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의 기쁨

   
권예슬
ǻ
필름(Feelm)
   
14000
2021�� 10��



■ 책 소개


무심코 지나쳤던 ‘나’를 발견하는 일

‘이걸 취향이라고 말해도 되나?’ ‘돈도 없고 시간도 없는데 무슨 취향이야.’ 덕후들이 성공하는 시대에 취미 하나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서른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면 따라 좋아하고, 뾰족한 감각을 가진 사람들을 부러워했다. 남이 가진 화려한 취향에 비해 내 취향은 보잘것없어 보였다. 하지만 세상에 초라한 취향은 없었다. 내가 가진 취향을 초라하게 바라보는 ‘나’ 자신만 있을 뿐이었다.

바쁘다는 핑계를 대고 주변에게 이해받으려 애쓸 필요도 없었다. 그저 사람마다 적절한 취향의 온도가 달랐다. 어쩌면 우리는 취향마저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감을 갖고 있었던 것 아닐까. 희미한 취향이라도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그 안에서 발견한 삶의 태도는 무엇인지 섬세하게 풀어낸 책이다.

■ 저자 권예슬
콘텐츠 마케터이자 인스타툰 연재 작가. 대학내일에서 콘텐츠 에디터로 일했으며 블랭크 코퍼레이션을 거쳐 꾸준히 콘텐츠 마케터로 업을 이어나가고 있는 중이다. 평범하게 살아가던 어느 순간, 흩어지는 시간을 남겨두고 싶다는 생각에 글과 그림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짧은 문장 하나로도 누군가의 삶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다고 믿기에 힘이 닿는 순간까지 성실하게 ‘드로잉텔러’로 살아가는 게 꿈이다.

인스타그램 @ggwon_ye
브런치 brunch.co.kr/@ggwonye

■ 차례
프롤로그

Part 1 오늘도 취향 하나를 더하는 일
취향이 가난하다 느껴질 때
궁상맞은 습관
취미가 뭐예요?
오래된 친구들
콤플렉스를 극복하는 방법
좋은 음식을 위해 필요한 것
자존감을 지키기 위한 여행
감기약 설명서에 필요한 한마디
퇴사 다음 날, 가장 먼저 한 일
망쳐도 망친 그림을 그린 내가 남겠지
작은 창 대신 큰 창을 바라보게 하는 사람들

Part 2 취향이 다르다고 해서 틀린 건 아니니까요
도망회고록
나의 파스타 연대기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잘 사는 기분
버스 기사님들을 통해 배운 것
요리에 담긴 마음
호랑이가 무섭지 않은 어른
말이 사라진 자리에
나를 아낀다는 것
칭찬을 모읍니다
변화하지 않기 위한 변화

Part 3 취향 찾기를 멈추지 마세요
아이마다 속도가 다를 뿐입니다
완벽하게 타이핑된 인생은 없으니까
취향과 돈은 비례하나요?
기억나지 않는 친절
반짝반짝 빛나던 빛자국을 찾아서
단출함의 풍요
풍경을 추억으로 가득 채우는 방법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와 -의 세계
하는 사람
여행이 살아보는 거라면

Part 4 앞으로도 취향은 계속될 테니까요
누군가의 취향을 들여다보는 일
마음이 부자라서 괜찮아
내 취향은 별 게 아닌데
17년 된 샤프에 대한 단상
잡념에 집념하지 않을 것
숲보다 나무를 보는 사람
책 읽는 내 모습이 좋아서
굳은살을 만들어가는 삶
취향의 발견
재미있게 살다 간다고 말할 수 있는 인생
무채색 인간
이런 것도 취향이 되는지 모르겠지만

에필로그

 




취향의 기쁨


오늘도 취향 하나를 더하는 일

취미가 뭐예요?

언젠가 덕후들이 주목을 받던 즈음 나는 몹시도 우울했다. 누구는 뚜렷한 취미도 하나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서른인데 취미로 돈을 버는 덕후들이 판을 치는 세상이라니. 무색무취 인간으로 살아온 게 사회 탓은 아니지만 나는 끊임없이 주변 탓을 하곤 했었다. 회사 때문에 일하느라 바빠서, 취미에 쓸 돈이 없어서, 내 몸 하나 건사하기에도 바빠서. 그냥, 이런 나라서.


