난들,
그중 어느 한 일상에 대한 솔직하고 담담한 기록

‘가난’을 말할 때 흔히 떠올리고 언급되는 몇몇 이미지들이 있다. 낡고 어둡고 더러운 집, 허름하고 왜소한 외모, 종종 챙기지 못하는 끼니와 위험에 노출된 건강, 노동의 양에 비해 적은 수입을 받거나 아예 노동하지 못하는 생활 등등. 하지만 이러한 이미지는 모든 가난들을 포괄하지 못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저마다의 가난을 안고 살고, 세상에는 그들의 수만큼 다양한 형태와 강도의 가난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사람들이 각자의 가난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거리낌 없이 이야기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꾸준한 소통과 촘촘한 연대가 더 나은 방향으로의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먼저 자신의 일상을 한 권의 책에 담았다.

■ 저자 윤준가
주로 다른 이의 글을 다듬고, 종종 내 글을 쓴다. 아주 드물게 그림을 그리는데, 장래희망이 그림책 할머니라서다. 주어진 마감에 괴로워하다가 입금에 감사하면서 대체로 가난하고 가끔 풍족하게 지내고 있다. 현재 가장 가까운 목표는 그림책 완성과 개 입양이다.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다가 프리랜서가 됐고 출판사 말랑북스를 운영한다. 《바다로 가자》, 《Bones and flesh》, 《파는 손글씨》, 《한동리 봄여름》, 《우정보다는 가까운》을 쓰거나 엮었으며 《엄마가 알려준다》, 《밥상 위의 숟가락》을 발행했다.

■ 차례
프롤로그: 각자 가난한 우리 

1장 내 가난의 모양
내 가난 증명하기 
가난하며 건강하기 
에어컨 없는 여름으로부터 
베란다 없는 사람들 
수족냉증인의 겨울 
다이소 앞에서 만나요, 당근! 
자, 이제 나가주세요 
내가 자른 내 머리 
도무지 닦을 수 없는 바닥 

2장 이따금 포기하는 것들
취향이 뭐길래 
생크림케이크 좋아하세요? 
내가 개복치라니? 
동네 세탁소에서 
여행에 대하여 
수영 오전반 모임 
선물 잘 받는 방법 

3장 가족이라는 이름
가장 최신의 효도 
엄마가 사온 딸기 
망원동 물난리의 기억 
깊이 새겨진 절약 DNA 
딱히 결혼이 하고 싶다기보다는 
목표는 가장 보통의 결혼식 
낳고 기르는 일에 대하여 

4장 소중하고 고단한 나의 밥벌이
조금 더 나은 노동을 위하여 
프리하지 않은 프리랜서 
10억을 주실 건가요?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까? 
내가 그린 어떤 그림 

에필로그: 대체로 행복할 수 있다면 

 




대체로 가난해서


내 가난의 모양

가난하며 건강하기

건강. 모든 사람들의 바람이자 행복한 삶을 이루는 요건이다. 건강하지 않을 때 삶은 순식간에 망가진다. 병중에서도 행복을 찾을 수는 있지만, 당장 감기 몸살을 앓거나 배가 아프고 설사가 나오는 가벼운 증상만 있어도 삶의 질이 훅 떨어져버린다. 가난한 내가 일상에서 가장 신경 써야 할 부분도 바로 건강이다. 아프면 돈이 많이 든다. 그런데 건강한 몸을 유지하는 데에도 돈이 든다.


건강을 유지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영양가 많고 신선한 음식을 먹고, 적당한 운동을 하는 것이다. 이 당연한 듯 보이는 문장 속에는 많은 어려움이 들어 있다. 일단 ‘영양가 많고 신선한’은 손쉽게 사 먹는 저렴한 음식으로는 획득하기 어려운 가치다. 좋은 음식을 사 먹으려면 상당히 비싼 값을 치러야 한다. 돈이 없다면, 만들어 먹어야 한다.


