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와의 정원

   
오가와 이토(역:박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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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로와
   
16000
2021�� 05��



■ 책 소개


“온 지구가 평화롭고 온화한, 아름다운 정원이 될 수 있기를”
『달팽이 식당』, 『츠바키 문구점』 저자 오가와 이토의 소망을 담은 치유의 이야기

예사로운 일상을 잃어가는 요즘이다. 지난해 봄, 저자 오가와 이토 역시 베를린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돌아와 한동안 집에 머무르는 나날을 보냈다. 이제껏 느껴본 적 없는 답답함과 불안 증세를 겪던 그때, 그녀 마음의 버팀목이 되어준 존재는 ‘이야기’였다. 내면에 자리한 이야기의 씨앗에 애정을 쏟음으로써 싹이 나고, 잎이 자라고, 꽃이 피고, 이윽고 열매를 맺는 모습을 보며, 그녀는 코앞에 숨죽이고 있는 공포로부터 마음을 달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열매를 맺은 이야기가 바로 『토와의 정원』이다. 『토와의 정원』은 글을 써 내려가는 저자 본인에게 있어 어렴풋한 희망이 되어준, 치유의 이야기인 것이다.

그녀는 아무리 큰 어려움에 부닥치더라도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있다 보면 상처는 언젠가 치유되고, 회복된다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주인공 토와 역시 차분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생명력을 가꾸어내며 스스로 아물어간다. 어두운 심연 속에 잠겨서도 투명한 빛과 작디작은 기쁨을 찾아내어 마음을 데우곤 하는 토와는, 가늘게 반짝이는 삶과 보잘것없이 소소한 하루하루의 소중함을 우리에게 아로새겨준다. 온 지구가 평화롭고 온화한, 아름다운 정원이 되길 바라는 저자의 소망이 이 한 권에 오롯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 저자 오가와 이토
1973년 출생. 2008년에 첫 장편소설 『달팽이 식당』을 출간했다. 수많은 작품들이 영어, 한국어, 중국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등으로 번역되어 여러 나라에 출간되고 있다. 『달팽이 식당』은 2010년에 영화화되어 2011년에 이탈리아의 프레미오 반카렐라 상, 2013년에 프랑스의 유제니 브라지에 상을 수상했다. 2012년에는 『트리 하우스』, 2017년에는 『츠바키 문구점』이 NHK에서 드라마로 방영되었고, 『츠바키 문구점』, 『반짝반짝 공화국』, 『사자의 간식』은 서점대상 후보에 올랐다. 그 밖의 저서로 『초초난난』, 『패밀리 트리』, 『따뜻함을 드세요』, 『바나나 빛 행복』, 『마리카의 장갑』 등이 있다.

■ 역자 박우주
서울여자대학교와 세이신여자대학에서 일어일문학을 전공하고, 나고야대학 대학원 인문학연구과에서 언어학을 전공하며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한일대조언어학을 연구하다 현재는 일본 문학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토와의 정원


나에게 빛을 선물해준 것은 엄마다. 나는 앞이 보이지 않는다. 태어났을 때 아주 희미하게는 볼 수 있었는지 몰라도 이 눈으로 제대로 된 빛을 느껴본 기억은 없다. 철이 들 무렵 내 눈은 그저 막연한 색의 덩어리와 ‘밝음’, ‘어두움’밖에 식별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조차도 점차 경계선이 모호해졌고, 이윽고 어둠의 저편으로 가라앉아갔다.


내 삶이 막막하지 않았던 것은 엄마 덕분이다. 엄마가 나의 빛이 되어주었기 때문에. 엄마는 나의 태양이다. 나의 태양인 엄마는, 나 역시 계절이 바뀌는 걸 알아차릴 수 있도록 정원에 향기를 지닌 나무를 심어주었다. 서향이며 금목서며, 그 밖에도 향기를 품은 나무들이 많이 있다. 엄마는 그 정원을 ‘토와의 정원’이라고 불렀다.


토와는 나의 이름이다.

엄마가 내게 붙여준 소중한 이름.


그때까지 나는 엄마와 찰싹 붙어 한순간도 떨어지는 일 없이 함께 생활했다. 우리는 작은 이층집에 살았는데, 이 층 침실 위에는 더욱더 작은 다락방이 있었고, 일 층 부엌 아래에는 아담한 지하실이 숨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런 집 앞에 있는 것이 바로 토와의 정원이었다.


나의 생활에는 엄마의 사랑이 흘러넘친다. 내가 먹을 음식들은 엄마가 매번 손수 만들어주었고, 옷은 엄마가 입던 옷을 꿰매어 새로 지어주었다. 치마 주머니에는 항상 다림질된 깨끗한 손수건이 들어 있었고, 화장실 위치를 바로 알 수 있도록 화장실로 이어지는 길 천장에 털실을 달아준 것도 엄마였다.


