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뭐하고 살았지, 바이크도 안 타고

   
유주희
ǻ
팜파스
   
14000
2020�� 08��



■ 책 소개


인생 라이더들과 공유하고 싶은 홀가분하고 확실한 행복 라이프

이 책은 <서울경제>에서 ‘두유바이크’라는 이름으로 게재되고 있는 칼럼의 핵심만 뽑은 본격 바이크 입문서입니다. 바이크 면허 따기부터 중고 바이크 첫 거래 시 유의할 점, 진정한 라이더로 거듭나기 위해 거쳐야 할 교육, 장비병, 고난과 역경을 담았습니다. 그 과정이 묘하게 사는 모습과 닮았습니다.

무탈하지만 문득 공허한 날에는 뭘 하고 싶으신가요. 바이크를 타면 가장 좋겠지만, 그러기엔 번거롭고 무섭고 심적 물리적 여유가 없는 사람들을 위해 바이크 이야기를 핑계로 잊었던 삶의 태도들을 건네 봅니다. 주말 아침에 느긋하게 일어나 눌린 머리는 헬멧으로 가리고, 바이크를 타고 마카롱 전문점에 가서 간식을 공수해 오는 것. 그것처럼 간단하지만 쉽게 잊기 마련인 것에 관한 이야기인데, 마카롱만큼이나 가볍고 확실한 행복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홀가분하면서도 확실한 행복으로 가는 길을 함께 달리고 싶은 당신에게 이 책을 권합니다.

■ 저자 유주희
저자 유주희는 서른 넘어 강렬한 사랑에 빠진 대상은 고양이, 술, 모터사이클 셋뿐이다. 뭐든 잘하진 못해도 꾸준해서 모터사이클 잡설 ‘두유바이크’를 6년째 연재 중이며, 본업은 경제신문 기자이다.
  
■ 차례
프롤로그. ‘2종 소형’이라는 네 글자가 이끄는 삶

Part 1. 무탈하지만 공허한 날엔 바이크
멍 때리는 시간에 ‘진짜’ 내가 있다_우연히, 바이크
우선순위 하단에 있는 것을 사랑하는 법이 있다_기계에 애정을 쏟는다는 것
명확한 장단점 앞에서 단점은 열심히 피한다_가뿐해진 출퇴근
오래 즐거우려면 기브 앤 테이크_북악에서 만나요
어디에나 동지가 있음을 잊지 않는다_친구가 생겼다
가벼운 마음으로 홀가분하게 다닌다_모토 캠핑, 피싱, 먹방과 입도바이
삶의 어느 때든 스테레오타입으로부터 이탈할 것이다_여성 라이더를 향한 시선
내 꿈을 현실로 바꿔 주는 주변 사람들을 생각한다_바이크 투어 계획

Part 2. 여전히 공부 중인 본격 라이더
이유 모를 재미에는 그냥 푹 빠진다_잊지 못할 2종 소형 면허 학원
‘처음’은 대~충이어도 괜찮다_열 살짜리 첫 바이크 울풍이
몰라서 용감했고 알면 성장한다_초보 라이더를 위한 최소한의 정보
흐름을 파악해야 몸, 마음 안전을 지킬 수 있다_라이더가 도로에서 유의할 것
때론 넘어져야 웃을 수 있다_제꿍 트라우마 맞서기
떨어진 낙엽도 꼭 다시 보자_도로 위 위험 요소
K-오지랖은 선한 영향력이다_라이더를 향한 도움의 손길
열심히 공부하고 복습해서 꼭 뭐가 될 필요는 없다_라이더의 공부

Part 3. 말했지만 또 말할, 바이크에 대한 오해와 진실
수백 번 말보다 존재 그 자체로 증명한다_바이크는 위험할까
‘허락보다 용서가 쉽다’는 말의 전제는 신뢰다_‘몰바’의 시작
매너가 사람을 만들고 한 사람의 매너는 인식을 만든다_라이더도 싫은, 라이더의 비매너
병은 병인데 목숨을 구하는 장비병_바이크 장비의 세계
만나기 마련인 고갯길도 즐길 수 있다_라이딩 교육 기관
행복의 비용은 사람 나름이다_바이크는 비싼 취미?!
행복의 모습은 다양하다_기변, 기추 병

