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환단고기 1: 역사의 은자들

   
신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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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가있는풍경
   
16000
2021�� 05��



■ 책 소개


한국정신의 원형, 배달겨레
세계최초, 최고의 문명을 생산한 동이

한국인을 만나려면 만나야 할 책이 있다. 환단고기(桓檀古記)다. 역사서의 어디에도 없는 한국인의 근원을 밝혀주는 책이다. 자신이 살고있는 나라 이름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한국인이다. 자신이 태어난 나라 이름의 의미를 가르쳐주지 않는 나라가 있다. 한국이다.

감히 말한다. 인류문명의 출발이 동방에서 시작했다는 것을. 『소설 환단고기』에서 인류의 원형문화를 만날 수 있고, 근원적인 인류의 정신세계를 연 곳이 동방임을 깨우칠 수 있다. 『소설 환단고기』는 환단고기를 엮은 계연수 선생을 주인공으로 하고, 엮는데 도움을 준 독립군 대장 홍범도와 계연수의 스승이었던 이기 등이 등장한다. 후일 환단고기를 세상에 펴낸 이유립의 아버지인 이관집도 등장한다.

내 조국, 대한민국의 근원을 알고 싶은 사람에게 일독을 권한다. 한민족의 피를 가진 것이 자랑스러운 사람에게 일독을 권한다. 

■ 저자 신광철
저자 신광철은 한국학연구소장이며, 시인 및 작가이다. 한국학 연구소장 신광철은 한국, 한국인, 한민족의 근원과 문화유산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살아있음이 축제라고 주장하는 사람, 나무가 생애 전체를 온몸으로 일어서는 것이 경이롭다며, 사람에게도 영혼의 직립을 주장한다. 나무는 죽는 순간까지 성장하는 존재임을 부각시키며 살아있을 때 살라고 자신에게 주문한다. 그리고 산 것처럼 살라고 자신을 다그친다.

 신광철 작가는 한국인의 심성과 기질 그리고 한국문화의 인문학적 연구와 한국적인 미학을 찾아내서 한국인의 근원에 접근하려 한다. 40여 권의 인문학 서적을 출간한 인문학 작가다. 최근에는 『긍정이와 웃음이의 마음공부 여행』을 두 권으로 묶어냈다. 1권은 ‘꿈은 이루어서 자신에게 선물하는 거야’ 2권은 ‘인연은 사람을 선물 받는 거야’를 발표했다. 

■ 차례
역사의 은자들 
1.역사를 공부하는 약초꾼과 호랑이를 사냥하는 사냥꾼이 만나다 
2.홍범도, 배달동이東夷의 나라를 처음 만나다 
3.이기, 역사의 짐을 지다 
4.세 선비의 만남, 이기 황현 이건창 
5.홍범도, 역사에 눈을 뜨다 

역사동맹을 맺은 사람들 
6.이기, 아버지로부터 역사를 전수 받다 
7.계연수와 홍범도, 역사의식 공유하다 
8.태천의 백관묵에게 《단군세기》를 넘겨받다 
9.사내는 나라에 인생을 묻는다 
10.역사동맹, 계연수 이관집 이상룡의 역사 동지 맹약 

역사의 조각을 맞추는 사람들 
11.인류 최초의 나라, 인류 최초의 문명이 있었다 
12.홍범도, 기사범에게 호랑이를 잡는 법보다 사람의 마음을 잡는 법을 배우다 
13.자유인이 되려면 용서해야 한다 
14.역사의 은자들을 만나다 
15.역사의 잃어버린 조각을 맞추다 

역사를 세우는 사람들 
16.홍범도, 무술을 배우다 
17.병법의 태조, 치우천황을 만나다 
18.이기, 현장으로 나서다 
19.홍범도, 숙련을 기간을 갖다 
20.계연수, 역사세우기를 선언하다 

역사를 전하는 사람들 
21.나철, 유학을 불사르다 
22.이기, 계연수에게 편지를 쓰다 
23.홍범도와 기사범, 마음으로 만나다 
24.단굴암에서 단학도인이 계연수를 기다리다 
25.이기와 나철이 역사의 혁명의 길에 나서다 