내가 사는 집은 지역의 재래시장과 매우 가깝다. 독립하면서 가장 잘된 일중 하나다. 시장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덜 건강했을 것이다. 시장이 가까워서 좋은 점은 시장 자체에도 있지만 그 주변에 상권이 발달한다는 점이다. 시장을 둘러싸고 할인마트 2곳, 대형마트의 익스프레스점 1곳, 농협에서 운영하는 로컬푸드 직매장 1곳이 있다. 나는 시장을 포함해 이 모든 곳에 수시로 다니는데, 거의 매일 한 군데 이상 들른다. 그리고 가장 싸고 신선한 재료를 찾는다.


여기는 공산품이 싸고, 저기는 채소가 싸다. 또 거기는 과자 할인을 자주 한다. 새로 생긴 시장 근처 채소 가게는 무척 저렴하지만 대체로 신선도가 떨어지니까 꼭 사야 할 품목이 다른 곳에서 너무 비쌀 때만 이용한다. 좀 오랫동안 두고 먹는 채소의 경우(무나 당근 등) 농협에서 운영하는 로컬푸드 직매장에서 산다. 근방의 농부들이 수확해서 바로 진열해 파는 것들이라 오래 두어도 신선도가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금세 상해서 버리는 것보다는 약간 비싸더라도 신선한 제품을 사는 편이 돈을 아끼는 방법이다. 당연히 몸에 좋고 맛도 좋다. 육류는 마트의 특별 할인 품목이 아닌 이상 시장 정육점이 제일 낫다. 생선은 시장에서 사되, 매일 가격이 달라지니 지날 때마다 체크한다.


시장과 가까워 무척 다행이라고 했지만 사실 나는 이 모든 과정이 버겁다. 매일 가장 싸고 좋은 재료를 찾는 일이, 그 모든 가격을 기억해 머릿속에서 비교하는 일이, 최대한 적게 사면서 최대한 다양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자 노력하는 모든 수고로움이. 형편이 된다면 한곳에서 고민 없이 신선한 재료를 구매하면 좋겠다. 나아가 누군가 만들어놓은 양질의 음식을 매일 공급받을 수 있다면 몸도 편하고 내 에너지를 다른 일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서비스는 아주 비싸다.


**


나는 종일 앉아서 일을 한다. 원고를 보거나 조판을 하거나 수정을 하거나 글을 쓰거나 책을 읽거나, 하여튼 대부분의 사무직이 그렇듯 모든 일을 앉아서 처리한다. 그러다 보니 허리가 아프기 쉽다. 마우스를 많이 사용하고 집안일도 매일 하니 손목도 자주 아프다. 한 번씩 통증이 심해지면 정형외과나 한의원을 찾는데, 병원비나 약값이 만만치 않다. 근육을 단련시켜 쉽게 아프지 않는 몸을 만드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다행히 나는 시간을 비교적 자유롭게 낼 수 있어서 오래전부터 하고 싶던 수영을 시작했다. 시에서 운영하는 수영장을 다니는데, 월 6만 원 정도가 들어간다. 2년 가까이 수영을 하니 허리 아픈 일이 많이 줄었다. 다른 부분에도 조금씩 근력이 생겼다. 그러나 최근 생활비가 많이 모자라 몇 달 동안 수영 강습을 등록하지 않았다. 마침 겨울이라 추워서 가기 싫은 날이 생기기도 하고 돈도 모자라니 겨울 동안은 쉬기로 했다. 그러니까 기다렸다는 듯이, 다시 허리가 아파온다.


수영을 쉬는 동안은 집에서 매일 플랭크를 하기로 했다. 다이소에서 5,000원을 주고 요가 매트도 샀다. 그런데 자꾸 운동하는 걸 까먹는다. 허리가 아파오면 그제야 플랭크를 1분씩 벌벌 떨며 해본다.


건강하게 살기. 가난해도 건강하게 살기. 정말 쉽지 않다. 덜 가난한 사람보다 더 머리를 쓰고 더 부지런해야 한다. 나의 일상을 지켜나가려고 계속 노력해야 한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나의 삶은 쉽게 망가져버릴 것이다. 어쩌면 이리저리 잔머리를 굴리는 동안 뇌가 조금 더 활성화되려나? 그럼 치매 위험이 0.01%라도 줄어들지 않을까? 이 고달픔을 애써 긍정적으로 생각해본다. 어휴!



이따금 포기하는 것들

생크림케이크 좋아하세요?