Part 4. 바이크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나 인생 라이딩
‘보람찬 여행’이라는 강박 관념을 버렸다_만항재의 빛기둥
사소한 기억이 오래오래 추억으로 남는다_연례행사가 된 반국 투어
군중 속의 자유를 누리는 점심시간 여행이 있다_바이크 타고 동네 탐방
지금 당장 꿈을 이룰 수 없다면 꿈 맛보기부터_트라이엄프 본네빌과 LA 해안 도로
고난과 역경, 무질서 속에서도 퍼스널 스페이스는 있다_고난이도 베트남 투어
‘내 주제에…’ 의심이 들면 사양하지 않는다_리스본의 4월 25일 다리
짧은 시간에도 닮고 싶은 삶이 있다_SNS를 해야 할 이유
부지런함 끝에 그 이상의 즐거움이 있다_바이크 투어의 고통과 즐거움

에필로그. 나는 행복할 것이다 

 




그동안 뭐하고 살았지, 바이크도 안 타고


무탈하지만 공허한 날엔 바이크

명확한 장단점 앞에서 단점은 열심히 피한다

가뿐해진 출퇴근

어찌 보면 아무것도 아닌, 심지어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때가 있다. 그중 하나가 대중교통의 스트레스다. 지하철 안에 충분히 공간이 있는데도 툭툭 밀고 지나가는 사람들, 시끄럽게 통화하는 사람들, 퍼스널 스페이스라는 개념이 전혀 없어 보이는 사람들 때문에 괴로울 때가 많다. 지하철이 만원이라면 당연히 감수하고 받아들이겠지만 왜 널찍한 공간을 놔두고 내 옆에 바짝 서는지 이해해 보려고 노력해야 할 때가 적지 않다.


낯선 사람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사람들도 싫다. 10여 년 전 도쿄에 처음 갔을 때, 생김새나 옷차림에서 분명 외국인 티가 날 텐데도 아무도 나를 빤히 쳐다보지 않아 신기했던 기억이 난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마찬가지다. 옷이라도 벗는다든가 미친 짓을 하지 않는 한 낯선 사람을 함부로 빤히 쳐다보지 않는다. 모르는 사람을 빤히 쳐다보는 행동은 무례로 간주한다. 나중에야 알게 되긴 했지만, ‘예의 바른 무관심(civil inattention)’이란 사회학 용어까지 있을 만큼 그들은 서로의 사생활을 적절히 지켜주는 데 익숙한 것이다.


바이크의 장점 중 하나는 이런 대중교통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도로 위의 사륜차들이 또 다른 스트레스를 안겨 줄 때도 있지만 확실히 더 쾌적하다. 집에서 바이크를 타고 나와 차를 기다리거나 귀찮게 환승할 필요 없이 도로 위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수도 있다. 2020년 들어선 코로나 바이러스가 우리를 위협하고 있지만, 바이크 출퇴근자는 최소한 대중교통을 통한 감염 위험은 줄일 수 있었다.


바이크 출퇴근은 경제적이기도 하다.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서 강남구 역삼동까지 매일 왕복 30km를 출퇴근한다고 치자. 휘발유 가격을 리터당 1,500원으로, 125cc 스쿠터의 연비를 리더당 25km로만 잡아도 왕복 교통비는 총 1,800원이다. 물론 매년 납부하는 보험료나 엔진 오일, 타이어 등 소모품 비용까지 합치면 실제로는 좀 더 드는 셈이지만 125cc 이하의 소형 스쿠터 연비는 대체로 리터당 30km 정도는 된다. ‘기름 냄새만 맡아도 간다’고 할 정도로 연비가 좋은 혼다 슈퍼커브(110cc)는 공식 연비가 리터당 60km, 실연비도 리터당 40~50km는 나온다. 하루 2,000원 이하의 교통비만으로 상쾌하게 일터와 집을 오갈 수 있는 것이다.


