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감을 사야 해서, 퇴사는 잠시 미뤘습니다

   
김유미
ǻ
쌤앤파커스
   
14000
2019�� 08��



■ 책 소개

 

쳇바퀴 돌 듯 무의미하게 흘려보내던 퇴근 후의 저녁이
잊었던 나를 발견하는 시간으로 바뀐 마법 같은 이야기

 

《물감을 사야 해서, 퇴사는 잠시 미뤘습니다》는 한 소심하고 평범한 직장인이 퇴근 후에 그림을 배우면서 발견한 인생의 아름답고 빛나는 순간들을 때로는 열정적으로 때로는 소박하게 기록한 에세이입니다. 이 책은 우리가 현재의 삶을 급작스레 포기하거나 버리지 않더라도 충분히 나 자신만의 일상을 온전히 회복하고 더욱 충만한 느낌으로 살아내는 법을 알려줍니다.

 

꼭 그림이 아니라도 좋습니다. 평소에 하고 싶었던 것들, 그렇지만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여건이 안 된다는 이유로 미루고 미뤄왔던 일들을 용기 내어 시작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저자는 독자들을 향해 응원의 메시지를 보냅니다.

 

“한 걸음 물러나 보면 모든 일상은 예술이었다. 매일 똑같지만, 똑같지 않은 당신의 일상을 응원한다. 우리는 어쩌면 이미 꽤 낭만적인 예술가인지도 모른다.”

 

도무지 끝도 안 보이고 끝날 기미도 없는 일들, 시도 때도 없이 날카로워지는 감정들로 점철된 일상 속에서 우리는 종종 나만을 위한 시간, 나만의 작은 공간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들 속에서 나 자신을 잘 지켜내고 지금처럼 앞으로도 잘 살아내려면, 우리에겐 애쓰지 않고도 사랑하며 할 수 있는 일이 하나쯤은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 저자 김유미
매일 똑같지만, 똑같지 않은 일상의 모습들이 예술이라 믿으며 그것을 매일 조금씩 그림으로 그려 나가는 사람, 그리고 매일 서울 지하철 9호선 속 수많은 인파와 함께 출퇴근길을 걷는 보통의 10년차 직장인이다. 그 속에서 조금은 ‘반전’ 있는 직장인이 되고 싶어 2014년 여름 어느 날 취미로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 연필 소묘를 그려보고 목탄화, 수채화를 거쳐 요즘은 유화 그리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5년여 동안 크고 작은 스케치북과 캔버스에 드로잉, 채색화 600여 점을 그렸으며 그사이 전시회에도 몇 차례 참여했다. 이런 경험들이 모여 2018년에는 한국전업미술가협회에 작가로 이름을 올렸다. 그해 봄에는 협회가 주최하는 여성 작가전에 초대받았으며 매년 인사동에서 열리는 화실의 그룹전에 참여하고 있다. 여전히 하루 8시간을 직장인으로 살고 있지만, 저녁 7시가 되면 작가로 변신해 두 번째 하루를 시작한다. 지금은 개인전을 목표로 계속해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마음 속 풍경이 그림이 되는 순간, 그림 속 풍경이 글이 되는 순간들을 사랑한다.

 

■ 차례
[스케치북 넘기는 순서]
프롤로그_ 나는 오늘 그림을 그리러 간다

 

[첫 번째 장] 말하지 않아도 괜찮은 시간
마음이 반짝이던 순간을 찾아서 _(누구에게나 좋아하는 것을 하던 시절이 있다)
마음속에서 연 첫 전시회 _(모든 것이 서툴 때가 가장 설렐 때)
인생이라는 작품은 함께 그려가는 것 _(밝음 속에서 더 큰 밝음을, 어둠 속에서 더 짙은 어둠을 찾으며)
유리병 속의 몽당연필이 해준 이야기 _(“나도 당신처럼 잘하고 싶어요.”라고 말하기 전에)
말하지 않아도 괜찮은 시간 _(그림을 그릴 때 느껴지는 우리만의 온도에 대하여)
나를 지켜주는 하루 2시즌제 _(늘 같은 자리에서 지친 나를 기다려주는 스케치북)

 

