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여행자, 도시를 걷다

   
김경한
ǻ
쌤앤파커스
   
16000
2021�� 10��



■ 책 소개


“전 세계 어느 나라를 가든
잔잔한 사유가 등대의 불빛처럼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일상생활에 지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여행을 바라고, 결국 어디론가 떠난다. 그 여행에서 우리는 해답을 찾지 못하더라도,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다시 힘을 얻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다. “여행은 사유에 양념을 풍성하게 뿌려주는 기막힌 발명품”과 같다. 내가 가보지 않았던 장소, 낯선 곳과 마주하면 그곳의 이야기들이 또 다른 세계로 나를 데려간다.

해외여행이 어려워진 시기지만, 사람들은 그만큼 더 여행을 바라고 있다. 세상에 지친 사람들은 어디에선가 한 번쯤 멈추기 마련이다. 걱정과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정처 없이 헤매는 시간도 필요하다. 이 책은 바로 그런 ‘멈춤’과 ‘휴식’을 선사한다. 세계 곳곳 도시의 예술과 문화, 경제 및 역사를 폭넓게 다루면서도 작가만의 사색과 여행지에 대한 묘사가 어우러진다. 풍부한 이야기를 읽다 보면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에너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저자 김경한
오랫동안 각종 현장을 누빈 언론인이다. 그동안 MBC 기자, CBS 국제부장, YTN 경제부장과 뉴스앵커, 이코노믹리뷰 편집국장으로 일했다. 현재는 ≪컨슈머타임스≫ 대표이며 한화자산운용 사외이사, 한국메세나협회 감사, 미래에셋생명 이사회 의장, LG하우시스 경영위원, 서울여대 언론정보학과 겸임교수 등을 거쳐 지금은 세아해암학술장학재단 이사, IBK투자증권 감사위원장을 겸직하고 있다.

경제 기자이면서 인문학에 관심이 많고, 사람 이야기와 역사 스토리를 좋아한다. 현장에 가보지 않고는 글을 쓰지 않는다는 다짐으로 50여 개국을 다녔다. 특히 일본에 대한 미학적 관찰과 다수의 여행을 통해 쓴 글들은 호평을 받았다.

■ 차례
1부
유럽ㆍ미국 인문 기행
비틀스의 영혼이 머무는 리버풀
잉글랜드 코츠월드, 인간을 초대한 신의 영지
더블린에서 고도를 기다리며
더블린을 세계에 알린 제임스 조이스
폐허의 미학, 리즈 커크스톨 수도원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 리스본 베르트랑
바다로 간 엔히크 왕자, 포르투갈 제국을 일구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는 미친 남자, 돈키호테
곡선이 흐르는 집, 훈데르트바서
대지의 노래, 구스타프 말러
장미의 이름, 멜크 수도원 가는 길
당신은 ‘조르바’인가 ‘나’인가
보헤미아의 하늘
율 브린너와 조선의 인연
놀라운 뮤지컬 ‘해밀턴’의 세계
공공미술의 천국, 시카고
18세기를 고집하는 사람들, 아미시
포용정치의 성인 링컨

2부 일본 인문 기행
금각사, 너무 소란스러운 고독
칼의 기억, 히젠토
철학자의 길 위에서
윤동주, 얼음 속의 잉어
지식의 제국, 다케오 도서관
츠타야 서점의 유쾌한 반란
만들어진 영웅, 사카모토 료마
공익자본주의의 모델, 나오시마
교토 료안지의 침묵
도쿠가와의 세 마리 원숭이
가와바다 야스나리의 설국
가나자와를 맴도는 윤봉길의 혼
영혼을 품은 후지산 백경
오키나와로 튀어

3부 중국 인문 기행
계림산수, 또 다른 행성의 조각품
시안 실크로드 출발지
상하이 루쉰공원의 구혼전쟁
베이징798에서 만난 쩡판즈
내 안의 빛을 영접하라, 제임스 터렐
열하일기 기착지, 베이징
하늘의 선물, 시후 롱징차
보물 병마용의 낮은 자세
루쉰의 길
쑤저우 은이 세운 제국