바이크 출퇴근의 단점은 헬멧 때문에 머리가 눌린다는 것. 원래 숱이 많다면 머리 눌림이 오히려 반가울 수도 있겠으나, 평소에도 착 가라앉은 침착한 머릿결이 헬멧에 눌리면 조금 안쓰러운 모양새가 된다. 긴 머리라면 묶어서 어느 정도 눌림을 가릴 수 있지만 짧은 머리라면 사실상 해결 방법이 없다. 모터사이클 업계에서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머리와 헬멧 안쪽 사이에 빈 공간을 두는 신개념 헬멧을 출시하기도 했으나 별 효용이 없다고들 평가한다. 결국 선택지는 머리 스타일에 대담해지거나 출근해서 머리를 감거나, 둘 뿐이다.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춥다는 단점도 크다. 여름 한낮에는 더운 날씨와 아스팔트의 열기, 주위 사륜차들의 열기까지 합쳐져 정말 뜨겁다. 헬멧을 쓰면 내 머리가 포일로 감싸 아궁이에 던져넣은 감자처럼 느껴질 정도다. 그러나 아무리 더워도 반팔에 반바지만 입고 달려선 안 된다. 혹시나 사고가 나면 라이더의 가죽부터 쓸리고 찢기기 때문이다. 여름용으로 바람이 잘 통하게 제작된 메쉬 소재의 라이딩 재킷, 바지 등을 챙겨 입으면 가장 좋겠지만 직장에서 권하는 바람직한 복장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팔꿈치, 무릎 보호대 정도는 따로 장착해야 최소한의 안전을 지킬 수 있다.


바이크로 출퇴근까지 하다 보면 누적 마일리지가 빠르게 쌓이는 만큼 실력도 는다. 우리나라 대도시의 도심 도로에선 각종 돌발 상황과 ‘미친 자’들을 싫증나도록 맞닥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내 바이크와 함께 매일같이 전투를 치르다 보면 전쟁 같은 사랑, 일종의 전우애가 생길 수밖에 없다.


어디에나 동지가 있음을 잊지 않는다

친구가 생겼다

바이크를 시작하고 1년 정도 지나자 새 친구가 마구 생겼다. 바이크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혼자만 달리긴 심심하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중간에 같이 쉬면서 지나온 풍경을 나눌 친구, 목적지에 도착해 함께 맛집을 찾아갈 친구가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터넷 바이크 동호회에서 나와 잘 맞을 사람들을 찾기란 성공적인 소개팅만큼이나 어려워 보였다. 첫 라이딩 메이트인 남자친구는 주말에 바쁜 직업이라 내 주말은 여전히 한가했다. 그러던 중 업계 라이더 동호회 모임에 끼게 됐다. 좁은 업계라 바이크 뉴비의 탄생 소식이 금방 전해진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펜 기자가 아니라 사진 기자들의 모임(이름도 ‘모토포토’다)이지만 반갑게들 맞아 주셨다.


여의도 금융인 라이더 모임은 내가 직접 규합(!)했다. 증권부에서 증권사, 자산 운용사를 출입하다 하나둘씩 만난 증권맨, 펀드 매니저 라이더들의 모임은 그들의 자산 규모를 감안했을 때 다소 반어법스러운 ‘헝그리라이더스’라는 이름을 달고 꾸준히 활동 중이다. 여의도 빌딩숲에서 평소의 정장 차림으로 만났다면 어림없었겠지만 같은 취미를 공유한다는 이유만으로 나이 · 사회적 지위와 체면 따위 떨쳐 버리고 너무나 쉽게 친해져 버렸다.


헝그리라이더스가 생겨나기 전, 처음으로 알게 된 멤버는 자산 운용사 CEO였다. 꾸준히 높은 수익률을 유지하는 펀드 라인업을 갖추고 있어 금융계 종사자뿐만 아니라 어지간한 일반 투자자들도 모를 수 없는 회사다. 처음 그분을 찾아가 업계에 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듣는데, “큰 배가 방향을 바꾸려면 오래 걸리듯 펀드도(후략)”이라거나 “운전을 할 때 신중해야 하는 것처럼 펀드도(후략)”처럼 탈 것에 대한 비유가 상당히 많으셨다. 그래서 혹시나 그쪽에 취미가 있으신지 여쭤 봤더니 역시나 라이더셨다. 금융가 역시 좁은 업계다 보니 이분을 필두로 고구마 넝쿨 캐듯 각 사의 라이더 정보가 취합됐고, 헝그리라이더스가 탄생했다.


