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세에 은퇴하다

   
김선우
ǻ
21세기북스
   
15000
2019�� 10��



■ 책 소개
여기, 태어나면서부터 모범생이었던 한 남자가 있다. 대한민국의 학교 교육을 착실하게 받았고 공부도 남들만큼은 하는 편이었다. 대학 졸업 후에는 누군가는 선망하는 직업인 기자가 되었다. 같은 직업을 가진 여자와 만나 결혼도 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만큼 예쁜 두 딸도 낳았다. 꾸역꾸역 빚을 다 갚아 서울에 진짜 내 집도 마련했다. 겉으로는 남부러울 것이 없었다. 그야말로 대한민국 남자의 전형적인 모범생 오브 모범생 인생. 그런데 이 남자, 40세에 은퇴하기로 결심한다. 그의 머릿속, 그리고 마음속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40세에 은퇴하다』는 ‘40세’, ‘은퇴’라는 굉장히 현실적인 단어를 빌려 지금의 삶이 어떤지 한번 뒤를 돌아보고 숨 고르기를 하자고 이야기하는 책이다. 제목에 쓰인 40세와 은퇴는 충분히 다른 단어로 치환될 수 있다. 당신이 몇 살이든 무엇을 하든 엑셀 대신 브레이크를 밟는 시간은 그 자체만으로도 유의미하다. 이 책과 함께 원래 하던 일을 그만두는 용기, 새롭게 할 일을 찾아가는 도전, 삶의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자신만의 길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 저자 김선우
‘남들’ 하는 건 어떻게든 흉내라도 내고, ‘남들’ 안 하는 건 일말의 의문도 없이 절대로 안 하는 무난한 삶을 살았다. ‘남들’처럼 살면 그게 좋은 인생일 거라는 막연하지만 강력한 믿음 때문에 학업 입시 스트레스, 취업 난관, 직장 생활의 부침이나 신혼의 막장 싸움조차 ‘남들’도 다 하겠거니 은밀히 안심하면서 견뎠다. 그러다가 40세가 되던 해에 갑자기 아무 계획도 없이 잘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웠다. 나는 ‘남들’과 다르다는 막연한 자신감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 자신감이 와장창 깨지는 데 겨우 몇 달… 40세 백수 가장으로 사는 법도 ‘남들’ 보고 따라 하면 ‘남들’보다 잘 살 수 있을 거라 믿었나 보다. 낯 뜨거운 계획을 수정하는 데 수년… 이젠 진짜 평범하게 ‘남들’처럼 웃고, 사랑하고, 하루하루를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노력하며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에서 인문 지리학을 전공했고 미국 시애틀 소재 워싱턴대에서 경영학 석사를 받았다. 12년 동안 「동아일보」에서 기자로 일했다. 지금은 미국에 살면서 네이버 비즈니스판 인터비즈에 ‘미국 농부 김선우의 세상엿보기’를 연재하고, IT 전문 매체 아웃스탠딩에 미국 IT 기업 관련 글을 쓰며,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코리아를 번역한다. 기자로 일할 때는 내 기사를 읽을 때마다 창피했는데, 지금은 내가 쓴 글을 읽으며 감동하곤 한다. 일주일에 두어 번 동네 수영장에서 수상 안전 요원으로 일한다. 직원 혜택으로 무료 수영을 하면서 라커 룸 청소를 잘한다는 고객 칭찬을 지구를 지키는 일을 하는 것처럼 자랑스러워한다. 저서로는 『싸우지 않는 부부가 위험하다』(공저)가 있다.

