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를 안다고 생각했는데

   
홍수지
ǻ
산디
   
15000
2019�� 11��



책 소개

 

“수의사도 보호자일 때, 실수하고 고민한다”
개를 치료하는 삶, 개와 함께하는 삶 사이에서

 

보호자가 수의사라면 개를 더 잘 키울 수 있을까? 그러나 개들은 보호자의 직업에 관심이 없다. 대소변 교육을 시작했더니 개들은 대소변용 패드를 갈가리 찢어놓았다. 먹지 말아야 할 것도 먹었다. 때때로 그것은 인간이 쓰는 물건이었고, 때로는 개똥이었다. 개들은 수시로 짖어 보호자를 당황하게 만들고, 하루 종일 공을 던져달라고 요구했다. 10년 이상 수의사로 일했던 저자 홍수지가 개 두 마리와 함께 사는 삶을 선택한 뒤로 갑자기 겪은 일이다.

 

수의사로 일하면서 개를 충분히 안다고 생각했지만, 개를 키우는 일은 개에 대한 지식과는 완전히 별개였던 것이다. 여느 보호자처럼 어떤 날은 몹시 화가 나지만, 마음을 다스리며 시간을 길게 두고 교육을 하면서 효과를 보기도 한다. 나아가 내원한 보호자의 복잡한 마음을 조금 더 깊게 이해하게 된다. 그러다 문득 이 작고 사랑스러운 개들이 나이가 들고 아플까 봐 두렵다. 개로 인한 곤란과 새롭게 눈뜬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책이다.

 

■ 저자 홍수지
어릴 적 집 마당에 늘 개가 있었다. 그럼에도 수의사라는 직업이 존재한다는 건 고등학교 때 대학 학과 소개 책자를 보고 처음 알았다. 그때 수의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엄마는 어릴 적에 내가 죽은 쥐를 맨손으로 잡은 일화를 들며 내게 수의사가 천직이라고 했다. 진료가 고단할 때면 밥벌이의 어려움이라고 생각했고, 가끔 일에서 보람을 느낄 때면 내 직업에 감사했다. 그 세월이 꽤 축적되었지만 아직 천직인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더 많은 세월의 더께가 필요할 것 같다. 이 책도 수의사를 천직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의 일부다. 

 

■ 차례
들어가는 말

 

1장 - 잘 키우고 있는 걸까?
:: 돌봄 노동의 시작
고양이가 아니라 개였다
수의사가 꾸는 개꿈
이건 반드시 해야 해 - 배뇨, 배변 가리기
나는 어른일까 아닐까
똥 먹는 개
내 귀에 삑삑이
먹었구나
산책, 솔직히 귀찮지만
옛날의 개, 오늘의 개

 

2장 - 수의사의 개는 행복할까?
:: 15년 차 수의사와 개
수의사의 개는 행복할까?
저 회사 다녀요
보호자 소개 - 고민 많은 15년 차 내과 수의사
파이 소개 - 시끄러운 작은 개
비비 소개 - 통통한 겁쟁이
첫 환자
짖는 개
개를 직장에 데려간다면
냄새로 알아가는 세상
처음부터 무는 개는 아니었는데
나는 안락사를 결정할 수 있을까?
죄책감과 작별하기

 

3장 - 내가 선택한 가족
:: 개와 함께 사는 일
고양이 책이 아니라 왜 개 책일까
개들 사이의 우정
내가 선택한 가족
3인 가족의 개 vs 1인 가구의 개
개의 수명
다시 키울 수 있을까?
개 없는 주말
첫사랑 개
주말의 가족 여행
보호자와 수의사 사이에서

 




개를 안다고 생각했는데


잘 키우고 있는 걸까?

돌봄 노동의 시작

이건 반드시 해야 해 - 배뇨, 배변 가리기

강아지는 8주령 이후부터 2주 간격으로 6차 접종을 기본으로 하는데, 이때 병원에 찾아오는 보호자에게 잊지 않고 물어보는 게 있다.


