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내가 마음에 들었지만, 자주 내가 싫었다

   
김우석
ǻ
필름
   
14000
2021�� 07��



■ 책 소개


“질문은 늘 나를 향해 있는데,
나는 내가 아닌 타인을 통해 답을 찾으려고 했다.”

『가끔 내가 마음에 들었지만, 자주 내가 싫었다』는 김우석 작가의 첫 번째 산문집으로, 빛이 보이지 않는 긴 방황 속에서 흔들리고 부딪히며 불안했던 완전하지 못한 마음의 문장들을 담고 있다. 우리는 모두 완벽하지 않다. 그 불완전함이 때로는 걸음을 멈추게 하고, 눈물짓게 하고, 후회와 상처를 남기기도 하지만, 저자는 “성장은 아픔 속에서 위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밑으로 깊어지는 것”이라고 말하며, 결국 온전하지 못한 시간을 모른 척하지 않고 받아들인다면, 반드시 내가 나로서 깊어지는 순간을 만나게 될 것이라 말한다.

매순간 마음을 다하고 최선을 다해 걷고 걸었는데도, 도착지는 여전히 멀게만 느껴질 때가 있다. 혹시 길을 잃은 것은 아닌지, 갈림길에서 잘못 선택한 것은 아닌지, 때때로 불안한 마음이 걸음을 멈칫하게 만들고 확신할 수 없는 내일의 막막함에 오늘을 망치고 만다. 하지만 저자는 불안정한 시간 속에서도 지금 이 순간의 일상에 집중하며 순간의 소중함을 기록한다. 결국 모든 것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남겨지는 것임을, 그래서 더 애틋함을 깊이 있는 문장과 따뜻한 온도로 전한다. 

■ 저자 김우석
바다 보고 싶다는 말로 지쳤다는 말을 대신합니다.
혼자 이겨내기 위해 바다를 찾습니다.
바다에게 마음을 내어주면 파도가 마음을 쥐여 줍니다.
무겁게 건넨 마음이 잘게 부서져 돌아옵니다.
부서지는 존재들에 어쩔 수 없이 마음이 갑니다.
사라짐이 아니라 남겨짐이라서 그렇습니다.
포기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든 살아보겠다는 겁니다.
@at.7am

■ 차례
프롤로그

1부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
우리도 우리를 모르고
심목일
무지개의 마음
당신에게 묻고 싶은 밤
우리는 가장 빛나는 순간을 살고 있다
투명한 술잔
마음의 열쇠
그리움의 계절
너는 자라 네가 되길
네 진짜 마음이 뭐야?
가장 잃고 싶지 않은 것
마음
시옷처럼 살아도 괜찮겠다
몰랐던 소중함을 알게 되면 그땐 그리움이겠지

2부
다정한 사람보다 평범한 연애가 어려울 뿐
반쪽 눈물의 의미
오늘도 해주고 싶은 말
행복에 취하는 밤
오늘 날씨가 참 좋아요
사랑이 삶의 일부가 됐을 때
노력 없는 사랑
연필, 심
함께라면 좋겠다
무엇이 사랑을 시작하게 하는 걸까?
사랑이 사람으로, 사람이 사랑으로
언제라도 어디에서라도
과대망상증
상처를 받지 않으려면, 상처를 주지 않으려면
지나간 사랑을 계절이라고 불러야겠다

3부
새벽이 익숙해진다는 것
가끔 여행을 떠나고 자주 방황을 한다
그 시절, 우리
상처받아도 사랑하고 싶은 마음
초승달
끝내 닦지 못한 먼지
노을
독서 모임
새벽 거리
혼자여도 괜찮아
나의 진심에도 어쩔 수 없는 것
한파주의보
살아내느라 참 애썼다
한 번쯤 그런 날
불안한 자신을 불안해하지 않았으면 해

4부
바다 보러 가자
침묵이 전하는 위로
두 발
사람이 죽으면 꽃이 필까
애증의 관계
작은 다짐
6월
부서지는 파도가 만든 깊은 바다
빛이 사라져도 난 사라지지 않는다
온탕과 열탕 사이
흔적을 남긴 사람
방황이 길어진 이유
빨간 불이라면 잠시 멈춰 줄래?
물음표를 간직하는 사람
여행자의 눈
가끔 내가 마음에 들었지만, 자주 내가 싫었다

엔딩크레딧

 




가끔 내가 마음에 들었지만, 자주 내가 싫었다


우리는 가장 빛나는 순간을 살고 있다

잘하고자 하는 마음이 사소한 일로 무너지기도 한다. 알아가고 싶은 사람이 가벼운 오해로 멀어지기도 한다. 최선이라는 말 앞에서 자주 넘어질 테다. 안 되는 일은 무엇을 해도 나의 것이 되지 않고, 되는 일은 무심함 속에서도 이루어진다.


