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이 가득한 하루를 보냅니다

   
정재경
ǻ
생각정거장
   
14000
2020�� 01��



■ 책 소개

 

건강한 방법으로 내 삶을 가꾸고 싶은 당신에게
초록이 가득한 일상을 권합니다

 

나답게 살고 싶은 내게 필요한 것은 ‘오롯이 나를 위한 것’을 생각하는 단단한 몸과 건강한 마음이다. 정신없이 바쁜 일상, 나를 돌보지 못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면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가꾸는 일상 속 실천을 엿보며 나를 위한 시간을 만드는 데 집중해보자.

 

집 안에 200그루 식물을 들여 일상에 침투한 미세먼지, 나쁜 공기와 맞선 저자는 바깥이 최악의 공기 질을 보일 때도 집 안 초미세먼지 수치를 수치를 10㎍/㎥ 미만인 ‘좋음’ 상태로 유지하며 지낸다. 식물과 가까이 지내며 건강한 마음을 유지하고 마음체력을 기르게 된 이야기, 생생한 경험을 나눈다. 나를 돌보는 식습관과 소비습관, 정리습관을 따라가며 내 모습 그대로 성장하는 방법을 깨달을 수 있다.

 

■ 저자 정재경
라이프스타일 크리에이터. 2004년부터 감각적이고 건강한 생활용품 브랜드 ‘더리빙팩토리(thelivingfactory.com)’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미세먼지로 뒤덮인 일상에서 몸의 건강을 챙기고자 실내 공기정화식물을 키우기 시작해, 현재는 남편과 아들, 반려식물 200그루와 함께 살게 되었다. 덕분에 실외 미세먼지 수치가 ‘매우 나쁨’ 단계일 때도 ‘매우 좋음’ 실내공기를 마시며 쾌적하게 생활하고 있다. 미세먼지 해결을 위한 개인적인 노력과 임상실험 결과를 모아 카카오 브런치에 연재한 〈반려식물 200개 온실 같은 집〉이 250만 뷰를 기록하며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마음과 생각의 건강에 도움을 준 식물 덕분에 3년 동안 3권의 책을 탈고했으며 펴낸 책으로 《우리 집이 숲이 된다면》이 있다.

 

■ 차례
프롤로그 어제보다 오늘, 한 뼘 더 자랍니다

 

PART 1 몸도 마음도 건강해질 시간입니다
13 미세먼지 때문에 시작된 식물과 살기
20 회색 미세먼지 대신 초록생활
26 일상의 풍미를 더하는 ‘향’
32 숲 같은 우리 집 만들기
38 몸을 부드럽게, 매일 요가
44 필요한 만큼의 체력을 갖기 위하여
50 식물 킬러 탈출 작전
58 통해야 산다, 통기의 중요성

 

PART 2 소신 있는 실천이 보듬는 하루
새로운 쓸모를 찾아주는 일
자연스럽게, 적당하게
적게 사고 다 쓰자
이야기가 순환하는 벼룩시장
쓰임마저 아름다운 제품
‘아끼니까 좋은’ 라이프스타일

 

PART 3 공간은 비우고 마음은 채웁니다
깨끗한 공기는 창에서부터 시작된다
식물이 깨우는 크리에이티브
아름다운 것과 가까워지기
하고 싶은 일, 취미의 중요성
비워서 생기는 여유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
생각을 종이로 옮기는 만년필 예찬
시간 관리의 기술

 

PART 4 함께, 조금씩 자라나는 일
식물을 나누는 마음
레이어, 층, 밑간의 의미
먹고사는 일에 관하여
여행을 즐기려면
따뜻하게, 여유롭게, 암스테르담
문화는 우리 동네에서 시작된다

 

에필로그 식물 보듯 나를, 우리를 돌보는 일

 




