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할 일은 인생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일뿐이다

   
주광첸(역:이에스더)
ǻ
쌤앤파커스
   
15000
2020�� 12��



■ 책 소개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사람은 잘 깨닫는 사람이다.” 
미학자의 노트 속 ‘삶의 아름다움’에 집중한 34편의 글 

현대 미학의 큰 스승 주광첸은 전작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에 이어, 《우리가 할 일은 인생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일뿐이다》를 통해 우리 주변의 수많은 사물을 느끼고 감상하는 자세’에 대해 더욱 깊이 있고 진중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가 써놓은 수백 개의 글 가운데 ‘삶의 아름다움’에 집중한 34편을 추려놓은 이 책은 우리가 ‘인생의 아름다움을 경험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도록 이끈다. 

또한 사물 본연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실용의 세계를 넘어 ‘목적 없이’ 그 본연의 형상을 바라봐야 한다고 말한다. 결과적으로 아름다움과 실제 인생은 일정한 거리가 있으므로, 인생의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발견하려면 적당한 거리를 두고 밖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사물 하나, 풍경 하나에서도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진한 여운과 다양한 감정을 발견하는 힘. 이를 통해 삶의 1순위는 다른 무엇도 아닌 ‘삶’ 그 자체임을 이해한다면, 우리 인생의 여러 장면은 더 다양하고 찬한 색으로 채워질 것이다. 

■ 저자 주광첸 
현대 미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저명한 미학자이자 존경받는 교육자. 동서양 미학의 융합을 지향하는 깊이 있는 연구를 통해, 동양권에서는 물론 국제적으로 명성 높은 ‘미학의 대가’로 칭송받으며 현대 미학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베이징대학교, 쓰촨대학교, 우한대학교에서 교수를 역임했고 중국미학학회 회장, 중국작가협회 고문으로 활동했다. 

저서로 《담미서간談美書簡》 《열두 통의 편지給靑年的十二封信》 《서양미학사西方美學史》 《문예심리학文藝心理學》 등이 있다. 이 책은 일본의 중국 침략이 노골화되었던 1932년, 주광첸 선생이 청년들을 위해 쓴 열다섯 통의 편지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그는 복잡한 시대 상황에 갇혀 괴로워하는 청년들에게 진심을 담아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했다. “삶을 알고자 한다면 주변의 수많은 사물을 느끼고 감상하라. 아름다움은 그것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졌을 때만 볼 수 있다.” 주광첸 선생의 말은 시대를 관통하여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고스란히 전해진다. 

■ 역자 이에스더 
중국에 소재한 한국국제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인천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다. 해외 바이어 중국어 인터뷰 진행, 중화권 기업 전담 수출입 업무 진행 및 다양한 상품 번역 업무의 경험이 풍부하고, 비즈니스 분야뿐만 아니라 수년간 다양한 연령층을 상대로 중국어 교육을 진행해왔다. 

현재 엔터스코리아에서 출판기획 및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역서로는 《하버드 100년 전통 말하기 수업》, 《우리가 할 일은 삶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일밖엔 없다》 등이 있다.  

■ 차례
먼저 읽는 책 속 명문장들 

하나, 세상 모든 것이 곧 삶이다 
삶의 목적은 ‘진성’에 있다 
-움직임에 대하여 
분주함 속에 고요함의 재미가 있다 
-고요함에 대하여 
사람 입맛 다 비슷하다지만 예외는 있다 
-기호에 대하여 
생기가 넘치는 사람은 다방면에 흥미가 있다 
-여가 활동에 대하여 
삶에 재미가 있어야 생기가 생긴다 
-휴식에 대하여 
몸이 없으면 마음도 없다 
-체육에 대하여 
답답할 땐 밖으로 나가 걸어라 
-베이징 지안문 거리에서 
자연의 거침과 조잡스러움이 좋다 
-본모습에 대하여 
끝없는 풍경이 한순간 새로워진다 
-화훼 전시회에 다녀와서 