넘어지고 무너져도 자신을 미워하지 않았으면 한다. 힘들어도 다시 한 번 일어나려고 애쓰던 너의 모습을 대견하게 여겼으면 좋겠다.


너는 너의 시간 속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을 살고 있다고. 여름이 오기 전 꼭 말해주고 싶었다.



마음

뼈가 부러지기보다 모퉁이에 부딪혀

멍이 드는 일이 많듯

살다 보면 별거 아닌 일에

우리는 자주 아픔을 느낀다.



오늘도 해주고 싶은 말

꽃을 보니 네가 더 보고 싶어. 뻔하지 않은 말들로 매일 똑같은 하루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 바쁘다고 서로의 안부를 미루지 않는 것. 그러면서 서서히 서서히 서로의 일상이 되어주는 거야말로 사랑이지 않을까.



오늘 날씨가 참 좋아요

하필 사랑의 밝음을 봄으로 표현하는 걸까 묻는 당신에게 나는 이렇게 말했다.


“눈빛에 봄 햇살을 담기 적당해서, 좋아하는 향수를 연풍에 흩날리기 적당해서, 손잡고 걷기 적당해서, 그러다 서로의 눈이 마주칠 때면 봄이란 계절이 마음에 머무르기 적당해서.”


오늘도 봄은 세상에 흔적을 남기고 있다. 오늘 날씨가 참 좋다. 날씨가 좋다는 건 봄을 핑계로 꽃을 이야기할 수 있고, 꽃을 핑계로 너를 알아갈 수 있다는 어설프지만 꽤 설레는 가능성이니까.


“오늘 날씨가 참 좋아요”란 말은

어쩌면 “오늘 한 번 볼래요?”를

말하는 건 아닐까.



사랑이 삶의 일부가 됐을 때

주변에서 오래 만나는 연인을 보면 대부분 비슷한 특징이 있다.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여 억지로 하나가 되려고 하기보다 사랑을 통해 서로의 세상을 키운다는 점과 서로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존중하여 둘 안에서 편안함을 느낀다는 점. 이들은 사랑할수록 더 성숙해진다. 사랑이야말로 온전한 나를 알아갈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간이다. 이해와 배려를 통해서 한층 성숙해질 수 있고, 고마움과 서운함을 통해서 진솔한 감정이 무엇인지 알 수 있으니까.


한편 안타까운 연애를 하는 연인도 있다. 상대를 소유하려고 하는 연애는 비극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그들의 연애 동기를 살펴보면 대부분 내면의 결함이나 순간의 외로움을 채우려고 시작하였다.


내면의 결함은 낮은 자존감에서 비롯되었다. 사소한 오해가 심한 질투와 열등감으로 커져 상대에게 집착과 의심하기 시작하면서 관계의 신뢰가 깨지고, 본인이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오히려 상대를 옭아매어 점점 지치게 만든다.


순간의 외로움을 채우려고 시작한 연애는 이기적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본래 채움이 목적이었기에 그 목적을 달성하고 나면 관계가 허무하게 끝나거나, 연애로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에 사로잡혀 오히려 전보다 더 방황하게 된다.


스스로 온전하지 못하면 결국 같은 이유로 무너진다. 자신의 감정에 도망치지 않았으면 한다. 아픔을 마주하는 일이 실질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하더라도, 아픔을 겪고 있는 나를 모른 척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자신에게 당당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성장은 아픔 속에서 위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밑으로 깊어지는 것이니까.


바다가 파도를 자신의 일부로 여기듯, 나무가 바람을 자신의 일부로 여기듯, 스스로 온전하면 사랑도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진다.



무엇이 사랑을 시작하게 하는 걸까?

소란스러운 주말을 보냈다. 생각이 많아졌다. 생각은 생각을 낳고 또 다른 생각으로 이어졌다. 생각이 걱정으로 변하는 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한톤만큼 쌓인 걱정과 우중충한 날씨가 더해져 온종일 흐린 마음이 계속됐다. 그 시작은 기대였다.