초록이 가득한 하루를 보냅니다


몸도 마음도 건강해질 시간입니다

회색 미세먼지 대신 초록생활

‘100% 완벽하게 좋은 일만 한다’, ‘나쁜 일은 무조건 안 한다’ 생각하기보다는, 몸과 마음의 균형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몸에 좋은 것만 하는 것은 마음을 살피지 않는 이성의 강요인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마음 가는 대로만 하면 오히려 몸에 무리를 준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기준으로 두고 시간과 취향, 건강 등 여러 요소를 고려해 생활의 균형을 찾아야 마음과 몸이 편안하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득 찬 미세먼지를 만난 날에는 우울감이 쇠사슬처럼 몸을 묶어버렸다. 그때 식물이 건강뿐 아니라 마음을 돌보는 데 도움이 됐다. 식물을 키우는 경험은 심리치료에도 활용될 만큼 효과가 좋다. 식물은 어떤 곳에서도 적응하며 새 잎을 틔운다. 에너지를 모아 있는 힘껏 연두색 어린잎을 올리는 식물을 보면, 마음 한구석에서 ‘나도 해봐야지’ 하는 긍정의 힘이 솟아난다.


생각해보면, 공식적인 미세먼지 측정 데이터가 없었던 1980년대에도 공장에서 뿜어내는 미세먼지가 많았다. 학교 다녀오는 길에 지나는 골목 모퉁이엔 가내수공으로 필름을 만드는 집이 있었다. 화학물질 타는 냄새가 코가 아플 정도로 고약했다. 그 집 앞을 지날 때는 늘 숨을 멈추고 뜀박질을 했다. 청계천 고가다리 아래 금성전자 대리점에서 일한 택시 기사의, 씻을 때 세숫대야의 물이 새까만 색으로 변했다는 말도 기억이 난다.


제어할 수 없는 큰 원인만 생각하다 보면 두려움과 냉소로 자포자기하기 쉽다. 미리 포기하지 말자. 미세먼지 덕분에 파란 하늘과 맑은 공기, 깨끗한 물이 얼마나 소중한지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니, 어떻게 보면 변화의 강력한 동기를 공유하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의 라이프 스타일이 크게 변한 기록도 있다. 이 시기에 불필요한 것은 정리하고, ‘소유’를 극도로 줄이는 미니멀리즘 열풍이 불었다. 위기는 곧 새로운 변화의 시작이라고 믿는다.


숲 같은 우리 집 만들기

식물을 키우기로 마음먹었다면

식물을 키우기로 마음먹은 후 고민이 된 건 ‘어디에 둘 것인지’였다. 식물을 많이 데려오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리 집은 베란다나 발코니로 활용할 공간이 거의 없는 집이다.


일단 창문과 벽이 만나 빛이 잘 들어오는 모퉁이를 중심으로 키가 1.5m쯤 되는 대품식물들을 배치했다. 그 공간은 대부분의 집에서 비워두는 공간이다. 발길이 닿지 않는 공간은 사람이 움직이는 길, 즉 동선 밖에 있다는 의미다. 그곳에는 뭔가 두어도 전혀 불편하지 않다. 실제로 생활하는 데 거슬리지 않았다.


벽과 벽이 만나는 공간에는 과감하게 키 큰 식물을 배치해도 좋다. 큰 식물이 부담스럽다면 60~70센티미터 정도의 나무 두세 개도 좋다. 이럴 때는, 스툴이나 화분 받침대를 사용해서 식물의 높이를 다르게 해주면 시각적으로 더 아름답다. 바람이 잘 통해 식물도 더 건강해진다. 벽과 바닥이 만나는 공간도 잘 살펴본다. 걸레받이 앞쪽으로 10센티미터 정도의 공간에는 발길이 지나지 않는다. 그 공간도 살려본다. 좁고 넓은 물통에 스파티필룸을 물꽂이해주면 좋다.


공기 정화를 위해서 집 안 전체에 스파티필룸과 스킨답서스를 깔아준다. 얼굴 전체에 파운데이션을 두들겨 베이스 메이크업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리고 립스틱과 마스카라로 포인트 메이크업을 하는 것처럼 마음에 드는 예쁜 나무를 골라 집 안에 포인트를 준다. 그런 나무는 과감하게 골라도 좋지만, 예쁜 나무는 한두 개 정도로 그쳐야 한다. 욕심부려 포인트 메이크업이 과해지면 오히려 예쁘지 않다.


화원에서 파는 가장 흔한 크기의 벽돌색 포트 화분은 지름이 8~10센티미터 정도다. 휴대폰을 올려놓는 정도의 공간이면 화분을 놓을 수 있다. 책상 사이사이, 옷장 위, 서랍장 위 곳곳, 욕실 세면대, 양변기 뒤, 양변기 아래 양쪽 등등에 화분을 올려 두고 키울 수 있다. 직사광선이 들지 않아도 사람이 사는 데 불편하지 않는 공간에서는 식물도 살 수 있다.