그리고 트위터의 라이더 친구들. 나는 원래 ‘에이, 온라인으로 무슨 친구를 만드나?’라는 복고풍 마인드였지만 하나둘씩 만난 트위터 친구들은 이제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들이 됐다. 모토포토나 헝그리라이더스와 비교했을 때 특이점은 나이도, 직업도, 살아온 배경도 천차만별이라는 것이다.


트위터 친구들을 따라 새로운 취향을 접하고 경험하는 것도 많았다. 가장 친해진 ‘영’님은 종종 국악 공연에 초대해주고 있다. 국악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지만 국립국악원에서 1, 2만 원만 내고도 아름다운 음악과 무용을 경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바람-애월에서 시작되다>라는 창작 국악 공연에 눈물을 흘릴 뻔하기도 했다. 영님과는 중국 운남성의 호도협 트레킹을 다녀온 데 이어 언젠가는 해외 바이크 투어도 계획 중이다. 이 외에도 트위터에서 연을 맺은 다른 많은 라이더들과 연희동의 카페를, 건대의 마라탕집과 딤섬집을, 연남동의 편안한 바를(이때는 바이크 없이 모였다) 찾아다니며 즐거움을 나눴다.


마흔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 이런 친구들이 생겼다는 건 참 소중한 일이다. 사회생활이나 일반적인 취미 생활로 이만한 친분을 쌓기는 어려웠다. 이전까지 일로 친해진 관계는 지위 고하나 한국 특유의 갑을 관계 때문에 일터 밖으로 끌고 나오기 힘들었고, 권투 체육관이나 수영장에서 안면을 익혀도 기본적으로 내향인인 내 성격상 밖에서 따로 만나자고 제안하기란 힘들었다.


그러나 라이더의 세계에선 신기하게도 “언제 바이크 한번 타자”는 권유가 쉽게 오가고 쉽게 성사된다. 상대적으로 마이너한 취미를 파다 보면 동료 한 명이 아쉽기 마련이고 그 사이에서 비교적 용이하게 모종의 연대감이 싹트기 때문일 것이다. 비혼주의자로서 30대 중반쯤 가장 걱정됐던 게 ‘노후의 외로움’이었지만 바이크를 탄 이후, 수많은 라이더 동지들을 만난 이후부터는 ‘할머니가 되어서도 즐거운 나’를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게 됐다.

 

내 꿈을 현실로 바꿔 주는 주변 사람들을 생각한다

바이크 투어 계획

아무런 신앙이 없는 사람으로서 가끔은 삶이 하찮게 느껴질 때가 있다. 천국이나 내세가 없어도, 내가 무슨 의미를 가진 존재가 아니어도 즐겁게 살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믿고 있지만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는 그런 믿음도 희미해진다. 한창 일로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과학자들의 실험실에 갇혀 영원히 고통받는 쥐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럴 때조차도 바이크는 큰 힘이 되어 줬다. 주위에 ‘바이크 광인’들이 워낙 득실대다 보니 나 정도는 그저 찔끔찔끔 깔짝대는 수준이긴 하지만 다음 주에 잡힌 바이크 투어나 장차 달릴 국내외의 수많은 길을 상상하면 생의 의욕이 반드시 솟아난다.


미국 횡단을 최대 희망 사항으로 꼽는 이유는 첫 해외 바이크 투어지였던 LA에서의 기억이 워낙 좋았던 데다 바이크로 찾아가고픈 곳이 가장 많아서다. 아직 못 가 본 뉴욕이나 시카고 같은 도시를, 모뉴먼트 밸리 같은 미국의 대자연도 궁금하고 영화 <콜럼버스>에서 주인공이 묵었던 고풍스런 숙소도 찍어 놓았다. 공포 영화를 많이 봐서 인적도 차량도 없는 미국 국도와 허름한 휴게소, 옥수수밭 따위가 무섭고 휴대 전화 신호조차 터지지 않는 지역을 지나갈 수 있다는 게 공포스럽지만 든든한 라이딩 메이트들과 함께라면 문제없을 것이다.