나는 무언가 기대하기보다 실망을 피하려는 습성을 지녔다. 느닷없는 기쁨은 오롯이 느낄 수 있지만 예고치 않은 실망은 사람을 자주 무너뜨린다. 실망을 피하는 것만으로도, 특별하지 않아서 괜찮은 하루를 보낼 수 있고, 행복하지 않아도 불행하지 않은 삶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창밖으로 빗소리가 들렸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바라보고 있자니 예전에 썼던 무지개 글이 떠올랐다. 이름 모를 당신의 슬픔에 대해 생각하다가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비구름이 마음에 자오록했다. 짙게 깔린 먹구름이 마음을 혼란스럽게 했다. 시간이 지나고 빗줄기가 굵어지면서 후드득 소리가 방안을 가득 메웠다. 기대는 어디서부터 시작하는 걸까. 기대한다는 것은 좋아함의 시작인 건지 사랑의 시작을 의미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좋아한다는 것과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좋아한다는 마음은 가장 아름다운 걸 그려주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예컨대 달을 그리고선 앞으로 저 달을 보며 당신을 생각하겠다고 하는 마음이랄까. 하지만 사랑한다는 마음은 다르다. 물통을 각막 안으로 들이붓고서 온 세상이 당신의 색으로 물들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기대는 불안을 만들어냈다. 나는 불안을 덜어내기보다 기대를 덜어내려고 했다. 갖지 않으면 잃지 않아도 된다. 뜨거워지지 않으면 식지 않아도 된다. 잡지 않으면 놓지 않아도 된다. 행복하지 않으면 아프지 않아도 된다. 그렇게 기대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써 내려가다가 기대하게 되는 이유를 떠올렸다. 기대하게 되는 이유는 간단했다.


마음이 계속 그 사람에게 향해 있었다. 잠은 잘 잤는지, 밥은 챙겨 먹었는지, 일은 힘들지 않은지, 사소한 일상에서 시작하다가 불 꺼진 침대 위에서 오늘 하루는 어땠냐고 말해주는 것. 그리고 당신 생각에서 당신 생각으로 하루의 시작과 끝을 맺게 되는 것이 기대하게 되는 이유였다.


비가 더욱 세차게 내렸다. 어둠 사이로 환하게 비추고 있는 빛이 거센 빗줄기에 흔들거린다. 어쩌면 어둠이 흔들거리는 것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한참을 바라보다 나는 일렁이는 어둠에 소란한 마음을 내어주었다.


어느덧 창문을 비집고 들어온 햇살이 어둠을 밀어내고 있었다. 그제야 밀리는 어둠 뒤로 소란스러웠던 고독이 서서히 눈을 감았다.



가끔 여행을 떠나고 자주 방황을 한다

여행 가고 싶다는 친구의 말에 함께 있던 친구 두 명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여행이란 단어가 그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들은 돌아가면서 평소 자신이 마음속에 품었던 장소를 소개하고 그곳에 가면 무엇을 보고, 무엇을 할 것인지 장황하게 여행 일정을 늘어놓았다. 누구 하나 물어보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친구들의 목소리에는 힘이 실려 있었고 눈에는 빛이 서려 있었다. 당장이라도 떠날 수 있는 사람처럼 용맹스러웠지만, 현실이란 커다란 벽 앞에서 용(勇)은 사라지고 결국 맹한 사람으로 남겨졌다.


떠나려는 생각과 떠나는 행동 사이에는 괴리가 존재했다. 행동은 늘 우리를 불안하게 만든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행동보다 언제나 걱정이 앞섰다. 포기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끝내 두려움을 이겨내고 생각을 행동으로 옮겼을 때 현실은 의외로 견딜 만했었다. 쓸데없는 걱정이었음을 행동을 하면 깨달을 수 있다. 생각이 생각으로 그치면 생각에서 머무르게 된다.


여행의 이유는 간단했다.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기 때문이다. 직장 다니는 친구들을 보면서 그들에게 일상(日常)은 매일 반복되는 단조로운 생활이 아니라 항상 일만 생각하는 ‘일’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말은 일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말인 셈이다. 힘들게 일해서 번 돈이 일에서 벗어나기 위해 쓰인다.


이번엔 나를 돌아봤다. 일상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헤매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삶에서 여행은 어떤 의미일까? 왜 많은 사람들이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일까? 그렇다면 일상은 무엇인가?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한참을 고민하다 내가 찾은 답은 이러했다. 여행은 어쩌면 돌아올 곳에서 잠시 멀어지는 시간이지 않을까. 여행은 낯설다. 삶에 지친 내가 떠난 곳은 언제나 생소한 곳이었다. 낯선 공간으로 떠나온 나는 익숙한 공간에서 머무는 나를 바라봤다. 잠시 떨어져 바라본 지난 세월의 발자국 속에서, 알았지만 놓친 것들과 몰라서 놓친 것들을 볼 수 있었다.