소신 있는 실천이 보듬는 하루

새로운 쓸모를 찾아주는 일

나만의 쓸모를 찾아 모으는 일

식물을 많이 키우다보니,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화분 받침이 필요하다. 화분 받침은 뿌리에 급수를 했을 때, 물 받침에 여분의 물이 흐르지 않도록 모아주는 역할을 하고, 식물 뿌리를 바닥과 떨어뜨려 통기를 시켜주는 역할도 한다. 식물은 겨울의 바닥 난방에 취약해서, 바닥과 공간을 떼러 주어야 한다. 화분 받침 위에 둔 식물과, 화분과 바닥이 바로 닿아있는 식물의 생육 상태는 겨울이 지나면 누구든 알 수 있을 정도로 큰 차이가 난다.


판매되고 있는 여러 화분 받침은 흰색이 아니면 검은 색, 단 두 개뿐이다. 화분의 크기와 모양, 색상은 다른데 화분 받침은 전부 같은 색이다. 또 화분은 사각형인데 동그란 받침을 써야 할 때도 있다. 스튜디오와 주방 수납장을 뒤지니, 안 쓰는 쟁반과 접시가 눈에 들어왔다. 화분 색상과 어울리는 접시를 찾아 화분 아래에 받쳤다. 회색 화분 아래에는 민트색 접시를 두었고, 검은색 화분 아래에는 짙은 남색 쟁반을 두니 화분과 화분 받침이 원래 한 세트인 듯, 잘 어울렸다. 금이 간 도자기 접시는 토분 아래 받쳐주니 잘 어울렸고, 바비큐용 금속 쟁반 위에는 크고 작은 화분을 올려 작은 화단을 만들었다.


물건의 새로운 쓸모를 찾아주기 시작하면서 색상별로 연출하는 재미도 찾았다. 빨간 선인장 화분은 빨간 쟁반 위에 올려 빨간 동전 지갑과 빨간 레고 캐릭터와 함께 배치했고, 노란 쟁반 위에는 물꽂이하는 식물의 유리병을 나란히 올려 두고 옆에는 노란 곰돌이 빙수기를 나란히 세웠다. 파란 쟁반 옆에는 하얀 도자기에 파란 그림이 그려진 술병과 파란 알렉시 세제병, 수경재배에 사용하는 콤팩타 물병을 함께 모았다.


내친 김에 국자나 뒤집개 같은 조리도구를 담는 통에 플로럴 폼을 넣어 꽃을 꽂는 화기로 쓰기도 했고, 안 쓰는 카스텔라 틀에 필렛을 담아 씨앗을 싹 틔우는 베드로 썼다. 파운드케이크용 빵틀은 아파트 창틀 사이 같은 좁은 공간을 살리는 화분이 된다. 높고 긴 화분 위에는 큰 접시를 올려 단을 만들어 높은 화분 받침대를 만들었다. 문구용 가위로 식물의 시든 잎을 잘라주기도 한다. 잎을 몇 개 정리해서 가위가 상할 리 없고, 식물에도 어떤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구용 가위는 종이를 오리는 데만 써야 한다는, 내가 가진 고정관념이 문제가 된다. 스스로를 에워싸고 있는 편견과 한계를 느낄 때 종종 놀란다.


다른 이가 정해둔 용도와 쓰임, 규칙에서 벗어나 나만의 쓸모를 다시 찾는 일이 주는 행복이 꽤 크다. 드립커피용 주전자로 작은 화분에 물을 주는 일 또는 향수병으로 화분에 스프레이 분사로 물을 주는 일, 재봉용 쪽가위로 식물의 잎을 잘라 주는 일 등 사물을 내 멋대로 활용하면서 느끼는 해방감, 만족감을 느껴보면 좋겠다.


자연스럽게, 적당하게

집 안에 키우는 식물에 대하여

베란다가 없는 실내에서는 대부분 식물을 화분에 심어 키우게 된다. 식물은 부피가 큰 편이라, 많이 키우고 싶어도 장소가 마땅치 않다는 고민이 생긴다. 그럴 땐, 좁고 작은 공간을 노려본다.