 

■ 차례
프롤로그 중지 버튼을 누르다

 

1장 내려놓기_ 아무도 아닌 존재여도 괜찮아
ㆍ다른 줄을 잡기 위해서는 - 지금 잡고 있는 줄을 놓아야 한다
ㆍ모든 걸 다 가질 수는 없다 - 알람과 스누즈 버튼
ㆍ한계는 분명히 존재한다 - 주제 파악하기
ㆍ밥벌이의 어려움 - 일 잘하는 사람은 비인간적인가
ㆍ기본 전제가 틀렸을 수도 있다 - 인정 욕구 버리기

 

2장 뻥치지 않기_ 자신에게 솔직하자
ㆍ‘꽝’만 나오는 복권 - 과연 계속 살 것인가
ㆍ하고 싶은 게 없어도 괜찮아 - 하고 싶은 게 없는 건 욕심이 많아서다
ㆍ일단 일을 벌이자 - 하고 후회하는 게 안 하고 후회하는 것보다 낫다
ㆍ시도하고, 배우고, 개선하기 - 그리고 계속 반복하기
ㆍ근면 성실만이 절대 선은 아니다 - 일을 바라보는 여러 가지 시선

 

3장 소비 줄이기_ 자발적 빈곤 속의 풍요
ㆍ스마트폰도 없고 TV도 없고 그리고… - 8無 집안
ㆍ생일도 없고 크리스마스도 없다 - 6가지 소비 원칙
ㆍ머리는 집에서 깎고 비누는 만들어 쓰고 - 물건을 소비하는 방식

 

4장 끊기_ 없으면 죽을 것 같은 것도 끊었더니 죽지는 않더라
ㆍ인터넷 - 세상에 태어나서 제일 잘한 일
ㆍ커피 - 작은 습관이 인생을 바꾼다
ㆍ고기와 영양제, 그리고 술 - You are what you eat
ㆍ졸음과 스트레스 - 끊을 수 있으면 돈보다 좋은 것

 

5장 금융, 현명하게 이용하기_ 빚 권하는 사회의 이면
ㆍ중산층의 붕괴 - 나의 경제적 롤 모델은 누구?
ㆍ절대 하면 안 되는 일 - 펀드 투자로 빚 갚기
ㆍ풋내기 금융 담당 기자의 깨달음 - 이해가 안 되면 투자하지 마라
ㆍ40대부터 일하지 않으려면 필요한 것 - 돈보다는 의미

 

6장 내버려두고 있는 그대로 즐기기_ 스스로 강해지는 법
ㆍ여유와 여백이 있는 삶 - 있는 그대로 내버려두기
ㆍ가정의 평화 - 쉬운 일은 하나도 없다
ㆍ눈치 보는 아이로 키울 것인가 - 원칙 세우고 지키기
ㆍ지루한 일상의 공유 - 아이를 있는 그대로 즐기기
ㆍ아이를 온전히 책임진다는 것 - 엄마 없이 아빠 혼자 아이 키우기

 

7장 기본으로 돌아가기_ 주객이 전도된 세상
ㆍ직접 하기 ① - 아웃소싱의 일상화가 가져온 폐해
ㆍ직접 하기 ② - 두 번째의 법칙
ㆍ현재에 존재하기 - 내 인생은 나의 것
ㆍ끊임없이 묻기 - “왜”라는 질문을 하자
ㆍ지속 가능하게 살기 -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지 말자

 

8장 샴페인 터트리기_ 즐겁게, 다르게, 충만하게
ㆍ남들과 다르게, 과거와 다르게 살기 - 남을 보지 말고 내 안을 보라
ㆍ심심하고 지루한 하루 일상이지만 - 매일 샴페인을 터트리는 충만함이 있다
ㆍ할 수 있는 자유보다는 - 하지 않을 자유
ㆍ공짜로 운동도 하고 삶의 진리도 깨닫고 - 수상 안전 요원이 되다

 

 에필로그 나를 찾아온 여정

 




40세에 은퇴하다


내려놓기 _ 아무도 아닌 존재여도 괜찮아

다른 줄을 잡기 위해서는 - 지금 잡고 있는 줄을 놓아야 한다

13년차 신문 기자인 나는 주눅이 들어 있었다. 갈수록 줄어드는 인쇄 매체의 영향력과 광고 때문에 기업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분위기는 자존심 하나로 사는 기자들의 어깨를 처지게 만들었다. 비판은 전투력이라도 높여주지만 무관심을 슬프다. 없는 반응은 기사를 못 써서 그런 거라고 자책하며 수익 창출을 위한 새롭고 다양한 콘텐츠를 만드는 일에 재미를 붙여갔다.


