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나를 몰아세울 때? 가드를 올리고 도망치지 말 것

   
황진규
ǻ
팜파스
   
13000
2019�� 10��



■ 책 소개

 

어렸을 적의 아쉬움이 때로는 취미로, 때로는 이루지 못한 꿈이 되어 콤플렉스처럼 들러붙는다

 

프로 복서가 되려는 이유요? 복싱, 그만 하고 싶어서요. 복싱 배우러 체육관에 들어선 사람이 한 말입니다. 그만두기 위해서 배우다니요. 그것도 그냥, 설렁설렁 배우는 것도 아니고, 복싱의 끝판왕 프로 복서 데뷔까지 하겠답니다. 그의 나이 30대 후반, 당신 나이가 몇인 줄 알아? 그러다 더 나이 들어서 골병들어 주변 사람들은 만류했지만 결국 해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정말 취미로 복싱을 하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취미를 찾아 나설 때, 문득 어린 시절을 떠올리곤 합니다. 어렸을 적에 여러 가지 이유로 하지 못했던 것들, 어른이 되어서도 문득문득 생각나는 활동. 누군가에는 그저 어린 마음에 하고 싶었던 것이기도 할 테고, 누군가에게는 이루지 못했던 꿈일 수도 있겠지요. 프로 복서 황진규 작가에게 복싱은 후자였습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꿈에서 도망친 사람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스스로를 비겁하다고 생각했답니다. 누구나 그렇지 않나, 그렇게까지 생각할 필요가 있나?…… 물음표에서 끝나지 않고 쩜쩜쩜까지 느껴진다면, 거기다 이렇다 할 취미 활동이 없다면, 당신도 후자에 가깝습니다.

 

어렸을 때는 이런저런 이유로, 어른이 되어서는 이런저런 생각으로 망설이는 일이 있다면 우선은 그냥 해 봅시다. 대신 줄넘기부터 차근차근, 거울을 보며 혹은 상대를 상상하며 주먹을 뻗어보고, 가볍게 잽을 날리며 상대방과의 거리도 조절해 보고, 몇 번은 맞다가 몇 번은 때리다 보면, 결국 생길 거예요. 늘 실전인 삶을 살아갈 용기 말입니다.

 

■ 저자 황진규
철학을 알고 나서부터 회사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7년 동안 다닌 직장에 사표를 내고,
철학을 공부하는 글쟁이가 되었다.

 

철학에 관한 글을 쓰고 수업을 하며
삶으로 연결되는 철학의 쓸모를 발견해내는 일을 한다.

 

철학과 삶에 관한 몇 권의 책을 썼고,
앞으로도 계속 쓸 것이다.

 

■ 차례
프롤로그

 

1. 복서, 이전의 이야기
다시 찾아온 우울증, 당황이 공황이 되었다
나는 왜 프로복서가 되고 싶었을까?
복싱을 하려면 헬스부터?
[체육관 풍경 1] 복싱과 연애 I

 

2. 줄넘기
복싱은 겉멋이 아니다
복싱, 잘 맞고 잘 때리면 된다
링 밖의 체력 VS 링 위의 체력
섀도복싱은 실전에 도움이 될까?
[체육관 풍경 2] 복싱과 연애 II

 

3. 섀도복싱
프로테스트, 망신 or 성취?
관장에게 주제넘는 말을 했던 이유
그로기에서 벗어나는 법
복싱은 좋지만 감량은 싫다
[체육관 풍경 3] 강밀한 취미를 공유하는 관계에 대하여

 

4. 메서드
맞지 않아서 자존심이 상했던 날
자만심과 주눅 듦 사이에서
부상에 대처하는 자세 1
최선을 다했어?라는 폭력적인 말
[체육관 풍경 4] 변덕스러운 겁을 잠재우는 법

 

5. 스파링
맞을 수 없다면, 때릴 수 없다
차가운 복서와의 스파링
복싱은 위치싸움이다
앞 손이 중요하다
[체육관 풍경 5] 어제 보다 더 아름다워지려는 복서들에게

 

6. 드디어, 프로 복서
복싱은 위험해!라고 말하는 이들에게
부상에 대처하는 자세 2
서른일곱 살, 신인왕전에 나서며
프로 복서, 저주를 풀다!
 [체육관 풍경 6] 복싱이 주는 절정의 쾌감

 

7. 프로 복서, 그 이후의 이야기
시합 그 후 이야기
다시 시합을 나가지 않는 이유
넘어야만 하는 산
소중하지 않은 싸움은 없다.