하지만 작은 화분의 흙은 양이 적기 때문에, 수분과 영양분의 균형에 예민하다. 한마디로 ‘관리’가 어렵다. 물을 주다 자주 흘러넘쳐 결국은 마룻바닥이 손상되기도 한다. 작은 화분 하나하나에 물을 주려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인내심이 필요하다. 작은 공간에서는 수경재배하는 편이 낫다.


수경재배할 땐 흙을 모두 제거한 뿌리만 물에 담아 키운다. 화분, 어항, 아크릴박스 등 여러 종류를 찾아봤지만 마땅한 게 눈에 띄지 않았다. 마트의 주방 코너에서 찾은 두께 10센티미터, 너비 30센티미터의 플라스틱 바스켓이 딱이었다. 그 바스켓에 스파티필룸을 납작하게 키우면 안성맞춤일 듯했다. 스파티필룸은 백조 같이 하얀 꽃을 피우니 바스켓의 흰 색과도 잘 어울릴 것이다.


건강한 식물의 뿌리는 촘촘하게 자라, 흙에 단단하게 고정된다. 화분의 뿌리 부분을 통째로 물에 담가 하룻밤 그대로 두면 뿌리와 흙이 물에 분다. 물속에서 푹 젖은 뿌리를 살살 흔들면, 흙은 대부분 씻겨 나간다. 그래도 남아있는 흙은 흐르는 물에 헹군다. 뿌리만 물통에 넣고, 딱 뿌리만큼 물을 채운다.


물통 안에 작은 돌을 넣으면 식물의 뿌리가 자라며 돌을 감아 지지대로 삼는다. 무게중심이 아래로 쏠려, 화분이 잘 넘어지지 않게 도와 식물이 안정적으로 자라나는 환경이 된다. 수경재배하는 식물에는 영양제를 넣지 않는다. 뭔가를 더 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땐, 물속에 과산화수소를 티스푼 한 개 정도 넣어준다. 물을 소독하며, 뿌리에 산소를 전달하는 효과가 있다. 이렇게 만든 스파티필룸 화분을 사년 째 수경재배로 키우고 있다.


실내에 식물을 가득 채워 하는 이야기를 《우리 집이 숲이 된다면》이라는 책으로 묶어 냈다. 실내에서 식물을 키우는 이유, 잘 키우는 방법과 미세먼지를 제거하는 효과에 대해 썼다. 이 경험을 나누는 강연 기회가 종종 있었는데,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물통을 얼마나 자주 닦아주어야 하나요?”였다.


그동안 스파티필룸 물통을 세 번 정도 닦아주었다. 스파티필룸은 더러운 물속에서도 잎을 키워 물통을 빼곡하게 채웠다. 여름에 잘 자라던 스파티필룸이, 바닥난방을 하던 겨울에는 잎의 양이 반으로 줄어든 걸 보면 뿌리가 담긴 물통을 씻어주지 않는 것보다 바닥의 열이 고스란히 전해여 물의 온도가 오르는 일에 더 큰 영향을 받는 듯했다.


생각해보면 식물은 늪 속에서, 우리의 기준으로 ‘더러운 곳’에서도 잘 산다. 악취가 풍기는 시궁창 가장자리에서도 식물은 자라고 있다. 자연 상태는 무균실처럼 완벽하게 깨끗하지 않다. 그러니, 실내에서 매일 물통을 닦으며 유지, 관리하지 않아도 큰 문제는 없다.



공간은 비우고 마음은 채웁니다

하고 싶은 일, 취미의 중요성

쓸 데 없이 바쁘다면

정신이 없는데, 왜 정신이 없는지 알지 못한다. 왜 매일 바쁘고 힘든 걸까. 왜 의자 뺏기 게임하듯 조바심을 내며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을까. 쳇바퀴 속에서 아무리 열심히 달려봤자 결국은 쳇바퀴 안이다. 그렇게 꽁지에 불이 붙은 것처럼 뛰기만 하는 건 그만하고 싶었다.


하고 싶지 않은 일에 쓰는 시간과 에너지를 줄여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쇼핑을 즐기지 않는데, 굳이 계절별 신상품을 체크하거나, 필요하지도 않는데 마트를 돌아다니며 하나하나 둘러보는 일, 유행하는 것을 살피는 일을 떠올렸다. 2014년 12월 기준으로 인스타그램에는 하루 평균 7,000만 장의 이미지가 생성된다. 유행은 시간이 지나면 모래알처럼 손에서 빠져나간다. 남는 건 본질이다.