사실 내가 지쳤던 가장 큰 원인은 신문 산업의 위기가 아니라 5년차 기러기 남편이자 아빠였기 때문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그냥 기러기도 아니고 아이 하나 딸린 기러기. 첫째는 공부하는 엄마를 따라 미국에 살면서 거의 미국 사람이 다 되어가고 있었고, 둘째는 한국에서 양가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았지만 엄마의 존재를 엄마라는 단어로만 알면서 자라고 있었다.


사표를 내겠다고 하자 미국에 있는 아내가 대뜸 미쳤냐고 했다. “당신은 회사 생활이 필요한 사람이야. 조직에 속해서 안정감을 가져야 하는 사람이 왜 사표를 내? 내가 박사 그만두고 들어갈게.”하지만 기자보다는 교수가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어렴풋이 했던 것 같다. 끝까지 내가 가겠다고 우겼다. 내가 지금 잡고 있는 줄, 가보지 않은 길, 기회비용과 리스크, 경력 관리… 수많은 생각들이 맴돌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사표를 쓸 때는 지금 잡고 있는 줄을 놓아야 한다는 한 가지 생각이라도 했는데, 이제는 아무 생각이 없어졌다. 그냥 네 식구가 함께 사는 행복한 그림을 그렸다. 그렇게 미국행 비행기 표부터 결제했다.

그리고 둘째와 둘이서 비행기에 올랐다. 그때만 해도 나는 아내가 박사 학위를 받을 때까지 1년 정도 집에서 아이들과 놀면서 쉴 계획이었다. 그 뒤에는 또 어찌 되겠지 했다. 그만큼 난 지쳐 있었다. 하지만 그게 얼마나 한심하고 위험한 생각이었는지 깨닫는 데는 몇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다만 사표를 쓴 지 6년이 지난 지금 한 가지 확실히 배웠다. 지금 잡고 있는 줄을 놓아야만 다른 줄을 잡을 수 있다는 건 진리라는 사실. 새로 잡은 줄이 어떤 줄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지금 잡고 있는 줄을 놓아야만 확인이 가능하다. 익숙함을 놓아버린다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새로움이 주는 활력은 충분히 느껴볼 가치가 있다.


하지만 40세까지 일한 걸로 평생을 묻어간다는 건 잘 모르겠다. 우리 사회가 너무도 변화무쌍해졌기 때문이다. 아직 소수의 ‘축복받은’ 직종에서는 40세까지 일한 걸로 묻어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제는 그러기엔 경쟁이 너무 치열하고 삶이 굉장히 길어졌다. 태어나서 한 가지 일만 하는 시대는 이제 지나갔다.


한계는 분명히 존재한다 - 주제 파악하기

사표를 내고 미국으로 건너온 지 1년 정도 되었을 때였다. 아직은 어딘가에 취직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헛된 꿈을 꾸고 있었다. 하지만 명확하게 원하는 것이 없는 수동적인 구직 활동은 좋은 결과를 맺지 못했다. 뭐든지 ‘아님 말고’의 자세로 했다. 뭔가가 되었으면 그게 더 이상한 상황이었다.