[두 번째 장] 잘 그린 그림보다 소중한 것들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나만 안다 _(용기 내서 거절한 후에 얻은 것들)
잡념에서 벗어나는 확실한 방법 _(그렇게 연필 사각거리는 소리에 길들여진다)
보이는 그대로에 집착하지 않는 연습 _(사연 있는 마릴린 먼로와 모네의 보트들)
잘 그리기보다 아름답게 그리기 _(르누아르가 그림 그리는 사람들에게 해준 말)
수채화 유희 _(한없이 투명했던 바르셀로나에서의 나날들)
조색(調色)의 기쁨에 관하여 _(사랑할 때도 원하는 빛을 만들어갈 수 있다면)
그림으로 전하는 마음 _(엄마에게 선물한 제주의 하늘과 해바라기)

 

[세 번째 장] 서툰 사람들끼리 주고받는 말
일요일 아침의 발견 _(잠들어 있던 시간이 기다려지는 시간이 되는 마법)
서툰 사람들끼리 주고받는 응원 _(우리는 화실에서 서로 위로하는 법을 배웠다)
더 이상 어른이 불편하지 않다 _(때로 누군가는 영원한 20대로 살아간다)
“좋아요, 하고 싶은 것을 해요!” _(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용기를 얻는 순간)
칭찬받아 마땅한 우리 _(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싶은 보상의 말들)
천천히 그려요 _(모든 것들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으려면)
왜 그녀는 에펠탑을 슬프게 그렸을까? _(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품고 있는 그림의 힘)

 

[네 번째 장] 세상에서 가장 나다운 이야기
생의 한가운데에 서서 _(파란만장하지 않아도 썩 괜찮은 삶에 대하여)
그날의 가장 잘한 일 _(마음이 가장 편안히 머무르는 곳)
나는 내가 가장 반갑다 _(캔버스에 비친 나의 모습과 대화하다 문득)
시간을 대하는 태도 _(뭔가를 하기에 부족한 시간은 없다)
내 그림의 주인 되기 _(사인하기가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그럼에도 취미는 사랑 _(삶의 기쁨을 발견하는 거의 유일한 방법)
나의 이야기, 나다운 이야기 _(나를 보여주는 것이 이제는 두렵지 않다)

 

[다섯 번째 장] 마음이 간절히 원한다면
단지 좋아하는 것을 그릴 뿐 _(우리는 모두 아티스트가 될 수 있다)
내가 계속 그릴 수밖에 없는 이유 _(달콤한 순간들이 모여 또 다른 꿈이 되고)
마음이 원하기만 한다면 _(이처럼 평범한 내 모습에도 가슴이 뛴다)
나에게도 화풍이 생길까? _(함께한 사람들의 흔적이 깃든 나의 그림들)
자기만의 방 _(고독이 밀려오기 전에 한껏 기지개를 켜며)
취미 예찬 _(무엇이든 할 수 있는 우리 인생을 위하여)

 

에필로그_ 한 걸음 물러나서 보니 모든 일상이 예술이었다

 




물감을 사야 해서, 퇴사는 잠시 미뤘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괜찮은 시간

인생이라는 작품은 함께 그려가는 것 _ 밝음 속에서 더 큰 밝음을, 어둠 속에서 더 짙은 어둠을 찾으며)

내가 다니는 동네 화실의 선생님은 성인을 대상으로 그림을 가르친다. 20대부터 60대, 혹은 그 이상의 연령대를 가르치고 있다. 화실을 다닌 지 꽤 지나서야 선생님이 국내에서 꽤 이름난 서양미술 화가라는 것을 알았다. 선생님도 화가로서는 그림을 늦게 시작한 편이라 우리에게 항상 늦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의 말에는 힘이 있다.


처음 화실을 찾았던 날에도, 선생님은 나에게 그림을 그려서 전시회를 하고 작가도 되어보라고 했다. 퇴근하고 취미로 그림을 배우러 온 직장인에게 작가가 되어 그림도 팔 수 있다고 말하다니, 그때만 해도 ‘이 선생님, 영업이 좀 과한 것 아닌가?’하고 생각했다. 그 자리에서 바로 등록을 했던 것도 결코 선생님의 제안이 미더워서는 아니었다.


선생님의 건강한 에너지가 좋았다. 화가라고 하면 자기만의 세계가 강해 닫혀 있거나 감정의 기복이 심하다는 선입견이 있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일관되게 밝고 긍정적이었다. 고향이 생각나게 하는 사투리 섞인 말투로 내 이름을 불러줄 때면, 나의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었다.


