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으면 장례식에 누가 와줄까

   
김상현
ǻ
필름(Feelm)
   
15000
2020�� 02��



■ 책 소개

 

글로써 세상에 따스한 온기를 전하고 있는 작가 김상현,
한층 더 성숙해진 문장으로 돌아오다!

 

스스로에게 ‘내가 죽으면 장례식에 누가 와줄까’란 질문을 던져 많은 이들의 마음에 작은 파동을 일으켰던 《내가 죽으면 장례식에 누가 와줄까》가 새 옷을 입고 독자 품으로 돌아왔다. 기존 책은 관계에 대해 지친 이들에게 ‘나 자신’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고 행복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을 저자의 따뜻한 문체로 풀어냈다. 그래서일까. 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은 공감을 넘어 위로를 받고, 잠시 접어두었던 삶의 지도를 다시 펼치기도 했다. 저자 역시 수많은 독자들을 통해 스스로를 다시 돌아보게 되었고, 이런 기회를 준 이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표하길 바랐다.

 

불안함과 흔들림의 연속 안에서 스스로를 지탱하며 살아가야 하는 현대 사회에서 경험하는 다양한 관계는 나를 든든하게 받쳐주는 지팡이가 되어주기도 하고, 나를 넘어뜨리는 강한 바람이 되기도 한다. 넘어짐은 나아가고 있음의 반증이라 여기는 저자는 고통 없인 아무것도 없으니 불안해하지 말고 마음 편히 겪어내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새로 추가된 5장을 통해 누군가에게 단단한 지팡이를, 누군가에겐 바람을 막아주는 커다란 산이 되어주고자 한다. 한층 더 짙어진 감성으로, 다시금 삶을 살아가는 태도에 대해 말해주고 있다.

 

■ 저자 김상현
오래오래 살아남아서, 당신 곁을 끝까지 지켜내고 싶다.
사람 때문에 상처받았지만 사람 덕분에 웃을 수 있었던
어떤 날, 모든 이들을 위해.

 

■ 차례
작가의 말

 

제1장
실수
배려와 이기주의
가끔 이런 말들이 필요할 거예요
착함과 만만함
불안
그럴 만한 이유
느낌
비를 맞았다
태도에 관하여
누가 뭐라 해도 나는 나로 살아가야 한다
personality
내가 원하는 삶

 

제2장
놓친 마음
봄비
주고받음
에어컨
표현에 관하여
다름을 이해하는 것
오늘의 즐거움
우린 우리만으로 충분하다
분홍빛 좌석
기억과 죽음

 

제3장
역사

휴식
백 퍼센트
당신만의 색깔로 살아가는 것
사람
예술가
말 한마디
마음과 말
모래 한 줌
내려놓음
일레븐 메디슨 파크

 

제4장
아무렴 행복이길
마음가짐
책임
달빛과 진심
잘 살고 싶은 마음
밑줄
힘을 빼는 연습
판단
나라는 사람
이유
아련한 글자
어쩔 수 없음
메이저와 마이너
행복

 

제5장
안으로 향한 기준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다
처음 떠나는 모험
견딤이 주는 가치
반증
그랬구나
다름을 이해하는 것2
획과 운 사이에
나를 채우는 것들
행복은 결국 내 마음속에
마음을 쓴다는 것
祝辭(축사)  

 




내가 죽으면 장례식에 누가 와줄까

불안

‘나에게 어떤 일들이 다가올까.’ 깊은 생각에 잠겨 내내 불안해했던 적이 있다. 오늘 이만큼이나 힘들었는데 내일은 더 힘들지 않을까? 시간이 지나갈수록 더욱 힘들어지는 것 같고 불안함 역시 몸집이 커져만 가는데, 나는 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이렇게 여리고 작은 모습들밖에 없는 것일까. 결국 그런 생각들은 계속해서 나를 좀먹는 일밖에 되지 못했다. 불안하니까, 불안해서, 불안할 수밖에 없어진 것이다.


