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우호 씨가 마주친 세상

   
이우호
ǻ
시간여행
   
13000
2019�� 12��



책 소개

 

어쩌다 태어나 우연히 누구를 만나고
어쩌다 이런저런 일을 겪은 게 내 삶이었다.

 

“어쩌다 마주친 세상에서 나는 누구였을까?” 저자는 자신을 향한 이 물음이 책을 쓰게 된 동기라고 말한다. 그와 동시대를 살아온 세대뿐 아니라 오늘의 젊은이들에게도 던지는 질문이다. 그는 62년 세월을 돌아보면서 ‘어쩌다 태어나 우연히 누구를 만나고, 어쩌다 이런저런 일을 겪은 게 내 삶이었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저자는 어쩌다 마주친 사건과 사람들 속에서 ‘내가 누구였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오래 꺼져있던 기억의 저장소에 불을 켠다. 기뻤거나 슬펐던 순간들이 56곡의 팝송과 가요 등 울림이 큰 노래에 실리면서 또렷이 되살아난다.

 

이 책은 파란의 시대를 지나온 한 남자의 곡절 많은 여정, 34년간 방송기자로 일하면서 겪은 세상사를 씨줄로 삼았다. 그리고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란 걸 일깨워준 사람들, 노래와 영화 속 이야기를 날줄로 해서 삶의 키워드로 엮은 성찰의 기록이다.

 

■ 저자 이우호
저자 이우호는 젊은 날 , 어떤 길로 가야 할지 방황하다가 1981년, MBC 기자가 되었다. 뉴욕 특파원과 사회부장, 논설실장 등을 지낸 뒤 2015년에 퇴직했다. 34년간 방송기자로 일하면서 뉴스보다 다큐멘터리를 더 많이 만든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시사매거진 2580」과 「뮤직 다큐-하루」를 제작할 때가 그의 가장 좋았던 시절로 꼽힌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의 그늘진 얼굴과 만나면 지나온 과거를 읽으려고 한다. 이 오래된 습성은 ‘울림이 큰 노랫말’에 탐닉하게 된 바탕이다. 이름과는 반대로 ‘우호적이지 않은’ 상황에 맞서온 그는 단조로운 일상의 탈출기로 어쩌다 인생의 세상 이야기를 시작한다.

 

■ 차례
[Prologue] 어쩌다 62년, 어떻게 된 거지?

 

Life in Music 01 성장의 고통 마주하기
그해 여름, 나는 무작정 달렸다
내가 젊었을 때 모르던 것들

 

Life in Music 02 나에게 울림을 준 사람들
얼음공장 인부와 고 병장
저항의 정신을 일깨운 훈이 형
내 의식과 감성에 영향을 끼친 그들
그가 환생했으면 좋겠다
나를 닮아서 정말 미안해

 

Life in Music 03 굴레, 생존 그리고 삶의 참모습
유리벽에 갇혀있던 날
그날, 나는 왜 거기 있었나?
심야의 만주 열차, 죽음의 문턱에서
화창한 날에 쏟아진 폭우

 

Life in Music 04 어떤 인생이든 페이소스가 있다
아무에게도 후회를 묻지 말자
너의 이름을 부를 때
아내의 눈물과 오래된 상자
사람을 그리워한 비비안과 자야 누나

 

Life in Music 05 관계 그리고 상생한다는 것
사람은 상생하려고 생겨났다
나는 좋은 친구일까?
고맙고, 무서운 디지털 시대

 

Life in Music 06 전성기를 넘어 들판에 서다
참 좋은 날, 2580에서 걷던 길
뉴욕에서 본 천의 얼굴, 미국
그들의 꿈은 어찌 되었을까?
하얗게 지워버리고 싶은 날
낯선 바람이 부는 들판

 

[Epilogue] 다시, 얕은 물가에 앉아

 




어쩌다, 우호 씨가 마주친 세상


나에게 울림을 준 사람들

저항의 정신을 일깨운 훈이 형

"저기… 나 모르겠어?"


누군가 어깨를 슬쩍 치면서 조용히 말을 건넸다. 나는 당시 3년차 기자로, 스포츠뉴스를 만들고 있었다.


"아니, 형! 여기 웬일로…."


그는 대답 대신, 그의 가슴에 붙어있던 명찰을 가리켰다. 수습 기자 ○○훈


이건 또 무슨 인연인가. 고등학교 2년 선배, 같은 동아리에 다니며 친했던 그 형이 나보다 2년 아래 후배 기자로 들어오다니. 어쨌든 반가웠다. 수습을 마친 형은 더구나 내가 있던 스포츠취재부로 왔다. 상당히 삐딱한 수습 기자로 찍혔을 게 분명한 그가 정치부나 사회부로 발령 날 리는 만무했다. 형은 나랑 프로야구 담당 기자로 3년을 함께 했다.