가까운 일본은 바이크의 천국이다. 글로벌 바이크 브랜드가 4개나 있는 데다 어지간한 중형급 이상 도시에는 반드시 거대한 바이크 용품점이 있다. 웬만한 식당에선 웬만큼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팔고 대부분 친절하며 특히 운전 매너도 좋다. 무엇보다 가까우니까 유럽, 미국 투어처럼 오가는 데 이틀 씩 들일 필요가 없어 상대적으로 부담 없이 다녀올 수 있다.


이미 일본 투어를 다녀온 한국인 라이더들이 강력히 추천하는 구마모토 아소산의 와인딩 코스와 밀크로드만 떠올리면 가슴이 뛴다. 규슈 벳푸부터 아소산까지 이어지는 야마나미 하이웨이는 해발 500~1,000m의 탁 트인 고원 지대에서 와인딩을 즐길 수 있는 코스로, 라이더의 관점에서 보자면 바이크 투어의 하이라이트만 모아 놓은 것 같은 구간이다. 야마나미 하이웨이와 연결된 밀크로드는 우유를 생산하는 목장이 많아 저런 이름이 붙었다. 목장이란 단어에서 상상되는 바로 그 목가적인 풍경으로 유명한 라이딩 코스다.


많은 한국인 라이더들의 로망은 유라시아 횡단이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해 몽골 초원을 거쳐 유럽을 돌고 귀국하는 코스다. 한때 유라시아 횡단러들의 블로그 등을 너무나 재미있게 읽었고 특히 ‘여자는 모터사이클로 세계 일주를 꿈꾼다’는 제목을 단 ‘티피와 채’의 유라시아 횡단기는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며 두 번쯤 정독했다. 단순한 기록에 그치지 않는, 그들 인생의 가장 즐겁고 아픈 단면을 기꺼이 내어주며 내 삶까지 다독여 주는 글들이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겨울철에는 따뜻한 동남아에서 스쿠터를 렌트해 관광객이 없는 골목길을 기웃거리고 싶다. 안전 장비 없이는 위험하지만 이때만큼은 편한 옷차림에 밀짚모자를 눌러 쓰고 달리며 겨울철의 더위를 만끽하고 싶기도 하다. 그리고 뉴질랜드. 아직 한 번도 가본 적 없지만 익히 듣던 다채로운 자연 속을 바이크로 달리고 싶다. 해외 투어는 대체로 시간과 경제력과 체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천천히 이룰 생각이다.



여전히 공부 중인 본격 라이더

‘처음’은 대~충이어도 괜찮다

열 살짜리 첫 바이크 울풍이

내가 고른 모델은 대만 SYM(삼양모터스)의 ‘울프125’. 이름 그대로 125cc다. 어차피 연습용이라는 생각에 연식이 10년이나 된 낡은 매물을 찍었다. 바이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자세한 건 살펴보지도 않고 판매자에게 연락해 청량리에서 만나기로 했다.


중고 바이크를 살 때는 일단 시동을 끄고 바이크를 식혀야 한다. 엔진이 이미 달궈져 있는 상태에선 시동이 잘 걸리지만 엔진이 식어 있으면 시동이 제대로 걸리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100만 원을 주고 산 내 울프125가 그랬다. 저속 주행 중에도 잘 꺼졌다. 내가 조작이 미숙한 초보라서 그런 줄 알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제조사의 125cc짜리 신차를 시승해 보곤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중고차 판매자와 만나면 먼저 엔진에 손을 대도 전혀 뜨겁지 않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시동을 걸어 봐야 한다.


엔진을 식히는 사이 곳곳의 흠집을 체크해 본다. 양손으로 잡는 핸들바의 끝부분이나 사이드 미러 등 바이크에서 가장 튀어나온 부분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된다. 다른 부품보다 유독 새것이라면 넘어지거나 사고가 나서 교체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 ‘전력’을 솔직히 털어놓지 않거나 이래저래 둘러대는 판매자라면 거르는 것이 좋다.


엔진 이음새 근처의 검은 누유 흔적도 불길한 징조다. 그리고 바이크의 뒤에 서서 계기반, 기름 탱크, 뒷바퀴의 가운데를 눈짐작으로 이어봤을 때 일직선이 그려지지 않는다면 큰 사고로 인해 프레임이 뒤틀린 바이크일 수 있다. 이밖에 수많은 체크 포인트가 있고, 직접 검색하고 공부할수록 알아볼 확률도 높아질 것이다.


