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종족의 특별한 잔인함

   
에밀리 정민 윤(역:한유주)
ǻ
열림원
   
12000
2020�� 08��



 

책 소개

과거로부터 울려 퍼져 현재를 관통하는 목소리들의 집합 
“고통의 단어들로 재배열된 낱낱의 목소리” 

에밀리 정민 윤은 한국인, 이민자, 여성 그리고 시인이다. 그는 다른 시대, 다른 국가에서 삶을 일구었지만, 누구보다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라는 어두운 역사의 단면에 깊게 파고든 시인이다. 피해자들의 고통에 깊게 공감한 그는 그들의 사건을 자신에게 투영시키며 현대 여성들의 아픔 또한 헤아리기에 이르렀다. 『우리 종족의 특별한 잔인함』은 총 4개의 챕터, 35편의 시로 구성된 시집이다. ‘고발, 증언, 고백, 사후’라는 제목으로 나누어진 총 네 개의 챕터는 과거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건부터 시작해 현대 여성들이 겪는 일상적 폭력에 관한 이야기로까지 이어진다.

■ 저자 에밀리 정민 윤
미국 거주 한국계 이민자이자 여성 시인.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영문학과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했고, 뉴욕 대학교에서 문예창작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대표작으로 2017년 ‘뜨락 정원 소책자 시문학상(Sunken Garden Chapbook Poetry Prize)’을 수상한 「일상의 불운(Ordinary Misfortunes)」이 있다. 전 세계 여성들의 아픔을 헤아린 깊이 있는 작품들로 미국 문단의 호평을 받으며 역사에 희생된 자들의 고백에 생기를 불어다 주고 저항과 회복의 몸짓이 지닌 강렬한 힘에 관해 이야기한다. 

■ 역자 한유주 
1982년 서울에서 태어나, 홍익대 독문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미학과 대학원을 수료했다. 

2003년 단편 「달로」로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하였고, 소설집 『달로』(2006) 『얼음의 책』(2009)『나의 왼손은 왕, 오른손은 왕의 필경사』(2011) 장편소설『불가능한 동화』(2013) 등을 출간하며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왔다. 줄리언 반스의 『용감한 친구들』앤 라모트의 『나쁜 날들에 필요한 말들』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 차례
추천사 
인류가 가진 모든 구분에 대한 참혹한 조롱의 울부짖음 
- 김혜순(시인) 
인간의 고통에 공명하면서 연대하게 하는 힘 
- 이제니(시인) 

한국어판 서문 
‘찾은 시’를 통해 들여다본 우리 종족의 잔인함 

고발 
일상의 불운 
위안 
일상의 불운 
어이 거기 예쁘장한 아가씨 
일상의 불운 
일상의 불운 

증언 
증언들 

고백 
일상의 불운 
페티시 
철쭉 
나를 만지지 마라 
종 이론 
아메리칸 드림 
머리카락 
의구표 
할머니가 복숭아를 회상한다 
보통의 불운 
부검 

사후 
일상의 불운 
일상의 불운 
두려움 
뉴스 
우리 이렇게 헤어질까 
일상의 불운 
기록 
경주에 지진이 발생했던 날, 2016년 9월 12일 
추분과 동지 사이, 오늘 
가끔 이 길을 걷고 있을 때면 
외국인 
쉽게 씌어진 시 
식전 기도 
겨울 매화에게 
변신 
꿈의 악마 
고래 시간 

인터뷰 
지구 반대편에서 이어진 두 여성 작가들의 대담 
- 한유주로부터, 에밀리 정민 윤으로 

 




우리 종족의 특별한 잔인함


고발

일상의 불운

무엇이 누르지. 무엇이 누르지. 혹은 누가. 내 할머니가. 한 여자가. 한 십대가. 그녀의 아버지가 눌러서 문을 닫아. 그녀를 상자에 밀어 넣어. 상자가 창고로 들어가. 그녀는 아침에 몸을 일으켜. 가슴을 동여매.


그녀는 여자처럼 보이지 않게 걸어. 미군이 그녀를 보고는 거기 멈춰! 하고 일본어로 외쳐. 그들 둘 다 배운 언어로. 달려가는 그녀는 누가 봐도 여자야. 그녀가 넘어져. 그가 웃어.


빼앗긴 나라에서 몸이란 무엇일까. 혹은 누구의 것일까. 전쟁 중에는 무엇이 옳을까. 전쟁 중에는 무엇이 떠날까. 전쟁은 한국을 떠나지 않았어. 나는 떠났지.


나는 웅크려. 나를 포기해. 나를 너희에게. 너희 중 누군가 내게 말했지. 한국식으로 더럽게 섹스해볼까. 너희 중 누구는 그리 말하지 않았지.