역사의 비밀을 캐는 사람들 
26.가장 간결하나 가장 깊은 천부경의 비밀을 깨치다 
27.홍범도, 권법을 실험하다 
28.나철, 환단桓檀의 역사에 몰입하다 

 




소설 환단고기 1:역사의 은자들


역사동맹을 맺은 사람들

이기, 아버지로부터 역사를 전수 받다

거친 파도가 조선을 덮치고 있었다. 은둔의 호랑이 조선은 깨어나 눈을 비빌 사이도 없이 혼돈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조선의 한 복판에서 나라를 구해보겠다고 동분서주하는 혈기 왕성한 중년의 사내가 한양의 종로거리를 빠르게 걸어가고 있었다.


이미 중년의 사내는 노련할 대로 노련했고, 세상을 이해할 만큼 이해하고 있었지만 개인의 힘으로 세상을 바로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기였다. 조선은 상상하기 어려운 상황에 휩싸여 있었다. 청국과 일본이 조선을 삼키려하고 있었고, 민심은 척박해서 혁명의 격랑 직전에 있었다.


이기는 황현과 이건창과 헤어지고 나와 다음 약속 장소를 향해 가면서 혼돈의 바람이 조선으로 거칠게 불어오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조선은 어디로 갈지 방향을 잃고 있었다. 조선은 쇄국으로 자신의 위치를 더욱 잃어버렸다. 주변 상황과 세상 돌아가는 일을 알 수가 없었다.


예측할 수 없는 바람이 불어왔고, 다시 예측할 수 없는 곳으로 바람이 불어가듯 모든 것이 어수선했다. 이기는 자신이 짊어진 짐의 무게가 감당하기 어려운 것을 알 수 있었다. 짐을 지어준 아버지의 말씀이 떠올랐다.


-우리 집안은 역사를 후손에게 전해주어야 할 숙명을 가진 집안이다. 불행인지 행운인지 알 수 없지만 운명인 것은 확실하다. 이암 선생 말고 또 한 분, 우리 고성 이씨 문중에 이맥이라는 분이 계셨다. 이맥 선생은 조선시대 연산군과 중종 때 분으로 연산군에게 미움을 받아 괴산에 유배되었다.


유배지에서 무료해 집에 고이 간직했던 고서(古書)와 이웃 노인들에게서 들은 구전(口傳) 그리고 자신이 관직에 있을 때 발견한 내각(內閣)의 비밀문서들을 참고하여 『태백일사』를 저술하셨다. 그리고 이맥 선생이 후손들에게 이 책을 비장(秘藏)하라 일렀다. 그 책을 나의 아들, 이기 너에게 전술해줄 때가 왔다.


-내가 네게 물려 줄 비서는 《태백일사》다. 비서로서 전해 줄 많은 책이 있지만 《태백일사》는 그중 핵심적인 책이다.

-태백일사(太白逸史)는, 태백(太白)의 잃어버린 역사라는 의미다. ‘큰 백(白)의 잃어버린 역사’라는 의미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크다는 의미인 태(太)를 없애고 나면 결국 남은 것은 ‘백(白)’의 의미다. 백(白)을 알면 모든 것이 풀린다.


-우리나라의 이름에는 무엇이 들어있다고 했느냐?

-해, 즉 태양입니다. 태양을 숭배하는 민족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 태백(太白)이라고 하면 큰 태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백(白)이 태양이라는 말씀이십니까?

-이건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백(白)자를 풀면 ‘해가 들어온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기는 아버지가 해석하는 의미가 놀라웠다. 그렇게 생각한 적이 없었다.


-이제 이해가 가느냐?

-예. 이해가 갑니다. 해를 받아들이는 것이 백(白)이고, 앞서 말씀하셨던 환(桓)의 의미가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태양의 밝은 기운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환(桓)은 환하다는 말을 한문으로 풀어서 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큰 해를 몸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태백이 되겠군요. 그렇다면 백(白)은 환(桓)과 같은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아들 이기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이 부드러워졌다. 따듯하고 넉넉한 마음으로 대견스럽게 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의 성산을 백두산(白頭山)이라고 한 것과 같은 원리다. 백두산과 같은 의미의 이름으로 태백산(太白山)이 있다.