돌아올 곳에서는 다양한 의미가 존재했다. 일상이란 시간의 개념일 수도 있고 집이란 공간적이거나 나라는 철학적으로도 해석할 수도 있다.


여행은 돌아올 곳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여행이 아니라 방황이다. 나도 마찬가지로 방황했었다. 2년이란 긴 시간 동안 이리저리 헤매었다. 나에게 일상은 불안의 연속이었고 심리적으로 집이란 공간을 잃었으며 불행으로 나 자신을 부정했었다. 돌아갈 곳이 존재하지 않는 나는 계속해서 떠돌아다녔다.


방황도 낯선 시간이다. 그 시간을 견뎌내면 여행과 마찬가지로 낯선 공간으로 떠난 내가 익숙한 공간에서 머무는 나를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나는 방황을 통해 내가 놓쳤던 나를 알게 되었다. 머리보다 가슴을 따르기로 했고 돌아갈 곳이 반드시 집이 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불행을 나 자신의 일부로 여기게 되었다.


방황을 시작할 때 나는 누군가에게 의지하려고 했고 시간이 나를 기다려주기를 바랐었다. 그 마음이 커질수록 나로부터 멀어졌다. 돌아갈 곳이 아니라 가야할 곳만 생각했던 것이 잘못이었다. 꿈이 없다고 하면서 다가올 순간에만 집착했기 때문이었다. 나에게 돌아갈 곳은 존재하지 않았고 나는 더욱 멀어졌다. 그 혹독한 시간을 겪고 나서 나는 비로소 혼자가 되었다. 형편을 탓하지 않게 되었고 지난 시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나는 가끔 여행을 떠나고 자주 방황을 한다.

과거의 나에게서 현재의 나를 놓치지 않기 위해.



살아내느라 참 애썼다

혼자 떠난 속초에서 처음 바다를 보았을 때 나는 가벼이 일었다가 모래알처럼 부서지는 파도에 마음을 빼앗겼다. 파도는 쉴 새 없이 부서졌다. 흰 이빨을 드러낸 맹수처럼 무섭게 달려드는 파도는 뭍에 다다르자 야수성을 잃고 잘게 흩어졌다. 부서진 파도는 밀려왔다가 밀려가기를 반복했다. 일부는 모래를 적시고 깊게 스며들었다.


되돌아가지 못한 것일까

되돌아가지 않은 것일까


부서지는 존재는 아프기만 하다고 생각했다.


옛 추억이 깃든 건물이 허물어지고 낯선 건물이 새로 들어섰을 때 추억이 사라지는 듯했고, 익숙함으로 소홀한 사랑은 날끝으로 서로를 찔러 상처로 부서진 이별이 되었고, 처음으로 이루고 싶은 꿈은 나를 위한다는 주변의 충고와 시선에 흩어져 현실이란 조각을 남겼기에, 그동안의 부서짐은 사라짐에 불과했다. 그러나 오늘 바라본 파도의 부서짐은 달랐다. 부서지는 파도는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하는 것 같았다.


지나온 세월과 앞으로 남은 세월의 합을 인생이라고 하면 하루는 인생의 파편인 걸까.


지나온 세월을 되돌아봤다. 그곳에는 부서진 내가 있었다. 현실과 꿈 사이에서 부서졌고, 이별과 사랑 사이에서 흩어졌다.


글을 한번 써보고 싶다는 마음이 점점 부풀어 꿈이 되었지만, 퇴근 후 집으로 돌아가면 책상 앞이 아닌 침대로 향했던 나는 그만큼 간절하지 않았던 걸까.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은 마음에 시작한 연애는 상대에게 쉽게 이끌렸고, 분명 사랑이라고 믿었던 마음이 어느 날 공허로 밀려왔을 때 나는 사실 사랑받고 싶었던 걸까. 부딪혀서 부서지면 다 사라지고 헛된 것인 줄만 알았는데, 어떻게든 살아보겠다는 것이었다니.


부서진다는 것. 자신을 모두 소진하여 본래 자신으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여정이었음을 깨달았을 때 나는 바다 앞에서 쉴 새 없이 부서졌다.


모래 위에 적어놓은 후회와 실패란 단어는 밀려온 파도와 함께 밀려가고 부서진 파도의 일부가 모래를 적시고 나니 나는 그 위에 두 번은 적을 수 없었다.