“배뇨, 배변 교육은 하고 계시죠?”


세 달밖에 안 됐는데 거의 가린다고 하는 보호자도 있고, 벌써 교육을 해야 하는 거냐고 되묻는 사람도 있다. 그럴 때마다 배뇨, 배변 교육은 개와 사람이 같이 살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임을 강조해서 말한다. 보호자가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교육을 하고 있는지 들어보고 수정해야 할 부분을 짚어주기도 한다.


안타까운 사례지만, 대소변 훈련 시 왜 화를 내면 안 되는지를 보여주는 적절한 예시가 있어 적어본다.


대소변을 전혀 못 가리는 개를 키우는 보호자를 만난 적이 있다. 정황을 들어봤더니 대소변 교육을 할 때마다 잘못하면 많이 혼냈다고 한다. 그래서 보호자가 보는 앞에서는 개가 절대 대소변을 보지 않는다고 했다. 보호자가 볼 수 없으니 교육이 가능할 리 없다.


계속 지켜보면서 조금씩 교정을 해야 하는데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개 혼자 집에 있을 때는 케이지 안에 둔다고 했다. 케이지는 좁은 곳이라 변을 보면 밟게 되고 몸에도 묻는다. 그럼 또 씻겨야하기 때문에 보호자의 일도 배가 된다. 이런 사연을 전한 보호자는 키우는 개의 피부 문제로 병원에 왔다. 악순환인 것이다.


배변교육을 본격적으로 해보기로 마음을 먹은 뒤 일단 거실에 울타리를 쳤다. 울타리 안에 거의 절반쯤에 패드를 깔았다. 며칠 두고 보니 배변을 거의 100% 가리는 것 같았다. 그때는 ‘천재인가?’했지만, 나중에 보니 이건 개를 키우는 사람이라면 다 한 번쯤은 하게 되는 착각이었다.


집에 애들과 함께 있을 때면 주시하고 있다가 패드에 잘 누면 바로 간식을 줬다. 계속 울타리에 가둬놓았더니 답답해하는 것 같아서 울타리 밖에 풀어 놓았다. 애들이 활보할 수 있는 공간은 거실까지만 허용하기로 했다. 애들의 발길이 닿는 곳에 큰 패드를 넉넉하게 깔았다.


이제 본 게임이 시작된 것이다. 다행히 패드를 찾아서 볼일을 보길래 또 한 번 놀랐다. 잘 했을 때 간식을 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배뇨, 배변에 관해서 마음을 놓아갈 즈음이었다. 어느 날 퇴근하고 집에 가니 패드가 갈가리 찢어져서 거실이 엉망이 되어 있다. 굳은 얼굴로 패드의 잔해를 치웠다. 그 다음 날 출근 전에 스카치테이프로 패드를 바닥에 고정했다. ‘이제 뜯지는 못하겠지’하고 자신하면서도 ‘그런데 별걸 다 해야 하는구나’ 싶었다. 효과가 있었다. 더는 패드를 물어뜯지 않았다.


그런 채로 며칠이 흐르자 이제 괜찮은가 싶어 마음이 느슨해졌고, 어느 날 테이프를 바닥에 붙이는 걸 잊은 채 외출을 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다시 패드를 갈가리 찢어놓은 것이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멀쩡한 패드가 없으니 여기저기 대소변을 눈 것이다. 망연자실 했지만 정신을 가다듬었고, 새로운 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그길로 당장 배변 판을 사러 달려갔다.


배변 판을 산 건 패드를 못 찢게 만들기 위해서였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다. 소변을 한 번 본 곳이면 절대로 밟으려 하지 않고, 패드에 깊숙이 들어가기도 싫은지 패드 가장자리에다 소변을 봤다. 앞으로 걸어가면서 볼일을 보면 시작은 패드 안에서 하지만, 결국은 패드 바깥으로 가서 마무리를 했다.