어느 날인가는 형과 나, 내 친구 그렇게 셋이 중국집에서 탕수육을 시켰다. 근데 식탐이 많은 친구 녀석이 탕수육을 너무 빨리 축내버렸다. 미간을 약간 찌푸리던 형은


"너는 참 박학다식하구나. 엷을 박, 배울 학, 배운 게 엷은 자가 다식, 먹기는 엄청 먹는다 해서 박학다식博學多食."


박학다식博學多識을 그렇게 비틀다니. 기분 나쁠 수도 있는 내 친구와 나 그리고 형은 동시에 깔깔깔, 박장대소를 했다.


그는 그렇게 재미난 행동과 번뜩이는 재치로, 지친 내 젊은 날에 활기를 불어넣은 형이자 동료이자 친구였다. 처음 본 청소년 시절과 다시 만난 청년기, 그리고 그 후로도 그는 나한테 알게 모르게 영향을 끼쳤다. 사회 현상을 보는 눈, 문화적 감수성과 지적 호기심 자극하기, 유머의 감각까지,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으나 나는 이제, 그의 이름 끝 자를 따서 훈이 형이라 부르고 싶다. 그러면 형은 이럴지 모른다. 내가 까칠해 보여도, 알고 보면 훈훈한 남자야.


세상을 보는 시각은 비슷하지만 그걸 드러내는 방식에는 차이가 있었다. 글을 쓰고 콘텐츠를 만들 때 내가 감성적인 접근을 통해 메시지를 전했다면, 형은 감성보다는 정연한 논리로 파고들면서 신랄한 독설도 서슴지 않았다. 그러다가 나는 센티멘털에 빠지고, 형은 시니컬을 드러냈다. 훈이 형은 위선과 모순투성이 세상에 대한 격정과 분노를 거침없이 토해냈다. 그를 처음 만난 고등학생 때, 내게 강한 인상을 심어준 건 바로 그 저항적인 기질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가 걸어온 길은 순탄치 않았다. 함께 술 마시며 음악을 들을 때면, 형도 어쩌지 못하는 센티멘털과 허무를 풍기곤 했다. 내가 취중에 본 그의 눈에는 분노보다는 고독이 서려 있었다.

퇴직한 지가 벌써 6년 된 훈이 형은 요즘 페이스북에서 진짜 촌철살인으로 세상사를 짚어내고 있다. 칼날이 무뎌지지 않은 건 늙지 않았다는 징표라서 글을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 더 깊어진 통찰을 보는 건, 덤으로 얻는 기쁨이다. 이젠 타율이 1할도 안 될 거 같은 사자성어 개그에 뭔가 새로운 버전이 나왔는지 궁금하다.


그 옛날, 형과 이중창을 했던 사이먼 앤 가펑클의 <침묵의 소리 Sound of silence>가 생각난다. 유난히 이 대목이 와 닿는 밤이다.


불안한 꿈속에서 나는 혼자 걸었어.

In restless dreams I walked alone.

자갈이 깔린 좁은 길을.

Narrow streets of cobble stone.

나를 닮아서 정말 미안해

어느 집 부부나 그러지 않을까. 아이들한테서 좀 별난 성격이나 습성이 보일 때면, 누굴 닮아 저러지? 하는 것. 우리 집도 마찬가지다. 여리고 수줍음을 잘 타는 아이들은 해야 할 말을 밖에서 다 못하고 집에 와서야 털어놓는다. 그럴 때 아내는 나를 쓱 쳐다본다. 무슨 뜻인지 안다. 그래도 난 한방이 있어. 그렇게 여리지 않다고. 나는 속으로만 그러지,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스틸 파이팅 잇 Still fighting it>이란 노래가 있다. 가수 벤 폴즈가 자기 아들을 보면서 만들었다. 힘겨운 세상, 계속 싸워나가야 해. 전체 맥락으로 보면 그렇게 해석할 수 있다. 밴드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이 노랠 듣다가 나와 아내는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음악 프로를 보다가 눈물이 난 건 처음이다. 노래에 나온 아들이 우리에겐 딸로 들렸다.


아들아, 해 줄 말이 있어.

세월이 흘러도, 세상은 고난의 연속일 거야.

그래도 우린 계속 싸워나갈 수밖에 없단다.


그리고, 눈물샘을 자극하는 대목이 나온다.


