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여서 괜찮은 하루

   
곽정은
ǻ
포르체
   
14000
2019�� 10��



■ 책 소개

 

나를 사랑하며 성장하는 법에 대한
곽정은의 아주 사적인 고백

 

방송에서 연애와 섹스에 대해 가장 직설적으로 이야기한 여성, 한국 최고의 연애 칼럼니스트, 19금 전문가 그리고 연애 전문가. 〈코스모폴리탄〉 매거진과 〈마녀사냥〉, 〈연애의 참견〉을 통해 숱한 연애 카운슬링을 해왔던 곽정은 작가에게 붙는 수식어는 대부분 사랑을 둘러싼 ‘관계’와 관련된 것이다. 하지만 이번 책을 통해 작가로서의 곽정은은 한결 더 또렷하고 농밀해진 언어를 매개로 온전히 혼자로 성장하는 일에 관해 털어놓는다.

 

항상 누군가에게 사랑 받기 위해 애썼다고 고백하는 그녀는 ‘나는 이제 연애가 싫어졌어’라고 선언하고, 늘 당당하고 거침없는 태도를 보여주는 그녀에게도 극복하기 힘든 어린 시절의 아픔이 있었음을 토로한다. 많은 사람이 유행처럼 혼자의 가치에 관해 말하는 세상이지만, 이 책은 표면적인 솔로(solo)가 아닌, 마음속 빈칸을 위로하고 스스로와의 화해를 원하는 모든 사람을 위해 쓰인 책이다.

 

■ 저자 곽정은
곽정은프라이빗심리살롱 ‘Herz’의 대표. 서강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13년 동안 [코스모폴리탄], [싱글즈] 등 라이프스타일 매거진의 기자로 일했다. 서른 살에 첫 책을 낸 이후 《혼자의 발견》, 《편견도 두려움도 없이》 등 여덟 권의 에세이를 냈고, [마녀사냥], [연애의 참견] 등 TV 프로그램에서 카운슬러로 활약했다. 한양대학교 상담심리대학원에서 성인상담 전공 석사과정 중에 있으며, 다양한 강연과 방송을 통해 삶에 대한 담론을 이어가고 있다.

 

■ 차례
개정판을 내면서
프롤로그

 

1장 그렇게 어른이 된다
노을진다
내리막의 밤
도로 위의 나

하루를 얻고 하루를 잃다
서른 마흔 그리고 결혼
자기 자비
대수롭지 않은 것들
시바견 바디 쿠션
맥주 마시는 밤
나이 들어 좋은 것

 

2장 나에게 나를 맡긴다
어떤 증거
누구의 사모도 아닌
감정의 수명
내면의 함수
내가 상담심리학을 공부하는 이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
이 정도면 괜찮을지도
당신들에게도 위로가 필요했음을
우산 없던 날
마음의 크기
열등감 이야기
어젯밤 이야기
내가 한 선택에 후회가 될 때

 

3장 사랑의 색다른 완성
내가 필요할까?
연락 문제
당신 먼저
이별의 완성
밀당 이야기1
밀당 이야기2
있는 그대로 존중받는 일
사랑이 어떻게 변하냐고?
사랑의 색다른 완성
연애하는 자의 숙명, 불안

 

4장 혼자일 권리
결혼할 생각이 없는데 어쩌죠?
세 번의 호흡
살만 빼면 괜찮다는 말
너는 나와 함께 울어줄 자인가
저 여자의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아요
여자를 사는 사회
당신 인생이 축소되길 원합니까
연애가 이제 싫어졌어
섹스 칼럼을 쓰는 어떤 한국 여자

 

5장 세 가지 삶
크리스마스이브에 쓰는 글
쿵쿵쿵 탁탁탁
다르게 걷기
세 가지 삶
혼자 여행
찌그러진 텀블러
감사 일기
찬란한 10년

 

6장 혼자여서 괜찮은 삶
있는 힘닿는 데까지 살고 싶다
언마인드풀 이팅
마인드풀 이팅
내가 존재하는 방식
공원 그 후
인생은 천천히 지나가지 않는다 

 




혼자여서 괜찮은 하루


그렇게 어른이 된다

내리막의 밤

어떤 밤에는 요즘의 삶이 그럭저럭

잘 풀리는 듯 느껴지지만

또 어떤 밤에는 삶이 이렇게까지

나에게 불친절할 일인가 생각될 때도 있다.

