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째 버티고 있는 중입니다

   
이명혜
ǻ
사이다
   
12800
2021�� 01��



■ 책 소개


나를 버티게 만드는, 그 보물 같은 응원 

저자는 〈17년째 버티고 있는 중입니다〉에서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요령을 네 가지로 정리했다. 사직서 작성 등을 통한 퇴사 연습하기, 자신이 선택할 수 없는 상사(혹은 동기나 후배)의 존재를 받아들이기, 일상 속 나만의 소소한 행복을 만들어 영위하기, 어차피 바로 퇴사하지 못할 회사라면 회사와 함께 성장하기 등. 이런 행동을 통해 저자는 긴 시간 동안 직장인으로 살아남는 방법을 터득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고 있는 당연한 내용 아니냐고. 하지만 17년 동안 한 회사에서 근무해온 이가 이야기하고 있는 이 방식들은, 확실히 다르다. 직접 실천에 옮긴 뒤 마침내 성공했다는 점에서 이 당연한 내용들에는 설득력과 무게감이 실린다. 

〈17년째 버티고 있는 중입니다〉는 지금 자신의 자리에서 힘겹게 버티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보내는 따스한 응원이자 위로이다. 어차피 회사 안에서 버텨야 한다면 나 자신을 존중하자. 더 나아가, 할 수 있다면 회사를 구성하고 있는 그 속의 사람들을 존중하며 버티자. 그것들은 언젠가 손에 쥘 수 있는 결과로 되돌아올 테니까.

■ 저자 이명혜 (존버 언니) 
어쩌다_입사
연예인이 되고 싶었고, 작곡가가 되고 싶었는데, 어쩌다 보니 한 회사에 17년을 다니고 있습니다. 입사할 때는 “저는 일요일도 출근할 수 있습니다!”라며 당당하게 들어갔지만 직장생활에 그렇게 열정을 불태운 것도 아니었습니다. 주변에서 묻습니다. “너 대체 어떻게 거기에 입사했니?”

지금도_회사와_열애중
가장 많이 듣던 질문, “너 아직도 그 회사 다녀?” 뭐, 쉽지는 않습니다. 어쩔 땐 말도 잘 통하고 일도 술술 풀리고 잘 지내다가도 갑자기 티격태격하고, 마음이 맞지 않아 화도 나고 불평도 하고 그렇습니다. 그러다 권태기를 겪기도 하고, 헤어지려는 다짐도 숱하게 했지요. 그러나 돌아와 보면 또 이만큼 나를 잘 아는 곳도, 나를 잘 챙기는 곳도 없다 싶습니다. 그렇게 서로 부대끼고 구르며 지금도 머물고 있습니다.

이별_말고_졸업
누가 갑이고 을이든, 먼저 존중하고 사랑하면 상대방도 나를 존중하고 사랑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별은 저만치 다른 얘기로 미뤄두고 싶더군요. 그래서 저는 말합니다. 오랫동안 한 사람과 함께 사랑할 수 있는 건 행운이라고, 그래서 있는 힘껏 사랑하다 이별이 아닌 졸업을 선택하고 싶다고 말이죠. 

■ 차례
추천의 말 
프롤로그 보물상자 안의 보물을 기대하며

1장. 퇴사 연습하기_낙장불입의 원칙 
사직서는 어디서 다운로드하나요? 
그렇다면… 남은 할부는 얼마? 
퇴사 후 계획을 세워보자 
실은 나도 바람피운 적 있다 
악으로 깡으로 1년만 버티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자기계발의 끝판왕, 글쓰기 
밤 11시 그리고 새벽 1시 

2장. 상사는 선택할 수 없다_또라이 질량보존의 법칙 
힘들다면 빨리 백기를 들자 
최고의 반면교사 
상사에게 산뜻하게 복수하는 법 
내가 싫어하는 상사도 누군가의 가족이며 부모다 
성질머리와 말잘못 