-그러면 우리가 흰 옷을 입고 사는 것과도 연관성이 있겠군요.


-그렇다. 백의민족이라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백(白)은 태양족의 상징적인 글자이고, 우리를 일러 하늘의 자손이라고 해서 천손민족이라고 한다. 해를 받아들였으니 가장 밝은 모습을 가지게 된 것이 태백(太白)이다. 곧 우리 선조들은 우리의 상징적인 것이 태백이다. 세상에서 가장 밝은 색은 흰색이다. 태백을 상징하는 대표색이 붉은 색이 아니라 흰색이다. 곧 우리는 태양족을 상징하는 흰옷을 입는 것이다.


-소복마저도 흰 것이 여기에 기인하다고 보면 됩니까?

-그렇다. 소복(素服)은 흰 옷이라는 의미 아니더냐?

-예 그렇습니다.

-죽어서 다시 돌아가는 곳이 어디라고 했느냐?

-북두칠성이라고 하셨습니다.

-북두칠성에서 올 때 태양을 받아들여서 흰빛으로 태어났으니 다시 돌아갈 때 흰 빛으로 입고 돌아가는 것이다.


-하나하나가 신기합니다. 그런 깊은 의미가 있는 우리민족인 줄 오늘에야 알게 되어 송구스럽습니다.

-네 잘못이 아니다. 지금 조선은 유학에 빠져 공자와 맹자만이 살아남았다. 우리 것은 버리고 남의 것으로 살고 있는 형국이다.


-저희 후대가 전해야 할 비서가 있다고 하셨는데 두렵지 않으셨습니까?

-어찌 두렵지 않기야 하겠느냐. 하지만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는 것을 걱정하는 것은 괜한 걱정이다. 발각되면 어찌하겠느냐. 받아들여야지.

-그러면 비서들이 집안에 있단 말씀입니까?


-《태백일사》와 《단군세기》가 그 중 으뜸이고, 관련고서들이 십여 권 있다. 찾아내 수거하려는 왕도 가련하고, 그런 처지에서 살아가는 조선 사람들의 처지도 가련하다.


-어떤 연유에서 그렇습니까?

-나라 관계를 하나의 원리에 의해 작용한다. 힘이다. 조선은 약자다. 그러니 강자들의 비위를 맞춰야 한다. 수서령(受書領)은 여러 번 있었다.


놀라운 일이다. 책을 숨겨놓았다고 해서 참형을 시켜야 하는 무서운 이유가 있을 것이다. 책을 숨겨놓았다고 사형에 처해지는 무서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강국에 의해 약소국은 엎드려야 했다. 조선 초에는 우리는 천자의 나라가 아니라고 스스로 머리를 숙여야 했다.


이후에도 여러 번 나라에서는 수서령을 내려 책을 거두어들였다. 그리고 분서(焚書)를 했다. 정묘호란 때에도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버티다 삼전도에서 항복하고서는 천자의 나라인 것을 적은 책들을 수거해 불살라 버렸다. 명나라와 청나라가 천자의 나라이고, 진정 천자의 명맥을 이어 온 조선은 천자임을 포기해야 했다.


-그러면 아버지는 어떻게 이를 지켜오셨습니까?

-내가 이야기하지 않았느냐. 다시 말하지만 우리 고성 이씨 집안에서도 우리 집안은 역사의 큰 짐을 끌어안을 수밖에 없는 사연이 있다.



고성 이씨 집안은 역사의 증인이었다. 역사의 증언을 할 수 있는 집안이었다. 고대의 역사를 직접 저술한 집안이었다. 《단군세기》와 《태백일사》를 저술한 집안이었다. 지켜온 것뿐이 아니라 직접 저술한 집안이었다. 조선에서 더 이상의 고대 조선의 역사를 알고 있는 집안은 거의 없었다. 당연히 역사의 짐을 질 수 밖에 없었다.


-아버지. 우리 집안이 역사의 산실이네요.

-그렇다. 우리 집안이 우리 역사의 중심이다. 그러기에 두렵고 벅차다.