하지만 배변판도 만능은 아니었다. 암컷은 소변보는 자세가 낮아서 배변 판 가장자리에서 볼일을 바도 소변이 밖으로 튀지 않았다. 수컷은 보통 한쪽 다리를 살짝 들고 자세를 조금 낮추고 볼일을 보는데, 그래도 암컷보다 자세가 높다. 그 얘긴 즉, 가장자리에서 소변을 보게 된다면 방향에 따라 오줌이 배변판 밖으로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배변 판을 사용하니 씻는 게 또 일이었다. 가장자리에서 오줌을 누면 배변 판 턱에 오줌이 묻고 시간이 지나 말라붙어서 냄새가 난다. 하루 안 닦으면 냄새가 나서 자주 씻어야 했다. 매번 씻고 물기를 없앤 후 다시 패드를 깔아야 했다. 그것 말고도 바닥은 바닥대로 닦아야 했다. 일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결국 배변 판을 치웠다. 패드가 찢어지지 않는다는 장점 말고는 좋을 게 없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대시 패드 두 장을 붙이고 바닥에 테이프로 고정했다. 처음으로 돌아간 것이다.


몇 개월간의 힘든 교육 끝에 엉뚱한 곳에 누는 일은 거의 사라졌다.


이제 잘 가린다고 생각했을 때쯤 패드의 위치를 바꿨다. 베란다로 옮겼다. 덕분에 거실은 청정 구역이 되었다. 베란다에서도 여전히 패드 경계에 오줌 누기, 똥 누면서 걷기 신공을 보여주고는 있지만, 거실과 분리된 베란다라는 공간이 나에게 심신의 안정을 가져다주었다.


배뇨, 배변 훈련을 하면서 내가 너무 완벽한 개를 원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서로 다른 두 종이 눈치코치로(실은 간식으로) 목표한 성과를 이룬다는 것은 실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그것도 사람만 원하는 성과를 말이다. 그런데 이를 너무 당연시했고,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않았다. 고난의 행군이라고 했지만 알고 보면 완벽하게 내 마음에 들게 하기 위한 교육이었다.


그들의 최선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보게 된다. 개의 최선은 편안함과 자연스러움이지 않을까. 내가 그들의 최선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주는 것, 적당히 포기하는 것, 그게 개와의 소통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먹었구나

평범한 어느 날이었다. 퇴근한 뒤 집에 와서 애들이랑 적당히 놀아준 뒤 집안일을 하다가 인센스 스틱 생각이 났다. 향이 좋아 자주 구입하는 제품인데, 종이로 만든 긴 원형의 통에 향이 들어있고, 용기의 입구는 코르크 마개로 닫혀 있다. 병원에서 택배로 받은 것을 가져와 책상 위에 꺼내놨는데, 향을 피우려고 찾으니 통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통을 줍고 보니 코르크 마개가 없었다.


순간 ‘먹었구나’라는 불길한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주변을 구석구석 다 뒤졌다. 가방도 다시 열어봤고, 애들의 동선도 살폈다. 안 보였다. ‘먹었구나’라는 추정이 확신으로 굳어져갔다.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올라 전에 사둔 똑같은 제품의 코르크 마개를 찾아보았다. 와인 코르크 마개보다 길이는 약간 짧고 직경은 조금 큰 것이다. 내 입에 넣어봤더니 입 안이 가득 찼다. 개가 단번에 삼킬 수 없는 크기였다.


그럼 뜯어서 먹었단 얘기인데, 가루하나 없이 깨끗이 먹을 수는 없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코르크 마개 부스러기를 찾으려고 집 안 구석구석을 다시 살폈으나 없었다. 점차 ‘안 먹었어!’라는 생각이 자리를 잡았다.


