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의 작은 테이블이여

   
김이듬
ǻ
열림원
   
13500
2020�� 12��



■ 책 소개


“사람들이 불어주는 온기로 천천히 항해하고 있다”
책방에서 마주한 무수한 만남과 소중한 나날

할인을 포기하고 동네서점에서 책을 주문해주는 고마운 이웃들, 아주 넉넉한 삶은 아닐지언정 거스름돈 몇 푼을 받지 않고 책방에 보태어주는 손님들, 크지 않은 행사비마저 사양하며 오히려 즐거운 시간이었다고 감사 인사를 건네는 작가들, 당신들의 공간에서 의미 있는 사업을 해주어 고맙다며 월세를 탕감해준 건물주 부부 등, 시인은 ‘책방이듬’을 운영하며 타인과의 관계에서 긍정적 영향을 주고받는 것이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지를 실감한다. 누구 하나 빈손으로 오지 않은 조촐한 송년회를 통해서는 “멀리 있는 부모 형제보다 친밀하게 정을 나누는 공동체가 있음”을 깨닫기도 하고, “파티션이 있는 것도 아닌데, 서로 방해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서는 서로를 환대하는 정경에 감동하기도 한다.

물론 조건 없이 건네는 도움의 손길에도 불구하고 책방을 운영하는 데는 숱한 역경과 난관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주변 지인들로부터 “제법 많은 책을 냈고 대학 강의도 나가는 중견 작가인데 작품이나 쓰지 뭐 하러 사서 고생을 하느냐?” 하는 소리를 듣기도 하지만 그는 굴하지 않으며 “아무도 시키지 않은 사업에 골몰해 있다.” 큰 이득을 보기가 어려운 동네서점을 독립적으로 운영하기란 정말 녹록지 않은 일이다. 그래도 시인은 “문학이 누군가의 일생을 바꾸고 그를 불행에 건져낼 수 있다면” 하는 작은 기대와 바람을 갖고 이 생활을 이어간다. 그에게 ‘책방이듬’은 농도 짙은 희로애락이 집결하는 공간이지만, 시인은 그곳에서 사투한 날들을 두고 먼 훗날 “내가 나를 만나는 멀고 긴 여행이었다고 느끼리라” 생각하며 오늘도 주저 없이 책방의 문을 열어놓는다.

■ 저자 김이듬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2001년 계간 『포에지』로 등단했다. 시집 『별 모양의 얼룩』 『명랑하라 팜 파탈』 『말할 수 없는 애인』 『베를린, 달렘의 노래』 『히스테리아』 『표류하는 흑발』 『마르지 않은 티셔츠를 입고』와 장편소설 『블러드 시스터즈』, 산문집 『모든 국적의 친구』 『디어 슬로베니아』가 있으며 연구 서적으로 『한국 현대 페미니즘시 연구』가 있다. 두 권의 영역시집 『Cheer Up Femme Fatale』 『Hysteria』와 한 권의 영역 장편소설 『Blood Sisters』가 있다. 시와세계작품상, 김달진창원문학상, 올해의좋은시상, 22세기문학상, 김춘수시문학상, 전미번역상, 루시엔 스트릭 번역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한양여자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1인 독립 책방 ‘책방이듬’을 운영하고 있다.

■ 차례
1부 / 책방에서 나의 방을 생각하다
2부 / 그녀의 입술은 따스하고 당신의 것은 차거든
3부 / 얼마나 오래 기다려야 화해하는 밤이
4부 / 우리는 만나 다른 사람이 된다

 




안녕, 나의 작은 테이블이여


책방에서 나의 방을 생각하다

네가 원하는 건 이 상자 안에 있어

길 건너 공원에 가서 국화 화분을 샀다. 크림색 소국이 가득 핀 하얀 플라스틱 화분을 들고 공예품 부스 옆 농산물 부스에서 사과 네 개를 샀다. 고양가을꽃축제가 한창인 일산 호수공원에는 가판대와 텐트들이 즐비했지만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비가 오려는지 서늘하고 무거운 공기 속에서 물건을 파는 사람들이 수척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저녁에는 야외 공연이 열린다고 했다.