당시 다니던 회사의 많은 사람들이 개성이 뚜렷해서 더욱 비교를 했던 건지도 모른다. 나랑 똑같이 일하고 야근도 하면서 어쩜 저렇게 취미로 자기 계발까지 똑 부러지게 하는 걸까. 대체 저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하고 시샘하기도 했던 그때, 나의 푸념을 따스하게 들어준 동료가 있었다.


“저는 전공이 디자인이라 개성 강한 친구들이 주변에 많았어요. 그런데 개성이 강하다는 게 무조건 좋기만 한 건 아닌 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는 저만의 세계에 오래 갇히다 보니 공감 능력이 많이 떨어지게 됐거든요. 전 오히려 매니저님이 부러워요. 뚜렷한 취미가 없다고 하시지만 분명 좋아하는 게 뭔지 잘 알고 있고 또 누구보다 공감 능력이 뛰어나시잖아요.


저는 혼자만의 세계에서 저랑만 대화하기 바빴는데 매니저님은 주변을 둘러보며 많은 것들과 공감을 해온 삶이니, 꼭 손해라고 볼 수는 없지 않을까요?”


남들과 굳이 비교할 필요 없다는 단순한 메시지였는데 그날따라 그 말이 어찌나 위로되던지, 택시 안에서 나눴던 대화의 온기가 아직도 마음 한편에 머물러 있다. 그날 이후, 나는 나의 무색무취를 조금씩 받아들여 보기로 했다. 비교로 얼룩진 삶을 청산하고 오롯이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귀를 기울인 채 지내보기로 한 것이다.


책을 좋아해서 책을 자주 읽었다. 내가 좋아하는 장르와 작가들의 책으로만 잔뜩. 좋은 글귀는 가끔 SNS에 올리기도 했지만, 나의 감상은 주로 내 일기장에 빼곡하게 채워졌다. 오랫동안 힐끗거리기만 했던 그림을 배워 보기도 했다. 거창하게 무언가 되어보겠다는 욕심을 버린 채 그냥 하루에 하나씩, 혹은 마음이 갈 때마다 하나씩 그려 나갔다. 글도 꾸준히 썼다. 취미라고 말하기 위한 취미가 아닌, 그냥 내가 좋아하던 것들을 조금씩 꺼내 윤기를 잃지 않도록 살뜰히 가꾸어 나갔다.


그랬더니 나에게도 몰랐던 에너지가 생겨나는 순간이 정말 찾아왔다. 그리고 그때 깨달았다. ‘남는 에너지로 취향을 가꾸는 게 아니라, 취향을 가꾸다 보니 에너지가 생기는 거였구나.’ 없는 줄 알고 지내왔지만 사실은 방치해 두고 있었던 내 소중한 취향들. 비록 여전히 희미한 색이지만 아무렴 어떤가. 이제부터라도 내 취향들이 그 자체로 더욱 오래 윤기날 수 있도록 귀를 기울여주고 시간을 쏟아볼 셈이다. 금방 사라질 한 줌의 취향이라도.


감기약 설명서에 필요한 한마디

어떤 약이든 설명서를 자세히 읽어보는 편이다. 그날도 어김없이 그랬다. 몸살감기에 지독하게 걸렸던 날, 으슬으슬한 몸을 겨우 부여잡고 이불에 들어간 채로 약을 입에 털어 넣고 설명서를 주욱 읽어 내려갔다. 아플 때마다 늘 먹는 감기약이지만 설명서를 읽는 내 감정은 매번 다르다. 특히 몸도 마음도 지쳤을 때는 나도 모르게 설명서에 더더욱 의존하게 된다. 약사에게 ‘이거 먹으면 정말 낫는 거죠?’ 하고 구원의 눈빛을 보내듯 그렇게 한 문장 한 문장 곱씹으며 읽어 내려간다.


2013년 즈음이었다. 스물다섯 살, 대학교 4학년 마지막 학기를 남겨두고 원하던 회사에 인턴으로 합격해 부산에서의 학교생활을 마무리하고 허겁지겁 서울로 올라왔던 때, 지방에서 태어나 자란 탓에 서울은 마냥 무서운 도시로만 생각했었는데 내가 직접 경험한 서울은 달랐다. 말씨만 다를 뿐 똑같이 사람들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곳이라는 걸 몸소 깨달으며 첫 회사 생활을 가뿐하게 해내고 있었다.