아침에 룸메가 카톡으로 이미지 하나를 보내왔다. 모 프랜차이즈 제과점의 기프티콘이다. 생크림케이크 하나를 받을 수 있는 거였는데, 친구가 자기는 생크림케이크를 싫어한다며 몇 달 전에 룸메에게 주었다고 한다. 그 기프티콘의 기한이 바로 오늘까지다. 히야, 그리고 내일은 내 생일이다. 이걸로 생일 케이크를 마련하면 되겠군! 우리 둘의 자연스러운 결론이었다. 하루 일찍 사서 묵히면 맛이 떨어진다거나 기분이 덜 난다거나,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생일에 맞추어 공짜 케이크가 생겼으니 그저 감사하고 누리면 된다. 그리고 어차피, 제과점에서는 케이크를 매일 교체하지도 않는다. 케이크는 당인 한정 판매 상품이 아니니까.


해당 제과점에 가서 기프티콘을 보여주니, 해당 제품이 지금 없으니 가격에 상응하는 다른 상품을 고르라고 한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작은 레드벨벳케이크와 토스트용 식빵 한 봉지를 골랐다. 기프티콘 금액보다 500원이 넘쳐서 그것만 결제했다, 달콤한 케이크를 샀으니 다른 빵을 사면 별로 기쁘게 먹지 않을 것 같았고, 식빵이야 냉동실에 두었다가 토스트를 하든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든 이리저리 활용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쿠폰을 준 친구는 생크림케이크가 아닌 다른 빵을 고를 수 있다는 걸 몰랐을까? 알았다면 이걸 우리에게 주었을까? 어쨌든 덕분에 고맙게 쓴다. 그런 생각을 하며 빵집을 나섰다.


돌아오는 길에는 마트에 들러 우유와 라면을 샀다. 계산대로 가려는데 반값 세일하는 두루마리 휴지가 보여서 집어들었다. 마침 집에 휴지가 딱 한 롤밖에 안 남아서 사려던 참이다. 어깨에는 장바구니를, 왼손에는 케이크, 오른손엔 두루마리 휴지 30롤 팩을 들고 돌아왔다. 케이크 상자는 아무리 작아도 들기에 번거롭다. 최대한 균형을 맞추어 들려고 노력했다.


**


10년도 더 전의 일이다. 동네 제과점에 엄마, 언니와 함께 가서 커다란 생크림케이크를 샀다. 그런데 들고 돌아가는 길에 수평을 못 맞추었는지, 제대로 고정이 되지 않았던 것인지 케이크가 상자 안에서 기울어졌고, 마침 크고 무거운 케이크여서 약한 종이 상자의 손잡이가 부러졌다. ‘아차!’ 하는 순간, 케이크 상자는 거의 땅에 처박혀버렸다, 급하게 케이크 상자를 열어보니, 이미 찌그러져 있어 우리는 모두 울상이 됐다.


그 일이 제과점에서 몇 미터 못 가 벌어졌기 때문에 되돌아가 빵집 주인에게 케이크를 보여주었다. 당연히 바꿔달라는 뜻은 아니었지만 그냥 돌아가기에는 너무 억울하기도 하고 손잡이가 떨어져 계속 들고 가기에도 어려움이 있었다(이런 엉망인 빵 덩어리로 무슨 축하를 한단 말인가!).


사장 겸 제빵사는 우리를 안타깝게 쳐다보더니 최선을 다해 모양을 가다듬어주었다. 상자가 부실했던 탓도 어느 정도 있다고 생각했나 보다. 돌아갈 때 그가 “이번엔 좀 더 단단히 고정했어요”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어쨌든 그 정도의 조치만으로도 감사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상자를 고이 가슴에 안아들었음은 물론이다. 그때 엉망으로 찌부러진 생크림 범벅의 빵 덩어리가 시각적 충격으로 다가왔는지, 그다음부터 나는 케이크를 사서 들고 갈 때면 늘 수평과 위치, 손잡이의 견고함을 확인한다.