해 저무는 창가에 노란 꽃들을 두고 노오란 꽃이라고 발음해봤다. 길게 불러 강조해도 여러 겹인 기분의 명도는 높아지지 않았다. 나는 입을 다물고 창밖을 노려보며 생활이란 무엇인지, 책방을 한다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이길 수 없고 끊을 수 없는 것들을 생각했다. 자꾸만 가로수 벚나무 잎들이 떨어졌다.


오전 10시부터 저녁 8시까지 손님이라곤 근처 오피스텔에 사는 드라마 작가 한 분이었다. 젊은 남자 세 사람이 문을 밀고 들어오려다 나가버렸다. 카페인 줄 알았는데, 책이 많아서 부담스럽다고 했다.


퇴근하려고 책상을 닦고 있는데 한 사람이 황급히 들어왔다. 뒤를 이어 들어온 사람은 커다란 배낭을 멘 채 쿠키 상자를 들고 있었다. “아직 안 마쳤죠? 책 좀 살 수 있을까요?” 앞서 들어온 여자가 시집들을 훑어보며 말했다. 그녀는 시집 세 권을 뽑아 들고 뒤따라온 남자에게 돈을 내라고 했다. 남자는 종일 떨었더니 손가락이 잘 펴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품에 안고 있던 알루미늄 쿠키 상자 같은 걸 무릎 사이에 끼웠다. 기침을 하며 상자를 이쪽저쪽 돌리다가 겨우 열어서는 현금을 꺼내어 세었다.


그들은 젊은 부부로 꽃 장사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들렀다고 한다. 낮에 잠시 갔던 그 화훼 전시 판매장의 한 군데에서 간이 천막을 치고 식물을 팔고 있다고 했다. 오늘 장사하고 번 돈으로 시집을 사서 행복하다고 여자가 웃었다. 남자는 여자의 말에 귀 기울이곤 서가 쪽으로 몇 발자국 가서 소설책 한 권을 꺼냈다. 상자 안에는 이제 천 원짜리 몇 장과 먼지, 동전들이 남아 있었다.


이처럼 아끼며 간직했던 많은 것을 내보냈던 시절이 있었다. 당신이 해변에서 손가락으로 그려준 상자 안에 세상 모든 것이 들어있다고 믿었다. 나는 문 앞에서 밀물처럼 밀려오는 밤길을 나란히 걸어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입술은 따스하고 당신의 것은 차거든

보존의 의무

빈센트의 작품들은 그의 분신이라 할 수 있는 동생 테오가 보관하다가 그도 죽자 그의 아들 빈센트 빌럼 반 고흐가 보존의 의무를 갖게 된다. 200여 점의 그림과 500점의 드로잉을 상속받은 것이다. 주목할 만한 것은 그가 자신이 물려받은 그 어떤 작품이나 드로잉도 팔기를 거부하는 단호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그의 목표는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삼촌의 작품들이 국립 기관에 안전하게 걸려 있는 광경을 보는 것이었다. 1948년 네덜란드는 여전히 나치 점령의 후유증을 극복하는 중이었고, 쪼들린 삶의 징후들이 도처에 널려 있었다. 그 자신도 식량과 땔감이 없는 모진 신세였다.


책방에는 그림이 몇 점 있다. 김재진 작가의 그림, 조병완 작가의 그림, 그 외에는 복사본이다. 내가 가장 먼저 책방에 건 그림은 빈센트의 <꽃이 핀 아몬드나무>이다. 빈센트는 곧 태어날 조카 빈센트 빌럼 반 고흐를 위해 이 그림을 그렸고 6개월 후에 자살했다. 알다시피 형 고흐가 자살한 뒤 동생 테오는 6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 요양소에서 숨을 거둔다.


나는 이 그림을 볼 때마다 참기 어렵게 사무치는 봄을 느낀다. 봄이 오는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언젠가는 암스테르담 미술관에 가서 빈센트의 작품 원본들을 보고 싶은 마음이 아몬드나무꽃처럼 만개한다. 동시에 그의 조카가 물려받은 반 고흐 작품 컬렉션을 보는 일은 진심을 간직하는 사람의 숭고를 경험하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빈센트가 조카를 위해 아픈 몸으로 그림을 완성했던 것처럼 부족한 나를 사랑으로 살펴준 사람들을 나는 기억할 것이다. 그의 조카가 그를 기리는 방식처럼 그들을 잊지 않을 것이다. 그 사랑을 기억하는 방식이 계산적이거나 이기적이기 않기를 바란다.