너희는 내게 미국을 대표하는가. 그 군인들은 그녀에게 미국을 대표했나. 전쟁이 두려웠겠나. 동맹군이 무서웠지. 그녀가 말했다.



증언

증언들

진 경 팽

어머니와 목화를 따고 있는데

일본 헌병 둘이 지나갔다

어머니가 나더러 바짝 엎드리라고 했지만

그들이 나를 발견했고

어머니를 발로 찼고

나를 배에 태웠다 그다음에는 더 큰 배에

배가 대만 키나리야마 근처에 도착했고

그곳에는 원숭이와 뱀이 많았다

감자도, 고구마도, 토란도

이들 군인에게는 쉰 명의 여자도 충분하지 않았다

나는 몇 사람을 기억해 가네모토 히데오

그는 우리를 그럭저럭 대했고 또

오노 나카무라, 요시다 칸지로

야마구치 히가시 이나모치

나는 내내 그들과 지냈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8월의 어느 날

군인들이 모여 흐느꼈어

3월에 우리는 배를 타고 부산으로 갔다

어느 미군이 내게 사탕 한 봉지와 천 원을 주었고

우리는 쌀을 샀다

괜찮은 끼니를

나는 열네 살에서 열아홉 살이 될 때까지 ‘위안부’였고

나는 열이 났고 나는 불임이 되었고

나는 내 죽은 남편의 아이들을 기억한다

나는 괜찮았던 끼니를 기억한다 나는 혼자다

나는 합천 집에서 이방인처럼 보였다 살갗이 거무스름해져 있었지

내 어머니는 당신이 꿈꾸고 있다고 생각하셨지


김 상 희

나는 열네 살이었다 11월 26일 즈음이었고

눈이 내렸다고 기억한다. 사진관에서

내 사진을 갖고 나와 집으로 가는데 칙칙한 쑥색 옷을 입은 남자가

내 옷깃을 붙들었다 일본말로 욕하면서 그가 일본 사람이었는지

조선인이었는지 모르겠어

나는 떠밀려 트럭에 올랐고 흐느끼며 우는 소리가 구슬펐고

그 소녀들과 나는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갔다

독약은 없었어 밧줄도 없었다

쑤저우에서 나는 4호였고 나는 다케다 사나이였다

첫 번째 밤 한 장교가 나를 붙들었고

나는 소독약을 마셨는데

죽지 않았다

난징에서 말라리아에 걸렸고

맹장염에 걸렸고 자궁에 출혈이 있었지만

죽지 않았다

싱가포르에서 배수로를 파고 있던 거무스름한 피부의 남자들을 보았고

그들은 우리를 보았어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듯한 얼굴로

싱가포르에서 전쟁이 끝났고

우리는 나뭇잎과 잡초를 삶았다

살려고 그걸 먹었어

가까스로 부산항에 도착해서

대구 오빠 집으로 갔다

오빠의 꿈속에서 나는 머리를 밀고 바다에 빠져 죽어가고 있었지만

죽지 않았다

내 이름은 김상희

1920년 12월 20일 출생

나는 좋은 가정에서 태어났고

가톨릭 신자다

잊고 용서해야겠지만 그럴 수 없다

고개가 일본 쪽을 향할 때마다 나는 그를 저주한다

위안을 구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그럴 수가 없다


김 윤 심

자동차가 길 위로 달려왔다, 전에는 본 적도 없는

물건이었지. 기사가 나를 태웠고 트럭이 굴러갔다

그러고는 계속 갔고

계속 갔고 나는 그들에게 빌었어

돌아가자고 하지만 나는 던져졌어

화물열차에 화물선에 하얼빈에

위안소로 군인들이 탄

트럭 세 대가 도착했다 그들 모두가 한 사람씩

밤새도록 강간했다 말없이 추잡한 몸으로

그들은 소녀들을 임신시켰고 그래도 섹스를 강요했다

아이가 태어나자

청색 제복을 입은 여자가 그 몸을 자루에

넣었고 어딘가로 가져갔다

군인들은 그 ‘자루’, 사쿠를 썼다

재사용된 콘돔들 소녀들이 아팠고

한 애가 많이 아프게 되자

보초가 그 애의 몸을 담요로 싸서 어딘가로 가져갔다

우리는 그렇게 살았다

내 손가락을 봐

도망쳤을 때 경찰이 내 손을 짓뭉갰다

손가락 사이로 단단한 펜을 끼워 넣어서

이렇게.

한 해가 흘러갔다

이렇게.

1945년 6월

병영이 싹 비워진 것 같았을 때

나는 탈출해서 달렸다 밤새도록

한 달 후 조선 해안선에 닿았다

하얼빈이 개울가에서

산 채로 매장된

아팠던 소녀의 손을 보았다.