3장. 나만의 소소한 행복 만들기_일과 삶의 불가분적 법칙 
‘존버’해야 할까 ‘존~버’해야 할까 
긍정 마인드는 회사생활에서 특히 빛을 발한다 
나만의 휴식 계획표_살기 위한, 나만의 근태 기준 재정비 
퇴근의 마무리는 운동이다 
누구는 조기퇴사를 위해 적금을 하고, 누구는 현재를 위해 즐긴다 
복지 혜택의 큰 행복 

4장. 회사에서 성장하다_상호보존의 법칙 
회사는 배움의 장소다 
누구도 이 회사에 당신 등을 떠밀지 않았다_내가 선택한 회사, 후회하지 말자 
그녀는 의리 빼면 시체랍니다 
‘결혼’은 개인 성장의 지름길이다 
진정한 어른으로의 도약 
아이로 인해 다시 보게 된 세상 
힘들지 않은 육아를 위해 필요한 것 
사춘기도, 오춘기도 회사에서 겪었다 

감사의 글  

 




17년째 버티고 있는 중입니다


퇴사 연습하기_낙장불입의 원칙

퇴사 후 계획을 세워보자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회사를 그만두는 상상을 해보았을 것이다. 대부분의 회사원들이 자기만의 ‘퇴직 후 미래’를 그려본다. 물론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하고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데에 그치겠지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이직이든 자영업이든 어느 하나 만만한 게 없다는 사실을 다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치킨집을, 또 누군가는 전혀 다른 직종으로의 이직을 꿈꾸듯 나 역시 회사를 그만두고 나만의 카페를 차려보고 싶다는 꿈을 꾼 적이 있었다. 내 손으로 꾸린 카페의 주인이 되어 잘생긴 알바생들과 즐겁게 일하는 삶을 그려보았던 것이다. 상사의 지시 따위는 없는 평화로운 근무시간과, 온종일 커피를 마시면서 책만 읽어도 되는 그런 자유로운 삶을.


당시 나는 ‘나만의 카페 차리기’에 매우 진지했다. 카페 이름을 무엇으로 하면 좋을까 심각하게 고민하는가 하면 카페를 위해서 바리스타 자격증을 먼저 딸지 아니면 자기계발을 먼저 해야 할지 갈팡질팡하기도 했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카페 차리기 계획을 세워나갔다.


나름대로 ‘이 정도면 되겠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계획을 세운 후에 엄마에게 은근슬쩍 말을 꺼냈다. 적어도 부모님께 말씀은 드려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에서였다.


“엄마, 나 회사 5년만 더 다니고 카페 차릴까?” 그러자 내가 말을 꺼내기 무섭게 엄마는 “무슨 소리야? 10년은 다녀야지. 국민연금 나오잖아!”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는 얼굴로 엄마를 바라보았다.


멍청한 내 얼굴을 본 엄마는 “그게 노후라고 생각하고 10년은 무조건 다녀야지.”라고 덧붙이셨지만 나는 여전히 고개를 갸우뚱한 채 엄마를 바라보았다. “국민연금이 뭔데?”라고.


그랬다. 당시 나는 연금이 뭔지도 모르는 철부지였던 것이다. 엄마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넌 회사 다니는 애가 그런 것도 모르니?”라며 국민연금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반드시 10년의 납입기간을 채워야만 연금이 지급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국민연금에 대해 알게 된 나는 ‘5년 후 카페 차리기’라는 꿈을 완전히 접고 회사에 충성을 다하기로 다짐했다.


특히나 계획을 접기로 마음먹는 데에 큰 부분을 차지한 것은 ‘직장인들은 회사에서 절반을 부담해주지만 자영업자는 전액을 납입해야 한다.’는 부분이었다. 회사가 내게 주는 큰 혜택을 굳이 버릴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날을 계기로 ‘무조건 10년은 다녀야지’라고 다짐한 나는 현재 17년차 직장인이 되었고, 국민연금만 가지고는 은퇴 후에 원하는 삶을 살 수 없다는 사실까지 아는 중년의 사회인이 되었다.