둘, 아름다움을 삶의 1순위로 
부족한 것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그것을 보는 눈이다 
-오래된 소나무에 대한 3가지 태도 
인생을 보려면 멀찌감치 서야 한다 
-예술과 인생의 거리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사람을 평범치 않게 한다 
-감정이입의 현상 
아름다움은 사람을 즐겁게 한다 
-미감과 쾌감 
작은 것에서 세계를 발견한다 
-연상의 힘 
깨달음의 맛은 반드시 직접 깨달아야 한다 
-걸작 속 영혼의 모험 

 




우리가 할 일은 인생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일뿐이다


세상 모든 것이 곧 삶이다

삶의 목적은 ‘진성’에 있다

-움직임에 대하여

마음이 많이 불안하다면 그건 걱정이 많아서일 것이다. 걱정은 우리를 침체시키기 마련이니까. 일종의 병적 증세이기도 하다.


보통 사람들은 심오한 말을 하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누군가 걱정과 고민을 털어놓으면 자신만의 ‘철학사전’에서 ‘염세주의적 비관 철학’ 같은 그럴싸한 말을 찾아다가 진단하려 든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물론이고 나조차도 알 수 없는 나의 심경을 감히 ‘철학과 인생관’ 따위가 어떻게 알까?


물론 나도 철학가들의 교훈에 조금 의지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대단한 철학적 교훈도 우연히 맞닥뜨리는 질병, 솟구치는 심박수를 어찌해주지는 못했다. 아마 단련의 시간이 부족해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젊은 사람들 중에 어떤 상황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단계에 이른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우리는 보통 기분이 좋을 때 ‘유쾌하다’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기분이 좋지 않으면 ‘우울하다’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이 두 단어는 즐겁거나 즐겁지 않은 ‘상태’를 나타내기도 하고 ‘이유’를 나타내기도 한다. 걱정이 있다면 당신의 삶이 우울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즐거워지려면 스스로 편안해질 수 있어야 하고 감정 잘 배출할 수 있어야 한다.


‘한수(閑愁)’라는 단어가 있다. 별일 없이 한가한 사람은 생기가 멈춰 있어 편안하지 않고 그로 인해 걱정에 빠지기 쉽다는 의미다. 젊은 사람들이 나이 든 사람들보다 걱정이 많은 건 생기가 왕성하기 때문이다. 생기는 많은데 움직임은 날로 줄어드니 걱정이 쌓일 수밖에 없다.


어린아이들이 그 누구 못지않게 왕성한 생기를 띠면서도 걱정이 없는 건 종일 뛰어노는 놀이 활동 덕분에 우울함에 휩싸이지 않는 덕이다. 어린아이들도 즐겁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땐 펑펑 울어버려서 그 우울한 기운을 씻어낸다. 반면 어른들은 힘들어도 체면을 차리느라 울어버리지 못한다. 대신 속으로만 끙끙 앓으니 갈수록 마음이 더 쓰려질 뿐이다.


결국 걱정은 우울감에서 비롯되고,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배출에 있다. 우울감은 멈춰 있을 때 발생하니 배출하는 방법도 움직임에 있다.


예전에 유가의 학자가 말했던 심성에 대한 이야기는 최근 심리학자들의 관점에서 봤을 때 아주 애매한 것들이 많다. 하지만 맹자가 이야기했던 ‘진성(盡性)’만은 아주 뜻깊다. 진성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많은 철학을 배워도 매우 얕은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진성의 뜻을 명확하게 알아야 그 속에서 삶의 목적과 방식을 찾을 수 있다.


나는 본가에서 살 때, 서재 정리하는 걸 좋아했다. 어질러진 책장을 정돈하고 먼지가 쌓인 곳곳을 직접 쓸고 닦았다. 그렇게 혼란스러웠던 공간을 깨끗이 치우고서 여유롭게 의자에 앉아 서재를 둘러보았다. 그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즐거움과 위로를 얻었다. 모든 몰입의 움직임이 그렇다. 테니스 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힘껏 라켓을 휘두를 때, 그 사람에게는 그 어떤 걱정도 자라나지 않는다.