그때 농장에서 인턴을 구한다는 공고를 접했다. 농장에서, 그것도 인턴으로 일한다는 건 농사 경험이 전무한 나에겐 너무 어렵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잠깐 발목을 잡았지만, 귀촌도 하나의 옵션으로 생각하고 있었기에 일단 지원을 했다. 첫 번째로 지원한 곳에서 거절 답장이 왔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었기에 아쉬웠다. 젊은 사람을 찾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 이젠 인턴도 안 되는 구나. 40대 동양인 아저씨는 농장에서 버거운 존재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두 번째로 지원한 농장은 집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배를 타야 들어갈 수 있는 섬에 위치했다. 일단 오라고 연락이 왔다. 인상 좋은 주인 할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농장을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묻더니 일단 며칠 나오라고 했다. 경험은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숙소까지 제공되었지만 출퇴근 시간이 걸리더라도 집에서 다니고 싶었다. 기러기 생활이 싫어서 미국까지 왔는데 또 가족과 떨어질 수는 없었다.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준비하고 나와 아내가 배 타는 곳에 내려주면 25분 정도 배를 타고 간 뒤에 다시 40분 정도 버스를 타고 가야 했다. 일은 넘쳐났다. 쓰지 않던 근육을 사용하는데다 허리를 굽히고 일을 해야 해서 오후에 일이 끝나면 녹초가 되었다. 요즘에는 일부러 서서도 일한다는데 매우 건강해질 것 같았다.


12월에 조금 일하다가 농한기인 1월과 2월을 건너뛰고 3월부터 정식으로 일을 시작했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50대 아주머니도 인턴으로 같이 일했다. 뭐라도 일을 시작해서 마음은 편했지만 몸은 정말 힘들었다. 한 달에 600달러는 받는 인턴. 수입보다는 배움에 방점이 있는 그런 인턴. 산 넘고 물 건너는 출근에 600달러의 절반 이상이 쓰였다.


이런저런 농사일을 배우면서 몸은 힘들지만 마음만은 즐겁게 산 넘고 물 건너 출근을 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오래가지 못했다. 한 달 정도 다녔을 때였다. 손목이 움직이기가 힘들 정도로 아팠다. 오른쪽 손목이 너무 화끈거려 밤에 잠을 못 잘 정도였다. 검색해보니 손목 터널 증후군과 증상이 똑같았다. “농부는 손목 터널 증후군에 안 걸려. 좀 쉬다가 다시 일할 수 있으면 연락해요.” 일이 너무 힘들어 꾀병을 부린다고 의심하는 것 같았다. 그걸로 끝이었다. 슬펐다. 고작 한 달이라니.


농장 일을 하면서 깨달은 점도 있다. 우선 출신 성분의 영향을 무시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창피하지만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흙을 만지고 동물의 똥을 치우는 일은 굉장히 낯설었다. 닭장에 사료를 주고 들어갔는데 닭 60여 마리가 모두 나만 바라보는 모습에 약간 소름이 끼친 적도 있다. 귀여운 돼지들도 언젠가는 도살장에 끌려가니 정을 붙이지 말라는 이야기도 충격이었다. 일을 하면서 조금씩 적응해 나갔지만 첫 경험의 충격은 컸다.


몸이 견디지 못해 인턴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슬펐다. 그나마 나에게 육체 노동이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한 점은 작은 소득이었다. 또 농사는 작게 자급자족 수준으로 지으면 만족할 수는 있을지 모르겠지만 너무 크게 벌이면 엄청나게 힘들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어쨌든 농사지을 때 얼마나 힘 조절을 잘 못했는지 그 뒤로도 1년 동안 손목이 아파 고생을 했다.



뻥치지 않기 _ 자신에게 솔직하자

일단 일을 벌이자 - 하고 후회하는 게 안 하고 후회하는 것보다 낫다

기자 생활 중에 대기업으로 옮길 기회가 있었다. 평직원이었지만 경력도 많이 인정받을 수 있었고 대우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새로운 일에 대한 두려움이 컸는지 결국은 신문사에 머물렀다. 가지는 않았지만 그때 갔더라면 어땠을지 궁금하긴 하다. 그냥 저지르고 볼걸 하는 아쉬움이 남아 있다. 뭔가 일을 벌일 때 고심을 많이 하는 편이다. 약간은 우유부단한 스타일에 가깝다.