조선의 상고사와 고성 이씨 집안의 내력은 깊었다. 이기는 상고사와 접하게 되고 역사의 짐을 짊어질 수밖에 없는 사유를 전해 들었다. 개인의 일이 아니라 조선인 모두에게 밝혀야 할 역사였다. 세상에 밝혀도 좋을 광명의 시기가 올 때까지 계속 비장해야 할 책들에 대한 사연과 아버지의 당부였다.


짊어진 짐을 넘겨주어야 하는 아버지의 마음이나 넘겨받아 짊어져야하는 짐을 받은 아들이나 마음이 무겁기는 마찬가지였다.


-목숨을 건 짐이네요.

-그렇다. 그러나 어찌하겠느냐?


부자는 한동안 말이 없이 서 있었다. 숨겨놓은 비서를 찾기 위해 집을 뒤지고 간 것은 잊고 생각에 잠겨있었다.


《태백일사》는 조선에서 단 한 권이었다. 집안 어른인 이암이 저술했기 때문이었다. 집안의 비서로 대를 이어서 전수해 온 책이었다. 다른 책은 누군가가 가지고 있을 수 있었지만 《태백일사》는 유일본으로 하나뿐이었다. 이기는 호기심이 발동했다. 내용이 알고 싶었다. 도대체 어떤 책이기에 집안에서 대를 이어오면서 지켜야 하고,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가 알고 싶었다.


-오늘은 이만 쉬자. 차차 알아가도록 하자.


아들에게 위험을 안겨주는 아버지로서의 마음이 무거웠다. 한 번에 전해줄 수 있는 내용도 아니었다.


역사동맹, 계연수 이관집 이태집 이상룡의 역사 동지 맹약

-우리 조선인에게 역사의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이상룡이 계연수에게 물었다. 조선인에게, 라는 단서를 붙였다.


-저는 역사 자체도 중요하지만 역사 속에 숨어있는 정신에 더 주목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역사에는 위대한 정신이 들어 있습니다.

-어떤 정신이지요?

-나라가 성립되려면 문화가 먼저 있어야 가능합니다. 인류 최초의 나라가 세워지는데 당연하게 문화가 먼저 확립되고, 나라가 건국됩니다. 건국이 된 이후에 문화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국가조직이나 국가이념을 만들고 운영할 능력이 있어야 나라가 세워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군요.

-결국 문화는 정신으로 만들어진 사고의 틀입니다. 집을 지으려면 집의 구조가 머릿속에 있어야 가능합니다. 정신이 집의 구조를 만들어내고, 집이 완성되도록 합니다.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인류 최초의 나라가 있었는데 그 나라가 환국입니다.


계연수는 이야기하면서 산에서 만난 홍범도에게 설명했던 홍익인간에 대해 다시 설명을 했다. 어떤 건국이념도 따라올 수 없는 큰 건국이념이었다. 인류 전체를 하나로 손잡게 할 수 있는 위대한 건국이념이었다. 계연수는 자신의 집에 비서로 간직하고 있는 《삼성기》상편을 외우고 있었다. 길지도 않았다.


비서를 간직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비서의 내용을 외우고 다녔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화재나 책을 소지한 것이 발각될 경우에 대비해서 내용 전체를 암기하고 다녔다. 계연수도 마찬가지였다.


역사에 대해 생각할 때 《삼성기》첫 머리가 떠올랐다. ‘오환건국최고(五’桓建國最古)‘ 우리 환족이 세운 나라가 가장 오래 되었다는 선언이었다. 부연하면 이 말 속에는 모든 것이 다 들어 있었다. 나라가 세워지려면 정신이 필요하고, 정신으로 만들어진 문화가 필요하다. 곧 최초의 문화가 만들어진 사회였고, 최초의 국가조직을 완성시켰다는 의미를 가진다.



역사의 비밀을 캐는 사람들

가장 간결하나 가장 깊은 천부경의 비밀을 깨치다

묘향산 중턱에 있는 단굴암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아름다웠다. 산과 산이 중첩되어 원근을 수묵의 짙고 얕음으로 밝혀주고 있었다. 멀수록 색이 옅어지고 다가올수록 색이 진해졌다. 산 밖에 산이 있고 그밖에 다시 산이 있었다. 산으로 바다를 이루고 있었다. 밀려오는 바닷가의 파도처럼 산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계연수는 산의 중첩이 자신의 역사공부와 같다는 생각을 했다. 양파처럼 파고들수록 속은 보이지 않고 새로운 속이 나오는 것 같았다.