그전까지는 퇴근 후 동료들과의 술자리에선 회사 뒷담화로 분노하고, 친구들과는 일과 연애, 그리고 카드값 문제로 세상에서 가장 힘든 처지를 자청했다. 혼자일 때는 세워둔 계획은 많은데 제대로 하고 있는 게 없는 듯해 쉬면서도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었다. 일을 마쳐도 하루를 마쳐도 사라지지 않는 어두운 기운은 점점 나를 가라앉게 했다.


그러나 화실을 문을 여는 순간, 선생님이 건네는 인사는 시공간을 초월해 하루를 두 번 살게 했다. 작품에 집중하고 있는 선생님의 뒷모습을 보면 잔뜩 긴장해 있던 어깨와 미간이 풀어졌다. 화실에 들어서면 화실 밖의 일들은 아무렇지 않게 되었다. 아무렇게나 흘러가던 나의 하루에 새로운 의미가 더해졌다. 오늘이 엉망이었다고 해도,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선생님의 작품만큼이나 뛰어난 것은 가르치는 능력이었다. 선생님은 평생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ㄱ꾸준히 동기부여를 해줬다. 첫 번째는 그림은 재밌게 그려야 한다는 것이다. 한번은 그림이 덜 완성된 것 같은데 선생님은 그만 마무리하라고 했다. 언뜻 봐도 형태가 맞지 않고 그림의 밀도가 떨어지는데, 그 정도 했으면 충분하다며 사인하라고 했다. 선생님은 할 수 있는 데까지 했으면 된 거라며, 그러다 지칠까 봐 그렇다고 했다. 연습할 때는 실패작을 맛본 후 다음 그림으로 넘어가 그것을 교재 삼아 연습하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연습량을 늘리는 것이 배우는 재미도 맛볼 수 있다며, 그림을 즐겁게 그리는 것이지 질리도록 그리는 것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두 번째는 그림은 함께 그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림은 혼자 그릴 수 있지만, 함께 그리면 평생 그릴 수 있는 힘이 된다고 했다. 인생이라는 작품은 함께 그려야 한다는 것이 선생님의 생각이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화실 선생님에게 평생 그림을 배우고 싶다는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림을 배운 지 3개월을 넘긴 평일 저녁, 이제는 제법 습관이 되어 퇴근하고 화실로 오는 길이 어렵지가 않았다. 어느덧 나도 연필 소묘로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느 시점에서 실력이 늘지 않는 난관에 부딪혔다. 선생님은 목탄화를 해보자고 권했다. 나의 거칠고 굵은 선이 목탄에서 더 잘 표현될 것 같다고 했다.


그렇게 몇 개월간 목탄화를 그렸다. 목탄화를 배우면서 면과 명암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고, 무엇보다 그림을 스스로 마무리하려는 의지가 생겼다. 선생님의 마무리 없이 “좋다, 사인하자.”라는 말을 들었을 때의 기분은, 야심차게 준비한 기획안에 “좋아, 그대로 진행하세요.”라는 상사의 결재만큼이나 좋았다(사실, 좀 더 신이 났던 것 같다). 열 점 정도의 목탄화를 그렸다면, 네다섯 점 정도는 스스로 마무리를 했다. 독립한 기분이었다.


선생님은 연습할 때도 제대로 하기를 바랐다. 좁은 집에 캔버스가 쌓여나가는 것이 부담스러워 스케치북에 연습하겠다고 했으나, 선생님은 그래도 캔버스에 제대로 그려서 작품을 만들라고 했다. 연습인데 왜 그럴까 하는 마음이 컸지만, 시키는 대로 했다. 캔버스가 쌓이는 만큼 실력이 늘었지만, 쌓인 캔버스는 여전히 골치였다. 캔버스 옆면의 천이 바랄 때쯤 기회가 되어 작은 갤러리 카페에 초대를 받았다. 이것이 나의 첫 번째 개인전이다.


선생님은 내가 그리는 그림을 연습이 아닌 작품으로 대해줬다. 지금도 나를 취미로 그림을 배우는 학생이 아닌, 작품을 하는 아티스트로 대해준다. 그 덕분에 그림을 그리면서도 늘 새로운 기회를 마주한다. 꾸준히, 지속해서 한다는 것이 인생을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된다는 사실을 나는 그림을 통해서 배웠다. 물론, 좋은 선생님을 만나는 행운이 따라야 한다는 중요한 사실도.