앞이 보이지 않아도 엄마가 어디에 있는지는 금세 알 수 있었다. 엄마에게는 엄마만의 냄새가 있었으니까. 그 냄새가 토와의 정원에 자라난 식물의 향기와 닮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한참 뒤의 일이긴 하지만, 나는 엄마의 냄새라면 곧바로 알아차릴 수 있다.


아빠는 일주일에 한 번, 나와 엄마가 사는 집으로 생필품을 가져다주었다. 엄마가 필요한 물건의 목록을 적어 빈 깡통에 넣어두면 그것을 본 아빠가 다음 주 수요일에 물건들을 가져다준다. ‘수요일 아빠’ 나는 그를 마음속으로 그렇게 불렀다.


나는 시간의 흐름이라는 감각을 그다지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굳이 말하자면 아빠는 시계의 짧은바늘이었다. 아빠가 오는 것으로 나는 그날이 수요일임을 깨닫고 일주일이라는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었다. 아빠가 짧은바늘이라면 긴바늘은 구로우타도리(대륙검은지빠귀, 나그네새의 일종으로 플루트처럼 맑은 소리를 내는 것이 특징이다-옮긴이)였다.


그래, 구로우타도리 합창단! 구로우타도리 합창단의 노래가 내게 아침을 알려주는 것이다. 앞이 보이지 않는 내가 빛의 정도로 아침이 오거나 밤이 됨을 알기란 어렵다. 그런데 구로우타도리가 나의 눈을 대신해 아침의 기척을 느끼고 노래를 해준다. 마음이 내키면 해 질 녘에도 찾아와 노래를 부르므로 나는 아침뿐 아니라 밤이 오는 것도 알 수 있다.


독서가인 엄마는 내게도 책을 자주 읽어주었기에 나는 집에 있으면서도 이곳저곳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구로우타도리라는 이름의, 몸통 좌우에 날개가 달린 하늘을 나는 동물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 것도 외국에서 쓰인 어느 이야기였다. 여행은 보통 잠이 드는 시간대에 시작되었지만, 가끔은 햇볕 속에서 여행을 하는 때도 있었다. 일본의 이야기, 외국의 이야기, 그리고 지어낸 나라의 이야기 등등 이야기의 무대는 각양각색이었다.


그때까지 나는 말 그대로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엄마와 함께였다. 눈 속에 지은 굴에서 한겨울을 나는 엄마 곰과 아기 곰처럼 나와 엄마는 자그마한 집에서 오랫동안 밖으로 나가는 일 없이 둘이서만 생활하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당연한 일로 여겼다. 집 안에 엄마만 있어준다면, 나는 그것으로 족했다.


그러므로 엄마가 나에게 혼자 집을 지키고 있으라는 말을 했을 때는 그 상황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그럼, 엄마도 슬슬 일하러 가야겠다.”

“싫어, 절대 안 돼. 엄마가 밖에 나가면, 토와도 같이 갈 거야. 얌전히 잘 기다리고 있을게.”


하지만 엄마는 허락하지 않는다.


“그럴 순 없어. 토와, 이해해줘. 엄마는 돈을 벌어야만 해.”

“돈이 뭔데?”

“돈이 없으면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없어. 토와, 혼자 잘 있을 수 있지? 그리고 토와가 자는 동안만이니까. 토와가 일어날 때쯤엔 분명 엄마가 집에 와 있을 거야. 그러고 나면, 토와가 아주 좋아하는 팬케이크를 구워줄게.”


팬케이크라는 말에 혹해 내 마음은 기울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불안감은 떨칠 수가 없다.


“괜찮아, 아빠한테 부탁해서 잠자는 숲속의 공주 약도 받아두었으니까. 그리고, 기저귀도.”

“기저귀? 기저귀는 아기가 하는 거잖아. 그런 거. 토와는 절대 안 해!”

“응? 부탁할게. 토와가 자는 동안 화장실에 안 가도 괜찮도록 기저귀를 차는 거야. 그래야 엄마도 안심이 되거든.”


눈을 뜨니 엄마는 이미 집에 돌아와 있었다. 엄마가 집에 없던 만큼의 공백을 채우려는 듯 엄마의 냄새를 더욱 강하게 느낀다. 약속대로 엄마는 점심으로 팬케이크를 구워주었다. 나는 엄마의 팬케이크를 정말 좋아한다. 엄마는 평소 쓰던 식탁에 식탁보까지 깔고 어딘지 모르게 신이 난 듯한 모습이었다.