그렇게 독학으로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는 분들을 존경한다. 하지만 공부하기 싫다면 나처럼 아무것도 모른 채 직거래 후 200m도 못 가서 시동이 꺼지는 중고차를 매입하거나, 인간관계가 넓다면 매물을 봐줄 사람을 구하는 방법이 있다. 혹은 어떻게든 믿을 만한 바이크 수리점, 판매점(센터)을 찾아 직거래보다 조금 더 비싼 가격에 중고차를 사거나 아예 처음부터 신차를 구입한다는 대안도 있다. 경제적 여유가 있고 새것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면 신차도 괜찮다.


오랫동안 마음에 뒀던 드림 바이크가 있는 게 아니라면, 첫 바이크는 디자인과 가격대로 대~충 골라도 된다. 처음부터 기계적 완성도에 대해 관심이 많으신 분들도 있겠지만 어느 바이크든 각자의 매력이 있기 때문에 타 보지도 않고 이게 낫네, 저게 낫네 하는 것은 상당히 어리석은 짓이다.


중장년 남성 입문자 중에는 처음부터 높은 배기량의 비싼 바이크를 택하는 경우가 많다. ‘사회적 지위와 체면’ 때문에 작은 바이크는 못 타겠다는 것이다. 이들은 125cc짜리 바이크를 경차인 ‘모닝’ 정도로 간주하며 초보 또는 젊은이들에게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 때문에 바이크 무게(공차중량) 200kg 안팎, 최고 시속을 200km 이상 낼 수 있는 800cc 이상의 바이크를 첫차로 택하곤 한다. 그랜저급은 타야 ‘동년배들’ 사이에서 인정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그런 바이크를 처음부터 제대로 탈 수 있는 사람은 100명에 1명 정도다.


개인의 선택에 맡길 문제긴 하지만 초보의 고배기량 바이크 구입은 대체로 말리고 싶다. 목공 초보가 커다란 벌목용 전기톱으로 서랍장을 만들겠다고 나서는 것과 비슷하다. 한 동호회원은 2종 소형 면허를 취득하자마자 800cc짜리 BMW 바이크를 구입해 아파트 지하 주차장을 한 바퀴 돌아 보던 중 조작 미숙으로 세게 넘어지면서 갈비뼈 3개가 부러졌었다. 그는 당시 면허와 바이크를 소유했음에도 지하 주차장을 벗어나지 못하는 본인의 신세를 한탄하며 스스로 ‘어둠의 라이더’라고 칭하기도 했다. 다행히 갈비뼈가 다 붙은 이후에는 신나게 바이크 라이프를 즐기고 있다.


마지막으로, 판매자로부터 폐지 증명서, 양도 증명서(계약서) 원본과 신분증 사본 등 ‘서류 3장’도 꼭 받아야 적법하게 바이크를 내 것으로 등록하고 탈 수 있다.


몰라서 용감했고 알면 성장한다

초보 라이더를 위한 최소한의 정보

첫 바이크 울풍이를 탈 때는 과속을 즐겨 했다. 바이크는 당연히 스피드를 위한 기계라고 생각했고, 최대한 빨리 달려야 내 실력을 증명할 수 있고 멋져 보일 거라고 여겼다. 그래서 125cc인 울풍이를 쥐어짜 시속 100km로 달렸다. 심지어 초반에는 울프125의 기어 변속 방식이 여느 바이크와 달리 로터리식이라는 걸 몰라서 저단 기어를 넣은 채로 그렇게 달렸다. 여느 바이크는 중립에서 변속 페달을 내리면 1단, 다시 발등으로 차올리면 2~5단까지 올라가는 방식이지만 로터리식은 1단에서 변속 페달을 밟아 내릴 때마다 기어 단수가 올라간다. 하지만 갓 면허 학원을 졸업한 나는 전혀 몰랐고 저속에 맞는 기어 단수로 고속 주행을 했다. 그로 인해 당시 울풍이로 달릴 때마다 악마가 철판을 찢는 듯한 불길한 주행음이 났는데 그저 오래된 바이크라 그러려니 했다. 지금 생각하면 좀 낯뜨거운 과거다.