에필로그

 




세상이 나를 몰아세울 때? 가드를 올리고 도망치지 말 것


복서, 이전의 이야기

다시 찾아온 우울증, 당황이 공황이 되었다

‘이대로 깨지 않으면 내일 회사 가지 않아도 되겠지.’ 여느 날처럼 야근하고 집에 온 날이었다. 불도 켜지 않고 방 안에 누워 있다 떠오른 그 생각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날 이후, 직장 생활 7년 동안 우울증은 나를 지독하게 따라다녔다. ‘다 지나가겠지’라는 마음으로 버텼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두 아이를 둔 가장으로 무책임한 선택을 할 수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감정이란 게 어디 누른다고 눌러지는 것이던가. ‘이건 사는 게 아니라 죽어 가고 있는 거야!’라는 내면의 외침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우울증은 더욱 심해졌고, 깊어진 우울증만큼 감정 기복도 심해졌다. 두 돌이 갓 지난 둘째는 자정이 넘어도 쉬이 잠들지 못하고 울었다. “아이, 씨, 좀 자!” 아이를 안고 있던 나는,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러 버렸다. 그 소리에 아이만큼 놀란 건 바로 나였다. 그 놀람은 내가 은폐했던 삶의 진실을 순식간에 드러냈다. “다 거짓말이구나. 아이들을 위해 직장을 꾸역꾸역 참고 다닌다는 말은 다 거짓말이구나.”


가족을 위해 직장인의 삶을 견디고 있다고 굳게 믿었다. 그 믿음은 비겁한 위선이었다. 그저 죽기보다 싫지만 동시에 안정적인 삶을 놓고 싶지 않았던 게다. 또 그 안정적인 삶을 벗어나 새로운 삶을 시작할 용기가 없었던 것뿐이었다. 그렇다.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은폐하기 위해 아이들을 변명거리로 사용하고 있었다. 이보다 더 비루한 삶이 있을까.


직장을 그만두었다.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고민과 걱정, 불안의 시간을 보내고서야 그럴 수 있었다. 눈이 펑펑 내리던 12월 어느 날, 사표를 내고 회사를 나섰다. 생각보다 두렵거나 걱정되지 않았다. 오히려 작은 설렘과 평온함마저 느껴졌다. 아마 직장을 다녔던 시간 동안 충분히 고민했기 때문일 테다. 그리고 고민의 과정에서 내가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글을 쓰고 싶었다.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확신할 수 없었다. 공돌이 출신 월급쟁이가 글을 쓰는 작가가 되는 일은 정말 꿈같은 일이었으니까. 작가는 못 되어도, 더 이상 쓸 수 없는 상황이 올 때까지 쓰고 싶었다. ‘직장까지 때려치운 마당에 하고 싶은 일 실컷 해 보자’라는 심정이었다. 퇴직금을 모두 아내에게 주고 작은 배낭 하나를 샀다. 매일 새벽, 그 배낭에 책과 노트북을 넣고 어디론가 향했다. 길 닿는 곳에 앉아 읽고 또 썼다. 그리고 또 읽고 썼다.


작가가 되었다. 운이 좋아 몇 권의 책도 냈다. 한두 사람이 나를 ‘작가’라 불러 주었다. 세상 사람들의 말마따나 나는 꿈을 이룬 셈이었다. 그렇게 나는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된 거라 믿었다. 하지만 이 빌어먹을 삶이 그리 호락호락하던가. 쑥스러웠던 ‘작가’라는 호칭이 익숙해져 갈 무렵,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았던 감정이 찾아들었다. 어둡고 축축한 늪 같은 감정. 우울증. 당황스러웠다. 그 늪에서 벗어나기 위해 갖은 발버둥을 쳤는데, 여전히 그 지긋지긋한 늪이라니. 당황은 공황이 되었다.