처음에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였던 ‘혼자서 집 지키기’가 두 번, 세 번으로 조금씩 늘어나게 되었다. 엄마는 외출할 때마다 항상 이렇게 말했다. “누가 오더라도, 하물며 아빠라도 절대 문을 열어선 안 돼. 대답도 하면 안 돼. 알겠지?” 그런 다음 엄마는 매번 빼놓지 않고 사탕과 함께 잠자는 숲속의 공주 약을 내 입에 넣어주었다. 그 사탕 안에는 꿀이 들어 있어 꿀과 함께 잠자는 숲속의 공주 약을 삼키면 나는 금세 잠이 왔다.


엄마가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 나와 엄마는 아침에 구로우타도리 합창단의 노래로 눈을 뜨고, 밤늦게까지 깨어 있는 일 없이 일찍 잠이 드는 생활이었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그런데 그것이 점점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 약을 먹은 다음 날 나는 저녁까지 잠을 잘 때도 있었고, 일이 없는 날 엄마는 구로우타도리가 아무리 일어나라고 깨워도 침대에서 나오지 않는다.


열 살 생일날의 일은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눈을 뜨니 일하고 돌아온 엄마가 부엌에 서서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다. 형형색색의 따스한 김이 담요처럼 나를 사뿐히 뒤덮었다. “좋은 아침.” 내가 말을 걸자 엄마가 느닷없이 말했다. “토와, 생일 축하해!”


“자, 엄마가 토와에게 주는 생일 선물이야!”


포장지 속에서 등장한 것은 결이 자잘한 거품과 같은 감촉의 원피스다. 나는 원피스를 바닥에 내려놓고 그 전체상을 확인했다. 짧은 소매는 꽃봉오리처럼 부풀어 있다. 재질은 사르르한 질감으로 마치 매끄러운 물의 표면을 만지는 듯했다. 목 부분에는 레이스 같은 옷깃이 달려 있어 언젠가 엄마가 나에게 만들어 준 화관을 떠올리게 했다. 소매 끝에도 싱싱한 화초 같은 촉감의 레이스가 곁들여져 있다. 그리고 가슴 부분에는 풍성한 프릴이 세로로 달려 있다.


“너무 좋아.” 나는 넋을 잃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 엄마는 식탁 한가득히 맛있는 음식을 차려주었다. 나는 그 사이에 옷을 갈아입고 기저귀를 벗고 머리를 빗었다. 엄마가 디저트로 구워준 건 초콜릿 케이크다. 엄마는 전에 없이 다정해서 마치 산들바람 같았다. 손 닿는 곳마다 엄마가 있다는 현실이 좌우간 나에게 깊은 평온을 가져다주었다.


생일이란 건 어쩜 이렇게 멋지고 달콤한 향기가 나는 날일까, 하고 황홀해하던 그때 엄마가 제안했다. “지금부터 옷 갈아입고 같이 사진관에 가자. 우리 둘의 기념일이니까.”


엄마에게 안겨서 기분이 좋았던 건, 집을 나오고 아주 잠깐뿐이었다. 바깥세상에는 내 상상을 뛰어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가 넘쳐났기 때문이다. 엄마는 빨리 사진관에 가야 한다는 생각에 초조했는지 마치 무언가로부터 도망가는 듯 반달음질을 했다. 


결국 엄마가 나를 업고 사진관 안으로 들어갔을 때 나는 울기만 하는 상태였다. 울음 말고는 그때의 내 감정을 표현할 방법이 무엇 하나 떠오르지 않는다. 엄마는 어찌할 바를 몰랐고, 아저씨는 기다리다 지쳐 하품을 했다. 내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기다리자는 분위기는 점차 누그러들다가 이윽고 깨져버렸다.


사진관 아저씨가 종을 울리거나 장난감 나팔 소리를 내며 내 주의를 끌고자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종소리와 장난감 나팔 소리는 나를 더욱더 공포에 빠뜨릴 뿐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그대로 침대에 누였다. 화장도 지우지 않고 원피스도 벗지 않은 채였다. 나는 몹시 지쳐 있었다. 무시무시한 소리를 떠올릴 때마다 나의 몸은 오들오들 떨렸다.


다음 날, 구로우타도리 합창단은 토와의 정원에서 멋들어진 아침 콘서트를 열었다. 그러나 엄마는 그 노랫소리가 들려와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엄마는 침대에 엎드려 있었다. 모처럼 엄마가 나와 외출에 사진관에 데리고 가주었는데 내가 울기만 해서 망쳐버린 탓일까. 엄마는 그런 나에게 질려서 내가 싫어지고 만 걸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나는 몹시 슬퍼졌다.