4부 아시아 인문 기행
히말라야에서 만나는 다르마타
자바의 신화, 보로부두르
키나발루의 시간
중동의 걸작, 아부다비 루브르
늑대토템, 탱그리 정신
카트만두의 동전 한닢
호치민과 이승만
맥아더 장군과 두 개의 동상
아라비아 사막에 뜨는 별

5부 한국 인문 기행
남한산성의 겨울
월정사 선재길, 또 하나의 시간
서도역에서 타오르는 혼불
동학사의 봄, 길 없는 길
고창에서 만난 인촌과 미당
이중섭과 소와 서귀포
단종유배 700리길
하멜 14년 애덤스 20년
울진 보부상 옛길은 살아있다
불로초로 맺은 서귀포 우정 2천 년
해남 미황사 천 년의 기원

추천사

 




인문 여행자, 도시를 걷다


유럽ㆍ미국 인문 기행

잉글랜드 코츠월드, 인간을 초대한 신의 영지

바람이 불고 음산한 안개가 뒤덮여 있으리라는 상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공해나 미세먼지 때문에 생긴 선입견을 가지고 걱정해야 할 필요도 없었다. 황홀한 푸른 하늘과 대칭으로 깔린 녹색의 평원, 여기에 간간이 뿌려지는 빗줄기가 연주해내는 교향곡은 대지의 위대한 서사시였다. 영원을 알지 못하고 생을 마쳐야 하는 미천한 내가 신의 초대장을 받은 느낌이었다.


실눈을 뜨고도 한참을 보아야 그 끝이 윤곽으로 어른거리는 지평선은 언어의 표현을 거절하는 경외감이었다. 잉글랜드의 보물이라고 자랑할 만도 했다. 600년 전 중세 영국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세계적 명소, 코츠월드는 시작부터 가슴을 뛰게 했다.


잔잔한 구릉 지대에 펼쳐진 그린의 향연은 이곳이 인간세계와 가깝되 결코 인간의 땅이 아닌, 신의 영지임을 실감하게 했다. 고도 300미터 높이에서 생성되는 최적의 공기 속에 목장과 마을과 초원이 빚어내는 이상향이었다.


코츠월드의 석회암 지붕은 시간의 역사가 겹겹이 쌓여 있었다. 쪼갠 돌을 가지런히 얹고 정성스럽게 이어 만든 박공지붕은 이끼가 피어올라 지나온 날들의 기억을 짐작하게 할 뿐이다. 담장도 벽도, 지붕도 모두 석회암 풍경이다. 대문과 골목마다 예외 없이 내걸린 꽃 화분은 얕은 시냇물 소리를 타고 정경의 세계로 흘러가고 있었다. 셰익스피어 고향인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부터 남쪽 옥스퍼드까지 100킬로미터에 이르는 광대한 초지는 애초 양들이 뛰어놀던 목장으로 조금씩 넓어지기 시작했다.


유명한 로마 시대의 도시 배스와 세번강 상류를 지나 템스강 하류로 연결되는 비옥한 트라이앵글이다. 글로스터셔, 옥스퍼드셔, 워릭셔, 월셔, 우스터셔 등 6개 카운터 중에서도 백미는 역시 바이버리 마을이었다. 크림색 돌들이 잘 다듬어진 마을을 수놓고 있었다. 건너편에는 벌꿀 색깔로 변해가는 돌조각 벽채 사이로 육중한 문양이 새겨진 클래식 철제문들이 조화롭다. 누구나 한번쯤 머물고 싶어 하는 스완 호텔 앞 시내를 건넜더니 삼각지붕 물결이 중세의 골목길로 나를 이끌었다.


현대 정원의 개념을 만든 시인이자 건축가인 윌리엄 모리스는 그의 책 『지상의 낙원』에서 바이버리 마을을 “가장 아름다운 잉글랜드의 상징”이라고 극찬했다. 오죽했으면 미국의 자동차 왕 헨리 포드가 코츠월드를 통째로 사들이고 싶어서 5번이나 왔다 갔는지 짐작할만하다.