열심히 살았는데...다시 새로운 뭔가를 해야 했다

불안하고 걱정되는 것이 아니라, 화가 나고 억울했다. 최선을 다하며 살았다고 말할 수 없지만, 그때그때 주어진 숙제는 열심히 하고 살았다. 집에 돈이 없어도 대학은 가야 한다기에 열심히 공부했다. 밥벌이하려면 취업을 해야 한다기에 열심히 준비했다. 대기업에 취직했다. 그 좋은 직장도 내가 원했던 삶이 아니었기에 그곳마저 박차고 나왔다. 매일 새벽에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읽고 쓰는 삶을 살았다.


그리도 애를 쓰며 살아왔다. 그런데 그렇게 다다른 곳이 공황장애라니. 어찌 화가 나고 억울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우울증과 공황 장애 사이에서 서른여섯 살을 맞이했다.


나는 왜 프로복서가 되고 싶었을까? _ “진짜 꿈은 콤플렉스다”

복싱이 인기 종목이었던 1980년대, 아버지는 복싱을 참 좋아하셨다. 누군가 나에게 행복한 기억을 물었다. “아버지 무릎에 앉아 복싱 중계를 보던 거요.” 그때가 참 좋았다. 아버지에게 안겨 있던 느낌도, 아버지가 배를 만져 주었던 느낌도. 복싱은 그렇게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나의 행복한 기억 한편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렇게 꼬맹이의 꿈은 복서가 되었다.


오래, 격한 운동을 했던 덕에 강한 척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치명적인 약점이 하나 있었다. 그건 ‘실전 공포증’이었다. 상대와 마주 서서 진짜로 치고받아야 하는 상황이 되면 긴장하고 겁이 나서 몸이 굳어버리기 일쑤였다. 동네 싸움에서 한 대도 때리지 못하고 몸이 굳어 버려 얻어터지고 온 어느 날, 나는 운동을 포기해 버렸다.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복싱이나 격투기로 밥벌이를 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이.


‘실전 공포증’과 ‘삶 공포증’

시간을 한참 흘려보낸 후에야 알게 되었다. 어린 시절 콤플렉스였던, ‘실전 공포증’이 여전히 내 발목을 잡고 있었다. 이제는 기억도 희미해져 버린 시절에 도망쳤던 복서라는 꿈이 근원적인 문제였다. 그것이 내 삶의 모든 문제의 중핵이었다. ‘실전 공포증’을 피해 복서라는 꿈에서 도망쳤다. 하지만 그건 단순히 치기 어린 시절의 꿈 하나를 포기한 게 아니었다. 그건 삶 자체에서 도망쳤다는 것을 의미했다. 순간순간 우리를 덮쳐 오는 삶, 그 자체가 바로 ‘실전’이란 사실을 잊고 있었다.


나는 열심히 ‘공부’만 했을 뿐, 담대하게 ‘삶’에 맞서지 못했다. 그것이 바로 나의 우울증과 공황 장애의 근원적인 원인이었다. 직장인으로 우울증에 긴 시간 시달렸던 이유도, 작가로 살면서 공황 장애에 시달렸던 이유도 모두 ‘삶 공포증’ 때문이었다. 어느 순간 어떻게 날아올지 모르는 상대의 주먹이 두려워 ‘몸’이 굳어 버리는 것. 어느 순간 어떻게 날아올지 모르는 삶의 고난이 두려워 ‘마음’이 굳어 버리는 것. 이 둘은 본질적으로 같은 내면적 상태다.


꿈을 이루고 싶다 =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싶다

내 콤플렉스는 ‘실전 공포증’이다. 승부의 순간에는 언제나 주저하고 몸이 굳어 버린다. 그러니 삶이 실전임을 깨닫게 되는 순간마다 마음이 굳어 버렸다. 그것이 내게 우울증과 공황 장애가 찾아온 이유였다. 세상이 두려웠고, 삶은 어렵게만 느껴졌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몸이 굳어 버렸던 그때, 긴장되고 두렵지만, 이를 악물고 치고받았어야 했다. 그렇지 못했기에 여전히 나는 복서라는 꿈에 시달리고 있었다.


잘못 채워진 첫 단추를 찾았다. 삶에 당당하게 맞서기 위해서는 그 첫 단추를 다시 채워야 했다. 저주 같은 그 꿈을 우회하고서는 삶을 제대로 살 수도 없을 거란 걸 깨달았다. 젠장, 절망적이게도 나는 프로 복서가 되고 싶었던 게 아니다.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였다. 삶은 이리도 잔인하다.