잘될 수밖에 없는 일들 이곳저곳에 ‘불안’이라 불리는 살을 붙인다. 자기만의 고민 조금과 여기저기서 주워들었던 말들 조금, 의문 조금과 ‘내 주변에선 아니겠지’라는 생각 조금. 모두 다 조금이었는데, 어느새 몸집은 저만큼 불어나 있다. 어느새 빵빵해진 녀석은 다소 날카로워진 한 문장으로 건너온다. 입에서 귀로, 귀에서 마음으로. 마음 한편에 있던 ‘잘될 거야’라는 다짐이 흐릿해진다. 다짐이 흐릿해지니 불안이 찾아온다. 흔들리고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만 같다.


“나는 행복해야만 돼.”


어쩌면 이 말이 나를 계속해서 붙잡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피하고만 싶었던 불안과 불행, 실망을 받아들여야 온전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 그럼 행복이 더욱 크게 다가올 것이다. 불안해하고, 초조해하고, 두려워해야 한다. 불안하고 초조하고 두려울 때야말로 우린 무언가 시작하고 있다는, 잘해 나가고 있다는 소리니까.


불안함을 불안해하지 말고, 초조함을 초조해하지 말고, 두려움을 두려워하지 말자. 그럼 곧 행복이 찾아올 테니. 우린 그때 행복에 휩쓸리면 된다.


“인생? 어차피 혼자 살아가는 거다. 남 눈치보다 세월이 다 가버렸어. 그러니까 너는 그러지 마러. 생각나는 게 있음 그냥 햐.” 어느 할아버지의 말씀이 다시 생각나는 밤이다.



태도에 관하여

나는 글을 쓰는 작가이기도, 회사의 대표이기도, 카페의 바리스타이기도 하다. 그리고 어쩔 땐, 영업 담당자가 되기도 하고 책의 기획자가 되기도 하며 원고를 편집하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아, 광고를 기획할 때도 더러 있다. 또한 누군가의 아들로, 누군가의 남자친구로, 누군가의 친구로, 누군가의 동생으로, 누군가의 직장 동료로 하루를, 시간이라는 정해진 영역 안에서 살아간다. 내 삶은 하나인데, 삶 속에서는 수많은 역할을 맡아 살아가고 있다.


작가로서 출판사를 마주했을 때 서운했던 점들과 보완됐으면 하는 점들을 생각하며 출판사를 운영하고 작가를 마주한다. 하지만 출판사 입장에서 작가를 대할 때, 과거 내가 겪었던 출판사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처럼 행동하기도 한다.


카페를 운영할 땐 카페를 이용하는 손님의 입장에서 서운했던 점들과 미비한 점들을 보완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카페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손님을 생각할 때, 그만큼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도 생기곤 했다.


수많은 역할을 수행하다 보면 가끔은 헷갈릴 때도 있다.


‘이 상황에서는 이런 말들을 해야 했는데.’

‘이렇게 대처하는 게 맞지 않을까.’

‘다른 사람들의 입장도 생각하고 배려해야 하는데.’

‘내가 서운했던 부분들을 똑같이 느끼게 했으면 안 됐을 텐데.’


여러 생각들이 겹치고 그 위에 또 겹쳐져서 점점 버거워진다.


‘이렇게 살다 보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생각과 함께 태도에 관해 깊은 고민을 하곤 한다. 동시에 여러 일이 진행될 땐 정신을 꽉 잡고 있지 않으면 휩쓸려 떠내려갈 수 있으니 말이다.


내가 하는 일들은 여러 가지지만, 내가 추구하고 바라는 건 두 가지다. ‘함께 하는 것’과 ‘꼰대가 되지 않는 것’


‘함께한다는 것’은 이렇다.


각자의 명확한 역할이 있으며,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와 할 수 없는 범위가 명확해지는 것. 전적으로 상대방의 범위와 역할은 인정해주며 존중하는 것. 적당한 공동체 의식을 갖고 살아가며, ‘우리’에게 속한 범위뿐만 아니라, ‘타인’ 역시도 우리가 될 수 있음을 인지하고 사회적인 가치를 창출해내는 것. 다르다고 생각되는 것들 역시 인정하고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 나와 다름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의 다양성을 존중해주는 것. 죽기 전 나의 일생을 돌이켜 봤을 때, ‘함께 한다는 태도를 갖추고 행동하려 꾸준히 노력해왔구나’라는 생각으로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


‘꼰대가 되지 않는 것’은 이렇다.