바이버리 둘레 길의 끝은 들판 가득 ‘라벤더 팜’이었다. 보랏빛 꽃들이 지천에 널려 하늘과 수직의 수평을 이루고 있었다. 이 오솔길이 메마른 감성에 소나기를 퍼부었다. 오래된 돌담을 돌며 철학과 문학과 인간이라는 벽을 뛰어넘어 그들 사이에 걸쳐져 있던 수수께끼 같은 길들을 찾고자 갈망했다. 인간의 정신을 풍요롭게 해주면서 우주 속에 있는 다양한 것들이 어떻게 서로 어깨를 기대고 있는지 조금씩이라도 알 수 있을 것처럼 말이다. 세상의 모든 이야기를 들려주고 질문을 끌어내는 힘으로 잠겨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일본 인문 기행

영혼을 품은 후지산 백경

백산(白山)은 언제나 영혼을 동반하고 있어 엄숙하고 경건하다. 하얀 것은 쉽게 범접할 수 없는 신성한 기운을 내뿜는다. 차가운 절제와 섬세한 영감, 움직일 수 없는 전율을 불어 넣는다. 설산을 밟으면 그 느낌이 머릿속에 눈처럼 쌓여 잘 녹지 않는다. 해빙이 느껴지면 다른 풍경을 또 집어넣는다. 나만의 일정한 차가움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가슴이 벅차올랐던 히말라야나 아프리카 킬리만자로, 눈 덮인 백두산이 내 몸 안에 체화되어 있다. 반복해서 꺼내 보는 일도 거의 한계에 다다를 때쯤 후지산으로 향했다. 어떤 목적이나 바람도 없었다. 산 아래는 꽃들이 지천인데 중간 고지 이상은 아직도 눈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3,000미터 봉우리 20여 개를 거느린 후지산은 도쿄에서 서쪽으로 100킬로미터 떨어진 야마나시와 시즈오카를 가로질러 누워있었다. 고대부터 인간이 넘을 수 없는 신의 영역이다. 기타 알프스라는 이름으로 그들은 유럽의 몽블랑이나 북미의 맥킨리를 꿈꿔왔다.


가와구치 호수의 물결은 봄날 오후 바람으로 심하게 일렁거렸다. 운무가 밀려간 틈 사이로 잠깐씩 영봉을 보았다.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기다림의 미학을 느낄 수 있었다. 하염없이 서성이는 인연처럼 말이다. 3대가 덕을 쌓아야 가능하다는 이유를 알만하다.


순백은 마음속에 누구나 가지고 있는 다르마타(Dharmata)를 흔들어 깨운다. 신새벽 히말라야에서 목격한 미지의 끝이 손에 잡히는 듯했다. 사방을 평정하고 우뚝 솟아오른 높이는 가늠하기 어려운 위엄이었다.


인간을 압도하는 후지산은 일본식 판화로도 제작되어 19세기 유럽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자연의 선명하고 경쾌하면서도 과감한 절단을 예술로 끌어올린 장인들의 솜씨 덕분이었다. 에도시대의 작품 <가나자와 해변의 높은 파도>는 인상주의 화가들을 흥분시켰다.


1980년대에는 ‘후지산 36경’ 2,000점 이상이 프랑스와 독일로 전파되었다. 모네와 고흐, 세잔의 그림 속에 녹아있는 자포니즘(19세기 중반~20세기 초반까지 서양 미술 전반에 나타난 일본 미술의 영향)의 중심에는 언제나 후지산이 자리하고 있다.


드뷔시는 후지산 달빛을 모티브로 <바다>를 작곡하기도 했다. 인구 2만이 채 되지 않는 가와구치 읍내에 웅장한 현대미술관이 있었다. 봄꽃 축제인 하루 마쯔리에 맞춰 준비한 후지산 예술 사진전이 백미였다. 중세의 그림과 공예품들도 정갈하게 방문객들을 맞이했다. 안도 다다오의 노출 콘크리트 이중 건축 구조는 자연광으로 내부 곳곳을 비추고 있었다. 미술관 밖 벚꽃은 꽃잎 한 개씩이 낱낱이 바람에 실려 산화하고 있었다. 춘풍에 불려 소멸하는 시간의 모습처럼.


다자이 오사무의 단편 소설 「후지산 백경」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나는 마음을 새롭게 하려는 각오로 가방 하나만 달랑 메고 후지산으로 향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이 산은 주문받아 그린 것 같다. 연극 무대 배경에서나 보던 풍경이다.”