잘 그린 그림보다 소중한 것들

잡념에서 벗어나는 확실한 방법 _ (그렇게 연필 사각거리는 소리에 길들여진다)

워낙 생각이 많다. 생각의 반이 쓸데없었다. 지나간 일에 대한 후회나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걱정들이었다. 때로는 엉뚱하고 즐거운 상상으로 시간을 보낼 때도 있지만, 나머지는 굳이 안 해도 되는 망상으로 시간을 허비했다. 마음이 과거에 있으면 후회하고, 미래에 있으면 불안하다고 한다. 아무래도 나는 마음이 현재에 머무르지 못해 걱정과 고민이 많은가 보다.


내가 수영이 잠시 빠졌던 건 물속의 고요함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그림 그리기도 수영처럼 잡념을 떨쳐내는 데 꽤 도움이 된다. 오랜 시간 동안 캔버스에 정신을 집중시켜야 하기 때문에 생각을 멈출 수밖에 없다. 사실 처음에는 이젤 앞에 30분도 채 앉아 있지 못했다. 퇴근하고 화실에 오면 2~3시간 정도 그릴 수 있는데, 연필을 잡은 지 1시간도 안 되어 집중력과 체력이 바닥났다. 그리는 내내 스케치북 위로 온갖 상념이 떠다녔다. 노인을 그리면 병원에서 요양중인 할머니 생각이 났고, 소년을 그리면 헤어진 연인이 생각났다. 그림에 집중하지 못했고, 자꾸만 다른 생각들이 캔버스 위를 둥둥 떠다녔다.


그렇게 산만하게 그림을 배울 때였다. 배우 콜린 퍼스를 그릴 생각으로, 미리 저장해 온 사진을 출력했다. 여느 때처럼 신발을 벗고 이젤 받침대에 발을 올렸다. 텅 빈 스케치북을 마주하자 막막함이 밀려왔다. 고개를 살짝 숙이고 눈을 치켜뜬 카리스마 있는 자세라 형태 잡기가 쉽지 않았다. 정면이 아닌 다른 각도의 구도가 나오면 헤매기 일쑤였다. 제아무리 보조선을 그어 두고 시작해도 시선의 방향이나 턱의 위치가 달라졌다.


확실히 좋아하는 배우를 그리면 신경이 더 쓰였다. 제대로 된 선을 긋기 전에 몇 번이나 눈과 코, 입술, 이마의 거리를 맞췄는지 모르겠다. 반복되는 선의 교차 끝에 제법 콜린 퍼스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선생님에게 검사를 받고 수정을 받았을 텐데, 웬일인지 욕심이 났다. 한번은 선생님이 반 이상 고쳐주는 바람에 양심상 마지막 서명을 하지 못한 적도 있었다. 이번 그림은 서명할 때 하늘이 부끄럽지 않게 직접 마무리해보고 싶었다.


쓱쓱쓱, 쓱쓱쓱. 연필 소리에 정신을 차려보니 1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그동안 자리 한 번 안 뜨고 그림을 그렸다니! 핸드폰을 찾지도 않고 그림만 그렸다는 사실에 나 자신이 대견하게 느껴졌다. 오늘 부장이 내게 한 말이 무슨 의미였는지, 내일 무슨 옷을 입을지 따위의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몇 번쯤 이런 경험을 하게 되면서 그림을 그릴 때는 온전히 그림만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림을 생각한다고 해서, 명암의 단계를 계산해 선을 긋거나 빛을 관찰해 색을 입히는 경지에 오른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멍하니 그리는 것도 아닌데, 마치 텅 빈 머릿속에 빛으로 가득 찬 나머지 어느 것 하나 끼어들 수 없는 그런 느낌이다.


화실에는 다양한 소리가 있다. 집중력이 떨어진 학생들은 창가에 앉아 간식을 먹으며 수다 삼매경에 빠진다. 선생님은 나이 지긋한 학생들에게 그림을 설명하느라 목소리가 커지기도 한다.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 부르며 그림을 그리는 학생도 있다. 이런 소리마저도 화실에서는 고요하다. 그림을 그리는 순간에는 연필을 깎는 소리, 연필로 선을 긋는 소리, 스케치북 넘기는 소리, 물통에 붓 젓는 소리... 온통 그림의 소리로 가득 찰 뿐이다. 집중력을 위한 최상의 ASMR이다.