꿈이 콤플렉스가 되는 이유는 현실 때문이다. 나도 안다. 꿈을 이루기 위한 수많은 현실적 문제들을. 마흔을 앞둔, 두 아이를 둔 가장인 사람이 프로 복서가 되기는 좀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나는 기어이 프로 복서가 되어야겠다. 더 이상 도망치는 삶, 콤플렉스에 전전긍긍하는 삶을 살고 싶지 않으니까.


꿈에 맞서면서 감당해야 할 문제들이 어렵다면, 꿈으로부터 도망치면서 감당해야 할 문제들은 끔찍하다. 끔찍한 삶보다 어려운 삶이 행복한 삶에 가깝다. 언젠가 내 아이들이 꿈에서 도망치려고 할 때, 아이들에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근사한 아빠가 되고 싶다. “꿈에서 도망치지 않아야 행복할 수 있단다.”



줄넘기

복싱은 겉멋이 아니다 _ “실전은 야박하다. 삶이 실전이다”

본격적으로 복싱을 시작한 지 두 달 즈음 되어갈 때 관장이 스파링을 제안했다. 두 달 동안 나름 열심히 했다. 기본기인 줄넘기부터 거울을 보고 자세를 가다듬는 훈련인 섀도복싱은 물론이고 샌드백을 치는 것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어렸을 때 운동한 것도 있고, 운동 신경이 전혀 없는 편도 아니어서 스텝이나 자세는 어느 정도 나왔다. 그래서였는지 관장이 스파링을 권한 것이다. 내심 기분이 좋았다. 운동한 지 얼마 안 되었지만 실력을 인정받는 기분이 들었다.


스파링 날이 다가올수록 긴장되기도 했지만 내심 기대도 되었다. 첫 스파링에서 상대를 어떻게 때려눕힐지 상상했다. 그리고 마침내 스파링 하는 날이 되었다. 치아를 보호하는 마우스피스를 물고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헤드기어를 쓰고 14온스 글러브를 끼고 링에 올랐다. 여전히 긴장보다는 기대가 컸다. 상대를 어떻게 공격할지 머릿속으로 상상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는 사이에 공이 울렸다. 공이 울리자마자 상대는 거리를 좁히며 저돌적으로 달려들었다. 당황한 나는 엉겁결에 펀치를 날리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허우적거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 주먹이 허우적거리는 사이에 상대의 체중을 실은 강펀치가 내 얼굴에 정확히 꽂혔다.


별이 번쩍했다. ‘찌지징’ 광대뼈에 감전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느낌은 뭐랄까, 통증이 아니라 일종의 공포심에 가까웠다. 스파링을 시작한 지 2분도 채 지나지 않아 손사래를 치며 헤드기어를 벗어 버렸다. 아파서가 아니라, 두렵고 당황스러웠기 때문이다. 관장과 상대는 더 당황한 듯 영문을 몰라 했다. 스파링에서 그 정도 강도의 펀치는 일상적으로 주고 받기 때문이었다.


창피함, 부끄러움, 자괴감 때문에 도망치듯 서둘러 체육관을 빠져 나왔다. 그리곤 고민에 빠졌다. ‘프로 복서가 되겠다는 꿈은 애초에 너무 무리였던 걸까?’


링 위에서 싸울 수 없다면, 링 밖에서도 싸울 수 없다

링 위에서는 첫 스파링이라고, 컨디션이 안 좋다고, 봐주거나 살살 때리는 법은 없다. 패배를 인정하기 전까지 상대는 죽기 살기로 나를 때린다. 복싱은 실전이다. 그래서 야박하다. 바로 이런 현실이 겁나고 두려워서 복서라는 오랜 꿈을 피해 다녔던 게다. 이 사실을 첫 스파링으로 겨우 깨닫게 되었다.


실전은 링 위에서만 펼쳐지는 것이 아니다. 바로 우리네 삶이 실전 아니던가. 어쩌면 링 위의 싸움보다 우리네 일상적인 삶의 싸움이 더 실전에 가까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니, 사실은 링의 싸움보다 삶의 싸움이 더 야박하다. 적어도 링 위에서의 싸움은 체중을 맞추고 보호 장비를 끼고 정해진 시간과 규칙하에 이뤄진다.