책방에서 도망치고 싶을 때 나는 저 그림을 쳐다본다. 이웃과 지인들이 보여준 호의를 생각한다. 부지불식간에 가지게 된 걸까. 보존의 의무. 이곳을 유지할 의무라거나 이 일을 지속할 용기를.


그녀의 입술은 따스하고 당신의 것은 차거든

몇 년 전에 나는 연희동에 있는 문학 창작실에 머문 적이 있다. 입주 첫날 저녁에 창문과 현관문을 활짝 열고 청소하고 있는데 거실에 고양이 한 마리가 들어와 있었다. 그는 한 달 동안의 첫 방문객이자 마지막 방문객이었다. 내가 나가라고 손짓하자 그는 가늘게 울음소리를 내며 아름다운 움직임으로 밖으로 이동했다. 그는 매일 내 문 앞에서 울었다. 너무나 평범한 털과 눈빛의 고양이였기 때문에 그가 나에게로 오지 않았다면 어떤 고양이와도 구별할 수 없었을 것이다. 공용 세탁실에 가는 아침에도 따라오고 까마귀가 앉은 소나무 아래서 책을 읽는 저녁에도 길을 오갔다. 외출하려고 대문 쪽으로 가면 내 발치에 발라당 눕곤 했다.


아마도 이전 입주 작가가 그를 방으로 들이거나 쓰다듬거나 먹이를 챙겨주었던 모양이다. 음악을 들려주었을지 모른다. 그는 입주 기간이 끝난 후 트렁크를 싸서 떠났을 것이다. 머무는 동안 그를 사랑했을 것이다. 마지막 날, 그를 데리고 떠날 생각을 잠시 했을까?


책방을 열고 가장 자주 왔던 이가 마음을 접고 떠났다. 우리는 마주침이 줄 무거운 비극성에도 불구하고 부드럽거나 부드럽지 않은 살결을 만졌다. 그에게는 이제 다른 흥밋거리가 생겼다. 오늘 밤 내 울음소리는 참혹하지 않고 보통의 고양이 소리와 닮았다.


눈에 바치는 송가

눈이 온다. 흰 눈이 거리에도 도로에도 건너 숲에서 소담스레 내린다. 밖에 내놓은 긴 의자에도 흰 눈이 소복이 앉아 있다. 보랏빛 외투를 걸친 사람이 개를 안고 지나갔고 이후로 몇 시간째 아무도 지나가지 않는다. 창가에서 이렇게 기다리다가 문밖으로 나가본다. 바닥에 떨어진 눈송이는 친화력으로 뭉치는 걸까? 내 발자국이 얕고 멀고 낯설다.


사람이 사람을 기다리는 일, 눈이 오고 바람이 불 때 멀어진 이가 돌아와 친밀감을 회복하는 일, 내가 울면 같이 울던 이를 기다리던 저녁이 온다.


습관은 능숙하면서도 느린 조정자라서, 이제 여기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이 고통스럽지 않다.


사랑은 변해도 사람은 변하지 않는 거라고 사람들은 내게 말한다. 삶은 공격적이며 폭력적이지만 사람은 서러워하면서도 사랑한다. 사람은 저마다 자신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사람을 한 명쯤은 내면에 가지고 있다. 그를 대신해 병에 걸리고 그를 대신해 죽을 수 있는 존재는 자신이 유일하다고 생각하며. 어릴 때의 확신이 점점 흐려지지만, 불현듯 문을 밀고 수천 송이 흰 꽃 같은 사람이 들어올 것 같다.



얼마나 오래 기다려야 화해하는 밤이

숭고에 관하여

무엇이 나로 하여금 숭고에 대한 사유에 숟가락을 떨구게 만드는 것인지.


