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모르겠고 내 집은 있습니다

   
김민정
ǻ
21세기북스
   
15000
2020�� 12��



■ 책 소개


오늘도 최선을 다해 느긋한 하루를 보내자
‘잘’이 아니라 ‘적당히’!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는 삶을 사는 법

‘내 집 마련에 성공한 1인2묘 가구는 오래도록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동화라면, 흔한 성공담이라면 이쯤에서 이야기는 최종장을 맞이한다. 하지만 ‘1인2묘 가구’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사다난했던 내 집 마련 이후, 드레스룸을 만들고 인테리어 소품들로 로망을 실현하며 집을 채워 가던 저자는 어느 순간 집 안에서 고립되고 만다. 드레스룸은 옷들의 블랙홀로 전락하고, 일에서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인터넷 쇼핑을 반복하면서 옥천 허브를 방불케 할 정도로 문 앞에 택배가 쌓이고…. 저자는 이때의 자신을 아파트 앞 거치대에 방치된 자전거들 같았다고 표현한다.

방황하던 저자는 잠시 일을 그만두고 집 안에 가만히 머물면서 비로소 자신의 삶을 진정으로 돌보기 시작한다. 화이트 인테리어를 둘러싸고 고양이와 기 싸움을 하다가 포기하기도 하고, 드레스룸을 정리하고 서재로 바꾸기도 하면서 저자는 깨닫는다. 버지니아 울프가 외쳤던 ‘자기만의 방’은 ‘자기만의 시간’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을. 

■ 저자 김민정
1985년, 포항에서 태어났다. 19세부터 서울살이를 시작했고 서울과 경기도를 전전하다가 자취 14년 차에 내 집을 마련했다. 현재 고양시에서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살고 있다. 직업은 방송작가, 정체성은 페미니스트. 2019년부터 ‘1인2묘 가구’라는 비혼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유튜브 | 1인2묘 가구, 인스타그램 | @kmjcats

■ 차례
Prologue

Part 1 운명의 집을 찾아서
내 집 마련은 딴 세상 이야기라
당신이 ‘여성’ 세입자라는 이유만으로
야 너두 할 수 있어
피, 땀, 월급
운명의 집을 찾아서
비정규직 비혼 여성도 사람이외다
14년 세입자의 한풀이 리모델링
남의 집 연대기

[특별면]
* 내 집 마련 로드맵 만들기
* 구해줘 야매 홈즈
* 사소한 것도 내가 원하는 대로

Part 2 집의 기쁨과 슬픔
집만 있으면 다 될 줄 알았지
내일부터 안 나가겠습니다
나의 집, 나의 시간
월세도 안 내는 옷에게 방을 내주다니
하마터면 훈녀처럼 살 뻔했다
본캐는 방송작가, 부캐는 유튜버
비혼이 뭐냐고 물으신다면

[특별면]
* 지속 가능한 일상을 위한 루틴들
* 미니멀 옷장을 유지하는 방법

1인2묘 가구의 세계

Part 3 나를 닮은 집
호캉스가 필요 없는 삶
내가 먹을 거니까 고기 많이
이케아가 어때서
온 세상이 화장실이었을 너에게
게으른 집사의 최후
내 집값만 안 오르네
가계부 안 쓰는 신박한 절약법
나는 아플 때 서재로 간다
욕조의 위로

[특별면]
* 작은 주방은 언제나 심플하게
* 1인2묘 가구 주방용품 베스트
* 나만의 소비 원칙들
* 최소한의 것으로 최대한의 만족을

Part 4 가족을 찾아서
나 오늘 한마디도 안 했네?
판타스틱 페미니스트 월드
잼 뚜껑 하나에 남자를 떠올리다니
동네 친구 디오니소스
4인용 테이블을 들이다
혼자 사는데 아프면 어떡하지
엄마의 장례식
고독사라는 헤드라인은 사양한다
비혼에게도 가족계획이 필요하다

Epilogue
1인2묘 가구 도서 베스트

 




결혼은 모르겠고 내 집은 있습니다


운명의 집을 찾아서

야 너두 할 수 있어

내 직업은 방송작가다. 그중에서도 희귀하다는 ‘뉴스’ 방송작가로 “뉴스에도 작가가 있나요?”라는 질문을 수시로 듣는다. 그러게 말이다. 사실 나도 그런 직업이 있는 줄 몰랐다. 그리고 내가 뉴스 작가를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예능 프로그램으로 작가 생활을 시작했다가 지옥을 맛보고 도망친 곳이 뉴스였는데, 어느덧 10년째 이 일을 하는 중이다. 전혀 적성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일이 막상 해보면 꽤 잘 맞는 경우가 있다.