매일 밤 기분이 달라지듯

밤마다 스스로에 대한 평가도 달라지는 것 같은 그런 시간.


하지만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말해줄 수 있는

단 하나의 진실이 있다면

그처럼 다른 온도로 느껴지는 시간이

결국 인생을 구성하는 무언가라는 사실이다.

그 일들이 없었다면, 지금만큼의 단단한 우리도

존재하지 않았을 거라는 사실이다.


오늘이 만약 내리막 같은 날이었다면

그 힘듦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내 인생의 일부로 수용할 것.

수용하는 만큼 나의 내면은 단단해지고

받아들이는 만큼 자신의 선택에 관해 명료해지기 때문이다.

그것이 다시 오지 않을 우리의 하루,

다시 오지 않을 이 밤을 지내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자기 자비

그건 과거의 생각을 반복하거나

그 일에 관해 괴로워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더라고.

내가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어 하고

그 길에 대한 의도와 명료함을 추구하고

그러기 위해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머무를 때,

비로소 시작되는 여정이더라고.

왜냐하면 인간은 생각보다 유치하지 않은 존재여서

무언가를 원망하고 성내기보다

지금 이 순간에 머물며 온전히 나로 존재할 때

그리고 그 속에서 의미 있는 성장이 일어날 때,

자각하지 못한 어느 순간에

과거의 고통과 작별을 하게 되는 것이더라고.

나의 감정을 무시하지도 않고

나의 감정에 휩싸여 행동하지도 않을 때

그때 비로소 과거의 고통은 나를 놓아주는 것이더라고.

그것은 마치 이솝우화 속 나그네의 옷깃을 잡은 손 같아서

세찬 바람으로 어떻게든 옷을 벗겨내려 애쓰면

옷깃을 잡은 손이 오히려 단단해지고

따뜻한 햇살 같은 시선으로 우리를 지켜봐 줄 때,

우리를 지루하게 괴롭히던 과거의 상처는

나를 떠나갈 준비를 하는 것이더라고.

자존감을 키워야 한다는 말이 세상에 많고 많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에게

애틋한 마음을 두는 것임을.

자기 자비 없이 자존감이 높아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 것임을.

과거에 머물지도, 미래로 향하지도 않고

그저 현재에 머물며 나와 함께 있어 주는 일

‘오늘 외롭구나’, ‘또 힘들어하는구나’라고 느끼는 지금.


그저 나로 충분하다.

그저 지금 이것으로 충만하다.



나에게 나를 맡긴다

감정의 수명

감정의 원래 수명에 관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원래 수명’이라니, 그럼 몇 날 며칠 혹은 몇 년까지도 지속되던 나의 과거 감정들(당연히 주로 부정적인, 긍정적인 감정을 사실 그렇게 느긋하게 지속되지 않는다)은 다 뭐였단 말인가? 하나의 감정이 신경계를 통과하는 데 걸리는 시간, 즉 감정의 원래 수명은 1분 30초가량이라는 연구결과는 그래서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몇 달 혹은 몇 년까지 지속되는 부정적인 감정들-이를테면 이별 후 아주 오랫동안 상대를 향해 있는 분노와 미움 같은 것-은 결국 처음 발생한 감정에 내가 끊임없이 ‘생각’을 덧붙인 결과였던 것이다. 물론 알고 있다. 늘 1분 30초 만에 모든 감정이 다 해결될 수는 없음을.


하지만 부정적인 감정의 먹이가 되는 생각들, 나를 자책하거나 타인을 원망하는 생각들, 과거를 후회하거나 미래를 걱정하는 그 생각들을 조금씩 내려놓을 수만 있다면 우리는 서서히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이다.


생각의 노예가 아닌, 생각의 주인으로 살길 원한다.



내면의 함수

처음 함수를 배울 때, 믹서기처럼 생긴 사각형 안에 숫자를 집어넣는 식으로 함수의 개념을 배웠던 기억이 있다. 오늘 읽었던 책에, 내 마음이 예전과 똑같은 함수인데 전과 다른 사람을 만난들 다른 결과가 나오겠냐는 내용이 있었다. 누구나 자기 내면의 체계가 멋지길 바라고, 또 때로는 옳다고 믿어 의심치 않기도 한다. 하지만 인생의 힘든 시기가 다가왔을 때 비로소 깨닫게 된다. 자신의 함수 체계가 생각보다 그렇게 훌륭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든, 우리는 더 좋은 삶을 누릴 자격이 있고 또 그래야 하기에 자신의 내면에 어떤 함수가 자리하고 있는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게 곧 마음챙김이고, 자존감이며, 자신의 인생을 보살피고 사랑하는 방법이다.