진정하고 찬찬히 다시 찾아봤다. 설마하는 마음으로 가방을 다시 열어봤더니 거기 있었다. 가방 속 책들 사이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유레카! 이미 뒤져본 곳이 있었는데 ‘먹었다’라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 제대로 못 본 것이다.


출근 준비로 바쁜 아침이었다. 차를 빼달라고 연락이 와서 급하게 내려갔다 와보니 거실에 쓰레기가 널려 있었다. 언뜻 봐도 알 수 있었다. 화장실 휴지통에서 나온 쓰레기였다. 거기에는 여성 위생용품도 포함되어 있었다.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화장실 문을 안 닫고 나간 내 탓이다 싶어 조용히 하나씩 치우는데 있어야 할 게 없었다. 등골이 서늘해지면서 스치는 생각, 먹었다. 하필 그걸….


그길로 애들을 옆구리에 한 마리씩 끼고 서둘러 출근을 했다. 뭔가를 뜯는 건 주로 비비였기에 비비에게 먼저 구토시키는 약을 먹였다. 삼킨 것이 날카롭지 않은 이물일 경우, 보통 한 시간 이내에 약물로 구토를 유발할 수 있다.


좀 있다가 비비가 구토를 했다. 비비의 입에서 탐폰 끝에 달린 실이 나왔다. 역시‘네가 범인이구나’했다. 더 토해내겠지 싶어 기다렸다. 거품까지 토해냈지만 더는 없었다. 설마?


파이를 째려봤다. 파이한테도 약을 먹였더니 얼마 뒤 파이가 탐폰의 스펀지를 토했다. 내가 주차장에 다녀온 그 짧은 새에 둘이 그걸 물고서 신나게 터그 놀이를 한 모양이었다. 어떻게 그 작은 몸으로 이걸 통째로 삼킨 건지 아직도 이해가 안 가지만, 애들은 그걸 먹었고 다행히 토해냈다.


개들은 가끔 우리를 수치스럽게 하는 물건을 먹는다. 그럴 땐 당황하지 말고, 부끄러워하지 말고 일단 병원으로 데려가자. 망설이다가 골든타임을 놓치면 일이 더 커진다. 그리고 평소에 잘 치워놓자.



수의사의 개는 행복할까?

15년 차 수의사와 개

수의사의 개는 행복할까?

비비, 파이 말고 키우는 동물이 더 있다. 병원에서 생활하는 열네 살 앙꼬다. 덩치가 큰 수컷 고양이인데 목소리가 남달라 처음 보는 사람은 무서워하지만 목소리만 그럴 뿐 무척 점잖다.


부모가 의사인 집 아이들이 더 건강할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사람들은 수의사가 키우는 동물에 대한 기대감이 있다. 마찬가지로 수의사의 고양이라는 이유로 앙꼬는 병원에 찾아오는 여러 보호자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되곤 하지만 별다른 의료 혜택을 받아본 적이 없다.


병원에 내원한 보호자가 앙꼬를 쓰다듬으며 “너는 좋겠다. 아파도 걱정이 없겠네. 관리를 잘 받아서 건강한가 보다”라고 말할 때면 미안한 마음에 슬쩍 자리를 뜬다.


수의사가 개를 키운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 같아 보인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두 마리를 데려왔다(사실 개와 함께 산다는 게 어떤 것인지 잘 몰라서였지만). 개에 대한 기본 상식이 있어서 가슴 철렁할 일이 비교적 적을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그럼에도 많았지만).


그 밖에도 보호자가 수의사라면 저렴한 가격에 사료를 구입할 수 있고, 치료비가 적게 든다는 장점이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런 건 수의사가 아니라도 얻을 수 있는 혜택이다. 개에 대한 정보는 여기저기 넘쳐흐르고, 사료 역시 인터넷으로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직업이 수의사이기 때문에 개를 키우는 일에 있어서 내가 만능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아주 잘하지는 못해도 개와 관련된 대부분의 일을 약간씩은 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밥을 주거나 산책을 하는 일반적인 돌봄 활동 외에 기본 훈련도 시키고, 접종도 직접하고, 약도 직접 처방해서 먹이고, 수술도 시킨다(부탁한다). 가끔 미용도 한다. 보통의 개가 싫어할 만한 일 대부분을 직접 한다. 가끔 애들은 내가 뭐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할지 궁금하다(아마 아무 생각 없겠지만).