라이딩 재킷, 장갑, 부츠 등의 안전 장비가 필요 없다고 생각했던 것도 잘 몰라서였다. 입문 극초반에는 그런 물건들이 산악회 아저씨들의 장비 욕심처럼 약간 쓸데없게 느껴졌었다. 사고가 났을 때 사람이 어떻게 바이크에서 튕겨 나가는지, 충돌 후 수백 미터씩 바이크와 라이더가 지면에 쓸려 나갈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바이크 부품과 헬멧과 심지어 피부가 노면에 갈려 나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나서는 생각을 고쳐 먹었지만 말이다.


2종 소형 면허 시험장이나 학원을 갓 졸업한 입문자에게는 실질적인 정보와 라이딩 스킬을 가르쳐 줄 전문가의 도움이 절실하다. 먼저 입문한 바이크 동지가 없는 경우 현실적으로 가장 좋은 방법은 대림모터스쿨이다. 스쿠터 입문자부터 매뉴얼 초보, 중급자, 고급자를 대상으로 한 다양한 커리큘럼을 운영하고 있다. 정말 간신히 바이크를 움직일 정도만 가르쳐 주고 내보내는 면허 학원과 달리 기초부터 중고급까지 세분화된 교육을 집중적으로 받을 수 있다. 수업 1회당 수강생 수가 적게는 두세 명, 많아도 10명 이하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맞춤형 교육도 이뤄진다. 교육 중 뒤처지는 수강생은 교관님의 뒷자리에 타고 집중 교육을 받는 식이다. 수강료가 20~30만 원대지만 결코 아깝지 않은 수업이고, 스스로의 안전과 장수에 투자한다고 생각하면 충분히 낼 수 있는 돈이다.


나 역시 입문기를 벗어나고 난 후에도 꾸준히 중급, 상급 코스까지 들었고 앞으로는 연 2회 정도는 상급 코스를 반복 수강할 계획이다. 내 경우는 그동안 대림모터스쿨에서 ‘뻣뻣하다’는 지적을 가장 많이 들었고 누적 교육 횟수가 8회 정도임에도 꿋꿋하게 뻣뻣하다. 아무래도 유턴 등 보다 섬세한 조작이 필요한 상황에서 긴장하기 때문일 것이다. 교관님의 교육을 100% 쑥쑥 흡수하는 수강생도 가끔은 있겠지만 대부분은 교육 한 번으로 모든 문제를 개선하지 못한다. 그저 꾸준히 배우고 연습하고 전문가의 지적을 받다 보면 어느 순간 나아지는 것이다. ‘이 정도면 괜찮게 탄다’고 자만하기 쉬운 시점에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겸손하게 바이크를 타게 되는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수도권 거주자가 아니라서 대림모터스쿨을 가기 어렵다면 인터넷으로든, 현실에서든 좋은 조언자를 찾아야 한다. 특히 같이 달리면서 내가 위험하게 차선을 바꾸고 있지는 않은지, 주행 중 바이크가 멈추는 등의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을 때(입문자에게는 자주 발생한다)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려 줄 사람이 절실하다. 그마저도 어렵다면 바이크 커뮤니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수밖에 없다. 다른 동호회도 많지만 특히 트위터에는 바이크 입문자들을 위해 언제든 달려갈 준비가 된 라이더들이 있다. 게다가 여성과 페미니스트를 열렬히 환영하는 이들이다.


좋은 조언자인지 아닌지를 구분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몇 가지 기준은 있다. 불법과 과속을 개의치 않는 이들, 뒤에서 따라오는 입문자를 배려하기보다 본인의 라이딩 스킬을 과시하고 싶어 하는 부류, 특정 바이크(장르)를 무시하는 자들은 피하는 게 좋다.


* * *


본 도서 정보는 우수 도서 홍보를 위해 저작권자로부터 정식인가를 얻어 도서의 내용 일부를 발췌 요약한 것으로, 저작권법에 의하여 저작권자의 정식인가 없이 무단전재, 무단복제 및 전송을 할 수 없으며, 원본 도서의 모든 출판권과 전송권은 저작권자에게 있음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