기사 중에는 꼭 써야 하는 기사가 있다. 정부의 주요 정책 발표, 사회 고위층의 비리, 경천동지할 사건과 관련된 기사는 쓰지 않으면 안 된다. 언론의 존재 이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꼭 쓰지 않아도 되는 기사도 있다. 기획 기사나 칼럼 등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신문을 재미있게 만드는 건 이런 기사들이다. 이 중에서도 특히 누군가를 비판하는 칼럼이나 굳이 기사까지 쓰기엔 하찮아 보이는 이슈에 대한 기사를 쓸 때 가장 고민을 많이 한다. 꼭 써야 할까? 발제를 할까 말까? 고민하고 있으면 선배가 말한다. “야, 기사는 쓰고 후회하는 게 안 쓰고 후회하는 것보다 낫다니까. 일단 써봐.”


기사화가 되었는데 별로 반응이 좋지 않으면 누군가“뭐 이런 걸 기사로 다 써? 지면 아깝게”라고 말하면 끝이다. 하지만 기사를 쓰지 않는다면 아무도 모르고 지나치게 된다. 뒤늦게 후회를 해봤자 소용이 없다.


일을 벌이는 것도 똑같다. 일을 아예 벌이지 않고 후회하면 아무런 임팩트가 없다. 하지만 일을 벌이고 일단 결과가 나오고, 그 과정에서 배우는 게 생긴다. 일이 잘될 수도 있고 잘 안될 수도 있지만 그건 내가 어쩔 수 없는 영역이다.


모르몬교도들은 젊을 때 일정 기간 해외에서 포교 활동을 벌인다. 길거리에서 몇 번 만나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항상 웃는 얼굴로 말을 건다. 모르몬교도들은 젊어서부터 실패에 대처하는 법을 배우는 셈이다. 그래서 모르몬교도들이 일찍 어른스러워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일을 자꾸 벌이고 실패를 해야만 배우는 게 있고, 배우는 게 있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래서 은퇴하고 시골로 이사 가는 결정을 비교적 쉽게 할 수 있었다. 기사를 쓰고 후회하는 게 안 쓰고 후회하는 것보다 낫듯이 한번 삶의 방식을 바꾸는 도전을 해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후회를 하고 안 하고는 나중 문제였다.



끊기 _ 없으면 죽을 것 같은 것도 끊었더니 죽지는 않더라

인터넷 - 세상에 태어나서 제일 잘한 일

줄이면 되지 왜 굳이 끊어야 할까? 인터넷과 커피, 고기는 나처럼 의지력이 약한 사람에게는 줄이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강제로 박탈해서 끊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담배를 끊는 유일한 방법은 암에 걸리는 것이라는 슬픈 이야기도 있지 않은가. 그런데 대충 살면 되지 왜 굳이 끊어야 했을까. 뭔가에 의지하고 사는 것이 싫었다. 세상에는 없으면 안 되는 것들이 너무 많아졌다. 이번에는 그런 것들을 끊기 위한 몸부림을 소개한다.


우선 인터넷이다. 인터넷은 요즘 세상에서 필수 품목을 넘어 없으면 절대로 안 되는 문명의 이기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비싼 돈을 주고 인터넷을 썼다. 넓은 땅덩어리의 미국 시골에서는 인터넷 비용이 비쌀 수밖에 없다. 느려터진 인터넷을 쓰느라 한 달에 80달러나(거의 10만원 돈!) 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겨울 농한기를 지내면서 하루에도 몇 시간이나 느려터진 인터넷에 매달려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나마도 절반의 시간은 연결이 안 되어 분노를 쌓았다. 그래서 어차피 느려터진 인터넷, 한번 끊어보기로 했다.