순결한 후지는 38살에 자살한 일본의 천재작가 다자이의 눈에 비친 그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단지 얼어붙은 정상의 뒷면에 감춰진 의식의 떨림이 만져지는 것은 그보다 20년을 더 살아버린 세월의 두께 때문일까. 침묵으로 응고되어온 전설의 은둔 구역이었다.


만년설을 바라보는 인간의 마음은 항상 흔들린다. 여름에는 눈이 녹기를 바라고 겨울에는 쌓이기를 바란다. 온종일 그 자리에서 석상처럼 고정된 시선으로 흰 산을 바라보던 다자이는 이 경계선에서 의식이 몹시 흔들렸다고 적고 있다. 그러다가 풀리지 않는 운명과 인생의 허무를 이겨내기 위해 기다림의 꽃, 달맞이 꽃을 소설 『달려라 메로스』에 담았다.



중국 인문 기행

하늘의 선물, 시후 롱징차

이슬이 막 가시기 시작한 아침나절 구릉은 태양을 서서히 품기 시작했다. 초록의 이불 속으로 하늘의 빛이 타고 들어오는 순간이다. 그 포개어진 틈새 옆으로 흘러내린 녹색 차밭이 사면을 완벽하게 감싸고 있었다. 산줄기를 내려오는 이랑 곡선은 부드럽게 계곡 아래로 이어졌다. 신의 선물로 알려진 항저우 롱징차 벌판은 그렇게 시간의 커튼을 열어 주었다.


시후롱징은 중국 10대 명차 중에서도 으뜸이다. 치먼 홍차, 푸얼차, 모리화차 등을 제치고 언제나 최고를 차지해 왔다. 오월 하순의 차밭은 짙푸른 색으로 변해있었다. 청명 이전에 어린잎을 따내고 두어 번 더 수확한 뒤였다. 항저우 시내에서 30분 거리를 달려왔다. 롱징차는 겹겹이 둘러싸인 항저우의 산과 호수 비경 속에서 만들어지고 있었다. 시후의 전설과 버무러져 2,000년의 오랜 스토리를 축적해왔다.


900만 인구의 항저우 시내에는 찻집이 8,000여곳에 이른다. 아시아 최대의 사찰 영은사 숲길의 이끼 낀 기와집 허름한 문간에는 어김없이 찻집이 있었다. 발길을 멈추고 앉아 창 너머에서 불어오는 대숲 바람을 벗 삼아 마시는 한모금의 롱징차는 언어의 표현을 넘어서는 경지다.


초봄에 따낸 최상품 차는 황제의 입술을 적셨다. 시후나 롱징은 물과 관련이 깊다. 시후는 중국 역사의 미인 서시 시스에서 온 이름이고 롱징은 원래 롱홍에서 유래했다. 시후 서쪽의 옹자산 기슭 맑은 샘이 롱징이다. 롱징 옆에 절을 짓고 차를 재배하는 스님을 따라 마시기 시작한 게 차의 시작이었다. 그 맛과 향기는 소문으로 중원까지 퍼지면서 차로 생계를 삼는 민초들이 생겨났다.


차밭은 청나라 강희제 때 드디어 공차로 인증되었다. 그의 손자 건륭이 이곳을 시찰하면서 맛본 롱징 향취에 반해 벼슬을 내렸다. 18그루의 차나무에 벼슬을 내리고 25가구가 재배하게 했다. 황실에 보내는 로열 티를 계약재배했던 셈이다. 차밭을 오른쪽으로 돌아 나오는 곳이 어차 단지다. 물론 장쩌민이나 후진타오도 롱징 마니아였다. 차 박물관에는 장쩌민의 현판글씨가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아침 차 한잔은 온종일 힘이 넘치게 하고, 점심 차 한 잔은 일을 가뿐하게 해주며, 저녁 차 한잔은 인생의 피로를 쓸어내 준다”라는 중국속담에 그들의 용정차 사랑이 가득 담겨 있다. 여린 촉을 따내어 만들어진 차 한 잔에는 음양오행과 시간의 이상을 포용하는 동양의 깊은 사상이 함께 녹아있음을 느꼈다.


