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 맥주 여행

   
염태진
ǻ
디지털북스
   
20000
2020�� 06��



■ 책 소개

 

독일의 지방 도시 쾰른까지 가지 않더라도, 우리는 쾰쉬 맥주 한 캔을 마시면서 소파에 늘어져 TV를 볼 수 있다. 편의점에는 매번 바뀌는 온갖 종류의 세계 맥주가 4캔에 만 원이라는 가격으로 우리를 유혹하고, 소맥의 재료로만 취급되었던 맥주가 이제는 당당한 주인공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맥주는 어느새, 어떻게 우리 생활에 스며들게 되었을까?
그리고 이 맥주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이 책을 읽은 후에 들른 세계 맥주집의 메뉴판에 IPA 어쩌고가 써 있다면 도수가 비교적 높고 쓴맛이 많이 나는 맥주일 것이라고 잘난 척해도 좋다. 좀 더 똑똑해 보이려면 IPA는 인디아 페일 에일이며, 제국주의 영국이 만행을 부리고 다니던 시절에 인도까지 맥주를 나르기 위해 홉을 잔뜩 넣어서 만들어진 맥주라는 말도 덧붙이면 좋다.

 

언뜻 단어가 어려워 보일 수 있지만, 이 책에서 소개되는 글은 대단한 글이 아니다. 맥주의 나라를 여행하고 쓴 글도 아니고, 맥주를 수십 년간 양조한 경험으로 쓴 글도 아니다. 한국의 여느 마트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맥주를 방구석에서 마시면서 쓴 글이다. 그러니 이 책도 대단히 어렵고 각 잡고 앉아서 읽을 것이 아니라, 같이 맥주 한 캔 따고 좋아하는 소파나 침대에 늘어져서 슬슬, 편하게 책장을 넘길 수 있을 것이다. 

■ 저자 염태진 
날마다 맥주로 좋은 하루를 살기 위해 맥주를 마시고 글을 씁니다. 글을 쓰기 위해 맥주를 마시기도 하고, 맥주를 마시기 위해 여행을 하기도 합니다. 평소에는 취미로 양조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30년간 남들처럼 맥주로 위장만 채우다가 맥주로 뇌도 채울 수 있음을 알게 되어 ‘날마다 좋은 ㅎㅏ루’라는 필명으로 브런치에 꾸준히 글을 채웠습니다. 그렇게 100여 편을 채웠을 때 이 책을 출간합니다.


■ 차례

Part 1 맥주와 상식
- 어쩌다 독일의 지역 맥주를 마시고 있는 걸까?
- 맥주가 축구라면
- 맥주에 마법사가 있다면
- 스페인에선 왜 맥주를 세르베사라고 부를까
- 맥주병은 왜 갈색이고, 소주병은 왜 초록색일까?
- 양조장은 필요 없어, 난 레시피가 있어
- 조선에도 맥주가 있었을까?
- 맥주를 마시는 것이 건강에 도움이 될지 모른다


Part 2 맥주와 스타일
- 바야흐로, 라거 전성시대
- 페일 에일이 묻고 더블로 간 사연
- 흑맥주여, 어둠의 터널을 달려라
- 독일 밀맥주와 벨기에 밀맥주
- 수도원으로 간 맥주
- 열두 개의 트라피스트 에일이 있습니다
- 발포주인듯, 발포주 아닌, 발포주 같은


Part 3 맥주와 나라
- 필스너를 탄생시킨 체코의 맥주
- 기네스만 알고 있는 당신께 아일랜드 맥주를 소개합니다
- 스코틀랜드도 맥주의 나라였어!?
- 독일의 통일에 기여한 맥주
- 독일 이민자들이 만든 미국의 페일 라거
- 꼭 알아 둬야 할 미국의 크래프트 맥주
- 한국 맥주의 슬픈 과거, 일본 맥주
- 일본에 있었던 네 번의 맥주 다툼
- 중국 맥주의 시작은 칭다오야? 하얼빈이야?
- 동남아 휴양지, 이 나라에선 이 맥주를
- 카스도 일본 거냐는 물음에 한국 맥주의 역사를 들려주었다
- 중국에는 소설 삼국지가 있고, 한국에는 맥주 삼국지가 있다