TV와 스마트폰마저 없으니 인터넷을 끊은 뒤로는 잘 듣지도 않는 라디오를 제외하면 외부와 연결된 어떠한 매체도 집 안에 없는 셈이 되었다. 가장 큰 변화는 인터넷이 되는 동네 도서관으로의 출근이다. 가자마자 1시간 정도 미친 듯이 인터넷을 돌아다닌다. 이메일 확인을 시작으로 한국 뉴스를 읽고, 스포츠 하이라이트를 찾아보고, 페이스북을 30분 정도 들여다본 후 이런저런 사이트로 옮겨 다녔다. 그렇게 1시간을 보내고 나면 지쳤다. 그제야 꼭 해야 할 일을 하기 시작했다.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인 셈이다. 처음에는 미친 듯이 인터넷을 하는 시간이 1시간 반 정도였는데, 2주일 정도 지나자 1시간으로 줄었다. 앞으로 이 시간이 더 줄면 줄었지 늘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인터넷을 하던 ‘죽은’ 시간이 아직은 어떤 생산적인 일을 하는 시간으로 완전히 변환된 것 같지는 않다. 지금은 중독을 없애는 재활 단계라고나 할까. 하지만 책을 조금 더 읽게 되었고, 잠을 조금 더 많이 자게 되었다. 페이스북을 들여다보면서 아이들에게 건성으로 대답하는 행동은 하지 않게 되었다.


대부분의 지인들은 한국에서 바쁘게 살다가 이곳에 와서 내가 사는 모습을 목격하고는 “너무 심심하겠다”, “계속 이러고 살면 너무 게을러지겠다”, “발전이 없겠다” 등과 같은 말을 하는데, 사실 아무 생각없이 멍을 때리는 건 상당히 발전적인 삶의 윤활유 같은 것이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스스로를 제3자의 입장에서 관찰해봤는데, 주로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단편적인 생각을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틈만 나면 인터넷을 하느라 마음만 바빴던 예전보다는 조금 더 발전된 생각들이 나오고 있는 것 같아 즐겁기도 하다.



내버려두고 있는 그대로 즐기기 _ 스스로 강해지는 법

여유와 여백이 있는 삶 - 있는 그대로 내버려두기

세상에는 자극이 너무 많다. 모든 것이 과잉이다. 깨어 있는 동안 단 1분 1초도 숨 돌릴 여유를 찾기가 힘들다. 깨는 순간부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자는 순간까지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이런 세상에서 진정한 ‘깨어 있기’ 는 너무도 힘든 일이다. 그래서 시골에 이사를 온 이후로 적어도 아이들과 농작물만큼은 되도록 그대로 내버려두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내버려두면 스스로 강해지기 때문이다.


농사를 짓다 보면 온갖 어려움이 닥친다. 모든 상황이 잘 맞아떨어져야 씨가 싹을 틔우고 자라기 시작한다. 땅의 상태에 따라 작물에 영양제도 줘야 한다. 이 영양제가 바로 비료다. 그동안은 화학 비료를 주로 써왔지만 요즘에는 동물의 배설물이나 음식물 찌꺼기, 나뭇잎, 깎은 풀 등 썩으면서 자연적으로 땅을 건강하게 만드는 유기 비료를 선호한다. 이런 유기 비료를 줘서 키운 것이 유기농 농산물이다. 유기농법은 독한 농약을 쓰지 않는다. 하지만 비료와 농약을 전혀 주지 않으면서 마트에서 파는 것처럼 색깔도 좋고 모양도 좋은 과일이나 채소를 생산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시작된 것이 바로 자연 농법이다.


자연 농법은 아주 엄격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자연에 모든 것을 맡기는 방식부터 식초처럼 자연에 가까운 농약을 주는 방식까지 다양한 버전이 있지만 대체로 밭을 갈지 않고 비료와 농약을 전혀 주지 않는 농법을 의미한다. 유기 비료 또한 주지 않기 때문에 유기농도 아니다.