나의 생각과 신념을 강요하지 않는 것. 시대가 변하고 있음을 깨닫고 변화에 발맞출 수 있는 감각을 기르는 것.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틀릴 수도 있음을 염두에 두는 것.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서 배울 점을 찾는 것. 사람과 사람 사이에 위아래를 두지 않는 것. 귀와 마음을 언제나 열어둘 용기를 갖는 것. 좋은 것들을 먼저 권해볼 수 있는 것. 누군가 나를 기억할 때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과 함께 마음 한구석에 따뜻함을 느낄 수 있게 되는 것.


어떻게 살아야 할까에 대한 질문과 고민에 대한 답은 계속해서 변할 테고, 상황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가치와 추구하는 것들을 응원해줄 사람들과 함께 평생을 따뜻하게 살아가고 싶은 마음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놓친 마음

마음을 다해본 사람은 알고 있다. 붙잡으려 애를 써도 잡히지 않는 사람이 있는 한편, 무슨 일을 하더라도 평생 내 편이 되어줄 사람이 있다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관계에 있어서 모든 마음을 다하는 편이다. 살아가면서 떠나간 사람에 대한 아쉬움을 덜어내고자, 언제나 인간관계에 있어서 ‘어차피’라는 생각을 염두에 두면 마음이 편해진다. 내 사람에게 더 집중할 수 있고, 그래서 더 사랑할 수 있게 된다. 마음도 관계도 사랑도, 모든 걸 쏟아냈을 때 비로소 그 진가를 깨달을 수 있다.


놓친 마음들아, 안녕.



주고받음

마음이라는 건 주고받을 때 크기도 커지고 더불어 온도도 올라간다. 마음이 갔으면 상대방에 의해 다시 나에게 돌아와야 한다. 그래야 상대방에게 전해진 마음의 빈자리를 채우고, 더욱 크고 따뜻한 마음을 나눠줄 수 있기 때문이다. 받는 것에 익숙해져 그저 받지만 하는 사람은 마음을 닫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마음을 닫은 사람에게 마음을 전달하는 것만큼 힘든 게 있을까 나는 배우지 않았는데, 힘들 수밖에.


마음을 주고받는 것. 결국 상대방을 생각하과 공감하고 배려하는 일이다. 동질감과 공감, 유대하는 것들이 사람을 심리적으로 안정적이게 만든다. 의지할 사람이 있다는 것. 주고받음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것. 내 모습 그대로를 받아줄 수 있는 사람. 무언가를 원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사랑해줄 수 있는 사람. 비로소 마음에 안식처가 생긴 것이다. 나는 물론이고, 내 의견을 지지해줄 사람. 그런 사람을 내내 곁에 두고 싶다.


표현에 관하여

‘표현’은 인간이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가장 유용한 수단이자 도구이지 않을까. 표현에 여러 범주들이 존재하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가장 바람직한 표현은 ‘감정’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중 마음을 인정하는 감정들이 더욱 그렇다. 마음을 인정하는 감정이란 무엇일까. 사랑하고, 고맙고, 미안한 감정이 그런 것들이라 생각한다.


연인 간의 관계, 친구와의 관계, 부모님과의 관계 직장 동료와의 관계 등 모든 관계에서 사랑하고, 고맙고, 미안한 순간들이 찾아온다. 나는 그럴 때마다 표현을 아끼지 않으려 한다. 특히나 사랑하고 고마운 일들이 그렇다. 나와 관계를 유지하려 노력하는 그들에게 매순간 고맙다. 내 곁을 지켜주고 신경 쓰고 기억해주는 그들이 고맙다. 그래서 작고 사소한 일에도 고맙다고 말한다.