Part 4 맥주와 브랜드
- 부르고뉴의 마지막 상속녀, ‘두체스 드 부르고뉴’
- ‘필스너 우르켈’은 어쩌다 일본 맥주가 되었나
- ‘올드 라스푸틴’을 마실 때 하고 싶은 이야기
- ‘듀벨’, 이것은 진정 악마의 맥주다
- 알자스의 별을 품은 ‘에스트레야 담’
- ‘바이엔슈테판’으로 알아보는 밀맥주의 스펙트럼
- ‘파울라너’와 ‘에딩거’,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를까?
- ‘슈렝케를라’, 이 맥주를 소시지 없이 마신다는 것은
- 오키나와 재건에 앞장선 ‘오리온’ 맥주
- 맥주에서 짠맛이 난다고? ‘유자 고제’


Part 5 맥주와 한국
- 한국 수제 맥주 시대를 열다 - 바이젠하우스
- 미국식 크래프트 맥주의 꿈을 쫓는 갈매기 - 갈매기 브루잉
- 이 맥주의 신맛은 무엇에서 왔을까? - 와일드웨이브 브루잉
- 수염 난 남자와 여자가 만드는 맥주가 맛있다 - 브로이하우스 바네하임


 

 




방구석 맥주 여행


맥주와 상식

맥주가 축구라면

어떠한 맥주 책을 보더라도 영화의 클리셰처럼 진부하거나 상투적으로 동반되는 설명이 있다. 맥주의 재료와 양조에 대한 설명이다. 맥주의 4대 재료가 물, 보리(맥아), 홉, 효모라는 것은 대부분 알고 있을 것이다. 내가 평소에 즐겨 듣는 팟캐스트 방송 중에 여행에 관한 주제로 진행자와 게스트가 잡담을 나누는 ‘탁PD의 여행수다’ 라는 편안한 방송이 있다. 이 방송의 진행자인 탁재형PD가 맥주를 만드는 과정을 축구에 비교하여 설명해 주었는데, 내가 아무리 쉬운 설명을 찾아봐도 이보다 명쾌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탁재형PD에게 이 방송의 내용을 인용해도 되겠냐고 요청했더니 흔쾌히 수락해 주었다.


축구장을 건설하는 맥아

맥주의 첫 번째 재료는 맥아다. 영어로는 몰트(malt)라고 하고 순우리말로는 ‘엿기름’이라고 한다. 그런데 왜 보리가 아니고 맥아일까? 맥아는 보리와 무엇이 다를까? 맥아를 한자로 풀면 보리 맥(麥)과 싹 아(芽)를 쓰는데, 한자 그대로 풀어보면 ‘싹이 난 보리’라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술, 특히 발효주라는 것은 효모라는 미생물이 당분이 있는 음식을 먹고 뱉은 부산물이고 이 부산물이 알코올과 탄산이다.


보리에 싹을 틔우는 가정을 ‘발아’라고 하고 영어로는 몰팅(malting)이라고 한다. 보리를 물에 담가 놓으면 보리의 싹이 트는데 이때 보리의 껍질에 있는 효소가 활성화된다. 이 효소는 전분을 보호하고 있는 단백질과 탄수화물이라는 장벽을 허물어 내고, 전분을 소모해 당분을 만든다. 그런데 발아가 완전히 끝나 전분이 전혀 없는 곡물이 되면 이것도 발효에 좋은 것은 아니다. 그래서 발아가 적당히 이루어졌을 때 발아를 중단시키기 위해 맥아를 건조한다. 건조라고 하는 것은 맥아를 가마에 넣고 볶는 것인데, 이 볶는 과정에서 맥아 특유의 풍미, 몰티(malty)가 형성된다. 그 다음 건조된 맥아를 잘게 부수어 따뜻한 물에 불려 당분을 이끌어내는데 이렇게 생겨난 맥아즙을 워트(wort)라 한다. 이러한 과정을 축구에 비교하면 축구장을 건설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맥주를 만드는 곡물은 맥아만 가능할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맥아가 역사적으로 많이 사용되었고, 다른 곡물에 비해 전분을 당분으로 바꾸는 효소가 많이 있기 때문에 사용되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곡물로만 가지고 맥주를 만드는 것도 힘들다. 그래서 맥아와 다른 곡물을 섞어 사용하는데 그러면 맥아의 효소가 다른 곡물의 머리채를 잡아 끌고 가면서 당화를 돕는다.