한 사람의 짧은 인생으로 수천 년의 역사를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지만 중심 뼈대만이라도 파악하고 싶었다. 환민족의 역사는 더욱 아득해서 좀처럼 뼈대를 파악하기 힘들었다. 거기에 정신은 오묘하고 깊었다. 특히 천부경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암호를 푸는 것 같았다. 계연수는 이번에 만난 단학도인에게서 제대로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강했다.


-천부경의 핵심을 한 마디로 하면 무엇입니까?

-앞서 말했지. 인본이라고. 사람이 중심인 사상이고 철학이지.


계연수는 단학도인이 좀 전에 말했던 것이 떠올랐다. ‘123은 분별할 수 없이 다 같이 중요하기에 천일(天一), 지일(地一), 인일(人一)이라고 하지만 특히 사람에게는 태일(泰一)이라고 하며 하늘과 땅의 기운을 모두 담았기 때문에 클 태(泰)를 넣었다. 우리의 철학은 인본에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분명한 근거’라고 했었다.


-아하. 말씀하셨습니다. 인일삼(人一三)이라고 했습니다.

-세 개의 기둥으로 天一一, 地一二, 人一三이라는 것을 눈여겨보아야 하네. 사람이 3본질 중 같은 무게로 중요해서 1이면서도 3이라는 것에 방점이 있네. 그리고 하늘과 땅과는 달리 사람을 泰一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조금은 이해가 됩니다.


단학도인은 확실하면서도 단정적으로 설명을 했다.


-인간을 피조물이 아니라 북극성이라는 하늘에서 왔고, 천지로부터 대광명의 기운을 받아서 사물을 보고 느끼고 판단하는 영적 존재로 보는 것이 우리의 우주관일세.

-놀랍습니다.

-내가 틀릴 수도 있을 걸세. 틀렸다면 바로 세워야 할 사람이 자넬세.

-왜 저여야 하나요?

-이유가 어딨나. 스스로 선택한 사람이 바로 자네인 걸.

-제가요?

-그렇지.


계연수는 기가 찼다. 더 이상 물어보기도 벅찼다. 내가 선택한 것을 내가 모르고 있으니. 다만 스스로 다짐했다. 역사의 길로 들어서기로. 그것이 운명이었다는 것인가.


-역사의 의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역사는 역사적 사실을 아는 것은 기본이고, 핵심은 역사에서 긍정을 배우라는 것일세.

-역사적 사실을 확인하는 것보다 역사에서 긍정을 배워야 하는 것이 먼저라는 말씀이시지요?

-그렇네. 역사적 사실을 알아서 어디다 쓰겠나. 배울 것이 있는 역사만이 역사지.


계연수에게는 충격적인 말이었다. 역사적 사실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던 자신을 돌아보았다. 단학도인의 말이 옳았다. 역사적 사실을 알아서 현재를 알고 미래로 가는 바른 길을 찾는 것이 아니라면 역사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배울 것이 있는 역사만이 역사’ 라는 말이 마음을 흔들었다.


-우리의 역사에서는 무엇을 배워야 합니까?

-근원일세. 처음의 취지가 너무 좋네.

-근원이라고요. 그리고 처음의 취지라면?


계연수는 짚히는 것이 있었지만 확연치 않아 되물었다.

-예를 들면 천부경이 그렇지 않나. 단순하면서도 명쾌하게 81자로 우주의 원리를 설명하고, 인본을 말하고 있지. 우주의 원리를 만들어낸 민족이니 이를 근간으로 너와 내가 ‘큰 하나’가 되어 함께 잘 사는 나라를 만들자는 것이지.


단학도인의 말은 막힘이 없었다. 거침없이 달려가는 바람처럼 후련했다.

-‘큰 하나’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말 그대로일세. 애초에 한 나라에서 출발했으니 다시 큰 하나로 통일해 다툼 없는 나라를 만들어 보자는 것이 바람일세.