뭐니 뭐니 해도 최고의 매력은 연필 소리다. 스케치북 위로 선을 그어갈 때 느껴지는 흑연의 부드러운 질감과 사각거리는 소리는 그림이 완성되어가는 재미를 더해줬다. 연필 여러 자루를 한 번에 모아 깎을 때면 초등학생 시절 받아쓰기 추억을 떠오르게 했다.



서툰 사람들끼리 주고받는 말

서툰 사람들끼리 주고받는 응원 _ (우리는 화실에서 서로 위로하는 법을 배웠다)

연필에 한참 빠졌을 때는 매일같이 퇴근하고 화실을 찾았다. 노력이 비해 실력이 늘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연필을 배울 때는 손이 마음대로 안 움직여 환장할 노릇이었다. 선생님의 수업도 외계어로 들릴 뿐이었다. 중간 톤을 어디에 넣으란 말인지, 빛의 흐름은 어떻게 표현하라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선생님을 끊임없이 찾게 되는 드로잉 팀과 달리 채색 팀은 우아해 보였다. 적어도 채색 팀에 합류하지 전까지는 그래 보였다. 연필 팀이 기초를 다지기 위해 치열한 사투를 벌이는 곳이라면, 채색 팀은 기본을 다진 사람들이 그 위에 색을 입히는 여유로운 작업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캔버스 한가득 자신만의 색들로 채워나가는 모습이 르네상스의 아틀리에를 연상시켰다.


하지만 채색 팀의 한숨은 차원이 달랐다. 구도와 형태, 명암 그리고 조색과 붓 터치까지 생각해야 했다. 거기에 자신만의 화풍을 만들어야 하는 예술가적인 고민까지 더했다. 색을 어떻게 써야 할지, 붓 터치는 어떻게 살려야 할지 연구해야 했다. 연필만으로 그릴 때는 선생님의 스케치가 목표였다면, 채색화를 그릴 때는 고흐나 르누아르가 이상향이 되었다. 인상주의 화가의 그림과 자신의 것을 비교하고 있으니 한숨이 땅을 뚫을 기세다.


그림에 대한 고민이 끊이지 않는 이곳은 ‘성인 취미 미술 학원’이다. 다 큰 어른들이 직장과 가정을 벗어나 머리를 식히기 위해 오는 곳. 화실의 정체를 의심하게 하는 우리의 한숨은 함께 나누기에 의미가 있다.


처음에는 누구나 솜씨가 없고 연필에 단련되지도 않았으며 색에 능숙하지도 않다. 그럼에도 자꾸 도전하는 까닭은 그 행위 자체가 우리에게 휴식이자 위안이기 때문이다. 수십 차례 연습을 하고 또다시 그려도 여전히 서툴지만 함께 그리는 시간을 통해서 우리는 조금씩 발전하고 있다.


화실 밖의 세상에서는 말하기 어려운 것들이 이곳에서는 괜찮다. 요즘 어떻게 지내냐는 안부에 연필이 잘 안 돼서 속상하다고 했다. 자신도 그랬다면서, 누구보다도 그 심정에 공감해준다. 오늘은 원하는 색이 나와서 행복하다는 말 속에 담긴 기쁨이 얼마나 큰지는 이곳 서툰 사람들만이 안다. 잘하고 있다는 선생님의 응원까지 더해지면 계속해서 그릴 용기가 생긴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려면 7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전문가가 되려고 시작한 것은 아니다. 그에 미치는 시간을 쏟아 부을 필요도 없으니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 오랫동안 그리고 싶다는 마음이면 충분하다. 우리는 여전히 서툴고, 앞으로도 서툴 테지만 계속해서 그려나갈 것이다. 인생이라는 그림도 함께 그리기에 외롭지 않다.



세상에서 가장 나다운 이야기

생의 한가운데에 서서 _ (파란만장하지 않아도 썩 괜찮은 삶에 대하여)

20대에 《생의 한가운데》를 감명 깊게 읽었다. 1950년 루이제 린저가 발표한 소설로,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는 니나 부슈만과 그에 비해 현실에 순응하는 생을 사는 언니, 그리고 니나를 사랑하는 슈테판 박사의 삶이 담긴 내용이다. 내가 특별히 아끼는 고전이다.