요리를 했다. 책방에서 받은 귀한 식자재가 상하기 전에. 정읍 출신의 지인이 고향에서 농사짓는 친구의 감자를 사서 나에게 두 상자나 보내주었기에 감자를 깎아 카레를 만들었다. (그 전에 몇 개씩 싸서 책방 손님들에게 나눠주기도 하고 낭독회 때 쪄서 내놓기도 했지만.) 우남정 시인 낭독회 때 들른 분이 양평 텃밭에서 따온 꽈리고추와 오이 두 개를 주셨는데, 멸치를 볶다가 고추를 넣어 밑반찬을 만들었다. 모처럼 일요일 점심을 잘 챙겨 먹었다. 카레라이스에 썰어놓은 오이와 멸치고추볶음으로 첫술을 뜨며 농부를 생각했고 흙과 물, 해와 달, 별을 떠올렸다. 내가 냉동실에 얼려두었던 멸치들은 한결같이 작고 물결처럼 굴곡져 있다. 그물 속에서 발버둥을 친 건지. 파도와 바람에 좌초되진 않았을까, 어부의 배가 떠올랐다.


어떤 무질서한 인연으로 여기 일요일의 작은 식탁에서 나는 이것들을 천천히 씹고 삼키게 되었을까? 쌀 한 알 속에 우주가 들어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새삼 느낀다. 수저를 내려놓고 밥상 사진을 찍어 SNS에 올렸다. 사진으로 보니 빈약한 재료로 만든 카레와 누추한 그릇이 눈에 띈다. 식사 도중에 음식을 찍었더니 보는 이의 식욕이 떨어질 만큼 지저분하기까지 했다. 얼른 포스팅을 삭제했다.


음식이 내게 시사해준 것은 무엇이었을까? 음식은 우리로 하여금 어떤 희생을, 먹고 먹히는 관계의 경험이 갖는 불편하고 숭고한 지점을 보여준다. 나는 시간에 먹혀가면서 일종의 해방을 느낀다. 윤리란 뭘까? 타인의 밥그릇을 빼앗지 않는 일, 뜨거운 국그릇을 전달할 때 받는 이가 데이지 않게 충분히 살피는 일. 그런 기본적 행위에서 시작되는 게 아닐까.


식당에서 차려주는 밥상을 받을 때나 집에서 간편 요리를 레인지에 데워 먹을 때와는 다르다. 요리 재료를 구하고 그것을 다듬어 가열하는 동안, 우리는 환경이나 사회를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의무적으로 바삐 차려야 하는 식탁이 아니라, 유일하게 자신만을 위해 놀이하듯 요리할 때가 좋다. 나만을 위해 식탁을 차리고, 라면으로 대충 스스로의 허기를 면하지 않은 자신이 꽤 괜찮아 보일 때도 있다.


나는 오늘 7월에 나오는 콩이 이렇게 다양하고 예쁜지 처음 알았다. 콩을 한 줌 들고 그 다채롭고 찬란한 빛깔과 무늬에 감탄했다. 다이아몬드보다 아름다웠다. 삶아서 내가 입을 아 벌리고 넣을 때까지 아름다웠다. 고귀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누구든 혼자서 먹는 행위는 왠지 엄숙하고 성스럽게 여겨지는 게 아닌가?


“일체의 미를 넘어 존재하는 것, 숭고.”


『사라진느』를 읽고

가을이 오고 있다고 만물이 말한다. 그래야만 하는 것이다. 지난 혹서도 태풍도 잠깐의 눈부심도 사라진 것이 아니다. 단지 이쪽 차원에서 저쪽 차원으로 이동한 것이다.


지난여름 내내 암울했지만, 삶이 없었다고 말해버리면 안 되었다. 울고 있었지만 지워지는 건 없었다. 빗물에 씻긴 과일의 단맛은 사라진 게 아니다. 달고 따뜻한 빗물로 풀벌레들을 살찌웠다.


이어서 혹한이 닥칠 것이다. 사람은 예견할 수 있다. 영원히 자취를 감추는 건 없다. 내가 확인할 수 없을 뿐. 사람이라면 깨닫는다. 사라지면서 찰나적으로나마. 순간적 숭고, 순간적 완성이 반복되다 보면 되고 싶은 존재로 되어가는 신비가 발생하리라. 성스러움은 인간의 본질이다.