그 어떤 충격적인 뉴스에도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원고를 쓰며 내 집 마련과는 별 상관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 다른 프로그램에서 일하고 있던 한 방송작가를 알게 되었다. 나이에 동갑도 연차도 비슷해 금세 친구가 됐다. 고된 하루를 보냈던 어느 날, 함께 술자리를 가졌다가 밤이 깊어졌다. 집까지 가려면 꼬박 한 시간이 걸리고, 별로 친하지도 않은데 재워 달라고 하긴 그렇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 친구가 먼저 자기 집에서 자고 가라며 운을 뗐다. 언니와 함께 살다가 이번에 독립을 했다면서. 그러다 보니 화제가 자연스럽게 집 이야기로 옮겨 갔고, 조심스레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았다.


“혹시 월세야? 아님 전세?”

“아니, 자가.”


아니, 잠깐만, 자가? 집을 샀다고? 나랑 동갑인데? 월급도 비슷할 텐데? 혹시 금수저인가? 온갖 물음이 머릿속에서 휘몰아쳤다.


그는 서울 은평구의 투룸 빌라를 1억 원 후반대에 샀고, 약 7천만 원 정도의 은행 대출을 받았다고 했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점점 자신감이 생겼다. 이거 나도 해볼 만한데? 무미건조한 내 얼굴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세상에서 가장 흥미로운 뉴스를 접한 것처럼. 나를 더욱 놀라게 한 이유는 집을 산 이유였다.


“근데 어떻게 집을 사야겠다고 생각한 거야?”

“그냥.”


그냥이라니. 이보다 명쾌한 답이 또 있을까. 내 집 마련은 딴 세상 이야기라 생각하며 좌절감 속에 살았는데 그냥 집을 사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신축 빌라인 그 친구의 집은 세상 어느 곳보다 아늑해 보였다. 그의 침대에 누워서도 쉽게 잠들지 못했다.


어쩌면 나도 집을 가질 수 있을지 몰라! 날이 밝자마자 집으로 뛰어갔다. 당장 내 집 마련 계획을 세워야 했다!


월 100만 원씩 적금을 넣어 5년 동안 6천만 원을 모으겠다는 목표를 잡았다. 대출은 되도록 1억 원을 넘기지 않기로 했다. 어느 날 갑자기 무직자가 되어도 몇 달은 감당 가능한 수준(원금과 이자 포함 월 30~50만 원 선)의 대출을 받는 게 정신건강에 이로울 것 같았다.


틈틈이 부동산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됐다. 이 세상엔 서울만 있는 것이 아니며, 숨만 쉬고 돈을 모아야 살 수 있는 집만 있는 것도 아니고, 대출을 잘만 활용하면 된다는 것을.(그때의 나는 대출하면 인생이 끝나는 줄 알았다.) 만약 그 친구를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여전히 세입자로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날 이후에야 내 집 마련 레이스의 출발선에 섰고, 최종적으로 결승선을 통과할 수 있었다. 그것도 목표했던 5년보다 훨씬 빨리.


내 집을 마련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당연히 목돈을 빨리 모으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나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빨리 깨닫는 게 중요하다. 내 집 마련에 성공한 여성이 주변에 있다면 내 집으로 향하는 길이 더욱 빨라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내 집 마련은 더 이상 딴 세상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 친구의 이야기, 그리고 나의 이야기가 된다. 모 영어 학원 광고 중에 이런 카피가 있다. “야, 너두 할 수 있어.”