쇼핑은 필요한 게 있을 때만 한다는 규칙을 정하고, 대형 마트에 가는 횟수는 줄이고 동네 가게를 이용하기 시작하니 시간이 조금 헐거워졌다. 살림살이 유지와 관리에 들어가는 시간도 줄였다. 이번 여름, 반바지 두 개로 대부분의 의생활을 해결했다. 매일 똑같은 옷을 입어도 오히려 자유롭기만 했다.


내가 가진 시간과 자원을 어디에 쓸 것인지를 결정하는 건 나다. 내 몸과 내 시간에 대한 주권은 ‘내’가 갖고 있다. 그런데, 내가 어떨 때 가장 행복한지 알지 못하니 남들이 좋다는 건 다 해보면서 늘 정신없이 바빴다. 선택과 집중이 되지 않는 상태에서 벗어나 내가 원하는 것에 집중하기로 작정했다.


집 안 가득 식물을 키운 경험을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글쓰기 취미를 촉발했다. 하루 종일 앉아만 있어도 한 문단도 쓰지 못하는 날도 있었다. 무슨 수를 써도 글이 써지지 않는다. 잠이 오지 않을 때, 잠을 청하려 온갖 노력을 기울여도 잠이 오지 않아 밤을 꼬박 새게 되는 것과 비슷하다. 차라리 잠자기를 포기하고, 지루한 책을 읽다보면 잠이 오기도 한다.


글이 써지지 않을 때 역시 다른 걸 해보면 좋다. 잡초를 뽑거나, 설거지를 하거나, 샤워를 하면 아이디어 한 조각이 비눗방울처럼 부풀어 오른다. 이렇게 떠오른 생각들은 얼른 적어두지 않으면 탁 터져 공기 중으로 날아가버리니, 재빨리 적어 보존해야 한다. 글이 아닌 일에 대한 아이디어가 솟구칠 때도 있다. 적당히 몸도 움직이면서 스쳐 지나가는 생각을 붙잡아 행동으로 옮겨야 글도 삶도 나아진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

결국, 마음을 돌보는 일

너고 나도 어떤 모양을 정해두고 거기에 나를 맞추며 사는 방식에 익숙하다. 스무 살이 되면 대학에 가고 졸업하면 취업에 매진하면서 ‘나’에 대한 탐구는 늘 뒤로 미룬 채 눈앞에 닥친 오늘, 내일을 해결하는 데 급급하다. 짐을 잔뜩 넣어 잡아 눌러 지퍼를 닫아둔 여행용 트렁크와 비슷한 모습이다. 좀처럼 뚜껑을 열어 차곡차곡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마음도 하나하나 꺼내 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무엇이 좋은지, 싫은 마음은 어떻게 표현하는지 스스로 들여다보는 일을 시작했다. 내가 누군지 모르는 채로 사는 것은 뿌리 없는 나무와 같다. 알맹이가 없는 글도 뿌리 없이 흔들리는 나에게서 나온다. 뿌리가 단단하지 못한 나무는 풍파에 몸살을 앓고 쉽게 쓰러진다.


내 마음의 문제는 스스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마치 수학문제처럼 막상 공책을 펼쳐 풀어보려고 하면 풀리지 않는다. 귀찮음과 낯뜨거움을 무릅쓰고 마음을 따라 쓰면 좀 낫다. 《아티스트 웨이》에서는 ‘내면의 상처 입은 어린 아티스트의 목소리를 따라 편지를 쓰라’는 예제가 있다. 예문은 ‘언니는 멍청이야. 이 돼지 같은 언니, 미워 죽겠어!’다. 따라 쓰며 키득키득 웃음이 난다.


내가 맞는 방향성, 지금 필요한 것을 찾는 일이 중요하다. 사과는 다닥다닥 붙어 있는 열매를 솎아내고, 하나하나를 봉지로 감싸는 수고가 필요하며 수박은 열매가 장맛비에 무르지 않도록 땅에서 띄우는 받침대가 필요하다. 사과에 받침대를 받치거나, 수박을 봉지로 싸는 것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쓸데없는 일이다.