하지만 우리네 삶은 어떤가? 막무가내로 지시를 하는 사장, 폭언을 밥 먹듯 하는 상사, 진상을 부리는 고객, 온갖 범법을 저지르고 유유히 빠져나가는 유명 인사들. 우리의 밥줄을 쥐고 있다는 이유로, 권력이 있다는 이유로, 돈이 많다는 이유로, 우리네 일상적인 삶을 유린한다. 최소한의 공정함도 없는 야박한 싸움에 우리는 매일 내몰리고 있다. 그러니, 링 위에서 싸울 수 없다면, 링 밖에서도 싸울 수 없다.


복싱, 잘 맞고 잘 때리면 된다 _ “잘 산다는 건, 신념과 유연함의 균형이다”

2분도 채우지 못했던 첫 번째 스파링에 가장 실망한 사람은 나였다. 그래서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다시 기본기에 집중하기로 했다. 평소 귀찮으면 건너뛰기도 했던 줄넘기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잽, 원투, 훅, 어퍼컷 같은 기본자세도 모두 다시 점검했다. 정확한 자세가 나올 때까지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형님 오늘은 저분이랑 메쓰(메서드 스파링, 약한 강도의 스파링) 한 번 하시죠?” 나를 한참 지켜보던 관장이 내게 던진 말이었다. 링에 오르면서 딱 하나만 생각했다. ‘연습했던 기본기를 정확하게 사용하자!’


“형님, 복싱은 잘 맞고, 잘 때리면 되는 거예요.” 메서드 스파링을 끝내고 링에서 내려오는 내게 관장이 한 말이었다. 처음엔 무슨 소린가 했다. 다음 날, 코치가 내게 영상을 하나 보내 주었다. 전날 있었던 메서드 스파링 영상이었다. 영상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메서드 스파링 내내 몸은 경직되어 있었다. 마치 나무토막이 복싱을 하는 것 같았다. 그제야 어제 관장의 이야기가 납득이 되었다. 기본기에 충실하려고 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생각해 보면 당연했다. 상대의 움직임에 맞춰 적절하게 움직여야 하는 것이 복싱이다. 하지만 내 머릿속엔 오직 내 기본기에 관한 생각뿐이었다. 그러니 복싱을 처음 시작하는 몸치 회원들처럼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섀도복싱

프로테스트, 망신 or 성취? _ “성취의 기준은 자신이다”

복싱을 시작하면서 끝을 분명히 정했다. 프로 데뷔. 생활 체육 복싱이 아니라 프로 복싱 시합을 하려면 일종의 자격증이 필요하다. 프로 복서로 시합을 하기 위해서는 테스트를 통과해야 한다. 복싱하는 사람들은 ‘프로테스트’라고 부른다. 그 테스트에 합격한 사람들에게 협회에서 프로 복서 라이선스를 발급해 준다. 말하자면, 프로테스트는 내 꿈을 향한 첫 번째 관문인 셈이었다. 테스트는 간단하다. 체급에 맞는 상대와 2라운드 스파링을 하면 된다. 그 스파링을 협회 관계자들이 보고 테스트 당락을 가린다. 스파링을 통해 프로 시합을 할 수 있는 기본기, 자세, 태도를 판단한다.


프로테스트 하던 날</P>준비 막바지에는 체중 조절 때문에 이틀 동안 물을 거의 마시지 못했다. 얼음을 입에 물고서야 간신히 잠들었다. 테스트 날이 되었다. 빨리 계체(체중을 재는 것)하고 물을 마시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테스트 장소로 가는 길은 왜 그리 먼 건지. 겨우 도착해서 계체를 했다. 계체를 끝내자마자 마신 물은, 이제껏 먹었던 그 어떤 음식보다 맛있었다. 물 한 통을 벌컥거리고 난 후에야, 다르나 예비 프로 복서들의 긴장한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돌발 변수, 100kg 선수와 대결

큰일 났다. 안 그래도 긴장이 밀려왔는데 더 큰 변수가 생겼다. 원래 91kg 이상 체급 두 선수가 스파링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그중 한 선수가 테스트에 불참한 것이 화근이었다. 100kg은 거뜬히 넘어 보이는 선수가 내 상대가 되었다. 가장 비슷한 체급이 나였기 때문이었다. 그때부터 긴장과 두려움은 급격히 더해졌다.