집의 기쁨과 슬픔

집만 있으면 다 될 줄 알았지

집만 있으면 저절로 잘 살게 될 줄 알았다. 잘 살아 보겠다는 마음만 있으면 충분할 줄 알았다. 하지만 집을 산 후 1년 동안의 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우울한 시기였다. 나는 여전히 오전, 오후, 주말 각각 다른 방송국을 오가며 돈 벌기에 열중했다.


월 600만 원의 수입을 유지하기 위해선 계속되는 하대와 무시를 견뎌야만 했다. 모든 방송국이 그런 것은 분명 아닐 테지만 불행히도 내가 일했던 곳은 그랬다. 특히 ‘고귀한 곳’에서는 프리랜서들을 투명인간 취급하거나 그들의 생사를 쥐고 흔드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었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었다. ‘이 풍진 자본주의의 세상에선 너나 나나 다 똑같은 노예일 뿐이다’라고. 그러고 나면 어느 정도는 견딜 만했다. 하지만 이 주문의 힘은 그렇게 강력하지 못했다. 견디기 힘든 순간은 언젠가 찾아오고야 만다.


우울함, 무의미함, 자기혐오... 이런 감정들이 나를 서서히 잠식해 가고 있을 때, 무심히 지나쳐 왔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사는 아파트 입구의 자전거 거치대에는 방치된 자전거가 많았다. 참 보기가 싫었던 그 자전거들이 꼭 내 모습처럼 보였다. 오랫동안 자물쇠에 묶인 채 먼지가 쌓이고 바퀴에는 바람이 빠져 있는 모습이, 내가 무엇 때문에 집을 샀는데, 왜 저 자전거 같은 꼴을 하고 있는 걸까. 오랫동안 날 묶어둔 자물쇠를 풀어야 했다. 하고 있던 일들을 모두 그만두기로 했다.


나의 집, 나의 시간

하루아침에 백수가 됐다. 늘 새벽 5시에 일어나야 했는데 마음껏 늦잠을 잤다. 평일 오전의 동네는 이렇게 평화롭구나. 음... 그런데 이제 뭘 해야 하지?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당황스러웠다. 그렇게 자유를 원했는데 막상 자유를 얻고서 이 모양이라니. 항상 때려치우고 싶다고만 생각했지, 그만두고 뭘 해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은 것이다. 가끔 연예인들이 일만 하며 사느라 시간 쓰는 방법을 모르겠다고 말하면 ‘하, 그 시간 나 좀 줘보쇼’라며 콧방귀를 꼈는데 이제야 그 말이 실감이 났다.


자격증 준비나 영어 공부를 해볼까. 아무래도 내키지 않아 이내 계획을 접었다. 백수 주제에 구직 활동이나 자기 계발을 하지 않는다니, 예전 같았으면 내 안의 ‘게으름 감독관’이 뭐라도 하라고 채찍을 후려쳤을 텐데, 이제 더는 생산성 따위에 집착하며 스스로를 괴롭히고 싶지 않았다.


예전처럼 무엇인가를 이루려 하기보다, 느슨한 시간 속에서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천천히 들여다보기로 했다. 며칠 동안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천장을 보며 누워 있거나 고양이 똥을 치우며 보냈다. 이렇게 비생산적으로 시간을 보내도 괜찮을까.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불안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지날수록 점차 나만의 루틴이 생겼다. 약속이 없어도 매일 씻고, 청소를 하고, 30분은 동네를 거닐며 산책을 했다. 나에게 일어난 일들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봤고, 이해가 되지 않을 땐 책을 읽었다. 가장 중요한 일과는 매일 밤 일기를 쓰는 것이었다. 일기를 길을 찾고, 위안을 받고, 나와 이야기를 나누는 방법이었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대부분임에도 정말 많은 이야기를 빼곡하게 채웠다.