잘 지내고 있다 생각했다. 일도 사람들도 너무 좋았고 지방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다양하고 화려한 문화들 덕분에 하루하루를 다채로운 색으로 채워가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한때를 보내고 있다 생각했는데 갑자기 병이 났다. 감기였다. 일 년에 한 번씩은 지독하게 걸리는 단순 감기였는데 낯선 도시에서 걸린 감기는 생경하게 다가왔다.


흔하게 걸려봤던 감기면서 나는 마치 감기를 처음 경험해본 사람인 양 서럽게도 몸을 움츠리고 아파했다. 심적으로 기댈 곳이 딱히 없었기에 그날따라 감기약 설명서에서 이런 한 마디를 기대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따뜻한 물 많이 드시고 그동안 힘들었던 일들은 잠시 내려놓고 푹 쉬세요. 쉬어 가라는 신호입니다.” 같은.


마냥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던 그때의 나는 혹독한 감기를 경험하면서 잠시 쉬어가는 법을 배웠다. 뭐든지 좋다고 마구 먹기만 해대면 몸도 체한다는 것을 연신 콜록거리며. 감기약 설명서에 따뜻한 말 한마디를 기대하듯 때로는 낯선 위로가 필요하다는 것도.


온갖 위로들로 점철된 세상에서 정작 나에게 필요한 위로는 찾기가 어렵다고 툴툴댔지만 생각보다 단순한 곳에서 단순한 위로를 바라고 있던 나처럼, 나도 그런 누군가에게 잔잔하지만 알맞은 위로를 건네는 사람이 되고 싶다.



취향이 다르다고 해서 틀린 건 아니니까요

잘 사는 기분

잘 산다는 건 뭘까. 친구랑 문자를 주고받다가 이런 대화를 마주했다. “아침에 30분 일찍 일어나서 밥 챙겨먹고 출근하면 잘 사는 기분 들고 좋더라.” 그 말에 나는 어떨 때 ‘잘 사는 기분’을 느끼는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나는 요리에 쓸 채소를 미리 다듬어 놓을 때 잘 사는 기분이 든다. 매일 혼자 먹는 밥이지만 나를 위해 정성스럽게 차려 먹을 때도 잘 사는 기분이 든다. 주말에 옷 정리를 몰아서 할 때, 운동 시간을 한 시간 꽉 채웠을 때, 책 읽다 잠들 때 ‘나 좀 잘 살고 있네?’ 하는 감정이 느껴진다.


각자마다 잘 사는 기분을 느끼는 순간은 다를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반려동물을 살뜰히 챙기는 마음이 될 수도 있고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해 하루를 보내는 순간들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하루를 치열하게 살다 보면, 일상의 모든 순간에서 그런 기분을 느끼기 어려울 때도 많다. 기분을 느끼기는커녕 눈앞에 닥친 일들을 처리하느라 기분 따위 신경 쓸 겨를도 없이 하루를 마감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밥 먹듯 야근하던 시절, 빨래를 돌릴 시간이 없어 전날 신었던 양말을 빨래통에서 다시 꺼내 신으며 생각했었다. ‘하, 좀 제대로, 잘 살고 싶다.’ 일에 치여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했던 건 사실이지만 조금만 노력하면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몸도 마음도 지쳤다는 핑계로 누워만 있을 게 아니라, 내 몸이 활력을 찾을 수 있게 운동도 해주고 마음에도 귀를 기울여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소소한 일상의 순간들을 만들어 줬다면 어땠을까.


요즘은 전보다 잘 사는 기분을 자주 의식하며 살아가고 있다. 정말 사소한 순간이라도 꾸준히 쌓아 나가다 보면 정말 ‘잘 사는 나’를 마주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래서 잘 사는 기분은 정말이지 중요하다. 쌓여 가는 그 기분만으로도 우리는 정말 잘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나를 아낀다는 것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이 어김없이 찾아왔다. 하는 수 없이 출근은 했지만 하루 중 쓸 수 있는 에너지는 다 쓴지 오래. 휴대폰 배터리로 치면 4퍼센트 정도. 무거워진 몸을 이끌고 겨우 퇴근을 하던 중 집에 먹을 게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자 몸이 더욱 무거워지는 게 느껴진다.