너는 참, 나를 많이도 닮았구나.

Youre so much like me.

그래서. 미안해.

...Im sorry.


작은딸은 어릴 때 엄마를 닮아 명랑했다. 아빠를 닮아 노래도 잘 불렀다. 여섯 살 때 즉흥적으로 노래를 지어서 흥얼거리곤 했다. 그런데 초등학교에 가자마자 신경질적인 담임을 만나면서 선생님에 대한 환상이 금방 깨졌다. 그 교사한테 억울한 오해를 받아 심한 야단을 맞은 뒤 아이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성정이 여려서 그런지 충격이 컸나 보다. 그때 입은 상처는 오랫동안 따라다녔고, 선생님에 대한 두려움과 불신이 생긴 거 같다.


특파원이던 아빠를 따라 미국에 갔을 때는 얼굴이 좀 밝아졌다. 하지만 3년 만에 돌아온 학교에서 드센 애들한테 괴롭힘을 당했다. 그 애들은 미국 살다 와서 그렇게 잘났냐는 비아냥거림에 언어폭력도 가했다. 학교에 가는 아침마다 아이의 어둡던 표정이 기억난다. 중학생 때라면 친구와 한창 수다를 떨면서 좋은 추억을 만들 나이다. 함께할 친구가 없던 작은 딸에게는 그때가 외롭고 우울한 시절로 남아있다.


활짝 웃던 아이들의 어릴 적 사진을 같이 보다가, 그냥 물어봤다.


"너희들, 이때로 돌아가고 싶니?"


큰 애가 정색을 했다.


"아뇨. 절대로 그러고 싶지 않아요!"


무슨 뜻인지 바로 알았다. 작은 애도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했다. 그 지긋지긋하고 고통스러운 20년을 또 보내야 한다고요? 그런 표정이었다. 입시와 취업, 관계 맺기의 어려움, 정체성의 상실, 행복 찾기에 대한 자신 없음. 그런 생각들이 한꺼번에 밀려온 듯했다. 넘고 넘어야 했던 험한 고개. 나를 닮은 딸들에겐 더 가파른 길이었을 거다. 그런데도 나는 아이들의 손을 꼭 잡아주고 있었던가.


다시 <스틸 파이팅 잇 Still fighting it> 노래로 돌아가 보자. 아빠는 아들에게 또 말한다.


20년이 지나 너와 맥주를 한잔하게 되면 말하겠지.

궂은 날도 맑은 날도 있었지만, 지나간 세월은 고통이었다고.

그래도 우린 계속 싸워나가야 해.


그리고 여운이 남는 대목이 나온다.


그러면 너는 어느 날,

내게서 멀리 날아가 있게 될 거야.

And one day,

youll fly away from me.



어떤 인생이든 페이소스가 있다

아무에게도 후회를 묻지 말자

후회.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다. 정체 모를 불안과 함께 내 새벽잠을 깨우는 공범이다. 후회는 부질없다거나 소용없다는 후렴이 꼭 따라붙는다. 그 부질없는 후회가 대체 뭐냐고, 내게 묻지 않았으면 좋겠다. 후회할만한 일이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은데 정서적 호소력을 지닌 게 거의 없다. 타인의 공감을 살만한 페이소스가 별로 없는 거다.


경이로운 거장,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2018년 작 「라스트 미션」은 그가 무려 여든여덟 살에 만들고 주연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주인공 얼 스톤은 꽃 키우는 화원사업에 빠져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다가 가족과 등지게 된 무책임한 가장이다. 아내 생일은 물론 딸의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꽃 가꾸는 사업은 망해버리고, 스톤은 아흔을 바라보는 지친 늙은이가 되어있었다. 뒤늦게 가족에 대한 후회가 밀려왔다. 돈이라도 벌어서 보상했으면 하던 때, 그는 무언가를 운반해주기만 하면 큰돈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는다. 마약밀매 조직의 늪에 빠졌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된다. 수사망이 좁혀져 오던 어느 날, 아내가 위독하다는 전화를 받는다.


그는 그제야 말기 암으로 며칠 남지 않은 아내 곁으로 돌아간다. 손을 잡은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여보, 사랑해."


60년 만에 하게 된, 사랑한다는 말은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고해가 되었다. 장례식을 마치고 그는 딸에게 중얼거리듯 말한다.


"다른 건 돈으로 다 살 수 있던데 시간은 살 수 없었어."


아혼 살의 그가 말로써 드러낸 유일한 후회다. 후회란 게 그런가 보다. 프랭크 시나트라의 <마이 웨이 My way>를 다시 들어본다.


후회, 조금은 있지.