그렇다. 냉정하게 보면 국민연금만 가지고 개인이 원하는 생활을 누리는 것은 불가능한 게 사실이다. 그러므로 국민연금만 믿고 은퇴 설계를 하지 않았다가는 나중에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회사를 10년 이상 다니더라도 은퇴 후의 미래를 늘 그려보아야 하는 이유다. 내 계획은 뭐냐고? 카페 차리기를 포기한 대신, ‘최대한 오랫동안 직장을 다녀서 국민연금 최고 수령액 받기’로 계획을 변경했다. 그리고 그 계획을 현재도 착실하게 실행중이다.


당신이 회사가 아닌 다른 곳에 명확한 뜻이 있다면 회사를 그만둬도 좋다. 그러나 만약 다른 뚜렷한 목표가 없다면, 반드시 10년의 회사생활을 채우는 것을 목표로 삼길 바란다. 얼마나 더 직장생활을 해야 할지 고민되는가? 월급명세서에 나와 있는 국민연금을 체크해보자.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10년이라는 장기근무가 주는 보상은 결코 적지 않다. 아무리 미운 상사라도 10년 후면 퇴직하고 없을 것이다. 국민연금을 손에 쥐게 되었으니 언제든 원하는 때에 그만둬도 된다는 심리적인 안정감도 생긴다.


이 두 가지는 직장생활에서 굉장히 큰 부분이다. 나만 하더라도 10년을 채운 시기를 기점으로 훨씬 평온한 회사생활을 이어오고 있으니까.


17년차 직장인으로서, 지난 경험을 바탕으로 확신을 갖고서 충고하고 싶다. 멀리 내다보아야 한다. 당신이 사회초년생이라면 더더욱. 어쩌면 이는 긍정적인 부분을 얼마나 볼 줄 아느냐의 차이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회사는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혜택들을 당신의 인생에 줄 수 있을지 모른다.



상사는 선택할 수 없다_또라이 질량보존의 법칙

상사에게 산뜻하게 복수하는 법

직장에서 상사가 주는 스트레스는 저 하늘의 별처럼 다채롭다. 본인이 하기 싫은 업무 떠넘기기부터 사적인 심부름시키기, 쓸 데도 없고 쓸모도 없는 조언 늘어놓기, 지위를 이용해서 일 부당하게 처리하기 등등….


직장인이라면 순식간에 열 댓 개는 나열할 수 있으리라. 문제는 이거다. 아랫사람들은 이 스트레스들을 대체 어떻게 해소해야 할까? 아니, 조금 더 직설적으로 이야기해보자. 저 스트레스 생산기들에게 어떻게 복수를 하는 게 좋을까?


오랜 직장생활을 해온 나 역시 ‘복수를 해야 하나? 아니면 참아야 하나?’ 고민했다. 때로는 실제로 복수를 감행하기도 했다. 그때 느끼는 통쾌함은 비록 짧아도 속이 뻥 뚫리는 시원함을 안겨주더라.


나 역시 직장인으로서 긴 시간을 보내며 얄미운 선후배들을 수없이 만났다. 죽이고 싶도록 미운 상사들이 코앞에서 스트레스를 줄 때마다 매섭게 쏘아붙이고 싶은 걸 참은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스트레스가 주는 가장 큰 문제는 업무 효율이 떨어진다는 거였다. 이렇게 떨어진 업무 효율은 가끔 소심한 복수가 성공하면 다시 회복되고는 했다.


소심한 복수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절대 들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잠깐의 통쾌함이 주는 즐거움은 크지만 들키는 순간 관계는 더욱 악화된다. 그래서일까? 나는 어느 순간 ‘아, 이게 들킬 수도 있는 일이겠구나.’라는 걸 깨닫고 소심한 복수를 행하는 것을 멈추게 되었다.