자주 사랑한다고 이야기한다. 사랑은 유행을 타지 않으니까. 아, 언제든 말해도 촌스럽지 않다.


미안한 일들을 되도록 만들고 싶지 않지만 의도치 않게 일이 생기곤 한다. 나만 미안해지는 일이 있을 때는 상대방이 서운함을 느끼기도 전에 미안함을 전하려 노력한다. 어떤 부분이 미안하고 당신이 어떤 서운함을 느꼈을지, 앞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리라는 것과 내가 품고 있는 문장들과 마음들로 미안함을 표현한다. 그럼 나의 미안함도 그의 서운함도 쉽게 풀리곤 한다.


간혹, 하고 싶은 말을 솔직히 표현한다는 의미로 포장한 채 주변 사람은 신경 쓰지 않고 모두 내뱉는 사람이 있다.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는 것과 무턱대고 내뱉는 건 엄연히 다른 개념이다. ‘나는 솔직한 성격이야’라는 자신만의 전제하에 말을 무턱대고 내뱉는 것은 포장된 칼을 무작정 휘둘러 여러 사람을 다치게 하는 행동과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한다.


다름을 이해하는 것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온전하게 깨달았을 때, 비로소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다. 완벽하게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서로 다른 사람들을 이해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해하는 것은 단순히 상대를 헤아리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해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서,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충분히 공감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사실 다른 사람을 온전하게 이해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고려해야만 배려해줄 수 있다. 가까울수록 ‘다름’을 잊는 경우가 많다. 친밀감이 깊어질수록 상대가 자신을 온전히 파악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도 알아차리기 힘들 때가 많듯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아차린다는 건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간혹 인간관계가 힘들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땐, 단순하게 생각하면 쉬워진다. 내가 다른 사람의 뜻에 맞추어 살아가지 않듯이 다른 사람들도 나의 뜻에 맞추어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그뿐이다. 우린 모두 각자의 이익과 뜻에 따라 행동하고 살아간다.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면, 살아가는 동안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워질 수 있다.


휴식

소신이 무너지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껴지겠지. 들끓던 마음이 식으면 다시 끓을 수 없을 거라고 느끼는 것처럼 말이야. 그럼 우린 무너지고 식게 되었을 때 무얼 해야 할까. 다시 불을 지피고, 신념을 굳게 다지며 높게 쌓아야 할까.


아니, 그런 것들은 이전보다 덜 뜨겁고 덜 단단할 거야. 무너지고 식었다고 느낄 때면, 잠깐 쉬어가자. 우리가 도착할 곳이 아직 멀게만 느껴지니까. 조금만 쉬어 가자. 아무 생각 없이, 옆을 바라보자. 뜨거운 것도 무너지지 않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우리에게 당장 필요한 건 쉼이니까 조금만, 아주 조금만 쉬어가자. 무언갈 하다가 정 힘들다는 생각이 들 때면 잠시 쉬어가도 된단다. 그렇단다.



사람

‘사람’에 대하여 무수히 많은 생각을 하곤 한다. 그 생각들은 대립되기도 하고 때론 어우러지기도 한다. 같은 사람이더라도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는 게 상황마다 달라지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


사람 덕분에 살다가도, 사람 덕분에 죽고 싶은 날들이 있다. 사람에게 상처 받는 날이면, 누군가 그리워지다가도 문득 사람이란 존재가 역겨워지기도 한다. 그래도 우린 사람 때문에, 사람 덕분에 살아갈 수 있다.


사람이 제일 슬픈 때는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껴질 때가 아닐까. 난 이 사람을 이만큼 생각했는데 그 사람은 날 생각도 하지 않고 있을 때, 내가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는 것보다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그 사실을 알게 됐을 때, 그런 순간이 계속될 때면, 사람도 음식처럼 상하면 냄새가 나거나 색이 변해서 미리 알아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잘못 맺은 인연에 탈이 나는 일이 없도록.