라면이나 끓여 먹어야겠다 생각하며 집에 도착해서는 괜히 냉장고 문을 한번 열어 본다. 먹을 게 하나도 없는 줄 알았는데 내가 좋아하는 애호박과 두부가 있었다. 거창하게 뭘 해 먹지는 못하겠고 대충 잘라서 굽기라도 해 볼까.


졸려서 흐리멍덩해진 눈에 힘을 주고 애호박을 숭덩숭덩 썰기 시작했다. 두부는 가지런히 썰어 계란물을 입혔다. 달궈진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두부를 노릇노릇 구워내고 애호박은 소금, 후추만 뿌려 가볍게 구워 접시에 담아냈다. 맛있는 냄새가 온 집안을 채우니 없던 에너지도 솟아나는 기분이었다.


얼려 뒀던 밥을 데워 구운 애호박과 함께 크게 한입씩 먹기 시작했다. 따뜻한 국물 하나 없었지만 입 안 가득 퍼지는 채소의 온기에 나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며 “맛있다!”를 연발했다.


대충 때우자는 생각으로 라면을 끓여 먹었다면 어땠을까. 워낙 라면을 좋아하긴 하니 물론 맛있게 먹기야 했겠지만 오늘 하루 고생한 나에게 제대로 된 한 끼를 차려주지 못했다는 생각 때문에 ‘나 자신을 더 살뜰히 돌보지 못한 나’가 남았을 것 같다. 더부룩한 배도 옵션으로 따라왔을 테고.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은 매 순간 반복된다. 하지만 그런 날이 열 번이라면, 하루 정도는 조금 더 힘을 내 나 자신을 아껴줄 무언가를 해보려고 한다. 그것이 구운 애호박이든, 어지럽혀진 방 청소든, 샤워 후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향의 바디로션을 바르는 것이든. 무엇이든 간에 그런 사소한 것들이 분명 나를 구원해줄 것이라 믿는다.



앞으로도 취향은 계속될 테니까요

취향의 발견

글을 쓰려고 책상에 앉았는데 도저히 글감이 떠오르지 않는 때가 있다. 째깍째깍.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고 텅 빈 화면만 노려보고 있는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진다. 대개는 글감 보따리를 미리 챙겨온 채 책상에 앉지만, 마감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는 일단 노트북 앞에 앉고 본다. 화면을 노려본다고 갑자기 글감이 뿅하고 떠오를 리는 없다. 그럴 때면 우선, 그동안 썼던 글을 찬찬히 훑어보는 시간을 갖는다.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 글도 있고 꽤 괜찮다고 느껴지는 글도 있다. 내가 이런 생각을 했었구나 싶은 낯선 감정이 느껴지는 글도 있는데 그렇게 지난 날들을 보고 있노라면 최근에 들었던 인상 깊은 말 하나가 떠오른다. “누구에게나, 지금에만 쓸 수 있는 글이 있어요. 그래서 작가의 특권은 특정 시절의 나를 언제든지 만나러 갈 수 있다는 거예요.” 곽민지 작가가 했던 말이다. 나만이 기록할 수 있는 내 이야기. 결국 지난 글들을 복기하고 그 시절의 나를 만남으로써 새로운 글을 써 나갈 힘을 얻게 된다.


취향을 발견해 나가는 과정도 비슷했다. 없던 취향을 갑자기 만드는 건 어려웠고 과거의 내가 쌓아놓은 기록들에게서 조금씩 발견해 나가는 편이 더 쉬웠다. 누구나 지난 삶을 기록하는 방법은 각양각색이겠지만 내게는 글쓰기가 가장 큰 도움이 됐다. 삶의 기뻤던 순간들,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 진심을 다해 사랑했던 사람, 놓치고 싶지 않던 사소한 뿌듯함이 담긴 일상 이야기 등 오래도록 기록한 나의 마음, 감정, 일상들은 취향을 쉽게 찾아갈 수 있게 도와주는 고마운 이정표였다.


누군가에겐 애매해 보일지 몰라도 흐릿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선명한 방법은 기록이다. 글감이 떠오르지 않을 때 생생하게 살아있는 그 시절의 나를 만나며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지듯, 지난 과거는 내 마음이 가고자 하는 방향이 흔들리지 않도록 잡아주는 길잡이 역할을 대신했다. 과거의 나와 전혀 다른 모습 앞에서는 설렘을 느낄 때도 있다. 새로운 자극에서 발견하게 되는 또 다른 취향. 그런 날의 기록은 더욱 다채로워진다. 끊임없이 발견해 나갈 삶의 여정이 기대되는 순간이다.