산속에서 혼자 크는 나무를 생각하면 간단하다. 산속의 밤나무는 아무도 물이나 비료, 농약을 주지 않지만 매년 밤이 열리고 주변에 떨어진다. 아무것도 해주지 않지만 자연 속에서 잘 자라고 열매를 맺는다. 이렇게 자란 작물은 비료를 먹고 자란 작물보다 뿌리를 더 깊게 내리고 에너지를 더 많이 흡수해 더 튼튼하다. 유기 비료로 자란 작물은 썩으면 똥 냄새처럼 고약한 냄새가 난다. 하지만 자연 농법으로 키운 작물은 썩으면 식초가 된다.


현대 사회는 어느 무엇도, 어누 누구도 있는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는다. 농산물만 끊임없이 비료와 농약을 주면서 키우는 게 아니다. 회사에서는 하나의 일이 끝나면 바로 그다음 프로젝트로 넘어간다. 아이들을 쉴 틈 없이 학원으로 돌리고 집 안에 빈자리가 생기면 가구든 화분이든 뭔가로 채우고 싶어 한다. 공백이나 여백이 허용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 조직이든 적당히 노는 사람이 있어야 더 잘 돌아가고 아이들은 지루함을 견디는 훈련을 통해 성장하며 적당히 비어 있는 집이 살기도 편하고 보기도 좋다.


쓸데없는 자극이 너무 많은 건 자라는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미국 샌디에이고주립대 심리학과 진 트윈지(Jean Twenge) 교수는 통계를 들여다보고 세대별로 트렌드를 찾는 일을 한다. 진 트윈지 교수는 1995년에서 2012년 사이에 태어난 이 세대를 I세대(iGen, internet Generation)라고 부른다. 상황에 맞는 정확한 이모티콘은 쓰지만 그에 맞는 얼굴 표정은 지을 줄 모르는 세대다. 이 세대는 스마트폰과 함께 자랐고 고등학교 입학 전에 인스타그램 계정을 가졌으며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 대한 기억이 없다. 그럼 뭘 하고 놀까? 스마트폰을 갖고 논다.


파티도 하지 않고 술도 마시지 않고 운전도 하지 않으니 사고로 죽을 확률은 떨어진다. 그 대신 SNS로 친구들과 소통하면서도 엄청나게 외로워하고 있으며 잠을 훨씬 덜 자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우울증이 많고 자살률이 높다. 그런데 통계를 더 자세히 들여다보니 이러한 트렌드는 이미 2007년부터 시작되었다. 2007년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바로 처음으로 아이폰이 나왔던 해다. 물론 엄청난 변화가 단지 스마트폰 때문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 정도의 상관관계라면 분명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다. 과연 스마트폰이 한 세대를 망친 것일까.


요즘에는 걷기도 전부터 터치스크린을 능숙하게 다루는 아기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팝콘 브레인(Popcorn Brain)’이라는 용어가 있다. 디지털 기기에 너무 익숙해져서 뇌가 현실에 무감각해지거나 무기력해지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뇌가 팝콘 브레인이 되면 타인의 감정이나 느리게 변화하는 현실에는 무감각하게 반응하지만 즉각적인 현상에는 곧 바로 반응한다. 마치 팝콘이 튀어 오르는 것처럼 말이다. 팝콘 브레인 현상을 방지하려면 아이들의 스마트폰과 인터넷, TV 노출 시간을 줄여야 한다.


정신없이 살다 보면 잘 모르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삶에 활력을 준다. 가만히 내버려두는 것이 더 좋을 때도 많다. 우리 집 아이들은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 그렇게 심심하게 살다 보면 진짜로 하고 싶은 것이 생겼을 때 더 열심히 한다. 있는 그대로 내버려두는 자연 농법의 철학은 모든 것이 과잉된 요즘 세상에 필요한 삶의 방식이다. 여유와 여백이 있는 삶, 멋지지 않은가.