삶에 재미가 있어야 생기가 생긴다

-휴식에 대하여

세계 각국 민족 중에서 힘든 일을 가장 잘 참아내는 민족은 아마 중국인일 것이다. 또한 그중 최고는 농민이다. 그들은 해가 뜨면 일을 시작해서 해가 지면 일을 마무리한다. 날이 맑거나 흐리거나 따뜻하거나 춥거나 항상 무리하게 피땀을 흘리며 쉬지도 못하고 일을 한다. 농민은 1년 중에서 명절 때나 쉬는데 그것도 길어야 3~5일을 쉰다.


농촌에 살면 농민들이 뜨거운 여름날 수차로 물을 퍼 올리고 잡초를 뽑거나, 무거운 짐을 지고 짐차를 밀며 산비탈을 오르거나, 밧줄을 잡아끌어 화물선을 급류에 올리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그 모습을 보면 그들에게 존경심과 연민이 생긴다.


이런 인내의 정신은 마땅히 존경해야 하지만 심신의 수양에 있어서는 지극히 위험한 일이다. 중국인들은 인내를 참 잘하지만 신체적으로 허약하면서도 일하는 데에 있어 비효율적이기까지 하다. 이는 휴식의 중요성에 대한 중국인의 인식이 너무나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작은 문제인 것 같지만, 모든 민족의 생명력과 연관되어 있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다.


자연계의 사물은 모두 나름의 리듬을 지니고 있다. 밤낮이 서로 바뀌고 여름과 겨울이 번갈아 오는 것까지 모두 노동과 휴식의 이치 안에 존재한다. 땅도 몇 년 동안 밭을 갈고 나면 휴지기를 가져야 하며, 심지어 기계도 밤낮없이 일할 수는 없다. 이 세상에 하나의 상태만을 오래 지속할 수 있는 사물은 없다.


세상에는 자연을 거슬러 억지로 할 수 있는 일도 있지만 그 억지도 정도가 있다. 몸에서 비롯된 것이든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든, 사람의 힘은 한계치까지 모두 사용하고 나면 반드시 피로하고 쇠약해져서 결국 파멸에 이른다.


우리는 일하는 시간이 길수록 더 많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루에 걸어갈 수 있는 거리가 100리라고 하면, 하루를 더 쉬지 않고 갔을 때 200리를 갈 수 있고, 이렇게 쉬지 않고 매일 걸어도 계속 100리를 걸을 때의 속도를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장거리를 걸어본 사람이라면 이 계산법이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쉬지 않고 오래 걸으면 갈수록 속도가 느려진다. 결국엔 아예 움직일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요즘 사람들이 일을 할 때 범하는 폐단이 바로 멈춰 서는 것은 두려워하면서 느려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말로는 일을 안 한다고 하지만, 죽지도 살지도 못한 채 느릿느릿 힘겹게 살면서 쉬지 않고 일하고, 일을 한다고 해도 딱히 대단한 결과를 내지도 못한다.


수많은 일에 있어 효율이 없으면 뒤처지게 되어 있다. 효율성이 가장 긴박한 문제라는 것을 인식한 서양 각국의 심리학자들은 이 문제에 대해 무수히 많은 연구를 했다. 그리고 같은 양의 시간 동안 같은 일을 한다는 조건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이 그렇지 않은 것보다 효율이 훨씬 높다는 결론을 도출해냈다.


휴식은 비단 일하기 위한 힘을 비축해줄 뿐만 아니라 때로는 그 속에서 일 자체가 성숙해지게 한다. 프랑스의 위대한 수학자 푸앵카레(Poincare)는 어려운 문제를 연구하다가 아무리 고심을 거듭해도 해결되지 않으면 길거리에 나가 돌아다녔다. 그러고 나면 아무리 애써도 해결되지 않던 문제가 자연스럽고 쉽게 해결되었다.