대신 상대방의 진심을 알기 위해 노력하는 쪽으로 노선을 바꿨다. 그리고 오랜 시간 노력한 끝에 대화를 통해서 상대방의 감정 상태를 알아내는 것에 익숙해지게 되었다.


복수를 그만두고 이해하는 눈으로 상사들을 보기 시작하면서,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은 나보다 이미 수년의 시간을 먼저 회사에서 버텼던 그들이다. 그들 역시 무수히 많은 윗사람들로부터 우리가 느낀 것과 같은 스트레스들을 겪었다. 그들은 우리가 느끼는 감정과 소소하게 하는 복수를 알면서도 티를 내지 않고 눈감아준 게 아닐까?


이것을 깨닫자 복수의 개념이 바뀌었다. 나는 그들이 절대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실력 있는 후배가 되어보기로 마음을 바꿔 먹었다. 하지만 이것 또한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무슨 소리를 하더라도 한 귀로 듣고 흘려듣는 보살이 되자는 것으로 목표를 바꾸었다.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나 다양한 상사들을 만날 수 있다. 특히 회사에서 만난 상사는 모르는 척 넘겨버릴 수가 없다. 한번 보고 끝나는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몇 배나 더 힘들다.


그러니 밉고 스트레스 덩어리인 상사나 선배가 있다면 그들에게 치사한 복수가 아니라 멋진 복수를 해보자. 그들보다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치사한 복수는 또 다른 치사한 복수를 낳는다. 안 좋은 것은 반드시 대물림이 되고 쉽게 잘 지워지지도 않는다. 그런 걸 굳이 계속 이어갈 필요가 있을까?


좋은 회사 문화, 좋은 선후배 관계를 만들어내는 첫 번째 방법은 내가 먼저 치사한 복수를 관두는 것이다. 물론 아주 가끔은 풀리지 않는 내면의 분노를 표출할 기회가 필요하다. 그러나 어떤 방식으로 복수할지는 나 자신에게 달려 있다. 무엇이 진정 멋진 복수인가?


언젠가 내게로 돌아올 부메랑 같은 복수를 하는 대신, 그것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문화를 나 자신부터 시작하는 건 어떨까. 나는 절대 그런 게 통하지 않는 사람, 그런 걸 하지도 않는 사람. 그들보다 멋진 인생을 사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그것이 진짜 복수다.



나만의 소소한 행복 만들기_일과 삶의 불가분적 법칙

나만의 휴식 계획표_살기 위한, 나만의 근태 기준 재정비

정해진 시간보다 일찍 출근하고 다른 직원들보다 늦게 퇴근하기. 많은 직장인이 상사들이 말하는 ‘좋은 근태’가 이런 모습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런 모습은 당연하게도 직원의 희생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누군가에게는 반가운 일일지 모를 이 희생.


그러나 회사와 윗사람을 의식해서 하는 이러한 희생이 쌓이다보면 어느새 그 직원의 몸과 마음은 심각하게 지치게 된다. 나 역시 이러한 시간들이 있었다.


때로는 강요에 의해, 때로는 자의에 의해 나는 그야말로 희생적인 직장생활을 해나가고 있었다. 최대한 다른 직원들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는 마음에 건강관리 역시 철저하게 했다. 혹시나 몸이 아파도 일단 출근해서 회사 상황을 살핀 뒤에야 조퇴했고, 연차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공휴일이 아니면 언제나 회사에 충실하게 출근했다.