나는 만추 저녁 공원의 황량함을 사랑한다

외젠 앗제의 사진집을 본다. 그는 ‘현대사진의 아버지’, ‘20세기가 낳은 탁월한 사진작가’로 불린다. 그러나 그는 사냥꾼이기도 했고 역사가이기도 했으며 장인이기도 했고 잡동사니 수집가이자 교사였다. 그는 ‘굴절되고 반항적이며, 우울하고 도덕적인 역사관’에 입각해 의도적으로 사진을 찍는 작가라고 자신을 표현했다. 사진작가 에드워드 웨스턴은 외젠 앗제의 나무 사진 연작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기대했으나 그저 따사로운 온기만을 느꼈을 뿐이다.” 자기성찰적인 웨스턴의 이미지와 비교해볼 때 앗제의 이미지는 훨씬 추상적이지도 예술적이지도 않지만, 더 굳건하게 땅에 접근해 있으며 더 강한 생명력을 보여준다. 즉, 앗제는 나무를 예술보다는 자연 속에 위치시키고 있는 것이다. 폴 세잔의 ‘사과성(apple)’이 앗제의 ‘나무성(treeness)’와 상통한다. 즉, 나무를 나무로 살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시를 지으면서 숲을 나무뿌리를 벤치에 떨어진 낙엽을 내 마음대로 왜곡하며 해석했다. 나무는 나무가 되려는 것인데, 아치 벌목공처럼 언어의 칼로 재단했다. 내 식으로 끌어들여 해석했다. 무심하게 보지 않았다. 무생물에 생명을 환기하거나 사라져버린 작은 길을 작품에 복원하기는커녕 그 반대였던 적도 많다. 김수영이나 프랑시스 퐁주가 말한 ‘사물의 편에서’ 글을 쓴다는 것을 실행할 나이도 되었건만, 나는 사물을 ‘자기 동화’라는 말로 멋대로 훼손하는 것이다. 주위의 사물들이 어둠에 묻히는 시간, 내가 만지고 있는 이 차가운 상수리나무는 예술에 있기보다 자연에 있어야 한다.


사람과의 관계도 그러하다. 자연에 감정을 이입한 시인처럼 타자를 자기식으로 해석하고 동일화해서는 안 된다. 나는 상대방을 나의 감정과 해석으로 끌어당겨 실패한 적이 많다. 나와 분리된 존재 자체의 빛과 감각 그리고 습성까지, 있는 그대로 두는 것, 그를 그 자체로 발현되도록 두는 것은 얼마나 어렵고도 아름다운 일인지.


복숭아와 봉숭아

복숭아를 사 왔다. 이 부드럽고 연한 과육이 내 감각을 깨운다. 복숭아 껍질에 있는 털 때문에 피부 알레르기를 일으키던 사람이 생각난다. 나에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던 사람. 내 할머니는 한글을 몰랐는데 어떻게 한평생 사셨을까? 내 손가락에 봉숭아 꽃물을 들여주시고는 담배 심부름을 시키셨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것들은 눈앞에 있다. 저 먼 어딘가가 아니라 바로 눈앞에 있다는 것. 이것을 알게 되기까지 나는 아직 멀었다. 알았다고 믿는 순간이 있지만 진짜로 알기까지는 멀었다. 복숭아와 봉숭아의 차이만큼. 삶은 싱그럽지도 근사하지도 황홀하지도 않지만, 살아 있으므로 보잘것없는 것에도 복받친다. 복숭아 한 알을 주고 간 사람이 오늘의 마지막 손님이었다. 어딘가의 단골이 된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들고 온 장바구니에서 복숭아 하나 꺼내주고 싶은 기분일까?


손님을 배웅하러 나왔는데 조용하다. 매미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며칠 전까지 그렇게 울어대더니. 괴괴하다. 이 말이 쓸쓸한 느낌이 들 정도로 매우 고요하다는 뜻이라는 걸 오늘 알았다. 괴이하다는 말과 비슷한 줄 알았는데. 소리만으로 어림짐작하면 안 된다. 늦여름 저녁이 깊어간다. 나는 늦여름이 더 좋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정도로.