어떤 일이든 잘 해내고 싶다면, 일을 할 때 정신이 충만해야 한다. 그래야 일이 즐거움이 된다. 피로감이나 고민이 생긴다면 우선 내려놓고 휴식을 취해 정신을 회복하고 나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사람은 삶에 재미가 있어야 생기를 얻을 수 있다. 삶의 재미는 말 그대로 삶 속에서 깨달아 얻게 되는 재미를 말하는 것이고, 생기는 생활을 발전시키기 위해 필요한 힘을 말한다. 제갈량이 한 “심신이 평온해야 원대한 이상에 도달할 수 있다.”라는 말에는 삶의 재미와 생기 두 가지 요소가 내포되어 있다.


평온해야 풍부한 삶의 재미와 생기를 느낄 수 있다. 충분한 휴식 없이 우유함영하는 사람은 절대 평온할 수 없다.



아름다움을 삶의 1순위로

아름다움에 대한 태도는 마음에서 출발한다

-사람과 사물의 관계

미감이란 무엇일까? 미감은 형상의 직각에 기인한다. 이런 형상은 고립되고 자족하는 것으로 실제적 삶과 일정한 거리가 있다. 미감적 경험 속에서 나와 사물의 관계를 발견할 수 있고, 우리의 감정과 사물의 자태가 서로 교감해야 비로소 아름다움의 형상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미감은 의지나 욕구를 지니지 않고 실용적인 태도와는 구분되며 과학적 태도와 다르다. 일반적인 사람이 쾌감, 연상 및 고증과 비평을 미감적 경험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매우 큰 오해다.


아름다움은 온전히 사물 자체에 있지도 않고 그렇다고 온전히 사람의 마음에 있지도 않다. 이것은 마음과 사물이 만나 태어나는 아기와 같다. 미감은 형상의 직각에 기인하는데, 형상은 사물에 속한 것이나 온전히 소속된 것은 아니다. 내가 없으면 내가 발견해내는 형상 또한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직각 역시 내게 속한 것이나 온전히 소속된 것은 아니다. 사물이 없으면 직각이 활동할 근거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에는 인간의 감정, 사물의 이치가 모두 있어야 한다. 양자 간에 하나라도 부족하면 아름다움을 발견해낼 수 없다.


오래된 소나무를 감상하는 예시를 들어보면, 소나무의 푸르고 곧음은 사물의 이치고 상쾌한 바람과 고상한 절개는 사람의 감정이다.


사실 오래된 소나무의 형상은 타고난 것으로 자유로운 상태가 아닌 그저 오래된 소나무일 뿐이다. 그러나 천만 명이 보는 형상이 천만 개로 다 다른 것은 각각의 형상이 모두 각자의 감정을 근본으로 창조된 것이기 때문이다. 각자가 발견한 오래된 소나무의 형상은 각자가 창조한 예술 작품이고 여기에는 예술 작품이 통상적으로 지니고 있는 개성과 개인의 성향, 감정이 담긴다.


아름다움에 대한 감상은 ‘플라토닉 사랑’과 흡사하다. 사랑의 맛을 처음 느꼈을 때를 기억하는가? 다른 사람과 똑같은 평범한 인간이 순식간에 당신만의 신으로 변한다. 당신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했던 아름다움을 상대가 충분히 지녔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이때 당신 눈에 상대방은 더 이상 그 본연의 모습이 아닌 당신의 이상화 과정을 거친 변형된 모습이 비친다. 당신의 이상 속에서 먼저 가장 아름답고 가장 훌륭한 인간상을 만든 뒤 그 모습을 상대에게 입히는 것이다.