링에서 마주 선 상대는 더욱 커 보였다. 솔직히 스파링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정신없이 3분 2라운드의 프로테스트 스파링이 끝났다. 다행히 합격했다. 링을 내려오면서 기분이 무척이나 좋았다. 도저히 풀지 못할 것 같은 숙제의 첫 문제를 푼 느낌이랄까? 긴장되고 두려워서 도망만 다녔던 일에 당당하게 맞서기 시작했다는 자기 긍정의 느낌이 좋았다. 그런데 정작 관장의 표정은 좋지가 않았다. 밝게 웃는 내가 머쓱해질 정도로 뭔가 불만스럽고 답답해하는 표정이었다. 이유를 짐작은 했다. “형님, 그렇게 하시면 안 돼요. 시합 시작도 하기 전에 겁먹고 뒤로 빼면 안 돼요. 그런 프로 복서가 어디 있어요. 체급 차이 많이 안 났으면 떨어졌을 거예요.”


성취의 기준은 자신이다

누군가 보기에 나의 프로테스트는 형편없는 것이었을 수 있다. 하지만 내게 그것은 망신이 아니다. 누가 뭐래도 나는 내 성취가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억지스러운 자기합리화가 아니다. 예전의 나였으면 결코 하지 못했을 도전에 나를 내던졌다. 누가 뭐래도, 그건 기뻐하고 자랑스러워해야 할 소중한 성취다.


더 이상 나의 성취를 타인의 시선에 맡겨 두지 않을 테다. 더 이상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을 테다. 오직 나로서 좋아하고 잘하는 것, 그래서 오직 나니까 할 수 있는 일들을 긍정하며 살고 싶다. 앞으로 다가올 수많은 성취와 망신을 나의 시선으로 받아들이며 살 테다. 그렇게 나는 내 삶의 주인이 되고 싶다.



메서드

‘최선을 다했어?’라는 폭력적인 말

각자의 최선이 있을 뿐이다

‘나는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게으르고 나태한 인간이야!’라며 자신을 부정하고, 또 그 끔찍한 자기부정을 해소하기 위해 가학적인 노력을 계속하면서 깨닫게 된 것이 있다. 그건 누구도 한 사람에게 최선을 물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각자에게는 각자만의 최선이 있기 때문이다.


두 가지 다짐

두 가지를 다짐했다. 하나는, 이제 누군가가 강요하는 최선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또 하나의 다짐은 앞으로 더 나이가 들어도 누군가에게 “최선을 다했어?”라고 묻지 않겠다는 것이다. 게으른 사람은 없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 만약 누군가 게으르게 보인다면, 그건 순전히 나의 관점에서 그를 판단한 것이다.


누구도 타인에게 최선을 물을 수 없다. 아무리 게을러 보이고 나태해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모두 저마다의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최선을 묻고 강요하고 싶을 때는 언제나 자기 최선의 기준에서 그것이 못마땅하기 때문이다. 그게 폭력이다. 그래서 누군가 강요하는 최선을 받아들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자신이 살아내고 있는 삶의 맥락 안에서 각자 최선을 다해 살면 된다. 그리고 그 결과를 겸허하고 의연하게 받아들이면 된다. 이제 누구에게도 최선을 다했냐고 묻지 않을 테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며 살 것이다. 



드디어, 프로 복서

프로 복서, 저주를 풀다!

굿바이! 자기 부정

2016년 4월 16일, 프로복싱 데뷔전을 치렀다. 판정패했다. 하지만 상관없다. 긴 시간 나를 부여잡고 있던 부정적 자기 인식에서 자유로워졌으니까. 더 이상 도망치는 삶을 살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나는 꿈을 이뤘다. 아니 저주를 풀었다. 그래서 자기 부정에서 벗어났다. 이제 내 앞에서 어떤 삶이 펼쳐지더라도 조금 더 당당하게 삶을 살아낼 수 있을 것 같다. 좋은 작가로서 조금 더 당당하게 독자들 앞에서 설 수 있을 것 같다. 또 좋은 아빠로서 조금 더 당당하게 아이들 앞에 설 수 있을 것 같다. 굿바이! 자기 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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