맥아와 함께 사용할 수 있는 곡물은 크게 세 가지이다. 몰트가 아닌, 즉 싹이 트지 않은 보리, 보리 외 다른 곡물, 몰트화된 곡물이다. 여기서 말하는 보리는 맥아가 아닌 구운 보리로 맥주의 다른 풍미를 유도하기 위해 사용된 곳이다. 그 밖의 몰트화 되지 않은 곡물로 자주 쓰이는 것은 옥수수와 쌀인데 비싼 맥아를 대체하기 위해 사용되었으며 풍미가 떨어져 가벼운 맥주를 만드는 데 사용된다. 이와 같은 맥주를 부가물 맥주라 부르며 미국과 일본의 대기업 맥주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보리 맥아와 함께 몰트화된 다른 곡물을 넣기도 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밀맥주다. 밀맥주는 통상 곡물 중 밀맥아가 50% 이상 함유된 맥주를 말한다.


경기장을 가꾸는 홉

시설 좋은 운동장이 있어도 선수들의 경기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잔디를 가꾸고 경기장을 최상의 상태로 유지해야 한다. 맥주도 마찬가지이다. 맥주에 홉이 없다면 그저 달고 신맛이 나는 음료에 불과하다. 홉은 맥주의 쓴맛을 내기 위해 사용하기도 하고, 종류에 따라 과일 향, 꽃내음, 풀내음, 흙냄새 등 다양한 향과 아로마를 내기도 한다. 또한 홉은 미생물에 대한 항 박테리아 성분이 있어 맥주의 신선도를 유지시켜주는 천연방부제 역할까지 한다.


홉의 생산지는 주로 북위 48도선에 집중되어 있다. 그중 미국과 독일이 가장 많고 그다음이 체코, 중국, 폴란드 순이다. 독일은 전통적으로 맥주의 나라이고 홉을 처음으로 사용한 나라이기도 하다. 미국은 현대 맥주사에서는 빠질 수 없는 나라이다. 특히 미국의 크래프트 맥주 혁명은 홉의 발전과 떨어질 수 없다. 미국의 홉은 품질 개량을 통해 여러 가지 새로운 홉종을 개발하였는데 4C라 불리는 홉이 특히 유명하다. 이러한 특징을 대부분 센터니얼(Centennial), 캐스케이드(Casecade), 콜럼버스(Columbus), 치누크(Chinook) 라는 4C의 홉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 밖의 주목할 만한 홉 중에 일본에서 개발한 소라치 에이스(Sorachi Ace)가 있다. 우리나라도 장차 한국산 홉이 유명해지면 좋겠지만, 한국의 토양과 기후가 홉 재배에 적합하지는 않은 것 같다.


맥주의 선수는 효모

축주장도 지어졌고 잔디도 잘 관리가 됐다면 이제 실제 축구 경기를 할 선수가 필요하다. 맥아로 맥주즙도 만들었고, 홉으로 쓴맛과 맥주 맛을 더 했으니 이제 맥주의 가장 중요한 성분인 알코올과 탄산가스를 만들 차례다. 이때 필요한 선수들이 효모(Yeast)이다.


효모는 일종의 곰팡이로, 수억 년 전 첫 번째 효모의 탄생을 시작으로 현재 1,500여 종의 호모가 발견되었다. 이중 맥주 양조에 쓰이는 효모는 손에 꼽힐 정도다. 맥주 효모는 맥즙에 있는 당분을 먹고 알코올과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데, 발효할 때 어떤 효모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맥주의 종류가 크게 라거와 에일, 그리고 야생 에일로 나뉜다.


* 에일 효모

에일은 사카로마이세스 세레비지에(Saccharomyces Cerevisiae)라는 에일 효모로 만든 맥주이다. 이 효모는 비교적 따뜻한 약 15~24도 사이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발효 과정이 맥주즙의 상면에서 발생한다. 이렇게 하여 붙여진 에일의 다른 이름이 ‘상면발효’ 혹은 ‘고온발효’ 맥주이다. 그런데 이 에일 효모는 당분을 깨끗하게 먹어 치우지도 않고 완전히 먹지도 못한다. 그러다 보니 찌꺼기가 많이 남아 있는데 이런 것들이 맥주의 색깔을 뿌옇게 만든다. 바로 어제 마신 호가든을 생각해 보시길.