사실상 요정의 몸에 의탁된 인간인 셈이다. 당신은 그 요정만 보이니 흠잡을 것이 없다 생각하겠지만, 주위 사람들이 냉정하게 바라보면 종종 의아해할 것이다. “왜 걔를 사랑해? 너도 참 이상하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연애 중인 상대방은 이미 예술화를 거친 자연과 같다는 말이다.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자연에 예술화를 더하는 것이다. 소위 예술화는 감정화와 이상화다. 다만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것과 연애는 한 가지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바로 점유욕의 유무다. 연애는 아주 강렬한 점유욕을 동반한다. 어떤 이를 사랑하면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든 원하는 것을 얻어야 만족스럽다는 태도를 지니게 된다.


반면 미감적 태도는 어떤 점유욕도 지니고 있지 않다. 한 송이 꽃이 이웃의 정원에서 자라고 있든지 꽃병에 꽂혀 있든지 감상할 수만 있다면 전부 아름답다고 생각하게 된다. “무엇을 했더라도 가지려고 하지 말고, 공을 세웠더라도 그에 머물지 말고.”라는 노자의 말이 미감적 태도의 정의라 할 수 있다.


앞서 말했듯이 미의 감상은 플라토닉 사랑과 흡사하다. 플라토닉 사랑은 점유욕 없는 아무런 목적 없는 감상일 뿐이다. 이런 사랑이 가능한지의 여부를 많은 사람들이 의문스러워한다. 그러나 역사 속 수많은 명작을 보면 그 작품들은 농도 짙은 첫사랑을 하는 사람의 마음처럼 티끌 하나 없는 경지에 도달해 있다.



아름다움의 경지에 이르는 삶

천천히 감상하며 간다

-예술과 인생의 관계

나는 실제 삶을 인생 전체의 하나의 단편으로 보기 때문에 예술과 실제 삶 사이의 거리를 인정하고 예술과 인생 전체의 간격도 인정한다.


엄밀히 말하면 삶을 떠나서는 예술이 아무 의미가 없다. 예술은 감정의 표현인데, 감정의 근원이 바로 삶에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예술을 떠나도 삶은 별 의미가 없다. 창조와 감상은 모두 예술적 활동으로서 창조도 감상도 없는 인생은 곧 자기모순이다.


삶은 원래 넓은 의미에서의 예술이다. 모든 사람의 인생사는 곧 자신의 작품이다. 이런 작품은 예술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돌멩이를 깎아 위대한 조각상을 만들 수 있는 반면에 어떤 사람은 돌멩이가 ‘물건’이 되도록 만들지 못한다. 이 차이는 전부 성격과 수양에서 비롯된다.


삶을 아는 사람은 예술가이고 그의 삶이 예술 걸작이 되는 것이다. 삶을 한번 사는 것은 마치 글을 한 편 쓰는 것과 같아서 완벽한 삶에는 좋은 글에 반드시 존재하는 특징이 있다.


예술은 정서적 활동으로 예술적 삶 또한 정서가 풍부한 삶이다. 인간은 두 종류로 나뉘는데, 하나는 정서가 풍부한 사람으로 수많은 사물에게서 재미를 느끼고 그 재미를 탐구하고 누린다. 반면, 또 다른 하나는 정서가 메마른 사람으로 수많은 사물을 재미없다고 느끼고 재미를 찾지도 않으며 종일 목숨 걸고 의식주만 추구한다.


후자는 세속적인 사람이고 전자는 예술가다. 정서가 풍부할수록 삶도 아름답고 원만해지기 때문에 삶의 예술화는 곧 삶의 정서화라고 할 수 있다.


‘재미있다고 느끼는 것’이 바로 감상이다. 삶에 대해 아는지의 여부는 수많은 사물을 대할 때 감상의 태도를 가질 수 있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감상 역시 목적 없는 탐구로, 감상할 때의 인간은 신과 마찬가지로 자유롭고 복이 있다.