내가 만든 루틴에 따라 움직이면서 나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황폐했던 마음에도 안정감이 찾아왔고 가야 할 방향이 조금씩 보였다. 역설적이게도 비생산적이라고 생각했던 시간이 가장 생산적인 시간이 된 셈이다. 나에게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고민의 방향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과거의 나는 ‘생존하기’만을 고민했었다. 내가 방송작가를 계속할 수 있을지, 앞으로는 또 어떻게 벌어먹고 살아야 할지. 하지만 이제는 ‘존재하기’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그저 물건을 채워 넣기 바빴던 이 집도 서서히 바뀌어 갔다. 많은 것을 내다 버리고 필요한 것들만 남겼다. 끔찍스러웠던 드레스룸은 서재로 만들고, 침실의 화장대를 버리고 커다란 작업용 테이블을 들였다. 여기에서 ‘존재하기’에 대해 궁리하다가 유튜브 채널도 만들게 됐다. 나를 고립으로 몰아넣었던 이 집이 비로소 나와 감응하는 공간이 되었다. ‘자기만의 방’을 갖기 위해선 ‘자기만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 단순한 진리를 얻기 위해서 먼 길을 돌아왔다. 다시 길을 잃더라도 이 공간에서 또 다른 길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나를 닮은 집

호캉스가 필요 없는 삶

유튜브를 시작한 후 몇몇 매체들의 인터뷰 요청이 들어오기도 하는데, ‘밀레니얼로서의 삶의 방식’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는 질문을 꽤 자주 받는다. 1999년을 강타했던 밀레니얼은 알겠는데 밀레니얼? 사실 밀레니얼 세대란 소리를 들으면 조금 어리둥절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가 그 세대에 가까스로 포함된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저는 격동의 세기말을 살았던 밀레니엄 세대입니다. 혹시 가수 Y2K를 아시나요?”라며 실없는 소리를 해댔기 때문이다.


아무튼 밀레니얼로서의 내 삶의 방식이란 ‘호캉스가 필요 없는 삶’을 표방한다고 할 수 있겠다. 여유로운 시간 속에서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그런 삶 말이다. 파이브잡을 하며 두통에 불면증까지 시달렸던 경험 덕에 자체적으로 ‘주 30시간 노동’을 준수한다. 다행히 이번엔 적당한 일자리를 구했지만, 방송작가의 자리란 방송국 사정에 따라 언제든 사라질 수 있기에 오늘도 최선을 다해 느긋한 하루를 보내려 한다.


김영하 작가는 한 TV 프로그램에서 ‘호캉스’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집에 있으면 세탁기만 봐도 저걸 언제 돌리나, 설거지는 언제 하나 걱정하느라 편히 쉴 수가 없는데 호텔에서는 이런 일상의 근심이 없어 호캉스가 인기를 끄는 것 같다고. 과연 그렇다. 일반 가정집에서도 호캉스 같은 삶을 누리려면 일단 가사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그렇다고 미루거나 안 할 수는 없다. 일상의 재생산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가사 노동이기 때문이다. 나는 고민 끝에 현대 기술에 외주를 주기로 했다.


설거지는 식기세척기에, 옷 관리는 스타일러에, 청소는 로봇청소기에, 세탁물 말리기는 건조기에 맡기고 있다. 나에게 일요일은 이른바 ‘풀가동 데이’로 모든 가전을 한꺼번에 작동시킨 후 나는 소음을 피해 욕조에서 여유롭게 때를 불린다. 덜컹, 덜컹, 그들이 알아서 굴러가는 소리가 기특하다.


물론 가전제품이 가사 노동으로부터의 완전한 자유를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가전 관리와 최종적인 정리는 결국 내가 해야 할 몫이다. 그럼에도 상당한 에너지와 여유 시간을 확보할 수 있기에, 이제 가전제품들은 우리 집에 없어선 안 될 든든한 조력자들이라 할 수 있겠다.