그 커다란 케이크는 무슨 일로 샀던 걸까? 도무지 기억이 안 난다. 웬만해선 그렇게 큰 케이크를 사지는 않는데 왜 그렇게 큰 걸 골랐을까? 엄마와 내 생일이 겹쳤던 해였을까? 아니면 초대된 손님이 여럿 있었을까? 손이 시렸던 기억으로 봐서는 겨울인데, 혹시 크리스마스 케이크였을까? 이번 내 생일은 엄마 생신과 3일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이번 주말에 가족들과 저녁을 먹기로 했는데 그때 물어봐야겠다. 다른 사람들은 그 일을 기억할까? 내가 어렸을 때 기억을 들추어 말하면 언니나 엄마는 보통 기억을 못 한다. 엄마는 내가 너무 섬세하고 예민하다고 하신다.


아니, 그렇게 커다랗고 달콤하고 엉망으로 뭉개진 빵 덩어리의 기억을 어떻게 잊을 수가 있나요?



가족이라는 이름

엄마가 사온 딸기

어느 날 마트에 들어섰는데 마침 과일 코너에서 타임세일이 시작됐다. 마이크를 잡은 아저씨는 “딸기가 한 팩에 2,000원!”이라고 소리쳤다. 정상가는 그 두 배였기에 얼른 가서 괜찮아 보이는 두 팩을 골라 가져왔다. 투명한 플라스틱 용기에 두 줄로 차곡차곡 들어가 있는 딸기. 윗줄은 좀 크고 신선해 보였지만 아랫줄은 작고 시들했다. 타임세일 방송을 듣자마자 예상한 일이다. 이런 딸기지만 한 팩도 아니고 두 팩을 사서 실컷 먹을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았다. 무른 딸기도 그리 싫지 않다.


엄마는 무른 딸기를 골라 숟가락이나 손으로 으깨고 설탕을 넣어 밀폐용기에 넣어두셨다. 그걸 우유에 타서 먹으면 훌륭한 간식이 됐다. 다른 간식은 잘 드시지 않는 엄마 아빠도 그렇게 만든 생딸기 우유는 항상 기쁜 표정으로 드셨다. 나는 엄마 옆에서 가끔 딸기를 골라내기도 하고 으깨기도 했다. 그러면서 설탕이 생각보다 많이 들어가야 맛있다는 사실도 배웠다.


예전의 엄마가 그랬듯 싱크대 앞에 서서 좋은 딸기와 무른 딸기를 골라내면서, 엄마도 나처럼 할인하는 딸기를 사오셨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식구가 적을 때는 부모님과 나, 셋이었지만 가장 식구가 많았을 때는 언니, 이모, 할머니, 사촌동생까지 해서 입이 일곱까지 늘어났던 우리 집. 얼마나 많이 먹고 얼마나 많은 돈이 들었을까? 그때는 어려서 생활비라는 게 이렇게 무서운 줄 몰랐다. 지금 나는 룸메와 둘이 사는데도 이렇게 구석구석 돈 들어갈 일이 많고, 마트에서 식재료를 아무리 적게 사려 해도 한 번에 2만 원은 기본으로 나가는데, 엄마는 늘 할인하는 상점을 찾아다녔을 테고 그러니까 엄마가 사온 딸기는 늘 어느 한구석이 무른 딸기였던 것이다.


**


코로나로 맨 처음 지원금이 지급됐을 때, 특별히 많이 판매된 품목이 과일과 고기라고 했다. 바꿔 말하면 생활비가 모자라 식생활을 조절한다면 가장 먼저 줄이게 되는 품목이 과일과 고기라는 뜻이다. 그때 나뿐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과일을 못 먹고 있었다는 생각에 울컥하면서도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나 혼자 이런 건 아니구나 싶어서. 그 시절 엄마는 철마다 우리에게 다양한 과일을 먹이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을까.


지금 엄마는 아빠와 둘이서만 살고 계신다. 엄마가 일을 그만두시게 되면서 가계 수입도 줄었지만 아직 아빠가 일하고 계셔서 두 분이 사시기에 부족함은 없는 것 같다. 부모님은 과일을 마음껏 드시면서 지내신다. 요즘 엄마가 사는 딸기는 무른 것이 없을까? 하나도 없었으면 좋겠다. 이제 부모님은 예쁘고 고운 딸기만 드셨으면 좋겠다. 내가 무른 딸기를 먹는 건 아무렇지도 않다. 그게 바로 자식의 마음 아닐까(웃음).