대부분 잘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대부분 제대로 못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그리 좋은 보호자가 아닐지 모른다. 나는 1인 가구 생활자다. 집에서 해야 할 일을 나눌 손이 없다.


바쁜 아침에는 전날 다 먹은 밥그릇을 씻지도 않고 바로 사료를 붓기도 한다. 비오는 날엔 산책을 안가도 돼서 혼자 즐거워하고, 어떤 날을 울면서 산책을 간다. 산책 후 현관에서 물티슈로 애들 발을 닦이면서 매일 산책이 끝나면 발을 씻기고 말린다던 어느 보호자를 떠올린다.


현실에서는 애들을 키우는 데 수의사로서의 정체성(보호자에게 말하는 것을 내 자신도 지키려고 함)과 내 성격적인 부분(규칙은 지키고자 하는 고지식함)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처음에는 애들이 왔을 때 애들을 보는 눈빛부터 달랐다. 막 개를 데려온 보호자의 눈에는 사랑과 감탄이 가득 차 있기 마련이지만, 나는 이 상황을 조금 더 이성적으로 받아들였다. 애정 표현도 아꼈다. 좋아하지 않는 게 아니라 독립적으로 자라길 바랐기에 눈과 마음으로 예뻐했다. 많이 안아주지도 않았고, 내가 정한 놀이 시간 이외에는 둘이 놀도록 했다.


가끔 이물을 먹고 온 환자에게 구토시키는 약을 먹일 때가 있다. 치료과정의 하나라고는 해도 힘겹게 토하는 모습을 볼 때면 늘 마음이 불편하다.


우리 애들이 아프다면 그 안쓰러움은 더할 것이다. 애들이 아프면 내가 치료를 해야 한다. 직접 피를 뽑고 주사를 놓고 혹은 더 아픈 처치를 해야 할 때 자기를 돌봐주어야 할 보호자가 자길 더 아프게 한다고 생각하진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기도 한다.


마음이 쓰리고 애들이 걱정되는 와중에 이성적인 판단도 해야 한다. 가끔 악역은 다른 선생님이 했으면 하는 마음도 들지만 그렇다고 이 애들을 다른 병원에 보내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결국 내 손으로 다 해결해야 한다. 이건 조금 잔인한 현실이다.


보호자의 직업이 무엇인지 개들은 관심이 없다. 내가 주사 바늘을 찌르면 애들이 깜짝 놀라긴 하지만 애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내가 자기를 해치지 않을 것임을 말이다.


개를 직장에 데려간다면

파이, 비비와 첫해를 보낼 때였다. 매일 애들과 같이 출근을 했다. 애들과 한시도 떨어지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제발 똥만 먹지 말아줘’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애들을 데리고 일하러 나간 것이었다. 그때만 해도 둘 다 대소변을 잘 가리지 못했고, 신나게 배변 패드를 뜯던 시절이었다.


함께하는 출퇴근이 애들한테 유익한가 아닌가를 고민하게 된 이유는 파이 때문이었다. 파이는 겁이 많은 편이라 낯선 소리가 들리면 일단 짖고 본다. 요새는 예전보다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그때만 해도 강아지나 사람들 소리가 들리면 바로 짖었다.


파이가 내는 소리 때문에 병원에 내원한 환자가 덩달아 짖거나 놀라는 일도 있었다. 클리커도 써봤고 일시적으로 가두는 훈련도 해봤지만 당장에 효과가 없어서 진료가 많은 시간에는 비교적 방음이 잘되는 병원 내 휴게실 안쪽에 파이를 따로 두었다.