한결 가벼워진 기분이 들었다. 그러자 허기가 졌다. 빈속을 달래기 위해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남겨진 발자국을 따라서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자 금세 첫 발자국에 다다랐다. 그곳은 파도가 닿지 않는 곳이었다. 태풍이 온다면 모르겠지만 당분간 그럴 일은 없어 보였다.


‘살아내느라 참 애썼다.’


첫 발자국 옆에 나란히 적어두었다.


열심히 살았으나 중요한 것을 놓치면서 산 것은 아니었나, 못내 아쉬움이 파도처럼 밀려왔지만, 살아내느라 참 애썼다는 말로 아쉬움을 밀어냈다. 누군가 그것이 포기와 다를 게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어떻게든 살아보겠다는 것이었다고 답해줄 것이다.


부단히 사느라 정말로 애썼다.



가끔 내가 마음에 들었지만, 자주 내가 싫었다

‘온전함’이란 단어를 참 좋아한다. 사전적 의미로 본 바탕 그대로 고스란하다는 의미도 좋지만, 단어를 발음할 때 따듯한 온기가 함께 전해지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이다.


온전히 나답게 사는 삶을 오래전부터 꿈꿨다. 대학을 중퇴한 이유도, 호주 이민을 떠났다가 4개월 만에 돌아온 이유도, 주변 모두가 반대했음에도 글을 쓰는 삶을 선택한 이우도, 모두 내가 나의 삶에 주체가 되어 정말 원하는 삶을 선택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시간은 꽤 고달팠다. 가끔 내가 마음에 들었지만, 자주 내가 싫었다. 얼마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게 아니냐는 식의 비아냥에 ‘정말 내가 끈기가 없는 걸까?’ 반문하면서 자책했던 적이 허구하다.


서른에 가까워지면서 나답게 산다는 것과 온전히 나답게 산다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추구하는 삶의 모습에 좀 더 집중하는 것이 나답게 사는 것이라면, 온전히 나답게 산다는 것은 추구하는 자신의 상태에 좀 더 집중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내가 나인 것에 어떤 이유도 붙이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러운 상태이거나 내가 나를 있는 그대로 좋아할 수 있는 상태 같은 것. 그러나 사는 것 자체가 때론 버거울 때가 있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도, 얽히고설킨 관계에서 타인을 이해하고 용서하는 것도, 미워하고 사랑하는 것도.


그럴 때 삶을 쏙 빼고 ‘온전한 나’로 있어 본다. 사람을 좋아하면서도 혼자만의 시간이 꼭 있어야 하는 복잡한 나를 인정하는 것과 완벽해지려 애쓰지 않고 가끔 틀리는 나를 자연스러워하는 것. 온전함으로 다가가는 시간은 마음으로 자신을 바라봐야 하는 시간이다. 착한 아들이면서 이기적인 애인이었다가, 허구한 날 잠수를 타는 친구에서 성실하고 유능한 직원으로 다양하게 존재하는 나를. 그리고 지금. 이 순간만큼은 허기진 마음에 위로를 건네줄 수 있는 작가로서의 나를 받아들이는 시간.


어떤 나라도 받아들이겠다는

마음가짐이야말로

‘온전한 나다움’으로 다가가는 삶일 것이다.



엔딩크레딧

처음 연필을 잡았을 때가 생각난다.

글을 쓰겠다는 목표보다

마음을 써야겠다는 마음,

차오를 때까지 차올라서

토해져 나오는 마음을 받아 적었다.

그 마음이 지금의 글이 되었다.


책의 마지막을 쓰기 전, 나 자신에게 물었다.

전보다 많이 나를 좋아하게 됐냐고.


솔직히 모르겠다.

오히려 자주 내가 싫었던 나를

덜 미워하게 됐다고 말하고 싶다.


여전히 삶은 온전히 내 삶을 사랑하도록

허락해주지 않는다.

여전히 흔들리고, 부딪히고, 깨진다.


아직도 걱정이 많은 내가 걱정이지만,

그런 나를 외면하지 않기로 했다.

스스로 당당해질 기회를 주기로 했다.

나라도 나를 놓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으로.


조금씩 나를 사랑하고 있다.

오늘도 조금씩,

아주 조금씩.


당신과 나의 마음이 같은 곳에 있을 때

내가 당신보다 조금 앞서 있다면

나는 이렇게 말해줄 것이다.


더 천천히 오라고.

괜찮다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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