알프스 산골짜기에 큰 기찻길이 하나 있는데, 길 양쪽의 풍경이 매우 아름답다. 그곳엔 “천천히 가, 감상해!”라고 쓰인 표어 판이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정신없는 세상을 알프스 산골짜기를 달리는 기차를 타고 가듯 빠르게 살아간다. 아쉬워할 틈도 없이 빠르게 지나가버리면 화려함이 넘치는 세상이 아무런 재미도 없는 감옥이 된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인생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일

인생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할 줄 알아야 한다

-아름다움을 발견하려는 마음가짐

최근 몇 년간, 내 주위에는 수많은 불행한 일들이 있었다. 가슴 아픈 뉴스들이 끊임없이 전해졌다. 젊은 시절을 함께했던 친구가 죽었고, 천재지변이나 인재로 인해 학업을 그만둔 친구도 있었으며, 높은 자리에 올라 고액 연봉을 받고 있거나 그 자리에 오르기 위해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친구의 소식도 들려왔다.


내 머릿속에는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물음들이 아주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생겨난 감정들도 덩달아 복잡하게 얽혀 있다. 하지만 나는 이 시대의 젊은 사람들에게 더 이상 복잡한 고민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당장 배를 불려줄 눈앞의 밥 한 공기가 아닌 청량산 한 포이기 때문이다.


다시금 미학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야겠다. 이 불안한 시기에 그렇게 팔자 좋은 소리를 늘어놓을 마음에 여유가 있는지 의아할 수도 있지만 내가 미학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건 지금과 같이 급박한 시기가 미학을 논할 적기이기 때문이다.


나는 요즘 사회가 이토록 혼란스러운 것이 오로지 제도적인 문제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절반 정도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나는 이성보다는 감성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이라, 어떤 상황에서건 마음부터 갈고닦아야 한다고 믿고 있다.


다시 말해, 일부 도덕가들의 몇 마디 가르침을 듣고 마는 것이 아니라 차근차근 노력하여 내 안의 근본에서부터 좋은 마음을 쌓아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단순히 배불리 먹고, 좋은 옷을 입고, 편히 자는 일이나 높은 자리에 올라 부를 누리는 것을 넘어서, 상대적으로 고상하고 순수한 목적을 추구하며 살아야 한다. 그러려면 우선 인생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할 줄 알아야 한다.


지금 이 세상은 아주 촘촘하게 얽혀 있는 이해관계의 망과 같아서 누구든 그 속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아무리 피해보려고 해도 결국엔 ‘이해’라는 두 글자에 발목이 잡힌다.


이해관계 속의 사람들은 서로 협조하기보단 각자 자기 자신을 최우선순위에 두고 서로 속이고, 상해를 가하고, 서로의 것을 빼앗는 경우가 훨씬 많다. 하지만 아름다움의 세계에서는 순수함을 근본으로 이해관계를 초월하여 각각의 독립성을 지킬 수 있다.


속됨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온갖 나쁜 마음들이 사람들 안에 계속 존재하는 것이다. 속되다는 것은 특정한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을 배제하고 고사하고 순수한 목적만 추구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태라는 뜻이다. 속되다는 것은 곧 아름다움에 대한 수양 부족이다.


나 역시도 아직 완전히 속됨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종종 속됨에서 벗어나는 즐거움을 경험할 때가 있다. 거의 절반 이상은 시를 읽는다거나 그림을 감상한다거나 자연을 감상하고 있을 때이다. 이 같은 즐거움을 깨달을 때마다 미학을 연구하는 데에 자신감이 한층 더해진다.


이 즐거움을 소개해주고 싶다. 당신이 이 글을 읽고 나서 시나 그림이나 혹은 자연을 마주하게 된다면, 아마 이전과 다른 짙고 깊은 즐거움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비로소 아름다움을 경험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 그 한 번의 경험 후에 당신이 인생 모든 부분에 있어 아름다움을 발견하려는 마음가짐을 가지게 된다면 내 소망은 이미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의 이야기들은 그저 사고의 한 가지 방식일 뿐이다. 그 길을 따라 생각을 하는 것은 스스로의 몫이다. 각각의 사물에 대한 생각은 사람에 따라 여러 가지로 나뉘기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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