일반 가정집인 나의 집에 호캉스 느낌을 더해 주는 공간은 역시 베란다다. 매번 좋아하는 공간이 바뀌긴 하지만, 베란다는 나와 고양이들의 사랑을 꾸준히 받는 핫플레이스다. 오랜 자취 생활 동안 햇빛을 못 보고 살았던 적이 많았기에 눈이 부실 정도로 햇살이 쏟아지는 날엔 내가 이걸 공짜로 누려도 되나 싶을 정도다. 베란다 흔들의자에 앉아 세월아 네월아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고양이들도 하나둘 내 무릎이나 스툴 위에 자리를 잡는다. 요즘엔 자기들이 먼저 자리 잡고 있을 때도 있다. 좋은 건 알아 가지고, 피식 웃음이 나온다. 따뜻한 햇살 아래 나른한 표정으로 털 손질을 하고 있는 고양이들을 보고 있으면 세상만사 부귀영화가 다 무슨 소용인가 싶다. 오션 뷰보다 좋은 고양이 뷰, 이것만으로도 사실상 호캉스를 뛰어넘은 것이 아닌가.


조금 더 휴양지 같은 기분을 내고 싶을 땐 접이식 일광욕 의자를 펼친다. 그리고 밀짚모자와 선글라스를 쓰고 레몬을 띄운 탄산수를 마시며 비스듬히 앉아 있으면 꽤 그럴싸하다. 이런 날엔 점심도 하와이안 햄버거나 로코모코 같은 것을 만들어 먹는다. 그리고 유튜브에서 우클렐레 음악을 찾아 배경음악으로 틀어 두면 ‘진짜 여기가 하와이구나...’ 하고 느껴지는 건, 물론 아니지만 집에서 이런 모습으로 여유를 부리고 있는 게 나름 즐겁다.


코로나 때문에 외출이 줄어들면서 집과의 밀착도는 더욱 높아졌다. 온 미디어들이 해외여행 대신 호캉스를 가라, 이런 넷플릭스를 봐라, 이런 것들을 만들어 먹어라, 앞다투며 조언하고 있지만, 나는 이렇게 나만의 방식으로 유유히 집의 시간을 영위한다. 이게 다 백수 시절에 만들어 둔 루틴 덕분이다.


나는 아플 때 서재로 간다

내가 브이로그를 올릴 때마다 꼭 빠지지 않는 장면이 있다. 바로 집에서 책을 읽는 모습이다. 독서 모임에 참여하는 장면도 종종 나와서 꽤나 독서가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실 나는 책과 거리가 멀어도 한참이나 먼 인간이었다. 1년에 책을 1권도 안 읽는 성인이 10명중 4명이나 된다는 통계가 있는데, 그중 한 명이 바로 나였다. 인터넷을 통해서도 충분히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는데 왜 꼭 책을 읽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책을 안 읽으면 무식한 사람으로 취급하는 분위기도 싫었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책과는 더욱 멀어졌다.


하지만 강유원은 《책과 세계》에서 이렇게 말했다. 병든 인간만이 책을 읽는다고. 내 직업을 지독히도 혐오했을 때, 다이어트 강박으로 고통받을 때, 소유에 몰두하며 스스로를 잃어갈 때, 그럴 때마다 책을 뒤졌다. 인터넷을 떠도는 토막글로는 더 이상 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모든 일을 그만뒀던 3개월 동안, 평생 읽어 왔던 책보다 더 많은 책을 읽은 것 같다.


내가 이만큼 변할 수 있었던 것은 단언컨대 책의 영향이 아주 크다. 어떤 책은 내가 지금 왜 이렇게 아픈 것인지 알려 주었고, 어떤 책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고민하게 했다. 때로는 따뜻한 위로가 되어 주기도 했다. 시의적절한 책은 약보다 신통하다. 아픈 이들에게 딱 맞는 책을 처방해 주는 약국이 있으면 좋겠다.


똥 블랙홀이 되어 나를 환장하게 했던 드레스룸을 서재로 바꿨다. 이름도 붙여 주었다. 무려 ‘방구석 독립서점 캣서재’이다. 옷이 뒤엉켜 있던 선반은 이제 책으로 차곡차곡 채워지고 있으며 고양이들의 캣타워로도 활용하고 있다. 아무렇게 널브러져 있어도 아름다운 것 두 가지, 바로 책과 고양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멋지다. 드레스룸 대신 서재가 있는 집이라니.



가족을 찾아서

비혼에게도 가족계획이 필요하다

“너희는 아이 더 안 낳을 거야?”