* 라거 효모

상업적으로 사용되는 라거 효모의 이름은 사카로마이세스 파스토리아누스(Saccharomyces Pastorianus)이다. 이 이름은 맥주에서 효모의 역할을 처음으로 발견한 과학자의 이름에서 따왔다. 바로 루이 파스퇴르이다. 라거 효모는 에일 효모보다 낮은 약 8~12도 사이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발효를 마친 후에는 아래로 가라앉는다. 그래서 ‘하면발효’ 혹은 ‘저온발효’라고 부른다. 에일 효모와는 달리 라거 효모는 당분을 더 깨끗하고, 더 많이, 더 오랫동안 먹어 치운다. 그래서 라거 맥주는 에일 맥주에 비해 맛이 깔끔하고 청량하고 가볍다.


* 야생 효모

에일 효모나 라거 효모는 잘 정제하여 보관하고 배양된 효모이다. 그런데 우리가 마시는 공기 중에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야생 효모가 떠돌고 있다. 이런 야생 효모 중에는 맥주를 만드는 데 사용해도 좋을, 즉 선수로 출전해도 좋은 효모가 있다. 이렇게 ‘맥주 좀 아는 형’, 야생 효모를 사용해 만든 맥주를 와일드 에일이라고 부르고, 대표적인 것이 벨기에의 람빅이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야생 효모를 이용한 맥주는 점점 사라져 갈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물이 있어야 경기의 결과가 나온다

이제 맥주의 4대 재료 중 물만 남았다. 물에 포함되어 있는 미네랄의 종류와 양, 칼슘이나 마그네슘, 그 밖의 구리나 아연도 맥주의 풍미와 질감에 영향을 준다. 전통적으로 지역에 있는 수원에 따라 맥주의 스타일이 탄생하였다. 하지만 현대에 와서는 지역의 물을 사용해 만든 맥주의 의미는 점점 옅어지는 것 같다. 이제는 물에 화학적으로 특정 성분을 첨가하거나 제거하여 물의 성분을 바꿀 수 있다.


조선에도 맥주가 있었을까?

우리나라에 정식으로 맥주가 수입된 것은 1876년 강화도 조약으로 알려져 있다. 외세에 의해 무력으로 개항하면서 여러 가지 새로운 문물이 들어왔고 그중에는 맥주도 있었다. 결국, 한국 최초의 맥주는 최근 유행하는 것과 같은 수입 맥주인 셈이다. 그러면 조선에는 맥주가 없었을까? 놀랍게도 조선 시대에도 맥주라는 기록이 있었다. 조선왕조 실록 홈페이지에 ‘麥酒’로 검색하면 2건의 결과가 나오는데, 둘 다 금주령에 관한 것이다.


당시의 맥주라 칭한 보리술은 맛이 어땠을까? 지금의 맥주처럼 맥아에 홉을 첨가한 모습은 아니었을 것이다. 보리에 싹을 틔운 맥아를 굽는 몰팅 기술도 없었을 뿐더러 홉 또한 없었기 때문이다. 홉이 안 들어간 맥주라니, 현대의 맥주처럼 쌉쌀한 맛을 기대하기는 힘들어 보이지만 우리 조상님들도 보리술을 마셨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맥주와 스타일

포주인듯, 발포주 아닌, 발포주 같은

최근 OB맥주가 새로 발매한 ‘필굿’이라는 맥주를 마시면서 발포주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필라이트가 출시될 당시에는 국내에서 발포주라는 개념의 맥주가 생소했기 때문에 광고에 발포주라는 말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왜 필굿은 발포주임을 당당히 밝히고 있는 것일까? 그러면서 발포주라고 쓰지 않고 왜 일본어인 핫포주(はっぽうしゅ를 영어로 표기해 넣은 것일까?


발포주란 무엇인가?

지금은 인기가 조금 줄어들었지만 일본에서 발포주는 맥주류 시장의 15%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비교적 최근인 2018년 4월 1일 일본은 주세법을 개정하면서 맥주와 발포주를 다시 정의하였는데 그 기준은 맥아의 사용 비율과 원료에 따른 것이다. 현재 일본 주세법에서는 맥주를 아래와 같이 정의한다.