그렇게 10년이라는 시간을 좋은 근태와 정석처럼 보내던 내게 그 기준을 바꾸게 만드는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임신을 하게 된 나는 심한 입덧으로 힘겨운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입덧이 주는 어지러움과 메스꺼움은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했다. 회사와 집의 거리가 멀지 않아서 그동안 도보로 이동을 해왔기에 입덧이 심했던 당시에도 큰 무리 없이 출퇴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회의 장소가 갑작스럽게 변경된 것이었다. 버스를 타고 40분 이상은 가야 도착할 수 있는 장소로 출근하라는 문자가 덜컥 날아왔다. 버스 안의 냄새를 도저히 버텨낼 자신이 없었다. 두려움이 앞선 나는 결국 회의에 참석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보고를 올리는 즉시 선배에게 자문을 구했다. 그때 들은 말이 근태의 기준을 바꾸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입덧 때문에 회의 참석을 못한다고? 나 때는 말이야, 애 유산하면서까지 회사에 나왔어. 가능하면 회의에 참석하는 게 좋겠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고 했던가. 같은 여자라 이해해줄 거라 생각했던 만큼 그 배신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처참했다. ‘아파도 회사에서, 죽어도 회사에서’라며 지금껏 몸이 부서져라 회사를 위해 충실했던 내게, “뱃속 아이보다 회의가 더 중요하니 참석하길 바란다.”라니….


더는 회사를 위해 희생적으로 굴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동안 투철하게 지켜온 소신이 더는 버티지 못하고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택시를 타고 입덧을 견디며 회의에 참석했다. 누구보다 회사에 충성했던 내 과거를 기억해주는 이는 아무도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이 사건을 겪은 이후, 나만의 근태 기준을 재정비했다. 누가 금지라도 시킨 듯 기피하던 연차도 아낌없이 사용하기 시작했고, 출근도 남들보다 일찍 하지 않았다. 퇴근 역시 서둘러 준비했다. 내 후배들에게도 휴가와 ‘칼퇴’를 적극 권장한다. 쉬지 않고 일한다고 해서 누가 알아줄 것이라는 기대는 아무 소용없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초년생들에게까지 권장하고 싶지는 않다. 나처럼 어느 정도 회사에서 이해 가능한 스토리가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오해를 사거나 욕을 먹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오랜 회사생활을 통해 열심히 한다고 일의 효율이 늘진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오히려 회사 내에서도 나만의 휴식 시간을 만들어두어야 일의 효율이 높아진다. 그래서 나만의 휴식 계획표를 만들어, 지치지 않고 능률적으로 일할 수 있는 오피스 라이프 스타일을 찾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오전에는 집중적으로 몰두해서 일을 최대한 마무리하고, 오후에는 짬짬이 쉬는 시간을 가지며 일을 병행했다. 점심시간에는 도시락을 일찍 먹고 낮잠을 한숨 자거나, 오후 어느 시간쯤에는 차를 마시며 잠시 휴식을 취하는 등 나만의 휴식 계획을 실행했다. 이 외에도 월급날에는 연차를 내어 일하지 않고 급여를 받는 기분을 만끽해보기도 했다.


이처럼 나는 건강한 휴식이야말로 오랜 회사생활을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근태의 기준을 ‘회사’ 중심이 아닌 ‘나’ 중심으로 바꾸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회사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나’라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 자신을 위해서나 회사를 위해서나 건강한 균형을 맞추기 위한 몸과 마음의 휴식은 필수적이다. 그러니 행복한 회사생활을 위해서라도, 나만의 휴식 계획표를 만들어서 보다 능률적이고 재밌는 회사생활을 즐기기를 권해본다.



회사에서 성장하다_상호보존의 법칙

누구도 이 회사에 당신 등을 떠밀지 않았다_내가 선택한 회사, 후회하지 말자

많은 직장인들이 ‘이놈의 회사를 언제까지 다녀야 하나?’ 하고 생각한다. 나 역시 그랬다. 17년 차가 된 지금도 ‘언제까지 여기를 다녀야 할까?’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러나 잊지 말자. 지금 이 회사는 몇 년 전의 내가 꼭 입사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력서를 넣은 곳이라는 사실을.


부모님은 내가 선택할 수 없다. 그러나 회사는 선택할 수 있다. 얼마 전, 나는 컴퓨터를 수리하던 중에 우연히 지금의 회사에 지원하기 위해 작성했던 이력서를 발견했다.