기본으로 돌아가기_ 주객이 전도된 세상

현재에 존재하기 - 내 인생은 나의 것

요즘은 시간이 남아돌다 보니 개구리 올챙이 적 기억 못한다고 얼마나 바쁘면 저런 서비스를 이용할까 하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돌이켜 보면 내 인생은 남들과 똑같아지기 위한 노력의 과정이었다. 남들이 학원을 다니면 따라서 학원을 다녔고, 남들이 좋은 대학을 가야 좋다고 하니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 그런데 잘 살펴보면 여기서 ‘남들’이 누군지 불명확하다. 누군지도 불분명한 ‘남들’의 이야기를 듣고 또 다른 ‘남들’에게 돈을 주면서 나의 존재를 만들어가고 있는 셈이다.


기자 시절 취재를 위해 만났던 마케팅 전공의 한 경영학자는 “요즘 모두가 뇌 연구에만 매달려서 장비 예약이 너무 어렵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사람에게 무엇을 보여줬을 때 또는 무슨 상황이 일어났을 때 뇌 반응을 살펴보는 연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기업과 학자들은 이제 인간보다도 인간을 더 잘 알기 위해 연구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인공 지능과 빅 데이터의 시대가 되면 살아가는 데 자질구레한 도움을 받는 것을 넘어 나보다도 나를 더 잘 아는 인공지능으로부터 삶의 코칭을 받을 수 있게 된다. 내가 회사에 사표를 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물었다면 아마도 당연히 내지 말라고 답했을 인공 지능이다. 그랬다면 나는 전혀 다른 세상을 모른 체 삶에 만족하며 열심히 살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40세에 은퇴함으로써 삶의 지평선이 넓어진 느낌이다.


어렸을 때 히트곡 중에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는 노래가 있었다. 내 인생은 내 마음대로 살겠다. 상관하지 말라는 젊은 세대의 치기 어린 가사였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에는 상당히 반항적이고 이상적으로 들렸다. 하지만 내 인생이 나의 것이 되기 위해서는 마음대로 살기 전에 내 삶을 온전히 나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3분의 1 정도는 회사의 것이었고 3분의 1 정도는 사회적인 기대치가 소유했다. 즉 내 삶의 3분의 1을 남들의 기대와 시선에 따라 살았다는 말이다. 모든 사회적 기대치로부터 벗어난 지금에서야 적어도 내 삶이 온전히 나의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사실 지금까지는 한꺼번에 여러 가지 일을 하는 ‘멀티태스킹(Multitasking)’을 잘하는 사람이 일을 잘한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하지만 여러 연구 결과에 따르면 멀티태스킹은 인지 능력을 떨어뜨려 사고력과 판단력을 저하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멀티태스킹을 하다 보면 EQ가 감소해 협업 능력도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지 한 번에 하나의 일을 집중해서 하는 것이 일의 능률도 올리고 정신 건강에도 좋은 셈이다.


그래서 요즘은 하나에 집중해서 일하는 걸 장려한다. 이를 ‘딥 워크(Deep Work)’라고 부른다. 모든 일상의 방해 요소를 제거하고 하나의 일에 몰입해야 성과가 난다는 이야기다. 단기적으로 시계를 맞춰놓고 의식적으로 집중하는 사람들도 생겨나고 있다. 딥 워크까지는 아니더라도 정신을 좀 차리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내 인생은 나의 것’을 부를 때의 패기는 어디 갔는지 요즘엔 내 인생을 나의 것으로 살기가 힘들어졌다. 이제 집나간 내 인생을 다시 데리고 돌아와야 할 때가 되었다.


달라이 라마(Dalai Lama)는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1년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날이 2일 있어요. 바로 어제와 내일입니다. 그러니까 오늘이 사랑하고 믿고 행하고 무엇보다도 살기에 적합한 날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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