-애초에 한 나라였다는 것을 인정하십니까?

-환12국이라고 하지 않나. 일종의 연합국인 셈이지. 12부족이었다는 이야기 아닌가. 이들이 분열되고, 연합하면서 지금에 이르고 있지 않는가. 다른 나라들이 모여 함께 잘 살아보자는 것일세. 역사를 바로 알려 근원으로 돌아가 싸움이 없는 세상을 만들어보려는 불쏘시개가 우리의 역사라고 생각하네.


단학도인과 이야기를 하면서 역사인식에 대한 벽을 느끼고 있었는데 해소가 되었다. 애초에 하나였으니 싸움이 없는 큰 하나로 뭉치게 하는 것이 우리민족의 역사라는 생각이 머리에 남았다.


-천부경은 신비롭습니다. 해석 또한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듯합니다.

-삶은 흔들리는 물 위에 정지하려는 배와 같은 것일세. 천부경도 마찬가지로 멈추지 않고 움직이는 우주의 원리를 정지된 정의로 내리려는 시도가 천부경으로 나온 걸세. 자네의 말처럼 결국 해석 또한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것이 되었네.

-그럼에도 정의는 내려져야 하는 것 아닙니까?

-당연하지. 정의는 필요하네. 그래서 하늘과 땅의 일을 완성되지 않은 사람의 언어로 정의내린 것이 천부경 아니겠나.


계연수는 단학도인과 함께 하고 있는 것이 꿈인가 생시인가 싶었다. 홀로 마음의 결정을 하러 찾아온 단굴암에서 단학도인을 만난 것이 놀라웠다. 스스로가 놀라웠다. 단학도인의 말처럼 결국 내가 갈 길은 정해져 있었던 것이구나 싶었다. 멀리서 늑대가 울고 있었다. 유채색도 무채색으로 변하는 굴 안에서는 늑대의 울음이 멀고 멀었다.


나철, 환단의 역사에 몰입하다

나철은 책을 펼쳐 보다 궁금증을 견디지 못하고 이기에게로 달려갔다. 지금까지 알고 있던 하은주(夏殷周), 또는 하상주(夏商周)라고 하는 나라들이 고조선의 신하국이었다는 기록이었다. 물론 이기에게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대부분 기록에 의한 근거를 제시하며 이기는 말했다. 그리고 논리적으로 설명을 해서 이해가 쉬웠다. 나철 혼자 서책을 보니 설명이 없어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마음은 급하고 알 길은 없으니 이를 알고 있을 이기를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나철의 마음에는 역사로 가득 차 있었다. 이기의 이야기는 지금까지 나철이 가지고 있었던 역사를 뒤집고 있었다. 나철을 흔드는 것은 이기가 근거로 내세우고 있는 것들이 살아있는 언어로 존재하고 있고, 근거가 확실했다는 점이었다.


-중화가 이야기하는 하은주라는 나라에 대해 먼저 알고 싶습니다. 우리가 중화에서 배워왔다고 알고 있는 저 같은 사람이 이제 눈을 뜨기 시작했습니다. 중화의 근원이 우리였음을 이제 막 봤습니다. 한데 하나라와 은나라는 과연 중화의 첫 나라이고 우리보다 앞선 나라입니까?

-인류 최초의 나라는 대륙에 있었네. 환국이 인류 최초의 나라일세. 이후 환국에서 독립해 동쪽으로 온 사람들이 세운 나라가 배달겨레의 단국일세. 그리고 이어진 것이 고조선으로 보면 되네.


-그러면 하(夏)나라는 언제 세워진 것입니까?

-하나라는 고조선 때에 세워졌으니 한참 후의 일이네. 하나라가 세워지기 전에 있었던 환국이나 단국으로 보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오랜 역사를 가진 것이 환민족의 역사일세.

-근거는 어디에 있습니까?

-중화의 기록에도 있네. 사기를 살펴보면 일부지만 보이지. 숨기고 싶었고, 버리고 싶었겠지만 차마 버리지 못한 것들의 흔적이 여러 곳에 있다네.