맥주는 물을 제외한 원료 중에서 맥아의 비율이 50%이상이어야 한다. 맥주는 부원료의 총무게가 맥아 무게의 5% 이내이어야 한다.


개정되기 이전에는 맥아의 비율이 66.6%(2/3) 이상이어야 했는데 조금 완화되었다.


맥주에 사용되어야 할 원료는 보리, 쌀, 옥수수, 수수, 감자 등의 전분 또는 과일 과즙이 있다. 개정되기 이전에는 과일 과즙을 원료로 보지 않아 일부 과일 맥주가 일본에서는 맥주의 분류에 놓이지 않았었다. 일본의 주세법에 의하면 밀맥주는 대부분 맥주가 아니라 발포주에 속한다. 그러므로 한국에서 인기가 좋은 밀맥주인 호가든이나 블루문은 일본에서 발포주가 되는 것이다.


맥주에는 세금을 어떻게 매기는가?

일본에서 발포주가 인기 있는 이유는 아무래도 맥주와 맛이 비슷하면서도 맥주보다 저렴한 가격 때문일 것이다. 발포주 가격의 비밀은 바로 맥주보다 낮은 세금에 있다. 그럼 발포주의 세금은 어떻게 책정되는 것일까?


일본에서 발포주의 세금은 2006년 개정된 주세법의 세율이 계속되고 있다. 일본은 종량세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제조원가와 상관없이 술의 양에 따라 세금을 부여한다. 앞서 발포주는 맥아의 사용 비율과 원료에 따라 맥주와 구분한다고 했는데, 그중에서도 맥아 배율에 따라 세금이 다르게 매겨진다.


맥주 - 77엔

발포주 맥아비율 50% 이상 - 77엔

발포주 맥아비율 25% 이상 50% 미만 - 62엔

발포주 맥아비율 25% 미만 - 47%


발포주가 맥주보다 쌀 수밖에 없는 이유는 맥아 비율이 낮아 원료의 값이 적게 들 뿐만 아니라 이에 따라 세금도 적게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최근 일본에서는 발포주보다도 맥아 비율이 낮은 신장르의 맥주가 사랑받고 있다.


국산 발포주

결론부터 말하자면 국내에는 발포주라는 말이 없다. 주세법에 의해 그렇다는 말이다. 국내 주세법에 정의되어 있는 종류는 다음과 같은데, 맥주는 있지만 발포주는 찾아볼 수 없다. 따라서 필라이트나 필굿은 맥주가 아니므로 기타 주류로 분류된다.


1. 주정

2. 발효주류 - 가. 탁주 나. 약주 다. 청주 라. 맥주 마. 과실주

3. 증류주류 - 가. 소주 나. 위스키 다. 브랜디 라. 일반 증류주 바. 리큐르

4. 기타 주류


그럼, 국내 주세법에서 맥주는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 걸까? 한마디로 맥주의 원료를 맥아로 한정하지 않고 맥류라고 폭넓게 정의하고 있으며, 그 원료도 10% 이상이면 맥주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필굿은 왜 발포주라 하지 않고 HAPPOSHU라고 한 것일까? 지금부터는 어디까지나 나의 추측이지만, 위에서 보듯이 국내의 주세법에는 발포주라는 개념이 아예 없다. 엄밀히 따지자면 발포주는 일본 주류의 한 종류이다. 한글로 발포주라고 하면 국적 불명의 단어가 되고 만다. 필굿이 한글로 발포주라고 썼다면 ‘한국에 발포주가 어디 있어?’라는 항의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대단히 영리한 표기가 아닌가 싶다.



맥주와 한국

수염 난 남자와 여자가 만드는 맥주가 맛있다 - 브로이하우스 바네하임

맥주 업계에서는 오래된 속설이 하나 있다. ‘수염이 난 남자와 여자가 만드는 맥주가 더 맛있다’는 속설이다. 과연 그럴까? 맥주의 역사를 재치 있게 기술한 ‘맥주, 세상을 들이켜다’에 보면 이에 대한 흥미로운 대목이 나온다. 이 책의 저자는 대체로 여자들이 맥주를 잘 빚을 확률이 높다고 말한다. 그 이유로 맥주를 끓일 때 뜨거운 열기를 쐬면 피부에서 효모가 배출되는데, 이 양이 여성이 남성보다 많기 때문이라고. 믿을 만한 사실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히, 맥주의 역사에서 여성이 기여한 바는 많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겠다. 우선 신화 속에 등장하는 맥주의 신은 대부분 남신이 아닌 여신이다. 인류 최고의 문명 발생지이자 맥주가 처음으로 발견된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에서는 닌카시라는 양조와 술의 여신이 있었다. 이 여신은 얼마나 유명한지 미국의 크래프트 업계에는 이 이름을 딴 양조장이 있을 정도다.