그러나 돌이켜보면 말할 건 별로 없어.

이룬 것만큼 잃어버린 좌절도 겪었지.

이제 눈물을 다 거두고 나니,

그래도 모든 게 재미있는 일이었어.


영화 「라 비 앙 로즈」의 피날레에서 에디트 피아프도 그랬다. <아니, 난 절대 후회하지 않아 Non, je ne regrette rien.>를 부른다. 파란만장이란 말로는 부족한 그의 삶을 마무리하는 노래다.


슬픔도 기쁨도 불 속에 던져 버리고,

아팠던 지난 사랑도 가슴에 묻어야지.

아니, 난 절대 후회하지 않아.

내게 후회 같은 건 없어.


사람들은 저마다 깊은 후회를 품고 있다. 하지만 다들 그렇게 가슴에 묻은 채 살아간다. 그리고 누구나 소망할 것이다. 앞으로는 그저, 후회될 일이 조금이라도 덜 생겼으면 좋겠다고. 나도 그렇다. 아무에게도 후회를 묻지 말자. 내일 새벽 잠결에는 그 부질없는 후회가 제발 나를 찾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람을 그리워한 비비안과 자야 누나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는 시카고의 한 동네 경매장에서 시작된다. 역사책을 쓰던 존 말루프라는 청년이 옛날 사진을 찾고 있다. 그는 필름 통이 담긴 상자 몇 개를 우리 돈 40만 원에 낙찰받았다. 돈이 많이 들지 않았으니 별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근데 2백 장 정도를 스캔해서 블로그에 띄웠더니 난리가 났다.


이런 피드백에 고무된 존은 더 많은 사진을 현상해 뉴욕의 유명 사진작가와 평론가에게 보냈다. 이 사진 도대체 누가 찍은 건가, 입이 떡 벌어질 만큼 놀랍다.는 반응이 왔다.


사진엔 여러 군상의 삶이 들어있었는데 대체로 어두운 느낌이다. 거리의 부랑자, 저택의 하인들, 백인 소년의 구두를 닦는 흑인 소년, 나이가 많은 피에로.


다큐 제작진은 사진 촬영자의 정체를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필름 외에, 한 트럭 분의 유품이 있었다. 옷과 신발, 쿠폰과 영수증, 비비안 마이어라는 그의 이름이 영수증에서 나왔다. 주소와 전화번호도 있었다. 비비안이 유모로 살던 곳이다.


수소문해서 만난 사람들은 비슷한 말을 했다. 아이들에겐 다정했지만, 비밀이 많은 사람으로 기억했다. 방문을 늘 걸어 잠글 정도로 폐쇄적이고 자의식이 강했다는 거다.


1926년 뉴욕 출생. 독일과 프랑스계 이민자의 딸. 스무 살 이전에, 부모가 잇따라 사망. 형제자매가 없고 결혼도 하지 않았다. 지하 봉제 공장에서 일하다가 바깥에서 숨 쉬고 싶어 유모 일을 했다는 증언이 있다. 그는 신문을 보면서 유달리 아동학대나 성폭력 사건에 적개심을 드러냈다. 어릴 때 무슨 상처를 입지 않았나, 짐작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이가 들어 비비안은 심한 강박증에 시달린다. 여기저기 아픈 곳이 많아졌을 때, 그는 오랜 유모 생활을 스스로 접고 떠난다. 언제 녹음한 건지 알 수 없지만, 자신의 육성 테이프가 남아 있다. 그는 왜 누구도 들어주지 않을 이런 말을 남겼을까?


뭐든지 영원한 건 없어요. 차를 탔을 때 그런 걸 느껴요.

차에 앉아 있다가 누가 타면 자리를 만들어줘야죠.

좌석 끝으로 가줘야, 다른 사람들이 와서 앉을 수 있잖아요.


다큐멘터리도 끝나가고 있었다. 크레딧 올라갈 때 엔딩 송을 깔았다면 여운이 더 있지 않을까, 하는 노래가 떠올랐다. 롤링 스톤즈가 부른 <눈물이 멈출 때까지 As tears go by>. 애잔한 바이올린 소리가 인상적이다.


나는 아이들의 웃는 얼굴을 보고 있어.

하지만 나를 위해 웃는 건 아니야.

아이들 노래를 듣고 싶지만 들리는 건,

바닥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뿐이지.

나는 앉아서 아이들이 노는 걸 보고 있어.