이기가 걸으며 잠시 말을 멈추었다 다시 시작했다.


-<은나라는 동이족이 세운 나라요, 주나라는 우리 화하족이 세운 나라네. 온왈이주왈화(殷曰夷周曰華)>라고. 은(殷)은 동이족이라 하고, 주(周)는 화하족이라고 한다는 말일세. 은나라 당시 서경(西境)의 산시성에 있던 주(周)나라 민족은 제후(諸侯)로서 은 왕조에 복속되어 있었네. 주나라가 중국 민족의 기원인 화하족(華夏族)일세. 조금 더 부연하면 동이족 유목민들이 우수한 금속 문화를 바탕으로 화하족 농경민들을 지배하는 구조가 사실상 최초의 중국 왕조였다고 할 수 있지.


-은나라는 제후국(諸侯國)이란 말이 나오던데요.

-그렇네. 하은주 모두 제후국이라고 하는데 제후국이 무엇인가. 왕이 있으면 그 아래에 있는 소국의 왕들이나 재상들을 말하는 것 아니겠나. 어느 나라의 제후국이라고 생각이 드는가. 자신들이 최초의 국가라고 하면서 다른 곳에서는 제후국이라고 적어놨지. 앞뒤가 안 맞네. 속이려다 진실이 툭 튀어나온 모양일세.


길거리 강의였다. 나철은 많은 애국지사를 만나고, 역사에 통달했다고 하는 사람을 만나보았지만 우리의 전통과 우리의 역사에 대해서 이처럼 해박하고 정확하게 짚어내는 사람을 만나보지 못했다. 이기는 놀라웠다.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시작되었는지에 대해서 설명하는 사람이 조선 팔도에 없었는데 나철에게 이기는 혁명적인 사람이었다.


-우리의 칠성문화는 아주 여러 곳에 남아있네. 어머니가 정안수를 장독대 옆 칠성단에 모셔놓고 새벽을 빈 것도 칠성이고, 우리나라 무속 중에서 가장 큰 굿거리는 칠성굿거리일세. 우리 민속의 오래고 오랜 칠성신앙이 절에도 남아있네. 대웅전 뒤에 칠성각으로 모셔져 있고, 현재의 조선소에서도 소격서 1곳을 두어 봄 가을로 초제(醮祭)라 하여 북두칠성에게 제사를 지내고 있네.


-제가 모르는 것에도 칠성문화가 담겨져 있었네요.

-문화는 역사처럼 한 번에 사라지지 않네. 특히 민간에 드리워진 문화는 더욱 오래 가지. 지금은 드물지만 신랑 신부가 결혼식을 올리면서 맨 먼저 지내던 초례(醮禮)는 칠성님께 드리는 인사였다네. 그리고 상투를 틀 때에 어떻게 트나?

-앞으로 4번, 뒤로 3번 꼬아서 틉니다.

-이유를 생각해 보게.

-아하 그렇군요. 7번입니다.

-그렇네. 7번으로 칠성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걸세. 상투는 세상에서 우리 조선인만 트네. 칠성의 상징이 바로 상투라네.

-정말 놀랍습니다. 그것도 모르고 상투를 틀고 다니면서 상투의 의미를 모르고 있으니.

-정확하게 상투는 북두(北斗)를 받아들인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물일세. 때문에 상두(上斗)로 쓰고 상투라고 읽는 것일세.

-말씀을 들을수록 문화의 발원지가 우리 민족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렇지. 청나라 심양의 고궁 봉황루에 ‘자기동래(紫氣東來)’라는 현판이 걸려있다네. 자주빛 서기가 동쪽에서 온다는 뜻일세. 여기서 자기(紫氣)는 태양빛을 말하고 있는 것이고, 문화의 발원지가 동쪽이어서 동쪽으로부터 문화가 온다는 말일세.


나철은 결심했다. 역사를 이제 막 깨우치기 시작했는데 역사를 배우는 것은 나를 살리고, 나라를 살리는 일이고, 민족을 살리는 일이었다. 또한 인류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생명의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역사의 새싹이 봄처럼 돋아나고 있었다. 나철은 환단(桓檀)의 경이로운 역사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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