결국 발견을 위해 기록하는 삶인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모든 순간을 충분히 느끼기 위해. 그 순간들이 얼마나 내게 의미가 있었는지 오래 두고 들여다보기 위해. 참신한 글감을 발견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나는 오늘도 내 일상을 기록으로 남긴다. 글감과 취향은 인위적으로 만드는 것보다 소소한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발견해 나가는 것이 더욱 진심에 가깝다고 믿기에.


이런 것도 취향이 되는지 모르겠지만


***


‘까무룩’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가수 아이유의 노래 <무릎>을 듣고 나서부터다. 불면증이 심한 건 아니지만 한 번에 잠드는 게 어려워 최소 15분 이상은 뒤척이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겨우 잠드는 편이다. 그래서 ‘까무룩’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을 때 그 단어에서 느껴지는 까무룩함이 너무 좋았다.


갑자기 정신이 흐려지며 잠에 드는 순간이 내게도 분명 있었는데, 어른이 되면서 점점 어려워지는 기분이다. 하지만 여전히 낮잠만큼은 까무룩 잠에 든다. 주말에 일찍 일어나 집 청소를 한 바퀴 끝낸 뒤 잠시 침대에 기댔다 까무룩 잠에 빠지는 순간의 달콤함이란. 좋아하는 단어나 표현들을 메모장에 적어두고 자주 곱씹거나 나만의 글로 표현하는 걸 좋아하는데 이 글도 그러한 이유로 탄생됐다. 좋아하는 단어 ‘까무룩’을 써보고 싶어서.


***


누구에게나 지친 마음을 달래주는 치유의 장소가 있을 것이다. 내게는 서점이 오래도록 그 역할을 해왔었는데, 요즘 또 다른 장소가 하나 생겼다. 바로 평일 오전 9시 40분, 동작대교를 지나는 사당행 4호선 열차 안이다. 정확히 9시 40분이어야 한다. 출근 시간을 훌쩍 넘긴 시간대라 승객은 많지 않고 날씨가 좋으면 햇살도 제법 환하게 들어온다. ‘덜컹덜컹’ 지하철이 내는 적당한 소음과 햇살 가득한 창 밖의 동작대교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상하게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이 든다. 2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일 텐데 말이다.


예전에 누군가로부터 주로 어떨 때 영감이 가장 많이 떠오르냐는 질문을 받았었는데 요즘은 단연 동작대교 위라고 대답할 수 있겠다. 써 보고 싶은 글감도, 내가 잘 살고 있나 하는 자아성찰도 대부분 그때 이루어지니까. 새로 다니기 시작한 직장이 동작대교를 지나야만 갈 수 있는 곳인데 매일 지나다니는 그 구간이 마음에 들어서 참 다행이다. 일상의 짧은 순간마저 취향으로 기록해두는 나인 점도.


***


빨강머리 앤이 “좋아하는 것이 많다는 건 근사한 일”이라고 했는데 나 좀 근사한 사람이라고 봐도 되려나. 기쁨이 되는 소소한 순간들을 기록으로 쌓아 보니 꽤나 괜찮은 취향을 가진 사람 같다.


취향을 찾아가는 지도가 있다면 그 지도의 끝에는 진짜 ‘나’가 기다리고 있는 것 아닐까? 우리 모두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머나먼 여정을 떠나온 것일지도. 그러니 매일 설레는 마음으로 나만의 취향 찾기를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다. 모든 여행이 그렇듯 목적지에 도착해야만 여행으로써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니까. 때론 길도 헤매고 생각지 못한 경험도 하면서 차곡차곡 나만의 취향 여행기를 완성해 보는 거다. 완성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아마 완벽한 완성은 쉽지 않을 듯하다. 하지만 바로 그게 우리를 멈추지 않고 떠나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겠지.


* * *


본 도서 정보는 우수 도서 홍보를 위해 저작권자로부터 정식인가를 얻어 도서의 내용 일부를 발췌 요약한 것으로, 저작권법에 의하여 저작권자의 정식인가 없이 무단전재, 무단복제 및 전송을 할 수 없으며, 원본 도서의 모든 출판권과 전송권은 저작권자에게 있음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