중세에서 맥주를 빚는 역할은 거의 여자가 전담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들을 에일 와이프라 불렀다. 중세의 에일 와이프는 전쟁에 나간 남편 혹은 바깥으로 일을 하러 나간 남편을 대신해 가정에서 맥주를 빚었다. 이렇게 여성이 빚던 가양주가 남자의 몫이 된 것은 수도원과 산업화 때문이었다.


이 이야기를 바네하임의 김정하 대표에게 들려주었더니 ‘글쎄요’라고 답했다. 맥주를 15년간 만들어 온 여성 양조가여도 여성 호르몬이 맥주를 잘 빚게 하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대신 그녀는 남자가 만든 맥주가 거친 느낌이 있을 수도 있고, 여자가 만든 맥주가 부드럽고 섬세할 수도 있을 것이라 했다. 그녀가 만든 맥주 중에 벚꽃 라거와 장미 에일이 떠올라 쉽게 수긍할 수 있었다.


김정하 대표는 술을 좋아하는 아버지의 권유로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했다. 원래 조리과를 나왔고 음식 만드는 것을 좋아했지만 어릴 때부터 탄산음료를 마시지 못해서 맥주를 즐겨 마시지를 않았다. 그러던 그녀가 아버지와 함께 수제 맥주를 맛보았고, 탄산감으로만 가득한 다른 맥주와는 다르게 맥주에서 맛이라는 게 느껴졌다.


수제 맥주의 매력에 빠졌지만 처음부터 큰 규모로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그녀가 태어나고 자란 공릉동에 작은 양조장이 딸린 레스토랑을 차렸고, 5년만 하고 그만두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초반부터 상당히 힘들었다고 한다. 주택가가 밀집되어 있는 동네에 있다 보니 고가의 맥주를 마시려는 사람들이 없었고, 제대로 홍보할 수 있는 수단도 몰랐다. 그녀는 초반에 여러 번 문을 닫을 정도로 힘들었지만 그때마다 아버지가 많은 도움을 주셨다고 했다.


수제 맥주의 열풍은 2~3년이 지나자 꺼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1세대 수제 맥주 양조장들은 그 시기를 잘 버티고 살아남았지만 많은 양조장들이 서서히 사라졌다. 하지만 바네하임은 오히려 조금씩이나마 매년 매출이 늘었다. 그 이유는 처음부터 양조장 규모를 크게 시작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항상 맥주가 중심이었다. 맥주가 흔들리면 모든 것이 흔들릴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김정하 대표는 직접 양조의 길에 뛰어들었다.


김정하 대표는 전통적인 양조의 영역에서 남성들이 하지 못하는 많은 일들을 해내고 있다. 2019년에는 농어진흥청과 3년간 했던 과제로 ‘도담도담’ 이라는 쌀맥주를 만들어 냈다. 아직은 국산 보리를 사용해서 맥주를 만드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도담도담에는 전북 익산에서 재배한 도담 쌀이 30% 정도 들어간다. 도담 쌀은 기능성 쌀로 식이섬유가 많고 당 흡수가 안 되는 전분을 많이 가지고 있다. 한마디로 당화 과정이 쉽지 않다. 여러 번의 시험 배치를 통해서 30%를 썼을 때 쌀에서는 나오는 알코올이 맥주의 맛을 헤치지 않는다는 것을 찾아냈다.


또한, 그녀는 여성 양조가의 성장을 돕기 위한 일을 하고 있다. 비정기적으로 강연을 하고 있으며, 맥주 문화를 알리기 위한 한국맥주문화협회의 이사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맥주 만드는 여자’ 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펍을 창업하거나 양조장을 만들고 싶은 많은 여성분들에게 책을 통해 그녀의 경험을 공유하고 싶어서 책을 냈다고 했다. 김정하 대표는 한국 여성 양조가들의 모범이 되는, 1세대 브루어리 양조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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