롱징차는 최상품 500그램 한 통에 20만 위안, 약 3,600만 원까지 거래된다. 차밭 비탈의 모든 새순을 따내 찌고 볶아 만든 인간 수공의 정수이기 때문이다. 2003년 중국 최초의 유인우주선 선저우 5호에 롱징차 종자가 탑재되었다. 우주 환경에서 유전자 변이를 실험하기 위해서였다. 대륙 사람들은 하늘에서도 롱징차 재배를 원하는 것일까.


당나라 중엽 이륭샹이 기른 제자 루우는 세계 최초로 차 문화집을 집대성하며 이러한 말을 담았다. “차는 지상 최고의 청순을 상징한다. 차를 만들고 차를 달여 마시기까지 ‘청결’이라는 이름의 길을 단 한 치라도 벗어나선 안 된다. 기름기 있는 손이나 찻잔이 조금만 찻잎에 닿아도 지금까지의 노고가 한순간에 사라져버린다.”


차의 성인이 만든 다경에는 인생의 풍요를 가져다주는 기품들이 고요하게 들어차 있다. 차를 마시는 행위는 모든 허세와 사치스러운 유혹에서 벗어나 마음을 말끔하게 한 뒤에 가지는 행복한 의식이다. 루우는 그의 저서 『다경』에서 “차는 깊은 밤 산중의 한 칸 집에 앉아 샘물로 달인다. 불이 물을 데우기 시작하면 작은 천둥 같은 하늘의 소리가 들린다. 마침내 찻잔에 차를 따른다. 부드럽게 활활 타오르는 불빛이 둘레를 비춰주고 있다. 이러한 한동안의 기쁨은 도저히 속인들과 나눌 수 없는 것이다”라고 묘사했다.


나는 작설차를 즐긴다. 하동에서 올라오는 새순이 그만이다. 참새 혀처럼 작고 어린잎을 따 모아 만든 것이니 그 미지의 맛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다. 사회주의는 차, 자본주의는 커피로 대별되지만 우리의 차 문화 역시 전통이 깊다. 제주와 보성 녹차 단지는 날로 번창하고 있다. 물질로 풍요로워진 오늘날, 정신의 가난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맑고 깨끗한 차 한 모금은 이승의 복잡함과 영혼의 가난함을 모두 씻어 주고도 남는다.



아시아 인문 기행

아라비아 사막에 뜨는 별

불처럼 타오르는 사막을 맨발로 걷고 싶었다. 거친 땅에서 모진 생명을 이어가는 파충류들처럼 자유롭게 모래 언덕을 걸어 올라가고 싶었다. 거기에서 끝을 가늠할 수 없는 지평선을 바라보며 먹먹한 가슴을 주저앉히고 싶었다. 기어서도 오를 수 없는 가파른 모래 언덕을 수없이 미끄러지면서도 이 땅의 본질을 끝까지 온몸으로 느끼고 싶었다.


하지만 1시간 만에 나의 인내심은 바닥이 드러났다. 섭씨 43도의 찌는 듯한 폭염과 숨 막히는 지열, 죽음의 대지는 그렇다 쳐도 생명의 소리 한자락 없는 절대 고독 속의 침묵은 견디기 힘든 시험이었다. 목이 마르다거나 발바닥에 불이 붙는 듯 타들어 올라오는 물리적 감각의 문제가 아니었다. 점차 진공상태로 변하기 시작하는 영혼의 줄기들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하는 것이 문제였다.


사막을 건너보고자 했던 나의 무모한 낭만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수천 년을 응전하며 인내로 대항해온 역사의 두께도 모르고 마주한 잠깐의 용기였다. 붉은 모래밭은 이글거렸고 잔혹한 신의 제단 앞에 선 느낌이었다. 죽음의 벌판에 목숨을 걸고 이동하는 유목민 베두인족은 오직 알라의 계시만을 따를 뿐이었다.