“응. 한 명 이상은 너무 힘들 거 같아서. 너는?”

“남편은 딸 하나 더 있으면 좋겠다고 하네. 그래서 고민이야.”

“우린 당분간 애 없이 살려고.”


결혼한 친구들을 만나면 아이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육아의 고충부터 엄마로서 느끼는 감정들, 그리고 가족계획에 이르기까지. 대화 속에는 지금 이들이 어떤 삶을 꿈꾸는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에 비해서 내가 나의 가족에 대해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은 조금 단조롭다.


“넌 정말 결혼 안 하게?”

“응.”

“고양이들은 잘 있고?”

“응. 개미는 여전히 작고 라쿤은 사람을 너무 좋아해.”


이런 대화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엔 생각이 많아진다. 지금 혼자 사는 것이 만족스럽긴 한데, 나중에 마음 맞는 친구랑 같이 살아 보는 건 또 어떨까. 함께 살 정도로 마음 맞는 친구를 만날 수 있을까. 고양이는 계속 두 마리인 것이 좋을까. 아빠는 혼자서 잘 지낼 수 있을까. 지금 내 가족은 누구일까... ‘가족’에 대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러다 문득 비혼에게도 가족계획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비혼이기 때문에 가족계획이 필요하다. 우리는 제도 밖의 새로운 가족을 꾸려야 하니까. 세상이 가르쳐 주지 않은 길로 가야 하니까. 집과 돈이 있다는 것만으로는 절대 잘 살아갈 수 없다. 1인 가구 여성에게 가장 위험한 것은 불안한 주거권도 빈곤한 경제력도 아닌 사회적 고립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지속 가능한 비혼 생활을 위해서는 ‘혼자 살기’의 능력만 키우는 게 능사가 아니다. ‘함께 살기’에 대한 고민도 그만큼 중요하다. 비혼이라고 말하는 것이, 단순히 결혼하지 않겠다는 의사 표현이 아니라 하나의 연대 선언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도서관에 가면, 결혼한 이들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조언하는 책은 셀 수 없이 많다. 하지만 비혼에 관한 책은 손에 꼽을 정도다. 책도 없을 땐 정말 막막하다. 이 세상의 비혼들은 어떻게 먹고, 어떻게 돈을 모으고, 어떻게 인간관계를 이어 가는 걸까? 다행히 요즘엔 비혼에 관한 책이나 콘텐츠가 부쩍 늘어서 고맙고도 반갑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롤모델은 턱없이 부족하다. 내 브이로그 댓글에도 비슷한 고충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다.(이런 댓글을 보면 ‘역시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싶어서 큰 위안이 된다.)


여성단체 기반의 비혼 모임은 오래전부터 있었고, 최근에는 지역을 기반으로 한 모임도 계속 생겨나고 있다. 정말 좋은 현상이다. 하지만 좀 더 편하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대형 인터넷 커뮤니티가 있었으면 좋겠다. 비혼을 디폴트로 두고 평범한 일상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는 공간 말이다. 그러다 큰일이 있으면 한번 뭉치고. (현재 유명한 커뮤니티들이 이런 식으로 오랫동안 유지되고 있다.)


결혼정보업체처럼 비혼정보업체가 있다면 어떨까. 비혼 라이프 강의, 동네 비혼 친구 매칭, 비혼 운동 동호회, 비혼 재테크 스터디, 비혼 요리 클래스, 비혼 건강 체크 같은 것들을 알아서 척척 제공하는 업체가 있다면 살아가기가 훨씬 수월할 텐데.


그런 미래를 상상하며 가족계획을 짜기 위해 노트를 펼쳤다. 새하얀 노트를 보니 막막해진다. 해마다 다이어트 계획을 세상 철저하게 짰던 과거가 떠올랐다. 그 감각을 떠올리며 노트에 이런저런 것을 적었다. 나라는 점을 이어 선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느슨한 가족’의 범위를 최대한 확장해 봤다. 유튜브 구독자까지 포함했다. ‘또 하나의 가족’ 삼성이 울고 갈 클라스다. 어쨌든 이 모든 관계들이 이 세상에 나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한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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