방향성을 찾는 데에는 마음을 안정시키는, 좋은 영감을 주는 것들을 모아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어린 시절 사진 몇 장을 꺼냈다. 사진 속의 나는 엄마가 손수 지어준 옷을 입고 있다. 1985년이라고 쓰인 다른 사진 속에는 피아노 앞에 나와 동생들이 환하게 웃고 있다. 그 사진들을 코르크판에 붙여 벽에 고정하고, 벽면에 나를 믿고 지지해주는 응원의 메시지를 잔뜩 붙였다.


책상 한 모퉁이엔 벼룩시장에서 건져 올린 플라스틱 탁상시계가 있고, 알록달록 펠트 구슬로 만든 코스터 위에 흥송 디퓨저가 있다. 그 옆에는 좋아하는 페퍼민트와 레몬 에센셜오일을 두었다. 좋아하는 것이 모여 있는 책상 앞에 앉아 그날의 영감으로 여과한 일상을 매일매일 쓴다. 마음을 들여 한 줄 한 줄 나아가니 스스로 느끼기에 글도 훨씬 좋아졌다.



함께, 조금씩 자라나는 일

문화는 우리 동네에서 시작된다

문화는 지역의 풍토에서 비롯된다

농사를 잘 지으려면, 그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농부를 찾아가라는 말이 있다. 우리 집 근처에 첫 서리와 마지막 서리가 언제 내렸는지 농사를 지을 땅의 특성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에 맞는 작물과 가공법이 따로 있다. 땀 흘려 경험으로 체득한 농부의 이야기는 주변 환경을 파악할 수 있는 가장 정확한 정보다.


동네 화원에 가보면 화원마다 취급하는 상토와 거름의 종류가 다르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지역별로 기후와 토양의 특성이 다른 것이 주된 이유다. 기후와 토양 조건에 따라 논과 밭에 심는 작물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강원도는 고랭지 배추로 유명하고, 대구는 분지 지형 때문에 사과 산지를 이루고 있다. 남쪽에서는 애플망고, 파인애플 같은 열대과일이 재배된다.


네덜란드가 튤립, 화훼농업이 발달한 이유는 바다를 막아 만든 축축한 땅에서 고부가가치를 올릴 수 있는 작물이 꽃이기 때문이다. 일 년 내내 비슷한 기후를 보이는 영국에는 정원 문화가 발달했다. 독일 모젤 지역이 아이스 와인으로 유명해진 이유 또한 풍토와 맞닿아 있다. 포도를 다 따기 전에, 서리를 맞아 얼었다 녹았다 하여 당도가 높아진 포도로 와인을 만들기 때문이다.


풍토는 문화를 만들어내고, 사고방식과 생활방식에서도 영향을 준다. 고층빌딩 하나 없는 캘리포니아 오렌지카운티에서 한 달 머물렀을 때는 마음속 날이 선 스카이라인도 지평선을 따라 넓게 펴지면서 편안해졌다. 크륄러 뮐러 미술관으로 가는 길, 평평한 땅이 이어지는 네덜란드 고속도로에서도 차분해지는 마음을 만날 수 있었다.


일 년 내내 같은 옷, 같은 살림살이로 살 수 있는 지역의 여유를 우리나라에서는 갖기 어렵기도 하다. 대신 봄에 피어나고, 여름에 빼곡한 나뭇잎이 짙어지나 싶을 때 물기가 바짝 마른 빨강, 노랑 가을 단풍이 이어진다. 나뭇가지만 남은 메마른 겨울엔, 눈이 내려앉고 다시 꽃을 피운다.


기후와 풍토는 어떻게든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문화는 같은 풍토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 지니는 공통의 정서라 할 수 있겠다. 건강한 숲은 잡초부터 상록침엽수까지 다양한 품종의 식물이 층을 이루며 공생한다. 그래야 토양 속 미생물의 종류도 다양해지고, 서로 도움이 되는 물질을 주고받으며 건강해진다. 서로의 다양성을 수용하며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함께 살아가는 것. 식물이 가르쳐주는 초록의 효용은 어디에나 있다. 식물을 키우고 나눠 지속 가능한 환경을 만들고, 건강한 마음과 사소한 실천을 쌓아 올려 꽉 채우는 하루를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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