내 꿈속에서 그 애는 아직도

더 넓은 물을 향해 나아가고 있어

내 두 손으로는 뒤틀린 손가락들로는

그 애를 도와주지 못해



고백

일상의 불운

칼 유령들이 떠도는 사냥터. 두들겨 맞아 쓰린. 시달렸던 내 몸. 전에 ‘위안부’였던 여자는 일본인들을 증오하리라고 생각하겠지. 나는 그렇지 않아. 나는 남자들이 싫고 섹스가 싫다. 나는 이 집에 사는 사위가 눈에 띄는게 싫어.


나는 강탈당한 집에서 살아왔어. 내 방은 아이들에게 적합하지 않게 되었지. 아이를 어떻게 귀신 들린 집에 들이밀 수 있겠어. 이 흐느낌과 핏속에서는 무엇도 자랄 수 없다.


내 남편은 어디선가 연인들을 찾았지. 나는 어디선가 내 딸들을 찾았어. 나는 아무도 점거하지 않은 집을 갈망하며 그들을 사랑해.


그들은 가끔 갈라진 벽 틈에 손을 집어넣고 말하지, 왜 그래? 왜 그래요? 문이란 문은 죄다 닫혔다. 칠십 년 그리고 아무도 모른다. 아무도 내 과거가 살아 있다는 걸 몰라. 위안소의 소녀들, 그때 우리는 모두 아이들이었어.


부검

당신의 손은 고기 고리와 식칼로 뒤덮였습니다.

당신은 날 잡고 누가 네게 이런 짓을? 속삭이면서

나를 얕고 작은 배 안으로 썰어냅니다.

당신이 그랬어, 당신이 그랬어, 당신이 그랬어, 그리고

당신, 그리고 당신, 그리고 당신,

당신이 내 집에서 내게 이렇게 했습니다 당신은 울면서

이렇게 했습니다.

나는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합니다 마치 입안에

가득 꿀이 찬 것처럼. 벌의 식민지가. 꿀, 꿀.

당신이 내 피부를 치켜듭니다. 그 안에는 당신의 꿈속

숲이 삽니다

눈이 늙어가고 당신은 젊고

춥고 하얗고 외롭고

내 고통이 없고, 그리고 당신은 말하고 싶죠, 내가 아니야,

내가 아니야, 나는 벌 한 마리도 해치지 않아,

하지만 허니. 내 피와 뼈 안쪽에는

그리고 힘줄 조직과 살의 내부에는 우리의,

당신과 나의, 사냥과

짐승 되기의 역사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나요, 내 죽은 몸을

가늠하며, 민들레를 뽑자마자

죽을 것이라는 걸 알아버린 아이 같은,

바보처럼 자신의

두 손을 들여다보는 당신과

나의 죽은 몸은.



사후

기록

일본과 대한민국은 ‘위안부 여성’ 사안에 대해 합의했다. 2015년 12월 28일

두 남자가 악수하는 사진들: 기시다 외무상과 윤병세 외무부 장관. 일본 정부는 이번 발표를 통해 이 사안이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되었음을 확인한다.


(백만 엔 = 8300만 미국 달러)


대한민국 정부는 일본 정부가 서울 일본대사관 앞에 설치된 ‘위안부’ 소녀상으로 인해 공관의 안녕이 저해되고 품위가 저촉될 수 있다는 차원에서 우려하고 있음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소녀상: 청동. 짧게 자른 머리카락. 짧다 그녀의 오른편 자리가 비어 있다(다른 이들을 기억하기 위해). 작다(소녀에 불과하다). 작은 발과 작은 발가락(편히 발 디딜 수 없음). 이럴 때 어떻게 우리가 두 발 뻗고 잔단 말이냐…….(흔한 한국식 표현)


-한편 전 ‘위안부’ 여성들과 시민들은 지난 24년간 매주 수요일마다 (평화와 존엄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어왔습니다.(노란 나비 배지)


임성남 차관 앞에 선 이용수 활동가의 영상: 왜 우리를 두 번 죽이려고 합니까? 우리가 못 배우고 너무 늙어서 배제된 겁니까?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해서요?


이 삶을 나 대신 살아줄 겁니까?


《월 스트리트 저널》이 번역된 합의문을 게시한다. 한 사람의 댓글.

대한민국은 공격적인 위안부 소녀상들이 대한민국의 위증과 중상모략을 상징해왔고 앞으로도 그러리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위안부’들은 군인들의 사기와 의욕을 고취시키고 여러 나라에서 강간 범죄를 예방하는 일을 전담했다.


(강간을 예방하는 강간, 안녕의 저해를, 품위의 저촉을 예방하는 강간)


우리는 나비들이 지상에 봄을 가져다준다고 믿어왔다. 이제 얼마나 많은 봄이. 실성한 나비들에게 춤을 청하라-응하지 않을 것이다.(생존 여성들의 평균연령: 90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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