엄마가 겨우 침대에서 일어난 건 수요일 아빠가 오고 난 뒤, 구로우타도리 합창단이 아침을 세 번 알려준 다음이었다. 엄마는 문득 생각난 것처럼 아빠, 하고 내뱉었다. “빨리 집 안으로 들여놔야겠다.”


며칠 동안 방치된 탓에 아빠가 가져다준 식재료의 대부분은 엉망이 되어 있었다. 특히 버터는 완전히 녹아 형태를 잃어버린 상태였다. “모처럼 마들렌을 만들려고 했는데.” 그렇게 말하면서 엄마는 울었다. 못 쓰게 되어버린 식재료를 앞에 두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일을 해야겠어. 역시 돈이 없으면, 토와와 함께 살아갈 수 없어.”


이 말은 이 일 이후로 엄마의 입버릇이 되었다. 그날 이후로 엄마는 또다시 홀린 듯 일에 몰두하게 되었다. 나에게는 혼자서 집 지키기와 기저귀와 잠자는 숲속의 공주 약이 일상이 되었다. 처음에는 그렇게나 차기 싫어했던 기저귀도 점점 안 차고 있는 쪽이 더 불안했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 약도 처음에는 한 알만으로 푹 잘 수 있었는데, 차츰 한 알로는 효과가 안 나기 시작했다.


슬펐던 것은, 내 몸이 조금씩 자라나 열 살 생일 선물로 엄마가 준 원피스가 어느 날 들어가지 않게 된 일이다. 아무리 먹는 양을 줄어보아도, 배에 힘을 주어도, 내 팔이 소매 반대편으로 빠져나오기란 불가능해졌다.


그 원피스가 내 몸에 맞지 않게 될 무렵부터 엄마는 이따금 고장이 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고장 난다는 말이 아니고서는 달리 표현할 수가 없다. 엄마가 일하러 나가면, 부엌 싱크대에 쌓인 그릇을 설거지한다. 그럴 때 그만 무심코 바닥에 물을 흘리고 만다. 그 물웅덩이를 집으로 돌아온 엄마의 발끝이 발견한다. 그러면 반드시 엄마의 손이 뻗쳐 온다.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대신 손만이 격렬하게 감정을 앞세우며 내 뺨이나 머리로 향해 온다. 나는 오로지 이 폭풍이 조금이라도 빨리 사그라지기를 기도한다. 어차피 앞 못 보는 내가 저항해봤자 엄마를 당해낼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리고 나는 알고 있었다. 폭풍이, 언젠가는 사그라든다는 것을.


**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하는 토오와, 잘 자렴.”

엄마는 그렇게 말하고 여느 때처럼 내 입 안에 잠자는 숲속의 공주 약을 넣었다. 그때의 정확한 개수는 생각나지 않지만 아마도 네 알 전후였던 것 같다. 그런 다음 내 눈언저리에 걸쳐진 머리카락을 귀 뒤 쪽으로 넘기듯이 여러 번 이마를 매만졌다.


나는 잠의 왕에게 손목을 꽉 붙들린 채 잠 속으로 연행된다.


그 후 나는 구로우타도리 합창단의 노래로 눈을 떴다. 그런데 집 안이 유난히 고요하다. 마치 집 안이 통째로 밀폐된 것처럼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엄마?” 불러도 대답이 없다. 내가 얼마나 자고 있었는지는 물론 알 수가 없다. 혹시 내가 너무나도 오래 자버린 탓에 엄마는 또 일을 하러 나간 것일까.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나는 오로지 엄마가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돌아오는 순간을 기다렸다. 하지만 아무리 구로우타도리 합창단이 멋진 노래를 뽐내어도 엄마가 이 집에 돌아오는 일은 없었다.


똑, 똑, 똑. 수요일 아빠가 부엌문을 두드린다. 밤이 되고, 부엌문을 아주 약간만 연 채 팔을 내밀어 놓여 있는 상자와 봉지를 안으로 들인다. 엄마가 없는 이상 이 일을 내가 하는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나는 배가 고팠기 때문이다.


수요일 아빠가 오고 며칠은 먹을 것이 있어 그럭저럭 굶주림을 견딜 수 있었다. 그러나 일요일이 지나고 월요일, 화요일이 되면 배가 고픈 나머지 나는 내 머리카락이나 손톱마저도 먹어버리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다.