눈물이 멈출 때까지.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하는 무수한 삶들이 주변에 있다. 투명인간처럼 지내며 자신만의 섬에서 외롭게 살아가는 사람들. 드라마 「나의 아저씨」가 생각났다.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 이지안은 이어폰을 늘 귀에 꽂고 있었다. 사무실의 냉대를 차단하기 위해서다. 지안의 혈육은 병든 할머니뿐이다. 그에겐 할머니를 무차별 폭행하던 사채업자를 엉겁결에 죽게 했던 과거가 있다. 정당방위로 무죄가 되었지만, 그 전력이 계속 따라다녔다. 이 드라마 주제곡 <어른>은 지안의 짙은 어둠을 담고 있다.


이 넓은 세상에 혼자인 것처럼

아무도 내 맘을 보려 하지 않고,

이 오랜 슬픔이 그치긴 할까.

언젠가 한 번쯤 따스한 햇살이 내릴까.


비비안 마이어와 이지안은 고립된 섬에서 사람을 너무나 그리워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살면서 ‘우리’라는 말을 한 번도 못 해본 건 아닐까. 나 어릴 때 자야 누나도 그랬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전성기를 넘어 들판에 서다

그들의 꿈은 어찌 되었을까?

1년간의 사회부장을 마친 나는 다큐멘터리 만드는 길로 다시 돌아갔다. 이제부터는 이런 다큐를 만들겠다는 다짐이 있었다.


「2580」과 특파원, 사회부장을 거치면서 줄곧 품었던 생각들.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살림살이가 왜 나아지지 않는지, 양극화는 왜 갈수록 심해지는지, 하는 물음이 그 바탕이었다.


먼저,「꿈」이라는 다큐를 만들기 위해 내가 찾아간 곳은 강원도 정선의 산골이다. 고랭지 채소를 기르는 조그만 농가에서 자매를 만났다. 중학생 언니는 선생님이 되려는 꿈을 말했고, 눈빛이 반짝이던 초등학생 동생은 아이돌 가수가 되는 게 꿈이었다. 등교에 나선 아이들이 재잘거리며 달려가고 있었다. 그 굽이진 산길이 험해보였다.


2005년 10월에 방송된 「뮤직 다큐멘터리-하루」는 내가 갖고 있던 나름의 모든 걸 쏟아 넣은 작품이다.


「하루」는 마트에 일하러 간 엄마를 마중 나온 여중생 딸로 시작된다. 그 애가 우산 들고 서 있는 비 오는 거리에, 킹스 싱어즈의 <음악이 사랑의 양식이 된다면 If music be the food of love>이 경건하게 흐르고 푸시킨의 <삶>이라는 시가 나온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힘겨운 날도 참고 견디면

즐거운 날이 오리니.

마트가 문을 열기 전, 계산원들이 인사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그 중엔 마흔다섯 살 주부, 앞에 나온 여중생의 엄마도 있다. 종일 계산대에 서서 미끈거리는 숫자와 씨름하는 그의 바람은 소박하다.


"비상금 만들어서 가족 여행을 갔으면 좋겠어요. 남편도 모르게 어느 날 짠, 하고 돈을 내놓고 싶어요."


날마다 도로에서 곡예를 해야 하는 퀵서비스 청년, 무거운 탈을 쓰고 돌아다니는 자동차 세일즈맨, 고객들의 불만을 견뎌내고 있는 콜 센터 사람들. 그들의 힘겨운 일상에, 프랑스 영화 「아멜리에」의 OST가 깔린다. 경쾌한 왈츠곡인데도 왠지 모를 비장함이 묻어있다. 새벽녘 동대문시장에서 짐 지키던 아주머니가 동네에서 전단을 돌리고 있다. 하루에 세 가지 일을 하는데, 아픈 데가 많아서 걱정이라고 했다.


어느새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고단했던 하루를 보낸 이들은 오늘 얼마나 벌었을까. 나는 이런 자막을 서정적인 음악과 함께 올렸다.


잡화상 할아버지는 오늘 2만 원어치도 팔지 못했다.

하루에 세 가지 일을 하는 아주머니는 오늘, 5만 원을 벌었다.

서울의 어느 68평형 아파트는 1년간 6억 원이 올랐다.

하루에 164만 원씩 오른 셈이다.


빗속의 어린 딸이 마트에서 돌아온 엄마를 만나면서 「하루」는 끝나간다.


* * *


본 도서 정보는 우수 도서 홍보를 위해 저작권자로부터 정식인가를 얻어 도서의 내용 일부를 발췌 요약한 것으로, 저작권법에 의하여 저작권자의 정식인가 없이 무단전재, 무단복제 및 전송을 할 수 없으며, 원본 도서의 모든 출판권과 전송권은 저작권자에게 있음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