소설 속 니나의 나이를 기준 삼아 생의 한가운데로 향했다. 그 나이가 되었을 때 나의 모습은 어떨지 기대했다. 니나처럼 매 순간 충실하게 살아가다 인생의 중간점을 맞이하겠다고 다짐했다.


10년이 지나고 니나의 나이가 되었다. ‘생의 한가운데’에 다다르게 되면 많은 것이 변해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직장 생활을 하며 매일 보던 친구들을 만나고 있었다. 새로운 사람도 생겼고 사라진 사람도 있었다. 생의 한가운데에 겨우 도착했는데, 별게 없었다.


의식적으로 그 책을 다시 꺼내어 읽었다. 여전히 니나는 치열했다. 20대에 느꼈던 니나가 치명적인 매력의 인생 선배와 같았다면, 같은 나이대가 되어 다시 본 그녀는 조금은 피곤한 타입의 스타일이었다. 오히려 20대 때는 꽉 막혔다고 생각했던 니나의 언니 편에 서게 되었다. 니나의 언니는 안정적이고 평화롭다.


화실에서 만난 사람들은 니나의 언니와 닮았다. 화실 밖에서의 일은 치열할지 모르나, 캔버스 안에서의 시간을 평화로웠다. 제법 균형 잡힌 삶들이다.


그림이라는 공통된 취미로 모인 우리는 각자 다른 모양의 같은 꿈을 그리고 있다. 하루의 쉼표로 화실을 찾는 직장인도 있고, 부모님의 초상화를 그리는 중년 남성도 있다. 취미로 시작한 그림이 두 번째 직업이 된 분도 있다. 60세가 넘어 그림을 시작한 학생은 이제 작가로서 아트 페어를 준비한다. 언젠가 개인전을 열고 싶다는 나의 꿈도 있다.


파란만장하지 않더라도, 좋은 사람들과 좋은 것을 공유하고 느끼는 삶을 살고 싶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20대 시절을 지나, 느려도 괜찮다는 요즘의 추세에 영향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무얼 더 바라는 삶은 없다. 오늘도 무사한 일상에 감사하다.


사람은 나이를 먹어서 늙는 게 아니라 꿈을 잃을 때 늙는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꿈이라고 하면 거창한 무언가를 떠올려야 한다는 듯 말한다. 그래서 때로는 꿈이 없는 것도 스트레스가 된다. 꿈을 꾸지 않아도 괜찮다. 다만 대단한 꿈 리스트 대신, 니나의 말처럼 의욕 정도는 가질 수 있다.


무언가를 하고 싶은 것, 무언가를 갖고 싶은 것, 무언가를 먹고 싶은 것... 내가 원하는 ‘무언가’가 모여 꿈이 된다. 그림을 그냥 그리고 싶어 해도 되고, 그림을 잘 그리고 싶어 해도 된다. 그림이 아닌 다른 것이어도 괜찮다.


취미나 놀이를 하는 어른들은 늙지 않는다. 대화하고 사고하는 방식이 확실히 다르다. 자신의 과거에 대해 말하지도 강요하지도 않는다. 가장 자신 있던 시절의 모습이 과거에 머무르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생의 한가운데에 들어왔다. 대단한 일이 있을 것 같았던 미래는, 별다를 것 없는 오늘이었다. 덕분에 삶의 끝자락에 대해 기대를 하지 않게 되었다. 다행히 나이 먹음이 무색하지 않게, 삶이 주는 크고 작은 파도 안에서 헤엄치는 법은 배워둔 듯하다. 니나처럼, 때로는 니나의 언니처럼 방법은 다르지만 그림 그리듯 삶을 가꿀 줄은 알게 되었다.



마음이 간절히 원한다면

내가 계속 그릴 수밖에 없는 이유 _ (달콤한 순간들이 모여 또 다른 꿈이 되고)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을 때 어떤 목표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시간을 보내기 위한 새로운 것이 필요했다. 어릴 적 못 했던 것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재미 삼아 그렸지만, 욕심이 생겼다. 잘 그리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욕심이 커지다 보니 거의 매일 그리다시피 연습했다. 방 안에 쌓이는 캔버스를 보며 처치 곤란이라 생각했다.