나에게 있어 가장 큰 문제는 한이 없는 굶주림과의 싸움이었다. 수요일 아빠만이 의지할 대상이었지만 조금씩 배달되는 양이 줄어갔다. 수요일 아빠가 배달을 해주면 나는 배가 고픈 나머지 그것을 곧장 먹어 치우고 만다. 너무 급하게 먹은 탓인지 먹은 걸 토해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마침내 아빠의 배달마저도 완전히 끝이 났다. 엄마에 이어 수요일 아빠 역시도 내 앞에서 모습을 감추고 만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달은 건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였지만, 그 무렵 이미 나는 배가 고픈 나머지 무언가 먹을 것이 떨어져 있지는 않은지 집 안 곳곳을 더듬곤 했다.


나는 점차 언제가 낮이고 언제가 밤인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지금이 봄인지 가을인지도 잘 모른다. 모르겠다. 모르겠다. 왜 엄마가 나를 두고 가버린 걸까. 내가 뭘 잘못한 걸까. 만일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열 살 생일날로 돌아가고 싶다. 그리고 그날 하루를 이 집에서 엄마와 단둘이 보내고 싶다.


갑자기 쾅 하고 바닥이 아래로 꺼지는 듯한 감각에 나는 퍼뜩 의식을 되찾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지면이 기우뚱 흔들렸다. 집 전체를 흔드는 듯 바닥이 흔들린다. 흔들림은 점점 더 격해졌고, 수납장에서 물건들이 떨어질 뿐 아니라 이번에는 수납장 자체가 꽈당 쓰러졌다. 마치 대지가, 지구 그 자체의 속이 팔팔 끓어오르는 듯하다. 영원처럼 느껴지는 기나긴 흔들림은 대체 얼마나 이어졌을까.


흔들림의 여파인지 내 위장은 배고픔이라는 단어를 까맣게 잊어버린 듯하다. 단순히 그것만은 좋았다. 창문을 열어둔 채로 하룻밤을 지새운다.


아침이 와도 구로우타도리는 노래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에게 아침은 찾아오지 않는다. 지면이 크게 흔들린 뒤부터 줄곧 밤이 이어지고 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까. 그 흔들림이 나에게 그 사실을 가르쳐주었다. 결정적인 사실이 내 앞에 고개를 들이밀었다.


만약 나와 엄마가 아직 ‘영원한 사랑’으로 맺어져 있다면 반드시 이곳으로 돌아올 테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있는 곳으로 달려와 나를 끌어안아 줄 테니까.


하지만 엄마는 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엄마와 이별하기로 했다. 그것이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자 살아가기 위한 방법이었다.


나는 ‘엄마’를 봉인했다.


나는 이제 배고픔을 느끼지 않는다. 내 배 속을 텅 비웠던 건 엄마였는지도 모른다. 아니, 나는 먹을 것을 원했던 게 아니라 엄마의 애정이 고팠던 것일지도 모른다. 엄마에 대한 마음을 끊어내 버리면 허기와도 작별할 수 있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그 사실을 더 빨리 알았더라면 내 손톱이나 머리카락까지 탐하고 싶어지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굶주림에 허덕이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물론 이제 와 생각해봐야 소용없는 일이지만.


그 날 눈을 뚠 순간, 공기가 사뿐히 가벼워진 것을 느꼈다. 막 일어난 참이라 처음에는 잘 알아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어제와는 확연히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구로우타도리 합창단이, 토와의 정원으로 돌아온 것이다.


구로우타도리들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무서웠던 것이다. 그 흔들림에 겁을 먹어 잠시 동안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괜찮다고, 구로우타도리들이 나에게 알려준다. 새로운 아침의 도래를, 아름다운 목소리로 선언한다.


괜찮아. 그러니 이쪽으로 오렴. 함께 노래 부르자.


다락방에서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 이 층 침실 앞을 지나쳐 일 층으로. 나는 맨발로 부엌문 앞에 선다. 걸쇠를 풀고 문고리를 천천히 왼쪽으로 돌려 문을 연다. 괜찮아, 분명 앞으로도 괜찮을 거야.


나는 쓰레기 요새를 밀어 헤치며, 토와의 정원을 가로질러 밖으로 나간다.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네 걸음.


지면 위를 걷는 것은 처음이다. 발바닥이 간지러워서 좀처럼 균형을 잡지 못하고 넘어질 뻔한다. 그래도 이럭저럭 균형을 유지하며 거듭 발을 앞으로 내딛는다.


신의 손에 이끌려 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분명히 신이 내 손을 잡고 있다.


다섯 걸음. 여섯 걸음. 일곱 걸음. 여덟 걸음.


내 두 발로, 천천히 앞을 향해 걸어간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어느덧 창문 너무 저편에 서 있었다. 나의 새로운 삶은, 이 순간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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