만약 누군가 당신에게 쓰레기 봉지를 선물하면 그냥 갖다 버리면 된다. 그걸 굳이 들춰서 “저 사람이 나에게 쓰레기를 줬다”라고 하며 실망하고 서운해하며 혼자 상처받을 이유가 없다. 혼자서도 힘겨운 내 삶에 쓰레기까지 안고 갈 필요는 없다.



내려놓음

힘들고 버겁다는 생각이 들 때면 들고 있던 짐을 내려놓기도 해야 한다. 필요 없다고 생각되는 것들은 과감히 버릴 줄 알고,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엔 이유를 붙여본다. 과연 진정 나에게 필요로 했던 것들이었을까. 붙여본 이유들을 훑어보면 진정성 있는 필요는 별로 없다. 그저 날 스스로 옭아매던 것들일 뿐이다.


일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고 너무 많은 것을 곁에 두려고 하면 스스로 견디기 힘들어진다. 가끔은 내려놓기도 하고, 또 떠나보내기도 하면서 무겁게 걸어가지 않았으면 싶다. 짊어져야 하는 것들이 가벼울수록 멀리 갈 수 있으니까. 떠나보내고 내려놓아도 괜찮다. 모든 걸 짊어지고 걸어가지 않아도 된다.


버리고 놓아주고 잊으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신선한 기분. 뭐든 될 것만 같다.



마음가짐

그리 오랜 세월을 살아온 것은 아니지만, 인생을 살다 보니 어찌 됐건 힘들다는 걸 알게 됐다.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도,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더라도 힘든 순간은 분명히 찾아온다.


내가 바라고 원하는 최고의 마음가짐은 ‘모든 걸 좋은 경험이었다고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로 살아가는 것이다. 찾아오는 힘든 순간에서도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분명한 방법이기도 하다. 이 마음가짐이라면 어떤 상황이 다가오더라도, 어떤 시련을 맞이하더라도 견뎌낼 수 있고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그 모든 것 역시 언젠간 경험으로 남게 될 것이니까.


책임

현실을 책임질 줄도 알아야 한다. 자신의 현실에 책임감이 생기면 삶의 욕구 또한 강해진다. 살아내려는 힘이 생기는 것이다. 책임진다는 건 굉장히 값진 일이다. 자신의 몫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자신의 어떤 부분을 세상에 기여하려 노력하고, 행동하게 된다. 책임질 줄 알게 되면, 그에 따른 힘이 생긴다.


다시 말해, 내가 가져갈 행복만큼 내 행복의 몫을 책임져야 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일의 시작은 위험하다.

그러나 무엇을 막론하고,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중에서》-


이 문장을 제 마음속에 깊이 새겼습니다. 명함과 사원증에도 적어 넣을 정도로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말입니다. 니체가 말했듯, 모든 일의 시작은 위험합니다. 위험이라는 것은 실패의 요인으로 분석되는 모든 것들이 될 수 있겠지요. 잘될 거라 굳게 믿고 시작한 일들이 시작해보니 삐걱거리거나, 실패로 수렴하게 되는 일이 한둘이 아닌 것처럼 말이에요. 지금껏 펼쳐진 그리고 앞으로 펼쳐질 세상 모든 일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위험합니다. 위험하지 않은 일이란 게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니체의 말처럼 시작하지 않는다면, 결국 아무런 일도 시작되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시작이 반이다”라고 한 말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시작하지 않는다면 후회하는 일밖에 일어나지 않겠지만, 시작한다면 성공과 실패 중 하나의 결과는 얻을 테니 무엇이든 시작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타인의 결과만 바라보며 부러워하는 일이 줄었으면 좋겠습니다. 결국 무얼 시작하기 위해선, 타인의 기준과 잣대가 아닌 자신의 모습과 과정에 집중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어떤 걸 좋아하고 무얼 잘하는지 알고 행동하면 어떨까요? 노력 없이는 결과도 없듯, 결국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으니 말이에요.


누군가 당신의 꿈을 비웃더라도 걱정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꿈같은 일’을 꿈꾸지 말라고 해도 걱정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꿈같은 일’이라 치부된다 해도, 우리가 바라는 일들과 원하는 일들 모두 결국 꿈으로부터 시작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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