어느 날 선생님이 예전에 내가 그렸던 목탄화들을 찾았다. 10F 캔버스에 그린 목탄화 여섯 점이 방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오드리 햅번, 아인슈타인, 마릴린 먼로 등 유명 인물들의 초상화였다. 방이 좁아서 버리려고 했는데, 유화를 그릴 때 젯소를 바르고 재활용할 수 있다고 해서 다시 챙겨두었던 그림들이었다. 버리지 않길 천만다행이었다. 선생님은 자신의 지인이 운영하는 갤러리 카페가 있는데 전시를 해보자고 했다. 습작이기도 하고 오래된 그림이라 망설여졌다. 작은 갤러리 카페니 부담 갖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캔버스가 쌓일 때마다 스케치북에 연습하겠다고 투덜거렸었는데, 새삼 선생님 말씀 듣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회란 언제 찾아올지 모른다.


분당에 위치한 갤러리 카페는 갤러리보다는 카페에 가까웠다. 작은 카페 안에 익숙한 그림 네 점이 한쪽 벽면을 차지하고 있었다. 카페 안의 사람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하느라 그림에는 시선을 잘 주지 않았다. 반면에 나는 커피를 마시는 내내 그림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목탄이 이렇게 반짝이는 그림이었는지 몰라봤다. 다시 집에 두더라도 잘 보이도록 세워둬야겠다고 다짐했다. 처음 보는 그림인 것처럼 한참을 보고는, 내 이름이 적힌 안내문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나의 비공식 개인전을 기념했다.


내 그림이 걸리는 전시회는 매년 화실의 학생들과 함께하는 단체전이 전부였다. 동행전이 열릴 때는 지인을 초대하지 않았다. 언젠가 나의 개인전을 하게 되면 모두를 초대할 거라고 다짐했다. 동행전에 참여하는 횟수가 늘어갈수록 그림 실력도 눈에 띄게 늘었다. 두 번째 동행전에는 수채화를, 세 번째는 유화 작품을 제출했다. 참가하는 횟수가 늘수록 전시회 준비는 더 치열해졌다. 유화 작품을 준비할 때는 참 많이 울고 웃었다. 고생한 그림일수록 애정이 더했다. 사람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어졌다. 내가 그린 그림의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졌다. 개인전을 할 때까지 아무도 초대하지 않겠다는 다짐은 슬며시 무너졌다.


사랑이 아닌 다른 무언가로 가슴 뛰고 질투하고 기대하게 될 줄은 몰랐다. 사랑보다 확실한 건 완전한 무언가를 완성하면서 느낀 성취감이었다. 그림을 완성하고 서명하는 순간, 그림이 액자에 끼워지는 순간, 어느 갤러리 한 벽면에 내 그림이 걸리는 모든 순간이 완벽하게 뿌듯했다. 전시를 하면 할수록 성취감은 더 커져갔다.


내 그림이 전시장에 걸리는 순간 나의 존재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림이 아니라 내가 벽면에 걸려 있는 것 같았다. 나를 본 관객의 표정이 궁금했지만 마주할 용기는 없었다. 관객이 볼 때 기분 좋은 그림이기를 바랐다. 내가 기분 좋은 사람이길 바라는 것처럼.


전시는 다음 작품을 위한 좋은 자극이 되기도 했다. 전시장에 걸려 있는 그림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다음 작품을 구상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 작품은 작은 캔버스에다 그릴 요량이었는데, 전시장에 걸린 것을 보니 좀 더 큰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시를 마치면 한 달은 푹 쉬겠다고 호언장담하지만, 휴식은 항상 화실에서 취했다. 처음부터 뜨겁지는 않았다. 벌써부터 타올랐다면 즐거움을 알기도 전에 식어버렸을 테다. 적당한 온도의 열정은 나로 하여금 계속해서 그림을 그리게 한다.


* * *


본 도서 정보는 우수 도서 홍보를 위해 저작권자로부터 정식인가를 얻어 도서의 내용 일부를 발췌 요약한 것으로, 저작권법에 의하여 저작권자의 정식인가 없이 무단전재, 무단복제 및 전송을 할 수 없으며, 원본 도서의 모든 출판권과 전송권은 저작권자에게 있음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