서편으로 기울어지는 태양의 사선을 따라 모래 열기는 30도 중반까지 내려갔다. 라마단 기간인 줄도 모르고 찾아 나선 아라비아 반도 동쪽의 초여름은 견디기 힘든 선물이었다. 이 벌판을 지나면 페르시아만 호르무즈 해협 쪽이다. 석유를 두고 벌어지는 인간들의 갈등이 예리하게 교차하는 곳이다. 사르자와 두바이를 거쳐 지나온 여정이 다시 하늘과 맞닿아 이어지는 아스라한 사막이었다.


먼 지평선은 이제 점점 꿈이 없어져 가는 가난한 나에게, 무엇을 얻기 위해 무엇을 포기할 것인지를 고민하게 하는 매개였다. 오직 육체 한 걸음 한 걸음으로만 전진을 허락하는 모래밭의 느린 시간은 무엇이든 참지 못하고 살아온 지난날을 되돌아보게 하는 순간이었다. 발이 푹푹 빠지는 황야에서 물 한 병 외에는 아무것도 없이 조용한 참회로 마친 하루가 만족스러웠다.


유목민 텐트 난간에 쌓인 무수한 이야기와 지상의 줄기보다 더 깊이 지하로 내려가 물을 찾는 풀뿌리에서 이 땅의 전설들이 속삭이는 것 같았다. 풍장으로 마무리된 목숨이 수없이 떠도는 모래벌판으로 기울어지는 태양을 마주하고 섰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의 모습으로 무소의 뿔처럼 여기까지 달려왔는데 이제 얼마를 더 가야 내 인생 지혜의 샘터를 만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행로였다.


아랍 사람들은 낮에 그늘에서 쉬고 밤이면 모여 음식을 나눠 먹으며 축제를 벌인다. 라마단을 철저히 지키는 것은 그들만의 생존비결이다. 기다릴 줄 알아야 살아남는다.


태어나서 어른이 되고 나이를 먹는 동안 기다리는 대상은 바뀐다. 젊은 날에는 행운이나 또 다른 사람을 기다렸다. 하지만 중년이 지나면서 인간은 운명이나 신을 기다린다. 무엇이 되었든 기다림은 아름다운 미학이다.


사막에서 쏟아질 듯한 별을 보며 잠들고 싶은 날들이 있었다. 벌판 끝단으로 떨어지는 노을을 보며 신기루 같은 잠언들을 입 밖으로 내보내고 싶었다. 석양의 사막은 생텍쥐페리가 만들어낸 어린왕자와 여우가 만날 것 같은 분위기였다. “사막은 아름다워.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디엔가 우물이 숨어있기 때문이야. 눈으로는 볼 수 없어. 마음으로 찾아야 해.” 우주별 몇 개를 거쳐 온 어린왕자가 말이 통하는 여우에게 건너는 언어다.


나는 빛이 사위어가는 지평선의 끝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이윽고 개와 늑대의 시간을 거쳐 라마단의 뜨거운 하루가 저물었다.



한국 인문 기행

남한산성의 겨울

남한산성에 올랐다. 세월에 무너지고 퇴색된 성곽을 따라 겨울이 두껍게 스며들어 있었다. 눈보라가 그치고 쌓인 서설은 발목의 깊이를 덮고도 남았다. 멀리 보이는 남쪽으로의 봉우리들은 몇 겹으로 포개져 엷거나 혹은 보랏빛으로 프리즘을 이뤘고 골짜기에 내려앉은 안개는 고즈넉했다. 청나라의 세력을 온몸으로 막아선 산줄기, 그 엄동설한의 계절 한가운데 남한산성이 있었다. 내성을 지나 외성으로 빠져나오는 봉암성 길을 따라 묵묵히 걸었다. 병자호란 때 행궁에 피신해 있는 임금을 향해 홍타이지 군사가 홍의포를 쏜 곳이다.


전란이 지나고 숙종은 유비무환의 정신으로 산성의 비밀통로와 연결된 지점에서 외성을 쌓았다. 용장대는 숙종 때 다시 성벽을 이어서 보강한 고이다. 본성에 붙여져 다시 줄기가 뻗어 나간 나뭇가지 모양으로 동쪽과 남쪽을 잇고 있었다. 숙종 때 이 고을 책임자 이회가 3년에 걸쳐 백성들과 땀 흘린 역사의 증거물이다. 그렇게 성이라도 쌓아야 안전을 보장할 수 있다고 믿은 당시의 궁여지책이었다.