소중하고 고단한 나의 밥벌이

프리하지 않은 프리랜서

책 만드는 일을 퍽 좋아하지만 프리랜서로 막 전향할 무렵 나는 심한 슬럼프에 빠져 있었다. 경력이 어느 정도 쌓이니 업계 전반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모두들 피곤에 절어 있었고 책을 지나치게 신성시했다. 책을 일종의 종교처럼 대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출판 노동자들은 쉴 수 없었다. 끝없이 자신을 몰아붙이며 그것이 미덕이라 생각했다.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책의 세계 속에서 모두들 지쳐갔다. 무엇보다 직접적으로 나를 고민에 빠지게 한 것은 같이 일하는 선배들의 모습이었다. 편집자를 괴롭히는 상사나 저자가 없어도, 좋은 회사에서 만들고 싶은 책을 실컷 만들어도, 내가 생각한 만족스러운 모습이 아니었다. 선배들은 누구보다 일을 잘했지만 온몸에 병이 들었고 매일매일 힘들어했다.


‘저 모습이 내 미래라면, 과연 나는 행복할까?’


불현듯 찾아온 의문이었다. 특출 나게 뛰어난 사람이 아닌 그냥 평범한 편집자인 내 미래는 선배들보다 못할망정 더 나을 리가 없었다. 그래도 꾸역꾸역 경력을 놓지 않고 이 일을 지속한 이유는 그저 배운 도둑질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전문성을 가진 유일한 일이었고 내 생계를 유지할 유일한 수단이었다.


프리랜서가 되자 아빠는 나를 못 믿어 전전긍긍하셨다. 툭하면 불러 지금 무슨 일을 하냐, 누가 발주했냐, 얼마를 받냐 캐물으셨다. 그러면서 대화를 끝내기 전에는 꼭 “직장에 다니는 것보다 더 많이 벌어?”라고 물어보셨다.


“아니, 직장 다니는 게 더 잘 벌지.”


매번 똑같이 대답하는데도 왜 계속 같은 질문을 하시는지 알 수 없었다.


“월급보다 더 벌어야 프리랜서가 된 의미가 있지!”


저런 문답을 몇 년이나 반복한 뒤에야 아빠는 좀 덜 물어보시게 됐다. 사실 나도 프리랜서가 되기 전에는 프리랜서 생활이 어떤지 잘 몰랐다. 출퇴근 없이 자유롭고, 일도 척척 해내는 멋있는 동료 정도로만 여겼을 뿐.


**


나보다 늦게 프리랜서가 된 편집자 친구를 오랜만에 만나는 날이었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외쳤다!


“프리랜서가 이렇게 돈을 못 버는 거였어? 넌 대체 그동안 어떻게 살았어?”


나는 별말 없이 “하하” 하고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 세계에 온 걸 환영해, 친구!


그래도 프리랜서 생활이 좋냐 물으면 나는 만족한다고 대답한다. 동년배 친구들보다 일찌감치 이 방향으로 들어선 것도 지금 와 생각하면 감사한 일이다. 다른 할 일이 없어 계속했던 이 일이 나를 먹여살렸다. 먹고살다 보니 떠나갔던 열정도 슬며시 돌아와 있었다. 재밌는 일감을 만나면 다시 기대감으로 차오르고, 작가들을 만나 새로운 책을 이야기하는 시간이 즐겁다. 어느새 여러 거래처가 생겼으며, 나만의 출판사를 꾸려 만들고 싶은 책을 작게나마 시도해볼 수 있는 기회도 만들었다.


월급도 상여금도 없지만 불공정한 계약을 거절할 수 있었고, 달콤한 늦잠과 한가로운 평일 휴가를 선택할 수도 있다. 최근의 선진 기업 문화는 몰라도 일과 생활을 조율하는 나만의 균형감이 있다.


오늘도 나는 늦게 일어나 밥을 먹고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은 뒤 커피 한 잔을 내려 내 작업실로 간다. 작업실이라고 해봤자 전혀 멋있지 않고 침실 옆에 있는 어수선한 작은 방이지만 말이다. 그 작은 방 안에서 글자를 쌀로, 반찬으로, 옷과 월세로 바꾼다. 책을 만들어 나를 먹여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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