내가 한 선택에 후회가 될 때

스스로를 부정하고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힘들게 버티듯 살아온 한 사람으로서의 당신이 그땐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걸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렇게 스스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되면 비로소 당신은 스스로를 용서할 수 있게 될 겁니다. 실패해도 다시 일어날 수 있고, 새로운 선택을 할 수 있게 하는 힘은 외부가 아닌 자신에게서 찾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현실을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상처는 아프지만, 그 상처가 아물 때쯤에는 분명히 성장도 뒤따르는 법이니까요.



사랑의 색다른 완성

내가 필요할까?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인지 아닌지가, 연애 상대를 고르는 아주 중요한 기준이었던 때가 내 인생에 상당히 오랜 시간 지속되었던 것 같다. 사랑에 빠질 땐 한눈에 빠지지만, 연애를 유지하기 위해선 ‘그가 나를 필요로 하는가’가 중요한 기준이었다. 하지만 정말 슬프게도 그 시기에는 자신이 그런 성향의 연애를 한다는 것을 알아채기 어렵다. 있는 그대로 인정받고, 사랑받아야 마땅한데, ‘내가 노력하지 않으면 사랑받을 수 없을 거야’라는 잘못된 각본에 맞추어 슬픈 연기를 하듯 인생의 시간을 지나보내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안다. 내가 얼마나 ‘누군가가 나를 필요로 함’이라는 감정에 목말랐었는지, 필요한 사람이 되지 못할까 봐 얼마나 두려웠는지. 이제는 그런 삶을 살지 않을 게 확실한데, 그건 내가 많이 현명해진 까닭도 있겠지만 내 스스로가 나를 너무도 필요로 하기 때문이 크다.


삶의 매 순간 명료하게 판단하기 위해서, 삶의 매 순간 기쁨과 슬픔을 그대로 수용하기 위해서, 삶의 매 순간 내가 나의 주인이기 위해서, 나는 내가 정말 필요하다. 나라는 존재를 온전히 ‘나’를 위해 쓰는 것은 보통 일은 아니다. 그러므로 누군가 사랑할 수 있다면 그것도 큰 기쁨이겠지만, 그 사람이 나를 필요로 하게 하려고 애쓰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식으로 구걸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대로의 내 삶이 좋다.



있는 그대로 존중받는 일

자존감의 정의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른 것 같다. 나는 자기를 존중하는 마음,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지만 그런 나의 모습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노력하겠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마음, 그러나 이 모습 그대로도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이 모든 것이 바로 자존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게 말처럼 쉬운가 하면 결코 그렇지 않다. 인생에서 다양한 부정적 상황을 맞닥뜨릴 때 우리는 환경을 원망하든 스스로를 원망하든 둘 중 하나를 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다 결국 자신을 비하하고, ‘난 사랑받지 못하겠구나’라는 것에 생각이 멈춰 버리면 더 이상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고 노력하지 않는 쪽으로 가게 된다. 대신 어떻게든 나를 선택할 사람에게 구원받고 싶은 욕망만이 남아버리는 것이다. 자기 차의 운전석에서 내려, 가장 먼저 나를 선택해줄 사람에게 운전대를 넘기게 되는 것이라고 해야 할까. 위험천만한 인생의 히치하이킹이 시작되는 것이다. 운이 좋다면 좋은 사람을 만나겠지만, 우리들 중 대부분은 그렇게 운이 좋지 않다. 자존감도 없고 하필이면 운도 없는 사람의 대부분은, 결국 자신이 절대 만나면 안 되는 타입의 사람을 만나 운명을 맡겨 버린다. 폭력적인데다 집착이 심하고 소통도 힘든 사람이, 우리가 비켜준 운전석에 냉큼 올라타 버린다.