우리는 만나 다른 사람이 된다

여기를 보세요

모임이 끝나고 흩어지기 전에 단체 사진을 찍을 때가 있다. 나중에 사진을 보며 이 사람은 어떻고 저 사람의 습관은 어떻고 그 사람은 조심해야 한다든가 하는 그런 말들을 들을 때가 있다.


한 인간은 우주 같아서, 서로 부딪힐 때 그 내면에 팡팡 터질 준비를 하는 위선과 오만, 광기를 가지고 있다는 걸 안다.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공간을 운영해본 경험이 없을 때와는 달리, 이제 나는 내 귀에 틈틈이 넣어주는 말들에 무심해진다. 그것은 무관심과 다르다는 것도 안다. 미리 안 정보나 뒤늦게 알게 된 담화 등을 가지고 한 존재를 파악하지 않으려고 한다. 나의 카메라로 순간순간의 진실, 그런 게 있다면, 진실을 포착할 것. 나는 아직도 사람이 선하게 변할 수 있는 존재라고 믿는다. 특히 예술은 의도성 없이도 사람을 그 방향으로 이끈다. 예술은 존재의 깊은 곳으로 플래시를 비춰 자신도 알지 못했던  밝고 긍정적인 면을 탐사, 발굴케 한다.


내 말은 그가 어떤 사람이었든 책방을 자주 출입하다 보면 바뀔 거라는 건데, 단지 나의 바람만은 아닐 것이다. 노엘 베이틀러의 말도 확신을 더해준다. “시는 내가 발견한 최고의 보호자였다. 시는 나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끈다. 나는 시와 함께하며 길을 잃은 적이 없다.” 나와 같으면서도 다른 의견이긴 하다. 시는 길을 잃게 함으로써 다른 길을 발견하게도 하니까. 책방을 운영하며 마주친 변화들을 통해 ‘동네 책방이 주민에게 끼치는 효과’에 관한 보고서를 써보면 어떨까 싶다.


모든 국민이 시인이면 안 되나요?

오직 글로만 독자를 만나야 한다는 작가들이 있다. 순결하며 엄결한 태도일 수도 있고 작가로서의 고집일 수도 있다. 책을 읽는 건 기본적으로 묵독이고 혼자만의 비밀스러운 작업이라고 말한 내 동료도 있다. 그런 말을 했던 그도 산문집 출간 직후에 대담과 낭독회에 참석하더라.


시인이 너무 많다고 투덜대는 사람이 있다. 모두 시를 쓰면 왜 안 되나? 등단해야만 시인이라고 불러야 하나? 누가 “넌 시인이다” 하며 자격증을 발부하나?


문학은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을 자유롭고 더 넓은 지평으로 이끈다. 누구를 배제하거나 추앙하지 않는다. 책방지기로서 나는 책방에서 낭독회를 할 때마다 초대 작가와 관객 사이의 거리 좁히기, 벽 허물기를 시도한다. 가능한 더 많은 사람이 소리 내어 텍스트를 읽거나 자신의 의견이나 감상을 말하도록 유도한다.


글을 쓰고 책을 읽고 느끼며 말하는 것, 이 모든 것이 문학 하는 것이다. 각자가 쓴 글이나 읽은 책에 대해 소통하며 서로에게서 조금씩 다른 모습들을 발견하고 수용하는 순간이 아름답게 보인다. 그 시간에 우리는 자신의 한계를 넘어선 새로운 존재로 거듭난다. 이때껏 살아온 삶과 다른 새로운 삶에 다다르는 기분은 어떨까.


이 세상 거의 모든 사람의 호주머니와 가방 안에 휴대 전화가 있듯이 책 한 권이 들어 있으면 좋겠다. 동네 책방에 와서 책 한 권 고르는 일이 특별한 경험이나 사건이 아니기를 바란다.


오늘도 나는 책방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걸레질을 한다. 대걸레로 잘 닦이지 않는 얼룩이 있다. 무릎을 꿇고 있으면 보이지 않는 존재를 향해 기도하는 기분이 든다. 책방이 성장 혹은 발전하는 것까지는 바랄 수 없다. 모쪼록 꾸준히 지속될 수 있기를 바란다. 지금처럼 위태롭지 않게, 기왕이면 신나게, 다른 사람들도 따라 하고 싶어질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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