미끄럽고 험한 이 길을 그 시절에 조선 군사들이 짚신으로 이겨내기는 참으로 고통스러웠겠다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하다. 여름에도 와봤지만 병자호란을 겪었던 그 겨울철에 다시 꼭 밟고 싶었던 남한산성은 긴 세월을 이겨내고 있었다.


눈 덮인 산하에 뚜렷하게 일어서는 산성의 외줄기 회색 곡선은 거침이 없다. 봉우리와 골짜기를 지나 능선으로 끈질기게 연결점을 찾아간다. 검단산에서 이배재고개까지, 이배재고개에서 갈마치고개를 지나 판교까지, 능선 아래로 가늘게 이어지는 길은 겹친 산줄기에 막혀 마침내는 보라색으로 흐려졌다. 일곱 개의 등성이가 포개졌다 엎어지고 갈라지는 남쪽의 풍경은 400년의 풍상을 견디어 내고도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하남과 광주벌에 솟아오른 봉우리들을 접고 반대로 시선을 돌리니 흰 눈 천지의 송파나루가 한눈에 들어온다.


임금의 우유부단함 때문에 항복하지도 싸워보지도 못하고 중간에서 추위와 배고픔에 지쳐있던 백성들은 어둠을 틈타 성을 넘나들었다. 청나라 장수 용골대가 에워싼 산성은 독 안에 든 쥐의 신세였을 텐데 가만두어도 죽거나 항복할 것임을 그들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을 거다. 최명길과 김상헌의 불꽃 튀는 언어의 칼날들이 겨울 눈송이들을 녹였으리라 짐작된다.


병사들의 수어장대와 사방 방어대열에 정신없던 순간에도 최고 의결기구인 임금의 어전회의는 남한산성 초라한 피난처 현장에서 끝까지 우왕좌왕하며 결론을 내지 못했다. 위기를 현실 논리로 풀어야 한다는 최명길의 주화론과 죽고 말지언정 지고불변의 가치를 거스를 수 없다는 김상헌의 척화론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평가할 수 없는 영역으로 남았다.


국가가 위태로운 마당에 임금은 당연히 항복하고 성문을 개방해 백성들에게 생존의 길을 터줘야 한다는 논리에 맞서, 임금이기를 포기하고 항복하려면 나를 죽이고 넘어가라고 말하는 임금을 섬길 수는 없다고 대치하는 동안 무능한 대신들은 시간만 보내고 있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산전도 항복이라는 치욕을 역사에 남긴 안타까운 임금 인조. 이마가 찧기고 백성들을 볼모로 잡혀가는 쓰라린 모습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상처는 어쩌면 당파싸움과 세력대결로 세월을 보낸 조선사회의 예고된 비극이었다.


역사는 다시 되풀이된다. 지금 우리는 피난 갈 산성도 없다. 세상이 모두 전쟁터이기 때문이다. 무기도 깃발도 없이 날마다 쏘아 올리고 목표물을 찾아 끝없는 전투를 벌인다. 살아남는 나라, 앞으로 나가는 그런 백성이 되기 위해 400년 시차를 두고 느끼는 삼전도와 남한산성의 겨울은 비장한 결기를 느끼게 한다. 사방이 적으로 포위되어 있는데도 대결과 증오로 날을 지새우는 안타까움을 우리는 언제까지 견뎌야 하는지 의문이다. 공존보다는 지금 우리는 상대를 밟고야 말겠다는 구태의 절정을 보고 있다.


화친과 전쟁의 외나무다리에서 행동보다 말의 성찬이 난무했던 산성의 겨울은 말 그대로 살아있는 역사다. 그 무익한 시간에 증발해버린 백성들의 피땀은 간 곳이 없고 임금의 모양만 ‘행궁’에 남아있었다. 그런 것이다. 세상의 이치다. 그것을 상식처럼 배웠고 비껴갈 수 없음에 목이 멨다. 무심히 흐르는 한강 줄기 아래 평야에 12월의 한기가 가득하고 때 이른 폭설에 갇혔다가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거뭇한 대지가 흑백의 수묵화로 엉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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