자존감이 있다고 해서 인생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자존감이 바닥인 채로는 인생의 거의 모든 상황이 위기 상황으로 변해가는 것 같다. 결혼 전에는 달콤하게 굴던 남자가 결혼 후에 폭력적으로 변했을 때, 자존감이 약한 상태로는 그저 무기력하게 상황을 지켜보는 것 말고 다른 선택을 하기 어렵다. 스스로를 존중해본 적이 없는데, 타인이 나를 존중하지 않을 때 어떻게 문제를 제기할 수 있을까? 문제를 제기했다가 버림받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고 지레 겁을 먹을 텐데. ‘아니요’라고 말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도 그 한마디를 해내지 못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삶이 비극적으로 흘러가는 건, 인생이 원래 그런 것이라서가 아니다. 그저 잘못된 선택을 하고, 그것을 되돌리는 선택을 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나 답은 생각보다 쉬울 수 있다. 자신의 잘못된 선택을 인정하고 나의 오류를 받아들이는 순간 그것을 헤쳐 나올 힘도 생기는 법이니까. 내가 그랬다. 너무도 낮은 자존감으로 허우적대던 이십 대 후반에 나 역시 누군가의 구원을 기다리다 아주 후회스런 선택을 했다. 삼십 대에 결혼을 하지 않으면 초라할 거라고 생각할 만큼 나는 나라는 사람에 대해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내 인생이 흘러가게 둘 수는 없다고 굳게 다짐하는 순간, 영혼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리고 깨달았다. 정말로 내 인생을 구원하는 건 남자가 아니라 나를 존중하는 선택을 하겠다는 나의 깨달음과 다짐이라는 것을.


늘 그렇듯 방법은 여러 가지일 수 있고, 그중 하나를 찾는 건 각자의 몫이다. 그동안 방치했던 자기 존중감을 찾는 방법 말이다. 믿고 존경할 만한 사람과의 주기적인 대화도 좋고, 심리치료클리닉을 가는 것도 좋지 않을까. 난 혼자 떠나는 여행, 주기적인 운동과 명상을 통해 나를 돌본다. 몸을 돌봐야 몸이 건강해지듯, 마음도 계속 돌보지 않으면 나약하고 부정적이 생각에 휩싸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내 안의 일부분은 사랑을 통해 구원받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당신도 부디, 오랫동안 방치하고 무시했던 자신을 돌보는 시간을 만들길.  



세 가지 삶

혼자 가는 여행

혼자 가는 여행은 말이야. 여러 가지 떨림과 걱정 그리고 ‘혼자가 아니었다면’이라는 경제적, 심리적 single charge가 붙는 일이긴 하지. 그런데 그렇게 떠나 만끽하고 돌아왔을 때만큼 나를 알게 되고, 현재를 살게 되는 방법도 많진 않은 것 같아. 모든 걸 혼자 결정한다는 건 많은 능력과 단호함 그리고 취향을 세워야 잘할 수 있는 것인데, 혼자만의 여행에선 좋든 싫든 이걸 해내야만 되니까. 어떤 날은 ‘내가 왜 혼자 여기 와서 이러고 있지’라는 생각도 들긴 하는데, 여행지에서 혼자일 때 행복하게 지내는 법을 깨우치고 나면 일상에 돌아왔을 때 내가 정말 나에게 친절해지더라고. 그게 바로 자존감이고 자기 자신과 연결되는 좋은 방법이더라고.


나한테 혼자 떠나는 여행은 그래서 일종의 리추얼 같은 거야. 나의 노선을 잘 정하고 뚜벅뚜벅 내 길을 걸어가겠다는 다짐의 의식 같은 거. 편안하고 좋은 누군가가 동참하면 기꺼이 손을 내밀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내가 가는 길을 스스로 응원하겠다는 생각을 현실에서 체험하는 거. 불편한 사람과 함께 떠나는 여행을 해본 사람은 알 거야. 타인과 잘 지내는 것보다 중요한 게 일단 나와 친해지는 일이라는 걸. 그래야 나와 맞는 사람을 고르는 눈이 생긴다는 걸.


발리에 명상 여행을 가기로 결심한 아침, 내가 했던 숱한 혼자만의 여행을 떠올려 봐. 그곳에서 혼자였던 나는, 그렇게 조금씩 강해졌던 거 같거든. 언제든 내가 원하는 걸 만들어 내는 추진력도 거기서 생겨난 것 같고.


이번 여행에서도 나는 내가 좋아하는 땅에 가서 많은 것을 해볼 거야. 내가 내 인생에서 그렇게 하는 것처럼.


그럼 다녀올게.



혼자여서 괜찮은 삶

인생은 천천히 지나가지 않는다

“저는 자존감이 낮은데요, 어떻게 하면 당당하고 씩씩한 모습으로 살 수 있을까요?”