진료가 비는 시간에 다시 데리고 나오긴 했지만, 휴게실에서 웅크리고 자고 있는 파이를 보니 굳이 데리고 다닐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그래서 파이는 집에 두고, 비비만 데리고 다녀보기로 했다.


하지만 파이를 두고 비비만 데리고 나온다 해서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비비가 심심해보였다. 동물병원이라 많은 개들이 오가긴 하지만 대부분 아파서 오는 애들이라 비비와 놀아 줄 친구는 없다. 여긴 직장이고 나는 진료를 봐야 한다. 진료가 하나 끝나고 여유가 생겨도 검사 결과를 확인하거나 진료에 필요한 자료를 찾아야 한다. 혹은 다음 진료 준비를 해야 한다.


결국 비비는 내가 놀아주기를 애달프게 기다리다가 잠이 들었고, 진료를 마치고 짬이 생겨서 부르면 잠이 덜 깬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그 눈을 보면 안쓰럽고 미안해져서 비비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 불안 때문에 데리고 다니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방법을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집에 CCTV를 설치했다. 애들이 무엇을 하는지 실시간으로 지켜보면 내 불안이 해소될 것 같아서 한 일인데, 결과적으로 그건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나도 애들도 이 상황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출근 가방을 어깨에 멘 순간부터는 애들을 쳐다보지 않기로 했다. 최대한 태연한 척, 최대한 무심하게 현관문을 열고 나온다. 문을 닫고 마음으로만 ‘좋은 하루 보내’라고 말해준다. 일하는 동안은 ‘잘 놀고 있겠지’라고 믿는다.


가끔 나에게 여행을 가야 하는데 개를 맡길 데가 없어서 못 갈 것 같다거나 개 때문에 무엇을 못 했다고 말하는 보호자가 있다.


내 대답은 늘 한결같다. 마음이 편하지 않겠지만 다녀오셔야 한다고, 조금 불편한 감정도 계속 연습을 해야 한다고. 그리고 애들은 생각보다 잘 지낼 것이라고. 호텔이나 지인에게 맡기는 것도 개들에게 경험이 될 것 이며, 돌아와 보면 의외로 잘 지내서 서운할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돌아와서 더 행복하게 잘 지내면 된다고 말이다.



내가 선택한 가족

개와 함께 사는 일

내가 선택한 가족

가족이란 무엇인가? 식구(食口)라는 표현처럼, 넓은 의미에서 한 공간에 살면서 같이 밥을 먹으면 가족이다. 그 관계가 사랑과 신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면 가족으로 불리지 못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그 존재가 사람이 아니라도 말이다.


혹자는 가족의 의미를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일 수도 있다. 애기 대신 개를 키우는 거냐, 개가 없어야 결혼을 하지 않겠느냐 등등. 그러나 개가 있어서 결혼을 안 하는 게 아니라 혼자 사는데 개를 키우는 것이다.


아침 알람 소리에 눈을 뜨면 침대 옆 쿠션에서 애들이 나를 쳐다보는 기척이 느껴진다. 고개를 들어 보면 애들 눈에 반가움이 한 가득이다. ‘우리 대체 몇 시간을 못 본지 아느냐’는, ‘보고 싶어 죽을 뻔했다’는 눈빛이다. 이렇게까지 반가움을 표현할 수 있는 존재라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


나는 아침마다 애들과 반갑게 아침 인사를 한다. 누구한테도 하지 않던 혀 짧은 소리를 내니 말이다. 난 내가 그런 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인지 몰랐다. 사람한테는 도저히 안 되는 게 개한테는 참 쉽게 되기도 한다.


개는 그런 존재다. 개는 사람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비교 불가인 부분이 있다. 그래서 그들의 사랑은 특별하다. 그들은 내가 선택한 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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