저는 당사에 꼭 입사하고 싶습니다. 저를 뽑아주신다면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대체 어디서 나온 자신감이었을까? 어떻게 저런 이력서로 내가 합격한 걸까’ 하며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내 선택에 책임을 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내가 입사하고 싶어 했던 회사였잖아. 후회하지 말아야지.’


이날 다시 보게 된 이력서는 이후 심각하게 작성했던 몇 장의 사직서를 울면서 쓰레기통으로 던져 넣게 만들었고, 회사에 대한 내 마음을 다잡게 만들어주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지금의 회사에 입사하기 전, 작은 무역회사에서 잠시 인턴생활을 했었다.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바로 입사한 곳이었기에 오직 자신감 하나만 가지고 들어갔던 첫 직장이었다. 빨리 경력을 쌓아야지 하는 생각으로 열심히 회사를 다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큰 회사에 대한 욕심이었다.


높은 연봉과 주5일 근무제를 시행하는 금융기업에. 매일 밤 높은 하이힐을 신고 크고 화려한 회전문을 열며 출근하는 모습을 상상하다 잠이 들곤 했다. 나는 상상 속의 내 모습을 실현코자 과감하게 무역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렇게 원대한 꿈을 품은 ‘백조’ 생활이 시작되었다.


‘백조’의 아침은 컴퓨터 앞에 앉아 채용공고를 찾아보는 것으로 시작했다. 내 기대에 부응하는 회사를 찾기 위해 회사 검색과 이력서 쓰기를 병행했다. 그렇게 꿈을 찾아 열심히 달리던 내게 날아든 비보가 있었다. 바로 사랑하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너무 많은 것을 받아만 왔는데, 나는 무엇 하나 제대로 해드린 것 없이 할아버지를 보내드려야 한다는 사실이 가슴 아프고 안타까웠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 할머니와 한집에서 살았기에 그분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다. 특유의 근거 없는 자신감과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자존감은 이런 조부모님의 사랑이 밑거름이 되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신기하게도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며칠 뒤, 나는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의 입사 공고를 발견했다. 그리 큰 대기업은 아니었지만 공고를 보자마자 ‘여기다. 여기가 내 운명의 회사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하게도 ‘분명 할아버지가 도와주실 거야.’ 하는 믿음이 들었다.


회사에서 면접을 보기 직전에 가슴이 설레던 기억, 합격했다는 통보에 햄버거 가게에서 아르바이트 하던 친구를 찾아가 “나 합격했어!” 하고 소리 지르며 함께 기쁨을 나눴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누구에게나 인생에 세 번의 기회가 있다고들 한다. 나의 경우 첫 번째는 지금의 회사를 선택하여 입사한 것이고, 두 번째는 입사하게 된 이 회사를 오랫동안 다닐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것이리라. 그리고 아마 마지막 세 번째 기회는 회사와의 아름다운 이별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물론 컴퓨터에서 우연히 이력서를 발견한 뒤에도 일이 힘들 때, 혹은 다른 이유로 회사를 그만두고 싶을 때가 있었다. 그 때마다 이력서를 수정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후회하실지도 모르니 뽑을 때 신중하십시오.’라고 말이다.


하지만 스스로가 선택한 이 회사를 후회하지 않았기에 그 시간들을 잘 버텨낼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 스스로에게 수정된 이력서가 아닌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 앞으로의 회사생활도 후회하지 말고 아름답게 잘 마무리하자고, 토닥여주고 싶다.


만약 지금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힘든 회사생활로 인해 입사를 후회하고 있다면, 나처럼 입사 전 이력서를 한번쯤 읽어보기를 권한다. 당시의 설렘과 간절함, 그리고 합격이 주었던 기쁨을 다시 떠올려보면 후회하는 마음에 조금은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조언을 건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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