사람들이 내게 가장 많이 하는 질문 중 하나다. 정말 많은 여성이 자존감이 낮다는 생각으로 괴로워하고, 또 이를 개선하기 위한 방법을 궁리한다. 누군가는 자존감에 대한 책을 읽고, 또 누군가는 이런저런 취미활동을 시작한다. ‘이렇게 하면 자존감이 높아질 거야’라는 기대감으로 말이다.


하지만 애초에 ‘자존감’은 어떤 책을 읽지 않아서, 특정한 취미를 가지지 않아서 낮아진 것이 아니다 그러니 독서나 취미 등의 ‘활동’을 통해 본질적으로 달라지는 일을 기대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이는 과로를 했기 때문에 체력이 고갈되었는데, 계속 카페인만 들이 붓고 있는 격과 같다.


마음의 힘이 고갈된 이유를 직시하지 않으면 마음의 본질적인 힘은 자라나지 않는다. 그저 ‘괜찮지 않은데 괜찮은 척하는 상태’가 지속될 뿐이다. 그렇게 괜찮은 척할수록 우리는 스스로를 더 멀리하게 되고, 스스로를 멀리할수록 느낌은 점점 더 괜찮지 않게 되는 것이다. 자존감이 계속해서 낮아지는 악순환의 고리는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다. 그리고 너무 많은 이들이 이런 식의 인생을 산다.


남의 인생에 오지랖부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고, 때가 되면 결혼하고 아이 낳는 것이 정상적인 삶이라고 떠드는 사람이 너무 많다. 그리고 혼자여서 괜찮은 여자들의 모습은 여전히 잘 보이지 않는다. 이 나라에서 여자로 자존감 있게 살아가는 일은 높은 난이도를 요한다. 여자의 일정인 성공은 대개 가려지기 마련이고, 그녀가 ‘가부장제 유지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를 판단하는 ‘폭력적 시선’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가부장제의 시선에서 여자의 성공과 업적은 종종 하찮게 취급받는다. 최근 청문회에서 하버드 대학교 박사 학위자인, 화려한 경력을 갖춘 신임공정거래 위원장 후보에게 남자 국회의원이 “저출산 시대에 출산의무를 다했어야.”라고 말했던 일은 여성의 삶이 가부장제 사회에서 얼마나 많은 후려침을 당해야 하는지, 그 일면을 드러낸 상징적 사건이었다.


18년째 기자와 작가로, 강사이자 방송인으로 여성의 삶에 대한 글을 쓰고 목소리를 내온 내가, 포털 사이트 댓글 속에 ‘이혼한 주제에 아는 척하는 상폐녀’라는 표현의 대상이 되는 것도 이와 맥락을 같이 한다. 가부장제를 ‘감히’ 탈출했으면 불행 속에 조용히 살아야 마땅한데, 부끄러워도 않고 당당하게 독립적으로 자기 인생을 사는 여성에게 질투를 숨기지 못하는 것이 어쩌면 가부장제가 숨기고 싶어 하는 일면인지도 모르겠다.


“언니처럼 당당하고 씩씩해질 수 있어요?”라는 질문에 나는 이미 답을 한 것 같다. 나는 나를 세상의 시선, 한국의 가부장적 시선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선택하고 이뤄낸 것들로 그리고 내 인생관과 지향점을 통해 나를 인식한다. 나는 스스로를 여성의 삶에 관해 글 쓰고 말하는 사람, 스스로의 힘으로 많은 것을 이뤄낸 사람, 한국 여성의 삶을 더 좋은 쪽으로 변화시키는 일을 해나갈 사람으로 규정한다. 이것이 바로 ‘자아정체감’의 핵심이고, 자신의 인생길을 당당하게 걸을 수 있는 자존감의 뿌리가 된다.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인생은 그렇게 천천히 지나가지 않는다. 목적지를 정하고 출발한 기차는 한낱 골목의 개들이 짖는다고 멈춰 서지 않는다.


매일 아침, 나는 고요히 앉아 나를 위해 그리고 세상을 위해 명상한다. 스스로를 어떤 존재로 인식할 것인가에 따라 결국 내가 하는 선택이 달라짐을 기억하는 삶이길, 세상의 편견 어린 시선에 위축되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당당하게 내는 삶이기를.


그리하여 어떤 형태의 삶을 선택하든,

우리 모두에게

’혼자여서 괜찮은 하루’, ‘혼자여서 행복한 삶’이 실현되기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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